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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병에 걸리면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환자가 병을 고치기를 원한다면 의사의 말에 순종하고 처방대로 따라야 합니다. 한의사에게 환자가 병을 고치기 위해서 지켜야 할 수칙들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대충 다음과 같이 일곱 가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① 육류를 금하라.
② 자연식을 하라.
③ 짜게 먹지 말라.
④ 물을 많이 마시지 말라.
⑤ 심한 운동을 하지 말라.
⑥ 정신적인 충격을 피하라.
⑦ 걱정을 하지 말라.
기본적인 것들이지만 이것을 신경 쓰다 보면 하루가 다 갑니다. 처방이 복잡하면 환자가 시달립니다. 병원이나 약국에 가서 약을 받으면 꼭 식후 30분에 먹으라고 말합니다. 누가 정해 놨는지 모르겠습니다. 밥먹고 금방 먹으면 괜찮을 텐데, 꼭 식후 30분을 지키라고 하니까 기다리다가 안 먹고 넘어가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급하면 신분만에 먹기도 합니다. 그래도 병을 고치기 위해서 가급적이면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진단하셨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왔습니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받는 길에 대한 처방을 일곱 가지로 말했다면 아무도 구원받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구약 시대 사람들은 구원에 대하여 복잡한 것으로 많은 오해를 했습니다. “계명을 지켜라.” “안식일에는 일을 하지 말고, 길을 많이 걷지도 말라. 쉬어야 구원받는다”는 식으로 생각했습니다. 또 음식도 가려먹어야 구원받는다고 했습니다. “부정한 음식에는 일체 손을 대지 말라.” “음식을 먹기 전에는 손을 씻어라.” “연 일차씩 남자들은 성지 순례를 하라.” 이런 조건들을 구약 시대 사람들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는 하나님이 주신 명령도 있었고, 사람이 만들어 낸 계명도 있었습니다. 회교를 믿는 사람들은 하루에 다섯 번씩 그들의 성지 메카를 향하여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받는다고 믿습니다.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명령하시면서 이런 복잡한 절차들을 거치라고 명령하셨다면 저도, 여러분도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단 하나의 처방은 “오직 믿음”이었습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것입니다.
성경을 아무리 뒤져도 다른 조건은 나오지 않습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믿기만 하면 다른 조건이 다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여기에 보탤 것이 전혀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한 것이 여러 가지 있지만 매일 감사하고 싶은 것은 구원받는 길을 너무 쉽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복음을 “기쁜 소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쉬우니까 오히려 안 받아들입니다. 제가 전도해 보니까 너무 싱겁게 생각하고 멸시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간사합니까? “어려우면 어렵다, 쉬우면 쉽다. 그래서 안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겁니까?
이 중에 예수 안 믿는 분들 어떻게 당신들의 비위를 맞춰야 믿겠습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해주시면 하나님 앞으로 오겠느냐는 말입니다. 참 인간은 한 마디로 말해 속물입니다. “어려우면 어렵다, 쉬우면 쉽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간단한 구원의 길을 감사해야 합니다. 자, 인간이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사도행전 16장 31일 다같이 읽겠습니다.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행 16:31)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그런데 나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프리미엄이 붙었습니다. 내 집도 함께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대부분 부인들이 먼저 구원을 받습니다. 부인들이 먼저 믿고 난 후에 구원의 내용을 알고 나면 안 믿는 가족들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하게 되고 안 믿는 남편이 믿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프리미엄을 약속하셨습니다.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 믿는데 아직까지 가족들이 믿지 않는 분들, 낙심하지 마세요. 믿는 아내를 인하여 믿지 않는 남편이 거룩하게 되어 진다고 성경이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들어온 것입니다. 아직 믿지 않아서 비난하고 핍박해도 그들도 하나님의 손 안에 들어온 것입니다. 곧 거룩해질 것입니다.
