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실패와 회복
마가복음 14:27-31, 66-72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자녀양육 을 생각하게 하는 그런 주일입니다. 오늘 자녀라는 존재는 저들을 키워 가는 부모에게 있어서 보람이면서 동시에 고통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 다. 많은 경우 자녀들이 부모의 기 대처럼 자라주지 않을 때 부모들은 죄책감을 가지게 됩니다. 물론 자녀 양육에 있어서 부모의 책임이 거의 중요한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는 사실을 우린 아무리 강조해도 못 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양육에 실패했다고 느낄 때 그 책임을 부모 가 전부 다 모조리 그 전체적인 책 임을 부모가 져야만 하느냐 하는 것 은 저는 별도의 질문이라고 생각합 니다. 성서적으로 이것은 진리는 아 닙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결코 부 모에게 부속된 존재는 아니기 때문 에 그렇습니다. 아, 자녀들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한 개인적 존재들입 니다. 비록 부모를 통해서 세상에 태어나고 그리고 부모의 중요한 영 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 도 불구하고 자녀는 하나님 앞에서 독립적이고 개성적 존재라는 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렇다면 구원이 개인적 책임인 것 처 럼 우리가 살아온 삶에 대해서 마지 막 책임은 결국 자신이 져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우리는 강조할 필요 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 세상 의 처음 사람인 아담과 하와의 경우 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담과 하와는 문자 그대로 완벽한 환경 속에 자랐 습니다. 죄가 없는 완벽한 환경 속 에서 그들은 자라났고 또 아담과 하 와에게 부모가 있다면 하나님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하나님이 직접 그 들을 길렀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죠. 그것 누구 책임이 예요? 네? 지 책임입니다. 그건. 지 책임이예요. 네. 우리 예수님과 제자 들의 관계를 생각해 보십시오. 제자 들은 아마 이 땅에서 그들이 소유할 수 있는 스승 가운데 가장 완벽한 스승 밑에서 신앙을 배웠습니다. 3 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하고 직접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고 또 함께 여 행도 하고 식사도 하면서 직접 예수 님께 삶을 배웠습니다. 여러분 예수 님한테 성경공부하고 싶은 생각 없 으세요? 직접 예수님 앞에 말씀 받 고 또 함께 삶을 나누고. 자,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완벽한 스승이였 던 예수님 문하에서 공부를 하고 자 라났던 제자들 가운데서도 반역한 제자 가롯 유다가 있었고 타락한 제 자 베드로가 있었다, 저는 이게 얼 마나 위로가 되는지 몰라요. 이동원 목사 설교 듣고도 타락한 사람이 있 더라, 저에게 굉장한 위로가 돼요. 네. 예수님 제자 가운데도 유다가 있었고 또 타락한 제자 베드로가 있 었습니다. 그것 누구 책임이예요? 누구 책임이예요? 따라서 하십시다. 지 책임이다. 내 책임이예요. 결국은 자기 자신의 책임인 것입니다. 그럼 부모에게 책임이 없느냐 그것은 아 니예요. 부모는 할 수 있을 때에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녀들에게 건강 한 영향을 물론 끼쳐야 할 것입니 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의 실패와 회복의 케이 스를 함께 생각하면서 우리 자녀들 의 실패와 회복 그들이 신앙적으로 실패할 때 혹은 인생에서 실패할 때 그들의 회복을 돕기 위해서 부모가 어떤 역할을 할 수가 있느냐 부모가 너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그러나 자녀에게 건강하고도 실제적인 도움 을 어떻게 줄 수가 있느냐 이 질문 에 대한 대답을 함께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실패의 원인을 생각해 봅 니다. 베드로가 왜 실패했느냐? 본 문에 보시면 두 가지 원인이 드러납 니다. 첫째는 비교의식입니다. 자, 본문에 29절을 한 번 같이 읽어 보 세요. 29절 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 작!