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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증거의 삶(히 12:1-3 ) / 이수영 목사

by 【고동엽】 2021. 12. 10.

<위대한 증거의 삶> 히12:1-3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있는 11장 1절에는 믿음에 대한 유명한 언급이 있습니다. 즉,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을 두 가지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말이 뜻하는 것은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틀림없이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한 것입니다. 이 말이 가리키는 것은 "믿음은 우리의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현실에 대한 확신"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정의들은 우리 기독교신앙의 내용을 완벽하게 포괄하는 정의들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단히 의미있는 정의들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믿음의 정의가 한가하게 추상적으로 믿음을 논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불확실성과 박해 앞에서 배교의 위험에 처한 신자들을 격려하며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긴박한 목회적 권면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이 바라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그의 나라와 거기서 여러분에게 약속되고 예비된 상이 지금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는다고 여러분의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됩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의 의미인 것입니다. 이 11장 1절의 말씀은 그 바로 앞에 있는 10장 35-39절의 말씀에 이어지는 말씀으로서 이해해야 합니다. 거기에 뭐라고 했습니까?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여기서 우리는 배교에 대한 강력한 경고가 주어지고 있음을 봅니다. 35절에서 말합니다: "담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큰 상을 받습니다". 36절에서도 또 말합니다: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약속하신 것을 받습니다". 이어서 37에서는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했는데, 이것은 "조금만 참으면 됩니다, 잠깐을 견디지 못해서 뒤로 물러서면, 즉 배교하면, 안됩니다"라는 안타깝고 간절한 권면입니다. 그리고 38에서는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선지자 하박국의 말을 인용해서 경고합니다. 그리고 39절에서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배교하면 멸망하며, 믿음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는 분명한 경고입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11장 1절은 그러므로 "믿음이란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히11:2에서는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 말의 뜻은 "구약성경의 여러 남녀인물들이 바로 그러한 믿음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의 칭찬을 받았고 후손들을 위한 본보기로서 영원히 기록에 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3절에서 말하기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 했습니다. 즉,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고 우리가 알고 있지만 그게 어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시는 것을 누가 보았습니까? 안 보고도 믿음으로 그렇게 알고 있는 것 아닙니까?"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4절 이하에서는 후손들에게 그런 믿음으로 본보기가 된 인물들의 예를 아벨에서부터 시작해서 구약 이후 신약 이전의 중간시대에서까지 열거하고 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준비한 것도 온 세상을 집어삼킬 홍수의 징조를 눈으로 보고 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믿고 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기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날 때 그 땅을 미리 보고 정말 복 받을 땅인지 확인하고 떠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말씀하셨기 때문에 무조건 믿고 순종하였다는 것입니다. 35절 이하에서는 주로 극심한 고문과 온갖 시련과 학대를 받고 심지어는 순교를 하면서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며 믿음을 지키고 승리한 사람들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이 10장과 11장의 말씀과의 연결 속에서 이제 오늘의 본문을 보아야 합니다. 우선 1절에서는 앞서 11장에서 열거한 그 수많은 앞서 간 신앙의 위인들처럼 우리도 우리 앞에 놓인 믿음의 길을 달려가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라" 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경주는 상을 받으면 좋고 못 받아도 상관없는, 밑져야 본전인, 그런 경주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 달리면 안 되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경주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달음질을 잘 하기 위해서 모든 무거운 것을 벗어던져야 합니다. 경주자가 잘 달리는 데에 방해가 되는 무거운 것들이 무엇이겠습니까? 군살이나 거추장스러운 옷 같은 것들입니다. 달리기선수가 군살이 많이 쪄가지고는 잘 달릴 수 없습니다. 또 경주복은 최대한 가볍고 간단한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의 달음질을 바로 하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우리 몸을 무겁게 하고 이렇게 저렇게 얽어매서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모든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욕심, 염려, 두려움, 나태, 미련, 애착 등을 떨쳐버려야 합니다. 그런 것을 떨쳐버리지 못하면 믿음의 길을 온전히 달리지 못하고 결국은 배교까지 하게 됩니다.






