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백성> 시33:8-12
새문안교회 주일예배
설교 이수영 목사
대한민국의 온 국민은 얼마 전 행복하기 그지없는 한 달을 살았습니다. 한·일 월드컵 축구열기로 뜨거웠던 지난 6월 한 달 동안의 그 흥분과 감격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 벅차 오릅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다음 해인 1954년 처음으로 출전한 이래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해 1승의 한이 맺혀있던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이 21세기 들어 첫 월드컵 대회인 이번 한·일 월드컵 대회에서 동유럽의 강호 폴란드를 맞아 산뜻하게 2:0으로 첫 승리를 거두었을 때 그 믿어지지 않던 현실 앞에서 우리가 맛보았던 놀라움과 감격은 아직도 우리의 뇌리에 생생합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의 놀라움과 감격의 행진은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주최국의 체면과 홈 그라운드의 이점을 생각하며 1승 다음으로 욕심을 내보았던, 그 한없이 높아보이기만 하던 16강 진출의 벽을 훌쩍 뛰어넘었을 때는 정말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세계 5위라는 포르투갈의 그 날카롭고 줄기찬 공격을 완벽하게 봉쇄하며 무력화시켰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세계 최고 공격수의 한 사람이고 대회 시작 전부터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이던 선수 피구(Figo)를 도무지 무엇 하러 그라운드에 나왔는지, 나와서 뭘 하고 들어갔는지 모르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번 대회에서 가장 멋진 골이라고까지 평가될 정도로 시원한 한 골을 넣으며 비현실적인 승리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놓았습니다.
우리는 그 16강 진출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너무 행복했습니다. 16강전에서는 이번 대회의 강력한 우승후보의 하나였고 항상 세계최강의 하나로 꼽혀온 이딸리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우리 선수들은 대포르투갈전에서 너무 많은 체력을 소모한 터였기에 이딸리아를 이긴다는 것은 사실상 기대하기 힘든 일이었고, 더 못 올라가도 한은 없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거칠고 교활한 플레이로 우리를 압도하던 이딸리아에게 선취골을 내주고 패색이 짙어가던 경기종료 2분전 우리는 기적같은 동점골을 넣었고 연장전으로 끌고 가 통쾌한 역전골을 터뜨리며 아주리군단을 격파하고 말았습니다. 한국의 8강 진출이라는 대이변이 연출되는 순간 온 국민은 너나할 것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껑충껑충 뛰었고 눈물을 흘리며 미친 듯이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승리의 맛을 본 한국의 꿈은 이미 억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4강 문턱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나라가 또 하나의 우승후보였고 축구강국 정도가 아니라 축구광국이라고 할 수 있는 스페인인데도 더 이상 도무지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이딸리아와의 경기에서 연장전까지 가며 혈투를 벌이느라 선수들은 거의 다 탈진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한국선수들을 겁먹게 할 나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태극전사들은 연장전후반을 합쳐 120분간의 대회전을 치룬 후 승부차기에 들어가 다섯 꼴을 한 골도 실축하지 않고 깨끗하게 성공시키며 무적함대라 불리우는 스페인을 격침시키고야 말았습니다. 무적함대의 격침, 이것은 곧 대이변을 넘어서 하나의 신화가 창조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시아국가가 최초로 세계축구4강의 대열에 합류한 신화입니다. 그것도 출전사상 첫 승을 거두는 그 대회에서 곧바로 4강에 합류했다는 신화입니다. 전세계는 우리나라의 4강진출을 월드컵 축구경기의 역사를 통틀어 최대의 이변이라며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준결승전에서 우리와 격돌한 나라, 월드컵 우승을 세 차례나 거머쥐었던 전차군단 독일이 우리 태극전사들에 맞서 얼마나 긴장하고 죽을 힘을 다해 뛰었습니까? 우리는 정말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대해 얼마나 자부심을 느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온 국민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한 것은 단지 축구경기에서 4강에 올랐다는 사실만이 아니었습니다. 광화문과 시청 앞 등 전국에서 군중이 운집하여 함께 대형 화면으로 경기를 보며 응원할 수 있는 곳에는 어디서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하나가 되는 놀라운 광경을 목도한 것입니다. 57년 전인 1945년 8월 15일 일본제국의 무조건 항복과 함께 대한민국의 주권회복이 이루어진 소식에 온 국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이래 이렇게 하나가 되어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개인주의이고 단결력이 부족하다는 우리의 국민성에 대한 종래의 평가와 우려를 우리의 기억에서 깨끗이 지워버리며 세계의 여러 나라가 한국에 대해 두려운 생각을 가질 정도의 무서운 단결력을 만천하에 과시했던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한 것은 단지 많이 모여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만이 아니었습니다. 