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운명은 없다
설 연휴가 다가온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이런 때면 토정비결이나 사주 등을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현대인들은 더욱 그렇다고 한다. 치열해진 경쟁사회 속에서 불안과 초조, 공허 속에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060 사주상담전화가 성행하고, 대학가 주변에는 사주까페가 유행이라고 한다. 심지어 기독교인들마저 무당이나 역술인을 찾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이것은 잘못된 운명론에 사로잡힌 결과이다. 운명론은 주역사상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주역은 인간의 생로병사와 자연만물의 사계에는 별자리의 이동과 지구를 중심으로 한 오행의 경로에 따라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사상이다. 현상론적으로 볼 때는 깊고 오묘한 학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일반은총의 영역 안에서 성령의 조명이나 가르침이 없는 세상 초등학문에 불과하다. 특별히 인간의 타락 이후에 공중권세를 잡은 사탄이 세상을 다스리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와 질서 안에서 자기 나름대로 세상을 지배하는 일정한 질서와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과연 운명의 법칙은 존재할까? 운명의 법칙이 그리스도인들을 지배할 수 있을까? 운명의 법칙은 어두움의 세상과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어느 정도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운명의 법칙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절대로 존재하거나 지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아버지의 영되시는 성령께서 양자의 영으로 내주하시면서 친히 이끌어주고 다스려주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운명의 영역을 벗어난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자들이다. 또한 성령님은 사탄의 모든 궤계와 저주의 권세, 모든 운명의 법칙을 짓밟아 버리시고 참된 승리와 역전, 행복의 세계로 인도해 주신다.
그렇다. 그리스도인에게 운명은 없다. 오히려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통하여 운명을 지배하고 초극한다. 주님 안에서 참된 복의 근원으로 존재할 뿐이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뿐만 아니라 온 우주를 다스리시고 온 삼라만상의 법칙과 운명의 법칙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사람을 죽이고 살릴 뿐만 아니라 국가의 흥망성쇠, 지구를 중심으로 한 혹성들의 움직임, 별과 별을 붙잡고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그 분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성령의 법칙만 있을 뿐 운명은 없다. 운명을 두려워하거나 뒷걸음치지 말자. 당당하게 운명을 초극하고 지배하자. 오직 하나님을 높이고 내주하시는 성령님만을 의지하자. 우리에게는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만 있을 뿐이다.
/소강석목사(새에덴교회)
2. 헛소문(험담)
성경: 잠11:12-13
"지혜 없는 자는 그 이웃을 멸시하나 명철한 자는 잠잠 하느니라"
1983년 영국 이스트본에서 열세 살 소년이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소년의 이름은 토머스 크레이븐. 소년은 모범생이었으며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소년이 왜 자살을 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 가정은 악마의 저주를 받아 가족들이 일찍 죽는다는 소문을 들었다. 죽음이 두렵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어머니 곁에서 죽는 편이 낫다." 소년을 죽인 범인은 '악의에 찬 헛소문'이었습니다. 사실 이 소문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가정에 적개심을 품은 한 노인이 퍼뜨린 유언비어였습니다. 살인은 한 사람을 죽입니다. 그러나 험담은 세 사람을 죽입니다. 험담을 퍼뜨린 자신과 함담의 주인공과 험담을 들은 사람이 모두 피해를 봅니다. 좋은 말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기고 저주의 말을 쏟아내면 반드시 저주를 받습니다. 어리석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인격을 모독하며,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어 떠들어댑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신중하게 처신하며 말조심을 합니다. 남을 비판하기에 앞서 자신을 먼저 살펴보고, 남의 허물을 사랑으로 덮어줍니다.
* 묵상: 당신은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어떻게 지키고 있습니까?
3. 왜 나의 인생은 이 모양인가?
아무리 애써도 또 꼬이고 결국은 좌절되고 만다. 누가 봐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팔자소관일까? 하나님이 벌하시고 버리신 것일까? 사탄이 괴롭히는 것일까?
