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것을 메꾸면서 기도하라 행1:21~26
▲지금은 기도해야 할 때
여러분, 정말 지금이야말로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만약 우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고, 우리 눈앞에 어려운 일(경제 불안)이 생겼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도하는 자리로 내모는 역사라고 해석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주님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기도하되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부족한 것을 메꾸면서 기도하라>입니다.
또한 <결과를 다 내려놓고 기도하라>입니다.
◑기도의 자세1: 부족한 것을 채우며 기도하기
120명 성도들은 마가 다락방에서 열흘 동안 오로지 기도에 힘쓰다가
오순절이 이르매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단순히 열흘 동안 기도하였더니 성령이 임하셨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도 열흘 동안 생업을 전폐하고 모여서 기도하면
오순절 마가다락방 같은 성령의 능력을 받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형식적 기도 만능주의>는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100일 작정 기도하고 시작한 사업도 망할 수 있습니다.
40일 금식기도하고 개척한 교회가 부흥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려움 당하는 교우에게 “기도해 보셨나요?” 했더니
‘기도했다! 어쩔래?’ 하는 반응을 보이는 교인도 보았습니다.
기도가 교만이 되어도 안 됩니다. 어떤 교인은 새벽기도회를
공적 쌓는 식으로 참석하는 이도 있습니다.
다른 교인들을 비난하며 ‘새벽 기도회도 안나오는 것들이!’ 하는 교인도 있습니다.
이런 자세를 가지면 기도하고 좌절이 더 큽니다.
‘기도해도 안 된다.’는 의심만 생깁니다.
▲그들은 기도하면서, 자신들의 부족함을 시정했습니다.
우리는 120명 성도가 열흘 동안 어떻게 기도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한 마디로 나의 소원을 이루어달라는 기도를 열심히 한 것이 아니었고,
도를 닦는 기도를 드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120문도는 열흘 동안 기도만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기도하는 중에 무엇인가를 했습니다.
그것은 가룟유다로 인해 결원이 생긴 12제자의 수를 채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성령받기를 기도하면서 자신들에게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것은 제자의 수가 한 사람 모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왜 11제자이면 안되고, 꼭 12제자를 세워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왜 제자 12명을 세우셨겠습니까? 아무렇게나 하신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냥 제자들을 뽑다 보니까 12명이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12라고 하는 숫자가 중요한 수자입니다. 12는 완전한 수를 의미합니다.
제자 12명은 모든 교회, 구원받을 모든 성도들의 수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계4:4절에 보면 천상의 교회의 보좌에 앉은 24장로가 나옵니다.
구약 12지파, 신약 12사도를 합한 수를 상징하는데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구약의 교회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신약 교회를 합한 수를 말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완전한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 12명은 꼭 채워져야 했습니다.
▲작정 기도하면.. (문제 응답보다) 자기 부족함을 깨닫고 고치게 된다.
우리에게 왜 어떤 때는 열흘의 기도가 필요하고,
어떤 때는 한 달의 기도가 필요하고,
어떤 때는 2개월의 기도가 필요하고
어떤 때는 100일의 기도가 필요하고
어떤 때는 몇 년 씩의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까?
우리에게 준비되어져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하는 기간을 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뭔가 부족한 것이 메꾸어져서 우리가 준비된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응답을 주시기 이전에, 우리들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막연하게 작정기도 날짜만 채울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부족한 것을 채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그렇게 인도하십니다.
회개할 것은 회개하게 하고, 부족한 것은 메꾸십니다.
그렇게 준비된 다음에 성령의 권능을 부으시는 것입니다.
◑기도의 자세2 : 결과를 내려놓음
제비를 뽑은 것은, 모든 노력을 버리고 쉬운 방법을 선택했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뜻을 모두 내 버리고, 하나님의 결정에 100% 순복하겠다는 자세입니다.
▲120명 성도는 부족한 한 사람의 사도를 세우기 위하여 제비뽑기를 했습니다.
여러분은 제자를 세울 때, 제비뽑기를 했다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비뽑기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 흔히 사용하였던 방법입니다.
어느 땅이 어느 지파에게 가야 되는가? 토지 분배를 위하여 사용했고,
제사장들이 당번을 정할 때,
또 하나님께서 지목하신 사람을 밝힐 때 등에 쓰였습니다.
잠16:33,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이집트 콥틱 정교회에서는 총대주교를 선출할 때
마지막 절차로 어린이 손으로 제비뽑기를 해서 뽑는다고 합니다.
감리 교단도 혼탁해진 감독 선거 때문에 감독을 제비뽑기로 하자는 안이
입법 의회에서 다루어진 적이 있었지만, 부결되었습니다.
이유는 제비뽑기가 비합리적이고 어리석고 무책임한 방법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제비뽑기로 선출된 감독이 무슨 권위가 있겠느냐는 말도 나왔습니다.
(장로교 모 교단은, 총회장 자질 있는 후보자 몇 명을 투표로 압축해서 뽑아놓고,
최종 마지막 결선 한 명은 제비뽑기로 한다고 합니다.
성경적 방법이기도 하거니와, 금권선거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성경은 감독 정도가 아니라 사도를 제비뽑기로 택하였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비뽑기가 성경적인가? 아닌가?’ 하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제비뽑기라는 방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모든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오직 성령의 인도를 받고자하는 갈망입니다.
▲기도할 때, 제비뽑기 정신으로... ‘결과가 어떠하든지 제가 따르겠습니다!’
120명 성도가 제비뽑기로 예수님의 제자를 선택한 것은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 가운데 친히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었다는 말입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자신들이 결정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 결정해 주셔야 한다
는 것이었습니다.