세계가 더욱 놀란 것은 경기가 끝난 후의 보여준 질서의식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이 미리 비닐봉지와 청소도구들을 준비했다가 모였던 자리에 남겨진 쓰레기들을 깨끗이 치우곤 하는 광경에 세계의 언론을 경의를 표했고 우리 스스로도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이토록 자랑스럽고 믿음직해 보였던 때가 없었습니다. 그저 정치인들만 빼놓고는 온 국민이 다 자랑스러웠습니다. 그저 정치인들만 정신차려주면 이제 우리나라는 정말 세계가 부러워할 좋은 나라가 될 것 같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방약무도한 일제가 동원하여 왕궁에 난입시킨 칼잡이들에 의해 왕비가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하는 등 온갖 수모를 당한 끝에 나라를 빼앗기고 35년간 일제의 억압 아래 온 나라와 온 국민이 온갖 약탈을 당했던 우리입니다. 광복 후 5년만에 전쟁이 발발하여 3년간 전국이 잿더미가 되었던 이 나라입니다. 이 나라가 반세기도 채 안 되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울 뿐 아니라 최첨단의 시설을 완벽하게 갖춘 축구경기장들과, 친절한 미소와 흠잡을 데 없는 질서의식과, 세계최강 프랑스를 비롯한 우승후보들이 줄줄이 탈락하는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경기들과, 축구경기보다 더 재미있다는 한국민의 응원모습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즐겁게 해주는 나라로 우뚝 섰다는 것은 정말 가슴 뿌듯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번 월드컵 공동주최국인 일본도 16강 진출이라는 칭찬할 만한 성과를 거두기는 했으나 승전가도를 질주하는 우리의 모습을 그저 부러움 속에서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줄곧 우리를 위협하거나 우리에게 대국 행세를 해왔던 중국은 어땠습니까? 단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전패하며 예선탈락하는 반면, 축구에 관한 한 그들의 우상들인 유럽의 강호 4개국을 줄줄이 격파하며 승승장구하는 한국축구를 바라보면서 속이 뒤틀려 우리나라에 온갖 험담과 욕설을 퍼붓는 옹졸함으로 그들의 좌절감과 공한증을 달래야 했습니다. 또한 오늘날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은 예선탈락직전에 한국 덕분에 뒷문으로 16강에 끼어들 수 있었습니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이 월드컵개최 성공을 국가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국가경제를 발전시키며 국력을 신장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물론 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토록 발전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를 짚어봐야 하며, 우리나라가 진정 행복한 나라가 되기 위한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바로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우리에게 이 물음들에 대한 대답을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시편 33편은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용 시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8-9절은 땅이 이루어진 것이나 그 땅이 견고하게 유지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땅위에 있는 사람들이나 모든 나라는 그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옛날부터 자연을 두려워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을 두려워하기보다 자연을 지으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개인이나 민족이나 나라가 견고히 서는 것은 다른 어떤 것이나 그 누구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에 달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본문 10-11절은 하나님을 창조주로서 뿐 아니라 섭리주이시며 주권적 통치자로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생각만이 영원한 것이고, 하나님의 계획과 생각에 어긋나는 모든 민족이나 나라의 사고나 계획은 언제든지 사라지거나 쓸모없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민족과 이 땅 위에 존재했던 모든 나라들은 한 때는 불교 또 한 때는 유교의 영향 아래 있었으며, 대대로 중국과 러시아와 일본과 미국의 생각과 계획 그리고 그들의 이익과 정책에 따라 좌지우지되기도 했고, 우리 스스로도 시대에 따라 친중, 친러, 친일, 친미정책을 번갈아 취하며 지내왔으며 그 열강들의 날개 아래에서 안전을 구하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복된 삶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2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말씀을 따르며 그를 하나님으로 삼고 섬기는 나라가 복 있는 나라라고 분명히 말하는 것입니다.
