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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만나라 (누가복음 7:11~17)

by 【고동엽】 2022. 9. 29.

예수님을 만나라    (누가복음 7:11~17)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쌔 제자와 허다한 무리가 동행하더니 성문에 가까이 오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미에게 주신대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 하더라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
이 세상은 불행으로 난무하나 그 불행을 도무지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불행과 고통을 방관하지 아니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죄 아래서 저주와 질병과 가난과 수많은 문제 속에 살아가고 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한 없는 능력을 가지셨습니다. 어떤 일은 할 수 있고 또 어떤 일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이든지 그분은 즉시 해결할 힘이 있으신 분입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가는 곳마다 눈 먼 소경은 보게 하고 벙어리는 말하게 하며 귀머거리는 듣게 하고 앉은뱅이는 걷게 하고 문둥이는 깨끗케 하며 절름발이도 뛰게 만들고 죽은 자까지도 살려 내셨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일을 제한 없이 역사하신 것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의 말씀을 그대로 이루실 능력 있는 분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죄로부터 오는 저주와 고통으로 말미암아 질병과 가난과 온갖 문제가 가득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원인이 되는 죄를 해결하지 않고는 결코 고통에서 자유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한 선악과를 먹은 죄로 말미암아 수많은 문제와 고통을 가지고 살다가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창3:17-19). 사람들은 자신에게 닥쳐오는 수많은 문제를 피해보고 해결해 보려고 몸부림을 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도무지 죽음과 저주를 피할 방법은 그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이 세상은 죄로 인해 도무지 영원한 행복이 없는 곳입니다. 이 세상에서 행복을 찾고 또 행복하려 한다면 그는 이 세상에 대한 오해와 무지로 가득 찬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행복하시고 누구라도 행복하게 하실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죄가 없으시고 의로우시고 거룩하시기에 영원히 행복한 분이십니다. 행복과 자유와 부유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자유와 행복을 원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주시기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믿음을 가진 자에게 역사하시는 주님
예수께서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오셔서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 움직이고 계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좇았지만 그들은 ‘허다한 무리’ 곧 구경꾼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의 심령이 만약 ‘허다한 무리’에 속한다면 주님의 능력은 결코 그에게 임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문둥이와 같이 오직 예수만이 자신의 문둥병을 고치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만나야 이적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모하는 자에게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사모하는 자에게 자유와 행복을 허락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의 모든 걱정과 수고와 무거운 짐을 다 해결해 주시겠다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기를 믿는 자들에게 자기의 이름을 주시면서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원수 같은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귀신은 눈도 멀게 하고 허리를 구부러뜨려 곱사를 만들기도 하며 믿음에서 떠나게 만들어 가난과 질병 속에 고통당하며 살아가게 하는 원수 같은 놈입니다. 그러나 이 악한 자의 역사는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는 도무지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 예수의 이름으로 쫓아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 안에 들어 와서 세포를 썩히고 온갖 고통을 주는 원수 같은 질병이 이 세상의 삶을 포기시키고 절망적인 인간으로 만들지만 예수께서는 그 모든 질병을 그분의 능력으로 치료받는 역사가 우리의 믿음으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셔서 우리의 고난을 깨끗하게 해결해 주셨으니 그가 해결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을 때 역사는 일어나는 것입니다(사53:5-6).

  


복된 소식
마가복음 16장 17절로 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들에게 이러한 표적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병든 자들에게는 아무리 위로해도 사랑이 되지 못합니다. 그 질병을 고쳐 주어야 사랑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아무리 위로해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가난을 해결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통과 문제 속에 통곡하는 자에게 아무리 위로해 주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통곡의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사랑입니다. 예수는 그 모든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복음은 복된 소식, 아름다운 소식, 즐겁고 기쁜 소식입니다. 그 소식이 누구의 것입니까? 의학적으로 죽어야 한다고 했지만 분명히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를 받고 나았다고 간증하는 그는 바로 복음을 만난 자입니다. 수많은 문제가 있었는데 무릎 꿇어 기도했더니 해결되었다고 말하는 자도 바로 복음을 만난 사람입니다. 악한 영에 매여 고통과 절망 속에 살았는데 예수의 이름으로 악한 영을 몰아내고 고통에서 해방되었다고 말하는 그도 복음을 만난 자입니다. 바로 이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행복이 없는 세상, 죄와 저주와 고통만이 난무하는 세상에 그분의 전지하신 능력으로 영원한 행복을 주러 오셨으니, 그 행복을 소유할만한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예수로 절망을 해결하라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복음에는 절대로 절망이 없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나인성의 과부에게는 처절한 절망과 고통뿐입니다. 그 시대에 과부는 생활능력이 전혀 없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하며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직 자식 하나만 믿고 살았는데 다 키운 자식마저 죽게 되었으니 그 과부의 절망은 실로 처절한 것이었습니다. 남편 앞에 아내로서, 자식 앞에 부모로서 죽음의 길을 막을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속수무책입니다. 인간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인간이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돈이 있고 과학이 고도로 발달하면 되는 줄 알지만 결국은 죽음으로 가는 길을 막을 방법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무능한 존재임을 인정합시다. 그러기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과부는 통곡 속에 송장을 묻기 위해 상여를 쫓아갑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남편이라도, 자식이라도 죽으면 묻어야 합니다. 썩어가는 자식을 땅에 묻을 수밖에 없는 과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도무지 모르는 절망입니다. 그 때 주님은 과부의 절망을 향해가고 계셨습니다. 과부는 주님이 다가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상여를 붙잡고 질질 끌려가며 통곡합니다. 주님은 통곡하는 과부를 불쌍히 여기시사 상여를 멈추셨습니다. 죽어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자를 가로막고 그 앞길을 차단할 자가 천지 간에 누가 있겠습니까? 세상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상여를 멈추게 하시고 관에 손을 대시며 “청년아! 일어나라!”하고 명령하시자 청년이 즉시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예수의 권세 있는 목소리, 전능하신 명령에 청년은 벌떡 일어났고, 과부의 절망은 순간에 해결되었습니다. 주님이 계신 곳에는 절망이 이처럼 순간에 해결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라
이 세상은 인류라는 상여 속에 수없이 멸망하는 영혼을 싣고 지금도 지옥을 향해 내닫고 있습니다. 주님은 인류의 상여를 향해 멈추라고 명령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11:25-2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주님은 인류의 관에 손을 대시고, “청년아! 일어나라!”라고 명령하셨던 것처럼, 예수를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우리 인류의 죄값을 대신 짊어지고 죽으셨으니 죄에서 자유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가 우리의 불행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믿고 예수에게 불행을 옮겨놓는 순간, 우리는 죄에서 자유, 저주에서 자유, 질병에서 자유, 가난에서 자유, 악한 마귀 사단 귀신의 손아귀에서 자유 하게 되는 것입니다. 행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네 절망이 무엇이냐? 네 고통이 무엇이냐?”하고 묻고 계십니다. 고통과 절망이 있는 자의 앞길을 가로 막으시면서 절망아 멈추어라, 고통아 멈추어라, 가난도 멈추어라, 악한 마귀 사단 귀신의 역사도 멈추어라 하시며 절망 있는 자의 절망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 우리를 찾고 계십니다. 바로 그 예수 앞에 자신의 절망을 들고 나와 나인 성 과부와 같이 애절하게 몸부림치며 구하는 자에게 주님은 사망과 저주를 멈추시고 풍성한 생명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이 모든 기도의 응답이 생명으로 출산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윤석전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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