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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브레히트 리츨과 고전적 자유주의(Albrecht Ritschl, 1822-1889)

by 【고동엽】 2021. 10. 30.

알브레히트 리츨과 고전적 자유주의(Albrecht Ritschl, 1822-1889)

- 윤리적 문화 안에 내재하시는 하나님 -

 


제1장 서론

 

 

 

역사적으로보면, '자유주의'는 금세기 초 개신교의 학문적 신학을 장악했던 어떤 특정의 운동을 가리킨다. 그것은, 처음 독일에서 슐라이어마흐와 헤겔의 제자들과 추종자들 가운데서 일어났으며 알브레히트 리츨의 학파 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형태를 띠게 되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자유주의 신학을 대표하는 가장 뚜렷한 대표자는, 곧 알브레히트 리츨과 아돌프 하르낙(Adolf Hamack) 그리고 월터 라우셴부시(Walter Rauschenbusch) 이 세사람으로 드러난다. 다른 나머지 사람들을 소홀히 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리츨을 주로 다룰 것이다.

 


제2장 고전적 자유주의 신학

 

 

 

슐라이어마흐와 마찬가지로, 이 자유주의자들은 기독교의 신조들을 현대적 지식의 빛 안에서 재구성하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들은 계몽주의 이후로 문화속에서 일어난 몇몇 발전들을 기독교신학이 그냥 무시하고 지나칠 수는 없고 그것을 적극적인 방법으로 신학 속에 융화시켜야 한다고 믿었다. 기독교 신학은 그 자신을 잃지 않는 가운데 새로운 과학적, 철학적 경향에 적응해야 했다. 자유주의 신학은 클로드 웰치(Claude Welch)가 말했듯이, '현대 사상의 주장들을 최대한 인정'하는 것이 특징이다.
자유주의 신학의 두 번째 특징은 개개 기독교 사상가가 전통적 신조들을 비판하고 재구성할 자유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셋째,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의 실천적, 윤리적 차원에 초점을 맞추었다.
넷째, 대부분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신학의 기초를,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 이외의 어떤 다른 것에 두려고 했다.
끝으로, 아마 무의식 중에 앞에서 말한 특징들의 저변을 이루고 있는 특징으로서, 자유주의 신학은 계몽주의에 의하여 시작되고 19세기 초의 위대한 독일 사상가들에 의해 지속된 바, 초월성을 간과하고 신적 내재성 쪽으로 계속 흘러갔다.
계몽주의 이전의 신학자들은 근본적으로 거룩하시고 초월적인 하나님과 죄악되고 유한한 인간들 사이의 분리를 강조했고, 성육신은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는 큰 틈에 다리를 놓은 극적인 사건이라고 보았다. 반대로, 계몽주의에서 시작되고 자유주의에서 그 절정에 다다른 신학자들은, 예컨대, 합리적이고 직관적이며 또는 도덕적인 능력과 같은 것에서 드러나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연속성으로부터 신학을 세워 갔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예수를 이 죄악 세상에 진주(進駐)한 그리스도로 보기보다는 모범적 인간으로 보았다.

 

 

 

제3장 알브레히트 리츨의 삶과 경력

 

 

 

19세기 말 자유주의 신학의 핵심 인물은 알브레히트 리츨이다. 1875년부터 1925년까지 미친 영향력 때문에 리츨 학파 하면 개신교 자유주의와 거의 같은 말이 돼 버렸다. 이렇게, 슐라이어마흐가 신학의 한 시대를 세웠지만 어떤 학파를 창도하지는 않은 반면, 리츨은 한 시대를 연 것은 아니었지만, 한 학파를 세웠다.
알브레히트 리츨은 1822년 프러시아 개신교회의 한 주교(主敎)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에 음악의 소양을 보였고, 유년기부터 대단한 지적 능력을 보였다. 청년 리츨은 본대학에서 신학공부를 시작해서 튜빙겐과 할레 대학 등에서 학업을 계속하다가, 종래 학문적 준비를 마무리하기 위하여 본으로 돌아왔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그는 슐라이아마흐, 칸트 그리고 헤겔의 영향을 받은 신약학자 바우르(F. C. Baur)의 영향을 받았다.
리츨은 1846년 본에서 처음 강사직을 얻었고, 1864년에 괴팅겐으로 이주하여 1889년 죽을 때 까지 거기에 남아 있었다. 25년 간 괴팅겐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그는 독일의 지도적 신학자라는 명성을 확립했다. 당대의 개신교 목사들과 교사들의 한 세대 전체가 그의 강의와 저술들에 의해 깊이 영향을 받았다.
가장 중요한 작품은 1870년에서 1874년 사이에 단계적으로 출간된 『칭의와 화해에 대한 기독교 교리』(The Christian Doctrine of Justification and Reconciliation)라는 제목의 세 권짜리 논문이었다.

