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자료 18,185편 ◑/자료 16,731편

청년아 일어나라 (눅7:11-17)

by 【고동엽】 2022. 9. 20.

청년아 일어나라   (눅7:11-17)

A. 청년과 일어남에 대하여

1. 청년, 고난을 극복하고 일어남

최근 우리나라에 IMF때도 없었고, 10년, 20년 전에도 없었던 새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통계청에서 조사하여 발표한 바에 의하면 실업자 2명 중 1명이 청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년 실업자의 수는 38만 5천명에서 40만 명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일자리를 구하는 광고를 보고 찾아갔다가 사기를 당하는 사건도 상당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로 인해 인생의 짐을 견디지 못한 20~30대 젊은이들의 사망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20대의 사망순위 1위는 교통사고이고, 30대의 사망순위 1위는 암인데, 20대와 30대의 사망순위 2위는 공통적으로 자살이라고 합니다.

한국장례문화연구센터에서 한국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자살과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10명 중 9명이 그렇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부활이나 환생을 믿느냐는 질문에 믿는다는 사람이 25%,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있다는 사람이 63%라고 합니다.

아마 여러분의 자녀들도 부모가 알지 못하는 고민과 여러 가지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신문에 나온 대로 ‘Bye! Bye! Korea’를 합니다. 앞날이 캄캄한 한국을 떠나자는 것입니다. 정치, 경제도 희망이 없고 교육도 싫고 북한의 핵문제도 걸리고 모든 것이 싫다는 것입니다.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연령별로 20대는 50%, 30대는 51%, 40대는 40%, 50대는 26%로 많은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 가서 살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민을 가고 싶은 나라는 어디인지 조사했더니 캐나다가 1위이고, 그 다음은 미국, 호주, 뉴질랜드 순이라고 합니다. 한국만 떠나면 어디든 상관없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도산 안창호(安昌浩 ; 1878~1938) 선생은 청년들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도 죽는다.”
과연 대한민국의 앞날에 희망이 있습니까? 많은 청년들이 직업이 없어 낙망하고 나라를 떠나고 싶어 하는 이 나라에 정녕 희망이 있는 것인지 질문을 해봐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려움과 고통과 낙망이 우리에게 부정적인 요소만 끼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일어나서 승리하는 사람이 진정한 승리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최고의 수제품 구두를 만드는 공장의 사장이 “고급 구두일수록 많이 두들겨 맞고 손이 많이 간다.”고 말했습니다. 값진 인생은 그만큼 고생을 많이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이아몬드도 커팅을 많이 한 것일수록 고급 보석이 되고, 고급 도자기 본차이나는 뼈와 흙을 최대한 많이 부수어 고운 가루를 내어 만들어야 고급 그릇이 된다고 합니다.

고통과 고난을 통해서 연단을 받은 사람들, 어려운 문제를 극복하고 성장하여 일어난 사람들이 크게 대성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인간의 최대의 영광은 한번도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때마다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전도서 12장 1절 말씀에 귀를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젊었을 때에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면 하나님 앞에 나오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낙심하여 자살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대개 믿음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현실과 환경만 바라보고 인생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2. 본문 배경 설명

오늘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나인 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신 사건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이 기적의 사건이 우리에게 소망과 위로가 되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시다가 나인 성이라는 곳에 도착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성에서 한 장례행렬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행렬 뒤에는 한 여인이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는데, 남편을 잃은 과부가 독자인 아들마저 죽자 절망과 슬픔 속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불쌍한 광경을 보시고 가까이 가서 과부에게 ‘울지 마라’고 위로하시고 죽은 아들의 관에 손을 대시며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자 죽었던 청년이 관 속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던 과부는 다시 살아난 아들을 품에 앉고 기쁨과 감사와 보람을 느끼며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아무리 인간의 절망이 크고 고통과 슬픔과 외로움 속에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오시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위로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몇 년 전, IMF 때는 40대, 50대가 명퇴, 황퇴, 은퇴 등으로 인해 직장을 잃고 방황하여 ‘고개 숙인 기성세대’라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청년들이 실업의 고통으로 자살률이 높아져 ‘고개 숙인 청년’이라는 유행어가 생겼다고 합니다.