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 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 예수님 이 제자들의 그 배신을 예언 하십니 다. 27절에 너희가 나를 다 버리리 라 라고 예언하셨어요. 그런데 베드 로가 말 하기를 다 버릴지라도요. 저는 달라요. 나는 그렇지 않겠습니 다. 그냥 선생님 저는 안 버릴게요. 그렇게 말하면 괜찮을텐데 다 버려 도 얘는 버려도 요한은 버려도 안드 레는 버려도요 나는 안 버립니다. 다른 사람을 꼭 물고 들어갔어요. 그런데 이 게 한 번만 그런 것이 아 니예요. 베드로의 아주 전형적 성격 의 한 단면입니다. 우리가 요한복음 21장에 보시면 부활하신 주님이 타 락한 제자 베드로에게 또 나타나시 죠? 그래서 네가 아직도 나를 사랑 하느냐? 네. 사랑합니다. 그러면 내 양을 먹여다오. 그 다음에 여러분 예수님이 베드로의 마지막 죽음을 예언하십니다. 네 죽음만은 영광스 럽게 죽을 것이다. 아, 그러면 그렇 습니까? 그러면 내가 최선을 다해 살다가 죽겠습니다 그러면 되는데 그 때 베드로가 무슨 말을 하냐면 요한복음 21장 21절에 보시면 옆에 있는 요한을 바라보면서 얘는 어떻 게 되겠습니까? 그래요.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요한을 가리키 는 거예요. 끊임없이 베드로의 성격 은 다른 사람과 자기를 비교합니다. 물론 이 비교의식에서 완전히 자유 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러나 이 비교의식을 극복한다는 것 은 중요한 것입니다. 이 비교의식을 극복하지 못하면 늘 비교하면서 살 면 인생은 끊임없이 짜증스럽고 피 곤하고 좌절스럽습니다. 스트레스에 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아무리 살펴 보아도 나 보다 잘 난 사람은 항상 있게 마련 이예요. 나보다 잘 하는 사람, 연주 를 나보다 잘 하는 사람, 얼굴도 나 보다 잘 생긴 사람, 그리고 나보다 똑똑한 사람, 나보다 부유한 사람, 나보다 탤런트가 많은 사람, 이 세 상에는 항상 있게 마련이죠. 그 비 교의식에서 인간이 자유하지 못하면 항상 자기 자신에 대해서 비참한 감 정을 갖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자 아상이 왜곡됩니다. 둘 중에 하나예 요. 열등감에 빠지던가 아니면 잘못 된 우월감에 도취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열등감과 우월감은 별도의 것이 아니예요. 이것은 동전의 양면 처럼 똑같은 것입니다. 왜 우월감을 갖는 줄 아십니까? 열등감이 있어서 그래요. 그 열등감을 커버하기 위한 허세의 모습이 우월감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다 버려도 나 는 안 버려요. 이 베드로의 열등감 이 우월의식으로 표출된 하나의 모 습이고 그 근본 밑바닥에는 비교의 식이 그를 꽉 붙들고 있었던 것입니 다. 어떻게 이 비교의식을 극복할 수가 있습니까? 그럼 비교의식의 반 대를 알아야 돼요. 비교의식의 반대 가 뭘까요? 창조의식이라고 합니다. 다 같이 창조의식. 네, 비교의식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합 니다. 저런 사람은 저런데 나는 왜 이럴까? 다른 자식들은 너무나 잘 건강하게 자라는데 내 자식만 이럴 까? 부모가 자녀를 키우면서도 끊임 없이 자녀들을 야 너 말이야 응1405 호 아이 좀 봐! 우리 집 옆에 집이 예요. 옆에 집을 봐! 그 집 아이는 이런데 말이지. 그러면 그 비교 당 한 상대방 아이를 미워하게 되고 나 를 나로서 인정하지 않은 부모에 대 한 섭섭함을 갖고 이중의 좌절을 안 습니다. 근데 창조의식이라는 것은 이 거예요. 하나님이 나를 나답게 지어 주셨다. 나하고 똑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 죠? 보세요? 나하고 똑같은 사람이 있나. 쌍둥이도 다르잖아요. 희한한 작품이예요. 이 세상에 나하고 똑같 은 존재는 하나도 없습니다. 옆에 사람 쳐다 보세요. 한 번 보세요. 얼 마나 희한한 작품들인가. 네 참 희 한해요. 다 달라요. 우리가 다 다르 다는 것. 그건 살아야 할 길이 다 다르다는 이야깁니다. 하나님은 나 만 가지고 있는 나의 탈렌트, 나의 개성을 가지고 내가 살아야 할 내 인생을 하나님은 계획하신 것이 예 요. 그 인생을 살면 돼요. 나 자신이 돼야 합니다. Be my self. 내 자신 이 돼라. 하나님이 나를 위해 지어 주신 그 길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그 길을 걸어가면 돼지 내가 다른 사람 되려고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러나 이 비교의식으로부 터의 자유하지 못함, 이것이 베드로 를 좌절시키고 타락시킨 것입니다. 왜 베드로가 타락했느냐 두 번째 원 인은 소극적 신앙생활입니다. 소극 적 신앙생활. 베드로가 상당히 적극 적인 사람이예요. 그런데 한 순간 이상하게 베드로가 소극적으로 돌아 서요. 그러면서 베드로는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자, 54절 보세요. 마가 복음 14장 54절 다 같이 읽겠습니 다. 