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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마대 요셉의 선택 /마가복음 15:42-47

by 【고동엽】 2021. 12. 24.

아리마대 요셉의 선택
마가복음 15:42-47


의미 요법을 창시한 빅터 프랭클 이라는 박사가 있습니다. 이 분은 세계2차 대전 동안에 나치 독일에 의해서 수용소 생활, 감옥 생활을 하셨습니다. 이 감옥 중에서 그는 아주 비극적인 일들을 많이 경험했 습니다. 자기 부모가 먼저 죽고, 또 자기 아내가 자기 눈 앞에서 가스실 에 끌려 가고, 또 자식들을 먼저 앞세우고 보내야 하는 그런 비극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충격적 사실들을 경험하면서 놀라운 사실은 그 분의 일상을 살아가는 삶의 자세 가 흔들리지 않았다는 사실 앞에 그 간수들까지도 아주 놀랬다고 합니 다.

한번은 나치의 게슈타포가 그를 발가벗겨 갖고 하루종일 나체로 끌 고 다녔습니다. 아마도 그를 지켜 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 다. 흥분한다든지 분노하는 사람들, 그리고 저주하고 대드는 사람들은 일차적으로 가스실로 데리고 갔습니 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는 그날 하루종일 자기 자신을 향해서 이렇 게 외쳤다고 합니다. 그대들은 나에 게서 부모를 빼앗아 가고, 또 내 처 도 빼앗아 가고, 내 자식들도 빼앗 아 갔다. 그러나 절대로 그대들이 나에게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은 바 로 내 선택의 자유다. 내가 비극적 인 환경을 당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 지만 환경 속에 어떻게 반응하느냐 란 반응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는 아직도 나 자신에게 있다. 라고 그 는 스스로를 향해서 외쳤다고 합니 다. 그래서 그는 최악의 상황 속에 서도 최선의 태도를 가지고 견딜 수 가 있었습니다. 최악의 상황 속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의 자유, 그것은 아직도 가능할 수 있 다는 사실을 그의 실험으로 증명해 보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예수 그리스 도의 십자가 사건을 둘러 싸고 부정 적 선택을 했던 한 사례를 살펴 보 았습니다. 빌라도의 선택, 그것은 최 악의 상황 속에서 최악의 선택의 모 습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빌라 도의 선택과 아주 대조가 되는 또 하나의 사건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 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직후, 예수께서 운명하신 직후에 일 어 났던 사건입니다. 이것은 정반대 의 긍정적 선택의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가 능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의 모습 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소위 아 리마대 요셉의 선택입니다. 그의 선 택은 어떠한 선택이었을까요?

첫째로 그의 선택은 공개적 선택 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해 봐야 합니 다. 공개적 선택. 성경은 이 사람을 소개하면서 아리마대 요셉이다 이렇 게 소개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사람의 이름이 아리마대 요셉이 아 닌가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어요.. 아마 성씨는 요셉이고 이름은 아리 마대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리마대라는 것 은 본래 지명입니다. 유대 중앙 산 지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한 20 마일 정도 올라가면 존재하는 한 작 은 마을, 본래는 라마다임소빔 이라 고 불리워졌던 마을인데 바로 사무 엘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거기 출신, 아리마대 출신의 요셉이다. 왜 이렇 게 구별할 필요가 있느냐 하면 요셉 이라는 이름이 워낙 흔하고 보편적 인 이름이니까 요셉아 하면 서너 사 람이 함께 대답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리마대 사람 요셉 이런 구 별이 필요했던 거죠..마치 제가 이 자리에서 명자야 하면 서너 사람이 대답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흔한 이 름이 명자죠. 그래서 우리가 무지개 마을 명자, 수지 마을 명자, 서초 마 을 명자 이렇게 구별할 필요가 있습 니다. 무지개 마을 명자는 제 집사 람이기도 합니다.

