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고 구원을 받으라
창 세 기 19:24-26
누가복음 17:28-32
성경은 선하고 악한 사람, 성공하고 실패한 사람에 대한 모든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성경이 인간의 모든 죄악과 부패한 본성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종종 의문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한 자에게는 본을 받으므로 교훈을 삼고 악한 자는 경계하므로 은혜를 받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악한 자, 그리고 타락한 자, 부끄러운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위대한 믿음의 여인 마리아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의 행한 일을 기념하리라”고 하면서 마리아의 행한 일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가장 불행하게 죽은 한 여인,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위대했던 사람은 위대한 것을 기억하므로 은혜를 삼고 비참하게 멸망하는 한 여인을 기억하므로 악에 빠질까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성경 가운데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우리에게 보여준 사건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입니다. 성경은 당시의 시대상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눅17:28)
이것은 당시에 가장 풍요로운 사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먹을 것이 많고, 마실 것이 많아서 취하고, 그리고 돈이 많으니까 사고 팔고 그리고 생산이 풍성하고 집을 많이 지어서 호화로운 저택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당시에 소돔의 문화, 문명은 오늘의 찬란한 현대 문명의 세계를 이미 예언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풍요로운 문명 속에서 인간은 말할 수 없는 타락을 했습니다. 현재에 있는 모든 죄악을 그때 그대로 반영해 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저주하시고 심판하시려고 천사를 보냈습니다.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내라 그들에 대하여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로 이 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창19:12-13)
천사가 가서 롯에게 말합니다. “이 성을 멸하도록 우리를 보냈다. 그러니 성중에 있는 네게 속한 자를 다 성 밖으로 내보내라 네 사위나, 네 딸들이나, 네 자녀들을 다 성밖으로 이끌어내라 분명히 이 성을 내가 멸하러 왔고 또 멸할터이니 빨리 일어나서 이곳을 떠나라”
그런데 사위들은 이 사실에 대하여 농담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장인이 “이 성을 하나님께서 멸하실테니 빨리 떠나자” 하니까 사위들이 “장인어른, 왜 이렇게 농담을 하십니까?” 이렇게 받아들였습니다.
15절 읽겠습니다.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가로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롯이 지체하니까 천사가 제촉을 합니다. “빨리 떠나야 한다. 시간이 촉박하다. 금방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오니까 빨리 떠나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16절)
저들이 도망쳐야 할 시간에 머뭇거리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의 두 손이 롯과 롯의 아내, 그리고 두 딸을 잡아끌고 성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러면서 “주께서 인자를 더했다”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권속이기 때문에 이런 은혜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이들이 성 밖으로 나가자 마자 놀라운 사실을 그들에게 경고합니다.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17절)
‘너희가 도망을 쳐서 이 땅을 떠나는데 뒤돌아보거나 들 가운데 머물지 말라’ 이렇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있은 후에 하나님께서 드디어 소돔성을 멸망시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24절)
하늘로부터 불이 비처럼 내려서 소돔성을 전부 멸망시켰습니다. 그래서 멸망된 상태를 25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25절)
그 성에 살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불타버렸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거기 놀라운 사실 하나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26절)
지금도 성지순례를 가면 롯의 아내의 소금기둥이라는 표적이 있습니다. 소금이 많이 나오는 사해지역에 가면 롯의 처의 소금기둥의 형상을 그대로 보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아브라함 가문의 비극을 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조카 며느리가 왜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야만 했을까 어떻게 그 가문에 이런 불상사가 있을 수 있을까 그렇게 위대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모두 다 그 믿음을 본받아 훌륭한 구원의 권속이 되어야 할 것이거늘 어찌해서 그 조카 며느리는 이렇게 비참하게 소금기둥이 되어야 할까 이것은 우리들의 마음에 참으로 알 수 없는 의아심을 갖게 합니다.
롯의 처에 대한 기록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언제 결혼했는지 알 수 없고, 뉘집 딸인지 신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언급이 없는 것을 보아서 한마디로 말한다면 롯의 아내는 가치없는 여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아무 쓸모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도 소돔과 고모라 성에 있는 사람들과 똑같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 짓고 살아갔던 여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가문에 들어왔으나 하나님의 믿음을 따라 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는 소돔성에 있는 여인들처럼 사고 파는 복부인으로 부동산에 능통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는 먹고 마시고 시간만 있으면 ‘무엇으로 심을까’ 생각했습니다.
