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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박종순 목사 설교집 (9)

by 【고동엽】 2022.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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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저주받은 도시들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마 11:20-24

 

 

현대 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인구 집중문제, 교

통문제, 주택문제, 대기오염, 환경파괴,범죄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세계의 어느 나라를 가 봐도 도시가 크면 클수록 그 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도 큰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대도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도시규모가 크면 클수록 문제도 크

고 많았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도시가 오늘까지 남아 있는 것도 없

어져 버린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소돔과 고모라 라든지, 폼페이 같은 도시는 없어졌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세 도시도 없어졌습니다. 그 세도시는 고라신, 벱세다, 가

버나움입니다. 그 세도시는 서울이나 뉴욕처럼 큰 도시느니 아닙다만 그러

나 그 당시 그 지역에서는 큰 도시 구실을 했습니다.

그 도시들이 왜 없어졌는가 하는 이유를 찾는 것은 현대 도시의 성격 규명

과 우리의 입장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불신의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20절을 보면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

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라고 했습니다.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은 불신의 결과입니다. 믿으면 회개운동이 일어납니

다만 안 믿으면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도시를 사람으로 의인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고라신,벱세다,가버나움이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

이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회개는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인간의 도리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과정입

니다. 다시 말하면 회개가 없으면 구원이 완성되지 않는 것입니다.

 

회개에는 다음과 같은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 자각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깨닫고 느끼고 발견해야 합니다.

둘째 단계는 시인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지은 죄와 가지고 있는 잘못을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변명하거

나 핑계를 대면 안됩니다.

셋째 단계는 고백하는 것입니다.

죄도 자기 입으로 고백해야 하고 믿음도 자기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다

시 말하면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낱낱이 마치 자술서를 쓰는 것처럼 내가 지은 죄를 숨김없이 고백해

야 합니다.

넷째 단계는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고백만으로 끝나 버리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내가 고백한

죄를 용서해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다섯째 단계는 사죄를 믿어야 합니다.

내가 내 죄를 고백하면 그리고 용서를 구하면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도처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다고 약속하고 있

습니다. 눈보다 더 희개 양털보다 더 희게 사하신다고 약속하셨고(사

1:18), 우리의 죄를 도말하신다고 했습니다 (사 44:22). 그리고 동이 서에

서 먼 것같이 우리의 죄가를 멀리 옮기시겠다고 했습니다 (시 103:12).

여섯째 단계는 돌아서는 것입니다.

참회개는 거기서 돌아서야 합니다. 거기서 발을 빼고 손을 씻고 그 현장을

떠나야 합니다. 죄에 대해 미련을 버려야 합니다.참된 회개는 방향을 바꾸

 

 

 

는 것입니다.

일곱째 단계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방향을 돌이켰으며 즉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딴데로 가면 안됩니다.

여덟번째 단게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인간에게는 되돌이 근성이 있습니다. 회개했노라고 하지만 옛날 그때 거기

로 되돌아 갈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내가 성령을 충만히 받고 성령의

지시하심을 따른다면 죄길로 되돌아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성령 하

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히면 성령님이 인도하시는대로 따라 살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고라신 도시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주님이 행하시는 기적도 목격했습니다

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현대 도시들은 어떻습니까? 서울 장안에 사는 사람치고 교회를 모르는 사

람과 예수를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만일 있다면 극소수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

니 서울 시민 1200만을 생각할 것까지도 없습니다. 내 가족, 내 친척, 내

이웃, 내 친구들 가운데 고라신처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개가 없으면 그 다음은 멸망 밖에 없는 것입니다.

 

2.교만의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23절을 보면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

지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대등한 자리에 올라 가겠다고 설쳤던 루시퍼 천사가 있었습니다.

그 천사가 타락하여 마귀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11장을 보면 시날 평원에 모여 성을 쌓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벽

돌을 만들고 역청을 만들어 성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성의 높이는 하늘에 닿게 하자는 것이었고 그 목적은 하나님을 낮추고 자

기네 이름을 떨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탑은 무너졌습니다. 인간이

최초로 쌓으려 했던 교만의 탑은 지금 흔적도 없어졌습니다.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역시 교만과 패륜과 부도덕과 불신

때문에 유황불에 녹아 없어졌습니다.

개인도, 도시도, 역사도, 왕조도 교만하면 안됩니다. 특히 신앙생활에서의

교만은 금물입니다.

바벧론 왕조의 느브갓네살 왕은 교만 때문에 쫓겨났고, 이스라엘의 사울

왕도 왕위에서 쫓겨갔고, 페르시아의 국무총리 하만도 교만 때문에 죽었습

니다.

 

영국의 신학자였던 테일러(Jeremy Taylor)는 "당신이 태어나기 전에 무엇

이었는가를 생각해보라. 그때 당신은 無였다. 그후 여러해 동안 당신은 무

엇이었는가를 생각해봐.그것은 연약함이었다.

그 다음 당신은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라 그것은 큰 죄인이다. 당신은 이웃

과 하나님 앞에서 누구인가. 그것은 하나님과 부모와 이웃에게 빚진 자이

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한다면 날마다 우리는 겸손해야 된다"라고 했습니

다.

 

주기철 목사님이 평양 산정현 교회의 청빙을 받게 되었습니다. 교회대표로

조만식장로님이 주기철 목사님을 찾아가 교회의 청빙결정을 전하고 모시기

로 했습니다. 주기촐 목사님을 찾아온 조만식 장로님은 젊은 주목사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 저희 교회에 부임하실 것을 허락해 주

십시오"라고 청원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주기철 목사님이 오산학교

를 다닐 때 조만식 장로님은 교장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일화도 있습니다. 어느 주일 낮 조만식 장로님이 바쁜 일로 예배에

 

 

 

늦었습니다. 황급히 들어서는 조만식 장로님을 본 주기철 목사님이 소리쳤

습니다. '조장로님 거기 서 계십시오. 장로님이 예배에 늦으면 어떻게 본이

되겠습니까?" 그날 조장로님은 문간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배 후 다시

는 예배에 늦지 않겠다고 사과를 했다는 것입니다.