이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우리가 같은 기사를 기록하 고 있는 요한복음의 기사를 읽어 보 면 이 사람은 아주 본래 일찍이부터 예수를 믿고 따르던 제자였다는 기 사를 볼 수가 있습니다. 한번 찾아 보시면요 요한복음 19장38절입니다. 요한복음 19장38절. 그래서 우리는 이 사람에 대한 소개를 볼 수가 있 습니다. 요한복음 19장38절. 자, 찾 으신 분은 한 번 같이 읽어 보겠습 니다. 요한복음19장38절 다같이 시 작.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 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 더러 예수 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 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 의 시체를 가져 가니라 자, 여기에 서는 이 사람을 소개하면서 아리마 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예 수의 제자였다고 말해요. 그러나 재 미있는 것은 예수의 제자지만 제자 나 라는 이 뉘앙스가 아주 흥미롭지 않습니까? 예수의 제자나. 유태인을 두려워 한 나머지 그가 자기 자신을 숨기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제자라 는 것을 숨기고 있었던 제자, 일종 의 예수 그리스도의 007제자였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요즈음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제 자가 지금도 많이 있습니다. 회사에 가서는 예수 안 믿는 척 하시는 분 들, 이런 분들 계시지 않은지 모르 겠어요? 제가 얼마 전에 아주 황당 한 일을 당했는데요.. 어떤 모 그룹 잘 알려진 회사에 신우회에서 열심 히 활동하는 분을 만났어요..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우리 교회에 다니는 어떤 분이 생각이 나더라 구요.. 우 리 교회 이 분 아십니까?물었더니 그 분이 깜짝 놀라면서 아, 그래요, 그 분이 크리스챤입니까?그러더라 구요. 제가 너무 너무 미안했어요. 어디 그냥 기어 들어 가고 싶더라 구요. 틀림없이 아마 자기가 크리스 챤이라는 걸 숨기고 있었던 그런 사 람이 아니셨는가 생각됩니다. 그 분 이 회사의 좀 높은 분이었기 때문에 혹시 그것을 자기가 알리면 어떤 불 이익이 오지 않을까 라는 어떤 생각 때문에 별로 그 티를 내지 않고 있 었던 분일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습 니다. 지금 여기 계실지도 모르겠습 니다만 은. 이런 유형의 제자, 그것 이 아리마대 요셉이었습니다.

마침내 이 아리마대 요셉이 자기 가 예수의 제자라는 것을 숨길 수 없는 시점 앞에 도달했습니다. 그는 마침내 공개적인 장소에 끌려 나와 그가 예수의 제자인 것을 알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도달한 것입니다. 무엇이 그에게 이런 변화를 주었을 까? 우리는 자세히 동기를 성경에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추측컨대 아마도 십자가 사건을 둘러 싼 어떤 충격이 이 사람의 마음을 바꾸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십자가 상에 서 돌아가시는 예수님을 그는 먼 곳 에서 계속해서 아마 그는 주목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십자가에 달 리시면서도 아버지여 저들은 저들이 하는 것을 모르오니 용서해 주시옵 소서. 기도하던 그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어떤 감동을 받았을까요? 혹 은 자신이 아픔과 고통 속에 있으면 서도 함께 매달린 강도 중의 한 사 람의 주여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란 부르짖음 앞에 자신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를 향 해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 으리라고 말씀하시던 당당했던 그 모습, 그것이 그에게 어떤 감동을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캄캄한 어둠 이 십자가에 달린 그 분을 향해서 내려오고 하늘이 빛을 잃어 버리던 그 순간, 마침내 그 분이 운명한 후 에 그 광경을 지켜 보았던 로마의 백부장 조차도 저는 하나님의 아들 이었도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마음 에 변화가 왔을지 몰라요..