 


제4장 리츨의 신학적 방법

 

 

 

전통적 기독교 신학은 유물론(materialism)과 실증주의(positivism)와 같은 사상적 세력에 포위를 당해 있었다. 리츨은 신학과 과학 사이에 있는 갈등은 지식에 있어서 '과학적' 유형과 '종교적' 유형이 있는 것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생각했다. 과학적 지식은 순수한 이론적 객관성, 곧 사물 자체에 대한 비(非)주관적 인식을 추구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반면, 종교적 지식은 실재에 대한 가치 판단들로 이루어져 있다. 종교적 지식은 그 사람이 생각하는 최고의 선을 성취하기 위한 사물의 가치와 관련한 것이다.
리츨의 관점과는 대조적으로,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은 보통 형이상학적 요소에 대한 얼마간의 논의를 섞어 넣는다. 리츨은 신학이 형이상학에 기대려고 하는 어떠한 의존도 맹렬히 배격했다. 신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증명들은 과학적 지식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신학은 하나님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선을 성취하도록 도움으로써 사람들의 삶에 도덕적인 영향을 끼치는 한에서만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리츨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인간의 최고의 선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발견된다는 집단적 가치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신학은 교회 안에서 가질 수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집단적 종교 경험 및 도덕적 경험을 연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최고선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독교 공동체의 가치 판단에 근거하며 그것을 중심으로 하여 형성되어 있다.
요약하면, 리츨에게 있어서 신학은 단순한 외적 형태나 표현들과 구분되는, 기독교의 진정한 정수가 무엇인가를 결정하고자 한다. 또한, 그것은 모든 교리들을 그들을 통어하는 힘인 그 핵심과의 조직적인 관계 속에서 재현하려고 시도한다.
신학의 근거와 규범은 무엇인가? 리츨에 따르면, 그것은 성경 전체가 아니라 건전한 역사-비평적 연구를 통하여 결정된 '사도적 사상 체계'(apostolic circle of ideas)이다. 리츨의 신학적 방법은 칸트 철학과 뚜렷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그의 사상은, 칸트의 기본적인 인식론을 견지하는 한편 그의 회의론을 개량하고자 했던, 괴팅겐의 철학자 헤르만 로츠(Hermann Lotze)를 통하여 리츨에게 전수되었다. 리츨은 신학에서 형이상학을 삭제하고 종교를 가능한 한 윤리학과 밀접히 연관시키려고 했다는 점에서 칸트를 따랐다. 그러나 리츨은 하나님이 그가 행한 일을 통하여 정말로 알려질 수 있다고 주장한 데서 칸트와 달랐다. 칸트에 대한 대안으로서, 리츨은 로츠에게 크게 의존하여 어떤 사물은(이 경우에는 하나님) 그것이 이룬 결과(이 경우에는 계시와 구원) 속에 존재하며 그 속에서 드러난다는 사상을 지지했다.

 


제1절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

 

리츨의 신론은 그의 신학적 방법론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그는, 기독교 신학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만 그리고 그러한 결과들에 부응하는 가치판단들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리츨에게 있어서 기독교 신학의 주된 긍정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것이었다. 여기에 그는 덧붙이기를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이 인격적일 것과 초월적인 분 혹은 '세속을 초월 하신 분'(supramundane)이기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기독교 신앙은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이 나라가 인류가 추구하는 최고의 선이라고 파악한다. 그러므로 신앙이 아는 하나님은 사랑이신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이다. 이것 외에 '하나님 존재'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리츨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인류가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이며 선일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 자신의 최고 목표이며 선이다. 전반적으로 하나님의 신론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의 강조는 역사를 초월하는 그의 초월성보다는 역사 안에 계신 신의 내재성으로 기울었다.

 


제2절 죄와 구원

 

리츨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죄론과 구원론이 가지는 내적 의미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나라가 기독교 신앙에 의해 최고의 선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신학은 죄를 그 나라와 반대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죄는 일차적으로 이기성이다. 죄는 물려 내려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보편적이다.
리츨의 신학적 저작 전반을 볼 때 하나님의 나라는 두 가지 초점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종교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윤리적인 것이다. 그 가운데 종교적인 초점은 하나님이 죄인의 죄가 용서되었다고 선언하는 구원의 순간, 곧 칭의이다. 윤리적 초점은 하나님이 그와 화해된 남자와 여자들에게 이웃을 향한 사랑의 이상을 실현하라고 부르신다는 주장에 있다. 리츨에게 있어서, '구원'은 이 두 가지 초점 모두를 포함해야 한다.
구원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땅 위에 완전히 실현되는 것이다. 결국, 기독교는 피안적인 종교가 아니라 사랑에 감화된 윤리적 행동을 통하여 세계를 변혁시키는 종교이다.