 

초대 한국교회를 빛냈던 두 거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합니까?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다던 가버나움 도시는 흔적도 없어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가버나움만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교만이라는 히브리어 단어 가운데 가온(gaon)이라는 말이 있스빈다. 그 뜻

은 "베풀다"라는 것입니다. 자기 실체나 가진 것은 손톱만한 것인데 그것을

부풀려서 마치 세상 것을 다 알고, 다 가졌고, 다 통달한 것처럼 자기도취

에 빠져 있는 것이 교만 즉 [가온]인 것입니다. 주드(zud)라는 단어도 있습

니다. 그 뜻은 우쭐대다. 거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을 가장 적절하

게 묘사한 헬라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투포(tupho)라는 단어입니다. 그 뜻

은 "천천히 타 버리다","꺼져가다"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겸손한 사람

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일어섭니다. 그렇지만 교만한 사람은 천천히 마

치 촛불이 꺼져가는 것처럼 천천히 타버리고 맙니다.

그뿐입니까? 교만은 언젠가는 명성도,성공도, 소유도,인기도 꺼져 버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시편 119:21을 보면 '교만은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4:6을 보면 "주께서는 굡나한 자를 물리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교만을 경계해야 합니다. 교만을 멀리 해야 합니다.

 

3.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고라신,벱세다,가버나움,이 도시들이 왜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졌습니까?

20절을 보면 "책망을 받았고",21절을 보면 "화가 있을찐저"라고 저주를 받

았습니다. 그리고 23절을 보면 "음부에가지 낮아지리라"는 책망과 저주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땅도, 사람도 국가도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이 저주받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

니다. 아버지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벌거 벗은대로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

러나 셈과 야벱은 얼굴을 돌리고 뒷걸음질로 들어가 옷을 덮어 드렸습니다.

잠이 깬 뒤 노아가 이 사실을 알게 됐고 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고.

바로 그 함의 자손들이 훗날 시돈, 그랄, 소돔,고모라에 흩어져 살았고 흑

인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저주의 반대는 축복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저주가 아닙니다. 우리

가 바라는 것은 축복입니다. 나와 내 가족과 내 친척과 내 이웃과, 내 친구

와 그리고 우리나라가 축복받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복도 여러가지입니다. 재물의 복, 건강의 복, 자녀의 복, 명예의 복, 부부

이 복 등 그 종류가 가지가지 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복음 다 받거나 소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가운데서 한 가지 복을 선택해야 된다면 여러분은

어떤 복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저는 예수 믿는 복을 선택했습니다. 믿음은 모든 복의 비결이기 때문입니

다.

 

저는 가난한 농군의 아들이었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은 제대로 먹고,입고,

쓰는 것이 한스러울 만큼 부러웠습니다. 제가 살던 동네에서 제가 제일 가

난했습니다. 그러나 제 어머님은 저에게 예수 믿는 것과 공부하는 것은 그

만두어선 안된다면 논을 팔고 밭을 팔아 공부를 시켜 주셨습니다.

만일 제가 예수를 믿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공부를 계속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무엇이 무엇이 되었을까 생각해 보면 눈앞이 아찔합니다. 박도둑놈

이 됐을까?깡패가 됐을가?아니면 벌써 죽었을까? 생각할 수록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 몸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라는 찬송이

감격으로 다가섭니다.

여러분, 불신은 저주의 원인입니다. 교만은 저주와 패망의 원인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교만을 버립시다. 믿음을 고백합시다.

그리고 저주받아 죽어가는 내 가족, 내 친척,내 이웃, 내 친구들을 건져냅

시다.

저들에게 내가 믿는 예수

내가 만난 예수

내가 사랑하는 예수

내가 받은 구원을 증거합시다.

저들을 저주의 무더기 속에 방치해 둘 수가 없습니다.

건져내야 합니다.

살려내야 합니다.

함께 축복받고 영생을 얻도록 해야 합니다.

 

발행일 : 940522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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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한나의 성공비결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삼상 1:21-28

한나는 엘가나의 아내였고 불임증 환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사무엘을

낳아 유명한 선지자로 키웠을 뿐만 아니라 3남 2녀를 더 낳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아내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 성공을 한 것입니다.

 

1.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1:10을 보면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라고 했고,

1:12을 보면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라고 했고, 1:17을 보면

기도하여 구한 것을"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20을 보면 아들 이름을 사

무엘이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라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나의 기도로 문제를 푼 사람입니다.

자신의 괴로움과 고통과 절망과 불가능을 기도로 해결한 것입니다.

돼지는 병들어 드러누웠을 때 외에는 하늘을 보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병

아리도, 참새도, 소도, 말도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이 있지만 유일하게 돼지

는 땅만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땅만 바라보고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

람은 위를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헬라 사람들은 인간을 [안드로포스]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위를 바라보

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돼지처럼 병들어 드러누워야만 하늘 바라보고 소리친다면 그것은 불행한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나는 기도로 문제를 해결했고 불임증을 고쳤고 자녀교육도 성공했습니

다.

 

2. 은혜를 갈망했기 때문입니다.

 

1:18을 보면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물론 이 말은 한나가 당시 제사장인 엘리에게 한 말입니다만 그러나 그것

은 그녀가 평소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했고 갈망했는가를 설명해 주

고 있습니다.

은혜를 사모한다든지 갈망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 없인 못한

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 없이는 못산다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 없어도 잘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잘 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그 기간은 잠깐입니

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은 그 길이가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사는 사람은 그가 누리는 건강과 행복과 성공이

길고 영원하게 됩니다.

은혜를 사모하고 갈망했던 한나는 그의 원대로 은혜를 받았고 그 결과 자

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었습니다.

 

3. 믿었기 때문입니다.

 

1:18을 보면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고 했습니다.

17절을 보면 한나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엘리 제사장이 알려 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난 후 한나는 집으로 돌아가 먹고 마시며 평안을 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나에게 직접 응답하신 것도 아니고 엘리 제사장을 통하여 응답

을 주셨습니다만 한나는 그 응답을 확신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환상을 본 일도 없고 음성을 들은 일도 없고, 계시를

받은 일도 없지만 엘리의 말을 그대로 믿고 그곳을 떠나 집으로 갔고 평안

을 찾게 되었습니다.

믿으면 믿는대로 됩니다.그러나 안 믿으면 안 믿는대로 안 됩니다.

한나의 성공비결은 믿음입니다.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은 믿음이 그녀에게

응답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캐나다의 핼리팩스의 어느 호텔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긴급 출동한 소방

차들이 물을 뿌리고 투숙객들이 뛰어내릴 수 있도록 땅 위에 그물을 쳤습니

다. 한 아버지가 자기 어린 아들을 창문을 열고 던졌습니다. 그 아이는 그

물 위에 떨어져 생명을 건졌습니다.