내가 예수님이 돌아가시는데 나 는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이냐? 어 떤 죄책감도 있었을 거예요..그가 돌 아가시자 마자, 돌아가시자 마자 이 제 금요일 날 밤이면 안식일이 시작 됩니다. 안식일이 시작되면 장례식 을 지낼 수가 없습니다. 장례라도 지내드려야지. 그는 마침내 빌라도 에게 찾아가서 시체를 주어서 장사 하게 해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 는 드디어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 자인 것을 알릴 수 밖에 없는 공개 적인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 것이 그의 삶을 변화 시키기 시작합 니다. 또 자기 자신의 삶을 변화 시 켰을 뿐만 아니라 자기 주변의 사람 들을 변화 시키기 시작합니다. 우리 가 우리 자신을 은폐하고 그리스도 의 제자임을, 크리스챤인 것을 숨기 는 한 영향을 줄 수가 없어요. 편할 지는 모르죠. 그러나 영향을 줄 수 가 없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아리마 대 요셉이 공개적으로 그리스도의 제자인 것을 알리자 마자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서 다른 사 람들의 삶을 바꾸는 일을 시작합니 다.

우리가 계속 요한복음서의 기사 를 계속 추적해 보면 19장38절을 또 보십시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 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 은폐하더니, 그가 그리 스도의 제자인 것을 숨겼다 이 말입 니다. 그러나 드디어 빌라도 앞에 나와서 담대하게 예수의 시체를 요 구하게 되었습니다. 자, 이 광경을 보고 그 다음 절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로 39절입니다. 요한복 음19장3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 작.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 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즉,아리마대 요 셉의 공개적인 선택의 결단이 또 한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어요. 누구에 게? 니고데모. 성경은 말하길 일찍 예수께 밤에 나왔던 니고데모 여러 분, 니고데모와 예수의 처음 만남 그 장면을 생각하십니까? 밤중에 나 와서 예수님 앞에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거듭나야 한다는 중생의 도리를 말씀하시지 않습니 까? 저는 그때 틀림없이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개인 전도로 거듭났을 것 이라고 생각해요. 그 후에 니고데모 의 활동이 없잖아요. 그러니 니고데 모도 소위 007제자단의 한 사람이었 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아리마대 요 셉이 공개적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 자 마자 어떻게 됐어요? 그 다음에 보면, 여기 39절에 일찍 예수께 밤 에 그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 왔던 이유, 성경은 밤에 란 단어를 결코 침묵을 하지 않고 여기에 그대로 집 어 넣고 있습니다. 이 사람도 사회 적 신분이 높을수록 자기가 예수 그 리스도의 제자인 것을 알리는 것을 힘들어 하는 모습들을 많이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밤에 찾 아 왔을 거예요, 틀림없이. 그런데 드디어 그 밤중에 찾아 왔고 예수 믿는 것을 숨기고 있었던 니고데모 도. 이 단어. 니고데모도 드디어. 드 디어 장례 행렬에 참여하게 된 모습 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 공개적 신앙의 고백은 영향 을 끼쳐요. 주변에 영향을 끼쳐요.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삶에도 영향 을 줍니다. 공개적으로 신앙을 선언 하면 책임이 따라 옵니다. 그것은 내 신앙 성숙에 커다란 도움이 될 수가 있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선언만 해 놓고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도 있더라 구요. 그런 사람은 차라리 007로 있는 것이 나을 지도 몰라요.

여러분, 회사에서 여러분이 크리 스챤인 것을 알리십니까? 알릴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내가 광고를 안 해도요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식사기도 한 번 하면 야 저 사람 크리스챤이구나 아 크리스챤이로구 나 어떤 사람은 그것이 부담스러워 서 회사에서는 전혀 예수님과 상관 없는 척 속으로 딱 하고 먹어 버리 는. 틀림없이 웃는 사람들 중에 그 런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런 사람 도 있어요. 그러나 일단 정중하게 기도를 해보세요. 아 저 친구 크리 스챤이었구나 그 다음부터 나를 주 목한단 말이죠. 책임을 져야 돼요. 크리스챤 다운 업무처리, 크리스챤 다운 성실성, 크리스챤 다운 정직함 이런 삶이 요구되는 것이죠. 나에게 도움이 돼요 그것이.