잘 믿는 아내로서 남편을 구원시키지 못하는 경우는 제가 볼 때는 열에 둘 셋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는 특수한 경우입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 식구들이 다 구원받습니다. 이 말씀이 절대 거짓말이 아닙니다. 구원의 조건은 단 하나 “믿으라!”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이 말은 복음이라는 바나나의 껍질을 벗기니까 그 속에 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믿기만 하면 의롭게 되는 의가 나타납니다. 지금까지 나는 ‘선행을 해야 하고, 수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태어날 때부터 선행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그것은 모두 폐물로 돌리셨습니다. 이제는 믿기만 하면 의롭게 된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믿으면 의가 나타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그러므로 믿고 의인된 사람은 처음부터 믿음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세상에서도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도 믿음으로 살 것입니다. 그때는 믿음을 별도로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모든 삶이 다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천국에서도 믿음으로 삽니다. 하나님이 구원에 대하여 믿음이라는 이 조건 하나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명의(名醫)이십니다. 명의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서툰 의사가 복잡합니다. 영어나 수학, 어떤 과목을 배우더라도 실력 있는 교사는 쉽게 가르칩니다. 대학에서 철학을 배울 때 어설픈 강사가 가르치면 항상 어렵습니다. 어떻게 듣기가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권위 있는 학자에게 들으면 그렇게 쉬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진리이십니다. 자신이 진리요, 하나님 나라의 최고 권위자요, 선지자 중의 선지자이므로 구원받는 길을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복잡하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단 하나 “믿으라!” 얼마나 명확한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무엇인지 알면 예수님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은 완전히 괘도에 올라선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키(Key)가 되는 믿음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믿음은 “왜 믿어야 하는가?” 보다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일컬어 요한복음14장 6절에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가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혹시 기독교는 모든 종교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종착역은 다 똑같은데 불교의 스님이 말하는 것처럼 “당신은 저리로 가고, 나는 이 길로 가는 것이다. 올라가는 길과 방법이 다른 뿐 종착역은 똑같다” 생각하시는 분은 안 계십니까? 그러나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모르면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모르니까 너도 좋고 나도 좋다는 식입니다.
진짜를 알면 고집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맞습니까? “네가 가지고 있는 반지 보석과 내가 가지고 있는 반지 보석이 다 똑같지 뭐” 하면 저 사람의 반지가 가짜고, 내 반지가 진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가만있지를 않습니다. 남이 말할 때 “왜 내 반지를 그렇게 평가하는가? 내 것은 진짜다.” 고집을 부리게 됩니다. 그걸 여러분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진짜는 말하는데.
“기독교는 여러 종교 중의 하나이다. 구원도 다 같은 하나이다. 기독교의 신이든 불교의 신이든 다 같은 신이다. 올라가서는 다 통하는 것이다.” 이 말에 우리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밝히 “나만이 하나님 나라에 가는 길이다”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의 길은 예수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나만이 진리요”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는 길을 예수밖에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곳에서 천국에 관한 지식을 얻으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곳에는 천국에 관한 진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갈 수 없습니다.
오늘 이 가운데 계시는 분들 가운데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형제 자매님들, 이것은 목사가 지어낸 말이 아닙니다. 교인들이 서로 합의하여 만들어 낸 상식도 아닌 온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입을 통해 가르쳐 주신 유일한 진리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
하나님이 석가모니를 보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알라를 보냈다고 말씀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지신 그분을 믿어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대단한 헌신을 해 주셨습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하나님은 우리들의 범죄함의 댓가로 내어 주고, 우리를 끌어 들이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왼손으로 자기 아들을 죽음에 밀어 넣고, 죽을 위기에 있는 나를 끌어내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우리의 범죄함을 위해서입니다.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나심으로 우리가 의를 얻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일한 구원자, 완전한 구원자, 최종적인 구원자라는 사실입니다. 이 세 가지를 꼭 기억해야 합니다.
① 유일한 구원자
다른 비교할 만한 존재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전도할 때 “이것도 좋고, 저것도 괜찮다”는 식으로 다른 종교의 사람들과 절충하지 마십시오. 대화는 하더라도 절충은 하지 마십시오. 다른 구원자가 없습니다.
② 완전한 구원자
하나님은 자신이 구원하려는 자를 힘이 없어 구원하지 못하는 그런 불완전한 구원자가 아닙니다. 그분이 구원하려고 하면 반드시 구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구원자이십니다. 어떤 죄를 지었을지라도 하나님이 구원하려고 하시면 반드시 구원하십니다. 세상에 아무리 악독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마음먹으시면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모든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완전한 구원자이십니다.
여러분 중에 과거에 남이 알지 못하는 숨은 죄악이 있어서 항상 마음의 가책을 받으며 그것 때문에 내 팔자가 이렇게 센가 보다 생각하시는 분 안 계십니까? “우리 집에 우환이 따라오고, 앞으로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불안해하며 이제 나는 소망이 없다” 하는 분들 안 계십니까? 한 가지 분명히 아세요. 예수님 앞에 나오면 그것이 전혀 문제가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예수님은 완전한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걸 해결 못하고 “너는 내가 감당할 수 없으니 돌아가라”고 하실 예수님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도, 어떤 죄도 다 포용하시고, 용서하시며, 구원하시는 완전한 구원자이십니다.