40대이든, 청년이든 고난과 고통을 당할 때 낙심하고 절망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절망 가운데서 어떻게 하면 절망을 극복하고 다시 인생을 새롭게 출발하고 도전하여 새 삶을 살 수 있는지 생각해보고 인간적인 방법과 수단을 가지고 노력하기 보다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합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앞에 나가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고 소망을 주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청년아 일어나라”고 하신 말씀이 여러분에게 은혜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청년아 일어나라’고 하였습니다.


B. 청년아 일어나라

1.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
- 독자를 잃은 과부, 잃음, 손실, 상실, 인생의 고난, 죽음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허다한 무리가 동행하더니 성문에 가까이 오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눅 7:11~12)

예수님께서 나인 성에 도착하셨을 때 한 장례행렬을 만나셨습니다. 여러분, 인생은 잔칫집과 같은 기쁨으로 살아야지, 장례식 같은 슬픔 속에서 살면 안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장례식장처럼 슬피 울고 비관하면서 외롭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장례행렬을 알고 보니 과부의 독자가 죽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죽은 과부를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과부는 남편이 없습니다. 남편이 죽었을 때도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을 텐데, 또다시 죽은 아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통곡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인은 마치 과부와 같은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믿었던 것, 의지하고 바랐던 것이 하나씩 없어지고 결국에는 모두 사라집니다. 정치도 믿을 수 없고, 경제도 믿을 수가 없고, 과연 누구를 의지하며 믿고 살아가겠습니까? 절망과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술이나 마약, 도박에 빠지게 되고 결국 자기의 삶에 만족을 얻지 못합니다. 오늘날 이렇게 마치 남편이 죽고 아들이 죽은 과부처럼 몸부림치며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말씀에는 과부에 대해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신명기 14장 29절 말씀에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객이나, 고아나, 과부를 돌봐주는 사람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3절 말씀에 병들어 죽은 오라비 때문에 통곡하고 있는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예수님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25~26절 말씀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하시고, 무덤가로 가셔서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께서 예수님 자신도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국의 유명한 시인 존 밀턴(John Milton ; 1608~1674)은 “가장 많이 고난당한 사람이 가장 많은 영광을 누리고, 가장 위험한 곳을 통과한 사람에게 큰 승리가 주어진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난이나 위험이 때로는 우리에게 성공의 동기, 요소가 될 수 있고, 그것 때문에 크게 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로마시대의 교부였던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 354~430)는 『하나님의 도성(City of God)』이라는 불후의 명저를 남겼습니다. 그 책의 내용을 보면 “인생에는 고통이 다가온다. 고통은 동일하지만 그것을 당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변한다. 악한 사람은 하나님을 원망하여 고통으로 심판을 받지만, 선한 사람은 그 고통을 통해서 겸손하게 깨어지고 회개하여 하나님 앞에 구원을 받고 감사와 찬송을 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악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선한 사람입니까? 악한 사람은 고통을 당할 때 그 고통이 심판으로 나타나지만 선한 사람은 그 고통이 구원의 역사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 1483~1546)는 “아무리 험한 시험과 역경이 몰아친다 할지라도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우리의 삶에 새로운 용기와 희망이 넘친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만큼 고통과 어려움을 당하겠습니까? 아무리 처절한 절망 속에 빠졌다 할지라도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죽음만큼 비참하겠습니까? 십자가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가 나의 승리가 되고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의 영광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강원도 원주에 사시는 김인숙 집사님은 남편과 함께 냉동냉장식품 전문납품업체를 시작했습니다. 축복개업예배를 드리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고생한 것만큼 점점 사업이 잘되고 안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업이 안정되자 갑자기 심한 피로가 닥쳐오고 뱃속에 가스가 차고 가슴 아래에 통증이 와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더니, 췌장에 종양이 생겼다며 암으로 확인되면 수술을 받아야 하니 일년 뒤에 다시 검사를 하자고 했습니다.

