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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시면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눅5:12-16)

by 【고동엽】 2022. 10. 6.

원하시면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눅5:12-16)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문둥 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
려 구하여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눅5:12)


오늘은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 온 몸에 문둥병이 든 환자가 예수님께 간구하게 되고
예수님은 이 환자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낳게 되는 것을 말씀합니다.  본문을 가지고 두 대
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는 문둥병 자의 신앙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고 두 번째는
이 병자에 대하여 자비를 베푸시는 예수님의 사랑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하여 사죄의 은혜를 충만히 덧입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문둥병 자입니다.(12)


1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 온 몸에 문둥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
여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지금은 이 병을 나병, 한센시 병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병은 고쳐지는 병으로 되어 있
습니다만, 예수님 당시에 이 병은 불치병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 병의 초기 증상은 어느 누구도 잘 모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문둥병에 대해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고 3년, 자기만 알고 3년,
남들이 알게 되기까지 3년, 그래서 9년이 되어야만 이 문둥병으로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초기 증상은 병균이 먹은 부분에 땅이 나지 않고 몸에 반점이 생기고 몸에 이 같은 것이
기어가는 것 같고 감각이 점점 없어지고 눈썹이 빠지게 됩니다.
신경이 죽으므로 감각이 없고 신경이 죽으므로 한 번 상처가 생기면 낫지를 않고 썩어서
손과 발, 코, 얼굴이 일그러져 갑니다.
오늘 본문에 이 병자는 온 몸에 문둥병이 들렸다 한 것을 보면 병이 심했던 것 같습니다.  
또 이 병은 접촉성 전염병이기 때문에 환자들을 철저히 격리시켜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레위기(13장-14장)에 보면 문둥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 입술을 가
리우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소리를 쳐야 합니다.  그러치 않고 50야드 가까이 오게 되면 돌
을 들어 처도 무방하다고 합니다.
또 이 병이 있는 날 늘 부정하므로 진 중에 들어올 수 없고 혼자 진 밖에서 살아야 합니
다.(레13:45,46)  그는 인간 사회에서 추방되고 가정에서 떠나 살아야 합니다.
이상에서 볼 때 이 병이 들면 육신이 문드러지는 아픔과 몰골이 이그러지는 아픔이 있습
니다.  이 병이 들면 무조건 사랑하는 처자들을 두고 가정을 떠나야 하고 사회를 더나 진
밖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이러므로 이 병자는 심한 소외감과 외로움과 고독감에 시달립니
다.  또 유대인들은 이 문둥병은 하나님의 저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병자를
부정하게 여겼고 자신도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자라고 생각을 하며 깊은 절망 속에 빠졌습
니다.  일생 동안 사는 것을 저주하며 깊은 운명 주의의 노예가 되어 비참하게 죽어 가야
했습니다.
이 말씀을 영적으로 볼 때 문둥병은 죄의 성질과 아주 비슷하다는 것을 봅니다.
죄를 지을 때도 갑자기 큰 죄부터 짓지를 않고 서서히 자기도 모르게 남도 모르게 이것쯤
은 괜찮아 이것은 괜찮아 해서 점점 자라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는 장성합니다.  서
서히 자라 가지만은 죄는 문둥병 같아서 감각이 없습니다.  이것쯤은, 이것쯤은 하며 감각
이 무디어 가는 것입니다.
죄를 처음 지을 때는 아이쿠 하다가도 자꾸 반복하면 마음이 굳어지고 강팍해지고 감각이
없어집니다.  덤덤해져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에서 죄를 죄로 여기
지 않는다 했습니다.  죄를 심상히 여기고 양심이 마비되어 감각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하고,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하는 자
요 수근 수근 하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
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비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
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를 사형에 해당한다 하는 것도 알고 잘못되었다 하는 것도 알지
만 자기들만 행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했습니다.
또,죄는 동료 의식을 갖습니다.  같은 죄 짓는 이를 좋아합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이 내
버려 두사 했습니다.  그러므로 디모데는 이런 감각 없는 마음을 <화인 맞은 양심>이라 했
습니다.  죄에 대해 감각이 없으니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나 성령의 감화나 감동이 있어도
감화를 받아 드리지 아니하므로 회개할 줄을 몰라서 버리운 대로 그대로 죽어 갑니다.

