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기도! (시 77:1-2)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의 특징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분들은 술을 멀리하고, 담배를 피우지 않고, 선한 일을 많이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특징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소극적인 견해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 아니고서도 얼마든지 담배를 멀리하고, 술을 멀리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더 적극적인 면에서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기도"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알고 그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간구하고, 탄원하고, 사유함받기 위해서 엎드리는 시간이 있어야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깨끗하게 살고, 흠이 없이 살고 선을 많이 행하면서 살아도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삶을 살지 못하면 아무리 열심히 있어도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합니다. 이 하나님과의 대화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하면 할수록 좋습니다. 그런 기도 중에도 더욱 소중한 기도가 있습니다.
먼저 부모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부모가 자녀들을 위해서 사는 기도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기도입니다. 이 세상에서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하는 기도처럼 진지하고 충살하고 정성스러운 기도가 없습니다. 그 기도 속에는 눈물이 있고, 진실이 있고, 정성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성공을 했다고 해서 보면 그 성공 뒤에는 반드시 이런 어머니의 기도가 있음을 볼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로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젊어서 어머니의 속을 무척이나 썩였던 방탕한 아들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그 아들을 위해서 오랜 세월 동안 눈물로 기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기를 자그만치 1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들이 돌아올 기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어머니가 낙심하여 초라하게 성전에 앉아 울고 있을 때 당시 교회 감독이었던 암부로시우스 감독이 이렇게 격려를 했다고 합니다. "다른 기도는 몰라도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의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계속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눈물을 흘려 13년을 기도했을 때 이 방탕한 아들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돌아왔는데 그냥 돌아온 것이 아니고 성자가 되어서 돌아온 것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 때문입니다.
어거스틴도 이런 사실을 알고 어머니에게 정성을 다하려고 했는데, 아들이 돌아온 지 한달 만에 그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그래서 어머니의 기도 하면 사람들은 으레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를 꼽습니다. 그리고 지금 서양에서 모니카를 성모라고 칭송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유산으로 말하자면 이보다 더 좋은 유산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두고 두고 마음을 여미는 것 같고, 살아 있는 생명이 들어 있고,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신앙의 품에서 속삭이듯 들려 오는 어머니의 신앙의 숨결이 어찌 한 순간인들 잊혀지겠습니까?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유산은 부모가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일입니다.
또 친구의 기도가 있습니다.
자식을 위한 부모의 기도 다음에 또 진지한 기도는 친구의 기도입니다 성경은 부모 사랑 다음에 귀한 것을 친구의 우정이라고 했습니다. 요나단의 다윗에 대한 사랑은 그 대표적인 경우이고, 다니엘에게 있어서 세 친구는 그 어느 형제보다도 더 뜨거운 사랑을 발휘했던 친구 사랑의 함 모형에 해당됩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 라파엘로는 친구의 기도 때문에 성공했던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라파엘로와 그의 친구는 이탈리아의 시골 동네 우르비노라는 곳에서 태어나서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자라납니다. 그러다가 그곳에서는 꿈을 이룰 수가 없음을 알고 이들은 미술 공부를 위해서 도시로 올라와서 둘이 고생을 하며 공부를 시작했는데 돈이 없으니까 친구가 돈을 벌고 라파엘로는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라파엘로가 공부를 마치고 돈을 벌면 그때 그 친구가 공부를 하기로 했습니다.
라파엘로가 공부를 모두 마치고 친구가 일하고 있는 곳을 찾아갔을 때 그 친구는 조그만 방에서 친구 라파엘로를 위해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문틈으로 그 기도하는 두 손을 들여다본 라파엘로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얼마나 일을 많이 했는지 그 손은 마디가 굵어졌고, 터지고, 거칠어져서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상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라파엘로는 그 자리에서 종이를 꺼내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친구의 손을 그려 냈습니다. 그때 그린 그림이 오늘 여러분들이 보시는 두손만 그려진 "기도하는 손"입니다. 라파엘로의 성공 뒤에는 친구의 애절한 기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친구의 기도가 귀한 기도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인간은 참 위대한 존재입니다. 인간들이 신앙으로 뭉쳐지고, 게다가 우정과 사랑으로 중쳐질 때는 얼마나 위대한 정신의 꽃이 피어 오릅니까? 이런 꽃을 피우는 힘이 바로 친구의 우정 깃든 기도입니다.
그리고 스승의 기도도 있습니다.
부모의 기도도 소중하고, 친구의 기도도 소중하지만 또한 소중한 기도는 스승이 제자를 위해서 하는 기도입니다. 그 대표적인 기도는 디모데를 향한 사도 바울의 기도일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딤후1:3)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고 했습니다. 얼마나 정감 있는 고백입니까? 그러니 그렇게 사랑스런 제자를 위해서 얼마나 진지하고 정성 어린 기도를 했겠습니까? 이런 스승 때문에 디모데라는 위인이 태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도 굉장한 축복입니다. 스승은 자라나는 제자들의 지성에 알게 모르게 지대한 영향을 끼쳐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기도들보다도 더욱 좋은 기도가 있습니다. 부모님이 해주시는 기도도 중요하고, 친구가 해주는 기도도 중요하고, 스승이 해주시는 기도도 무엇보다 소중한 기도지만 그 어느 기도보다 더 좋은 기도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기도 중의 기도입니다. 남들이 나를 위해서 해주는 중보의 기도도 중요하고, 후원 기도도 좋은 기도지만, 그 어떤 기도보다도 더욱 좋은 기도는 내가, 내 입으로, 내 음성으로, 직접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가 가장 무게가 있는 기도입니다.
