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어떤 나라인가?”기독교인들은 미국을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아주 틀린 말도 아니지만 100% 맞는 말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청교도들에 대해 너무 좋은 이야기만 많이 들어왔는지도 모릅니다. 국가들 중에는 건국신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많습니다. 모든 건국 신화는 과장과 거짓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것을 탓하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청교도들에게도 어느 정도는 그런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악의적으로 청교도 신앙을 폄하하는 이들도 나쁘지만 청교도 신앙을 신화화 하는 일도 조심해야 합니다. 나는 좋은 면을 극대화 한다는 긍정적인 면에서 청교도 신앙에 대한 강조를 지지합니다. 메사추세스 풀리머스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순수하고 철저한 신앙으로 하나님이 다스리는 “기독교 미국”을 건설하려고 하였습니다. 미국은 물론 세계의 생각 있는 기독교인들은 기독교가 인본주의로 변질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청교도들의 순수하고 철저한 신앙을 본받으려 합니다. 순수한 기독교 복음이 심각하게 왜곡 된 작금의 상황을 생각할 때 그 같은 노력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청교도는 영국의 종교개혁자들과 그들의 후예들입니다. 영국의 종교개혁은 1534년 헨리 8세가 개인적이고 또한 정치적인 이유에서 로마 가톨릭교회로부터 결별을 선언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영국의 종교개혁은 교황이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것을 영국 국왕을 영국 국교회의 수장으로 바꾼 것입니다. 따라서 영국의 종교개혁은 교회의 수장을 교황에서 영국 국왕으로 바꾼 것 밖에 별로 개혁된 것이 없습니다. 오늘날 미국에 있는 영국 성공회 교회를 가보아도 여러 의식들이 가톨릭교회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국 국교회가 로마 교회와 결별을 선언하므로 개혁을 시작하였지만 그 개혁이란 신앙적으로 프로테스탄트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교파가 아니라 그저‘교황 없는 천주교’라고 할 수준입니다. 그렇게 미미한 일부 개혁에 만족하지 못하고 철저한 개혁을 원했던 일련의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청교도들입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다스리던 1560년에 이르면 청교도 개혁이 하나의 조직된 운동으로 발전하였으나 1662년에 추방령이 내려져 그들은 더 이상 국교회 안에서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688년에 명예혁명이 일어남으로 청교도들에게 설교할 수 있고 독립교회를 세울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 국교회 밖에서 청교도 활동은 계속되었습니다.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은 영국 의회와 네덜란드의 오랜지공 빌럼이 연합하여 제임스 2세를 퇴위시키고 윌리엄 3세를 왕으로 세운 일이데,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명예롭게 이루어졌다’라고 해서 명예혁명이라 이름 붙여졌습니다. 명예혁명은 영국의 의회 민주주의를 출발시킨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 후 어떤 영국의 왕조도 의회를 무시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는 없었습니다. 청교도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시기는 1564년으로 추정되는데, 처음에는 영국 국교회에 비타협적인 개신교도들을 경멸과 적개심으로 부르는 호칭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청교도란 “까다로운 사람들, 비판적이고 고집불통의 사람들”또는 “국교에 반대하는 비판적이고, 기만적이고 위선적인 작당들”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순수하고 철저하고 열정적인 신앙인들이라는 영광스러운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기독교 안에서 청교도 신앙에 대해 활발하게 연구하는 것은 그들을 통해 바른 신앙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열악한 형편에서 살면서도 효과적으로 복음사역을 하였고 또한 그들로부터 우리는 신앙에 유익한 신앙고백적인 표준 문서들을 물려받았습니다. 제임스 패커(J.I. Packer)는 청교도를 통해 우리가 배울 일곱 가지를 지적하였습니다. “첫째, 그들은 성숙한 기독교인의 모델이다. 둘째, 그들은 신학적 통합성을 추구했다. 셋째, 그들의 영적 표현의 질이 뛰어났다. 넷째, 그들은 효율적 행위에의 열정을 가졌다. 다섯째, 그들은 가정생활의 안정을 위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여섯째, 그들은 인간의 가치에 대한 지각을 가졌다. 일곱째, 그들은 교회 갱신의 이상을 가졌다.”그 외에도 청교도들을 통해 우리가 배우고 얻을 유익은 많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사람이라고 할 만큼 성경을 사랑했고, 가능한 성경 속에 나타난 원리들에 적합한 교리와 교회의 규율과 행정조직을 갖기 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언제나 개혁을 이루려고 노력하였고 거룩과 경건을 생활의 절대적인 요소로 삼았습니다. 