한 때도 그랬고 아직도 그렇지만 일부 젊은이들이나 지식인들이 좌경화가 우리의 갈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오랫동안 굳게 믿어온 것은 반공만이 우리의 살 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공산주의사상을 받아들였던 나라들은 70년만에 다 피폐해졌고 결국은 살아남기 위하여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말았음을 역사는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반세기전까지만 해도 남한과 같은 처지에 있었지만 공산주의로 무장하고 하나님을 부인하며 교회를 탄압하면서 지낸 북한이 오늘날 남한과 비교할 때 그토록 비참하고 불행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역사의 교훈입니다.
공산주의나 좌경화는 우리 민족의 살 길이 아니라 확실하게 망하는 길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반공이 곧 우리를 살리고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월남도 반공했지만 망했습니다. 반공이 우리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믿고 따르지 않는 반공은 힘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향해 베푸신 그 비밀스럽고 놀라운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국가의 주권을 되찾고 자유독립국가로 재출발하게 된 것이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공산괴뢰들의 침략을 물리치고 공산화의 위기로부터 벗어난 것이 우리 자신의 손으로 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21세기 초엽에 월드컵 축구경기 개최를 성공시키며 우리의 국력과 국가의 위상을 전세계에 과시할 수 있었던 것도 우리 스스로의 역량으로 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정말 크고 놀라운 은혜로 우리의 역사 속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때문임을 믿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주인도 배달민족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한 나라 만들 수 있습니다. 본문 12절이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우리나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살게 하신 거민들입니다. 하나님의 땅 위에 사는 거민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8절이 그렇게 노래합니다: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그를 경외할지어다."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과 계획과 생각을 따르는 백성, 그런 나라가 오래 갑니다. 9-11절이 그것을 선언하지 않습니까: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여호와께서 나라들의 계획을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하게 하시도다/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광복주일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57년 전 광복을 얻었을 때의 기쁨과 행복이 우리 민족의 영원한 행복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에게 광복을 주신 이는 오직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에게 대한민국을 주신 이가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삼으며, 그를 경외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복 있는 백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새문안교회 주일예배
설교 이수영 목사
대한민국의 온 국민은 얼마 전 행복하기 그지없는 한 달을 살았습니다. 한·일 월드컵 축구열기로 뜨거웠던 지난 6월 한 달 동안의 그 흥분과 감격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 벅차 오릅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다음 해인 1954년 처음으로 출전한 이래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해 1승의 한이 맺혀있던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이 21세기 들어 첫 월드컵 대회인 이번 한·일 월드컵 대회에서 동유럽의 강호 폴란드를 맞아 산뜻하게 2:0으로 첫 승리를 거두었을 때 그 믿어지지 않던 현실 앞에서 우리가 맛보았던 놀라움과 감격은 아직도 우리의 뇌리에 생생합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의 놀라움과 감격의 행진은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주최국의 체면과 홈 그라운드의 이점을 생각하며 1승 다음으로 욕심을 내보았던, 그 한없이 높아보이기만 하던 16강 진출의 벽을 훌쩍 뛰어넘었을 때는 정말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세계 5위라는 포르투갈의 그 날카롭고 줄기찬 공격을 완벽하게 봉쇄하며 무력화시켰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세계 최고 공격수의 한 사람이고 대회 시작 전부터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이던 선수 피구(Figo)를 도무지 무엇 하러 그라운드에 나왔는지, 나와서 뭘 하고 들어갔는지 모르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번 대회에서 가장 멋진 골이라고까지 평가될 정도로 시원한 한 골을 넣으며 비현실적인 승리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놓았습니다.