또, 죄를 지으면 사마리아 여자 같이 사람들과 단절되고 소외됩니다.
죄는 병과 같아서 접촉하는 사람을 쉽게 전념시키듯이 오염시켜 버립니다.  죄도 믿음과
같아서 자랍니다.  자라서 결국은 사망에 이릅니다.  그러므로 죄를 즐기는 사람과 접촉하
면 그대로 되어 버리기 때문에 시편 1장에 복 있는 사람은 죄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죄
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했습니다.
그들과 접촉하지 않고 구별되게 살면 저는 시냇가의 심은 나무 같아서 시절을 쫓아 과실
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같이 만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했습니다.
이 병자가 가정과 사회에서 버림을 받듯이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습니다.
또, 자기가 죄를 지어 놓고 스스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
것은 병이라고 하는 죄의 담이 가리워 있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면에서 볼 때 문둥병은 죄와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죄는 영혼의 문둥병이라
고 일컫습니다.

이제 본문으로 돌아가서 이처럼 무서운 병에 걸린 문둥병 자는 어떻게 했습니까?
12절 중반 절을 보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했습니다.
이 병자는 예수님을 보고 땅바닥에 그대로 엎드려 간절히 구했습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그의 절실한 소원이 그를 깨끗케 했습니
다.  오늘 이 본문의 병자로부터 3가지 중요한 신앙의 자세를 배울 수 있습니다.
1)첫째, 그의 신앙은 포기하지 않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온 몸에 병이 퍼진 것을 보아 병이 상당히 심한 상태였습니다.
이 병은 당시로 불치병이요, 율법적으로 사람들과의 접촉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래
서 많은 문둥병 자들이 자포자기하고 낫고자 하는 소원조차 갖지 못하고 절망하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환자는 포기하지 않고 어찌하든지 낫고자 하는 소원
이 간절했습니다.  
믿음이란 절망치 않는 것입니다.(눅18:1-5) 신학자 풀투만은 "소망 없는 믿음은 죽은 믿
음이요 신앙이 아니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발라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것입
니다.  이 병자는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믿음을 기
뻐하십니다.
또, 이 병자는 주님의 사랑을 믿었습니다.  주께로 갈 수 없는 자인데 주의 사랑을 그대
로 의지하고 주님 앞에 나아 왔습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나와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히
브리서 기자는 은혜 베푸시는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자 했습니다.

2)둘째, 이 병자는 예수님의 권능을 절대 믿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권능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권세에는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자기의 병을 고쳐 주시는 것에 예수님의 뜻이 있는지 그것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훌륭한 신앙이겠습니까?   이 병자는 주여 내 병을 고쳐 주십시오.  
내 병을 깨끗하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가난한 집사님 가정이 있는데 너무나 가난하지만 이런 기도를 못해 봤습니다.
"하나님이여 우리 가정 부자 되게 해 주십시오.  물질 축복하여 주십시오" 라는 기도 대
신에 "주여 원하시면 주님은 주실 수 있습니다" 라는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주님은 복의 근원이십니다.  축복을 주시는 이십니다만, 그 주신 복으로 인하여 복에 빠
지고, 교만해진다면 오히려 아니 받은 것만 못하기 때문에, 주님은 다 아시기 때문에 주님
의 깊으신 뜻대로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얼마나 귀합니까?
저 잠언 30:7-10절 선지자 한 사람이 기도를 했는데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겠는데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첫째는 허탈한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하게 해 주십시오.
둘째는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
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
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렵습니다.  하며 하나님의 뜻을 묻고 기
다리는 기도를 드렸다는데 이 사람이 아굴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 문둥병 자는 이 병이 중하고 무서운 거기에 대해서 병이 나을 수 있는 하
나님의 권능, 예수님의 권능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있거든(막9;22)이 아닙
니다.  이 병을 고쳐 주실 수는 있는데 이것이 주님의 원하시는 것인지 주님의 뜻을 묻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환자는 예수님은 자기의 병을 깨끗이 하실 수 있고 그렇게 해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나아가 엎드렸습니다.  예수님만이 자기를 깨끗이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간절하게 매달리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영적인 문둥병과 같은 죄는 예수님만이 깨끗이 하실 수 있습니다.