결국 청교도들은 종교개혁의 모토인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Soli DEO Gloria)를 실현하고자 노력하였고 영국 국교회 밖에서 개혁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청교도들이 소중하게 여겼던 것 중의 하나는 설교입니다. 예배와 설교를 동의어로 사용할 만큼 설교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백스터에 의하면 청교도 설교자들은 언제나 그들이 하는 설교가 마지막 설교인 것처럼 선포했고,‘죽어가는 사람으로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설교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성경을 철저하고 깊이 있게 연구하여 설교하였으며, 언제나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임을 강조하고, 인간이 의지하고 바라보아야 하는 유일한 대상이 그리스도임을 제시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향이 거룩하고 경건한 것임을 강조하고, 각자 직업에 대한 철저한 소명의식을 일깨우고, 무엇보다 가정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건전한 가정생활을 하도록 가르치며, 세속적인 즐거움이나 쾌락과 사치를 금하였습니다. 설교자들은 자신이 설교한 대로 살려고 노력했고 청교도 모두는 각자의 일상에서 설교자들의 가르침과 본을 따라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순수하고 바른 신앙이 가정과 교회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 실현되어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영적 싸움을 싸웠습니다. 청교도 설교자들이 항상 강조했던 것은 성수주일, 예배, 기도, 경건한 가정, 거룩한 삶이였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은 이러한 내용들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특히 장로교의 장로정치는 청교도로부터 물려받은 것입니다. 초기의 청교도들이 칼빈주의적인 전통을 따르는 장로교였으나 이후에 여러 개신교들도 청교도의 신앙과 가르침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청교도들이 박해를 받게 된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왕권신수설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왕은 하나님께서 점지하셨기 때문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왕권신수설을 거부하다가 박해를 받게 됩니다. 박해를 피해 신대륙 아메리카로 건너 온 청교도들은 하나님만이 절대 왕이신 나라를 건설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영국에서의 청교도들은 비성경적인 영국 국교회와 왕들을 상대하여 싸웠지만 신대륙 미국에서는 성경과 경건을 철저하게 강조하였습니다. 미국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에 청교도 신앙이 끼친 영향이 지대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유적만 남아 있을 뿐 청교도 신앙과 개혁정신은 찾아보기 힘든 상황입니다.
미국의 건국에 지배적 영향을 끼친 두 그룹 중 하나가 앞서 살펴 본 북쪽 플리머스에서 시작된 청교도들이라면 또 다른 하나의 그룹은 1670년 남쪽 버지니아에 처음 상륙하여 제임스 타운에 정착했던 그룹입니다. 플리머스에서는 청교도들이 중심이 되었었고 제임스 타운에서는 영국 국교회 교도들이 중심을 이루었습니다. 청교도들의 성격은 앞에서 살펴본 대로이고, 제임스 타운을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한 그룹은 청교도들과는 신앙과 교리가 다를 뿐 아니라 순전히 상업적으로 돈을 벌기 위한 식민지 건설회사의 투자에 참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임스 타운을 중심으로 활동한 이들의 공헌은 산업을 개척하고 발전시키기도 하였지만 가장 중요한 공헌은 미국의 대의민주주의 기틀을 세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일에 기여한 소위 건국의 아버지들은 거의 신학적으로 이신론에 영향을 받은 이들이었습니다. 이신론은 하나님과 기독교를 합리주의로 설명하는 이론이고 청교도 신앙은 종교개혁의 정신을 따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과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어, 넓게는 이신론과 청교도 신앙이 개신교라는 한 울타리 안에 속하지만 신앙의 내용에 있어서는 너무나 다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일반적으로는 기독교 국가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기독교 정신이나 가르침과 동일시 할 수 없는 것이 많음을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청교도들이라면 전혀 허용하거나 용납을 할 수 없는 합리주의와 실용주의는 미국인의 정신과 사상의 메인 스트림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청교도 정신이 미국에 있어서의 합리주의나 실용주의가 지나치게 세속화의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하였겠지만 이신론의 기독교에서는 합리주의나 실용주의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이신론자들이 믿는 하나님은 청교도들이 믿는 하나님이 아니고, 이신론자들이 믿는 복음은 청교도들이 믿는 복음이 아닙니다.