결코 이러한 이유로 충분히 설명될 수는 없다. 계속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분명 원인이 되는 결정론적 인자가 있음을 인정해야 된다. 그렇다면 누군가 나의 인생을 그렇게 결정해놓고 그렇게 몰아가고 있다는 것일까? 그래서 이러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에 대한 막연한 피해의식과 분노를 갖고 있다. 비록 외적인 결정론적 인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원망하고 불평한다고 문제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먼저 나를 해결하는 것이 해결 가능한 목표가 되지 않을까? 내 속에 열등감과 버림받은 마음이 프로그램화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 프로그램으로 결정된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이 프로그램을 형성한 상처를 치유하고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반복적인 좌절해서 결코 헤어날 수 없다. 나만 진정으로 변화된다면 환경적인 결정인자가 혹 있다 하더라도 한번 도전해볼 만한 것이다.
/이성훈원장 <길르앗치유문화원 원장>
4. 운과 행운의 차이
" 자네 '운(luck)'과 '행운(good luck)'의 차이점이 뭔지 아나?" 운은 스쳐 지나가는 것일 뿐 결코 머물지 않는다. 행운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므로 영원히 가질 수 있다. 만일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룬다면 행운은 결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미래를 원한다면 그 시작이 분명 있어야 한다. 그 첫발을 오늘 당장 내딛자!
- 알렉스 로비라 셀마의 《행운》중에서 -
* 그렇습니다. 운과 행운은 다릅니다. 운은 오늘 이 순간 잠시 내 손 안에 머무는 것이지만, 행운은 오늘 잠시 머문 것을 내일도,모레도 내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의 운이 내일의 행운이 될 수 있도록, 지금 당장 시작하십시요. 오늘 어떻게 시작하느냐가 운과 행운의 갈림길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5. 운명의 주인
"눈의 색깔을 바꿀 수는 없지만 눈빛은 바꿀 수 있다. 입의 크기는 바꿀 수 없지만 입의 모양은 미소로 바꿀 수 있다. 빨리 뛸 수는 없지만 씩씩하게 걸을 수는 있다."
지금 이 순간 운명의 모습을 바꿀 메스를 쥐어라. 불필요한 것들은 모두 잘라내고 새로운 기운과 새로운 삶을 덧붙여라. 그리하면 분명 운명의 주인이 될 것이다.
- 김현태의《성공감성사전》중에서 -
* 나의 운명은 물론이고 내 표정 하나하나까지도 내가 주인입니다. 내가 찡그리면 다른 사람도 찡그리고, 내가 나를 가볍게 다루면 다른 사람도 나를 가볍게 다루고 맙니다. 내가 내 운명의 주인이면서 주인 노릇을 못하면, 남(客)이 나의 주인 행세를 하게 됩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6. 생각은 운명을 좌우한다
캐스렐리라는 처녀가 가수가 되기를 원했는데 불행히도 얼굴이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특히 그녀의 입은 크고 이는 뻐드렁니였습니다. 그녀는 뉴저지의 나이트 클럽에서 노래를 부를 때 이 뻐드렁니를 감추려고 자꾸 윗입술을 오므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감추려해도 감춰지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한 사람이 그녀의 노래를 듣고 그 재질을 인정했습니다.
“아가씨! 나좀 봐요. 난 당신이 노래하는 것을 주의해 보고 있었는데, 당신은 무엇인가 감추려는 것이 있어. 그 이가 창피한 모양인데…….”
그녀는 홍당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오히려 그녀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 이가 어떻단 말이오. 뻐드렁니가 무슨 죄가 있나? 감추려고 하지 말아요. 당신이 부끄러워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청중들은 오히려 당신을 좋아할 거요.”
캐스렐리는 그 충고를 듣고 자기의 못생긴 이를 생각지 않고 늘 청중을 생각하면서 즐겁게 입을 벌려 노래했습니다. 그녀는 영화와 라디오의 톱스타가 되었고, 많은 희극배우들은 그녀를 모방하려고 애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계발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7. 운명 감정이 불가능한 사람
훌륭한 인물에게는 훌륭한 스승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가 잘 아는 토정(土亭) 이지함은 조선조 5백 년을 통하여 기인적(奇人的) 행동과 파격적인 에피소드들을 남긴 전설적인 인물일 뿐만 아니라, 천문 지리 산수 의약 주역 등에 조예가 깊었던 선도(仙道)의 대가였다. 또한 연초마다 인기가 있는 토정비결(土亭秘訣)이 그에게서 유래되었음은 익히 아는 터이다.
