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회사 및 신조〓/청교도

제임스 패커, 청교도사상(Among God's Giants),

by 【고동엽】 2021. 11. 17.
제임스 패커, 청교도사상(Among God's Giants), CLC, 2001


제 1 장 서론


캘리포니아의 레드우드 나무(둘레가 18미터, 키가 108미터, 수백년 천년 이상)는 나로 하여금 영국의 청교도들을 생각하게 한다. 그들은 우리 시대에 새롭게 진가를 인정받기 시작한 또 하나의 거인족이다. 1550년에서 1700년 사이에 그들은 꿋꿋한 삶을 살았다. 위대한 청교도들의 성숙된 경건함과 연단된 꿋꿋함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의 영적 능력을 능가하는 하나의 횃불로 우리 앞에 비취고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지나간 세대의 풍요가 우리 모두를 난쟁이와 쓸모없는 인간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이 상황에서 청교도 거인들의 교훈과 모범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이 책의 소론들은 40년 이상의 추구의 열매이다.
청교도 거인들은 적어도 일곱 가지 방법으로 나를 형성했다.


1) 나의 회심 직후에 있었던 어떤 위기의 때에 있어 존 오웬은 나의 계속적인 죄악과, 소명된 자기를 믿지 않는 것과 정욕의 억제의 훈련에 있어 현실적이 되도록(근시안적이 되거나 자포자기적이 되지 않도록) 나에게 도움을 주었다. 오웬이 없었다면 나는 미쳐 버렸거나, 아니면 신비적 광신의 늪에 빠졌을 것이며, 오늘과는 다른 견해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2) 오웬은 나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구속하시는 사랑의 주권과 특별성에 대한 성경적 증거가 얼마나 일관되고 명백한지 깨달을 수 있게 해 주었다.


3) 리차드 박스터는 규칙적으로 광범위한 묵상을 하는 것이 영적 건강에 있어 극히 중대한 훈련이라는 사실을 나에게 확신시켜 주었다. “영적 진리를 찬송으로 바꿀 뿐만 아니라 그 진리를 당신 자신에게 적용함에 있어 당신이 지금까지 들어온 중에 가장 강력한 설교자를 모방하라”. 시편과 교부들, 특별히 청교도가 계승하고 있는 어거스틴의 유산인 묵상 방법과 관계를 모방하라. 정관식(contemplation)의 기도는 성경적인 기도가 아니다.


4) 박스터는 성직자의 목회 임무에 대한 나의 시각을 확실하게 해주었다.


5) 청교도들은 나에게 이 땅의 삶이 덧없는 것임을 보고 느끼도록 가르쳤다. 이 땅의 삶이 천국을 준비하는 예비 학교이며 옷을 갈아입는 방에 불과함을 가르쳐 주었고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사는 것을 배우는 첫단계임을 가르쳐 주었다. 오늘날 우리가 가정의 평안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다. 약품과 의술은 초보적이었다. 반 이상의 성인이 젊어서 죽고, 태어난 아기의 반 이상이 영아로 죽은 세상에서 그들의 불변하는 동반자는 질병과, 빈곤과 고통과 죽음이었다.


오늘날의 풍요하면서도 나약하고 땅에 얽매인 서양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은 거의 처리하지 못하는 삶의 직무에 대해 고요하면서도 열정적이고 심오한 진지성을 그들에게 주었다. 청교도들이 소유하고 살았던 비범한 활기, 환희는 그들이 죽음을 언제나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움츠리지 않고 평범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갖추고 있던 현실주의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6) 청교도들은 나의 교회에 대한 정체성을 형성해 주었다. 개혁의 천재 토마스 크랜머나, 19세기의 거인 라일에게서도 전면적인 복음주의적 갱신이라는 이 이상을 배웠다. 대부분의 이상을 나는 청교도들에게서 배웠고, 리차드 박스터에게서 배웠다


7) 청교도들은 나로 하여금 모든 신학은 선하거나 악하거나,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어떤 영향력을, 받는 자들의 하나님과의 관계, 또는 관계의 결여에 끼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만일 우리의 신학이 믿음의 헌신을 조장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신의 이탈을 강화한다. 만일 신학이 겸손을 고무하는 데 실패한다면 필연적으로 오만을 조장한다. 나는 청교도들이 알고 있는 모든 ‘교리(진리)’를 삶의 기초로 적절하게 ‘적용’하는 것을 관참함으로써 이 책임의 본질을 터득했다.


본서의 장들은 청교도들이 우리와 비교할 때 거인들이며, 우리가 언제나 성장하고자 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거인들이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과거의 그리스도인 영웅들에게서 배우는 것은 성도의 교제에 있어 극히 중요하다. 위대한 청교도들은 그들의 저서를 통해 지금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제 1 부 청교도의 윤곽적 소개


제 2 장 우리에게 청교도가 필요한 이유


1. 성숙한 그리스도인


청교도들은 원칙적인 사람들이고 헌신적이고 단호하고 훈련적인 사람들이며, 가정의 미덕에 있어 특히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나 사람에게나 어떤 중요한 일을 말할 때 말씀에 의존하였다.


청교도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그들의 성숙 때문이다. 성숙은 지혜와 선의와 쾌활과 창조성의 복합이다. 우리는 영적 난장이라면 그들은 거인들이다. 그들은 위대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위대한 영혼들이었다. 맑은 머리의 열정과 따뜻한 가슴의 동정이 결합되어 있었다. 이상적이면서 현실적이며, 목표 지향적이며 조직적인 그들은 위대한 신자들이었고, 위대한 소망자들이었고, 위대한 행위자들이었고, 위대한 고난자들이었다. 영국에서는 권력자들에게서 고난을 당했고, 뉴잉글랜드에서는 자연으로부터 고난을 당했다. 그 고난이 그들의 성숙을 이루었다. 우리의 풍요와 안일과 사치는 성숙을 이루지 못한다. 이 영적 전투가 전형적인 청교도를 만들었다. 이 전쟁에서 그리스도는 그의 대장이며, 그의 무기는 기도와 눈물이었다. 십자가는 그의 군기이며, 그의 문장은 “고난받는 자가 승리한다”였다.


청교도들은 대개 모든 공적 전투에서 졌다. 영국에서는 영국교회를 원하는 만큼 변화시키지 못했고, 소수파 이상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대서양을 건너가서는 뉴잉글랜드에 새 예루살렘을 수립하는 데 실패했다. 처음 50년 동안 청교도의 작은 이민들은 겨우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속적인 압박과 좌절들 아래에서 청교도들이 계속 즐겁고, 평화롭고, 인내하고 소망에 차 있음으로 쟁취한 도덕적 승리와 영적 승리는 히브리서 11장의 제 일석을 차지한 신자들의 명예와 자리 중의 높은 영광의 자리를 그들에게 주었다.


휘트필드는 말했다. “시련 아래 있을 때 성직자들은 가장 휼륭하게 저술하고 설교한다. 그리스도와 영광의 왕이 그 때에 그들에게 거하시는 것이다. 청교도들을 그처럼 찬란하게 비추이는 빛으로 만든 것은 바로 이 이유였던 것이다. 1662년의 검은 바돌로매 법령에 의해 쫓김을 당하여 헛간과 밭과 도로와 울타리에서도 설교할 수 없는 자리로 내몰림을 당하였으나, 그들은 특별한 방법으로 권위있는 사람들처럼 저술하고 설교했다. 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저술로 말했다. 바로 이때에 독특한 감동을 주는 열정이 그들을 따랐다”


그들의 감동을 주는 열정은 계속되고 있고, 그 권위도 계속 느껴지며, 성숙한 지혜는 여전히 놀라움을 주고 있다. 이 문헌의 역사를 통해 청교도들은 그들이 알고 있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성숙으로 나아가도록 오늘날의 우리를 도울 수 있다.


2. 일상생활의 통합


1) 그들의 일상 생활의 통합에 우리를 위한 교훈이 있다. 그들은 사람을 전체로 보았기 때문에 묵상을 행동과 통합하였고, 예배를 일과 통합하였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과 자기사랑과 통합하였고, 개인의 정체성을 사회의 정체성과 통합하였고, 넓은 범위의 관계적인 책임들을 철저하게 양심적이고 주도 면밀한 방법으로 관계적 책임들과 통합하였다.


2) 그들의 영적 경험의 특성에 우리를 위한 교훈이 있다. 청교도의 하나님과의 교제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심이고 성경이 가장 중요했다. 성경 진리의 전체 범위를 스스로에게 적용시키기 위해 광범위하게 그리고 조직적으로 묵상을 했다. 묵상 가운데 자기 심령을 탐색하고 도전하고, 죄를 미워하고 의를 사랑하는 감정을 분발시키고, 하나님의 약속들로 자신을 격려하고자 했다. 이 이성적이고 단호하고 열정적인 경건은 강박됨이 없이 신중하였고, 율법주의에 빠짐이 없이 율법 지향적이었고, 수치스러운 방종의 경향이 없이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표현하였다. 성경은 변할 수 없는 거룩한 법칙이었다. 그들은 타락한 인간 심령의 부정직성과 기만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변치 않는 마음가짐으로 겸손과 자기 불신을 교화하였고 영적으로 보이지 않는 흠들과 숨어있는 마음 속의 악들을 찾기 위하여 정규적으로 자신을 검사했다. 그러면서도 병적으로 되지 않았고, 성경에 의한 자기성찰이었다.


3) 효과적인 활동에 대한 그들의 열정에 우리를 위한 교훈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타인들에게 맡기는 게으르고 수동적인 사람의 나태가 없었다. 그들은 조금도 자기 자신에게 의지함이 없이 개혁 운동에 참여하는 순수한 개혁 정신을 소유한 행동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들 안에서 그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완전히 의지하고, 자신들이 행한 일에 있어 옳다고 생각되는 일은 무엇이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의 일꾼이었고, 하나님께서 그들이 갖고 있는 능력들을 사용하시되 자신들을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시기를 열심히 기도하는 은사의 사람들이었다. 교회나 국가에 혁명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되었을 때에도 그렇게 되기를 원한 사람은 없었다. 그들 모두는 죄에서 거룩함으로 변화가 요구되는 곳에서는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을 위해 효과적인 동인이 되기를 갈망했다. 크롬웰과 그의 군대는 전투에 앞서 길고 강력한 기도를 드렸고, 설교자들은 강단으로 감히 나아가기에 앞서 길고 강력한 기도를 드렸고, 평신도들은 모든 중요한 문제, 즉 결혼, 사업 거래, 중요한 구매 등 무엇이나를 처리하기에 앞서 길고 강력한 기도를 드렸다.