③최종적인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다음에 다른 구원자가 다시 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을 가지고 믿으라고 할 때 믿으셔야 합니다. 예수 이름을 전하는 시기가 끝나면 다시는 구원자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지막 구원자이십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제 믿음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10)
삭개오는 부자요, 세리장이였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난 장면들을 나누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①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보고자 하여 보고자
관심을 가졌습니다. 부자로 살고 직업이 대단해서 많은 사람들을 지휘하며 살더라도 이런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②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만일 그가 그냥 돌아갔다면 그것으로 끝나 버렸을 것입니다.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은 참으로 아까운 사람입니다. 그냥 돌아가면 기회를 놓칩니다. 허송세월을 하게 됩니다. 나중에 하나님이 다시 부르실 수 있으나 낭패를 당한 후입니다.
찬송가 중에 “천부여, 의지 없어서” 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저는 그 찬송을 좋아하지만 어느 때는 싫어합니다. 내가 젊을 때 내 삶을 하나님께 바친다고 할 나이에 좀 돌아왔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교회도 얼마 동안 가보니 마음에 안 들더라. 목사가 생긴 게 뭐 그래.” 하면서 자꾸 미루고 나오지 않으면 기회를 놓치는 것입니다. 이 삭개오가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③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여러분은 누구를 보기 위하여 자동차 위에 올라가 본 일이 있습니까? 아마 저나 여러분이나 체면상 그렇게는 잘 못할 것입니다. 이 사람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④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이것은 삭개오에게만 하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분들에게 이 말씀을 하십니다.
⑤ 오늘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가정에 우리 주님이 들어가기를 원하십니다. 삭개오의 반응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⑥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저 막연한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이 누군가? 교회가 어떤 곳인가? 예수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와서 보다가 ‘아, 이거 예수 믿어볼만 하구나’ 생각이 들었을 때 주저하지 말고 “주여, 나 주님 믿겠습니다”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때까지 찾았는데 이제 믿겠습니다. 오늘 내가 주님을 발견했습니다.” 하고 마음을 활짝 열고 받아들이면 그걸 가리켜 “믿는다”고 하는 겁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10년 믿어도 이게 안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즐거워서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영접해야 하겠는데 뭔가 이리 재고, 저리 재고, ‘뭔가 믿기는 해야겠는데..’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안 믿자니 벌받을 것 같고, 믿자니 귀찮을 것아 주일 낮에는 겨우 다녀옵니다. 빼자니 힘들고 이런 사람들은 세상에서도 가장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구원 못 받을 바에야 여러분 마음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에어로빅을 하든지, 디스코를 하든지 실컷 여기서라도 즐기시기 바랍니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인데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저는 어려 번 결혼한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어떤 의미에서는 지혜롭다고 봅니다. 이왕 천당 못 가고 지옥에 갈 바에는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다니면서도 믿는 것도 아니요, 안 믿는 것도 아닌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가서 “내가 이럴 줄 알았다면 즐기기라도 할텐데. 하나님, 변상하시오” 할 자신 있습니까? 못합니다. 그러니 안 믿을 것이라면 몰라도 이왕 믿을 바에는 삭개오처럼 되어야 합니다.
“주여, 오십시오. Welcome.” 그렇게 하고 들어갔는데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사람들이 보고 수군거렸습니다. 사실 예수 처음 믿으면 수군거리는 것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남편도, 아내도, 시부모도, 자식도, 친구들까지 수군거립니다. “야, 너 참 꼴 좋게 변했구나. 언제 그렇게 됐니.” “너만 그렇게 성자가 돼서 되겠니?” 그런 말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제가 잘 압니다. 아주 비비꼽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수군거렸지만 삭개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집으로 갔습니다. 넓은 응접실에서 극진한 대우를 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이 유일한 주님과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영접하면 주님은 다른 사람의 주님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 하나만의 주님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 간에도 그런 깊은 교제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남편과 아내가 자기 마음을 상대방에게 고백해도 얼굴 표정과 감정을 가지고 말해도 받아들이는 대상이 신통치 않습니다. 인간은 그렇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뭐가 이래” 싶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교제는 인간과 인간 간에는 잘 안됩니다. 아예 사랑에 눈이 먼 사춘기 불장난을 빼고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부부지간, 부모와 자식지간에도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혀 간격이 없는 교제가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것 다 드러내도 부끄럽지도 않고, 아무리 떼를 써도 미안하지도 않고, 화장을 안해도, 눈물이 범벅이 돼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밤중에도 좋고, 새벽에도 좋고, 기분 좋을 때도 좋고, 슬플 때도 좋고, 언제든지 교제가 가능한 대상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목사도 하나님 앞에서는 체면이 없습니다. 아무에게도 말 못할 비밀들도 잘도 받아 주십니다. 그러니까 신나서 더 기도하게 됩니다. 예수님과 삭개오와의 대화를 가만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이 교제가 없기 때문에 인간은 고독합니다. 인간은 사람에게 그렇게 아름다운 사랑을 기대했지만 모든 것이 물거품이라는 것을 알고부터 고독합니다. 예외 없이 고독합니다. 결국은 하나입니다. 나 하나 뿐입니다.
