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훈계 할 수 있는 실력과 권위 잠4:1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한 번 더 읽습니다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아멘!
제가 아들 셋을 키우면서 빠지지 않고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서 했던 기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좋은 스승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라는 기도였습니다
아이에게 존경할 만한 스승이 있다면
우리 아이는 절대로 잘못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치원부터 수도 없이 많은 선생님은 만나겠지만
선생님이 다 삶의 스승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스승과 선생의 차이가 뭘까요?
선생은 우리가 이 지금 잠언을 하면서
늘 구별하듯이
세상적인 지식을 전달해 주는 분은
'선생님'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이라고 얘기할 수 있지요.
그렇지만 '스승'은
지식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아니라
지혜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다.. 이렇게 정의할 수 있어요.
좋은 선생을 만나기 위해서
뭐 학군을 찾고
대치동을 찾고
학원가를 찾고
우리는 그러지 않습니까?
그런데 인생의 '스승'을 찾기 위하여
우리는 과연 그만큼 노력하나? 하면
그렇지는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도 참 중요하지만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것은
내 아이에게
인생과 삶과 믿음을 가르쳐 줄
지혜를 가르쳐 줄
스승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근데 선생님은 학교에 가면 만날 수 있는데
학원에 가면 만날 수 있겠지만
스승은, 우리에게 지혜를 가르쳐 줄 스승은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요?
▲우리 아이들이 스승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는 가정입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인생과 신앙과 삶과 믿음과
지혜를 가르쳐 줘야 할
가장 중요한 스승은
딴 데서 구할 게 아니라
부모가 맡아야 합니다.
부모의 가장 중요한 책임은
아이에게 삶을 가르치고
믿음을 가르치고
지혜를 가르쳐야 합니다.
오늘 이 성경 본문은
아이들에게
'아비의 훈계를 들으라
아비의 훈계를 잘 들어라'
라는 말씀으로 시작하는데
저는 그 말씀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아비의 입장이잖아요
'자식에게 훈계 할 수 있는 부모가 과연 요즘 얼마나 될까?'
자식들에게 존경을 받는
삶으로 존경을 받고 인정을 받아서
아이에게 지혜를 가르치고 삶을 가르치고
인생을 가르치고
삶의 법도와 신앙을 가르칠 수 있는 그런 능력,
자식을 훈계 할 수 있는
그런 영적인 권위를 가진 부모가
과연 얼마나 될까?
아이들이 아비의 훈계를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분 부모가 아이들에게
지혜를 훈계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일이
저는 더 먼저고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부모가 아비가 자식을 훈계하려면
부모가 자식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치려면
삶의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영어를 잘 가르치려면
영어를 잘해야 합니다.
또 수학을 잘 가르치려면
수학을 잘해야 합니다.
여러분 아이들에게 훈계를 하려면
아비가 삶의 실력을 갖출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자식에게 훈계할 권위가 서지 않습니다.
권위가 서지 않으니까
훈계하지 못합니다.
또 섣불리 훈계해도
아이들이 듣지를 않습니다.
왜요?
아이들이 알아요.
'죄송하지만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그 실력이 좀 부족해!'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여러분 교육은
부모가 해야 하는데
우리는 교육은
학교 선생님이 하는 거라고 하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학비를 대고
학원비를 대고
그렇게 하는 일을
부모의 교육적인 책임을
다 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그렇지 않아요.
부모의 교육적인 책임은
학비를 대고 유학을 보내고
학원비를 내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인생과 삶과
지혜와 믿음과 신앙을 가르칠 수 있는
자식을 훈계 할 수 있는
그런 교육적인 역량과 권위를 갖는 것이에요.
그게 부모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그게 말로 되는 게 아니에요.
훈계는 삶으로 하는 것이에요.
그래야 아이들이 아비의 훈계를 들을 수 있어요.
제가 가끔 예화처럼 드는 얘기가 있어요.
설교를 하다 보면
'이거는 무 씨다
이거는 배추 씨다'를
설명해 줘야 하는 일이 있어요.
근데 제가 농사를 지어 보지 않아서
어느 게 무 씨인지
어느 게 배추 씨인지를 몰라요.
그런데 무 씨, 배추 씨를 가지고 설교를 하려면
제가 먼저 알아야 해요.
알려면 배워야 해요.
그거 아는 방법은 참 많아요.
농사짓는 분에게 물어보면 돼요.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지요.
요즘은 그냥 인터넷에서 '지식 검색'하면 돼요.
그러면 자세한 정보가 나와요.
그런데 여러분
가장 힘 있는 것은 뭔 줄 아세요?
힘 있는 지혜는.. 직접 씨를 심어보는 거예요.
