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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승리

하나님의 사람의 승리 (창세기 37:18-28)

by 【고동엽】 2022.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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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람의 승리    (창세기 37:18-28)

덴마크의 어느 마을에 한스라는 아이가 배우가 되기 위해서 배우학교에서 무용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한스는 훌륭한 배우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한스의 무용담당 교사는 날마다 한스를 심하게 꾸짖었고, 한스는 친구들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하게 되어 외톨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어린 한스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고통이었습니다. 아무도 함께 어울려주지 않아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한스는 혼자 앉아 여러 가지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런 상상을 했습니다.

'어느 따스한 봄날 어미 오리가 품고 있는 알에서 드디어 새끼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다른 오리 새끼들과는 전혀 다른 새끼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 새끼는 외모가 다른 것 때문에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다른 오리 새끼들이 그를 다 싫어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많은 세월을 멸시 천대를 받으며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호수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개와 털을 가진 백조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디서 많이 보았던 모습이었습니다. 그제야 미운 오리새끼는 자신이 우아한 백조라는 것을 알고 행복해졌습니다.'

그는 그 후에 그 이야기를 써서 왕립극장에 보냈고 이 이야기는 "미운 오리새끼"라는 제목으로 전 세계인의 마음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인 동화작가인 "한스 크리스챤 안데르센"(Andersen, Hans Christian, 1805~1875)입니다. 안데르센 동화의 특색은 미운 오리 새끼에서 보듯이 서정적인 정서와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 그리고 따스한 휴머니즘에 있습니다. 그 자신이 '미운 오리새끼'였던 안데르센은 이 동화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셉 또한 '미운 오리새끼'같은 삶을 살았던 인물입니다. 형들과 다른 꿈을 꾸었다는 이유 하나로 험한 인생을 살았던 요셉은 결국 하나님의 큰 그릇으로 쓰임을 받는 '백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요셉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이 어떻게 쓰임받게 되는지를 깨닫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1. 하나님의 사람은 꿈을 가집니다.

인간은 꿈을 꿈으로써 성장한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꿈을 가지는데, 이 꿈을 무시해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간수하고 키워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운 오리 새끼'처럼 비록 현실이 어렵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꿈이 실현될 것을 굳게 믿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꿈을 꽃피울 날이 올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셉은 그가 꾼 꿈 때문에 어린 나이에 고난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 한 번째 아들이었는데,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란 요셉은 다른 이복 형들로부터 시기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형들은 아버지의 편애를 받는 요셉이 장차 집안의 장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경계심으로 요셉을 멀리했습니다. 거기다가 자신들이 조금이라도 잘못한 것이 있으면 여지없이 아버지에게 고자질하는 요셉이 밉기만 했습니다. 그런 형들의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지 어느 날 요셉은 자신의 꿈 이야기를 형들에게 자랑 삼아 늘어 놓았습니다.
"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컨대 나의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창 37:6-7). 이 이야기를 들은 형들은 "네가 우리를 다스리겠다는 것이냐"며 요셉을 더욱 미워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요셉은 얼마 후 또 한번 자신의 꿈 이야기를 형들에게 했습니다.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9절) 이번에는 아버지인 야곱도 요셉을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요셉의 꿈을 흘려 버리지 않고 마음에 새겨두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의 꿈은 오늘의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잠재의식의 표출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 혹은 비전을 말합니다. 요셉이 두 번이나 꾸었던 그 꿈은 하나님이 요셉의 일생을 예고하시는 계시였습니다. 요셉의 꿈은 한 마디로 '절받는 꿈'이었습니다. 장자 중심의 고대사회에서 열 한번째 아들이 다른 형들로부터 절을 받는다는 것은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비록 철없이 이 꿈을 이야기하는 바람에 요셉의 고난이 시작되기는 했지만, 이후 요셉은 바로 이 꿈 때문에 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려 갔어도, 요셉은 '절 받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꿈 때문에 좌절하지 않고 모든 일에 충성을 다할 수 있었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요셉은 원망하기는커녕 '절 받는 꿈을 가진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잃지 않고, 역시 묵묵히 참으며 충성되게 일했습니다. 그 결과 요셉은 모든 죄수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되고, 결국에는 애굽과 당시 세계에서 만인이 우러러 보는 위치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환상이 없는 민족은 망한다'고 할 정도로 개인이나 민족이나 하나님 안에서 꿈을 가지는 것은 중요합니다. 지금으로부터 80여년 전에 일본의 북해도에 있는 삿뽀르 제국대학에서는 당시 일본 청년들을 교육시키던 식물학 교수인 미국인 윌리암 크라크(William Clark)박사가 있었습니다. 크라크 박사는 일본 청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철저한 신앙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8개월 후에 그가 다시 일본을 떠나서 고국으로 돌아가던 날, 수많은 그의 제자들이 그를 전송하러 모여 있었습니다. 크라크 박사는 교문에 모여선 학생들에게 한 마디 유명한 말을 남기고 갔습니다.
"젊은이여, 꿈을 품으시오!"(Boys, be ambitious)
그의 가르침을 통해서 꿈과 비젼을 깨달았던 젊은이들은 후일 일본을 근대화시키는 정신적인 지도자로 성장했으며, 우리가 잘 아는 내촌감삼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꿈이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비전입니까? 아니면 세상이 준 야망입니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꿈꾸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제게 원하시는 꿈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을 향한 주님의 사역 중에서 제사 감당해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라고 매일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꿈꾸는 만큼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람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합니다.