이사야 1:18절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
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 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영혼을 깨끗이 하실 수 있는 분이시오 사망에서 생명을 옮길 수 있는 절대
자이십니다.  내 이 무서운 병을 치료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이 주님 앞에 원
하시면 나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는 신앙으로 담대히 나아가 기도 드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3)셋째,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는 주님의 긍휼을 구하는 믿음입니
다.  이 문둥병 자는 주여! "원하시면" 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율법적으로 볼 때 부정한 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구할 자격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원하실지 어쩔지 주님이 원하시면
깨끗케 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내 원대로만 이루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전혀 무시하고 내 뜻대로만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고 바라고 떼를 쓰고 합니
다.  키에르케고르는 말하기를 "참다운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자신
이 변화되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여기의 병자는 내 병은 주님께서 확실히 고치십니다.  확실히 주의 권능은 믿고 있습니
다.  그러나 주님의 원하는 뜻이 있으면 나를 고쳐 달라는 것입니다.  이 분 병이 깨끗이
나아서 주님을 멀리 떠나고 배반한다면 병을 가진 그대로가 좋습니다.  내 병 낫는 것도 안
낫는 것도 다 주 안에 있사오니 내 뜻대로 보다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이 얼마나 깊은 신
앙인지 모릅니다. 이런 신앙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 하십니다.


Ⅱ.문둥병 자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예수님(13-16)


이 병자가 병이 들어 예수님 앞에 나아 와 엎드려 "주여 원하시면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
다" 하니 1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내가 원하오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셨습니다.
여기 문둥병 자에게 손을 대시는 것은 우리 주님의 사랑입니다.  모든 사람은 이 병자들
을 꺼려하고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또 율법적으로 이 병자를 만지면 부정하게 됩니다.  도
병이 옮겨가기 쉽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손을 대시며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는 것은 우리 주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구세주 예수님은 손댈 수 없는 자에게 손을 대고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사랑하며 용서할 수 없는 자를 용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사셨으니 우리도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 한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신 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궁창이 있으라 하시매 그대로 되었고, 땅이 있으라 하시매 그대로 되었습니
다.  말씀 한마디로 귀신이 쫓겨 나가고 말씀 한 마디로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꾸짖으시
니 열병이 떠나갔습니다.(4:38)  말씀하시매 야이로의 죽은 딸이 살아나기도 하고(8:49) 풍
랑이 바다를 꾸짖으시니 흉용 하던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예수님은 권능의 말씀으로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매 문둥병이 곧 떠났습
니다.  예수님은 말씀의 권세자 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죄라는 문둥병이 들었습니다.  이
병이 들어서 죄를 지어서 무감각하고 덤덤했습니다.  이대로 가면 사람과 하나님과 단절되
고 결국은 죄로 말미암아 사망에 이르게 되는데 예수님은 이 권세의 말씀 한 마디로 우리
죄를 사하시며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내가 원하노니 네 죄 사함을 받으라 하면 우리 죄가 사해지는 것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① 예수님께서 문둥병 자를 고쳐 주시고 경계하시기를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셨습니
다.  이는 강하게 명령하시는 것으로서 고전어에서는 군사적으로 명령에 사용하였습니다.  
마가복음 1:43절에 "엄히 경계 하사"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 당신 자신이 병을
고쳐 주시러 온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의사로 알려 지기를 원치 않으시므로 병을 고치실 때
나, 이적을 행하실 때나, 기적을 행하시고 항상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경계하셨습니다.  
다른 많은 이유도 있겠습니다만, 예수님은 당신 자신이 병을 고치는 메시아로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②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그에게 앞으로 자유인으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문둥병
자는 제사장에게 건강 진단서를 받아야 완전한 사회인으로 사회 생활과 성전이나 회당에 들
어가 종교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건강하다는 진단이 있어야 가족과 친구, 친
척들과 자유로이 생활을 할 수 있고 가정에 들어가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렇게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라 하심은 완전히 치유되었다 함을 확인시켜 주시는 것이 되겠습니다.
③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라 하셨습니다.
문둥병이 나았음을 확인하는 절차는 먼저 건강 진단을 담당하는 제사장에게 찾아가서 몸
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제사장이 완치되었다 진단을 내리면 정한 산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를 드리도록 하였습니다.(레14:1-9)
이렇게 하여 떳떳이 가족에게 돌아가게 하시고 온전한 사회인으로 생활하게 하시고 종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병이 나은 이 환자에게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해야 할 방향을 잡아 주신 것이겠습
니다.