그 화재로 수많은 사람이 죽고 구조된 사람은 매우 적었습니다.

신문기자가 그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가 너를 창 밖으로 던질 때

무섭지 않더냐"고 그러자 그 아이는 "무섭긴요, 아버지가 저를 위험한 데로

던졌겠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겨 버리는 믿음 일단 맡겼으면

믿고 평안한 마음을 지니는 것, 그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창 밖으로 집어 던졌다고 합시다. 위험한 곳으로 던졌겠으

며 죽어 없어지라고 던졌겠습니까?

 

로마의 콘스탄티우스 황제가 신하들에게 로마의 신에게 절하고 숭배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대부분의 신하가 명령대로 로마 신에게 절을 하고 숭배

를 했지만 그중 독실한 기독교인들은 거부했습니다. 그드은 곧바로 투옥되

거나, 관직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콘스탄티우스 황제는 기상천외의 인사를 단했습니다. 자기

명령에 복종한 신하는 다 내쫓아 버리고 자기 명령에 불복하다가 쫓겨난 신

하들을 모조리 불러들여 요직에 앉혔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자기가 믿는 신에게 충성을 다하고 지조를 지키는

사람은 자기 왕에게도 충성을 다할 것이며 자기 신에게 충실하지 못한 자는

신뢰할 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믿음을 지킵시다. 불구덩이에 집어 넣어도 믿고, 창 밖으로 던져도 믿고,

내쫓겨도 믿음만은 버리지 맙시다.

 

4.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입니다.

 

1:28을 보면 이적으로 낳은 아들 사무엘을 젖을 뗄 때까지 데리고 있다가

곧바로 성전으로 데리고가 그의 평생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녀 자신이 믿음으로 살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 이들도 하나님께 드리고

믿음으로 키웠습니다. 젖을 뗄 때까지만 양육을 책임졌고, 젖뗀 후엔 성전

에 맡겨 버렸습니다. 이것은 그녀가 자녀교육에 과단성이 있었음을 보여 줍

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과잉보호 속에서 자랐기때문에 커서도 마마보이 틀을 벗

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매주일 어른 예배와 같은 시간대에 맞춰 영아부

예배가 실시되고 있습니다. 두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무엘처럼 어려

서부터 신앙과 예배를 가르치자는 것이고, 다른 하는 부모의 과잉보호부터

해방시키자는 것입니다.

영아부 책임자의 말에 의하면 처음 엄마를 떨어질 때 몹시 울고 보채기만

한달만 훈련하면 적응이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학원에 맡기고, 과외 선생한테는 맡기면서 그것도 막대한 돈다발과 함께

사정사정해서 맡기면서 거저 맡아주고 가르쳐주고 그 영혼을 살리는 교회에

맡기는 것은 주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런 면에서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교회 나와 예배드리는 가정은 복받은

 

 

 

가정입니다.

 

다윗 왕은 이스라엘의 두변째 왕으로 40년 동안 나라를 통치한 성군이었으

며 메시아 그리스도의 그림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저이나 자녀 교육엔 실패자였습니다. 두가지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 잘못된 결혼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사울 왕의 딸인 미갈과 정략적으로 결혼했습니다. 미갈은 냉소적인

여자였고 부정적인 여자였습니다. 본래 사랑없는 정략 결혼이었던 탓으로

부부사이가 편치 못했습니다.

밧세바는 충신 우리아의 아내였는데 우리아를 암살하고 힘으로 빼앗아 아

내를 삼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무엘하 5:13을 보면 그는 수많은 처첩들을 권력을 빙자해

거느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처첩간의 갈등, 적자 서자간의 갈등이 겹쳐 가

족관계와 가정 분위기가 엉망이 되고 만 것입니다.

 

둘째 신앙교육의 실패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아들 가운데 압살롬이 있었습니다.

그는 부왕 다윗을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겠다고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반

란군을 이끌고 다윗을 추격하다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만 생각해 보면 기

가 막힐 일입니다.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뒤쫓아 다니는 아들, 아들을 피해 망명생활을 해야

하는 아버지, 그 집안 꼴이 뭣니까?

다윗은 정치,성공,출세, 전쟁 때문에 자녀 교육을 바로 하지 못했습니다.

 

30여년 전에 미국에 건너가 공부하고 부부가 목회를 하는 목사님 가정이

있습니다. 3남매를 미국에서 낳아 길렀습니다. 그런데 그 3남매는 한국어도

잘 합니다만 부모말에 절대 순종입니다. 미국 아이들이 냉수처럼 마시는 코

카콜라도 건강에 좋지 않으니 먹지 말라고 했다면 코카콜라도 마시지 않을

정도입니다. 두 아이는 대학 다니고 한 아이는 고등학교에 다니는데 순종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그렇게 된 비결은 간단합니다. 매일 그 가정은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아

침에 못 드리면 저녁에라도 반드시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바로 그 예배시간이 복받는 시간이었고 가정교육의 시간이었고 가족 만남

과 교제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내일부터 가정예배를 시작합시다.

 

사도 행전 10정을 보면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펼쳐지는 한 가정이야기

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바로 고넬료 가정입니다. 로마 장교인 그의 가정이

그토록 모범적인 가정이 될 수 있었던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 가족 신앙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행전 10:2을 보면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라고 했습니

다. 그리고 사도행전 10:24를 보면 "일가,친척,친구들을 모아 기다렸다"고

했습니다.

그는 온 가족, 친구, 일가,이웃들의 영혼 구원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

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친구들을 모아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도 선교사 스탠리 존스(Stanley Jones)는 "만일 종교가 가정에 머무를

수 없다면 성전에 제아무리 많은 종교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를 구원시킬

수 없다"고 했습니다.

미국에서 발표된 통계에 의하면 청소년 범죄로 법정에 서는 청소년의 80

는 신앙 훈련이 없은 가정 출신의 아이들이며, 이혼부부의 90%는 가정 예배

를 드리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한나나 고넬료의 성공비결은 기도와 가족 신앙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

다.

둘째, 성령을 충만히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0:44을 보면 "성령이 말씀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셨다"고 했

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윤활유와 같기 때문에 불편한 부부관계, 삐걱거리는 가족관

계를 부드럽게 해줍니다. 그리고 성령은 깨닫게 하시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죄와 잘못을 깨닫게 해 줍니다. 그래서 자신의 과오를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게 합니다. 성령은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가족이 성령을 받으면 태도가 변하고 언어가 변하고 생활이 변합니다.