저는 차 뒤에 물고기표 달고 다 니는 사람들을 굉장히 존경합니다. 그건 담대한 공개적인 신앙의 고백 이거든요. 이 차를 몰고 가는 나는 크리스챤이다 이말이예요, 물고기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 주. 딱 물고기표 달고 다니잖아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물고기표 달 고 다니면서도 빨간불에 빨리 빨리 지나가고 뭐 막 운전하는 사람 있어 요. 그럴래 면 차라리 그것 떼고 007의 자리로 돌아 가십시오. 그러 나 내가 그걸 달았다면 빨간불에 서 고 다른 사람에게 양보를 좀 시켜주 고 정확하고 천천히 제대로 운전하 게 되면 사람들이 어떻게 말할까요? 자 저 사람 크리스챤인 모양인데 과 연 다르구나 다르구나 공개적 신앙 고백은 내 신앙 고백에 도움이 될 수가 있어요.

그런데 많은 경우에 우리가 공개 적으로 나오기를 꺼려 하는 이유는 두려움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두려움. 왜 우리가 전도하길 꺼려 하는가? 두려움입니다. 두려움. 빌리 그래함 전도협회에서 세계 각 도시 를 다니면서 전도대회를 하는데 저 녁에는 전도집회를 하고 낮에는 전 도학교를 합니다. School of Evangelism 전도학교를. 그걸 하면 서 통계를 냈어요. 왜 크리스챤들이 전도하지 않는가? 그런데 나는 전도 하기 싫습니다 그래서 전도 안 합니 다 이런 사람 한 사람도 없어요. 그 것은 0.001%도 안돼. 왜 사람들이 전도하지 않는가? 너무 바빠서 전도 하지 못 하겠다 9%, 9%고, 세계적 인 통계예요. 그 다음에 내 삶이 모 본이 되지 못 해서 전도하지 못 하 겠다 14%, 그 다음 28%는 전도하 는 방법을 몰라서. 내가 어떻게 전 도해야 할지 모르겠다 전도방법을 몰라서 그러니까 전도 훈련을 받는 것이 필요해요. 훈련 받으면 다 할 수 있어요. 우리 교회 전도폭발 훈 련이 있지 않습니까? 전도방법이 무 지해서 28%, 그런데 51%는 뭐냐 하면 내가 전도하다가 거절 당할 까 봐 두려워서. 이 두려움 이예요. 두 려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을 보일 까? 내가 크리스챤인 것을 알렸다 가, 전도했다가, 내가 회사에서 왕따 당하지 않을까? 내가 왕창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까? 이러한 두려움, fear, 두려움 때문에. 이런 두려움에 도 불구하고 일단 내가 그리스도인 인 것을 선포하면 내 삶 속엔 놀라 운 변화가 옵니다.

전 아리마대 요셉의 신앙인으로 서의 본격적인 삶은 바로 이때부터 였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오래 살 았는지 모르죠. 그 전까지는 믿으나 마나 영향력이 없는 삶, 그러나 그 가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그 순간부터 그는 자기 인생에 책임을 지고 하나님에 의해서 쓰임을 받는 삶이 시작되었다고 믿습니다. 공개 적 선택, 얼마나 중요합니까?

아리마대 요셉의 선택, 이 선택 은 두 번째로 모험적 선택이었습니 다. 모험적 선택. 본문에서 마가는 요셉의 결단을 소개하면서 그 결단 은 당돌한 결단이었다고 말합니다. 43절에 보세요. 본문 43절에 아리마 대 사람 요셉이 와서 뭐라고 그랬어 요? 당돌히 빌라도에게. 당돌히 빌 라도 에게 시체를 요구했다. 당돌하 게. 성경은 그것이 당돌한 행위였다 라는 것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당돌 하게 다른 말로 바꾸면 당돌하다는 말은 대담하게 이 말입니다. 대담하 게. 담대하게.Boldly. 담대하게. 대 담하게 이 말입니다. 또 다른 말로 말하면 모험적인 행동이었다 이 말 입니다. 그것은 모험적인 선택이었 고 결단이었습니다.