암으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절망이 닥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동안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며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면 고쳐달라고 기도로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철야기도, 새벽예배, 주일예배, 수요예배 등 시간마다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그것도 부족한 것 같아 기도원에 가서 10일을 작정하고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10일 금식을 마치자 그렇게 아프던 가슴의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으니 종양이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그는 “기도와 금식으로 내 병을 고쳐주신 하나님, 이제 남은 인생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하고 간증하였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돈, 돈 하면서 세상으로 나가지만, 돈 벌고 병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인생을 돈과 바꾸고 세상과 바꾸어서 건강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건강해야 육체적으로도 건강하고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아야 진정한 축복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고 매달릴 때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그 기도를 반드시 응답하여 주십니다.


2.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 불쌍히 여기심, 긍휼, 자비, 위로의 하나님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눅 7:13)

예수님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처절한 슬픔으로 눈물을 흘리는 과부를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남편이 죽었을 때도 울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도 죽어 또 울게 되었습니다. 이 과부에게 남은 것은 눈물 밖에 없습니다. 그대로 두었다면 과부는 아마 울고 또 울다가 지쳐 세상을 떠났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과부를 보시고 ‘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더 이상 울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눈물을 거두어 주시고 우리의 마음속에 평강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죄악과 절망과 슬픔과 질병 속에서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며 산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만난 우리들은 더 이상 눈물을 흘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울지 말라, 낙망하지 말라, 절망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종 하갈이 아들 이스마엘을 데리고 집에서 쫓겨났을 때, 들에서 물이 떨어져 목말라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21장 16절 말씀에 하갈이 하나님께 방성대곡하며 “자식의 죽는 것을 참아 보지 못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축복을 약속하고 눈을 밝혀서 샘물을 보게 하여 목말라 죽어가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살리고 구원의 역사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며 기도하는 사람의 눈물을 씻겨주시고 그 기도를 응답하여 주십니다.

마태복음 14장 14절 말씀에도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불쌍히 여기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국의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 1834~1892) 목사님은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라.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든 슬픔에 동정을 가지시고 불쌍히 여기신다.”라고 말했습니다.
병든 자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고통당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불행한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오셔서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원에서 설교를 마치고 나오면 복도에 기도를 해달라고 앉아있는 사람들이 항상 있습니다. 백혈병, 피부병, 간암, 폐암 환자 등 아픈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기도원에 오는 사람마다 이런 질병을 다 고침 받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또 기도원에는 참 딱한 사정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한 40대의 여자 성도님은 집을 나간 남편이 돌아오도록 기도를 해달라며 저를 찾아왔습니다. 집을 나간 이유를 물어보니 남편이 바람을 펴서 부부싸움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남편은 이혼을 세 번이나 한 사람으로 지금의 성도님이 네 번째 부인이라고 했습니다. 게다가 그 성도님은 파출부를 하여 1억 원이 넘는 돈을 남편에게 벌어다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 성도님의 사연을 들어보니 참으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이 아프고, 사정이 딱하고, 이런 사람들을 볼 때 저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하나님의 마음은 오죽 하시겠습니까? 저는 그 분들을 위해 하나님께 불쌍히 여겨달라고, 그리고 축복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차옥희 성도님은 어느 날부터 유방에 몽우리가 점점 커지더니 유두에서 피고름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니 유방암 말기로 수술도 불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 죽기를 기다리지 말고 미리 죽자는 마음으로 지하철로 갔습니다. 지하철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뛰어내렸는데 지하철이 급정차를 해서 간신히 목숨을 구해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그는 마음대로 죽지도 못한다고 원망하며 병원에 누워있는 데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다니는 집사님 한분이 식사 때마다 먹을 것을 주며 전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곧 죽을 사람이 교회는 가서 무엇하냐며 버티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그 집사님이 너무 고맙고 잘해주시는 것이 미안해서 교회에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는 순간 서러움이 밀려들면서 하나님께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옆에 누가 있든지 개의치 않고 통곡하며 도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낮이든 그저 교회에 가서 열심히 기도만 하였습니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 우울증이 사라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주실 것이라는 희망과 용기도 생겼습니다. 그러자 가슴의 통증도 점차 사라져서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았더니 깨끗하게 나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이제 나는 제 2의 인생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새롭게 인생을 살겠습니다.” 하고 고백하고 간증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질병에서 고침 받고 위로를 받습니다. 과부처럼 사는 사람,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고, 돈도 없고, 건강도 없고, 희망도 없고, 믿음도 없고, 사랑해주는 사람도 없고, 이것저것 아무것도 없어 절망에 처한 사람에게 누가 찾아가서 도움을 줍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제는 울지 말라고 하십니다


