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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바울서신 녹취 10

by 【고동엽】 2022. 7. 9.
그다음 3장 28절이 중요합니다. 3장 28절에 보면 이것이 바로 바울 신학의 핵심입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세상에서 유대인과 헬라인은 별개 사람입니다. 종과 자유인은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남자와 여자 그 사이에는 엄청난 담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뭘 주장합니까? 하나님 나라에서는 세상이 만들어 놓은 그 모든 담들, 세상의 질서가 더이상 유통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 나라는 세상과 전혀 다른 질서의 나라인 겁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라는 말은 뭐냐면 세상이 만들어 놓은 질서, 세상이 만들어 놓은 문화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의 삶을 살아내는 자가 바로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3장 6~7절을 보시면 바울 서신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 뭐냐면 바울은 믿음의 사람, 믿음의 모델로 계속해서 아브라함을 제시합니다. 요새 우리가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당연히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다 이런 것 때문에 아브라함을 믿음의 모델로 제시하는 것에 대해서 낯설지 않습니다. 금방 수용이 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시면 아브라함 말고 모세라든가 다윗이라든가 이런 사람들도 얼마든지 믿음의 사람으로 믿음의 모델로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편지를 쓸 때마다 믿음의 모델로 아브라함을 제시할까. 여러분 만약 다윗을 제시하는 것과 아브라함을 제시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차이가 뭘까요? 예를 들자면 이사야를 제시하는 것과 아브라함을 제시하는 것의 가장 중요한 차이가 뭘까요? 다윗은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이사야도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닙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신학적으로 엄밀하게 이스라엘 사람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출애굽 이후부터입니다. 아브라함이 어디 사람이죠? 갈대아 우르 사람입니다. 갈대아 우르가 어딥니까? 메소포타미아입니다.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고 속에서 아브라함은 이방인인 겁니다. 갈대아 우르 이방인인 겁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사람인 겁니다. 그런데 이방인이었던 아브라함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겁니다. 그 아브라함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사람이 누굽니까? 이방 기독교인인 겁니다. 혈통은 유대인이 아니지만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함으로 말미암아 이방 기독교인들도 지금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겁니다. 누구의 전철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겁니까? 아브라함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끊임없이 이방 기독교인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믿음의 모델로 아브라함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다음 5장을 보시면 아까 제가 초반에 이야기한 것처럼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문화적으로도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 유대인의 신앙 문화를 그대로 답습해야 한다 라고 하는 것을 바울은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자유를 누리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을 것을 요청하는 것이 5장이고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보면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나옵니다. 여기 보시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하나같이 성령의 열매는 뭐죠? 인격적인 겁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가 성령 충만해지게 되면 하나님께 순종하는 존재로의 품성적인 전환을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성령 충만은 감정 충만이 아닙니다. 진정 성령 충만한 사람은 이렇게 품성적으로도 하나님의 백성다운 존재의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다음에 에베소서를 보겠습니다. 에베소서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문장을 들라고 하면 에베소서는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교회본의 교과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성경이 말하는 교회는 무엇인가에 대해 에베소서에서는 3가지를 강조합니다. 에베소서 1장 23절을 보시면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한다는 말은 뭐냐면 창조의 본래 모습을 회복한다는 말입니다. 교회론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에베소서에서 교회에 대해서 3가지를 크게 강조하는데 첫째 1장 23절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서 행하신 사역이 있죠? 예수님이 이 땅에서 만나셨던 사람이 있고 또는 질타했던 대상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는 것은 주님은 승천하셨지만 승천하신 주님은 이 땅에 당신의 사역을 계승할 수 있는 교회를 남겨두셨습니다. 교회가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2021년 예수님이 대한민국 이 수도 서울에 계시다면 예수님이 이 땅을 향해 선포해야 될 말씀을 누가 선포해야 하는 겁니까? 교회가 선포해야죠. 2021년 대한민국에 예수님이 계시다면 예수님께서 행하시고자 하는 사역을 누가 행해야 합니까? 교회가 행해야 되죠. 그것이 바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교회가 교회다움을 제대로 지켜내고 있는가, 이것을 무엇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는 겁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다면 예수님이 오늘 이 시대를 향해서 선포하실 말씀들을 오늘 교회가 담대하게 선포하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행하시고자 하는 사역을 오늘 교회가 담대하게 행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에베소서 2장 13~14절입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어떤 곳이냐면 세상이 만들어 놓은 온갖 담들이 허물어진 곳이 교회입니다. 누구를 통해서 허물어 진 겁니까? 예수님을 통해서 허물어진 겁니다.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 젤롯당 출신의 시몬이 있고 세리 출신의 마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젤롯당은 열심당의 한 분파입니다. 유대 민족 독립 운동을 했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로마에 빌붙어서 매국노 역할을 했던 사람을 암살했습니다. 그 0순위가 누구냐면 세리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젤롯당 시몬이라는 사람과 세리 마태가 일반 사회에서 만났다면 쫓고 쫓기는 관계인 겁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로 말미암아 예수 안에서 한 형제가 된 겁니다. 이것이 예수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세상적으로는 쉬이 만날 수 없는 사람들, 영남 호남 출신들, 장애인과 비장애인, 남자와 여자, 노년 세대와 젋은 세대, 많이 배운 사람과 배우지 못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예수 때문에 하나됨을 경험하는 곳, 한 가족이 되는 곳 이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속해 있는 교회가 정말 교회다움을 제대로 누려내고 있는가, 무엇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겁니까? 세상적으로는 만날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 정말 예수 안에서 하나된, 한 가족 됨을 경험하고 있는가 이것을 통해서 오늘 이 땅의 교회가 얼마나 교회다운가 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겁니다.


