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을 살게 하는 감사, 지옥을 만드는 불평불만 잠27:20
잠27:20 ‘스올과 아바돈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아멘
사도 바울의 아주 유명한 고백이 있지요.
'나는 부한데도 처할 줄도 알고
비천한데도 처할 줄 안다.
나는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빌4:11~13참조
이건 위대한 기독교 신앙의 고백입니다.
정말 기독교 신앙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축복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 모든 인간은
형편과 처지에 좌우되거든요.
부한 것은 좋아하지만
비천하면 살지 못하고
사실은 부한 데도 처할 줄 모르고
비천한 데도 처할 줄 몰라서
항상 근심하고
항상 다투고
항상 불행하고
항상 원망하고 사는 게
인간의 어리석음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사도 바울은 자족하기를 배웠다.
늘 만족하다.
어떤 형편에서든지...
그게 부한 데서도 만족했는데
부한 데서만 만족하는 게 아니라
가난하고 비천할 때도 자기는 만족하고 행복했다...
그러니까 어떤 형편에서든지
그는 항상 승리하고 그랬는데
그 힘을 하나님이 주셔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는 아주 유명한 고백을 했지요.
기독교 신앙인의
최고의 삶의 경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의 탐욕
이것이 인간을 죄와 사망으로 몰아넣는
어리석음입니다.
좀 더 섬뜩한 말로
기분 나쁜 말로 표현하면
우리 인간의 미련함입니다.
▲세상에 인간처럼 미련한 동물이 없어요.
지혜가 있는 거 같고
능력이 있는 것 같은데
따지고 보면 동물만 못해요.
끝없는 욕심 때문이에요.
여러분 사자가
약한 동물들을 사냥해요.
근데 사자는 욕심으로 사냥하지 않아요.
그냥 생존하기 위하여
먹기 위하여 사냥해요.
그리고 먹고 배부르면 사냥하지 않아요.
그래서 약한 동물도 씨가 마르지 않아요.
이런 자연의 밸런스가 있어요.
그래서 강한 동물만 살아남는 세상이 아니라
약한 동물도 살아남아요.
근데 인간은 그렇지 않아요.
먹고 배불러도 만족할 줄을 몰라요.
끝없는 탐욕 때문에
생산하고 생산하고
사냥하고 사냥해서 씨를 말려요.
그리고 약한 것들은 다 죽여요.
그럼 나중에는 먹을 것이 없어요.
자연이 파괴되기 때문에
공해가 생겨나고
심각한 문제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에요.
지금 지구 온난화
그것 때문에 생겨난 심각한 문제들
이게 다 인간의 탐욕의 소산이 아닐까요?
인간은 끝없는 욕심을 가지고 있어요.
도무지 만족할 줄을 몰라요.
자족이라고 하는 것과
거리가 아주 멀어요.
▲근데 인간ㅇㄴ 끝없는 욕심을 가졌는데
그 끝없는 욕심을 채울만한 능력이
인간에게 있어요.
여러분 이게 재앙이에요.
여러분, 욕심 없는 사람이 능력을 갖추면
그 능력이 선한데 쓰여질 수 있어요.
욕심 + 능력은 파멸이에요.
인간의 끊임없는 탐욕에, 욕심에
능력이 갖다 주어지니까
이 세상은, 이 자연은, 우리 인생은
그리고 사회는 파멸의 길로 치닫고 있어요.
이 모든 것이 만족을 할 줄 모르는
인간의 어리석은 탐욕 때문에 생기는 것이에요.
▲근데 오늘 성경은 그것을
스올
그리고 아바돈
근데 이게 죽음의 자리잖아요.
스올하면 지옥 아니겠어요?
지옥 같고
죽음의 자리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스올 같고 아바돈 같다.. *아바돈 : 헬라어로 아볼루온, 파괴자,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
여러분 그 말씀이
얼마나 꼭 맞는 말씀인 줄을 모르겠습니다.
자족하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욕심을 좀 줄이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리고 능력은
남는 능력은 자기를 위해서 더 욕심내서
뭐 자기를 무엇을 먹을까? 쓰지 않고
그 힘이 부족한 사람을 위해서 사용하고
그를 돕고 섬기는 데 쓸 줄 안다면
여러분, 천국 되지 않겠습니까?
천국이 바로 그와 같은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아니겠습니까?
▲자족,
자족한다는 게 참 어렵습니다.
근데 자족의 비결이 어디 있을까요?
사도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
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그 자족의 능력은 예수 안에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을 믿는 믿음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얻는 은혜
그 은혜의 배부름
그 배부름이 주는 만족이 있을 때
여러분, 쓸데없는 헛된 욕심을
부리지 않을 수 있게 되지 않겠어요.
여러분 욕심을 부리는 것은요.
은혜의 고갈에서부터 시작해요.
하나님을 멀리 떨어져서
은혜가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배고프니까 아무거나 먹겠다고 탐욕을 부리는 것이에요.
배가 불러야 돼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배부를 것임이요.' 마5:6
이게 성경적 만족함이거든요.
은혜는 만족함이 있어요.
세상이 줄 수 없는 만족함이 있어요.
여러분, 예수님이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잖아요.