내 가족, 내 친척, 내 이웃, 내 친구를 예수의 사람으로 만듭시다.

그것은 주님의 명령이니까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나에게 행복이 오고 내 가정에 평화가 오는 첩경인 것입니다.

 

19세기 영국에는 네 쌍의 행복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곧 빅토리아

여왕부부,시인 브라우닝 부부, 캐논 버틀러와 조세핀 버틀러,윌리엄 우드부

부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 가장 행복한 부부는 신앙생활을 잘 했던 부부였

습니다.

6월 12일은 내 가족, 내 친척, 내 친구, 내 이웃을 주님께로 인도해 오는

날입니다.

1) 대상을 정합시다.

2) 그를 위해 1,3,5 기도를 드립시다.하루 세번 5분이상.

3) 그에게 내가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립시다.

4) 그리고 6월 12일을 미리 알립시다.

5) 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예우와 친절을 다합시다.

6) 계속 기도로 공격합시다.

7) 결과를 믿고 전진합시다.

오 주님, 나도 한나처럼, 고넬료처럼 가족구원과 신앙에 성공하게 하소서.

발행일 : 940515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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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어떤 부자의 일생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눅 16:19-31

초년 고생은 돈주고 사서도 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초년에는 고

생을 하고 살더라도 그 고생 때문에 성공하고 행복해진다면 고생을 참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초년은 행복했지만 중년기와 노년기를 불행하게

보내는 것은 여러가지 면에서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본문에 나오는 부자는 초년은 행복했지만 그후의 삶은 처절한 불행으로 이

어졌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한 부자의 일생을 통해 주시는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편의상 부자의 일생을 둘로 나누겠습니다.

 

1. 죽기 전의 삶

 

19절 첫머리를 보면 "한 부자"라고 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해서 부자가 되

었는가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의 이름이나 가족관계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가

남긴 업적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습니다.

 

짐작컨대 유산을 물려 받았는지 자수성가를 했든지 아니면 때를 잘 만나

벼락부자가 됐든지 했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그는 생전에 호의호식했다는 것입니다. 19절을 보면 자색옷

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했다고 했습니다.

자색옷과 고운 베옷은 그 당시 부자들과 상류층 사람들이나 입을 수 잇는

의상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사치와 연락으로 꾸며졌고 안일과 방종으로 채

워졌습니다.

 

미국 문화를 파티문화라고도 합니다. 그들은 파티를 즐깁니다. 그러나 매

일같이 파티를 즐길 수는 없습니다.

여가도 즐겨야 합니다만 나마다 놀고 먹는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여가를 영어로 리크레이션이라고 합니다. 그 뜻은 재창조(Recreation)라는

것입니다.

 

호의호식하고 날마다 파티열고 사치와 방종을 일삼았던 어떤 부자의 이야

기는 그의 삶이 얼마나 무가치하고 무절제한 삶이었는가를 보여줍니다. 심

심찮게 재벌 2세들의 파행적 삶이 언론에 오르내릴 때가 있습니다. 어떤 신

문 가쉽은 타락한 재벌2세들을 가리켜 "먹고 놀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라

고 꼬집었스비다. 먹고 입고 여가를 즐기는 것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은 아닙

니다. 먹고 입고 여가를 즐기는 행위가 재생산을 위한 준비나 재충전을 위

한 것이라면 탓할 것도 없고 지탄할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부자처럼 날마다 새옷 갈아입고 식도락을 즐기고 호화파티

를 열어 주지육림에 빠진다면 그것은 제아무리 제돈 쓰고 하는 짓이라고 하

더라도 죄인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의 결정적인 큰 잘못은 다른데 있습니다.

그는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을 외면한채 살았습니다.

빌립보 3:19을 보면 하나님을 외면하고 제멋대로 사는 사람들을 다음과 같

이 지적했습니다.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와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고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은 두차례나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했습니

다.

출애굽한 이후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이 애굽에서 우리를 인도

 

 

 

해낸 신이라며 숭배했습니다. 그때 주모자는 아론이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사마리아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우고 하나님이라고 숭배했습

니다. 그때 주모자는 여로보암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사는 부자는 황금 우상숭배자들입니다. 그들은 자기 배

가 신입니다. 그러다가 멸망으로 그 삶을 끝내고 마는 것입니다.

 

돈이 많다는 것이나 재산이 많다는 것은 결코 죄나 악이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돈을 신으로 섬기는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

다.

본문의 부자는 살아있는 동안 가진 것 때문에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2. 죽은 후의 삶

 

22제을 보면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라고 했습니다. 죽음에 예외가 없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죽은 후부터입니다.

고통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23절을 보면 "저가 음부에서 고통중에"라고 했고 24절 끝을 보면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사치스럽고 화려했던 삶은 끝났습니다. 드디어 음부의 고통과 고민이

시작된 것입니다. 유대이은 음부를 [스올]이라고 불렀습니다. 스올은 악인

이 들어가는 곳인데 신약에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가는 곳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잘 믿고 잘 살았기 때문에 지옥에 들어간 것이아니라 그

의 교만과 불신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안믿으면 지옥갑니다. 어제까지 떵떵거리고 세도부리고 잘 살던

사람의 신세가 변해서 불구덩이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됐다면 변해도너무 많

이 변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는 잠깐 잘 살다가 영원한 고통의 세계에서 들어가게 된 것입

니다.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마 10:28을 보면 "몸과 영혼이 함께 형벌받는 곳"

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불못,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못, 불과 유황이

타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누가 거기 들어갑니까?

마귀와 그 사자(마25:41),믿지 않는자 (계 21:8),우상숭배자(계21:8),범죄

한 천사(벧후 2:4),거짓선지자 (계 19:20)등이 들어갑니다.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첫째, 모든 욕구가 거절당하는 곳입니다.

본문을 보면 나사로를 보내 손끝에 물을 적셔 혀끝을 서늘하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거절당했습니다. 나사로를 고향에 보내 다섯형제에게

전도하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것도 거절당했습니다. 내 맘대로 안되

는 곳,인간적 욕망과 욕구가 거절당하는 곳입니다.

 

둘째, 단절의 세계입니다.

26절을 보면 건너갈 수도 올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한번가면 그것으로 끝

입니다. 되돌아올 수도 없고 기어서 나오는 방법도 없습니다. 편지를 주고

받을 수도 없고 친선방문을 할 수도 없습니다. 천주교 사람들처럼 돈많이

바치면 빠져나올 수 있다든지 기도를 많이하면 천당으로 올라가게 되는 것

도 아닙니다.

