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복음 서문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진도후서 4장 3, 4절)
1505년 7월 후덥지근한 어느 날 루터는 부모님을 찾아 뵙고 친구와 함께 학교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들판을 지날 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자 그들은 비를 피해 뛰었다. 그런데 갑자기 벼락이 치고 뒤이어 친구가 쓰러졌다.
루터는 벼락에 친구가 시커멓게 타죽는 것을 보고 너무도 무서워서 땅바닥에 엎드려 하니님을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그리고 살려주시면 수도사가 되겠다고 맹세했다. 그 후 루터는 약속대로 수도사가 되었다.
그가 체험한 하나님은 너무나 엄격하고 무서운 하나님이었다. 잘 못한 사라믈 벼락으로 쳐 죽이시는 분!
수도사가 된 루터는 그런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 사랑, 소박, 자선, 정절, 가난, 순종, 금식, 철야, 그리고 육신의 극기까지도 포함해서 인간이 자신을 구원하는 데이 있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남김 없이 실천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고해성사도 열심히 이용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어떤 때 는 내리 여섯 시간을 고해했다. 그러나 그는 평화를 얻을 수 없었다. 그는 노력하면 할수록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이 느껴졌고 그런 죄인에게 한치의 양보도 없이 끊임없이 요구하시는 하나님이 너무 혹독하게 느껴져서 마침내 절망 속에서 절규하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나는 그 분을 오히려 증오한다."
그런 루터에게 친구이며 선배였더 수타우피츠는 루터를 깨닫게 하려고 많이 노력했으나 별 효과가 없자 루터에게 성경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라고 제안했다.
자신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해 쩔쩔매는 루터가 그러한 제안을 쉽게 받아들일 리가 없었지만 여러 번의 제안에 결국은 수락하여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비로서 로마서와 시편을 들추어보기 시작했다.
당시의 수도원에서는 성경이 선택과목에 불과했었다.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루터에게 빛이 비취기 시작했다. 그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루터에게 성경은 희망의 빛을 던지면서 루터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다음은 루터의 고백이다.
"바울의 로마서를 이해하려고 몹시 애쓰는 나에게 가장 큰 장애물은 '하나님의 의(義)라는 말을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분이요 따라서 불의한 사람들을 공정하게 처벌하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나의 상황을 말하면 수도사로서는 털 끝만치도 흠 잡을 데가 없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여전히 마음이 괴로운 죄인이었기에 도무지 나의 공로를 가지고는 그 분을 누그러뜨릴 자신이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공정하고 성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증오하고 그 분에게 투덜댔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나는 바울을 붙잡고 늘어지면서 그의 말에 무슨 뜻이 담겨 있을까하고 계속 캤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곰곰이 생각하던 어느 날 나는 하나님의 의(義바)와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 사이에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때 나는 하나님의 의(義)란 하나님께서 은혜와 순수한 자비를 발휘하신 나머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에게 죄가 없는 것으로 취급하는 그 의(義)(righteousness)라는 걸 터득했다.
그 순간! 나는 새로 태어나서 활짝 열린 문을 통해 낙원에 이른 기분이었다.
성경전체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으며, 전에는 '하나님의 정의' 때문에 내 속은 증오로 꽉 차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내게 소중하게 되었으며 더 큰 사랑을 불러 일으켰다. 바울 서신의 이 대목이 나에게 있어서 하늘로 통하는 하나의 문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구주시라는 사실을 참으로 믿는 순간 당신 곁에는 은혜로운 하나님이 서 계신다. 그것은 당신을 데리고 들어가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활짝 열어 제치고 당신에게 순수한 은혜와 넘치는 사랑을 보게 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기 때문이다.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뵙는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더 이상 노여움이나 불친절을 찾아 볼 수 없는 그 분의 아버지로서의 마음, 다정한 마음을 우리가 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성난 분으로 보는 사람은 그 분을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 분의 얼굴에 검은 구름이 덮였을 때처럼 하나의 커튼을 대하고 있을 뿐이다."
루터가 복음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종교개혁을 할 준비가 갖추어진 것이다. 당시에 수 많은 권세자들이 루터에게 이러한 복음의 진리를 포기할 것을 요구하며 위협하자 루터가 이렇게 말했다.
"황제 폐하와 각하들은 간단한 대답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명백하게 있는 그대로 답변하겠습니다. 나는 성경과 명백한 이성에 의하여 오류라는 확신이 생기지 않는 한 지금까지 의지하여 온 성경에 의해 계속 확신을 가집니다. 나의 양심은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취소할 수 없고 또한 취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양심을 거슬러 행동하는 것은 우리에게 옳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안전한 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기 서 있습니다. 나는 다르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
윌터(C F. W Walther) 박사에 의하면 전 신구약 성서의 교리적 내용은 '율법'과 '복음'이라고 하는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두 가지 교리에 의하여 구성되어 있으며 이 율법과 복음을 구분할 줄 모르면 그에게 있어서 성서는 접혀 있는 책일 수 밖에 없다고 하였다.
율법은 타락한 인간의 양심 속에서 본성적으로 어느 정도 남아있기에 쉽게 이해가 되고 잘 납득이 된다.
그러나 복음은 전혀 인간의 본성 속에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계시로 된 것이며 어느 종교에도 비슷한 것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그러기에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복음을 믿기란 불가능하다. 교회사를 보면 초대교회 때부터 율법과 복음은 논쟁거리였다.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많은 변론'이 있었다고 했다. 복음이 설교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율법주의로 흘러간다. 성경이 너무나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는 복음을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길 법도 하지만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 복음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함을 알면 이해될 것이다. 복음이란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을 묵상하며 성령님의 조명을 의지하는 자만이 깨달을 수 있다.
루터는 '율법을 복음으로부터 구분할 줄 아는 예술을 잘 습득한 사람은 과연 성서에 관한 석학으로 불려질 수 있는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실제로 율법과 복음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서가 온갖 모순투성이처럼 보일 것이다.
한쪽에서는 죄를 정죄하고 한쪽에서는 정죄함이 없다고 하고, 한쪽에서는 선행없이는 구원이 없다고 하면서 한쪽에서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음을 말할 때 어떤 사람이 혼동을 일으키지 않겠는가?
윌터 박사에 의하면 율법과 복음이 혼동되었을 때부터 교회는 몰락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루터는 이 구별을 배웠을 때 그는 종교개혁자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왜 이 주제를 놓고 성경을 연구해야 하는지 이제 분명해졌다. 복음을 모르고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 갈 수가 없고 율법과 복음을 모르면 그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누릴 수 없다.
율법과 복음을 모르는 그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누릴 수도 없다. 율법과 복음을 깊이 깨닫지 못하면 성경을 이해할 수 없으며 그 결과로 그는 영적으로 성숙할 수 없다.
복음이란 단순하면서도 매우 심오하다. 만일 여러분이 복음이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는데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매우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깊이 깨달았는지는 미지수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그리고 우리의 삶 전 영역에서 복음이 어떠한 영향을 주며 어떻게 사는 것이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만일 형제가 이 복음을 제대로 깨닫는다면 즉시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깊은 감격과 사랑을 가지고 이렇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오! 주 예수님. 예수님은 저의 구주이시며 저의 전부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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