심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돈으로 심고, 사업으로 심고, 또 돈을 벌면 집을 호화롭게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함께 멸망을 했는데 그 표적이 소금기둥이었습니다. 마땅히 세상에서 소금맛을 내야 할 하나님의 사람이 소금의 맛을 내지 못하고 소금기둥이 되어서 수많은 사람의 웃음거리로, 비난의 대상으로, 악한 자의 멸망의 교훈으로 우리에게 남겨주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롯의 아내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표본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 안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비극을 여기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열심히 교회에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찬송을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그는 분명히 아브라함의 신앙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아브라함 가문의 경건한 사람인 롯의 아내였습니다. 당시에 그녀가 살았던 수백만의 사람들 중에 그녀만은 유일하게 은혜를 받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버림을 당했습니다. 이것이 비극입니다.
‘롯의 처를 기억하라’ 어느 시대든지 이런 사람이 꼭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임박할 때 어느 때 우리에게 이런 일이 임할지 모릅니다. 두 남자가 누워있다가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림을 당합니다. 두 여자가 멧돌을 갈다가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림을 당합니다. 두 사람이 밭에서 일하다가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림을 당합니다. 이 말은 당시에 유대 땅에 있는 사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함께 있는 성도 중에 그럴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 롯의 아내와 같은 비참한 사실이 우리 주변에 없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 가운데 없어야 합니다. 우리 가까운 친척 가운데 이런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내 가운데 그런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롯의 아내가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롯의 아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랬습니까 그녀가 지은 죄는 아주 간단했습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고로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이상의 죄를 알 수 없습니다. 그녀가 범죄한 것은 단 한가지였습니다. 뒤돌아본 죄였습니다. 성경에는 살인죄, 간음죄, 도적질 한 죄, 거짓말 한 죄, 우상숭배한 죄, 미워한 죄, 불의한 죄 이런 악한 죄가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악한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가장 쉽게 생각한 간단한 죄로 우리에게 무섭게 경고하고 있는데 그것은 뒤돌아본 죄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롯의 처를 기억하라’는 말은 뒤돌아 본 죄 때문에 멸망할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아마 우리는 도적질 하는 죄는 별로 짓지 않을 것입니다. 간음한 죄나, 살인한 죄는 없을 것입니다. 또 그런 죄는 짓지 않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런데 뒤돌아보는 죄는 너무 쉽게 짓고 있습니다. 도적질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듭니까 우상을 섬긴다는 것이 얼마아 힘듭니까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듭니까 이것은 죄를 지으면서도 힘든 죄입니다. 그런데 뒤돌아보는 것은 간단하게 쉽게 범할 수 있는 죄인데 이 죄가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을 롯의 처에서 교훈을 삼으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뒤돌아보지 않는 죄가 없기를 바랍니다.
뒤돌아보는 죄가 왜 이렇게 큰 죄였느냐?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한 죄였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15절에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가로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분명히 이 성이 멸망한다고 했습니다. 이 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하나님께서 소돔을 멸하신다는 사실에 대하여 의심을 했습니다. 그녀가 소돔 밖으로 달아난 것은 어떤 의미에서 믿음의 행동처럼 보입니다. 소돔이 멸망한다는 얘기는 귀로 들었으나 그 마음속에는 하늘도 맑고, 날씨도 화창하고, 전혀 그런 일이 일어날 기미도 안보이고 해서 믿지 않았습니다.
롯의 아내는 천사들을 집으로 영접해서 대접하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기 집 앞에 몰려든 청중들이 악한 짓을 하려고 할 때 천사가 나타나 그들의 눈을 멀게 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분명히 이러한 능력이 있는 천사가 자기집을 찾아와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가지 사실을 소홀히 여겼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심판은 죽은 후에 받는 심판도 있지만 살아서도 끊임없이 심판하십니다. 징계하시고, 채찍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은 끊임없이 심판하십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늘 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양심에 정죄 심판도 받고, 고난의 심판도 받고, 징계의 심판도 받으면서 쓰러지고 울면서 탄식하기도 합니다. 이 여인은 너무 안일하게 살아왔습니다.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는 것에만 신경썼습니다. 그에게 심판이 오는 것에 대하여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이 민족에게도 심판이 오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리가 잘못할 때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렵게 믿어야 합니다. 오늘 현대인들이 받아야 할 하나님의 경고의 음성은 ‘롯의 처를 기억하라’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너무 안일한 세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전혀 하나님께 대하여 두려운 생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움의 하나님이십니다.