4) 가정의 안정을 위한 그들의 프로그램에 우리를 위한 교훈이 있다. 청교도의 결혼 윤리는 당장 정열적으로 사랑하는 배우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친구로 견실하게 사랑할 있는 배우자를 찾음으로 후에 하나님의 도움으로 정열적으로 사랑하는 데로 나아갔다. 청교도의 자녀 양육 원리는 그들이 마땅히 나아가야 할 길로 자녀들을 훈련시키고, 자녀들의 육체와 영혼을 함께 돌보며, 근실하고 경건하고 사회적으로 유용한 성인의 삶을 위해 자녀들을 교육하는 것이었다. 청교도의 가정 생활 윤리는 질서와 예의와 가정 예배를 유지함이 기초가 되었다. 친절과 인내와 언행 일치와 격려의 태도는 가정에서 필수의 덕으로 간주되었다. 그들은 가정을 요새로 삼아 모든 악조건들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정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는 가장 큰 칭송을 받을 만하다. 청교도들은 가정에서의 어려움과 실망들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으로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런 어려움과 실망들 중 어느 것에 의해서도 풀이 꺾이거나 마음이 상하지 않는 성숙의 모범을 보였다.
게리, “그는 자신의 가정을 교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자기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하나님께로 중생하도록 하기 위해 힘썼다.”


5) 청교도의 인간 가치 의식에 배워야 할 교훈들이 있다. 그들은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도덕적 문제들과 영원과 인간 영혼이 중대하다는 것을 생생하게 깨닫게 되었다. 인간 개개인들에 대한 경이감을 그들은 예민하게 느꼈다. 죄는 아무것도 요구할 권리가 없다고 말한 중세기의 양향을 받아 비록 그들이 분명히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을 언제나 존경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친구로 만들어진 피조물로서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그들의 가치관은 강력하였는데, 특별히 인간의 아름답고 고귀한 거룩성에 대한 의식이 강했다.


6) 청교도의 교회 갱신에 대한 이상에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 박스터의 <개혁된 목사>는 칼빈주의를 유세하는 사람이 아니라, 설교자와 교사와 교리 문답자와 직무의 귀감으로서 그 자신이 ‘부흥된’ ‘갱신된’ 사람이다. 개혁의 본질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풍부한 이해, 하나님을 향한 애정의 분발, 헌신에 대한 열심의 증가 그리고 자신의 소명과 개인적인 삶에 있어 확고한 기독교적 목적과, 더 많은 사랑과 기쁨이었다. 이와 조화하여 교회를 위한 이상은 곧 ‘개혁된’ 성직자를 통해 각 회중의 모든 것이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3. 청교도의 위대성


청교도주의는 핵심에 있어 하나님과 경건에 열정적으로 관심을 두는 영적 운동이었다.
청교도주의는 본질적으로 교회 개혁과 목회 갱신과 복음 전도를 위한 운동이었으며, 청교도주의는 세계관이며 기독교 철학이었다.


청교도의 목표는 영국의 개혁이 시작한 바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곧 영국국교회 예배의 형태 수정을 완성하고, 영국 국교회 교구에 효과적인 교회 기율을 도입하고, 정치와 가정과 사회 경제 쳬계에 정의를 수립하고, 모든 영국인들을 살아 있는 복음적 신앙으로 개종시키는 것이었다. 복음을 전도하고 가르침을 통해, 그리고 모든 예술, 과학, 기술들의 성경화를 통해 영국은 성도들의 땅, 집합적 경건의 귀감과 모범이 되는 것이며, 그리하여 세계의 축복 수단이 되는 것이었다.


4. 청교도의 교훈


오웬, 박스터, 구드윈, 하우이, 퍼킨스, 십스, 브룩스, 왓슨, 거어널, 플라벨, 번연, 맨턴 등과 같은 위대한 청교도 목사이며 신학자들은 영적 통찰력 뿐만 아니라 뛰어난 지적 능력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착실한 학문에 의해 육성된 지적 기질은 하나님을 위한 불타는 열심과 인간 심령에 대한 세밀한 지식에 연결되었다. 그들은 사고와 관점에 있어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이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그들의 인식은 심원하였고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다룰 때 그들의 경의는 깊고 불변적이었다. 그들은 인간들과 관련된 하나님의 방법들과 중보이신 그리스도의 영광과, 신자와 교회 안에서 행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가장 풍성하게 이해하였다.


그들의 지식은 단순한 이론적 정설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신 모든 것을 실행과 ‘일치시키고자’ 애썼다. 그들은 하나님의 생각에 대한 자신들의 파악을 삶의 모든 지류에 적용시켰고 교회, 가정, 국가, 예술과 과학, 상업과 산업의 세계를 개인의 헌신에 못지 않은 것으로 보았고 하나님께서 섬김을 받으시고 영광을 얻으셔야 하는 많은 영역들로 보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삶의 창조주를 삶의 각 부분의 주인으로 보았고, 그들의 목적은 ‘주님께 대한 거룩함’이 삶에 기록되고 삶의 영원성 가운데 기록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복음세계에 있어 세 집단이 청교도만이 줄 수 있는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1) 불안한 경험주의자들
복음주의자들로 착각하기 쉬운 자들이다. 외부에 대한 시각은 일관성이 없고 매우 성급하며 신기한 것들과 즐거움과 ‘높은 이상들’을 추구하며 깊은 사고보다는 강한 감정을 존중한다. 그들은 딱딱한 공부 겸손한 자기 반성, 훈련된 묵상, 호화롭지 않고 힘든 직업과 기도에는 거의 흥미가 없다. 믿음의 전투나 ‘낮아짐’과 같은 균형감각이 없고, 기쁨, 평화, 행복, 만족, 영혼의 안식같은 주제들만 계속 강조한다. 이 떠들썩한 사람들은 들뜬 상태 가운데, 보다 더 기묘하고 인상적인 경험이 더 신령하고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경험이 틀림없다고 무비판적으로 경솔하게 판단을 내리고 진실한 사고에는 성경적인 덕성을 거의 부여하지 않는다.


청교도의 어떤 강조점들이 불안한 경험주의자들을 안정시켜 차분하게 할 수 있을까? 신적 요구로서의 하나님 중심에 대한 강조. 언제나 겸손하고 인내하고 절제하라는 요구와 성령의 주요 사역이 흥분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그리스도와 닮은 인격을 창조하는 것임을 인정하라는 요구. 시 139:23-24에 제시된 대로 성경에 의한 규칙적인 자기 반성의 필요성에 대한 강조. 신령한 고난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은혜 가운데 성장시키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있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 청교도의 교육 전통보다 더 능숙한 권위를 가지고 이렇게 정화하고 강건하게 하는 약을 사용한 다른 기독교 교육 전통은 없다.


2) “자기 방어적 주지주의자들”
이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엄격하고 논쟁적이고 비판적인 그리스도인들, 정통적 관행이 모든 것인 자들, 하나님의 진리의 옹호자들로 나타낸다. 칼빈주의건 알미니안이건, 세대주의건 오순절파이건, 국가 교회 개혁주의자이건, 비국교파 교회 분리주의자이건, 무엇이거나 간에 자신들의 진리관을 옹호하고 방어하는 것이 그들의 주된 관심이며, 그들은 이 과제에 아낌없이 자신을 투자한다. 그들의 주위에는 거의 온기가 없이 냉랭하다. 그들은 교제 관계와 멀리 떨어져 있다. 그들에게 있어 경험은 큰 의미가 없다. 지적 정확성을 위한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 그들의 하나의 큰 목적이다. 그들은 지성의 우선권을 잘 이해하고 있다
청교도 전통이 빈약한 주지주의에 대해 어떤 강조점을 제시하는가? 참된 신앙은 지성 뿐만 아니라 애정을 요구한다는 것. 신학적 진리는 실천의 위한 것이라는 것. 실제들을 아는 것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관념적 지식은 죽이는 것이 된다는 것. 사랑과 거룩한 생활의 필요하다는 것. 묵상의 훈련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을 끊임없이 열심을 내고 사모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위대한 청교도들은 두뇌가 명석했던 것만큼 마음이 겸손하고 따듯했으며 성결 지향적인 만큼 인간 지향적이었으며, 진리를 위해 열정적인 만큼 평화를 위해서도 열정적이었다.


3) 불평적인 분리주의자들
이들은 현대 복음 운동의 조난자이며 태만자들이고 그들 중의 많은 자들은 이제 복음 운동에 악감을 가지고 복음 운동을 기독교의 신경증적 왜곡이라고 비난한다. 그들은 복음으로 양육을 받았거나 또는 복음적 영향권 내에서 회심을 고백함으로 한때 스스로를 복음주의자들로 보았으나 복음주의적 관점에 대해 환멸을 느끼게 되었고, 복음주의가 자신들을 실망시켰다고 느끼고 등을 돌린 사람들이다. 지적인 이유로, 또는 상처와 분노로 인해 그들은 자신을 신용 사기의 희생자로 생각하게 되어 복음주의가 자신들을 실패시키고 바보로 만들었다고 비난하고 원망하며 포기해 버린다.


이들을 치유하기 위해 청교도들은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청교도 저자들이 한결같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첫째로, 하나님의 ‘비밀’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분이다. 따라서 ‘손실과 고난’, 즉 우리의 소망들과 관련된 좌절과 실망들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삶에 있어 반복되는 요소라는 것이다. 둘째, 청교도 저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들은 죄인들을 구속하고, 회심시키고, 성화시키고, 궁극적으로 영화롭게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한다. 셋째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의 죄를 제거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용서를 전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을 통과하여 영광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부터 이 영광에 대한 열망과 이 영광을 즐기 위한 능력을 조금씩 배움으로 이 영광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령한 예배와 변함없는 사랑의 순종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이 땅의 거룩은 내세의 행복으로 가는 고속도로인 것이다. 넷째로, 세상과 육체와 악마와 우리를 타락시키고자 하는 수많은 방법의 ‘영적 전투’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 준다. 다섯째로, 악을 허용하기도 하며 영적 전투를 지배하시고 성화시키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준다. 여섯째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말한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완전히 맡기고 언제나 하나님을 우리의 기쁨과 희락으로 삼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촉진시키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나는 지금까지 읽어왔던 어떤 다른 신학자들보다 청교도들에게 더 많은 신세를 지고 있고, 청교도들이 나에게 아직도 필요하다. 우리 청교도의 유산을 함께 계속적으로 탐구해 보기로 하자. 더 많은 황금이 발굴될 것이다.