북부 유럽에서 루터와 칼빈과 신교도들이 교리와 생활을 개혁하려는 문제로 씨름하고 있을 때, 남부 유럽에서는 르네상스라는 또 다른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르네상스도 종교개혁과 같이 모든 생활에 대한 의미와 통일성을 줄 수 있는 기초를 발견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과 르네상스는 동일한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서로 반대 되는 해답과 방향을 제시하였듯이 미국에 있어서 청교도 신앙과 이신론자들은 서로 반대되는 방법과 목적을 지향하였습니다. 미국의 건국 초기에는 원주민 인디언들과의 마찰과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하는 일과 남북 전쟁 등 큰 문제들을 극복하는 일에 함께 힘을 쏟느라 신앙의 정통성과 개혁정신을 정진시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북쪽의 청교도들의 순수하고 개혁적인 신앙은 너무나 쉽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청교도 신앙을 공부하다보면 그들의 철저하고 순수한 신앙이 너무도 급속히 인본주의적으로 세속화 되고 말았다는 사실에 적면하게 됩니다. 지금은 뉴잉글랜드 지방 어느 곳에서도 청교도 신앙을 찾아볼 수조차 없습니다. 거대한 로키 산맥 어느 산골짜기의 이름 모를 실개천처럼 청교도 운동이 실낱같은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겠지만 미국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를 지배하는 사상은 이신론적 영향이 지배적입니다. 지나치게 철저함과 지나치게 순수함은 인본주의가 될 위험이 아주 높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사람들이 율법 자체보다 더 율법에 철저하려 하다가 율법주의자가 된 것처럼 청교도들은 복음 자체보다 더 철저하고 순수하려 하다가 인본주의로 변질되었습니다.
이신론의 뿌리는 탈레스와 주전 6세기에 탈레스가 세운 밀레토스 학파입니다. 그들은 물질적인 자연 속에서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실재를 구했습니다. 이러한 자연주의 신념이 르네상스의 일반적인 사상과 본질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르네상스 사상가들이 하나님의 존재와 초자연적인 영역들을 철저하게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그 운동이 발전함에 따라 그동안 전통적인 기독교의 가르침을 거부하기에 이릅니다. 이신론적 신앙이 하나님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하나님은 인간과 세상을 일체 간섭하지 않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믿으면서 온갖 거짓과 왜곡과 음모와 범죄까지 자기실현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필요에 의해서 어떤 악이라도 저지르게 됩니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미국의 혼란스러운 가치 질서의 원인이 이런 복잡한 사상과 정신적 계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눅 18:2-5)
http://firstchurch.tnaru.net/web/index
황상하 목사(미국 퀸즈제일장로교회)
청교도들이 박해를 받게 된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왕권신수설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왕은 하나님께서 점지하셨기 때문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왕권신수설을 거부하다가 박해를 받게 됩니다. 박해를 피해 신대륙 아메리카로 건너 온 청교도들은 하나님만이 절대 왕이신 나라를 건설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영국에서의 청교도들은 비성경적인 영국 국교회와 왕들을 상대하여 싸웠지만 신대륙 미국에서는 성경과 경건을 철저하게 강조하였습니다. 미국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에 청교도 신앙이 끼친 영향이 지대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유적만 남아 있을 뿐 청교도 신앙과 개혁정신은 찾아보기 힘든 상황입니다.