우리는 그 16강 진출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너무 행복했습니다. 16강전에서는 이번 대회의 강력한 우승후보의 하나였고 항상 세계최강의 하나로 꼽혀온 이딸리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우리 선수들은 대포르투갈전에서 너무 많은 체력을 소모한 터였기에 이딸리아를 이긴다는 것은 사실상 기대하기 힘든 일이었고, 더 못 올라가도 한은 없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거칠고 교활한 플레이로 우리를 압도하던 이딸리아에게 선취골을 내주고 패색이 짙어가던 경기종료 2분전 우리는 기적같은 동점골을 넣었고 연장전으로 끌고 가 통쾌한 역전골을 터뜨리며 아주리군단을 격파하고 말았습니다. 한국의 8강 진출이라는 대이변이 연출되는 순간 온 국민은 너나할 것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껑충껑충 뛰었고 눈물을 흘리며 미친 듯이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승리의 맛을 본 한국의 꿈은 이미 억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4강 문턱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나라가 또 하나의 우승후보였고 축구강국 정도가 아니라 축구광국이라고 할 수 있는 스페인인데도 더 이상 도무지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이딸리아와의 경기에서 연장전까지 가며 혈투를 벌이느라 선수들은 거의 다 탈진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한국선수들을 겁먹게 할 나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태극전사들은 연장전후반을 합쳐 120분간의 대회전을 치룬 후 승부차기에 들어가 다섯 꼴을 한 골도 실축하지 않고 깨끗하게 성공시키며 무적함대라 불리우는 스페인을 격침시키고야 말았습니다. 무적함대의 격침, 이것은 곧 대이변을 넘어서 하나의 신화가 창조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시아국가가 최초로 세계축구4강의 대열에 합류한 신화입니다. 그것도 출전사상 첫 승을 거두는 그 대회에서 곧바로 4강에 합류했다는 신화입니다. 전세계는 우리나라의 4강진출을 월드컵 축구경기의 역사를 통틀어 최대의 이변이라며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준결승전에서 우리와 격돌한 나라, 월드컵 우승을 세 차례나 거머쥐었던 전차군단 독일이 우리 태극전사들에 맞서 얼마나 긴장하고 죽을 힘을 다해 뛰었습니까? 우리는 정말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대해 얼마나 자부심을 느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온 국민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한 것은 단지 축구경기에서 4강에 올랐다는 사실만이 아니었습니다. 광화문과 시청 앞 등 전국에서 군중이 운집하여 함께 대형 화면으로 경기를 보며 응원할 수 있는 곳에는 어디서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하나가 되는 놀라운 광경을 목도한 것입니다. 57년 전인 1945년 8월 15일 일본제국의 무조건 항복과 함께 대한민국의 주권회복이 이루어진 소식에 온 국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이래 이렇게 하나가 되어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개인주의이고 단결력이 부족하다는 우리의 국민성에 대한 종래의 평가와 우려를 우리의 기억에서 깨끗이 지워버리며 세계의 여러 나라가 한국에 대해 두려운 생각을 가질 정도의 무서운 단결력을 만천하에 과시했던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한 것은 단지 많이 모여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만이 아니었습니다. 세계가 더욱 놀란 것은 경기가 끝난 후의 보여준 질서의식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이 미리 비닐봉지와 청소도구들을 준비했다가 모였던 자리에 남겨진 쓰레기들을 깨끗이 치우곤 하는 광경에 세계의 언론을 경의를 표했고 우리 스스로도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이토록 자랑스럽고 믿음직해 보였던 때가 없었습니다. 그저 정치인들만 빼놓고는 온 국민이 다 자랑스러웠습니다. 그저 정치인들만 정신차려주면 이제 우리나라는 정말 세계가 부러워할 좋은 나라가 될 것 같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방약무도한 일제가 동원하여 왕궁에 난입시킨 칼잡이들에 의해 왕비가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하는 등 온갖 수모를 당한 끝에 나라를 빼앗기고 35년간 일제의 억압 아래 온 나라와 온 국민이 온갖 약탈을 당했던 우리입니다. 광복 후 5년만에 전쟁이 발발하여 3년간 전국이 잿더미가 되었던 이 나라입니다. 이 나라가 반세기도 채 안 되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울 뿐 아니라 최첨단의 시설을 완벽하게 갖춘 축구경기장들과, 친절한 미소와 흠잡을 데 없는 질서의식과, 세계최강 프랑스를 비롯한 우승후보들이 줄줄이 탈락하는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경기들과, 축구경기보다 더 재미있다는 한국민의 응원모습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즐겁게 해주는 나라로 우뚝 섰다는 것은 정말 가슴 뿌듯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번 월드컵 공동주최국인 일본도 16강 진출이라는 칭찬할 만한 성과를 거두기는 했으나 승전가도를 질주하는 우리의 모습을 그저 부러움 속에서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줄곧 우리를 위협하거나 우리에게 대국 행세를 해왔던 중국은 어땠습니까? 단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전패하며 예선탈락하는 반면, 축구에 관한 한 그들의 우상들인 유럽의 강호 4개국을 줄줄이 격파하며 승승장구하는 한국축구를 바라보면서 속이 뒤틀려 우리나라에 온갖 험담과 욕설을 퍼붓는 옹졸함으로 그들의 좌절감과 공한증을 달래야 했습니다. 