제 3 장 부흥운동으로서의 청교도주의


1. 청교도 운동의 정의


16세기와 17세기의 영국에서 엘리자베스 시대가 허용했던 것보다 더 발전된 영국 교회의 개혁과 갱신을 추구한 운동이라고 정의한다. 이 운동은 일세기 이상 동안 계속 뭉쳐 이어진 성직자-평신도 운동이었다. 그들은 특성에 있어 성경주의자이며 칼빈주의자였다. 참되고 진정한 신약성경 형태의 교회 생활을 실현시키고자 하였고, 공유하는 문헌이 있었다.


나는 부흥을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통해 성령으로 영적 사망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생명의 믿음을 전달하시고 활기없이 잠들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내적인 삶을 다시 새롭게 하시는 역사라고 정의한다. 하나님께서는 부흥 가운데 엣것들을 새롭게 하시고, 율법과 복음에 새로운 능력을 부여하시고, 마음과 양심이 눈멀고 딱딱하고 차가운 자들에게 새로운 영적 각성을 주신다. 따라서 부흥은 교회들과 그리스도인 집단들에 생명을 불어넣어, 사회에 신령하고 도덕적인 영향을 끼치게 한다. 사도행전 처음 몇 장과 신약성경의 나머지 부분과 연결시켜 볼 때 부흥의 표적들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경외감과 복음의 진리를 들 수 있다. 곧 죄에 대한 깊은 각성은 깊은 회개로 이어져,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그리스도,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결과가 된다. 다음에 영의 강력한 언어의 자유로 그리스도의 능력과 영광을 억제할 수 없이 증거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편에서 은혜의 역사를 강화하고 급속하게 진행시키심으로 사람들은 말씀에 의해 거꾸러지고, 성령에 의해 변화를 받게 된다. 사도행전을 모범으로 따른다면 부흥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자신의 권능을 나타내시고 자신의 백성을 부르시고 자신의 나라를 넓히시고 자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시는 본질적으로 집합적인 현상이다.


2. 청교도의 개혁


나는 청교도 주의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청교도의 역사가 부흥의 역사로 이야기되는 날을 기다려야 한다고 감히 말한다. 그 날은 아직 이르지 않았다. 청교도의 전도와 교육과 경건과 목회 사역과 영적 경험에 대한 분석이 시작되었으나 아직 갈 길이 멀고 이 자료에 대한 신학적 평가는 유아 상태에 있다. 나의 논증에 대한 다음 세 가지 사실을 제시한다.
첫째, ‘영적 부흥은 청교도들이 추구하고 있다고 공헌한 바의 중심이었다’는 것이다. 청교도는 ‘부흥’이라는 말을 그들이 추구하는 바를 나타내는 전문적 술어로 사용하지 않고, ‘개혁’이라는 어휘로 자신들의 목적을 표현하였다. 박스터의 <개혁된 목사>는 활력과 열심과 목적에 있어서 갱신되었다는 의미였다. “만일 하나님께서 목회를 개혁하셔서 그들이 자신들의 의무들을 열심히 그리고 신실하게 행하게 하신다면 분명히 이 백성은 개혁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들과 복음주의자들은 일관되게 교회의 ‘개혁’을 교리와 질서와 같은 외적인 문제들로만 이해하고 심령과 생활의 내적인 갱신에 대해서는 상관을 시키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종교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이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던 ‘개혁’ 목표의 영적 차원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청교도들은 무엇보다도 교회가 영적으로 흥하는 것을 보기 원했다. 그리고 그들은 갱신된 목회자 없이는 이 소원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복음적인 자격을 갖춘 목회자에 대한 관심이 청교도의 우선권 목록 중에 언제나 최우위였다.


청교도에게는 죄인들의 구원이라는 말은 단지 그들의 회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제 가운데 영적 건강과 힘과 헌신적 순종으로 성장-간단히 말해서 ‘거룩’(청교도는 이 위대한 말을 경건한 삶의 모든 국면과 범위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했다)까지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한 성직자에 대한 청교도의 세 가지 칭찬 ‘능력있고(powerful)’ ‘수고하고(painful)’ ‘유용한(useful)' 목회가 없다면 영국 백성 가운데 거룩은 절대로 현실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청교도 성직자가 일 세기 이상 동안 설교와 목회에 자신을 바친 이유였다. 그들의 추구한 대의는 개조라기보다는 부흥이었다.


‘청교도 경건 문헌의 중심 주제는 개인의 부흥이었다’. 존 다우네임, ‘그들은 설교와 문헌에서 이론과 적용에보다는 경험과 실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판단의 정보를 주고 지식을 증가시키기 보다는 주로 심령의 성화에 더 이바지하였다. 또한 경건한 생활의 의무들 가운데 실행을 분발시키고 새로운 순종 가운데 믿음의 열매를 맺는 데 이바지하였다’.


청교도 서적들의 범주로는 다음과 같은 서적들이 포함된다.


1) 복음 서적들
이 서적들은 죄와 유혹, 회개와 믿음, 회심과 중생을 다루는 것이다. 청교도 신학은 중생이라는 주제에 대한 집중으로 중생의 신학이라고 칭해져 왔다. 존 로저스의 <믿음의 교리>, 퍼킨스의 <회개의 본질과 실제에 대한 논문>, 리차드 십스의 <상한 갈대>, 윌리암 와틀리의 <새로운 탄생>, 존 플라벨의 <은혜의 방법>, 일년에 2만부가 팔린 박스터의 <살아계신 하나님의 --비회심자에게 돌아와 생명을 얻으라는 부르심>, 한 세대 내에서 7만부가 배포된 조셉 알레인의 <비회심자에 대한 경고> 등을 들 수 있다. 그들은 율법에 의한 ‘예비 작업’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2) 결의론적인 서적들
이 서적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정해진 행위 기준들을 낱낱이 기술함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선한 양심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청교도의 결의론은 매일매일의 생활에 있어서 평범한 그리스도인을 위한 것이었다. 결혼과 가정, 생업, 신비, 재물의 사용, 진리의 청지기 직분 등을 다룬다. 박스터의 대작 <훈령집>이 대표적이다.


3) 공생적 서적들
이 서적들은 ‘위로하기’, 즉 강건하게 하고 격려를 주기 위해서와 그리스도인에게 ‘승리의 보장’에 근거한 ‘즐거운 순종’을 위한 동기와 자원을 주기 위해 기록된 것이다. 이 범주로는 복음의 여러 주제들-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공로,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사역, 그리고은혜의 언약 가운데 삼위일체의 세 인격에 의해 이루어지는 구원의 역사- 을 설명하는 무수한 책들이 분류된다. 이 풍성한 내용들은 아무리 오래 되었고 난해할지라도 아직까지도 필적할 만한 책들이 없다고 나는 감히 단언한다.


전체로서의 청교도 경건 문헌은 비범하게 동질성을 나타내며 그 목적은 일관되고 있다. 그 목적은 성도들에게 소명된 순례와 전투와 선행의 생활 가운데 믿음과 회개와 확신과 기쁨의 열심을 유발하는 것이다. 개인적 부흥이라고 칭하는 것을 매우 적절한 영적 상태로 창출하고 유지시키는 것이다. 그들은 성직자를 “주님의 가족을 가르치고 먹이고 부양하며, 널리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의 양들을 찾는 주님의 사자와 파수꾼과 청지기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목회자의 선구자인 리차드 그린햄은 1570년에서 1590년까지 캠브리지 부근에서 사역하였다. 그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자신의 양떼가 일터로 흩어지기 전에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월, 화, 수, 금요일에 새벽 설교를 했다. 주일에 두 번 설교를 했고, 매주일 저녁과 목요일 아침에 교구의 어린이들에게 교리문답을 하였다. 그는 아침에는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병자들을 심방하거나, 또는 쟁기를 잡고 일하는 이웃들과 협의하기 위해 밭으로 걸어 나갔다. 그는 너무 열렬했고 비상한 노역을 하였으므로 모든 그의 와이셔츠는 물에 흠뻑 담근 것같이 땀으로 젖곤 했다. 그는 강단에서 내려오자 마자 다시 올라갈 정도로 과로를 했다. 그는 보기 드문 목회 상담자였다. 그는 괴로워하는 양심들을 위로하고 안도하게 해주는 큰 경험과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원근 도처에서 영적 고통과 유혹들로 번민하는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다. 이 신령한 의사의 명성은 널리 퍼져 매우 많은 사람들에게 부름을 받았다. 주님께서 그의 수고를 축복해 주시기를 기뻐하셨으므로 그의 지식과 경험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기쁨과 위로의 회복을 얻었다. 그러나 그의 모든 경건함과 통찰력과, 복음적인 메시지와 근면한 사역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회는 사실상 열매가 없었다. 그는 그의 후임자에게 ‘나는 한 가정 외에는 아무에게도 나의 목회로 이루어진 유익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린햄은 푸른 초장을 갖고 있었으나 양떼는 야위어 있었다.’


리차드 페어클로프는 1647년에서 1662년까지 한 촌락에서 목회했다. 그의 친구인 존 하우이가 그의 장례식 설교에서, ‘그에게는 항상 많은 성도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병든 사람들을 심방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의 책임 안에 있는 모든 가정들을 위해 시간을 할애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모든 사람과 개인적으로 그리고 따로따로 대화를 나눔으로 그들 영혼의 현재 상태를 알기 위해 노력하였고 게다가 또 교훈과 책망과 권고와 훈육과 격려 가운데 자신을 적절하게 그들에게 사용하기 위해 애썼다. 그는 이 모든 일을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힘들어하지 않고 즐겁게 그리고 철저하게 행했다. 그의 마음 전체는 자신의 일로 가득 차 있었다. 많은 해 동안 매일 그는 새벽 세 시에, 또는 더 일찍 일어나 다른 사람이 잠들어 있을 때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이것은 그가 진실로 기뻐하는 일이었다)’


이 생활 방식은 그린햄과 본질적으로 동일하였으나 이제 추수기가 이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리차드 박스터의 사역이다. 그는 1641년부터 1660년까지 키더민스터에서 사역하였다. 키더민스터는 성인 2천명 정도의 촌락인데 그들 대부분이 그의 목회에 의해 회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들을 “대부분 무지하고 교양없고 술 마시고 떠드는 사람들로-- 그들은 생명있는 진실한 설교를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목회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다. ‘내가 그곳에 처음에 왔을 때에는 한 거리에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가정은 한 가정이었으나 내가 그곳을 떠날 때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가정은 여러 거리에 몇 가정밖에 안되었다. 내가 개인 면담과 그들을 교리문답하는 일을 시작했을 때 마을 전체에서 오기를 거절한 가족은 매우 적었다(박스터는 그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지 않거나 표면상으로 경건한 삶에 대해 진지한 약속을 하지 않고 나와 헤어진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여기서 박스터가 말하는 바는 <개혁된 목사>에서 그가 묘사하고 추천하는 실행이며 또한 우리가 하우이에게서 들었고 페어클로프도 따랐던 실행으로, 곧 개인적인 영적 교제를 위해 조직적으로 가족들을 면담하는 것이다. 박스터는 한 주에 이틀을 할애하여 매일 7,8가정 비율로 이런 방법으로 가족들과 만나 매년 교구의 8백 가정들과 모두 관계를 가졌다. ‘나는 먼저 그들이 교리문답의 내용을 암송하는 것을 듣는다(그가 사용한 교리문답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이었다)’. 그 다음에는 그 의미에 대해 구두시험을 보고, 마지막으로는 가능한 한 모든 마음을 끌 수 있는 이유와 열심을 가지고 책임있는 사랑과 실천을 그들에게 강권한다. 나는 한 가족에 약 한 시간을 사용했다. 그 실행의 가치에 대한 그의 간증은 강조적이다. ‘나는 우리가 지금까지 흑암의 왕국을 분쇄하는 가장 바른 진로를 전혀 택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에게 한 나의 모든 공적 설교보다 더 뚜렷한 성공의 표적들을 알고 있다.’ ‘진실한 경건을 고백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매우 겸손한 정신과 태도의 소유자들이었다.’ 이제 공백 기간이 지나고 오랫동안 기다렸던 추수 때가 온 것이었다. 나의 마지막 논평은 이것이 바로 부흥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다.