마가복음 14장 54절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씩 부인하고 저주하 기 직전 상황, 벌어진 광경을 이렇 게 성경의 기자는 묘사합니다. 54절 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베드로 가 예수를 멀찍이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하속들과 함 께 앉아 불을 쬐더라 네. 여기 베드 로가 예수를 어떻게 좇았다구요? 멀 찍이 좇아. 따라서 하세요. 베드로가 (베드로가) 예수를(예수를) 멀찍이 좇아(멀찍이 좇아). 그 다음에 베드 로가 이 타락사건이 벌어져요. 그래 서 교회에서 올 때 기왕이면 앞에 앉는 것이 좋아요. 멀찍이 저 뒤에 앉으시는 분들. 사정이 있어서 앉으 시는 분도 있지만, 그런 분들은 괜 찮고. 멀찍이 좇아. 우리가 어떤 사 람이 신앙이 타락할 때 이렇게 말하 는 경우가 있어요. 저 사람이 갑자 기 이상해졌다. 갑자기 이상해 진 거 아니예요. 들여다 보면 따져보면 서서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잘 함께 살아가던 부부가 갑자기 파 경에 도달할 때 우리가 이런 말을 할 때가 있어요. 저 잘 살던 부부가 왜 저래? 갑자기 저렇게 이상하게 됐다. 갑작스러운 게 아닙니다. 우리 가 결론만 봐서 그렇지, 그 과정을 들여다 보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사연사연이 모이고 쌓여서 어느 날 그것이 폭발한 것에 불과한 거예요. 그 과정이 있어요. 서서히 그렇게 된 것이예요. 모든 것은 점진적인 하나의 과정을 밟도록 돼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들이 자녀를 양육 하는 과정에 있어서 그들이 자녀들 이 신앙을 결정적으로 붙잡을 수 있 는 시기가 있어요. 제일 좋은 시기 가 언제냐 면 이 teenager 시기예 요. 한국 부모들에게 늘 가슴 아픈 것이 뭐냐 면 결정적인 시기에 자녀 들의 신앙에 찬물을 끼얹져 버리고 말아요. 부모가 크리스챤이. 심지어 는 제직이라고 그러는 사람들이 그 렇게 할 때가 참 많습니다. 여기는 묘한 이중적 가치관이 우릴 지배합 니다. 교회는 나오지만 우리가 가지 고 있는 가치관은 아직도 세속적 가 치관입니다. 자녀들이 교회 나와서 열심히 하면 좋아하다가도 고등학교 2학년, 3학년이 여전히 열심히 하면 우린 불안해 지기 시작합니다. 야, 교회는 슬슬 나와, 슬슬 나와. 나중 에 해도 괜찮아. 메시지가 뭡니까? 메시지가 뭐예요? 우리 자녀들에게 보내고 있는 메시지? 우린 예수를 부인하라고 자녀들에게 말한 것은 아니 예요. 그렇지만 은근히 부모가 자녀들에게 보내고 있는 메시지는 대학 입시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고 예수는 대학 입시 보다는 중 요하지 않다. 여러분 그 메시지 여 러분이 보내고 있는 거 예요. 예수 가 그렇게 까지 중요한 존재는 아니 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 인은 결코 그런 모습일 수가 없습니 다. 물론 우리 나름대로 합리화는 있습니다. 에이, 목사님 그래도 제가 그건 자녀 보고 신앙생활을 안 하라 는 말은 아니구요. 대학가서 열심히 하면 되잖아요. 대학가서. 대학가서 열심히 하게 된다는, 여러분 보장 할 수가 있습니까? 신앙이 갑자기 또 생기는 게 아니거든요. 할 수 있 을 때 꺾여 버리면 다시 일어나지 못할 수가 있어요. 그게 무서운 것 입니다. 제가 이거 통계적으로 실증 할 수가 있는대요. 작년에 우리교회 도 포함되어서 참여한 그 연구조사. 한국 교회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대표 이동원. 한국 개신교인 신앙의 식 조사 보고서. 우리가 코리아 갤 럽에 의뢰 해서 조사한 보고서 예 요. 이 보고에 보면 한국 교인들이 언제 신앙생활을 시작했느냐, 76% 가 29세 이하, 그런데 열 살부터 열 아홉살 사이 까지의 신앙생활을 시 작하신 분이 59.7% , 60%. 60%가 그러니까 언제 신앙생활을 시작했어 요? 중 고등학교시절. 초등학교 후 반부터 중 고등학교 시절에. 그 때 신앙을 시작한 것이 예요. 여러분의 대부분이 그렇단 말이 예요. 60%가. 우리가. 그러면 그 때 신앙생활 할 수 있을 때 놓쳐 버리면 다시는 신 앙을 회복하기 어렵다, 물론 어떤 사람은 아주 공부도 열심히 잘 하고 그리고 신앙생활도 아주 잘 하는 사 람이 있어요. 둘 다 잘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둘 다 못한다면 뭘 선택하라고 하겠어요. 그럴 땐 신앙을 선택하라고 말하는 것이 옳 아요. 왜냐하면 공불 좀 못해도 또 한창 청년기에 헤매도 건전한 가치 관과 신앙을 붙들고 있으면 이 사람 반드시 다시 재기 합니다. 왜냐하면 그 신앙의 모티브가 마음 속에 있기 때문에 인생을 건강하게 살고 하나 님의 뜻을 따라 살고 싶은 그런 열 정이 있다면 이 사람은 어떡하든 인 생을 만회해요. 그러나 대부분의 부 모들이 이 경우에서 뭘 희생하라고 말하냐 면 신앙을 희생하라고 말해 요. 그래서 만약 신앙생활을 못한다 돌아오지 못한다. 우리 자식이 좋은 대학 갔어요. 좋은 job을 가졌어요. 