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트敎義學槪要
(2009.9.10.목 김경주)
제2장 신앙은 신뢰이다
사도신조가 시작하는 “내가 믿습니다”(Credo)를 통해 우리는 신앙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또한 그리스도 신앙과 교회의 선교가 문제로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믿고 어떻게 믿는가와 맞물린다. 이는 신앙의 주체적 형식과 근원에 대한에 관한 질문이다(23쪽).
특별히 기독교의 선교에서 문제되는 것은 본원적인 그리스도인이 믿는 대상(무엇), 곧 신앙의 내용과 대상으로 입증되는 것, 즉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대상(삼위일체 하나님)이다(24쪽).
그리스도교 신앙에서는 한 만남이 문제가 되는데, 즉 “크레도”라고 고백할 때의 대상이 그 대상이 되는 그“을”을 설명하고 그것에 의하여 우리의 주체적 신앙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며,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은 사도신조는 “크레도” 하는 것 외에 신앙의 주체적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24쪽). 따라서 “내가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한 인간의 현존 형태인 것이다(25쪽).
그러나 이 “내가 믿습니다”는 것은 한 인격과의 만남에서 기인하는데, 그 분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다. 내가 믿는다는 것은 내가 믿는 신앙의 대상과의 만남, 즉 그 대상으로 채워지고 규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관심하고 있는 것은 바로 내가 믿는 대상이다(25쪽). 따라서 믿고 있는 나는 절대로 홀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와 같이 하나님과의 만남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말씀하신 은총의 말씀과의 만남이기도 하다(25쪽). 특별히 “내가 너희에게 은혜롭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시고, 이는 그리스도교 사상의 중심개념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은총이 말씀이며 또한 “우리가 만나는 하나님의 은총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사람의 아들이신, 참 하나님, 참 인간이신 분이고, 임마누엘, 이곳에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시기에,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와의 곧 그에게 있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과의 만남”이 된다(26쪽).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과 같다(26-27쪽).
이 만남은 선물, 즉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데서 자유롭게 되는 선물이다. 신조가 말하는 이 만남(곧 선물)은 우리에게 어떤 가능성이 외부로부터 와서 우리로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신 것이다(27쪽). 이런 맥락에서 “신앙은 신뢰”가 된다. 즉, “신뢰는 그것으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진실을 믿는 행위이며, 그의 말이나 그가 하는 것이 반드시 요청되어 있다고 믿는 행위”가 되는 것이며, 내가 믿는다는 것은 바로 내가 신뢰하는 것이 된다(29쪽). 특별히 하나님에게만 진실이 있고, 신앙은 진실이신 하나님을 그의 약속과 지시를 따르며 의지하는 신뢰(의 관계)이기게, 우리는 우리의 신뢰에 합당한 것을 신뢰하는 데에서 자유로워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이러한 신뢰의 관계적 확신에서 사는 것이다(29-30쪽).
신앙에는 최후적 관계를 의미하는 단 한 번의 결단이 문제가 되는데, 이는 신앙은 곧 하나님과의 문제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단 한 번 결정적으로 행해 놓은 것이 문제이다(32쪽).
게다가 하나님만이 질실된 유일하신 분이기에, 우리는 배타적으로 그분을 의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32쪽). 신앙은 은혜만으로, 신앙만으로, 이러한 하나님 만을 신뢰할 자유이며, 이것은 하나님의 모든 부(富)가 우리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33쪽).
그리고 우리는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한다. 신앙(의 영역)은 실 생활이 그 전체성에서 문제가 된다. 따라서 하나님을 자신을 맡기는 일이 중요하며, 이같이 포괄적으로 이해되는 신뢰를 바치는 자유가 곧 신앙이다(33쪽).
2장 “신앙은 신뢰이다”를 읽으면서, 순간 얻게 되는 통찰은 본회퍼 목사님의 ‘나를 따르라’에서 강조하는 철저한 제자도였다. 이는 ‘신앙=신뢰’=신뢰’‘신뢰=Lordship(제자도)’라고 한다면뢰’‘신앙=제자도’라고 생각한다.
또한 “신앙은 신뢰이다”라는 주제는 성서 전체의 맥락에서 아주 정확한 언급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신앙이라는 주어에 대해 신뢰라는 개념으로 서술했을 때의 ‘신뢰’는 결코 헬라철학적인 의미에서의 정적으로서가 아니라, 철저하게 관계적 사태(시내산계약의 연속선상에서의)로서 파악하는 것이 히브리적 사유방식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관계적 사태의 신약에서의 현현양태가 바로 성령 하나님을 통한 신뢰적 관계의 집합으로서의 교회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208쪽을 보면, 교회를 “성도의 사귐”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2장에서 강조하는 대로, 신앙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교회 공동체 내에서 성령을 통한 신앙인 서로 서로 간에 이루어져야할 성령과 말씀의 관계로서의 신뢰(적 공동체)이다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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