과거에 목회자들이 중요한 역할들과 거룩한 삶을 담당하며 영혼들의 유익을 목타게 구했고, 완전히 자신을 헌신하고 자신들의 시간과 힘과 재산을 바치며 고통이나 희생을 크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곳에 많은 사람들이 진실한 경건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 연구에 있어 나의 과제를 청교도주의가 부흥운동이었다는 주장을 확실하게 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휘필드는 1767년에 썼다. ‘지난 30여년 동안 나는 국내에서나 국외에서나 보다 참되고 살아 있는 신앙이 부흥하면 할수록 더 많은 훌륭한 과거의 청교도 저술들이 요구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620년대에 앤트림에서 있었던 부흥만큼 극적인 사건은 청교도의 영국에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에 열광적인 제임스 글랜디닝은 복음을 설교하는 법도 알지 못하고 율법을 설교하여 로버트 블래어와 그 밖의 사람들이 그를 대신하여 설교를 했는데 로버트 플래밍은 이 일을 ‘복음의 밝고 뜨거운 태양의 명멸’이라고 칭했다. 또한 청교도의 영국에는 1631년 월요일 커크 오 쇼츠에 있었던 일같이 압도적인 사건도 없었다. 그때에 수줍은 존 리빙스턴은 그 전에나 그 후에 두 번 다시 설교를 하지 않았는데 한 시간 반 동안이나 설교를 했고 그 설교 후에 500명이 그의 설교에 수반된 능력에 의해 회심을 했다거나 또는 자신의 그리스도인의 삶이 변화했다고 간증했다. 1620년대 언제쯤인가 유명한 존 로저스가 청중들에게 성경을 소홀히 하는 것에 대해 질타했던 잊을 수 없는 날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입장으로 말했다. “그래, 나는 너희에게 오랫동안 나의 성경을 맡겼다. 그런데 그 성경이 아무아무 집들에서 먼지와 거미줄에 완전히 덮혀 있다. 너희는 성경을 듣는 것에 관심이 없다. 너희가 내 성경을 그렇게 사용하느냐? 좋다. 너는 내 성경을 더 이상 소유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 의자에서 성경을 집어들고 마치 그것을 그들에게서 가져가 버리는 것같이 보이게 했다. 그러나 곧 그는 역을 바꿔 하나님을 향한 사람의 역할을 취했다. 그는 무릎을 꿇고 극히 진지하게 소리지르며 간청했다. “주여, 우리에게 무엇을 행하셔도 좋지만 당신의 성경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지 마소서, 우리 자녀를 죽이시고 우리 집을 불태우시고 우리 재산을 멸하소서. 그러나 우리에게서 당신의 성경만은 남겨두시고 당신의 성경은 가져가지 마소서.” 그 다음에 그는 다시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역할을 취했다. “너희가 그렇게 말하느냐? 좋다. 잠시 동안만 너희를 시험해 보도록 하겠다. 자. 너희를 위한 성경이 여기 있다. 나는 너희가 어떻게 그것을 사용하는지 볼 것이다. 너희가 그것을 사랑하고 그것을 더 말하고 더 실행하고 더욱 그에 따라 사는지 볼 것이다.


이 말은 그곳에 있었던 토마스 구드윈이 존 하우이에게 이야기해 준 것이다. 그는 교회에 가득한 사람들이 눈물에 젖었고 구드윈 자신도 눈물을 흘렸다고 말하며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그는 밖으로 나갔을 때 말에 올라탈 힘이 없어 15분 동안 말 목에 매달려 있었다. 그처럼 비범한 영감이 그에게 임했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대체적으로 임하여 성경에 대한 태만을 고치도록 충고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청교도의 부흥은 비교적 조용하고 질서적인 역사였던 것 같다. 예외가 있다면 부흥이 절정에 달했던 1640년대와 1650년동안 지나치게 끓어올랐던 광신을 들 수 있다.


3. 청교도의 부흥


청교도 신학과 예배는 발전함에 따라 더욱 부흥의 산출물과 부산물로서의 그 특성을 나타냈다. 청교도 목회 기록에 대한 자세한 탐구는 부흥 운동에 신선한 빛을 던져 줄 것이다. 엘카나 웨일스는 “그 자신의 사람들보다는 낯선 사람들과 이따금씩 설교를 듣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더 많은 회심자를 얻었으며 전국에서 영혼을 회심시키는 데 가장 성공한 설교자”로 간주되었다. 헨리 오스랜드는 “이곳 저곳을 말타고 다니면서 열정적으로 설교하여 많은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했다.” 또한 어린이 복음 전도자인 토마스 라이는 목회를 마친 후 40년 이상 동안 “어린이에게 교리문답을 가르치는 뛰어난 재주”로 기억되었다. 이들 외에도 수백명의 인물들이 있었다. 이들은 부흥기에 활동한 부흥의 목회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내력은 우리를 청교도 운동의 바로 중심에 데려다 줄 것이다.




제 4 장 영국 청교도의 실천적 저서들


1. 국교회의 상태


1570년 ‘애정깊고 실제적인’ 목회자들과 저술가들의 아브라함이 자신의 메소포타미아를 떠나 약속의 땅을 향해 갔으니 그의 이름은 리차드 그린햄이었다. 그는 자기 도시에서 약 7마일쯤 떨어진 드라이 드레이턴의 목사가 되기 위해 켐브리지의 펨브로크 문학회의 특별 회원의 지위를 사임하였다. 그는 박스터 유형의 선구자적 개혁된 목회자였으며 진정한 사도적 방법으로 영국 농촌에 복음을 뿌리내리는 과제에 도전한 첫 번째의 유능한 인물이었다. 그는 목회 상담자. 또는 영적 의원으로서의 큰 명성을 쌓았다. 그리고 그는 수많은 다음 세대의 목회자들을 훈련시켰다. 성직 수임 후보자들이 사실상 견습생으로 그의 집에서 생활하며 그와 함께 공부했다. 지역의 목회자들과 먼 곳으로부터의 방문자들이 항상 그와 점심식사를 했다. 이렇게 그린햄은 “그리스도의 거룩한 봉사와 목회 사역에 많은 경건하고 학식있는 젊은이들을 격려하고 양성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도구요, 수단이었다.”고 홀란드는 말한다.


그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온 대학에 계속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는 캠브리지의 장로교 선동자들에 대해 철저하게 반대했다. 그들의 방침은 “기초를 세우기 전에 지붕을 덮는 것과 같다.” “자신을 개혁할 줄도 모르는 자들이 교회를 개혁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어떤 자들은 교회 기율에 바빠서 자신의 사적인 타락을 보지 못한다.“. 캠브리지에서의 그의 모든 영향력은 인격적인 신앙과 교회의 평화를 조장하고 죄와 교회의 분립을 막는 데 기울어졌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평화에 반하는 것은 무엇이나 심지어 자신이 공감하는 견해들까지도 유감으로 생각하고 반대하였다. 그가 요청한 모든 것은 자기 양심에 순종하고 자기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유였다. 그는 영적 암흑으로부터 지역을 인도해낼 청교도 목회자들의 새세대의 전형이었다.


다른 반 세기 이상에 걸쳐 캠브리지는 그린햄 형의 많은 영적 의원들을 만들어냈다. 최초의 그들의 양성소는 그리스도의 대학이었다. 로렌스 체덜턴은 캠브리지의 재학생 시절에 신교도가 되었고 1584년 임마누엘 대학의 초대 교장이 되기 전에 20년의 가장 좋은 기간 동안 캠브리지에서 특별 연구원으로 있었다. 채덜턴은 50년 동안 성 클레멘트 교회에서 한 주에 한 번 ‘강의’(설교)를 했다. 그리고 82세에 설교를 그만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는 40명의 성직자들에게서 설교를 그만두지 말기를 간청받으며 자신들이 그의 사역의 덕택으로 회심을 하였다고 증거하는 서신들을 받았다. 풀러가 말하는 바에 의하면 채덜턴은 언젠가 두 시간 동안 설교를 한 것에 대해 사과의 말을 하자 청중들이 “하나님을 위해 계속해 주십시오, 계속해 주십시오”라는 눈물의 외침을 들었다고 한다. 1574년부터 웨드스필드에서 목회를 한
‘또 한 명의 그린햄’, 리차드 로저스와 윌리암 구쥐와 존 프레스턴의 선도자이며 아쉬비델라 주크에서 40년 동안 설교했던 아더 힐더샘도 그리스도의 사람들이었다. 재학생 시절에 회심하여 1584년 특별 연구원이 된 채덜턴의 제자 윌리암 퍼킨스도 그러했다. 퍼킨스가 1602년 사망했을 때 뒤를 이어 성 안드레 대교회에서 매주 강의했던 또 한 명의 그리스도의 사람 폴 베이네스는 리차드 십스를 설교로 회심하게 했고, 리차드 십스는 존 코턴을 설교로 회심시켰고, 존 코턴은 존 프레스턴을 설교로 회심시켰다. 구드윈이 1613년에 20세의 나이로 그리스도의 대학에 왔을 때 청교도로 칭해지는 여섯 명의 특별 연구원 교수들을 자랑하고 있었다. 교장인 메인브릿지가 한 회개에 대한 설교는 곧 구드윈 자신을 회심시키는 수단이 되었다. 채덜턴, 로저스, 힐더샘, 퍼킨스, 구쥐, 베이네스, 십스, 코턴, 프레스턴 그리고 구드윈 모두는 ‘애정깊고 실제적인’ 목회자와 복음 전도자들 중에 모범적인 역할을 하는 지위를 얻었다. 이렇게 캠브리지 운동은 항상 영적 깊이를 유지하며 또한 숫적인 힘을 모으면서 진행되었다.