남편이 다섯씩이나 되는 방탕한 여인
쾌락을 좇아
세상을 좇아 사는데
남편 데리고 오라 하니까
"남편 없습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되었는데
정작 남편이 없는 것과 같은 삶을 살았어요.
그리고 그 여인은
남들이 물길러 오지 않는 정오에
홀로 물을 뜨러 왔어요.
왜요?
부끄러워서
자기 삶이 수치스러워서
그래서 그 물을 뜨러 왔는데
예수님이 물 좀 달라
그렇게 말을 꺼내셨어요.
그 당시에는 유대인은
사마리아 여인과 말하지 않을 때거든요.
특히 여자 무시하던 땐데
당신 유대인 남자가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십니까?
그때 예수님이 하셨던 유명한 말씀
'네가 주는 물은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은 네 속에서 솟아나는 생수가 되어
다시는 갈함이 없으리라' 요4:13~14
여러분 이게 만족입니다.
만족은, 삶의 참 만족은
삶의 참 행복은 주 안에 있습니다.
말씀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사랑하는 날마다 기막힌 새벽
우리 사랑하는 식구들
여러분 참 열심이시잖아요.
새벽마다 이 말씀을 들으시려고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잖아요.
말씀 들어서 여러분의 삶이
배불러 지시면 좋겠어요.
그 배부름 때문에
세상 욕심에 대한 생각이
만족하기 때문에
욕심을 물리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바울처럼
자족하기를 배우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그래서 부하면 부한 대로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고
우리에 양이 없어도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구원이 주는 배부름
그 만족 때문에
여러분 세상 욕심에 한눈 팔지 않고
다른 사람을 돕고, 섬기고
절제하고
자족하고
그래서 늘 건강하고
행복한 삶 살아가는
우리 날마다 기막힌 새벽
우리 식구들 다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처음 암 선고를 받았을 때
내색하지 않았지만
부끄러워서 감췄지만 불안해 했었어요.
걱정됐었어요.
당황했었어요.
그것이 내 삶을 지배했어요.
그래서 날기새를 시작했잖아요.
그것을 몰아내기 위해서
날마다 기막힌 은혜를 사모하자!
그래서 성경 한 장씩 읽고
말씀에 은혜를 채우고
아멘하고
감격하고
그리고 찬송도 듣고, 부르고
그래서 은혜를 채우니까
불안도
근심도
걱정도
욕심도
몰아낼 수 있었어요.
만족하지 못하는...
스올에는 만족함이 없어요.
만족함이 없어서 스올이 되는 거예요.
지옥은 만족할 줄 모르는 곳이에요.
만족할 줄 모르는 자리는 죽음의 자리예요.
그런데 만족할 수 있는 자리
자족 할 수 있는 자리는 천국이에요.
생명의 자리예요.
거기에는 그래서 항상 기쁨이 있어요.
항상 감사가 있어요.
그러니까 다투지 않고
서로 사랑하고 돕고 섬기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에요.
인간의 능력은 지금 AI
지금 어디까지 발전할는지
상상할 수 없어요.
그런데 욕심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자족할 줄을 모르는데
브레이크가 고장 났는데
만족이라는 브레이크가 고장 났어요.
그런데 능력은 그대로 살아 있어요.
그러면 그 능력만큼
인간은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몰아가게 될 거예요.
세상은 병들 거예요.
사람들은 서로 원수가 될 거예요.
그리고 다투고 싸울 것이에요.
그러나 자족할 줄 알면
은혜에 배불러서
자족할 줄 알면
남도 생각할 줄 알고
배풀 줄도 알고
함께 살 줄도 알아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갈 줄로 믿는데
우리 사랑하는 날기새 식구들이
그와 같은 삶을 실천해 낼 수 있는
그런 식구들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날마다 새벽이 기가 막혔으면 좋겠고
그 은혜로 배부름을 얻어서
자족하고 만족하고 행복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 천국의 식구들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사도 바울이 부럽습니다.
나는 부한 데도 처할 줄 알고
비천한 데도 처할 줄 알아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하기를 배웠어!
나는 늘 만족해!
배불러!
그래서 세상 욕심을 멀리할 수 있고
남을 생각 할 수 있고
돕고 섬길 수 있어서
그의 삶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던 것을 기억합니다.
하나님 우리는 날마다 기막힌 새벽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날마다 기막힌 새벽에
이 시간에
은혜의 배부름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바울처럼
자족의 은사를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어떤 형편 속에서도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어도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우리에 양이 없어도
항상 기뻐하고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는
천국의 삶 살아내는
우리 날기새 식구들 다 되게 하옵소서
만족이 없는 것은 스올입니다.
만족이 없는 것은 아바돈, 죽음의 자리입니다.
우리가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하나님의 은혜의 배부름으로 만족하여
이 세상 천국으로 만들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추천인 명설교편◑ > 김동호목사 명설교 (155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짜 부지런함과 가짜 부지런함 잠21:5 (0) | 2022.01.26 |
---|---|
짧아서 더 엑기스인 시 시편117:1~2 (0) | 2022.01.26 |
천국의 질서 잠28:27 (0) | 2022.01.25 |
충성스런 사람들의 위험성 눅3:15~17 (0) | 2022.01.25 |
취하지 말고 제 정신으로 잠23:29~35 (0) | 2022.01.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