다음으로 롯의 처는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보았습니다.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본 것은 소돔성을 바라본 것입니다. 소돔성을 바라본 것은 떠나기 싫은 멸망의 도성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세상 뿐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만나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부귀만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장수를 보면서 그는 믿음으로 보지 아니하고 땅에서 인간의 세월을 보았습니다. 그는 장막에 들어앉으면 장막 안에 계신 하나님을 본 것이 아니라 장막 속에 있는 보물에 파묻혔습니다.
롯의 아내, 그는 분명히 세상의 욕심으로 잉태된 사람이었습니다. 롯의 처가 뒤돌아본 것은 소돔성에 있는 온갖 인간적인 물질과, 영화와, 보화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지도 않았으며 오직 그는 세상 뿐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뒤돌아 본 죄였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5-17)
이 세상을 살면서 언제든지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우리에게 하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눅9:58). 머리를 땅에 두지 않고 하늘에 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도들의 머리 속의 생각이 하나님으로 채워지시기 바랍니다. 롯의 아내와 같이 세상으로 채우지 말고 하나님으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지극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킬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하나님을 멀리 하고 있습니다. 롯의 아내의 몸은 소돔성 밖으로 나왔으나 그녀의 마음은 소돔성 안에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녀의 비극이었습니다. 롯의 아내의 시선은 언제나 소돔성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돔성을 보고 망한 것입니다.
얼마전에 제가 책을 읽었는데 “19세기 독일의 단막극”이라고 하는 내용 가운데 ‘돈불’이라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어떤 부요한 가정에 계모로 들어간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계모가 얼마나 착했든지 전실의 아들 딸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부요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상을 뜨자마자 그 화목한 가정은 전쟁터로 바꾸어졌습니다. 재산 상속 때문에 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계모는 ‘내 몫을 챙겨야 되겠다’ 그러고, 아들은 법적인 지위로 재산 상속을 더 많이 받아야 되겠다고 하면서 싸우니까 행복한 가정에 웃음은 사라지고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시신을 건너방에 두고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싸움이 벌어지던 순간에 한 사람이 정신을 차렸는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싸우지 옛날에는 화목하게 살았잖아 화목하게 사는 것이 좋은 것이지 무엇 때문에 이러지 돈 때문에 그래? 그러면 돈을 버려야지” 그때 한 사람이 그럽니다. “그래 돈을 다 버리자 그리고 우리 화목하게 살자”
금고에 있던 돈을 다 꺼내서 불을 질렀습니다. 그러니까 딸이 불을 쬐면서 ‘아, 돈불이 따뜻하다.’ 하고 말했습니다. 불을 쬐면서 서로 얼굴을 보니까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습니다.
오늘날 돈불을 쬐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돈 때문에 냉랭해지고, 원수되고, 돈 잃어버리고 마음에 상처를 입어서 얼굴에 화기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둘 중에 하나 롯의 처처럼 소돔성을 바라보면서 비극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그 모든 것을 다 불태우면서 ‘세상은 저와 같이 탄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야 한다’ 할 것이냐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것을 깨닫는 은혜, 이것이 바로 복인 줄 믿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은 언젠가 다 잃어버릴 것입니다. 우리 곁에서 다 떠나갈 것입니다. 우리의 곁에서 정욕도, 세상도 다 지나갈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는 거기에 미련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소돔성의 멸망을 보면서 더 이상 이 세속적인 것 때문에 내 자신이 롯의 처처럼 비극에 빠지지 않도록 자기 자신에 대하여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롯의 처는 한마디로 말하면 불순종의 사람으로서 망한 것입니다. 롯의 처가 소금기둥이 된 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의 결과입니다. 성도의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복종입니다. 성도가 영생을 얻고, 능력을 얻고, 기쁨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와 절대적인 복종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롯의 처는 천사의 손에 끌려왔으나 그 마음으로 말씀을 순종치 않고 있습니다.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17절)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지 말고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녀의 죄가 있다면 지체하고 머뭇거린 죄였습니다. 그는 분명히 소돔성이 멸망하리라는 진노의 천사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지체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빨라야 할 때 느렸습니다. 앞으로 전진해야 할 시간에 뒤돌아보았습니다. 그는 재촉하며 ‘도망쳐라’하는 천사의 음성을 듣고도 서두르지 않고 미적거렸습니다. 바빠야 할 때 어정거렸습니다. 화끈해야 할 시간에 차가웠습니다. 두려워해야 할 시간에 전혀 감동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롯의 아내를 보고 놀랄 것은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롯의 처와 같이 지체하는 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롯의 처와 같을 수는 없지만 비슷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 것입니다. 밤에 남들은 교회에 나와서 찬송하는데 집에서 머뭇거리고 있습니까 롯의 처를 닮아가고 있는 징조입니다.