놀라운 일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슬픈 사실은 이 존경할 만한 인물들에게서 본을 받은 젊은이들이 목회를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몇몇 캠브리지 대학생이 1586년 의회에 낸 탄원은 이 문제에 있어 행동을 요구한다.


현재 우리 대학에는 이 땅의 대부분에 있어 해결되어야 하는 공통 과제인 무지한 백성을 가르치는 것을 위해 충분한 은사를 갖춘 유능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사람들 중에 공정하고 동등한 조건으로 이 직무에 부름을 받는 자는 거의 없다. 무식한 목회자일 뿐만 아니라 인간 쓰레기인 자들은 수천의 영혼들의 파멸과 하나님의 교회의 수치와 학문의 완전한 멸망을 오히려 좋아한다. 우리 자신이 책임을 맡는 어떤 수단들을 사용한다 할지라도 성직 임명자들의 탐욕이 이처럼 만족을 모르기 때문에 성직 매매, 거짓 서약, 나아가 거의 명백한 동냥의 방법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따라서 일꾼이 크게 부족한 가운데 우리는 하루 종일 시장에 우두커니 서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도 우리의 수고를 사용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우리 교회의 상태는 이처럼 탄식할 수 밖에 없다.


아무런 공적 행동이 취해지지 않았으나 이 젊은 청교도들에게 설교직을 주기 위해 많은 교구들에 강사직이 생겼다. 그리하여 엘리자베스, 제임스 그리고 찰스 시대에 영국 도처에 복음의 누룩이 퍼져나갔던 것이다.


2. 청교도 저서들


모든 사상 운동은 그 자체의 문헌을 필요로 하는데 청교도 운동도 예외가 아니었다. 명쾌하고 단순한 문체의 은사를 받은 퍼킨스는 이 점에 있어 선구자였다. 1589년 그는 청교도의 경건을 장려하기 위해 설교 형식으로 쓰여진 일련의 대중적인 책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정죄의 상태에 있는지 아니면 은혜의 상태에 있는지를 선포하기 위한 논문>, <금사슬 이론; 구원 계획에 대한 칼빈주의적 연구>, <영적 방치>, <육과 영의 전투>이다.
뒤를 이어 리차드 로저스는 <7개의 논문--이생과 장래의 생 모두에 있어 참된 행복으로 가는 인도와 안내--기독교 신앙의 실행--그 중에 가장 특별히 참된 그리스도인은 매일 경건하고 편안한 삶을 영위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기독교 신앙의 실행>을 썼다. 존 다우네임은 <그리스도의 전투>를 썼고, 아더 덴트의 <천국으로 가는 인간의 평탄한 길>, 루이스 베일리의 <경건의 실천>, 존 도드와 로버트 클리버의 <십계명>이 있다. 목회자들은 자신들의 설교와 동일 수준인 평신도 수준으로 저술함으로 곧 매우 넓은 독자층을 획득할 수 있었고 17세기 전반에 있어 그들의 서적들의 영향력은 원대하고 깊었다.


두 세대에 걸친 청교도 서적들의 영향력은 그린햄의 드라이 드레이턴 목회와 박스터의 키어민스터 목회를 비교해 봄으로 어느 정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린햄은 20년 동안 수고하였으나(1570-1590) 사실상 열매가 없었다. 박스터는 14년 동안(1641-1642,1647-1660) ‘그때까지 생명력있고 진지한 설교를 들어본 적이 없는’ 상황에서 사역하여 약 8백 가정과 2천여명의 건강한 성인들이 살고 있는 그 지방의 대부분에서 “나는 얼마나 가치없는 벌레와 같은 존재인가--나의 어린 시절의 존경하는 목회자들이 한 곳에서 50년 동안 수고하고도 자신들의 교구에서 한 두명의 회심자를 얻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처럼 풍성하게 나를 격려해 주시다니!”라는 의미심장한 고백을 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경우에 있어 사용된 방법은 근본적으로 동일했다. 박스터도 강단에서나 개개인들과의 교제에서 ‘나 자신과 지역 주민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하며’ 평생을 보냈다고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세대의 청교도 설교와 경건한 저술들에 발효된 박스터의 영국은 그린햄의 영국과는 다른 곳이었다. 묵은 땅이 파헤쳐져 수십 년 동안 충실하게 씨가 뿌려져서 이제 추수기가 이른 것이었다. 그린햄과 로저스와 같은 사람들을 목회로 인도했던 회심된 공동체라는 박스터의 목회 비전이 결국 그 성취를 보게 된 것이다.


공화국 시기 동안 영국의 많은 지역에 추수의 태양이 밝게 비추었으나 곧 폭풍의 구름이 다시 몰려와 ‘애정깊고 실제적인 영국 작가들’의 역사는 행복하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어두운 그림자에 덮혀 끝이 난다. 1640년대에 정권을 잡은 청교도들은 개인적인 신앙에 대한 견해에 있어서는 일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는 일치하지 못했다(이것이 크롬웰이 그 자신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던 바와는 반대로 마음 내키지 않는 독재자가 되어야 했던 이유였다). 또한 하나님의 교회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함에 일치하였으나 교회 종류에 있어서는 일치하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괴한 행동들과 광신이 들어와 청교도의 계획을 망쳐 버렸다.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양심이 지배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으나 이제 평신도 지도자들은 성경을 인용하여 내적인 빛의 인도들을 확인했다. 목회자들은 영원의 빛 가운데 땅에서 사는 기술을 가르쳐 왔으나 이제 열심파들은 17세기에 영국에 이루어지는 천국을 보는 꿈을 꾸고 있었다.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생각을 선포하는 설교자의 직분을 높여 왔으나 이제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영감을 받는 대로 자기 생각을 담대하고 무제한적으로 공공연하게 발표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설교자들은 성령이 없는 학문은 성경의 깨달음을 주지 않는다고 설명해 왔으나 이제 교육을 통해 부적격자도 성경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 교육을 받고 신학적으로 학문을 갖춘 청교도 목회자들이 이 경향들에 대해 반박하자 퀘이커교도들, 광적인 설교자들, 머글레토니안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자들은 청교도 목회자들이 성령을 소멸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스터는 이 모든 내용을 망라하고 있는 인쇄물들의 활동에 무엇인가 마귀적인 것이 있다고 보았다. 1653년에 “나는 최근 인쇄물의 방종하고 사치한 범람은 전에 사람들에게 읽혔던 분별력있고 경건하고 뛰어난 저술들을 매장시키고 압도해 버리려는 대적의 계획이라고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한다.”고 하였다. 정치적으로나 영적으로나 혼란과 불안이 만연하고 있었다. 청교도 부흥은 스스로의 힘을 소모하고 있었다. 크롬웰이 죽자 더 이상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는 것같이 보였다. 왕정과 영국 국교회의 의 복고는 필연적인 반동으로 1660년 어김없이 이루어지고 말았다.


목회자들에게 있어 이 결과는 재난이었다. 무시무시한 클래런던법이 그들을 몰아내고 억압하였다. 그들이 영국 국교회 밖에서 지속하던 사역은 불법이 되어 그들을 한꺼번에 감옥으로 밀어넣어졌다. 존 오웬, 토마스 구드윈, 존 하우이, 리차드 박스터, 스티븐 차녹과 같은 위대한 목회 신학자들은 이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많은 저술을 했고 번연의 훌륭한 우화들도 이 시기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목회자들이 영국 교회에 전혀 동조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학들은 그들과, 또한 그들과 함께 하는 젊은 비국교주의자들에게 문을 잠그었다. 그 결과 그들은 자기들의 동류를 효율적으로 재생산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빛을 향해 비틀거리며 나아가던 조직화된 비국교주의는 자유가 도래했으나(1689) 그들의 선구자였던 청교도 사상의 장성함에 이르지 못하고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1705년 마지막 거인인 존 하우이가 죽었을 때 청교도 운동도 끝이 났다.


3. 청교도 저술가


경건한 청교도 저술가들 중에 리차드 박스터는 처음부터 내용과 양식 모두의 장엄함에 있어 뛰어난 것으로 인정받앗다. 문체의 명쾌함과 힘, 질서와 열정, 지혜와 온정, 넒이와 깊이, 목회자의 신실성과 권위는 그의 모든 ‘애정깊고 실제적인’ 저작들에 함께 나타난다. 첫 번째의 저서 <성도의 영원한 안식>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기독교 훈령집>과 <빈자의 가정서>, <가정교리 문답> 이 시리즈는 청교도 경건 서적의 정점이며 청교도의 영적 가르침의 영향을 받는 넓은 세계에서 길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손쉽고 편리한 지도서로 기여할 것이다.




4. 청교도의 실천신학


청교도 실천 신학은 유럽 대륙의 개신교도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대륙의 교회들이 청교도의 실천신학을 얼마나 크게 평가했는가는 그들의 번역들의 수를 볼 때 알 수 있다. <경건의 실천>은 계속 유럽어들로 번역되었다. 퍼킨스의 영어 작품들은 라틴어, 화란어, 스페인어, 아일랜드어 그리고 웨일즈어로 번역되었다. 박스터는 폴란드와 항가리까지 널리 읽혀졌다. 청교도의 실제적인 저서들이 온 유럽 전체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것은 우리도 그 가치를 깨달으려는 준비를 하게 한다.