그런데 평생 참 된 신앙을 갖지 못 하고 살다가 죽었다 예수와 상관 없 이 내 자식들이 살다가 이 귀한 신 앙, 복음의 신앙, 이 소망, 그 영원 한 소망을 갖지 못하고 세상에서는 굉장히 어깨 힘 주고 살았지만 그러 나 그 마음 속에 비참한 좌절과 인 생의 허무를 갖고 영원한 소망을 갖 지 못하고 내 자식들이 살다가 죽었 다 누구 책임이 예요? 이 거 생각 하셔야 되요. 심각하게 생각 하셔야 되요. 자식들이 마음속에 열정을 갖 고 있을 때 찬 물을 끼얹지 말아요. 그들이 신앙생활 할 수 있을 때 마 음 속에 탐구의 열정이 있을 때 예 수를 향한 사랑의 갈망과 열정이 있 을 때 격려해 주세요. 괜찮아. 그게 중요한 거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야. 주님을 붙들어. 주님 붙들 면 넌 성공 할 꺼야. 여러분 이 자 식이 어떻게 실패할 수가 있겠습니 까? 이 적극적 신앙생활을 격려해 주신다는 것 이 게 부모가 할 일이 예요. 야, 지금은 살살해. 나중에 해. 그게 바로 베드로 예요. 그게 바로 베드롭니다. 다행히 베드로는 회복 되었습니다. 다행히. 그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사 람들에게 적용되는 case는 아닐 수 도 있어요.
자, 이제 그렇다면 회복의 원 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베드로는 회복되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하나 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 혜. 그러나 베드로가 예수님과의 관 계에 있어서 그의 삶의 장에 그가 다시 재기 할만한 일어설 수 있었던 회복의 요인이 없겠는가. 두 가지 원인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두 가 지. 그것 때문에 일어날 수가 있었 던 거 예요. 두 가지가 뭐냐. 베드로 의 회복의 원인 첫 째는 말씀이 있 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있었다. 72 절 보세요. 자, 마가복음 14장 72절 마지막 절인데요. 한번 다같이 읽겠 습니다. 다같이 시작!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 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 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베 드로가 울고 통곡하고 회개하면서 다시 재기하고 회복 되었습니다. 그 게 어떻게 가능했느냐 여길 보면 예 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줄 쳐 놓으세요. 이게 중요해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 났어요. 그 말씀 이 생각되어 했습니다. 따라서 하세 요. 말씀이(말씀이) 생각되어(생각되 어). 참 중요한 것이 말씀이 생각되 어. 저는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자녀 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역 할은 뭐냐 말씀을 읽어 주세요. 말 씀을 좀 들려주세요. 말씀을 나눠주 세요. 내 자녀들이 듣던지 안 듣던 지 늘 하나님 말씀 읽어주고, 들려 주고 같이 말씀을 나눠주고 항상 말 씀을 같이 하는 것이 예요. 그럼 뭐 관심이 없어 하면서도 그 말씀을 들 어요. 마음 속에 말씀이 남아요. 여 러분 결정적 시기에 내 자녀들이 그 말씀을 붙들고 다시 일어날 줄 믿으 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 때문에 일 어나요. 말씀을 마음에 심는다는 것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몰라요. 시편 119편에 보면 9절 이하에 청년이 무 엇으로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 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 이다. 그 다음, 다음 절 11절에 보시면 주 여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 하려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 속에 두었습니 다. 말씀을 내 마음 속에 두었다. 여 러분 말씀이 마음 속에 있으면 말씀 의 씨앗이 떨어지면 말씀이 뿌려지 면 언젠가 그 말씀 붙들고, 뭐 일시 적인 타락의 과정은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신앙생활 잘 하다가 한 순 간에 흔들릴 수가 있어요.너무 놀래 지 마세요. 부모에게 물려받은 신앙 을 자기의 신앙으로 삼기 위한 회의 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 teenager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 과정을 다 겪 어요. 그 때 너무 놀래지 마세요. 