또한 오늘날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은 예선탈락직전에 한국 덕분에 뒷문으로 16강에 끼어들 수 있었습니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이 월드컵개최 성공을 국가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국가경제를 발전시키며 국력을 신장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물론 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토록 발전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를 짚어봐야 하며, 우리나라가 진정 행복한 나라가 되기 위한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바로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우리에게 이 물음들에 대한 대답을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시편 33편은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용 시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8-9절은 땅이 이루어진 것이나 그 땅이 견고하게 유지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땅위에 있는 사람들이나 모든 나라는 그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옛날부터 자연을 두려워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을 두려워하기보다 자연을 지으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개인이나 민족이나 나라가 견고히 서는 것은 다른 어떤 것이나 그 누구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에 달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본문 10-11절은 하나님을 창조주로서 뿐 아니라 섭리주이시며 주권적 통치자로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생각만이 영원한 것이고, 하나님의 계획과 생각에 어긋나는 모든 민족이나 나라의 사고나 계획은 언제든지 사라지거나 쓸모없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민족과 이 땅 위에 존재했던 모든 나라들은 한 때는 불교 또 한 때는 유교의 영향 아래 있었으며, 대대로 중국과 러시아와 일본과 미국의 생각과 계획 그리고 그들의 이익과 정책에 따라 좌지우지되기도 했고, 우리 스스로도 시대에 따라 친중, 친러, 친일, 친미정책을 번갈아 취하며 지내왔으며 그 열강들의 날개 아래에서 안전을 구하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복된 삶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2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말씀을 따르며 그를 하나님으로 삼고 섬기는 나라가 복 있는 나라라고 분명히 말하는 것입니다.
한 때도 그랬고 아직도 그렇지만 일부 젊은이들이나 지식인들이 좌경화가 우리의 갈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오랫동안 굳게 믿어온 것은 반공만이 우리의 살 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공산주의사상을 받아들였던 나라들은 70년만에 다 피폐해졌고 결국은 살아남기 위하여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말았음을 역사는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반세기전까지만 해도 남한과 같은 처지에 있었지만 공산주의로 무장하고 하나님을 부인하며 교회를 탄압하면서 지낸 북한이 오늘날 남한과 비교할 때 그토록 비참하고 불행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역사의 교훈입니다.
공산주의나 좌경화는 우리 민족의 살 길이 아니라 확실하게 망하는 길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반공이 곧 우리를 살리고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월남도 반공했지만 망했습니다. 반공이 우리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믿고 따르지 않는 반공은 힘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향해 베푸신 그 비밀스럽고 놀라운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국가의 주권을 되찾고 자유독립국가로 재출발하게 된 것이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공산괴뢰들의 침략을 물리치고 공산화의 위기로부터 벗어난 것이 우리 자신의 손으로 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21세기 초엽에 월드컵 축구경기 개최를 성공시키며 우리의 국력과 국가의 위상을 전세계에 과시할 수 있었던 것도 우리 스스로의 역량으로 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정말 크고 놀라운 은혜로 우리의 역사 속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때문임을 믿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주인도 배달민족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한 나라 만들 수 있습니다. 본문 12절이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우리나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살게 하신 거민들입니다. 하나님의 땅 위에 사는 거민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8절이 그렇게 노래합니다: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그를 경외할지어다."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과 계획과 생각을 따르는 백성, 그런 나라가 오래 갑니다. 9-11절이 그것을 선언하지 않습니까: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여호와께서 나라들의 계획을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하게 하시도다/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광복주일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57년 전 광복을 얻었을 때의 기쁨과 행복이 우리 민족의 영원한 행복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에게 광복을 주신 이는 오직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에게 대한민국을 주신 이가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삼으며, 그를 경외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복 있는 백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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