이 경건 문헌이 단순하게 표현되었고 어떤 전문 지식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중적이었으나, 부정적인 의미에서 대중적이지는 않았다. 청교도 저자들은 박학하고 정신력이 강하고 책을 많이 읽는 퍼킨스의 전통을 따르는 학자적인 사람들이었다. 퍼킨스는 그의 시대에 서유럽 전체에 최고의 개혁 신학자로 알려졌다. 전세계가 아는 바와 같이 그들은 교회 질서에 대한 문제들 뿐만 아니라 교리에 대한 문제들에 있어서도 대논변가들이었고 이러한 논변을 자신들의 목회에 필수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성경의 진리는 영양을 주는 것이며 인간의 그릇된 생각은 죽이는 것이므로 신령한 목자는 어떠한 희생을 치루더라도 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존 오웬은 말한다. “목회자들에게 있어 진리, 곧 교회에서 받아들이고 고백하는 복음의 교리를 보존하고 모든 반대에 대해 진리를 변호하는 것은 의무이다. 이것은 목회에 있어 한 가지의 중요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이 의무에 대한 죄악된 태만은 교회를 해치고 타락시켜 온갖 간악한 이단과 그릇된 생각들의 큰 원인이 된다.” 오직 진리의 직접적인 해설과 적용만이 긍정적인 방법으로 덕성을 함양하는 것이다. 청교도 실천 서적들의 고의적인 단순성의 뒤에 명석하고 학문깊은 신학자들의 배려와 능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이 문헌의 참된 가치를 평가하는 준비를 갖추게 된다.


다섯 가지의 결정적인 자질들로 인해 청교도 저자들은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며 그들이 지금까지 현대의 독자들에게 주는 메시지를 이룩하게 되었다.


1) 그들은 영혼의 의원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된 진리가 죄인들의 삶에 치유의 능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퍼킨스가 신학을 “영원히 복된 삶의 과학”으로 정의할 때 이 모든 것을 말한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지식에서 기인하는 생명은 복되도다”라고 덧붙인다. 즉 신학은 본질적으로 실천적인 문제이며 직접적으로 실제적인 목적을 갖고 연구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이다. 복음의 교리는 순종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성경적인 신학자는 가장 실천적인 신학자이며, 가장 실천적인 신학자가 가장 성경적인 신학자일 것이다. 그리고 도처에 실천적인 적용과 도전들을 수반하는 설교 형식이 가장 성경적이며 신학적인 방법일 것이다.


청교도들은 순종된 진리는 낫게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영적으로 병들었기 때문이다. 이 병은 죄로 말미암은 것이다. 죄는 심령을 황폐하게 하여 죽이는 질환이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죽을 병에 걸린 자들이다. 그리스도를 알게 되어 중생한 자들도 여전히 병에 걸려 있지만 은혜의 역사가 그들의 삶에 계속됨에 따라 점차적으로 나아지게 된다. 그러나 교회는 아무도 완전히 건강한 사람이 없고 누구나 항상 병이 도질 수 있는 병원이다. 목회자들은 세상과 육체와 마귀의 압박에 의해, 그리고 그들의 이익과 쾌락과 자만으로 인해 그들 자신도 성경의 약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단계에 있는 자신들의 영혼을 위한 약으로서의 성경 진리를 필요로 한다.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자기 반성과 자기 지식은 그들의 심령을 얼밀히 조사하여 죄를 못박고 그리스도의 치유의 능력이 어떻게 우리를 도덕적인 악과 영적 악으로부터 구출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숙련된 기술의 비결이다.


2) 그들은 양심을 향한 해설자들이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교리)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양육, 훈련)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성경 자체에서 터득된 청교도 설교학은 기록된 말씀을 우리에게 하나님과 인간의 본질과 상호 관계를 제시하는 것이며, 사랑의 언약 관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현실이 되는 길이며, 일단 이 관계가 현실이 되었을 때 그에 따라 사는 방법이라고 보았다. 청교도의 해석 방법은 본문이 제시하는 교리들- 즉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대한 원리들- 을 설명한 다음 그 교리들을 적용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청교도 저자들을 ‘실제적’, 또는 ‘실천적’이라 칭한 이유이다. 그들의 적용들은 양심, 즉 스스로 판단하는 실천 이성, 각각의 현실적 순간에 있어 자신의 의무와 자신의 공과와 자신의 하나님과의 실제적 관계에 대한 질문들을 심사 숙고하는 이성을 향한 것이었다. 청교도는 이것이 성경을 해석하는 성경적 방법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들은 말씀된 신령한 진리에 대한 이해와 확신을 부여함으로, 자기 판단 과정을 시작케 함으로, 그리고 내려진 판단에 적절한 응답을 유발시킴으로 말씀을 존귀케 함에 있어 성령께 의지하였다. 이 응답들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전 영역에 미치는 것이었다. 곧 회개, 겸손, 자기 불신, 자기 부정, 헌신, 순종, 찬송, 감사, 간구 여기에 인간의 하나님께 대한 집착과 하나님과의 교제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성향의 ‘애정’(단지 지나가는 감정의 기복이 아니라 정서를 수반한 심령의 확고한 기울임)이 추가된다. 청교도의 이 성향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와 이 성향들(기쁨, 슬픔, 갈망 등등의 특유한 대상을 지향하는 성향들)을 일깨우고 강화하려는 그들의 끊임없는 노력은 이 저자들이 ‘애정깊은’ 저자들로 칭해진 이유를 설명해 준다.


틴데일은 말한다. “성경은 자체에 대해 증언하였고 언제나 또 하나의 밝혀진 본문에 의해 자신을 해석했다”. 해석의 열쇠는 믿음에 의한 칭의이며 들어가는 문은 로마서이다. 틴데일은 로마서를 ‘성경 전체를 밝히는 빛이며 전체로 통하는 길’이라고 칭하고 로마서에 대한 루터의 판단을 “밝은 빛, 모든 성경을 밝히기에 충분한 빛”이라고 번역한다. 이 해석의 원리들은 퍼킨스에 의해 청교도 형제들에게도 전달되었다. 그는 만일 로마서로 공부를 시작하고 그 다음에 요한복음을 공부한다면 전체 성경을 여는 열쇠를 소유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원리들은 사실상 모든 청교도의 성경 해석에 있어 공리였다는 것이 분석 결과 드러났다.


청교도의 믿음- 칭의로 이어지고 그리스도인들이 매일 그에 의해 생활하는 믿음- 에 대한 설명은 모든 면에 있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믿음의 초점과 활동과 열매들에 대한 청교도의 설명은 칭의와 관련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점에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 말씀의 빛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보시는가 하는 것과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언약의 자비 가운데 하나님과 관련될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양심과 관련하여 구성되었다.


개혁자들이 교회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대한 교리의 고전적 조직화를 이루었다고 보는 사람들은 청교도들이 믿음과 양심에 대한 이해와 인간의 영적 요구에 그 교리를 적용하는 것에 대한 이해를 통해 고전적으로 설명한 대표자들이라고 칭해야 마땅할 것이다. 개혁자들이 고전적인 신학자들이라면 청교도들은 고전적인 목회자들이며 신령한 안내자들이라는 사실을 그들의 저서들을 읽은 사람은 누구나 곧 깨달을 것이다.


3) 청교도들은 정신 교육자들이었다. 이 점은 그들의 교육 방법과 관련이 있다. 17세기와 18세기는 교육 이론에 대해 많이 생각한 시기였다. 출발점은 믿음과 순종이 가능할 수 있게 되기에 앞서 정신을 가르치고 교화해야 한다는 그들의 확신이었다. 박스터는 “무지는 거의 모든 죄이다”라고 기술했고 설교에 대해 그가 즐겨 사용하는 금언들 중의 하나는 “먼저 불을 붙인 다음에 뜨겁게 하라”는 것이었다. 불꽃이 없는 열기, 교육학적 정밀성을 갖추지 않은 설교의 열정은 아무에게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교회 출석자들의 쪽으로 볼 때 설교에서 믿음을 배우고 교훈을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것은 불성실의 표적이다. “만일 당신들이 회개를 했다면 참된 지식을 얻기 위해 수고하라”고 박스터는 노동자 신도들에게 말했다. 그는 말했다. “사리를 아는 영혼을 소유하고 있는 모든 사람은 박식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그를 만드셨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그가 사는 목적을 알아야 하며, 그의 영원한 행복으로 가는 길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에서 자신의 뜻을 그대들에게 명백하게 나타내셨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무지함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대들이 학자가 아니더라도 그리스도인이 되는 법을 알아야 한다. 그대들이 만일 지식에 면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사랑과 모든 순종에서도 면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식이 없다면 이것 중 어느 것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대들이 직업에서 일하는 법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하늘의 일들의 지식을 얻고 싶어한다면 오늘이 가지 전에 이를 시작할 것이며 그것을 얻기까지 어떠한 희생이나 고통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은 자신의 직업을 익히는 데는 7년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구원에 대한 문제들을 부지런히 배우는 데는 칠 년 중 하루도 바치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청교도들은 지식없는 종교적 감정이나 경건한 정서는 무익하기보다 악한 것으로 생각했다. 오직 진리를 느끼고 있을 때의 정서라야만 바람직한 정서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진리를 느끼고 순종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이고 지식없는 감정에 의해 지배될 때 그것은 마귀가 역사하고 있는 확실한 표적이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순종 없는 지식이 영혼에 파멸을 초래하는 것과 같이 지식과 분리된 감정과 어두운 정신의 충동들도 영혼에 파멸적인 것이다. 진리를 가르침이 목회자의 제일 과제인 것처럼 진리를 배움은 평신도의 제일 과제다.


4) 청교도는 진리의 시행자들이었다. 그들은 재치있는 설교자들이 옥스퍼드와 캠브리지와 궁정에서 얻는 명성을 버렸다. 그 대신 그들은 자신들의 메시지를 위해 명백하고 솔직한 형식, 엄숙하지만 활기있고 소박한 형식을 택했다. 구드윈은 회심 후에 자기 과시를 포기했다. “나는 재치의 허식과 웅변의 허영이 없이 완전히 확실하고 건전한 말로 설교하겠다는 이 확고부동한 원칙에 도달했다.” 이것은 전형적이었다. 하나의 집단으로서 청교도는 설교자가 할 일은 자신의 학식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를 나타내는 것이며 자신이 박수 갈채를 받기 위함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 설교를 계획하는 것이라는 점에 있어 명확하였다. 그러므로 청교도 설교는 성경 신앙의 세 가지 즉 타락, 구속, 중생을 중심으로 회전하였으며 이 복음 진리들에 고의적인 단순성이라는 눈부신 옷을 입혔다.


존 플라벨은 말한다. “십자가에 못박힌 문체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설교자들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 신중성은 화려한 단어들보다는 딱딱한 단어들을 택한다. 단어는 내용의 종에 불과하다. 바위의 자물쇠에 꼭맞는 강철 열쇠는 보물 창고의 문을 열지 못하는 황금 열쇠보다 더 유용하다. 신중성은 양심을 꿰뚫고 심령에 도달하는 하나의 단어를 위해 천 개의 세련된 단어들을 버린다.” 우리도 평범성이 하나님의 열정과 능력의 통로라는 것을 경험한다.