중 요한 것은 그러나 부모가 자녀들에 게 뿌려진 말씀의 씨앗. 있다면 그 말씀이 남아 있다면 말씀이 심어져 있다면 우리의 자녀들은 말씀을 붙 들고 일어날 것입니다.그 말씀 때문 에 회복될 것입니다. 말씀을 자녀들 의 마음 속에 심는다는 것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 다. 두 번째는 베드로가 회복된 원 인.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 본문하고 같은 내용을 취급하고 있 는 누가복음 22장을 찾아 보세요. 누가복음 22장 31절입니다.누가복음 22장 31절을 다 한번 찾아보세요. 시몬아, 시몬아, 이렇게 시작되는데, 누가복음 22장 31절. 자, 다같이 읽 겠습니다. 찾으신 분 시작!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자, 예 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의 공격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보셨어요. 시몬 아, 사탄이 너를 청구하고 있다. 사 단이 너를 공격하고 있다. 다가오는 사단의 공격을 주님은 보셨습니다. 그러면서 경고하신 거 예요. 32절 그 다음절. 네 누가복음 22장 32절 다같이 읽습니다. 시작! 그러나 내 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 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자, 뭐라 고 말씀하십니까? 주님이. 베드로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기도했다.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했 다. 너는 돌이킨 후에 주님은 베드 로가 일시적으로 타락할 것을 아셨 어요. 보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회복될 것도 아셨습니다. 돌이킨 후 에 네 형제를 다시 굳세게 하라. 그 러나 베드로의 회복의 원인 그건 주 님의 기도때문이 예요. 중보 기도 때문에 사랑하시는 여러분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 중보 기도를 한다는 것 매우 중요한 것입 니다. 때로는 부모의 말이 먹혀 들 어가지 않고 부모의 잔소리가 통하 지 않는 계절이 올지도 몰라요. 그 러나 우리가 아직도 할 수가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가 기도 하는 한 자녀들은 회복될 것입니다. 자, 역사가 초세에서 중세기로 들어 갈 무렵에 이태리의 밀라노의 한 성 당에서 교회당에서 일어난 일입니 다. 예배 시간이 아닌데 미사 시간 도 아니고 예배 시간도 아닌데 교회 당에 들어와서 한 부인이 교회당 뒷 편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자 마자 통 곡을 하고 울기 시작합니다. 십 분, 이십 분, 삼십 분이 지나도 통곡소 리는 멎지 않습니다. 그 교회를 지 도하시던 감독, 암부로스라는 유명 한 감독이 보니까 어떤 부인이 계속 흐느끼고 있단 말이 예요.그래서 굉 장히 아픈 사연이 있나 보다 생각하 고 그 부인 곁에 다가 갔습니다. 그 리고 흐느끼고 있는 부인 어깨에 손 을 얹졌습니다. 토닥거리면서 부인 뭐 어려운 일이 계세요? 그 때 부인 이 갑자기 그 암부로그 감독을 보더 니 감독님 내 아들이 이단에 빠졌어 요. 내 아들이 이단에 빠졌어요. 그 때 암부로스 감독은 이 부인에게 역 사에 남을 만한 위대한 말을 한마디 남겼습니다. 걱정 마세요. 부인. 기 도하는 자의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 습니다. 기도하는 자의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 부인이 모니카 여사 예요. 성 어거스틴의 어머닙니다.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 어거스틴은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주의 손에 붙들림을 받았습니 다. 그리고 교회 역사에 가장 커다 란 발자취를 남기는 거대한 거목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기도하면 돌아 올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자, 기도 하면서 지켜봐 주세요. 지켜 봐 주 세요. 부모가 지켜 봐 준다는 것 매 우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베 드로가 결정적으로 돌이키는 장면에 서 누가복음 22장 61절에 보시면 자 베드로가 통곡하면서 돌아오기 직전 의 사건을 누가복음은 이렇게 인상 깊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돌 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따라서 하세 요. 