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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 인내, 봉헌! (창 12:1-5)

by 【고동엽】 2022. 1. 26.

분리, 인내, 봉헌! (창 12:1-5)

 


사람이 성숙해지려고 하면 넘어야 하는 몇 단계의 과정이 있습니다. 이 고개들을 잘 넘어야 사람은 한 단계씩 성숙해지게 됩니다. 어린 아이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넘어야 하는 고개는 혼자 일어서야 하는 과정입니다. 누가 부축을 해주거나 무엇에 의지해서 일어나면 안됩니다. 힘들지만 혼자 스스로 일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어런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먼저 넘어야 하는 고개입니다.
이 아이가 7-8세가 되면 두 번째 넘어야 하는 고개가 있습니다. 그것이 글을 깨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글은 언제나 남이 읽어 주고 어머니가 읽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스스로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은 성숙해집니다.
사람이 커서 20세 전후가 되면 이번에는 좀더 어려운 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그것이 입시의 고개입니다. 아마 우리 나라에서는 이 고개가 일생에서 가장 어려운 고개일 것입니다. 이 고개를 넘는데 보면 온 식구가 매달려서 야단입니다. 어떤 학생은 이 고개를 넘다가 뜻대로 잘 안 되니까 그만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아주 어려운 고개입니다.
그러다가 20대 중반에 들어가게 되면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고 둘이함께 고개를 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것이 결혼의 단계, 동반자를 찾아서 함께 넘는 고개입니다. 이때 동반자를 잘 만난 사람은 쉽고 재미있게 고개를 넘게 됩니다. 그런데 동반자를 잘못 만난 사람은 그렇게 어렵게 이 고개를 넘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은이 맞지 않아서 싸우면서 넘습니다.
그러다가 도중에 서로 갈라져서 혼자 고개를 넘는 사람도 있고, 또 짝을 갈아치우고 새 짝을 찾아서 함께 넘는 이도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사람들은 성숙해지고 어른이 되고 여물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두 사람이 넘어야 하는 고개들입니다.

그런데 신앙 생활을 하는 데도 이와 똑같이 넘어야 하는 고개가 있습니다. 존 번연이 쓴 천로 역정을 보면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독교라고 하는 사람이 장망성을 떠나서 천성을 향하여 갑니다. 천성를 가기 까지에는 큰 고개 세 개가 있습니다.

첫 번째 고개는 "고뇌의 고개"입니다. 장망성을 떠나서 천성을 가려면 반드시 이 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고개를 지독한 번민과 고민과 근심이 서려 있는 고개입니다. 그래서 이 고개를 가리켜서 고뇌의 고개라고 합니다.
두 번째 고개는 유혹의 고개입니다. 번민과 고민이 가득한 고개를 넘자 마자 이번에는 유혹의 고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길을 가는 동안 계속해서 유혹을 합니다. "쉬었다 가라, 재미 보고 가라"하고 집요하게 유혹을 합니다. 그래도 그 기독교는 끝까지 길을 가서 그 유혹의 고개를 무사히 넘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마지막 고개인 "수난의 고개"가 기다립니다. 그 길에는 지독한 수난과 아픔들이 들어 있습니다. 이 기독교가 마침내 번뇌와 유혹과 수난의 고개를 무사히 넘어서 천성에 도착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길을 천로 역정이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들이 바로 천로 역정의 기독교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이 지금 천성을 향해서 가고 있는 중입니다. 가는 도중에 어떤 사람들은 고뇌의 고개에서 떨어져 나갑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고뇌의 고개는 무사히 넘었는데 그만 유혹의 고개에서 떨어져 나갑니다. 그런가 하면 두 번째 고개도 잘 넘었는데 세 번째 수난의 고개에서 그만 탈락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들이 이 길을 끝까지 간다고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그도 이 어려운 세 고개를 넘은 사람입니다. 그가 넘은 세 고개는 지금 우리들이 넘고 있는 고개와 똑같은 고개입니다.

 

첫 번째 고개는 분리의 고개입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살았습니다. 그곳은 문명의 도시입니다.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그 도시는 문명이 발달되어서 당시에 벌써 냉, 온수를 따로 사용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그 후 아버지 데라의 인도를 받아서 하란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거기서 또다시 안정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재산도 많이 모으고 평안한 삶을 누리며 아쉬운 것 없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집니다. "너는 이곳을 떠나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여기서 아브라함은 첫 번째 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분리의 고개입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놓아 두고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안정된 생활, 자라난 고향 마을, 친구들, 친척들, 모두들 놓고 떠나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 고개를 분리의 고개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려 할 때 그를 붙잡는 것이 많았을 것입니다. 우선 친척들이 와서 붙잡으며 가지 말라고 애원을 합니다. 친구들이 와서 붙잡으며 정든 고향을 두고 어디를 떠나느냐고 합니다. 또 안정된 생활이 그의 결심을 약하게 합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위대합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모두 탁탁 끊어 버리고는 아내와 조카를 데리고 무작정 정든 고향을 떠나 버립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첫 번째 고개인 분리의 고개를 무사히 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결단의 사람, 신앙의 아버지라고 추앙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멋있게 신앙 생활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이 고개를 잘 넘어야 합니다. 신앙 생활하다가 도중에 떨어져 나간 분들을 보면 대부분이 이 고개를 넘다가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이 신앙 생활을 신앙 생활답게 하려고 한다면 거기에는 넘어야 할 장애물들이 많습니다. 미련 남는 것도 많고 붙잡는 것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만큼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은 무엇보다도 먼저 뜻을 가져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뜻을 갖되 더 높은 곳에 뜻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끊어 버릴 것은 냉정하게 끊을 수 있고, 과감하게 결단력을 발휘할 수 있께 되는 것입니다.
먼저 신앙 생활을 하려고 뜻을 세웠으면 옛 습관으로부터 과감하게 분리되어야 합니다. 술 친구로부터도 단절되어야 합니다. 또 세속적인 유행이나 사치나 방종으로부터도 이탈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친구도 바꾸고, 취미도 바꾸고, 생활 방식도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신앙인의 길을 걸어갈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것을 잘했습니다. 그는 미련 없이 탁탁 과감하게 끊어 버리고 떠났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첫 번째 분리의 고개를 넘는 데 성공을 했습니다.