왜 모험이었습니까? 잘못하면 지 금까지 쌓아 올렸던 자기의 모든 지 위와 출세의 담이 무너질 수도 있었 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 습니까? 43절을 계속 읽어 보시면요 빌라도 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이 사람은 어 떤 사람이라고. 존귀한 공회원이요 그랬습니다. 공회원. 그 당시 이스라 엘에는 70명으로 구성된 소위 산헤 드린 이라고 불리워 지는 의회가 조 직되어 있었어요. 그 중의 한 멤버 예요. 국회의원 비슷한 사람. 자, 그 런데 범법자로 붙잡혀서 사형 선고 를 받고 죽어간 예수, 그가 예수 편 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그 는 그 사회에서 정말 문자 그대로 왕따를 당하고,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제 무시를 받고 어쩌면 자기의 자 리까지고 잃어 버릴 수 있었던 결단 입니다. 자기 모가지가 관계된, 자기 지위와 자기 명예를 잃어 버릴 수가 있었던 결단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모험을 무릅쓰고 주님 앞에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주 앞에 구체적인 헌신을 시작합니 다. 그리고 그러자 마자 그의 삶이 영향을 주기 시작해요. 니고데모를 변화 시키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영 향을 주는 삶을 시작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내가 신앙 생활 하지만 신앙 생활이 재미가 없다 이 런 분 계세요? 소위 신앙 생활의 매 너리즘, 주일날 예배 드리고 왔다 갔다 그것밖에는 의미가 없는 사람, 변화가 없어요, 감격이 없습니다, 다 이내믹한 삶의 생동감이 없어요, 무 력한 매너리즘에 빠져서 그저 주일 날 예배 드릴 땐 뭔가 좀 느껴지다 가 그 다음에는 전혀 다를 것이 없 는 삶. 뭔가 좀 달라져야 겠다는 느 낌을 갖지 않습니까? 제가 그 방법 을 가르쳐 드릴께요. 한 번 신앙 앞 에 목숨을 걸어 봐요. 좀 희생을 시 작해 봐요. 구체적인 희생 그리고 헌신을 해 보세요. 내게는 가장 소 중한 것을 주 앞에 드리고 시간을 바치고 사랑을 바치고 그러면서 영 혼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이 웃들을 사랑하는 구체적 헌신의 삶 을 시작해 보세요. 인생이 좀 달라 질 거예요. 주님은 주 앞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이런 모험적인 결단을 요구하지 않습니까?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나 처자나 형제나 자 매나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 니하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저는 신앙은 일종의 도박이라고 생각해 요. 파스칼의 표현을 빌면 그것은 거룩한 도박입니다. 거룩한 모험이 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오엠(OEM) 선교회 총재인 조지 보어, 우리 교회도 다녀 갔습니다만, 그가 구원 받고 나서 얼마 안 있다 가 젊은 시절에 예수 앞에 자기 일 생을 몽땅 받치기로 결심합니다. 친 구들이 물었어요. 소감이 어떠냐? 그때 그는 이런 인상 깊은 말로 대 답했다고 합니다. 나는 오늘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갔다 No turning back.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나는 건넜다. 나는 이제 앞 으로 나갈 수 밖에 없다.