그렇게 사랑한다는 부부도 병이 오래되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이 빨리 데려가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사랑하는 남편이면 병들어 뒷수발을 해도 70까지를 해도 좋아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7,8개월 되니까 빨리 하나님이 데려가셨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게 남편을 위한 마음도 있지만 사실은 자기가 더 이상 시달리기 싫다는 뜻입니다. 결국 인간은 그렇게 너는 너고, 나는 납니다. 냉정하게 따지면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너무 고독합니다.
이와 같은 인간에게 유일한 생수, 하나님의 선물이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을 영접하면 그분은 내가 병이 나서 정말 절망적인 상황에 있을 때 나에게 더 가까이 오시고 내가 세상에서 완전히 실패하여 친구와 멀어지고, 그렇게 좋던 이웃들 다 고개 돌리고 ‘결국 나만 남았다’ 느낄 때일수록 더 나를 떠나지 않는 분이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주님입니다.
삭개오는 친구도 없습니다. 이웃도 없습니다. 구두쇠, 돈만 위해 그 생을 바친 사람입니다. 얼마나 고독한 인간입니까? 그와 같은 죄많은 인간인데도 주님이 그와 함께 계십니다. 얼마나 신이 나는지 예수님과 이와 같이 교제하면서 은혜를 받으면 그 다음부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보세요.
⑦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죄지으면서 쌓은 모든 것들을 보십시오. 나만 살겠다고 온갖 악을 쌓아 온 나를 보십시오. 주님 보세요. 이제 주님, 나는 숨기고 싶지 않습니다. 이게 회개입니다.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면 이것은 필연적으로 따라옵니다. 그 다음에 뭐라 말합니까?
⑧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속죄합니다. 율법에는 남의 물건을 빼앗은 것이 있으면 두 배를 갚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구원에도 프리미엄이 있으니까 회개도 프리미엄이 따라왔습니다. 믿음에는 반드시 회개가 뒤따라와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 회개하지 않고 있는 사람은 아직 그를 만난 사람이 아닙니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완전히 삶이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잘못했던 것을 고백하고 종지부를 찍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사랑 받기만 원했는데 예수 믿고 보니 그것은 철저한 이기주의였습니다. 사랑의 실천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죄라는 것을 깨닫고는 생각과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이것을 일컬어 회개라고 합니다. 삭개오에게 일어난 놀라운 변화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아멘입니까?
목사가 아무리 설교를 잘해도 그 부인이 은혜를 못 받으면 그는 설교자로서 실패자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설교를 그렇게 잘했습니다. 그러나 집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엉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모님이 말하기를 “솥을 들고 강단 위에 올라가서 식구들이 살았으면 좋겠다” 말했습니다. 그러나 목사 부인이나 자녀들이 남편과 아버지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는다면 그래도 괜찮은 목사입니다. 그것은 설교나 가정 생활이 모순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작은 목사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있는 가족들과 자녀들이 여러분의 말과 행동에서 은혜를 먼저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은 진짜 크리스챤입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예수 믿으면 가정에서 인정받는 아내, 칭찬 받는 아내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너무 잘하므로 남편이 고개를 푹 숙여야 합니다. 그 다음에 전도는 어렵지 않습니다. 자녀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침에 자녀들에게 “왜 안 일어나니!”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나중에 그 목소리로 찬송하고 기도하면 전혀 은혜가 안됩니다. 그걸 보고 들으면서 자녀들이 예수 믿고 싶은 생각이 생기지 않습니다.
과거에 목사, 장로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이 커서 교회를 떠나 예수 안 믿는 사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믿음과 함께 따라오는 회개가 없었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게 저런 거라면 나는 안 믿는다.” 이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어린 아이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서도 삭개오처럼 철저하게 회개하고 바로 서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로 예수 못 믿게 하면 다른 사람들을 실족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으로 지옥 가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연자 맷돌을 메고 바다에 빠져 떠오르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어마나 무시무시한 이야기인지 모릅니다. 진정한 믿음은 회개가 뒤따라와야 합니다. 예수를 믿었다면 진정으로 돌이켜 회개하십시오. 날마다 회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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