이 토정의 스승이 이른바 송도삼절 중의 하나이고 당대의 명기(名妓) 황진이의 요염한 유혹을 기(氣)로써 다스렸다고 알려진 화담 서경덕 선생이다.
이 화담이 토정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유의태(柳義泰)가 허준(許濬)에게 냉혹한 방법으로 뜨거운 사랑을 베풀었던 과는 대조적으로 화담은 매우 정 많고 온화하게 토정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화담 선생이 죽을 때가 되어 토정에게 현실적인 가르침을 주려고 팔도를 함께 유랑하던 중 밀양에서 있었던 얘기다.
며칠째 굶주리던 화담 일행이 요기를 하려고 주막에 갔더니 빗장이 걸려 있었다. 하여, 어느 작은 절에 가 봤으나 거기도 텅 비어 있었다. 내려 오다 보니 나무 다리 위에 40쯤 되어 보이는 포졸이 힘없이 꾸벅거리고 앉아 있었다. 연유를 물으니, 주위에 염병(染病)이 퍼져 과객들로 하여금 이 곳을 통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지키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열 명이 있었는데, 다 도망가고 혼자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왜 당신은 도망가지 않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 포졸은, “저까지 도망가면 누가 여기를 지킵니까? 내 비록 먹을 게 없어 포졸 노릇을 시작은 했지만 맡은 일은 끝까지 해내야 되지 않겠소?” 했다.
그 후 화담 선생은 염병 환자들을 구완하러 가면서 제자들에게 말했다.
“저런 이의 운명은 감정할 수도 없다네. 운명에 맞서 저렇게 의연한 이는 하늘도 비켜가는 법이지.”
8. 우연과 필연
무슨 일이든 원인과 환경요인들이 서로 얽히고 설킨 가운데
터질 만 하니까 터진 것이다.
- 이장규의《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중에서 -
* 역사가 뜻하지 않은 돌발요인에 의해 움직인다는 우연사관도 있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우연이라는 것도 그럴만한 필연의 결과이기 쉽습니다. 사람의 일에 이유와 원인이 없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9. 우연 속에 있는 필연
1948년 10월 초에 한 젊은 목사님이 오래 된 교회에 부임했다. 이전에 그 교회는 웅장함을 자랑했지만 그가 부임할 당시에는 낡고 초라했다. 그래서 그는 부임하자마자 교회수리 작업에 들어갔다. 그 해의 성탄절 전야예배를 아름답게 드리겠다는 일념으로 그는 3달 동안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성탄절을 이틀 앞두고 갑자기 폭풍우가 휘몰아쳤다. 낡은 지붕에서 비가 흘러내렸다. 벽이 스펀지처럼 빗물을 빨아들였다.
얼마 후에 벽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에 구멍이 생겼다. 그 구멍 난 벽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는 크게 낙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탄절까지 강단의 벽을 보수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지난 3달 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믿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 날 오후에 그는 중고등부에서 주관하는 자선 바자회에 참석했다. 이것저것 둘러보는데 낡은 식탁보 하나가 그의 눈을 잡아당겼다. 금색과 아이보리색으로 혼합된 4.5미터짜리 식탁보였다. ‘저 식탁보로 강단의 벽에 뚫린 구멍을 막으면 되겠군.’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는 그 식탁보를 샀다. 하루 뒤, 성탄절 이브에는 내내 눈보라가 내렸다. 그는 교회의 문을 잠그고 나오다가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한 중년여성을 보았다. 그런데 버스가 오려면 최소한 30분은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그는 그녀더러 교회로 가서 몸을 좀 녹이자고 권했다. 그녀는 그 지역의 유명한 부잣집에서 유모를 구한다기에 면접을 보러온 타지역 사람이었다. 그녀는 전쟁 피난민이었고 영어도 서툴러서 그 유모 자리를 얻지 못하고 돌아가던 중이었다. 그녀는 교회의 뒤쪽 의자에 앉아서 잠시 기도하고 있었고 그는 일어나 구멍 난 벽에다 그 식탁보를 걸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그에게로 달려오면서 외쳤다. “목사님, 제 겁니다. 제 식탁보가 틀림없어요.” 그가 깜짝 놀라자 그녀는 그 식탁보의 한 쪽 구석에 수 놓여 있던 자신의 이름을 찾아서 보여 주었다. 그녀는 이전에 자신의 남편과 함께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살았는데 2차 세계대전 직전에 나치에 반대하다가 스위스로 이주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둘이 함께 가면 위험하다고 남편이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그녀만 먼저 스위스로 떠나게 됐다. 나중에 그녀는 남편이 나치 수용소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는 무척 감동을 받고는 그 식탁보를 그녀에게 돌려주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그것이 교회 안에 있는 것이 더 아름답다면서 사양하고는 떠나갔다. 성탄절 전야예배가 드려질 때 그것은 촛불 아래서 더 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전야예배가 아주 감동적으로 드려졌다. 예배 후 성도들은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 때 한 노신사가 황홀한 듯이 그 식탁보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노신사는 교회를 나가면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참 이상하네요. 오래 전에 저도 저런 식탁보를 가지고 있었어요. 제 아내는 아주 특별한 날에만 그 식탁보를 사용하곤 했지요. 빈에서 살 때였지요.” 갑자기 그의 온 몸에서 소름이 쫙 끼쳤다. 그는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애쓰면서 그 날 오후에 만났던 그 중년여성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그 노신사는 신음하듯이 말했다. “아니 이럴 수가...내 아내가 살아 있다니...어떡하면 만날 수 있지요.”