저 유명한 줄리어스 시저가 영국 의 도브 해협을 건너가서 영국을 침 공하기 위해서 영국에 도착하자 마 자 제일 먼저 한 일이 뭐냐 하면 그 들이 타고 왔던 모든 배들을 불살라 버리는 일이었습니다. 자, 군인들이, 시저의 부하들이 무얼 느꼈을까요? 우리는 돌아갈 순 없다 이제. 앞으 로 가는 길 밖에 없다. 싸울 수 밖 에 없다. 나가야 한다. 여러분 예수 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손에 쟁기를 잡고서 만약 뒤를 돌아 다 본다면 그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 당하지 아니하고 기왕에 믿으려면 좀 제대로 믿어요. 시시하게 믿지 말고. 이런 모험적인 선택, 이런 거 룩한 도박, 그러나 흥분 있고 스릴 있고 보람 있고 감격 있고 눈물이 있는 삶, 아리마대 요셉은 바로 그 선택을 감행한 것입니다. 그의 선택 은 모험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 번째로 그의 선 택은 영원한 선택이었습니다. 자, 아 리마대 요셉을 본문이 소개하면서 계속 보면 이런 인상 깊은 단어들을 첨부하고 있습니다. 43절 맨 마지막 에 보시면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 이요 그 다음에 뭐라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다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 라. 과거에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렸 었다 가 아닙니다. 소위 현재 분사 로 쓰여져 있어요.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린다 말입니다. 예수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상황이 끝났다고 그는 생각하지 않 았던 것입니다. 그는 아직도 하나님 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입 니다.

예수가 왔을 때 그리고 그가 메 시야임을 확신했을 때 바로 그는 하 나님 나라의 비전을 예수님을 통해 서 발견했습니다. 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의 시작을 어떤 메시지의 선포로 시작하셨습니까?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느 니라 그런데 예수님이 돌아가신 겁 니다.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 장례 나 잘 치러 드리자 그게 아니 예요 여러분. 본문의 사건이 그런 얘기 아닙니다. 그는 아직도 하나님의 나 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는 십자 가의 사건을 주목하면서 더욱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되심을, 구세주 되심을 확신했을 것입니다. 그 분은 기어이 그가 예언하신 그대로 다시 살아 날 것이다. 저는 이 부활 신앙 을 그가 갖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는 아마도 구약을 잘 알았을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 이사야 53장 이 있죠? 저 유명한 메시야의 수난 을 예언하고 있는 그런 예언의 장이 아닙니까?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 악을 인함이라 이사야 53장에 보시 면 그 중에 이런 예언이 있어요. 그 는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얻어 강도들 사이에서 죽을 것이고. 구약 에 이미 그 예언이 있어요. 그 뿐만 아니고 그가 죽은 후에 그의 무덤은 부자의 묘실과 함께 할 것이다. 아 마도 아리마대 요셉이 그 말씀을 알 고 있었다면 그는 아마 흥분하기 시 작했을 겁니다. 성경이 기록한 부자 가 나일지 몰라. 내가 쓰임을 받을 수 있을 지 몰 라. 그래서 그는 마 태복음의 기사에 보면 그냥 무덤이 아니라 새 무덤을 준비합니다. 정결 한 세마포를 준비하고 그리고 새 무 덤, 아무도 쓰이지 않은 새로운 무 덤을 준비합니다. 주님은 여기에서 계시다가, 안식하시다가 일어나실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하나님 의 나라를 우리 가운데 완성하시고 야 말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 다리고 있었던 자라.

그리고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 그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서 그는 기쁘게 자기의 무덤을 내어 놓았습니다. 자기 재산을 내어 놓은 것이지요. 가장 소중히 여겼던 것을 내어 놓습니다. 그는 이제 지상의 부요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저 영원 한 명예, 하늘의 부요를 찾는 사람 이 되었습니다. 땅의 명예, 땅의 이 름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이 인정하시는 명예. 사람들은 나를 몰라 주어도 좋다. 아니 나는 사람 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고 사람들에게 거절을 당하고 나는 지금까지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나를 알아 주신다면, 하나님 께 쓰임을 받을 수가 있다면, 하나 님의 나라가 오게 하는 일에 도움이 될 수가 있다면 기꺼이 그는 자기의 모든 것을 주 앞에 내어 놓기 시작 합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은 빛깔을 달리합니다. 그의 삶은 변하기 시작 합니다. 그는 붙잡히기 시작합니다. 쓰임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의 인생 은 역동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삶은 찬란한 빛깔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채움을 받고 성령충만을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진짜 인생을 살아 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의 시선은 더 이상 순간적인 이 땅 에 있는 것, 지나가 버릴 명예, 지나 가 버릴 이름, 지나가 버릴 부요에 그의 관심이 있지 않습니다. 이 세 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 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 느니라 그의 선택, 그의 결단은 영 원을 향한 선택이었고 영원을 향한 결단이었습니다. 후회할 필요가 없 는 결단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 다.