3. 청년아 일어나라
- 청년을 다시 살리신 예수님, 기적의 예수님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미에게 주신대”(눅 7:14~15)

예수님께서는 그 행렬로 가까이 다가가셔서 관에 손을 대시고 ‘청년아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유대나라 전통에는 부정하다 하여 관에 손을 대지 않습니다. 하물며 모르는 사람이 죽은 관에 누가 손을 대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너무나 불쌍하고 애처롭게 우는 과부를 보고 그의 죽은 아들의 관에 손을 대셨습니다. 그러자 관을 메고 가던 사람들이 멈춰 섰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관 속에 죽어서 누워있는 청년에게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죽은 청년이 말을 한다고 알아듣습니까? 보통 사람 같으면 예수님의 그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 관을 메고 가던 사람들도 죽은 사람에게 말을 하는 예수님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관 속에 죽어있던 청년이 벌떡 일어나 앉았습니다. 그리고 말도 하였습니다. 사람은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도 살리십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의 믿음이 죽었습니다. 희망이 죽었습니다. 사랑이 죽었습니다. 인생에 대한 보람도 죽었습니다. 왜 사는지 그 이유도 모릅니다. 삶에 대한 의욕도, 용기도 없습니다. 마치 죽은 자 같이, 아니면 과부처럼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미 죽어 관 속에 들어가 있는 상황 가운데서도 예수님께서는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일어나서 새로운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죽었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얼마든지 살아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청년을 살려서 그의 어미에게 주신 것처럼 여러분의 죽은 가슴, 여러분의 죽은 인생도 살려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죽은 사업도 살려주시고 건강도 살려주시는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잠언 24장 16절 말씀에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평소에 의롭게 사는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않고 일어납니다.
여러분, 살고 죽는 것은 결코 인간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됩니다. 실패했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성공하면 되는 것입니다. 돈을 잃었더라도 다시 벌면 되는 것이고, 잃어버린 건강도 다시 찾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인생을 포기하지 마시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누가복음 8장 54절 말씀에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야 일어나라” 이제 우리는 일어나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이제는 끝났다고 하는 부정적인 얘기보다 어떻게 하면 다시 부활할 수 있는가, 새로 살 수가 있는가, 새로운 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갖고 그 음성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보면 엘리야 선지자도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렸고(왕상 17:20~22), 엘리사 선지자도 수넴 여인의 죽은 아이를 살렸습니다(왕하 4:33~34). 베드로도 죽은 여제자 다비다를 살렸고(행 9:36~37, 40), 사도 바울도 죽은 유두고를 살렸습니다(행 20:9 ~12).
성경말씀을 보면 이처럼 죽은 자가 많이 살아났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살아나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 1918~ ) 목사님은 “훌륭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반드시 많은 고통을 겪고 일어난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교회에서도 유독 믿음이 좋은 사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열심히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과거에 한번 혼이 났거나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입니다. 또 하나님 앞에 유난히 열심히 헌금을 드리는 사람도 한번 망했다가 다시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고난과 역경을 겪은 사람은 믿음이 더욱 좋아집니다.
그런데 믿음도 없고 하나님 앞에 헌신도 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연단과 시련을 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을 받는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 크게 연단을 받는다는 것을 믿고, 지금 당하는 고난과 고통이 크면 클수록 축복과 영광도 크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국에 로버트 스티븐슨(Robert Louis Balfour Stevenson ; 1850~1894)이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몸이 너무 허약해서 걸어가는 건지, 바람에 끌려가는 건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학교에도 나가는 날보다 결석하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그를 보며 아마도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런데 그는 항상 누워 있다보니 자기 나름대로 머리 속으로 상상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가는 날이면 아이들을 모아놓고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모두들 재미있다며 그의 얘기를 듣고 싶어 했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 공부는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그는 누워있는 동안 상상한 이야기들을 책으로 썼습니다. 그 책이 그 유명한 『보물섬』입니다. 그 책 한권으로 그는 일약 영국의 유명한 소설가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청년들이여, 실패와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것이 당신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스티븐슨이 건강했더라면 그는 유명한 소설가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늘 아파서 누워있었기 때문에 소설가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때로는 우리에게 닥쳐오는 그 불행 때문에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고, 고통 때문에 나중에 더 큰 축복을 받을 수 있고, 가난한 삶을 통해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으며, 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역전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처럼 문제가 많은 곳이 또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축복 받은 나라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우리나라에서 해야 제일 응답을 잘 받기 때문입니다. 일본이나 유럽, 미국 같은 나라들은 복지시설도 잘 되어있고, 나라도 부강하기 때문에 특별한 기도제목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문제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새벽에도 기도하고, 밤중에도 기도하고, 굶으면서 기도하고, 항상 기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영적으로 축복을 받은 나라입니다.
개인도 인생역전이 있고, 국가도 인생역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오랜 연단과 시련을 받아서 정치가 안정되고 경제가 부흥하고 노사분쟁이 끝나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공산주의가 떠나고 통일되어서 잘사는 나라가 될 것을 믿습니다.