5) 청교도들은 성령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고 주님의 법을 지키는 사람들이었고 주님을 섬기는 데 자신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이것은 모든 시대에 있어 진정으로 성령충만한 삶의 주된 세 가지 특징이다. 박스터의 <개혁된 목회자>는 목자들에 대한 다음과 같은 권고들로 시작한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결여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또한 여러분의 은혜가 활발하고 생기에 넘쳐 계속 발휘토록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설교하기 전에 연구한 설교를 자신에게 하라. 그러므로 자신의 심령을 지켜보라. 육욕과 정욕과 세속적인 기호들이 들어오지 않도록 하라. 믿음과 사랑과 열심의 삶을 유지하라. 집에서 하나님과 많이 거하라. 여러분의 모범이 여러분의 가르침과 모순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여러분의 생활이 여러분의 혀로 말한 바를 취소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우리는 설교를 잘하는 법을 열심히 연구하는 것처럼 잘 생활하는 법도 열심히 연구해야 한다. 우리는 설교를 구성하는 법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구원에 가장 많은 도움이 되는 우리의 생활을 구성하는 법을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실제로 위대한 청교도들이 행한 바였다. 그리고 그들의 저술들은 그들의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성에 대해 증거한다. 존 오웬은 다음과 같이 썼다. 자신의 영혼에 설교를 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 설교를 잘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음식을 자신이 먹고 잘 소화시켜 보지 않은 사람은 그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주지 못한다. 말씀이 우리 안에 능력으로 거하지 않으면 우리에게서 능력으로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퍼킨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한 삶이 없는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무익하다. 목회자들은 자신들의 납같은 생활이 해를 주는 것만큼 그들의 금같은 말이 유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박식하고 거룩한 성직자보다 더 존경스러운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방종하고 음탕한 생활로 자신의 가르침을 수치스럽게 하는 사람보다 더 경멸하여 마땅하고 그로 인하여 더 비참하게 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칼빈은 말했다. “만일 그가 하나님을 따르는 데 첫째가 되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면 강단에 올라갔을 때 목이 부러지는 것이 그에게 더 좋을 것이다.”


청교도 교육자들은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이에 따라 행동했다. 그들은 뛰어나게 거룩한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인쇄된 말이 전하는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 자체의 권위일 뿐 아니라 그들이 성경의 조명하고 적용하는 힘으로 인정한 하나님의 능력으로서의 경험적인 성경의 권위이기도 했다. 청교도들이 타인들의 심령과 양심에 말하는 바는 그들이 가르쳐야 하는 진리를 철저하게 자신의 심령과 양심에 실행한 다음에 나온 것이었다. 그들은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2:17)고 하는 바울의 공식을 이행했다.


영적 권위는 말로 꼭 집어서 나타내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권위와 마주칠 때 알아볼 수 있다. 영적 권위는 성경에 대한 양심의 신실성과 합성된 산물이며, 하나님의 실재와 위대성에 대한 생생한 인지이며, 하나님을 존귀하게 하고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확고한 열망이며, 깊은 자기 조사와 철저한 자기 부정이며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교제를 사모함이며, 인간을 향한 편견없는 동정이며 하나님께서 가르치시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솔직한 순진성, 곧 솔직성에 있어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반면에 지식에 있어서는 성인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신적 권위에 복종함으로 권위를 소유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의 원형은 죽음과 같은 무거운 짐 아래에서 초자연적으로 일으킴을 받은 세례의 형태이다.


위대한 청교도들은 그들의 시대에 이 원형으로 살며 나쁜 건강과 환경적 혼란과 빈궁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나태한 심령과 싸우며 ‘생명과 빛과 능력으로’ 복음을 전했다. 그러므로 3세기 반후에 그들이 설교를 위해 준비한 바를 읽는 우리들은 그들의 권위가 우리에게도 여전히 다가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애정깊고 실제적인 영국 작가들’의 저술들을 참조하는 것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그의 시야는 밝아지고 그의 생각은 정화되고, 그의 심령은 분발된다. 그는 겸손하여져 가르침을 받아 활기를 얻고, 회개 가운데 낮아지고 보장 가운데 높아진다. 이보다 더 유익한 경험이 어디 있겠는가? 오늘날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슬프게도 라오디게아인들이다. 그들은 자만하고 잠들어 있고 천박하고 숨이 막혀 있다. 우리에게는 부흥이 필요하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 영혼의 창문을 열고 17세기의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바람직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나는 제안한다. 106


제 2 부 청교도와 성경


제 5 장 존 오웬의 하나님으로부터의 의사전달


1. 청교도 존 오웬


존 오웬은 청교도 신학자들 중에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성경에서 파악된 인류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들을 드러내는 견실함, 심오함, 당당함 그리고 위엄에 있어 그와 필적한 사람이 없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규범들과 발전된 경건의 이상과 완전하게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청교도 주류의 중심에 위치한다. 존 칼빈과 유사했다.


2. 의사전달


오웬은 의사전달이라는 단어를 인간에 대한 모든 신적 은혜의 수여를 망라하여 사용했다. 내가 탐구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에게 오는 인식적 의사전달에 대한 오웬의 기술이다. 즉 성경과 말씀에 대한 교리,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간들을 이끄사 자신을 이해하게 하시고 영적 실재의 세계를 이해하게 하시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


오웬은 그의 시대의 개혁 신학자들에 일치하며 그리고 분명히 성경과 일치하여 하나님의 마음과 인간의 마음과의 직접적이 화합과 일치를 추정한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으로 이야기하실 수 있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한계 내에서 우리의 사고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떠한 의미에 있어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측량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생각들이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해 말씀하시는 바와 일치되는 한 그 생각들은 정확하며 하나님에 대한 실제적 지식, 우리의 하나님과의 실제적 관계에 중요한 지식을 이룬다.


그러나 오웬은 모든 주류 개혁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여기에서 문제를 인식한다. 우리 안의 죄, 아담에게 물려받은 유산인 인류의 기질 가운데 있는 반하나님적 충동은 행동의 결과일뿐 아니라 순수 지성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이 죄 또는 충동이 신약성경이 마음의 ‘강퍅’과 ‘완악’이라고 칭한 보편적 무반응을 낳는 것이다. 따라서 단지 이성적인 교육은 무효하다. 오직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에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여시는 성령의 조명만이 하나님께서 선포하시는 일들에 대한 확신과 깨달음과 동의를 일어나게 한다. 타락한 인간 정신의 비참한 무지와 왜곡에 대해,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신령한 일들의 효과적인 전달이 언제나 있을 수 있기 위해, 성경의 설교자와 교사와 청중과 학생에게 역사하셔야 한다는 절대적 필요성에 대해 오웬보다 더 예민한 의식을 갖고 있는 청교도는 없었다.


오웬의 신적 의사전달 개념은 다섯 개의 표제 아래 분석하면 편리하다. 1) 계시를 주심, 2) 성령의 영감, 3) 성경의 인증, 4) 성경 신앙의 확립, 5) 성경의 해석


3. 계시


오웬은 ‘계시’라는 말을 하나님께로부터 직접적인 정보를 주는 전달, 다른 방법으로는 알려질 수 없는 일들을 드러내는 것으로 사용했다. 그 전달은 음성, 또는 간혹 꿈이나 환상이 동반하는 내적인 감동에 의해 수령자들에게 전달되었다고 한다. 오웬은 이런 종류의 모든 계시들을 ‘예언’이라는 항목 하에 일괄적으로 다루고 ‘예언자’는 신적 계시들을 수시로 받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이 계시를 주는 것은 ‘모든 신적 계시들의 직접적인 장본인’이신 성령의 역사였다. 계시들에 신적 기원에 대한 확증이 수반되었다는 것은 기록들을 볼 때 분명하다. 그 내용이 아무리 불가해하게 보일지라도 절대적인 신봉과 순종을 요구하는 것으로 스스로 증거하였다. 오웬은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 생각, 의지 또는 신탁들의 해석자이며 타인들에 대한 선포자들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교회에 일반적으로 유익한’ 이 계시들이 기록되었고 구약성경은 현재의 규모에 이르기까지 발전하였다. 유사한 과정에 의해 신약성경도 생겨났다. 성령께서는 사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권고를 무오하게 받아 이해하고 선포하고’ 그 다음에 그들이 후시대의 교육을 위하여 알고 있는 바를 기록할 수 있게 하였다.


일단 성경이 쓰여지고 예언자와 사도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가 완성된 다음에는 새로운 진리에 대한 개인적인 계시의 필요성은 없게 되었다. 오웬은 그 이상의 계시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믿었다. 그는 말씀과 별도로 또한 말씀을 초월하여 받을 것으로 상상하는 계시를 믿는 퀘이커교도들과 같은 자들의 ‘광신’에 반대했다. 이 모든 점에 있어 오웬은 칼빈 이후의 개혁주의 해석의 정상적인 노선을 따른다.


‘성령의 영감’에 대해서.
그는 ‘영감’을 계시가 구두로 그리고 기록으로 주어져 받아 전달되는 성령의 고취(inbreathing)로 정의한다. 이 과정 동안에 영감의 지배를 받는 인간은 비독창적이라는 의미에 있어 수동적이라고 오웬은 말한다. 비록 심리학적 의미에 있어 그들의 정신은 능동적이지만 그들은 성령에 좇아 작용되고 있으며 또는 오웬이 말하는 대로 단순히 ‘성령에 의해 작용되며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고’ 있는 것이다(벧후1:21).


인간은 악기의 줄을 조율함으로 성경의 손가락의 감동들을 바르게 받아 성령께서 의도하는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인간들의 기능들을 친히 활동시키심으로 그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하지 않고 성경의 말씀들을 표현하도록 사용하신다.


그러나 이 완전한 신적 주도와 통제가 기록자의 인격과 개성이 말살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성령께서는 인간들의 마음에 역사하실 때 그들을 강압하시거나 또는 그들 자신의 본성과 다른 방식으로 그들을 움직이시지 않고 그들의 갖고 있는 재능과 자질들이 결합하여 사용되고 활동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그들에게 암시하시는 단어들은 그들에게 익숙한 단어들이며 또한 성령께서는 그들에게 낯익은 표현들을 사용하게 하셨다. 우리는 그들이 단어와 표현을 선택할 때 자신의 정신과 이해력의 능력들을 사용했다고 가정해도 좋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힘써 아름다운 말을 구했다(전12:10). 그러나 인간 자신들보다 인간들의 생각과 기능들에 대해 더 잘 아시는 성령께서는 그들이 고른 단어들이 마치 음성으로 들려지는 것처럼 직접 분명하게 성경의 말씀과 같이 되도록 그들 안에서 인도하시고 조종하셨다.