미국에 22살 먹은 사람 하나, 저 음의 아름다운, 매력적인 바리톤 보 이스를 갖고 있던 사람, 사람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모우고 있었어요. 미국의 NBC방송은 거액을 주고 전 속 계약을 체결하자고 요청했습니 다. 그러나 마침 바로 비슷한 때에 그는 자기와 비슷한 또래의 나이의 젊은이 하나를 만나서 그의 메시지 에 매료 당하여 우리 함께 전세계에 다니면서 당신은 노래하고 나는 복 음을 전하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는 NBC의 전속 계약 체결을 거 절했습니다. 집에 돌아왔습니다. 자 기집에 돌아왔을 때 자기 책상 위에 자기 어머니가 애송하는 성시 한 편 이 있었습니다. 그 성시를 쭉 읽어 보다가 그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 방 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붓을 들어 작곡을 시작합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을 없네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 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 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빌 리그래함 목사님과 평생을 그 곁에 서 동역하며 찬양사역을 감당한 조 지 베버리 셰어 할아버지의 간증입 니다. 그는 수년 전 암스텔담에서 세계 수많은 전도자들이 몰려들었을 때 빌리그래함 목사님이 설교직전에 노구의 백발을 흩날리면서 이 찬송 을 불렀어요. 그가 앞에 올라왔을 때 사람들은 standing obeisance 하 면서 끝없이 박수를 쳤습니다. 그는 그 박수를 진정시키면서 인상 깊은 한마디 말을 또 던졌습니다. 박수가 감사합니다만은 나는 예수가 더 좋 습니다 Id rather have the Jesus. 예수가 난 더 좋아요.

기도하십시다.
주 예수 밖에는 없네. 주 예수보 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 귀와 바꿀 수가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 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가 사의 뜻을 조용히 기억하면서, 기도 하면서 한 번 불러 보세요.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가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 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흐 밍하십시다.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습니까? 썩어 버릴 명예와 썩어 버릴 부요, 잠시 이 순간 밖에는 나에게 의미가 될 수 밖에 없는 헛되고 헛된 그것 들을 붙들고 그것들을 위해서만 인 생을 소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영원히 있을 그것, 하나님 앞에 인 정되는 그 삶을 위해서 나는 정말 영원한 투자 속에, 영원한 선택 속 에 인생을 살고 있는지, 이 땅의 지 위, 이 땅에 내가 자랑스러워 하는 그것들이 잠시 잃어 버려진다 해도 과감히 결단해야 할 것을 결단하고 선택하고 살아가는 삶, 주님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살고 싶습 니다. 도와주시옵소서. 나머지 인생 그렇게 살기를 원하오니 도와주시옵 소서. 우리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하 십시다. 기도하겠습니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 합니다. 헛되고 헛된 것들을 위해서 우리 인생을 버리는 자들이 되지 않 게 도와주시고 영원한 가치,영원한 보람, 영원히 주 앞에 인정되는 삶 을 위하여 우리 인생을 드릴 수 있 는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시옵소 서. 오 성령 하나님 역사하시고 거 룩하신 하나님 능력과 권능으로 임 하시사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을 바꾸 어 주시고 주 앞에 우리의 삶이 새 롭게 설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오 하나님 성령으로 역사하시고 주 의 권능으로 함께 하시고 우리의 인 생을 온전히 주 앞에 새롭게 살아 가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아리마대의 요셉의 선택, 그의 희생적이고 모험 적인 선택, 공개적인 선택, 영원을 향한 선택, 주 앞에 후회할 필요가 없었던 선택, 늦지만 마침내 주 앞 에 해야 할 결단 속에 섰던 그의 선 택이 우리의 선택이 되게 해 주시옵 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 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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