죽는 순간 다시말하면 영혼과 몸이 분리되는 순간 지옥과 천당으로 갈라집

니다. 그리고 그 시간부터 그 누구도 어떤 노력으로 내왕이 불가능한 것입

니다.

 

지옥설교는 부담스러운 설교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교인이 지옥가는 것

을 방치하지 않으려는 목사라면 지옥얘기를 안할 수가 없습니다.

 

셋째, 고통의 세계입니다.

23절을 보면 "고통 중에"라고 했고24절을 보면 "고민하나이다"라고 했고

25절을 보면 "고민을 받느니라"고 했고 28절을 보면 "이 고통받는 곳에"라

고 했습니니다. 모든 사람은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행복이란 편한 것, 고통

없는 것입니다. 행복찾기에 전력을 쏟는 사람들이 왜 지옥의 고통을 스스로

선택해야 합니까?

저는 본문을 읽으면서 그때마다 놀라는 사실이 있습니다.그것은 부자의 다

섯형제에 대한 관심 때문입니다.

 

본문 28절을 보면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이 고

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지옥의 고통을 견디다 못한 부자는 한방울의 물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습

니다. 그러자 그는 다시 다섯형제가 살고 있는 고향에 나사로를 보내 이 사

실을 알려주고 그들이 지옥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물론 그것

도 거절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형제의 영원한 고통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만이라도 지

옥에 오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여기서 우리와 그를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겐 형제가 없습니까? 오늘 죽으면 지옥갈 내 가족 내 친척 내 친구

내 이웃이 없습니까>

내 형제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옥간 부자만도 못하다면 그 사람을

어떻게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출애굽기 32:32에서 모세는 범죄한 동족의 죄를 용서해 주시든지 아니면

자기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주시든지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자신

의 생명을 내걸고 동족구원을 기도한 것입니다.

 

로마서 9:3을 보면 바울이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노라"고 했습니다. 내가족,내

친척,내 친구, 내 이웃을 향한 영적 관심이 지옥같 부자보다 나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에스겔서 33:6을 보면 파수군이 자기 책임을 다 못해 성이 점령당하고 그

성 사람들이 적의 칼에 죽게된다면 "그 죄를 파수군의 손에서 찾으리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만일 내가 예수 안믿으면 지옥가는 걸 알면서도

전도하지 않은 탓으로 내 부모, 내 형제, 내 친척, 내 이웃이 지옥을 가게

된다면 그들은 불신과 교만 때문에 지옥을 가게 되겠지만 그들이 지옥가게

된 그 책임은 전도하지않은 네게 물으리라는 것이빈다. 다시 말하면 그 피

값을 네게서 찾으리라는 것입니다.

 

8년전의 일이 생각납니다. 시내 모교회를 다니는 50대 후반의 여인이 저희

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등록교인이 아니기 땜분에 깊은 관심이나

돌봄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구역장을 통해 심방 요청이 있

어서 벼르다가 심방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정에도 문제가 있는 듯했고 가

족관계도 복잡한 것같았습니다. 그리고 본인의 정신건강도 정상이 아니었습

니다. 그에게 가정의 안정과 본인의 건강을 위해 신앙생활을 잘 하라는 권

면과 함께 기도를 드리고 그 집을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날

지방을 내려가는데 차중에서 갑자기 그 분 생각이 떠오르면서 궁금하고 급

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건강은 어떤지 요즈음은 어떻게 지내는지, 가정은

 

 

 

안정이 됐는지 전화라도 당장 걸어보고픈 마음은 들었지만 고속도로였기 때

문에 지방에 그대로 내려가 저녁모임을 마친 후 교회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여자가 고층아파트에

서 투신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때 그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립니다. 그리고 구원의 때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됩니다.

 

지금 이시간에도 지옥으로 굴러떨어져가고 있는 내 가족이 있습니다. 내

형제가 있습니다. 내 친척이 있습니다. 내 이웃이 있습니다. 참효도가 무엇

입니까? 그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그들을 내버려둘 생각입니까? 내 남편,

내 아내, 내 부모, 내 자녀, 내 형제,내 친족, 내 친구, 내 이웃이 지옥불

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방관만해야 합니까?

 

대상자를 찾아 정합시다.

기도를 시작합시다. 1,3,5, 기도를 시작합시다. 금식,철야,새벽연속,모든

기도를 총동원합시다. 모세처럼, 바울처럼, 내 생명과 맞바꾸는 기도를 합

시다.

대상은 가장 가까운데서 찾읍시다. 내 가족, 내 친족, 내 이웃,내 친구 중

에서 찾읍시다.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맙시다. 성령께서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저하지 맙시다. 주님께서 힘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염려하지맙시다. 주님께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심하지 맙시다. 성령께서 반드시 성취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6월 12일, 그날은 마귀가 통곡하고 귀신이 벌벌떠는 날이 될 것입니다.

주여 승리하게 하소서. 지옥 권세가 무너지게 하소서. 전도합시다. 하면

됩니다. 내가 합니다. 아멘.

 

 

발행일 : 940508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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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제 목 : 하나님이 주신 기업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시 127:3-5

 

 

시편 127편은 이스라엘의 3대왕이었던 솔로몬이 읊었던 시 가운데 하나입

니다. 시의 길이는 짧지만 담고 있는 뜻이 아름답기 때문에 널리 애송되고

있습니다.

 

본편은 둘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1-2절은 하나님을 외면했을 때 오는 불행

한 결과에 대하여 3-5절은 하나님게서 주시는 축복에 대하여 밝히고 있습니

다.

 

1-2절의 요지는 개인도, 가정도, 국가도 하나님이 세우시고 지켜주실 때

그 존재와 위상과 행복이 지켜진다는 것입니다.그리고 3-5절에서는 하나님

이 주시는 자녀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자녀란 내가 낳은 자식을 말합니다. 그러나 낳은 것만으로 자식이 되는 것

인 아닙니다. 올바른 양육이 자식을 자식되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자식을 세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7:6을 보면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

께서 지상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라고 했습니

다.

그리고 창세기 17:8을 보면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

셨습니다. 여호수아 11:23을 보면 훗날 가나안 땅을 점령한 아브라함의 후

손들이나 가나안 땅을 기업을 차지하게 됩니다.

