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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자의 태도 (행16:1-10)

by 【고동엽】 2022.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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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자의 태도  (행16:1-10)


사람이 소신있고 나름대로 자신의 생각과 고집이 있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자신의 소신이 분명하지 않다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에 우왕좌왕하게 되고 한가지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의 생각이나 소신을 버리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습니다. 소신이 없거나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 자신의 생각과 소신을 양보하기도 하고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지 않을 수 있어야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15장에서 바울은 이방인의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맞서서 자신의 소신을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예루살렘 공회에 까지 가지고 가서 해결을 했습니다. 그때 바울은 그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6장에 와서는 할례가 필요 없다는 자신의 소신을 버리는 행동을 합니다. 즉 그와 같이 전도여행을 할 디모데에게 할례를 시행했던 것입니다. 이런 바울의 행동을 보고 소신 없는 일이라고 할지 모릅니다. 금방 자신의 소신을 버리는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소신을 버린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바울은 소신과 생각이 있었지만 자기의 생각과 소신을 그 상황에서는 주장을 하지 않았던 것뿐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소신을 주장할 때와 굽힐 때를 잘 판단했습니다. 교회적으로 이방인 할례를 요구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강하게 자신의 소신을 주장했지만 이제 전도여행을 떠나면서는 혹시 전도에 방해가 될 것을 염려해서 자신의 소신과 다른 할례를 수용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생각과 소신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서 자신의 소신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소신있다는 평을 듣는 사람과 완고하다 또는 고집불통이다는 소리를 사람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지만 한가지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집불통이고 완고한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뜻을 내세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좋은 의미로 소신 있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주장할 때와 양보할 때는 잘 분별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적당히 타협하는 사람과 전혀 절대 타협하지 않는 강함과 약함의 구별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신의 소신을 주장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구별할 줄 아는 지혜의 문제입니다.

바울은 교회의 진리와 질서를 위해서 이방인 할례문제를 정확하게 집어야 앞으로 교회가 온전해 지는 것에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할례문제를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전도를 앞두고 이방할례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다가가야 하는 필요가 있을 때 그는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할례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가 할례를 시켰던 디모데는 바울의 생각과 전체 교회의 결론에 의하면 전혀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것이 복음 전파에 방해가 될 것을 생각해서 할례를 시켰습니다. 이런 바울의 모습은 바울이 이방전도를 성공하는 중요한 하나의 요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절대 세상과 타협하거나 양보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또한 먼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주고 필요한 경우 자신의 소신보다도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쪽으로 자신을 맞출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내 뜻은 이러하지만 전도를 위해서 또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주장을 따라야 한다면 기꺼이 자신의 소신을 양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랜만의 가족여행과 주일성수 때문에 고민하는 자매에게 가족 모임에 가라고 했습니다. 그곳에 가서 최대한 가까운 교회에 갈 수 있도록 해라고 말했습니다. 교회 가는 것이 더 중요하고 주일을 잘 지키는 것은 양보할 수 없는 진리이지만, 지금 이런 경우는 주일성수가 중요하냐 아닙니다. 이미 주일성수가 중요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주일성수가 중요하다는 것을 계속 주장하는 것보다는 믿지 않는 가족들을 생각해서 그들의 마음을 풀어주고 내가 가족들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야 가족들도 이 자매를 사랑하고 자매가 전도하는 말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의 필요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더 하나님의 일에 좋은 것을 택하는 유연하고 지혜 있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이런 지혜가 바울의 전도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 하나 있습니다. 바울이 이방전도에 성공할 수 있었던 보다 중요한 원인은 그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아시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으나 성령님께서 그것을 막으셨습니다. 바울은 환상을 통해서 마게도냐 사람들이 부르는 것을 보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생각하고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생각과 소신은 아까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해서 양보해야 했는데 이번에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참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는데 자신의 생각도 중요하고 자신의 판단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입니다. 자신이 혼자 판단하고 자신의 생각대로만 살아가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살피고 그 인도하심에 따라서 살고 일할 때 온전한 삶을 살게되고 좋은 일의 결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일을 시행하고 계획할 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인지 깊이 생각하고 성령님께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으로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서 자신의 소신과 생각을 완전히 바꿀 수도 있어야 합니다.

이번 주 말씀실천을 "이웃을 배려하고 성령의 뜻을 따라 살자"로 정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자신의 뜻과 자신의 소신이 아주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타락한 세상 중에서 자신을 지키고 신앙을 따라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소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하나님 말씀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소신과는 다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서, 꼭 지켜할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우리의 소신을 양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각과 소신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내 자신의 소신과 생각을 주장하다가 이웃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할지 모릅니다. 또한 내 소신과 생각 때문에 하나님의 일이 잘못되고 나의 삶이 잘 못된 길로 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웃의 마음과 형편을 잘 살펴서 그들을 배려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뜻을 깊이 살피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하는 우리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출처/김신정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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