여기서 하나 또 기억하셔야 될 것이 뭐냐면 초대 교인들이 예수님에게 사용하였던 신앙적인 고백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는 우리의 구원자이시다, 예수는 우리의 주님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는 우리의 평화이시다, 이런 고백들을 초대 교회는 예수님께 올려드렸는데 원래 이런 고백적인 타이틀은 로마 제국에 있던 백성들이 황제에게 고백했던 내용입니다. 로마의 백성들은 황제를 뭐라고 생각하냐면 황제는 우리의 구원자이고 황제는 우리 인생의 주인이고 황제는 신의 아들이고 황제는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는 분이시다, 이런 고백을 한 겁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는 어떤 담대한 고백을 한 겁니까? 로마의 황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진정한 구원자이시고 예수가 우리의 진정한 주인이시고 예수 그분이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예수 그분이 진정 참된 평화를 우리에게 선사하시는 분이시다 이런 고백을 가이샤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이런 고백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다 라고 하면서 초대 교회는 예수에게 이 모든 타이틀을 돌려 드렸습니다.


그다음 세 번째 교회는 어떤 곳이냐 6장 10절 이하입니다. 교회는 공중 권세 잡은 이 땅의 어둠의 세력들과 치열하게 싸우는 전투적인 공동체인 겁니다. 그래서 6장 11절에 보면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3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그래서 이 땅의 정사와 권세와 보좌와 주관들 이들에게 굴복당하지 아니하고 치열하게 그것들과 싸워 승리하기 위해서 교회는 전투적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이 땅의 이기심과 탐욕을 부추기고 있는 주류 문화, 주류 가치, 주류 세계관에 무력하게 끌려 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를 신앙 안에서 넘어뜨리고자 하는 이런 세상의 여러 가지 유혹과 공격 앞에서 넘어지지 아니하고 세상이 오늘날 우리를 어떻게 넘어뜨리려고 하는지 이 세상의 공격을 분석해내고 그리고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전략과 전술을 잘 짜내고 그리고 우리가 마땅히 사용할 수 있는 무기들과 관련해서 훈련을 잘 하는 이런 전투적인 공동체가 교회이다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에베소서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5장 21절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8절처럼 하나님의 나라에 새로운 질서 가운데 우리가 거하게 되는 것인데 5장 21절에 보면 바울은 이렇게 얘기 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그리고 나오는 것이 뭐냐면 아내와 남편의 관계, 자녀와 부모의 관계, 종과 상전의 관계인 겁니다. 여태까지 아내와 남편의 관계에서는 남편은 지배했고 아내는 순종했습니다. 자녀와 부모의 관계에서는 자녀는 부모에게 절대 복종했고 부모는 자녀에게 군림했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일반적인 질서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천명하고 있는 겁니다. 그게 뭡니까?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새로운 삶의 모습인 겁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이 뭐냐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해라”하면서 아내와 남편, 자녀와 부모, 종과 상전이 서로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바울이 말하고 있는데 재밌는 것은 약자가 있죠. 예를 들어 아내, 자녀, 종이었던 사람들은 원래 해왔던 대로 행하면 됩니다. 그런데 강자들, 이 강자들에게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행동 양식을 요청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5장 21절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데 약자들은 늘 해오던 모습 그대로를 행하면 되는 것이고 따라서 이 말씀은 실제로는 강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에 근거한 새로운 행동 양식을 요청하는 말씀이다 이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갈라디아서와 에베소서를 살펴보았고 다음 주에는 빌립보서와 골로새서를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주간도 강건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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