구약의 경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하셨고 그

들에게 가나안땅을 기업을 주셨습니다.

신약의 경우를 보면 기업의 의미가 다분히 영적인 것으로 발전합니다.

 

마태복음 25:34을 보면 "창세로부터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했고 계시

록 21:7을 보면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두

구절의 뜻은 영원한 나라를 기업으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은 자식을 가리켜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땅이나 영원한 천국을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것처럼 자식은 하나

님이 주신 기업이라는 것입니다.

 

기업은 일회용품이 아닙니다. 자손만대 물려나가야 하는 유산이며 축복입

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민족은 아브라함이 받은 기업인 가나안 땅을 오늘

가지 지키고 유지하고 물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식의 경우도 가정과 가문을 이어나가야 하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

니다.

 

말씀드린대로 기업은 지키고 전승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화민족일수록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전승해 나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문화재를 대하는 국민정서에도 문제가 있고 문

화재를 관리하는 태도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문화지 밀반출사건이라든지 도굴이 그 한 예입니다.

그리고 불교사찰이나 불상등을 문화재라는 이유로 막대한 국고지원은 물론

신개축에도 국고가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위대한 문화유산이라고 하더라도 영원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없습니다.

 

영원한 기업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내가 지키고 아끼고 가꾸어야

할 기업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자녀입니다.

제아무리 잘 지은 집도 관리가 소홀하면 금방 낡고 냄새가 납니다. 얼마전

모 교회 기도원에서 집회가 있었습니다. 하룻밤 집회인도를 맡았기 때문에

거기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습니다. 그 기도원은 규모도 그려니와 시설도 최

신시설이었습니다. 건축한지 7년 정도된 건물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하

룻밤을 지내며 악취와 싸워야 했습니다. 화장실 냄새가 방 안에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골 여인숙 화장실 냄새와 같은 악취가 배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관리

소홀의 결과였습니다. 건축물의 경우만은 아닙니다.

자식이라는 기업도 관리를 잘못하면 쓰러지고 벽에 무너지고 망가지고 냄

새나게 됩니다.

충청북도 어느 시골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벽에 걸린 족자에 눈이 쏠렸습니

다. 서툰 붓글씨로 쓴 족자 속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새겨져 있었습

니다.

"꾸지람 속에 자란 아이 비난하는 것 배우며

미움받으며 자란 아이 싸움질만 하게 되고

놀림당하며 자란 아이 수줍음만 타게 된다.

관용속에 자란 아이 참을성을 알게 되며.

격려받으며 자란 아이 자신감을 갖게 되며

칭찬받으며 자란 아이 감사할 줄 알게 된다.

공정한 대접 속에 자란 아이를 올바름을 배우게 되며,

안정 속에 자란 아이 믿음을 갖게 되며

두둔받으며 자란 아이 자신의 긍지를 느끼며

인정과 우정 속에 자란 아이 온 세상에 사랑이 충만함을 알게된다."

어떤 어머니가 교육학자에게 물었습니다.

[자녀 교육은 언제부터 시작해야 합니까?]

[지금 댁의 자녀는 몇살이나 됐습니까?]

[다섯살입니다.]

[서두르십시오. 5년이나 늦었습니다.]

자식은 내가 낳긴 했습니다만 하나님이 주신 기업입니다. 그러니까 자식은

하나님의 기업으로 믿고, 키우고,지키고, 관리해야 합니다.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습니다. 회원은 1천명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만든 좋은 아버지 20계명을 소개합니다.

(1) 공부하라는 말을 줄이고 먼저 독서하는 모습을 보여주라.

(2) 식사시간에는 가족과 대화를 많이 하라.

(3) 자녀가 스스로 판단한 일은 존중하라.

(4) 한번 한 약속은 꼭 지켜라.

(5) 아무리 화가나도 자녀를 직접 손으로 때리지 말라. 꼭 필요할때는 벌

을 서게 하거나 회초리를 쓰라.

(6) 똑같은 일로 두번 야단치지 말라.

(7) 함께 여행하는 등 자녀와 공동의 경험을 쌓아라.

(8) 자녀가 좋아하는 책이나 어린이 프로를 같이보라.

(8) 힘든 일이라고 자녀를 참여시켜 협동심을 길러라.

(9) 자녀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지말라.

(10) 똑같은 일을 두번 야단치지 말라

(11) 자녀 앞에서 신호를 어기거나,새치기,거짓말을 하지말라.

(12) 자녀와 함께 문구점과 서점에 자주가라.

(13) 가훈을 정하거나 가족놀이를 만드는 우리집만의 분위기를 만들라.

(14) 휴일은 박물관 견학,가재도구 손질,독서등으로 다양하게 보내라.

(15) 아무리 작은 물건이라도 가정의 역사가 얽힌 것을 소중히 다루라.

(16) 자녀 앞에서는 다른 사람에 대해 좋은 점만 이야기하라.

(17) 다 쓴 물건은 바꿔쓰고 안쓰는 물건은 재활용하는 본을 보이라.

(18) 자녀가 자신의 의견을 스스럼없이 조리있게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

등 입니다.

 

요약되는 기둥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가 먼저 본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

다.

어떤 사업가가 대학 총장을 찾아가 그 대학애 입학한 자기 아들에 관해 부

탁을 했습니다.

[총장님 저는 19년동안 제 아들을 키웠습니다만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

습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잘못됐는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부디 총장님께

서 잘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총장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당신이 19년동안 이해하지 못하고 바로잡지 못한 아들을 제가

4년 동안에 이해하고 바로 잡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기도로 키웁시다. 말

씀으로 키웁시다. 믿음으로 키웁시다. 진학보다,성공보다,성적보다 더 중요

한 것은 건강입니다. 그리고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지금 자

녀의 믿음이 어느 지점에 이르렀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2.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17:16을 보면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하

리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고 열국의 어머니가 되리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

이라는 것입니다.

런던에 있는 국립미술관에 들어가면 "코르넬리아와 보석"이라는 제목이 붙

은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그림은 두 여인이 대화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

입니다. 한 여인이 코르넬리아에게 자신의 진주목걸이를 보여 주면서 당신

의 보석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코르넬리아는 자신의 품에 안고 있

는 두 아들을 바라보며 이 아이들이 나의 보석이라고 대답했다는 내용의 그

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귀한 상급으로 자식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상

급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갈무리 하지 못한다면 그 상은 때로 욕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성경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벤자민 스포크박사의 [육아법]이라고

말합니다. 전세계의 어머니들과 정신과 의사들과 소아과 의사,교사,심리학

자들이 그 책을 읽었습니다.