지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빨리 떠나야 할 자리에 머뭇거리고 있으며 서둘러야 할 시간에 지체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믿으면서 미지근하게 갈망합니다. 지옥은 믿으면서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말만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이 임박하다고 말하나 먼훗날처럼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가 있다고 믿으면서 졸고 있습니다.
지금 롯의 아내가 곁에 있습니다. 내가 그 곁에서 닮아가고 있습니다. 정신차려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롯의 처는 수천년 전에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오늘날 주님의 교회를 생각하면서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도록 마귀들이 유혹하는 죄는 살인 죄나, 간음 죄나, 도적질하는 죄나, 우상섬기는 죄나, 불의한 죄가 아니라 뒤돌아보게 하는 죄입니다. 지체하는 죄입니다. 머뭇거리는 죄입니다.
마귀는 지금도 끊임없이 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누가 많은 사람을 지옥으로 보낼까 그 사실을 보고하라 그리하면 내가 후한 상을 주겠노라’ 마귀의 왕이 졸개들을 불러서 결과 보고를 받습니다. “왕이시여, 저는 사막에 들어가 사자떼들을 보내어 사람들을 다 잡아먹었습니다.” “그래? 그들은 잡아뜯기면서도 하늘가는 밝은 길을 찬송했노라” 한 마귀가 왔습니다. “태풍을 보내서 바다 가운데 큰 여객선을 빠뜨려 한 무리를 물속에 다 수장시켰습니다.” “그들은 물속에 빠지면서도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나’ 하면서 천성에 가는 길 노래를 불렀노라” 그때 마귀 졸개 하나가 나타나서 “왕이시여, 저는 한 사람을 오랫동안 따라다녔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그를 천국의 문턱에서 롯의 아내와 같이 졸개 만들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했느냐?” “저는 한 집사의 뒤를 따르면서 늘 예배시간만 되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가지’ 그래서 화장을 느리게 하고, 옷 입는 것을 느리게 하고, 남편도 같이 느리게 해서 항상 예배시간에 늦게 해서 뒤에 앉게 했습니다. 그러니 뒤에 가서 늘 졸다가 뒤숭숭한 자리에 앉아서 뒤숭숭한 은혜를 받고 왔습니다. 새벽에 일어날 때마다 ‘좀 더 자라’ 해서 일어나게 했습니다. 예배시간이 되면 텔레비젼 앞에서 ‘야, 오늘 재미있는 연속극 하는 날이다. 그것 봐야지’ 하면서 눈을 어둡게 했습니다. 드디어 그는 지금 교회 다니는 것을 다 포기하고 롯의 처와 같이 심판의 자리에 빠져가고 있습니다.” 그때 마귀 왕이 “그대가 진실로 나의 부하다. 그대의 상이 있노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마귀의 유혹에 빠져 멸망길로 걸어가는 수많은 그리스도인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십시다. 더 이상 뒤돌아보거나 물러서지 맙시다. 지체하지 맙시다. 졸지 맙시다.”
이제 우리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했던 경고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3:15-16)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3:19)
우리가 죄 지은 것도 회개해야 되지만 열심내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세상을 뒤돌아본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중심으로 열심내지 못한 죄를 회개하고 뒤돌아보다가 망한 롯의 처를 교훈삼아 정신차리고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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