미국의 건국에 지배적 영향을 끼친 두 그룹 중 하나가 앞서 살펴 본 북쪽 플리머스에서 시작된 청교도들이라면 또 다른 하나의 그룹은 1670년 남쪽 버지니아에 처음 상륙하여 제임스 타운에 정착했던 그룹입니다. 플리머스에서는 청교도들이 중심이 되었었고 제임스 타운에서는 영국 국교회 교도들이 중심을 이루었습니다. 청교도들의 성격은 앞에서 살펴본 대로이고, 제임스 타운을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한 그룹은 청교도들과는 신앙과 교리가 다를 뿐 아니라 순전히 상업적으로 돈을 벌기 위한 식민지 건설회사의 투자에 참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임스 타운을 중심으로 활동한 이들의 공헌은 산업을 개척하고 발전시키기도 하였지만 가장 중요한 공헌은 미국의 대의민주주의 기틀을 세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일에 기여한 소위 건국의 아버지들은 거의 신학적으로 이신론에 영향을 받은 이들이었습니다. 이신론은 하나님과 기독교를 합리주의로 설명하는 이론이고 청교도 신앙은 종교개혁의 정신을 따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과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어, 넓게는 이신론과 청교도 신앙이 개신교라는 한 울타리 안에 속하지만 신앙의 내용에 있어서는 너무나 다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일반적으로는 기독교 국가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기독교 정신이나 가르침과 동일시 할 수 없는 것이 많음을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청교도들이라면 전혀 허용하거나 용납을 할 수 없는 합리주의와 실용주의는 미국인의 정신과 사상의 메인 스트림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청교도 정신이 미국에 있어서의 합리주의나 실용주의가 지나치게 세속화의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하였겠지만 이신론의 기독교에서는 합리주의나 실용주의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이신론자들이 믿는 하나님은 청교도들이 믿는 하나님이 아니고, 이신론자들이 믿는 복음은 청교도들이 믿는 복음이 아닙니다.
북부 유럽에서 루터와 칼빈과 신교도들이 교리와 생활을 개혁하려는 문제로 씨름하고 있을 때, 남부 유럽에서는 르네상스라는 또 다른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르네상스도 종교개혁과 같이 모든 생활에 대한 의미와 통일성을 줄 수 있는 기초를 발견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과 르네상스는 동일한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서로 반대 되는 해답과 방향을 제시하였듯이 미국에 있어서 청교도 신앙과 이신론자들은 서로 반대되는 방법과 목적을 지향하였습니다. 미국의 건국 초기에는 원주민 인디언들과의 마찰과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하는 일과 남북 전쟁 등 큰 문제들을 극복하는 일에 함께 힘을 쏟느라 신앙의 정통성과 개혁정신을 정진시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북쪽의 청교도들의 순수하고 개혁적인 신앙은 너무나 쉽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청교도 신앙을 공부하다보면 그들의 철저하고 순수한 신앙이 너무도 급속히 인본주의적으로 세속화 되고 말았다는 사실에 적면하게 됩니다. 지금은 뉴잉글랜드 지방 어느 곳에서도 청교도 신앙을 찾아볼 수조차 없습니다. 거대한 로키 산맥 어느 산골짜기의 이름 모를 실개천처럼 청교도 운동이 실낱같은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겠지만 미국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를 지배하는 사상은 이신론적 영향이 지배적입니다. 지나치게 철저함과 지나치게 순수함은 인본주의가 될 위험이 아주 높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사람들이 율법 자체보다 더 율법에 철저하려 하다가 율법주의자가 된 것처럼 청교도들은 복음 자체보다 더 철저하고 순수하려 하다가 인본주의로 변질되었습니다.
이신론의 뿌리는 탈레스와 주전 6세기에 탈레스가 세운 밀레토스 학파입니다. 그들은 물질적인 자연 속에서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실재를 구했습니다. 이러한 자연주의 신념이 르네상스의 일반적인 사상과 본질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르네상스 사상가들이 하나님의 존재와 초자연적인 영역들을 철저하게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그 운동이 발전함에 따라 그동안 전통적인 기독교의 가르침을 거부하기에 이릅니다. 이신론적 신앙이 하나님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하나님은 인간과 세상을 일체 간섭하지 않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믿으면서 온갖 거짓과 왜곡과 음모와 범죄까지 자기실현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필요에 의해서 어떤 악이라도 저지르게 됩니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미국의 혼란스러운 가치 질서의 원인이 이런 복잡한 사상과 정신적 계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눅 18:2-5)
http://firstchurch.tnaru.net/web/index
황상하 목사(미국 퀸즈제일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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