스포크는 말했습니다. "아직도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를 다루고 가르치는

확실한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정신과의사,심리학자,교사,사회운동가,

소아과 의사들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잘못이다. 부모들이 물

려받은 유산은 오늘날에도 타당하며 놀라운 결과를 낳을만한 생산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

금메달리니스트는 그 메달을 다른 사람의 목에 걸어주지 않습니다.

자기 목에 걸고 자기가 보관합니다.

흔히 자녀교육을 부모는 포기해 버린 채 특정한 기관에 맡기면 되는 것으

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교육의 경우도 부모가 올바로 신앙생활을 해야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최대한 교육시걸과 재원을 투자해야 합니다.

만일 자녀가 잘못되고 그 삶이 망가졌다면 그것은 일차적인 원인과 책임이

부모와 가정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상급을 더 빛나게

해야 합니다.

 

3. 젊은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같다고 했습니다.

젊은시절에 낳은 자녀는 그 부모가 노쇠했을 때 그 부모를 보호하고 그 영

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입니다.

 

옛날 전쟁은 창이나 활이 주무기였습니다. 그런데 장군의 전통에 화살이

떨어졌다면 그 장군은 전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시인은 자식을 전통에 가

득 꽂혀있는 화살로 비유했습니다. 그만큼 든든하고 영광스러운 것이 자식

이라는 것입니다.

 

자식을 둔 부모는 언제나 두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는 지식 때문에 영광받게 될 가능성이고 다른 하나는 자식 때문에 얼굴

을 들지 못하지도 모르는 불행한 가능성입니다.

열왕기상 15:26을 보면 나답이라는 왕에 대한 평가가 나옵니다.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아비의 길로 행하며"라고 했습니

다.

나답 왕은 아버지처럼 못된 왕, 나쁜 왕이된 것입니다.

 

영국의 설교가였던 스펄젼(Spurgeon)목사는 "우리 교회에는 2700명의 교인

이 있다. 그들 중에는 때때로 제명해야 할 사람이 있는데 그 중에 어려서부

터 믿음생활을 한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페르시아 격언중에 "만일 당신이 거룩한 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당신의 자

녀들을 올바르게 가르치라 이유는 그들이 행한 모든 선행의 공로는 결국 당

신에게 돌려질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녀가 부모의 영광이 되고 자랑이 되려면 부모가 그 자녀에게 신앙의 영

향과 유산을 물려 주어야 합니다. 주의 자녀를 주의 말씀으로 키워야 합니

다. 내가 물려준 신앙의 유산만큼 자식은 나에게 영광이 되고 보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기업이며 상급이며 화살같은 자녀들을 정성과 기

도와 말씀과 믿음으로 키웁시다.

 

발행일 : 940501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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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제 목 : 실패에서 성공으로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요 21:1-6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사건 가운데 하나입

니다. 베드로를 포함한 몇몇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갈릴리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고 있었고 그곳에 다시 사신 주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제자라도 실패할 수 있다는 것과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다

시 성공할 수 있다는 두가지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가지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1. 실패원인

 

조건없는 실패는 없는 이유없는 고난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원인없는 실

패는 있을 수 없습니다.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지 못한 이유

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실패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입니다.

 

1) 과거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본래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의 대부분은 갈릴리 바다에서 고리잡던 어부

들이었습니다. 그들을 주님은 사람낚는 어부가 되라고 부르셨고 3년동안 훈

련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신 다음 삼일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예고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가 처형당하자 급히 예루살렘을 떠나 주셨

습니다. 돌아간 것입니다.

 

3절을 보면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고 베드로가 말했을 때 다른 제자

들도 따라 나섰다고 했습니다. 이미 3년전 떠났던 곳으로 그들은 되돌아간

것입니다.

 

문제는 베드로였습니다. 그는 경륜이나 연배에 있어서 그리고 예수님의 사

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점에 있어서 수장이었습니다. 만일 그때 그가 "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러 간다"고 나섰더라면 다른 제자들도 따라 나섰을 것

입니다. 그런데 그가 앞장서서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간다"면서 나서는 바람

에 다른 제자들도 따라 나서게 된 것입니다.

 

주경학자들 가운데는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로 고기 잡으러 간다고한 것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셨기 때문에 갈릴리로 다른 제자들은

데리고 가기위한 방편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맥

락은 허탈감과 실망감 때문에 십자가의 도시 예루살렘을 떠나 고향마을 갈

릴리로 되돌아 간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과거로 돌아간 것입니다.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던 젊은이가 은혜를 받고 주의 종이 되

기로 결심한 후 신학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3년동안 신학을 공부한 후 경

기도 시골마을의 전도사로 부임을 했습니다. 60년대 중반이었으니까 전도사

대우라는게 형편없었던 때였습니다. 회사에서 받던 월급의 7분의 1도 되지

않는데다가 전도사를 괴롭히는 몇 사람이 사사건건 문제를 삼고 나섰습니

다. 마침 그 무렵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사람이 필요하다며 승진발령을 내

줄테니 다시 나오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는 주저치 않고 짐을 경기도 시

골교회를 떠나 회사로 복귀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지금 친구들이 도와줘야

먹고 사는 신사게 되고 말았습니다.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밑바닥 인생을 살고있는 것입니다.

죄짓고 살던 과거로 돌아가는 사람은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

 

 

 

허영에 들더 살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결국 허영에 들뜨고 말 것입

니다. 불행했던 과거만을 곱씹는 사람은 행복해질 겨를이 없게될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미래적이며 영원적이며 전진적입니다.

[앞으로 앞으로]의 종교이지 [뒤로 돌아가]의 종교가 아닙니다. 성찬식에

서 참석하고난 어떤 남자교인의 농담이 생각납니다. 예수 믿고난 후에도 상

당기간 동안 끊지 못했던 술 담배를 세례받고난 후 끊었다는 것입니다. 그

리고 처음 성찬식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포도주 한모금을 마시는 순간 옛

날 생각이 불쑥 나더라는 것입니다.크리스탈잔에 부어마시던 포도주 생각이

나서 그 생각을 지우느라 혼이 났다는 얘기였습니다.

물론 이것은 초신자의 농담이긴 합니다만 성찬식 포도주를 마시면서 옛날

에 놀던 술집이나 그 술맛이 생각난다면 안될 일입니다.주님의 십자가를 생

각하고 그 피의 공로로 죄사함 받아 들어가게 될 영원한 천국을 생각해야합

니다.