주께서(주께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를 보시니) 네, 주께서 돌이 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를 보시 고 있었어요. 자, 벌써 베드로는 주 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있었어 요. 거의 저주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주님은 베드로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변함없는 사랑 의 시선이 였습니다. 주님의 시선과 베드로의 시선이 맞부딪히는 순간 그 순간 베드로는 꺼꾸러 집니다. 그리고 통곡하기 시작, 그리고 회개 하면서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주께 서 보시니. 여러분 내 자녀들에게 아무 것도 해 줄 수가 없다고 느낄 때 아직도 할 수 있는 것이 있어요. 지켜봐 주세요. 조용히 지켜봐요. 저 는 유명한 실존주의 작가 가운데 앨 버트 까뮈라는 사람이 있죠. 까뮈. 저는 젊은 시절에 이 까뮈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이 사람 책을 읽어보면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아주 난해한 책 인데. 그러나 이 분의 책에 묻어나 는 얘기들은 다 절망스러운 것, 허 무에 찬 이야기, 부조리, 인생의 절 망과 허무를 고발하는 내용들입니 다. 그러면서도 이 사람이 노벨상 수상 작가가 되고 그랬는데 어느 날 한 기자가 앨버트 까뮈하고 인터뷰 를 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졌어요. 당신은 인생의 허무나 좌절이나 부 조리 이런 것들을 다 썼는데 그런데 아직까지도 당신이 살고 세계적인 노벨상 수상 작가가 되고 여기까지 당신의 인생을 붙들어온 밝은 어떤 면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그 때 까뮈는 서슴지 않고 이런 말을 했습 니다. 내 인생 유일하게 밝은 한 가 지 면이 있다면 그것은 내 어머닙니 다. 어머니. 나는 어머니 때문에 여 기까지 왔습니다. 어머니. 까뮈는 윈 래 알제리아에서 탄생했습니다. 생 후 한 달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요. 평생을 홀 어머니 밑에서 자랐 습니다. 그런데 이 어머니가 가난하 니까 행상을 하고 가정부를 하면서 키웠습니다. 거기다가 청각 장애인 이 였어요. 엄마가. 잘 듣지도 못했 어요. communication도 안 됐어요. 그런데 아들이 20세가 되어서 불란 서로 떠날 때 파리로 떠날 때 이 엄 마가 까뮈에게 한 마디 말을 던졌어 요. 까뮈는 평생 그 말을 잊지 않았 습니다. 엄마가 이렇게 말 하더래요.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를 지켜 볼 꺼야.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 를 지켜 볼 꺼야. 까뮈는 이 말을 잊어버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엄마 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엄마가 너 를 지켜 볼 꺼야. 사랑하시는 여러 분 부모로서 아무 것도 할 일이 없 다고 안타까움과 답답함 앞에 사로 잡힐 때 그러나 우리가 아직도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 들을 지켜 볼 수가 있습니다. 시선 을 떼지 마세요. 변함없는 사랑의 시선으로 우리 자녀들을 지켜 보십 시다. 할 수 있다면 기도하며 지켜 보십시다. 만약 우리가 우리 자녀들 을 위해서 기도하며 지켜 볼 수가 있다면 우리말고 또 한 분이 우리의 자녀들을 바라보실 것입니다. 하나 님. 그리고 그 하나님이 지켜 본다 면 우리 자녀들은 회복될 것을 믿으 시길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다 일어나서 함께 기도하시겠습니 다. 이 시간 통성으로 함께 기도할 때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세 요.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서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 하십시오. 자 녀들은 부모님을 위해서 좀 기도해 주시고 하나님, 우리 자녀를 내가 변함없이 지켜볼 수 있도록 도와 주 십시오. 그들을 기도하며 돌아 볼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내 사랑 하는 자녀가 말씀 붙들고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 속에 주앞에 굳게 세워 질 그 날을 위하여 기도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다같이 통성으로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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