'꿈꾸는 자' 요셉은 결국 형들의 손에 의해 노예로 팔려가게 됩니다. 그런데 처음에 형들은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기 위해서 형들이 양을 치는 세겜의 들판에 가까이 오고 있을 때 형들은 요셉을 해치울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쾌재를 불렀습니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창 37:20).

이처럼 형들의 무자비한 살해 모의는 인간의 미움과 시기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맏형인 르우벤과 넷째 유다는 요셉을 죽이는 일에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르우벤이 다른 형제들을 설득했습니다.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여 그 아비에게로 돌리려 함이었더라"(22절).

그런데 르우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요셉은 마침 그곳을 지나가는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가고 말았습니다. 29-30절에 보면, 다시 그 자리에 돌아온 르우벤은 요셉이 구덩이에 없는 것을 발견하고는, 옷을 찢고 "아이가 없도다 나는 나는 어디로 갈까"(30절)하고 울부짖었습니다.

한편, 요셉을 노예로 팔자고 제안한 사람은 넷째인 유다였습니다. 그는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은익한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골육이니라"(창 37:26-27)고 하면서 요셉의 생명을 해치지 말자고 제안했습니다. 결국 르우벤과 유다로 인해 요셉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사람을 살리려는 이들에게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나 장자 르우벤은 서모 빌하와 통간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했고, 유다는 "그의 후손에게서 치리자가 나올 것"이라는 야곱의 축복을 받고 다윗을 비롯한 계속되는 유다 왕들과 그 후손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 전 인류를 구원하는 대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처럼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해하고 죽이는 일에 결코 나서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어디를 가나 사람 살리는 일에 나서야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1964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차별대우 받는 흑인들의 권익과 평등한 삶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사람입니다. 그로 인하여 흑인 뿐만 아니라, 백인들도 서로 해하고 죽이는 일을 반성하고 새로운 공존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킹 목사의 업적을 기려 그의 생일인 1월 15일은 개인의 생일로써는 죠지 워싱턴 이후 두 번째로 미국의 국가 경축일로 결정되었습니다.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그의 꿈이, 그를 위대한 인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사람은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형들의 손에 노예로 팔린 요셉은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좌절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매사를 하나님 앞에서 하듯이 하였습니다. 그 결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고, 그 집의 총무가 되어 모든 살림을 도맡아 하기도 하였습니다. 요셉 때문에 그 주인 집이 복을 받았다고 인정받을 정도로 요셉은 매사에 성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디가서나 믿음으로 성실하게 일하면 하나님이 큰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모든 일이 형통하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비전을 가진 자에게는 고난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일이 잘 풀리는 줄 알았더니 주인집 아내의 통정 요청을 거절한 것 때문에 요셉은 모함을 받고 왕궁 감옥에 들어가는 비운을 겪었습니다. 이제 요셉의 인생은 끝나는 것 같았습니다. 권력자의 아내를 강간하려고 했다는 죄목은 그를 결코 일어설 수 없는 나락으로 떠밀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도 좌절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누명을 뒤집어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신다는 확신과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런 요셉에게 하나님은 인자를 더해 주셨고, 그곳에서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 옥중의 제반 사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결국 때를 만난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몽하는 기회를 얻어 애굽의 총리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요셉의 손에 그의 가족 뿐 아니라, 중동전체를 흉년으로부터 구원하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만일 요셉이 생의 위기를 맞을 때마다 좌절하거나 불평을 일삼았다면, 훗날의 일을 도모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그때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배후에서 역사해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형들과의 대면에서 모든 것을 밝힌 요셉은 이러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 45:7-8)
그렇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여도,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형통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게 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좌절과 절망으로부터 일어서시길 바랍니다. 요셉이 노예로 있을 때, 감옥에 있을 때에도 함께 해주시고 애굽의 총리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도 함께 해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그 꿈을 이루어 감에 있어서 무서운 고난이 따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환란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갈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승리자로 삼아 주실 것입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는 말씀처럼,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승리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늘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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