그 노신사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는 그녀가 면접하러 들렀던 그 부잣집에 전화해서 그녀의 이름과 주소를 알아냈다. 그는 낡은 차를 몰고 그 노신사와 함께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그가 문을 두드리자 그녀가 나왔다. 그 날 밤에 그는 두 부부의 눈물겹도록 행복한 재회장면을 지켜볼 수 있었다. 징검다리를 만드는 돌덩이 하나하나는 우연히 거기에 놓여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쭉 이어져 있는 징검다리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필연이다. 하나님은 우연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엮어서 아주 필연적인 사건을 만드신다. 우연 속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고 하나님의 의도가 있다. 우리가 잘 살피기만 하면 우연 속에서 빙그레 웃고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김종춘 목사(크리스천투데이)
10. 인생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생을 노력으로 살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성공은 노력의 산물이라는 생각하에 매사에 최선을 다한다. 열심히 인생을 계획한다. 그리고 계획한 대로 열심히 산다. 그런가 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틀은 결코 바꿀 수 없다는 운명론적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운명이 인생을 좌우한다고 믿기 때문에 모든 인생의 생로병사를 마치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나약한 인생을 산다. 그러나 인생은 노력으로 되어지는 것도 아니고, 운명이 인생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산다. 그러면 무엇이 축복인가? 사람들은 부요와 건강과 장수와 성공 같은 유물적인 것을 축복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축복의 열매일 뿐이다. 진정한 축복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하여 자녀 삼아주시고, 이 모든 삶의 조건을 날마다 충족시켜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길자연 목사(왕성교회)
11. 역사를 바꾼 두 아이
1889년, 역사를 바꾸어놓은 두 아이가 태어났다. 한 아이는 사촌간인 오스트리아인 부부 사이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소년은 알코올 중독자인 숙모 밑에서 성장했다. 그는 16세 때 학교를 중퇴하고 극렬분자가 됐다. 그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
또 다른 하 아이가 같은 해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자란 소년은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 입학했다. 소년의 이름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두 사람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만났다. 한 사람은 분노의 독기를 발산했고 다른 한 사람은 평화를 외쳤다.
히틀러는 56세 때 대피소에서 자살해 많은 사람들이 기뻐했고, 아이젠하워가 눈을 감을 때는 세계가 애도했다. 상반된 부모의 교육이 두 아이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13. 운명을 바꾼 책 한 권 이야기
지금부터 약 90여년 전에 영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시골 소년이 런던의 어느 큰 교회를 찾아갔다. 소년은 집이 몹시 가난해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게 되자 교회의 도서관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그나마 공부도 하고 책도 읽으려고 무작정 올라온 것이었다. 소년은 목사가 외출하고 없자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소년의 등뒤엔 수많은 책들로 가득했다. 그것을 바라보는 소년의 눈에는 반짝 빛이 났다. 흥분한 소년은 책을 둘러보다가 한쪽 구석에 두껍게 먼지가 쌓인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볼품이 없는 그 책은 아무도 펼쳐보지 않은 듯 했다. 소년은 먼지라도 털 생각으로 책을 꺼냈다가 차츰 그 내용에 빨려들게 되었다. 그 책은 페브리에의 [동물학]이었다. 소년은 서서 그 책을 열심히 읽었다. 마침내 마지막 장을 읽었을 때 뒷장에 이런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이 책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곧 런던법원으로 가서 1136호의 서류를 가지십시오."