그러므로 성경 기록자들의 저작들의 궁극적인 저자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들이 알린 율법, 그들이 전한 교리들, 그들이 준 교훈들, 그들이 기록한 역사들, 그들이 발표하고 계시한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들, 복음 시대에 대한 약속들은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었고, 그들이 생각한 것이 아니었고, 그들의 이론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었고, 그들이 들었던 바의 기억들 속에 간직되었던 것이 아니었고, 전에 그들이 이해한 것도 아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나온 것이었다. 그 내용들이 수용에 있어 그들이 이성적 능력들은 단지 수동적인 협력을 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영감은 내용적이며 축어적이다. 즉 내용 뿐만 아니라 단어들도 직접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다. “성경에 담겨진 교리와 그 교리가 전달되는 말도 완전히 하나님의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안에서 성경으로(in it and by it) 말씀하신다.”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마음의 초자연적이며 직접적인 계시’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이 의미이고 이 때문이다.


족장들에게 임한 계시들과 예언자들과 사도들의 영감받은 설교들이 그 최초의 수령자들에게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믿음의 대상들이었던 것과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믿음의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대상이다. 모든 믿음은 증거에 대한 동의라는 본질을 갖고 있고,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동의,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믿음에서 꽃피워난 기독교 신앙은 그 근원에 있어 하나님의 증거에 입각한 복음의 진리에 대한 동의를 갖고 있다고 오웬은 말한다. 따라서 이 믿음은 ‘인간의 믿음이 아니라 신성한 믿음’이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믿음은 그리스도인의 고백이 근거하는 기초가 -즉 성경의 증거가- 하나님 자신의 자신에 대한 무오한 증거라고 인정하는 데서 솟아나는 신성한 믿음이다. 따라서 성경이 가르치는 신성한 진리를 믿는 신성한 믿음의 근거는 성경의 권위의 원천인 성경의 ‘신적 기원’이다. ‘신적 기원’은 성경이 쓰여지게 하실 때 그 내용을 ‘말씀하셨다’는 것만이 아니라 지금도 같은 내용을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성경은 모든 세대에게 그 시대의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기록된 말씀의 진리와 권위를 믿는 신적인 믿음을 요구하신다.


4. 성경의 인증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믿는 믿음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께서는 ‘외적’ 증거와 ‘내적’ 증거라는 이중적 효력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신령한 믿음에 역사하신다. 성령의 내적 증거는 ‘인간들이 믿을 수 있도록 인간의 마음에 작용하시는 성령의 내적 역사’이며, 외적 증거는 ‘성경의 신적 기원에 대해 성경 안에서 그리고 성경에 의해 증거하시는 동일한 성령의 외적 역사’이다. 전자는 후자를 전제하며 또한 상관적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모두 고전적 개혁주의 교리의 진술인데, 칼빈이 최초로 <기독교 강요>에서 성경에 대한 믿음의 근거로 성령의 증거를 말함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칼빈은 외적 증거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웬의 탁월한 점은 성령의 외적 증거에 대한 강조이다. 오웬의 교리는 성경에 대한 성령의 이중적 증거이다.


성령의 외적 증거.
“모든 성경의 직접적인 저자이신 성령은 안에서 그리고 성경에 의해 신령한 진리와 성경의 기원에 증거를 하셨다. 즉 성경에 가동된 신적 권위와 정확성의 특징들에 의해 그리고 성경의 능력과 효력 안에서 그 특징들 자체를 증거하시는 것이다.” 성령께서 이 효력을 어떻게 이루시는가? 세 가지 활동으로 하신다.
① 성령께서는 성경에 불변하는 “빛”의 특성을 부여하신다. 오웬은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벧후1:19),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시119:130)등 유사 구절들을 인용하여 빛으로서의 성경을 나타낸다. 빛은 그 본질에 있어 자기 증명적이다.
② 성령께서는 성경에 ‘권능’을 주심으로 신령한 결과들을 낳게 한다. 성경은 인간의 삶을 분쇄하고 재창조하는 영향력에 의해 자신의 신적 기원을 증거한다. 오웬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너희를 든든히 세우사”, “하나님의 능력”(히4:12,행20:23,고전1:18)의 성경의 묘사들을 인용한다.
③ 성령께서는 성경을 개개인 의식에 침투하게 하여 각 사람에게 하나님 자신이 개인적으로 말씀하시는 말씀으로 의식하게 하여 경외감과 하나님 앞에, 하나님 눈 아래 있는 의식을 불러 일으킨다.
이렇게 성령의 활동을 통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증거하고 인증한다.


성경을 믿는 믿음의 확립- 내적 증거
성령의 내적 증거는 인간의 선천적인 영적 무지를 제거하고 그의 심령의 눈에서 장막을 걷고, 그의 오만과 편견을 함께 깨뜨리고 그에게 영적 실재들에 대한 이해력과 ‘지각’(히5:14)을 모두 주는 내적인 조명의 활동이다. 신약 성경이 마 11:25~27, 엡 1:17~19에서 ‘나타내다’ 또는 ‘계시하다’는 동사를 사용할 때 언급하고 있는 바가 바로 이것이며, 또한 사도 요한이 모든 것을 가르치는 ‘기름부음’으로 성령에 대해 말할 때(요일2:27) 마음 속에 생각하는 바도 바로 이것이라고 오웬은 말한다. 영적 실재들에 대한 지각이라는 수반되는 경험은 즉각적이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것이다.
성령께서 신자들에게 믿는 사실들의 능력과 실재에 대한 영적 감각을 주심으로 그들의 믿음은 매우 확고해진다. 이 지각은 종종 맛보고, 눈으로 보고 느끼는 감각 활동들로 표현되며 자연적인 일들에 확신을 얻는 방법과 같은 식으로 표현된다.


또한 성령께서는 자신이 조명한 사람들이 성경의 신성을 의심하는 유혹을 받지 않도록 계속 보살피며 또한 그 의심들이 솟아나는 모든 원천- 정욕, 불신, 반대적 논증의 압박, 하나님과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지각의 결핍, 그 밖의 모든 영적 불안- 으로부터 보호하신다. 이 모든 일들이 성령의 내적 증거에 속한 것이라고 오웬은 묘사한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믿음을 소유하는 근거들은 성경 안에서 성경으로 계속 제시하는 성경의 신적 기원에 대한 성령의 외적 증거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믿는 이유는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조명하셨고 우리 안에 믿음을 생기게 하사 우리로 믿을 수 있게 하셨기 때문이다”.


5. 성경의 해석


오웬의 첫 번째 주장은 그가 마땅히 사용해야 하는 은혜의 수단을 사용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삶과 경건을 위해 알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을 성경에서 터득할 수 있다는 의미에 있어 성경은 명쾌하다는 개신교의 표준적인 주장이다. 오웬은 교회의 공식(설교) 비공식(그리스도인들과의 토의)의 단체적인 성경 학습에서만 개인이 성경의 가르침의 바른 이해에 도달하기를 기대한다. 그러한 학습도 쉬운 것은 아니다. 마음 속에 있는 선천적인 악들- 오만, 타락된 감정, 나태, 음침한 생각, 변덕스러운 관습, 악한 합리화-은 우리의 진보를 방해한다. 오직 신령한 방법으로만 이 악들을 역습하여 정복할 수 있다. 성경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신령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즉 빛을 구하는 끊임없는 기도, 터득되는 모든 진리의 능력을 경험하려는 열망, 모든 진리를 알자마자 바로 양심적으로 순종을 실행하는 것 그리고 교회에서의 예배 생활이다.


그는 성경을 하나의 풍경으로 관찰했다. 즉 관찰자에게 그 경치의 매력적이고 충격을 주는 부분은 외관적인 배열의 질서에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분명히 바울의 몇몇 서신들, 특별히 로마서에는 가장 중요한 복음 교리들의 일정한 방식에 따른 배열이 있으나 성령께서는 성경에서 교리들, 또는 초자연적인 진리들을 어떤 체계나, 순서나, 방법에 적응시켜 배열하지 않으셨다.” 오웬은 대체적으로 성경을 교리들(하나님에 대한 사실들)과 그 교리들을 적용하는 모범들로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오웬은 성경의 여러 책들의 현상태의 배열은 실제로 다른 어떤 책들의 배열보다 더 실제적이고 유익하다고 주장한다. 성경의 배열은 우리에게 바른 형태로 묵상하는 공부를 하게 하며, 교리 지식에 대한 지적 오만감을 가지려는 유혹을 막아준다. 우리가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길 때 거룩한 메시지는 모든 변화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알려지고 적용된다. 성경의 목적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경외와 순종과 경의를 생기게 하는 것이다. 즉 사람들을 거룩하고 의롭게 하는 것이다. “때로 성경의 어떤 이야기의 한 구절, 한 단어, 또는 한 표현이 한 권의 박식한 토론보다 우리 영혼에 믿음과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데 더 많은 공헌을 한다.”


6. 존 오웬의 교훈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의 질문 4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어떻게 분명한가?이다. 그 답은 다음과 같다.


성경은 그 위엄과 순정함에 의해,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드리는 모든 부분들과 전체 범위의 일치에 의해, 죄인들을 납득시키고 회심시키며 신자들을 위로하고 구원을 학립시켜 주는 그 빛과 능력에 의해,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나타낸다. 그러나 성경에 의해 그리고 성경으로 사람들의 심령에 증거하시는 하나님의 성령께서만이 성경이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완전하게 납득시킬 수 있으시다.


오웬의 신적 의미 전달에 대한 교리는 단지 이 견해를 자세히 쓴 것일 뿐이다. 오웬이 제시하는 것보다 더 완전하고 유력하게 하나님의 백성에게 말씀을 확신시키시는 성령에 대한 교리를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연구가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바는 성경의 가장 훌륭한 증거는 언제나 성경이라는 사실과 성령의 능력 안에서 성경의 진리를 설교하는 것이 성경의 영감과 성경이 선포하는 신적 실재들에 대한 믿음을 생기게 하기 위해 많은 논증을 하는 것보다 더 유익하다는 사실이다. 이 연구는 또한 우리 자신이 성경을 탐구하고 가르칠 때 마땅히 드려야 하는 영광을 성령께 드리고 있는지 자문하라는 도전을 준다. 해석의 문제가 발생할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이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완전하게 설교하는 사람들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해설하고 적용하는 것 외에는 어떤 일도 행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기독교 교육자들로서 우리의 영광인가? 오웬의 하나님으로부터의 의사전달에 대한 교리가 이러한 사역을 완수하려는 우리의 열심을 갱신시키고 하나님의 인도 아래에서 이 사역이 얻게 되는 결실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갱신시키기를 축원한다. p 129


출처: 청교도의 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