베드로의 실패는 옛동네, 지난 과거로 회귀했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두려

워할 필요도 없고 그리워할 필요도없습니다. 오늘이 중요하고 내일이 더 중

요하기 때문입니다.

 

2) 작당했기 때문입니다.

3절을 보면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해도 저희가 우리

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라고 했습니다. 그날 배타고 함

께 나선 사람들의 명단이 2절에 나옵니다. 시몬 베드로,도마,나다나엘,야고

보,요한,그리고 다른 제자 둘입니다. 그러니까 11제자 중에 일곱 명이 작당

하여 고기잡으러 떠난 것입니다.

사회학자들은 군중심리의 위험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군

종은 빵과 서커스만 있으면 움직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사를 들여다보면 여야 할 것 없이 선동정치에 능숙합니

다. 그리고 저마다 국민을 내세우고 애국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따져보면

당리당략을 위한 선동과 흑색선전과 모략중상으로 얼룩져 있을 뿐입니다.

 

베드로의 말 한마디에 6명이 줄에 묶인 것처럼 따라 나섰다면 그 당시 그

들의 정신상태가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 누구와 작당하느냐,누구와 친하느냐,누구와 자주만나

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과 신앙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영국의 명문 케임브리지대학의 근대사 교수였던 킹슬리(kINGSLEY

1819-1875)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해서 그토록 아름

다운 인생을 살 수가 있었으며 명문대학의 교수가 될 수 있었느냐"고 그의

애답은 "나에게는 한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말

한 그 친구는 곧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내 신앙과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과 작당하기를 즐기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과 작당하기를 즐기면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색잡기에

열을 올리는 사람을 자주 만난다면 석달을 못넘기고 타락하고 말 것입니다.

짝을 잘 만나야 합니다.

 

3) 불신 때문입니다.

4절을 보면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줄 알지 못하는

지라"라고 했습니다. 고기잡는데 정신팔린 사람 눈에 예수가 보였을리 없습

니다. 사람도 물고기로 보였을 것입니다.

돈에 미치면 자나깨나 돈만 생각합니다. 여자에 미치고 남자에 미치면 자

나깨나 사람만 생각할 것입니다. 도박에 미치면 도박만 생각하고 권력에 미

치면 사람을 죽이고서라도 권력찬탈에 혼신을 기울입니다.

 

불신으로 눈이 가리워진 그들에게 예수가 보일리 없습니다. 믿음이 떨어지

 

 

 

면 실패,슬픔 야속한 것, 억울한 것, 원망스러운 것, 죽은 것들만 보입니

다.

 

그러나 믿음을 회복하면 갈릴리 바닷가에 웃음띤 채 서 계시는 예수가 보

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회복이 필요하고 부활신앙의 회복이 필요한

것입니다.

 

2. 성공원인

 

6절 끝을 보면 아무것도 잡지 못했던 그들이 그물을 들 수 없을 만큼 많은

고기를 잡았다고 했습니다. 실패가 성공으로,빈손이 차고 넘치는 축복으로

변한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보십시다.

 

1) 대답했기 때문입니다.

5절을 보면 갈릴리 바다에 찾아오신 주님께서 "애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

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제자들이 "없나이다"라고 대답한 장면이 나옵니다.

우린 여기서 실패자와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시는 예수님 사이의 진솔한 대

화를 보게 됩니다. "있느냐""없나이다"

제자란 부르심에 응답하고 물으심에 대답하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도 대답의 사람,응답의 사람이었습니다.

출석을 부를 때 대답을 안하면 결석이 됩니다. 그리고 법정일수를 채우지

못하면 지금도 졸업도 못합니다.

대답이 시원찮거나 회피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신임받기가 어렵습니다. 왜

부르시든지 빨리 대답하고 그 앞에 대령해야합니다.

상전이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라고 부르면 대기하고 있던 집사나 하인

은 재빨리 "예, 밖에 대령중이옵니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그때 자리를

비우면 벼락이 떨어집니다. 그때 거기 있어야 합니다. 주일낮 주일밤 수요

일밤 금요일밤 그때 거기 있어야 합니다.

 

2)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6절을 보면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하셨고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고 했습니다. 어부는 그물을

던질 때 배 오른편과 왼편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던집니다. 그리고 배 앞부

분이나 뒷부분에도 그물을 던집니다. 그러나 그들은 잡지 못했습니다.

 

'배 오른편에 던져라' 이 명령은 이미 수십번 되풀이해서 던졌던 실패의

경험을 다시 해보라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대로 순종했을 때 성공

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 비슷한 장면이 누가복음 5장에도 나옵니다.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밤새도록 헛수고의 연속뿐이었습니다. 그

때 그곳을 찾아오신 주님께서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르리 잡으라

"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라며 순종

했을 때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고기르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은 3

년전 부름받을 때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결정한 오른편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결정한 오른편은

성공이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결론은 분명해졌습니다. 실패를 극복하고 성공에로 가는 길은 예수 그리스

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명령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부가 고기를 잡지 못했다면,

사업가가 사업에 실패한다면,

장사꾼이 돈을 못번다면,

교육자가 교육에 실패한다면,그것은 큰 문제이며 사건입니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우리는 실패의 연속으로 절망하고 좌절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허탈감에 빠졌던 갈릴리 어부들이 성공한 비결은 간단했습니다.

바닷가에 찾아오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다시 사신 예수,살아서 찾아오신 예수, 살아계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실패로부터 해방되고 성공의 깃발을 꼿는 비결입니다.

나를 믿고 경험을 믿고 배경을 믿다가 실패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철석같이 믿었던 조건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깨어지는 바람에 주저앉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길이 있고 방법이 있습니다. 실패와 허탈과 절망의 바닷가에 찾아

오신 예수를 만나면 됩니다.

 

그리고 그분이 뭐라고 말씀하시는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내 경험과 내 생각과 내 상식에 안맞더라도 즉시 지금 순종하십시

오. 즉 예수 방법대로 다시 시작하십시오. 반드시 고기를 잡는 성공이 올

것입니다. 그날 아침 디베랴 바닷가가 예수님을 모신 축제의 자리가 됐던

것처럼 우리네 실패와 고통의 자리도 축제와 성공의 잔치자리가 될 것입니

다. 예수님이 계시면 말입니다.

 

발행일 : 940424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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