어리둥절한 소년은 곧장 법원으로 달려가 서류를 받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서류엔 소년에게 400만 달러의 유산을 상속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소년은 눈을 비비며 다시금 꼼꼼히 서류를 읽어보았다.
"이것은 나의 유언장입니다. 당신은 나의 저서를 처음으로 읽어주신 분입니다. 나는 평생을 바쳐 동물학을 연구하고 책을 썼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권의 책만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도서관에 기증하고 나머지 책은 모두 불살랐습니다. 당신이 그 교회의 내 유일한 저서를 읽어주셨으니 내 전재산을 드리겠습니다."
그 사건은 영국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모두들 엄청난 유산에 관심이 쏠렸다. 소년은 페브리에의 뜻을 기려 영국 전역에 도서관을 세웠다. 그리고 좋은 책을 보급하는데 힘썼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평생을 보냈다. 책 한 권이 소년에게 놀라운 행운과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14.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
「살인을 위한 교본」이라는 책은 자살하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작가는 이 책머리 부분에서 "만약 당신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운명을 좌우하신다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읽지 마시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궁극적으로 사는 것과 죽는 것을 지배하고 있을까요? 우리 몸의 권리증서를 누가 소유하고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민27:16)
범죄한 인간이 최종적으로 선택할 것은 자살이 아니라 회개입니다.(계3:19)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와 핍박하는 자의 손에서 나를 건지소서"(시31:15)
15. 어리석은 자의 주장
성경: 시편 14 장 1 절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종교개혁자인 루터는 독일 아이스레벤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법률가가 되기를 원했기에 법대에 진학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는 운명적인 여름방학을 보낸 뒤 신학교로 옮기게 됩니다. 운명을 바꾼 그 사건은 친구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더니 천둥 번개가 쳤습니다. 그들은 근처에 있는 커다란 나무 밑으로 피했습니다. 잠시 후 느닷없이 벼락이 떨어져서 나무가 쓰러졌고 미처 피하지 못한 친구는 나무에 깔려서 죽었습니다. 루터는 두려움에 떨면서 땅에 엎드려서 기도했습니다. ‘성 안느여, 나를 구원하시면 내 평생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루터는 신의 존재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 뒤 바로 진로를 바꿨습니다. 누구든지 이러한 일을 당한다면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현대를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시는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자들의 무지한 주장에 불과합니다.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어리석은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 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게 하소서.
/시편을 통한 매일묵상집
16. 데이빗 스원 같은 인생
시골 젊은이가 푸른 꿈을 안고 도시 친척집을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푸르고 울창한 숲가에 이른 데이빗 스원은 봇짐을 베개 삼아 곤히 낮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젊은이가 달게 잠을 자고 있는 한 시간 동안, 많은 운명의 신이 그에게 다가왔다가 사라졌습니다. 아들 없는 부자 노부부가 쉬러 왔다가 순진한 얼굴의 젊은이를 보고 유산을 남길 양자로 삼을까 하다가 지나가기도 하고 강도가 봇짐을 빼앗으려고 칼을 들고 다가왔다가 갑자기 사냥개가 나타나는 바람에 그냥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어느 어여쁜 숙녀가 젊은이를 남편감으로 맞으러 머뭇거리다가 그냥 지나가기도 했지요.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데이빗은 잠에서 깨어 한길로 나와서 도시로 가는 차를 얻어 타려고 달려갑니다. 「주홍글씨」로 유명한 나다니엘 호돈의 단편「데이빗 스원」의 줄거리입니다. 젊은이는 갑자기 죽을 뻔하기도 하고 부잣집 양자가 될 뻔하기도 하고 아리따운 아내를 맞을 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운명을 인지하지 못한 채 다시금 일상의 생활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주인공의 모습과 당신의 모습은 어딘가 닮은 데가 없습니까?