한 번은 열 문둥병 자가 병이 들어서 예수님께 나와 병을 고쳐 달라고 간구를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명령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가다가 도중에
그만 병이 나았습니다.  그 때 9명은 병이 나았으므로 기뻐서 먼저 가지 가족이나 친구를
찾아 알리고 자기들의 원하는 대로 하느라고 미처 주님께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마리
아인 한 사람은 큰 소리로 주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왔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열 명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이 사마리아 한 사람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온
자가 없느냐 그 아홉은 어디 갔느냐 한 것을 읽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항상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기를 바라시며 감사 생활을
하도록 방향을 잡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고 정한 예물을 드리게 한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키신다는 사실을 알리시는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을 파괴하러
오신 분이 아니시요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것을 한 번 더 배우게 됩니다.
이처럼 예수님도 율법을 잘 준수하셨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진리나 예수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에 경외심을 가지고 말씀에 절대 순종하여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문둥병 자를 고치시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경계하셨지만 어떻게 알
았는지 알고는 (그 소문이 더욱 퍼져서) 허다한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나음을 얻고
자 모여 왔습니다.  내려오는 말에 <꿩 먹고 알 먹고>하는 말이 있습니다.  진실로 하나님
을 섬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날마다 꿩 먹고 알 먹는 일이 생겨 날 줄로 믿습니다.

무리들이 이렇게 많이 더욱 모여들자 16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어떻게 하시었습니까?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시더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벳세다 빈 들녘에서 보리 떡 5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 명을 배 불리
먹이시고 12바구니에 차게 남은 부스러기를 거두었습니다.(요6:4-15)
그 때 떡을 먹은 수많은 백성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 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이것을 아시고 혼자 산으로 피해 가셨습니다.  
마태 14:23절, 막 1:45절, 6:46절, 요 6:15절, 본문 16절에 예수님은 이적이나 기적이 일
어날 때마다 피해서 산으로 가사 기도를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추앙하고 존경의 대상이 될 때 이래도 되는 건가 조용히 기도하시는 예수님
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더라" 했는데 <때때로> 혹은 <자
주>란 말이 공동 번역이나 현대인의 성경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런 큰 이
적이나 기적이 일어나서 병이 낫고 큰 귀한 역사가 일어날 때마다 <자주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셨다고 했으므로 이 예수님을 그대로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큰 역사가 일어
났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으로 병이 낫고, 일이 잘되고, 축복을 받았습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교만하고 없던 자가 있게 되면 큰 소리 합니다.  새벽기도는 고사하고 기도 생활
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 때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잘 배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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