 


제3절 기독론

 

칼케돈 신조(chalcedon, AD 451)를 따르는 고전적 기독론은 예수 그리스도가 한 인격으로서 구별되는 두 성품, 곧 인성과 신성을 가지고 있었고 또 현재도 그러하다고 주장한다. 리츨은 예수의 신성에 대한 이러한 전통적 신조를 완고하게 거부했다. 이유는 그것은 종교적이기보다 과학적이라는 것이었다. 예수에 대한 진정한 종교적 평가는 그의 역사적 행위, 종교적 확신 그리고 윤리적 동기에 관심을 갖는 것이지 그가 가졌을 것으로 가정하는 그의 타고난 기질이나 능력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리츨은 예수의 신성을, 그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에게 인간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의 완전한 구현이 되도록 주셨던 독특한 '소명'-그는 이 소명을 완전하게 성취했다-이라고 해석했다. 리츨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그와 그의 사역이 하나님에 의하여 영원히 아신 바 되고 그의 뜻에 의한 것이었다는 의미에서만 '선재'한 것이었다.
리츨 신학에서 중심 되는 것은 그리스도가 인류를 위하여 이루신 구원의 성취이다. 그런데 이것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여기서 리츨은 예수의 아버지에 대한 '소명적 순종'(vocational obedience)의 개념을 소개한다. 리츨의 주된 관심사는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하나의 도덕적 모범으로서 그리스도의 역사적 삶에 놓여 있었던 것 같다. 비록 그리스도를 이 세상의 죄를 위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자로 삼는, 여하한 속죄의 교리도 명백히 거부했지만, 그리스도의 죽음이 가지는 특별한 의미를 부정하지 않았다.

 


제5장 평가

 

 

 

지속적 중요성을 가지는 현대 신학자라는 리츨의 명성은 20세기 중반에 주로 신정통주의 사상가들인 칼 바르트와 에밀 브루너와 같은 이들의 비평 때문에 위축되어 한풀 꺽여 버리게 되었다. 가장 최근의 비평가들은 리츨이 탈(脫)계몽주의 시대의 과학, 철학과 갈등하고 있던 기독교 신앙을 그 불필요한 갈등으로부터 구해주었고 '교의를 도덕화' 시키는 데 공헌하였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그의 영향력이 미친 결과로, 당대의 모든 기독교 목사들과 교사들은 '사회 복음'(social gospel)을 전개하였다. 그의 신학적 방법에 있어서 중심적인 문제는 하나님 그 자체에 대한 여하한 논의도 단호하게 배제하려 했지만 자기 자신도 그런 식의 논의를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리츨이 신학적 연구를 가치 판단의 영역에만 국한시켰던 것은 여러 면에서 문제가 있다. 예컨대, 그러한 제한을 가지고 있으면 신적 초월성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된다.
초월의 문제에 덧붙여서, 리츨이 신학을 가치 판단의 영역에만 제한했던 것은 신학이 가지고 있는 공공의 성질에 심각한 문제들을 제기한다. 그의 의도와는 달리, 리츨의 신학은 주관주의라는 비난에 노출되어 있는 것 같다.
어떤 이유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고대 기독교 교리를 그토록 명백히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내어버릴 수 있었을까? 부분적이겠지만 그 이유는, 이미 확인한 바대로, 그가 부당하고 비일관적인 방법으로 존재론을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또한 사물의 외양과 결과 (또는 영향) 이면에 있는 본질 혹은 존재에 관한 논의에 관여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세기의 바르트를 위시한 그 밖의 자유주의 비평가들은 리츨에 대하여 '문화적 개신교'라고 하는 다소 혹독하지만 그렇게 불려 마땅한 꼬리표를 붙여 주었다.
그의 견해를 거부하는 모든 사람들의 견해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를 인간의 종교적, 윤리적, 이상으로 환원시켰다. 대부분의 자유주의자들에 의한 설명들이 그러하듯이,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리츨의 설명은, 신약 성경 자체로 소급되는 바, 교회의 성육신을 중요하게 보는 기독론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다.

 

 

 

참고문헌

 

 

 

1. 스탠리 그렌츠, 로저 올슨 저, 신재구 역, 『20세기 신학』, IVP, 1997.
2. 목창균 저, 『현대신학논쟁』, 두란노, 1995.
3. 이정배 저, 『현대 자유주의 신학사조』, 감리교신학대학출판부,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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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마르틴 레데커 저, 주재용 옮김, 『슐라이에르마허 생애와 사상』, 대한기독교출판사, 1985.
6. 폴 틸리히 저, 宋基得 譯, 『19-20세기 프로테스탄트 사상사』, 한국신학연구소,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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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목창균 저, 『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사상』, 한국신학연구소, 1993.
9. 바나드 램 저, 최기서 역, 『현대신학의 용어해설』, 보이스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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