/여운학 사랑의편지 발행인
17. 앞으로 나가는 생활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에 보면 장망성에서 뛰어 나온 후에 악마가 앞에서 대결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은 다시 뒤로 돌아서고 싶어합니다. 갑옷이나 철갑이나 흉배나 창은 앞을 향해서 앞에 있는 적과 싸우라고 있는 것이지 뒤에 있는 적에게 대찬 것이 아닙니다. 뒤는 무방비 상태입니다. 존 번연이 재미있는 묘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앞에 있는데 다시 옛날 생활로 되돌아가면 뒤에는 아무 방비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앞을 향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앞의 적을 위해서만 무장해 주었지 뒤로 돌아가기 위해서 무장해 준 것이 아닙니다. 뒤돌아 서면 죽습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의 운명입니다. 우리는 앞을 향하여 갈수 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회의도 생기고 어려움도 생깁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눅9:62)
18. 운명의 개척
눈물을 흘리며 신앙 상담을 하러 온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술주정이 심한 아버지로 인해 어린 시절을 무척 고통스럽게 보냈기 때문에 남자는 전부 자기 아버지 같은 줄로만 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려고 했는데 교제 기간 동안에는 술을 입에 대지도 않았던 남편이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술주정을 하며 손찌검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팔자가 기구합니까? 친정아버지가 술주정이 심하여 늘 술을 마시고 와서는 어머니를 때렸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온갖 고생을 하며 우리들을 키우셨고 우리는 그런 부모님 밑에서 어린시절을 눈물로 보냈습니다. 그래서 제가 결혼할 때가 되었을 때도 아버지 같은 사람과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남편 역시 그런 사람을 만나다니요. 하나님은 너무 불공평하십니다."
"자매님은 하나님을 원망하며 운명을 탓하고 남편을 원망하지만, 실은 자매님 자신이 그런 운명 속으로 자신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자매님은 남자들이 모두 자매님의 아버지 같다는 잘못된 자화상을 갖고 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가족을 잘 돌보며 가정에0 충실한 남편을 마음속에 그리기보다는 술 먹고 난폭하게 손찌검이나 하며 게으른 남편을 마음속에 그려왔습니다. 그것이 자매님의 잠재의식 속에 깊이 박혀 있는 것입니다. 먼저 자매님의 마음속에 파놓은 함정을 메꾸십시오. 마음의 생각이 주 안에서 올바르게 될 때, 하나님은 자매님의 생각을 바탕으로 자매님을 변화시키고 환경을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매님은 지금이라도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속에 그리는 그림대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엡 3:20)' 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었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구하는 것을 통해서 역사 하시기 때문에 우리 마음의 생각과 기도 자세가 올바르지 않으면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믿고 하나님께 맡기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친히 도우시고 인도하실 겁니다.
19. 운명
성경: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잠 27:1)
태종이 어느 날 우연히 두 아전들이 서로 하늘과 사람의 이치를 논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갑이 말했습니다. “부귀와 영달은 모두 임금에게서 나온다” 이에 을은 “아니 그렇지 않다. 한계급이 오르거나 한 벼슬을 하게 되는 것은 모두 하늘이 정하는 것이다. 비록 임금이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다”하여 서로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태종이 그 말을 엿듣고 나서 종이에 “지금 이것를 가지고 가는 아전에게 한 직급을 올려 주기 바라오”라고 써서 갑을 시켜 세종에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갑은 그 종이를 받고 나오다 갑자기 복통이 나서 그 쪽지를 을에게 대신 부탁하였습니다. 다음날 인사 발령 내용을 보니 을은 직급이 올랐으나 갑은 그대로였습니다. 태종이 이상히 여겨 그 까닭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난 태종은 경탄해 마지않았습니다.