중국보다 잘 살 것입니다. 일본보다 더 잘 살 것입니다. 미국보다 더 잘살게 될 것입니다. 잘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데 왜 그렇게 살지 못합니까? 오늘날 사람들이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그 섭리대로 우리나라를 축복받은 나라로 만들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경상남도 울산, 가난한 농촌 마을에 한 청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중학교를 어렵게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진학하려고 하였는데, 시험에 낙방하였습니다. 가정 형편도 어려운데 시험에 낙방했으니, 고등학교를 가지 못하고 집에서 농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까지 가는 친구들을 보며 마음속에 품고 있던 소망과 꿈도 다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이 그렇게 끝나버리는가 하고 좌절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기도하고 찬송하며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에게도 믿음을 주시고 꿈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도 공부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그때부터 틈틈이 독학을 하여 마침내 농사를 지었던 산 경험을 가지고 농업고등학교를 진학하고, 농업대학교까지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학생들보다 경험도 많고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하와이로 유학까지 가서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고, 아프리카로 가서 그곳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옥수수 재배만 전문으로 연구하는 박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평화상을 받고, 아시아혁신상 은상, 대통령표창, 국제농업연구대상, 아프리카국가연합의 농업연구상을 받고 북한까지 가서 북한 사람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옥수수 재배를 가르쳤습니다.
이 분이 바로 옥수수 박사라고 불리는 김순권(金順權 ; 1945~ ) 박사님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존경받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 믿음을 가진 사람,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은 반드시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C. 나인 성 과부의 아들처럼 죽음 같은 고난과 실패 속에서도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어 다시 일어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자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 하더라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눅 7:16~17)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건강한 것으로 영광을 돌리고, 축복을 받아 영광을 돌리고, 재기하여 영광 돌리고, 성공하여 영광 돌려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신 놀라운 역사가 개인과 교회를 통해서 이 나라와 이 민족에도 반드시 일어나고 열매 맺을 것을 믿습니다.
주저앉아서 낙심하고 드러눕고 포기하지 마시고 담대하게 앞으로 전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김성광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