제비뽑기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동기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하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우리가 매사에 이런 마음을 가지면 반드시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특별기도 기간을 정하고 자신의 문제, 교회 문제,
나라 문제로 기도를 하게 될 텐데, 기도는 날짜수를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며칠 기도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기도가 내 자신에 대한 생각과 계획과 소원은 정말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 인도해 주세요. 하나님 결정해 주세요.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면
저는 무조건 순종합니다.’ 이런 마음이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떨어지는 것이 더 좋았을 법한 당시의 제비뽑기
당시 120명 성도가 가졌던 생각은 지금 우리 생각과 많이 달랐습니다.
그들은 봉사와 사도의 직무를 대신 맡기기 위하여 제자를 뽑았다고 했습니다. :25
다시 말하면 섬김 받을 사람을 뽑은 것이 아니라, 섬길 사람을 뽑았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반장을 제비뽑기로 한다는 것과
청소 당번을 제비뽑기로 한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반장 뽑기에서 떨어졌다면 분해서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청소 당번을 제비뽑기해서 떨어졌다면 어떻겠습니까? 감사할 일입니다.
당시에 사도는, 휘황찬란한 무슨 예복을 입고, 머리에 무슨 관을 쓴 것 아닙니다.
오늘처럼 만인이 존경하고 우러러보는 그런 직책이 아니었습니다.
그야말로 당번과 비슷하게, 자기 생업을 포기하는 봉사직이었습니다.
영생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었겠지만, 세상적으로 폼 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사도의 직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증인이 되는 것인데,
이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12제자를 보충하겠다고 한 것은 달리 말하면 죽을 사람을 뽑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유대 교권자들이 예수의 잔당을
똑같이 감옥에 넣고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비뽑기에서 떨어진 사람에게 불만이 생길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에서 직분이나 직책을 줄 때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이제 12월 둘째 주가 되면 당회를 하고 교회가 집사와 권사와 장로를 세우고
각 부서 책임자들을 임명하게 됩니다.
교회 직분을 명예나 권력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섬기는 사람, 먼저 순교할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 점을 분명히 하면 시험이 될 것이 없습니다.
된 사람도 그것 때문에 기쁘고 자랑할 일도 아니고,
죽을 각오를 먼저 해야 하는 것이니까.
안되었다고 그것 때문에 시험 들고 화날 일도 아닙니다.
만약에 교회 직분이나 직책 문제로 시험이 생겼다는 말은
그것을 명예로 여기는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만약 제비뽑기에 떨어진 사람이 시험이 들었다면 성경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초대 교회 때 모든 시험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과부들을 구제할 때 헬라파 히브리파 과부들을 차별하는 문제 때문에
교회가 시험이 생긴 것이 성경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로 인한 시험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을 뽑는 일로 시험이 생겼다면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비 뽑고 난 다음 시험거리는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시험이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시험이 되었다면 큰 시험이 될 만한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뽑을 때, 전심으로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야 후에도 시험이 없습니다.
만약 시험이 있다면, 전심으로 기도하지 않았거나
기도했더라도, 하나님의 결정을 자기가 순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간절히 기도했고
그 결과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순복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한 결과였습니다.
▲기도하고 뽑았는데, 의외의 결과가 나왔고... 모두 순복했습니다.
120명 성도는 제비뽑기를 했지만 아무나 뽑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받을 때부터 승천할 때까지 항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서 뽑았습니다. 1:22
그런데 문제는 비슷한 조건을 가진 사람이 두 사람이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제비를 뽑은 것인데 먼저 추천된 요셉이라는 사람은
당연히 될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소개가 거창합니다.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언급된 것은 그가 널리 알려진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바사바’라는 이름은 사바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굳이 이렇게 언급한 것은 사바라는 사람이 당시 널리 알려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유스도’라는 말은 로마식 말인데 정의, 올바른, 의로운 이라는 뜻입니다.
이 사람은 당시 어떤 일을 판단하거나 처리하는 일을 했던 유력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120문도는 그가 당연히 후보 1순위라고 생각한 듯합니다.
그러나 맛디아에 대하여는 이름 외에는 설명이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았고,
사도로 뽑히리라고 기대하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120문도는 자기들의 판단과 계획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이 결정해 주시기를 맡기는 마음으로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들은 제비뽑기 전에 다시 한번 기도했습니다.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바 되어 1:24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선택하실 때 본인이 지명을 하셨지만
그 전에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눅6:12
그래서 120명 성도도 이렇게 기도한 후 믿는 마음으로 제비를 뽑았습니다.
결과는 맛디아였습니다. 시험들만 한 결과였습니다.
제비뽑기가 아니었다면 요셉이 선출될 법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시험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결정하셨다고 분명히 믿었기 때문이고,
사도가 되는 것은 순교자의 반열에 올랐다는 의미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맛디아는 유대 여러 지역에서 순회 설교자로 활동하였고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었다고도 하고
에티오피아에서 순교할 때까지 죽도록 충성하였다고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마치는 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주제는 <무작정 기도에 전념>이 아닙니다.
‘기도만능주의’가 당연히 아닙니다.
120명 성도는 성령받기 전에 어떻게 기도하며 무엇을 준비하였느냐가 주제입니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의 부족한 것을 깨달은 후에 메꾸었고
-기도의 결과를 다 내려놓고,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만을 갈망하였습니다.
경제가 어렵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기도할 때입니다.
내 생각, 내 판단, 내 능력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기도 가운데
주님의 생각, 주님의 판단, 주님의 능력을 덧입어 살아가는 ‘제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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