사람의 운명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놓아도 그 계획을 성사시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새롭게 맞이하는 하루와 그 매일의 삶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눈의 색깔을 바꿀 수는 없지만 눈빛은 바꿀 수 있다. 귀로 나쁜 소리를 듣지 않을수는 없지만 들은 것은 잊어버릴 수 있다. 입의 크기는 바꿀 수 없지만 입의 모양은 미소로 바꿀 수 있다. 빨리 뛸 수는 없지만 씩씩하게 걸을 수는 있다. 목소리는 음치이지만 휘파람은 불 수 있다. 물질로 남을 도울 수는 없지만 가만히 손을 잡아 줄 수는 있다. 세상을 아름답게 치장 할수는 없지만 한송이 꽃은 꽂을 수는 있다.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기도해 줄 수는 있다. 비록 몸은 건강하지 못하다 해도 마음만은 건강할 수 있다. 오늘은 잘못했을 지라도 그러나 내일은 잘 할 수 있다
20. 운명은 존재하는가
일반적으로 ‘운명’이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숙명,곧 어떤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는 길흉화복을 말한다. 동양철학에 의하면 운명은 소위 사주팔자를 말하며 천(天)운 지(地)운 인(人)운을 의미한다. 그래서 오늘도 많은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알기 위해 역술원과 무속인을 찾아가거나 전화로 운명상담을 한다.
왜 이런 운명론이 생겼는가. 한 마디로 이것은 이 세상풍속이요,공중 권세잡은 자(엡 2:2)로 말미암은 것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받았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함으로써 에덴에서 쫓겨났고 온 세상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사탄에게 내어준 바 되었다. 그래서 사탄이 공중권세를 잡은 자로서 한동안 세상을 어두움으로 다스리는 세상임금(요 12:31)이 된 것이다.
그런데 사탄도 세상을 지배하는데 있어서 일정한 질서와 법칙을 소유했을 것이다. 사탄은 바로 그 질서와 법칙을 가지고 불순종의 아들들 속에서 이 세상풍속(엡 2:2)을 만들었다. 그리고 운명론은 이 세상풍속 중 하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아주 지혜로운 사람들이 학문적으로 체계화시켜 놓은 것이 소위 역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 영매와 신술이 전통화되어 온 것을 무속이라고 하는 것이다.
과연 그런 운명의 법칙이 그리스도인을 지배할 수 있는가? 그런 운명의 법칙은 어디까지나 사탄의 속임수에 불과하다. 그것은 세상 초등학문이요,저급한 원시종교인 샤머니즘에 불과하다. 그것이 존재한다면 사탄의 세계,어두움의 세계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운명의 법칙은 그리스도인을 절대로 지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도에겐 성령께서 양자의 영(롬 8:15)으로 내주하였고 성도의 삶을 친히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신으로서 사탄의 모든 궤계와 저주의 법칙을 짓밟아버리시고 우리를 참된 만족과 행복과 승리의 세계로 인도하신다. 그 어떤 저주스런 운명의 사슬도 박살내버리시고 우리를 참된 축복의 세계로 인도하신다. 따라서 운명의 법칙이란 성도에겐 있을 수도 없고 지배할 수도 없다. 오직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복의 근원으로 존재할 뿐이다.
/소강석 분당새에덴교회목사
21. 숙명론
이집트에서 활동하는 어느 선교사의 말에 의하면 이집트인들이 가지고 있는 큰 문제 중의 하나가 '숙명론'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많이 쓰는 말 가운데 '인샬라'라는 것이 있는데, 이 말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굉장한 신앙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핑계로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이 가나해도 그것은 신의 뜻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합니다. 약속 시간보다 서너 시간 늦게 나오면서도 '인샬라' 곧 '하나님의 뜻'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인간의 책임을 배제한다고 오해하는 경우는 신앙심이 깊다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기 쉽습니다. 기도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자신이 할 일은 하나도 하지 않고 기도만 하는 것은 극단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며 그 결과를 하나님의 섭리에 맡겨야 합니다.
* 기도: 행한 대로 갚으시는 주님, 잘못된 운명론이나 숙명론에 갖지 말게 하시고 주께 받은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22. 팔자타령
하루는 국어선생님이 아무 말도 없이 칠판에 여덟 팔(八) 자를 크게 쓰셨습니다.
“이게 무슨 글자인가요?”
한 학생이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八字(팔자)입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八자 앞 획을 길게 늘어뜨렸습니다.
“선생님, 八자가 나쁩니다.”
이번에는 뒤 획도 길게 늘어뜨렸습니다.
“선생님, 八자가 늘어졌습니다.”
이번에는 늘어뜨린 것을 지웠습니다.
“선생님, 八자가 좋아졌습니다. 八자가 좋습니다.”
그제야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여러분, 인생 팔자는 이렇게 내 마음대로 합니다. 그런데 팔자타령을 하다니요?”
혹 나의 노력은 생각지도 않고 팔자타령만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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