본문 2-3절에서는 우리가 우리 앞에 놓인 믿음의 길을 잘 달려가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한 것입니다. 앞서 믿음으로 승리한 수많은 선진들의 예가 있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우리의 믿음에 힘이 되는 최상의 실례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을 바라보거나 그 어떤 믿음의 용사들을 바라보는 것도 다 도움이 되겠지만 궁극적으로 우리의 위로자요 보증인이 되실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십자가를 견디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그를 바라봄으로써 피곤함과 낙심됨을 이기고 믿음의 길을 끝까지 달려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정말 크고 놀라운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실 뿐 아니라 우리의 가장 크고 완전한 믿음의 본이시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외에 수많은 보조적인 믿음의 본들을 허락하셨습니다. 아브라함, 노아, 모세, 다윗, 사무엘 등 위대한 믿음의 증거자들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너무나 고마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종종 이들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믿음의 성장과 견인을 위해 필요하고 유익한 일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우리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바라봐야 할 위대한 믿음의 증인들이 또 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나 손양원 목사님 같으신 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이 땅에 허락하신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일본제국의 침략과 강탈과 압제와 박해 하에서 일제가 강요한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끝까지 거부하시며 순교하셨습니다. 그의 순교는 기독교역사 전체 속에서도 빛나는 위대한 믿음의 승리입니다. 오늘이 한국민의 출애굽이라 할 수 있는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하는 주일이지만 이 광복이 그저 주어진 것 아닙니다. 이 광복이 있기까지는 주기철 목사님을 비롯한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흘렀던 것입니다. 히11:35-38에도 믿음의 용사들이 그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당한 온갖 시련과 고초가 예시되었지만 주기철 목사님은 그 이상의 온갖 비인간적이고 참혹한 고문을 일본경찰로부터 다 당하셨습니다. 일본의 왕과 일본인들이 섬기는 귀신들에게 절하기를 거부한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온갖 모진 고문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전기고문, 몽둥이로 무차별 패기, 거꾸로 매달은 채 코에 고춧가루 물을 계속 들어붓기는 보통이었고, 생손톱 밑을 가느다란 대나무 바늘로 쑤시는가 하면 아예 손가락에서 손톱을 생채로 다 뽑고 그 자리를 대나무 바늘로 찌르곤 했습니다. 일본경찰이 전매특허격으로 행한 가장 악랄한 고문은 생식기고문이었습니다. 이들은 한국의 대표적인 목회자요 신학자였던 주기철 목사님을 붙들어 눕혀놓고 알콜 심지를 생식기의 요도에 난폭하게 쑤셔넣곤 했습니다. 이 고문은 겉으로는 표시가 나지 않는 고문이지만 그 통증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문이었다고 합니다. 생살을 도려내는 듯한 이 고문을 받고 나면 피가 철철 나고 소변을 볼 수가 없었으며 소변을 봐야할 때마다 온 방을 헤매며 변소통을 잡고 우셨다고 합니다. 한 번 이 고문을 받고 나면 그 심한 통증이 한 달씩이나 갔다곤 합니다. 물론 일본인들은 오늘날 이 사실도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기철 목사님은 이 치명적인 고문에서 오는 고통을 잊기 위해 찬송가를 부르며 그의 온 정신을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예수님께서 당하셨을 그 쓰라린 고통에 집중시킴으로써 자신의 고통을 분산시키곤 하셨답니다. 그 때 자주 부르신 찬송이 197장 찬송이었습니다: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늘 기도 힘쓰면 큰 권능 얻겠네. 주의 은혜로 대속하여서 피와 같이 붉은 죄 눈 같이 희겠네". 주목사님은 오늘 본문말씀대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이 세상과 악한 세력의 온갖 회유와 위협과 고문에도 불구하고 뒤로 물러서지 않고 믿음의 길을 달려가셨으며 주님 앞에서 의의 면류관을 쓰시고 오늘 우리에게까지 믿음의 위대한 증거자가 되고 계십니다.






우리 새문안교회 역사에도 매우 위험한 시기에 위대한 믿음의 용기를 보여주신 분이 계십니다. 제3대 위임목사셨던 김영주 목사님은 공산군 점령시에 본교회를 끝까지 지키셨고 공산군들이 들이닥쳤을 때 본교회 목사임을 당당히 밝히시고 납치되신 후에 지금까지 우리가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셨습니다. 우리 당회에서는 김영주 목사님이 순교자로 공식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한 바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학문적으로 검증할 길이 없어서 공식적인 순교자 선포에까지 이르지는 못하고 있지만, 우리 교회로서는 김목사님께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시고 목회자로서의 도리를 다하셨음을 믿어야 한다고 뜻을 모았고, 이에 그의 신앙인으로서의 절개와 목회자로서의 충성을 기리며 우리 교회의 이 귀한 신앙적 유산을 오늘날 이 교회의 후손들에게 알림으로써 교훈을 삼고 긍지를 세우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서 다음 주일인 8월 19일 오후5시에 우리 교회에서 추모예식을 거행하기로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허다한 믿음의 증인들을 주신 것은 우리만 그들을 통해서 용기를 얻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아 믿음을 잘 지키라고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 또한 우리의 믿음이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 우리의 후손들에게 위대한 믿음의 증거가 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언제나 그 은혜의 증거자들이 되며 그 은혜를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도 그랬지만 한국교회도 순교의 피 위에 세워지고 성장한 교회입니다. 이제 우리 또한 순교도 두려워하지 않을 담대한 믿음을 증거하도록 요청받고 있는 것입니다. 위대한 믿음의 증거의 빚을 진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이 그 위대한 증거의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르심을 외면하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쁨과 감사함으로 이 부르심에 응답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지금은 어려운 때입니다. 옛날같이 순교를 당해야 하는 그런 의미에서 어려운 것은 아니나, 오늘날은 오늘날대로 믿음을 바로 지키며 살기가 힘든 때입니다. 바른 믿음은 인내와 충성을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눅21:19에서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말씀하셨으며, 계2:10에서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했습니다. 인내와 충성으로 우리 각자 앞에 놓인 믿음의 길을 열심히 달려갑시다. 그리하여 오늘과 내일을 위한 위대한 믿음의 증거자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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