본문에서 "(시77:1)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하나님께 내 음성으로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여기 보면 "내 음성으로"라고 그랬습니다. 신앙생활은 어디까지나 그 주체가 "나 자신"입니다. 누가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은 "내가, 내 입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신학생이 학교를 졸업을 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학교에서 면접을 할 때 총장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학생은 거듭난 경험이 있습니까?" 그때 이 학생이 "내 아버지가 신학 대학 학장입니다."하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내 아버지가 신학 대학 학장이기 때문에 나는 거듭나는 일따위는 필요없다는 말입니다. 아주 큰 오해입니다. 내 아버지가 신학 대학의 학장인 것과 내가 구원을 받는 일은 별개의 일입니다.
구원은 누구의 공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인의 신앙이 좋다고 해서 그 덕분에 남편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신학대학 학장인 것과 아들이 거듭나는 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그것들이 내가 신앙 생활을 유지해 나가는 데 도움은 되겠지만 그러나 그것이 본질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기도 가운데서도 가장 좋은 기도가 "내가, 내 음성으로, 내 입술로, 직접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야말로 힘이 있고, 나로 내가 되게 하는 능력을 지닌 기도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사람마다 자기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주부는 주부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가정을 위한 기도는 주부가 해야 하는 기도입니다. 오늘같이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을 위한 기도는 주부들이 해야 할 기도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 가정의 목자가 되시고 우리 가정의 주인이 되셔서 우리 가정으로 하여금 바른 길 가는 가정 되게 해 달라는 기도도 주부가 하여야 할 기도입니다. 주부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중요한 기도가 어디 있겠습니까?
또 노인에게는 노인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말씀 드리기 어렵지만 노인은 오직 한 가지 "평화로운 종말"을 위해서 기도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노인이 하여야 할 기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도의 제목입니다. 노인은 무엇보다도 마지막 종말의 모습이 아름답고 은혜로워야 합니다. 자손들이 부모의 마지막 종말의 모습을 보고서 두고두고 마음속에 기억하고, 인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모습으로 그때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 마지막의 모습이 그렇게도 아름답고, 인상 깊을 수 없게 가시는 분이 있습니다. 죽음의 모습을 떠올린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그 모습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두고두고 인생의 심오한 느낌을 갖게 하는 그런 종말을 맞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종말의 모습을 보고서는 이것이야말로 신앙의 진수라고 해서 믿기 시작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는 차마 바라볼 수 없을 만큼 흉한 모습으로 종말을 맞기도 합니다.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깨끗하고 고상하게 보여졌던 생전의 모습을 순식간에 흐려 놓고 가시는 분이 있는데 그 종말의 모습이야말로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것보다 더 심각한 기도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것이 노인이 하여야 할 기도입니다.
또 청년은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청년! 이 얼마나 가슴 설레이는 단어입니까? 그래서 괴테는 "젊은이는 젊다는 것만으로도 취할 수 있는 세대"라고 했습니다. 앞날이 너무나 푸르고, 창대하고, 소망적인 이 시기는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누가 나를 위해서 기도해 준다는 것만으로는 시원치가 않을 때입니다. 그래서 내 입으로, 내가 직접, 내 음성으로 간구하는 젊은이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젊은이는 먼저, 세상이 흔들릴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신앙적인 기초와 꿈이 있는 젊음을 갖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웨인 오츠라는 신학자는 그의 책에서 "젊은이들은 두 가지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는 뿌리요 또 하나는 날개"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젊은이에게는 확고한 자리에 서서 살아갈 만한 뿌리있는 소속감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고, 또 젊은이는 스스로 가지고 있는 이상과 꿈을 이룰 만한 날개를 가지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폴 틸리히는 "젊은이는 모름지기 주 안에 뿌리를 박고 거기에 자신을 세워야 인생의 가뭄을 이겨 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존재의 기반인 동시에, 그 속에 죽음을 이기는 생명이 있고, 절망을 이기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젊은이에게는 젊은이다운 눈이 있어야 합니다 위를 향해 열린 눈을 가지고 신앙의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밖으로 향한 눈을 가지고 넓은 세계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또 안으로 열려진 눈을 가지고 자아와 내면의 세계를 통찰해서 자기의 사명을 자각하고, "그것 때문에 살고, 그것 때문에 죽을 수 있는 확실한 그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청년의 때에, 청년이 하여야 할 기도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해 동안 많은 기도로써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입을 크게 열면 채워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가장 좋은 기도로써 더욱 크신 은혜를 체험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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