 

두 번째 고개는 인내의 고개입니다.

 

인내에도 여러 종류의 있습니다. 하나는 육신적인 인내입니다. 춥고, 덥고, 배고크고, 아픈 것을 참는 것이 육신적인 인내입니다. 신앙 생활을 잘하려면 이것을 잘해야 합니다. 배고픈 것을 참지 못하면 도적질하게 되고 거짓말하게 됩니다.
또 정신적인 인내도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배고픈 것은 잘 참습니다. 춥고 더운 것도 잘 참아 냅니다. 그런데 분하고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는 참지를 못합니다. 이것은 수양이 되지 않고서는 보통 참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분을 내게 되고, 싸우게 되고, 다투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신앙적인 인내도 있습니다. 이것은 인내 중의 인내입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인내를 다 잘 해냈습니다. 육신적인 인내도 잘 해냈고, 정신적인 인내도 잘 해냈습니다. 그런데 신앙적인 인내에서 그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75세 때에 하나님께서 고향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향을 떠나서 내가 지시하는 데로 가면 내가 복을 주고,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번성하게 해주고, 다른 사람들이 너를 통해서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큰 기대를 가지고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서 아브라함은 85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이는 먹어 가고 부인은 단산 때가 되어 오는데도 생활에 별로 변한 것이 없습니다. 자손을 별처럼 많게 해주시겠다고 하셨는데 별은 고사하고 하나도 낳지를 못했습니다. 이때부터 아브라함은 조급해지고 다급해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약속대 대한 의구심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참다 못해서 그만 첩을 얻어 가지고 아이를 낳습니다. 그 아들이 오늘의 아랍인들의 조상이 된 이스마엘입니다.
아브라함은 여기서 실패를 합니다. 지금까지 그 어려운 분리의 고개를 잘 넘어왔고, 육신의 인내의 고개와 정신적인 인내의 고개도 잘 넘어서 겨기까지 왔는데 그만 신앙적인 인내의 고개에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브라함이 늙어서 죽을 때까지 부부 갈등과 자식 문제로 인해서 얼마나 속을 썩습니까? 그것도 모자라서 오늘날까지 이 적자의 후손과 서자의 후손끼리 반목과 전쟁과 피흘림의 대립이 얼마나 처절합니까?
그때 아브라함이 이 신앙의 고개도 잘 넘어 주었더라면 당대에는 물론이고 후대 오늘의 세계 평화에도 기여한 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래서 사람은 인내의 고개를 잘 넘어야 합니다. 사람이 다 잘하다가 한 번 참지 못하고 실수를 하고는 두고두고 후회를 하면서 눈물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을 잘해야 합니다.

 

세 번째 고개는 봉헌의 고개입니다.

 

봉헌이라는 말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을, 가장 소중한 목적을 위해서, 가장 뜻 있는 시간에, 효과적으로 사용하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 에스더를 보면 유대인들이 몰살 당할 위험에 처합니다. 그때 유대인 지도자 모르드개가 왕비 에스더를 찾아갑니다. 에스더는 유대 여자로서 왕비가 되었습니다.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말합니다. "네가 임금에게 직접 나가서 이 민족의 구명을 호소하라." 그때 에스더는 한마디로 거절합니다. "임금이 부르기도 전에 나갔다가는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위험한 일은 못합니다."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그때 모르드개가 이런 말을 합니다. "너는 유대 여자다. 네가 이때를 위해서 왕후가 된 것인지 어찌 알겠느냐. 너만 살겠다고 못하겠다면 그만 두라. 하나님은 다른 방법을 통해서라도 우리를 살려 내실 것이다. 그때 너는 후회하지 말아라." 이 말에 에스더가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내가 왕후가 된 것이 이때를 위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에스더는 결단을 내립니다. "내가 죽으면 죽으리라." 이것이 진정한 봉헌입니다.
여러분,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지금 집사가 되었고, 교사가 되었고, 구역장이 된 것은 모두 이렇게 요긴할 때 봉헌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내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이런 봉헌이 있을 때 내가 살고, 민족이 살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게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가서야 겨우 아들 하나를 낳았습니다. 얼마나 그 아들이 귀엽고 사랑스러웠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아들을 잡아서 바치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그 요구에 순응할 수가 있습니까? 주석자들이 말하기를 그때 아브라함은 뒷짐을 지고 밤새도록 마당을 돌면서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결단을 내려서 "달라시면 바쳐야지" 그러고는 아들을 데리고 산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봉헌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고개까지도 잘 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믿음의 아버지가 되었고, 이 땅의 많은 신앙인들의 모범자가 되었습니다.
신앙 생활은 봉헌의 생활입니다. 나를 바치고 인생을 바치고 나의 전부를 바치는 봉헌의 삶이 있어야 그것이 신앙 생활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신앙 생활을 신앙 생활답게 하려고 하면 이 세 고개를 잘 넘어야 합니다. 그것은 분리의 고개입니다. 또 인내의 고개입니다. 그리고 봉헌의 고개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이 나아갈 길이고, 우리들이 지금 걸어가고 있는 길입니다. 금년 한 해 여러분들의 신앙이 이렇게 성숙의 고개들을 잘 넘어서 성숙해지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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