심어보지 않고
직접 농사지어 보지 않고
남한테 물어서 안 지식은요
내 지혜가 되지를 못해요.
책 보고 배운 것
그냥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얻은 지식은
설교할 때
큰 파워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저 정보 전달 정도로 끝나버릴 때가 많아요..
'이게 무 씨고, 저게 배추 씨래'
이렇게 그저 지식의 전달에 그치고 말아요.
그 말에 설교의 힘은 없어요.
설교에 힘이 있으려면,
자기가 직접 심어보는 거예요. *체험, 순종, 실천
그래서 밭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무 씨, 배추 씨를 심었더니 이렇게 되었구나'
라는 걸 알고, 힘있게 가르칠 수 있어요.
▲여러분 삶의 지혜는
아이들에게 하는 훈계는
삶으로 하는 거예요.
책보고 가르쳐서는 힘이 없어요.
남의 말 듣고 해서는 안 돼요.
그냥 부모가 먼저 말씀에 순종해서 사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라' 라고 자녀에게 가르치려면
말로 훈계헤서 되지 않고
부모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삶을 통해서 맺어지는
무, 배추의 열매를 직접 삶속에서 보여 주는 거예요.
'이거 봐 이거 무 나왔잖아?
싱싱한 배추 나왔잖아?'
여러분, 자식들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지혜로
훈계 할 수 있는
실력 있는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그 책임은 다 감당 안 하고
아이들에게 그와 같은 인정과
존경은 받지 못하고
그냥 돈만 벌어서 학원비 대고
아이 학비 대는 것만으로
부모의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내 말을 안 듣는 거니?)'
이런 어리석은 얘기하는 부모 되지 말고
돈으로 자식 키우는 사람 되지 말고
삶으로
지혜로
정말 자식을 훈계로
주의 말씀과 훈계로 양육할 수 있는
부모들 되기를 바랍니다.
▲자식을 훈계하려고 하면
중요한 게 또 하나 있어요.
자식의 인격을 존중해야 돼요.
제가 너무 좋아해서 여러 번 반복하는 얘기예요
'내가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의 곁으로 가서
그는 나로 더불어 먹고
나는 그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참조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 것이라고
우리 고린도서 공부할 때도 배웠잖아요.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 거예요. 고전13:5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들어오고 싶어 하세요.
그래서 문을 두드리세요.
안 두드리셔도 돼요.
하나님이시니까 그냥 문을 쓱 밀고 들어오시면 돼요.
그런데 하나님은 두드리셔요.
그리고 우리가 열 때까지 기다리세요.
우리의 인격을 존중하시는 거예요.
'내가 문밖에 서서 기다릴 게
네가 열어 주면 그때 들어갈 거야'
나는 그것을 하나님의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피조물인 우리에게
우리의 인격을 무시하지 않아요.
우리의 의지를 존중해주세요.
그리고 기다리세요.
아이들이
'부모의 말이 옳다'는 거 대개 알아요
자기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 것도 알아요.
근데 잘 안 들어요.
제가 '왜 자녀들이 부모 말을 잘 안 듣는가?'
그 이유를 살펴보니,
우리 부모, 어른, 스승, 높은 사람들은요
옳은 말, 바른말, 좋은 말을
기분 나쁘게, 무례 하게
우린 함부로 아이라고 깔보고 무시하고
명령조로
위에서 아래로 하달하는 식으로 해요.
그럼 아이들이 기분이 나빠서
훈계를 잘 듣지 않아요.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함으로
하나하나를 자식도 인격으로 존중하고
하나님이 마치 우리를 그렇게 대해주시듯
우리도 우리의 자식을
한 인격으로 동등하게 존중하고
기다려줄 줄 알고
예의를 갖출 줄 아는 사람 되기를 바라고
아울러 부무가 삶으로
믿음의 본을 보여서
정말 자식들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하나님의 훈계를 가르칠 수 있는
실력 있는 그런 부모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 부모를 만난 자식처럼
복 있는 아이들이 어딨겠습니까!
여러분, 그런 복 있는 자녀들이
뜻밖에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들은
여러분들 때문에
그 복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추천인 명설교편◑ > 김동호목사 명설교 (155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마누엘, 하나님의 강한 의지 눅2:1~7 (0) | 2016.08.12 |
---|---|
자기 마음을 제어하라 잠25:27~28 (0) | 2016.08.10 |
자유케 하시는 예수님 눅4:16~19 (0) | 2016.08.08 |
자존심 회복의 피 시32;1 (0) | 2016.08.06 |
잔인함을 피하라 잠12:10 (0) | 2016.07.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