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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부동산80조원,연간헌금4조8천억?

by 【고동엽】 2011. 1. 31.
 

교회부동산80조원,  연간헌금4조8천억? 

 기독교은행 논란이 뜨겁다. 지난 11월 1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8천 명의 기독교인이 모여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성공 기원 기도회 및 한국사회복지금융 설립대회’를 개최한 자리에서 자본금 1조 5천억 원 규모의 제1금융권 기독교은행을 설립하겠다고 밝힌 이후 논란은 계속 뜨거워지고 있다. 인터넷 댓글을 보면 “돈에 눈먼 개독들이 또 시작이다”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줄을 잇고 있다. 

기독교은행 설립을 주도하고 있는 단체는 한국사회복지금융설립위원회(위원장: 강보영 새소망교회 목사)라는 곳이다. 이 단체의 강보영 목사는 “한국 교회의 부동산 가치만 해도 80조 원이 되고, 연간 헌금 총액만도 4조 8천억 원”이라며 “기존 은행을 인수하거나 새 은행을 설립하는 방법으로 자본금 1조 5천억 원 규모의 제1금융권 기독교은행 설립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강보영 목사는 기독교은행 설립을 위한 구체적인 자금으로 “우선 한국사회복지뱅크㈜가 소유한 납골당 20만 기의 현물 자산과 복지법인 주식을 매각한 4천억 원 정도의 자본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금융위원회의 은행 설립 인가를 받기 위해 발기인 대회를 마치는 대로 금융위원회에 은행설립 예비 인가를 신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기독교은행 설립을 위해 내세우는 명분은 교회와 가난한 사람에게 낮은 이자로 대출해주고, 은행사업을 통해 생기는 수익은 민족복음화를 위해 쓰고 은퇴한 목사들의 생활비도 대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G20 개막에 맞춰 대회를 개최하면서 제1금융권 기독교은행을 설립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기독교은행을 설립해 좋은 일을 하겠다는데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지금 기독교은행이 없어서 가난한 사람을 돕지 못하는가?

기독교은행을 설립하겠다는 이들의 주장은 그 의도부터 잘못되었다. G20 개막에 맞춰 이명박 대통령에게 아부를 하여 기독교은행 허가를 따내겠다는 (자신들만 모르고 세상 사람은 다 아는) 그들의 뻔한 속내부터 잘못된 것이다. 이들의 이런 속내에서는 진정 가난한 자를 돕겠다는 ‘선한 의도’가 아닌 ‘음흉한 탐욕’이 읽힌다. 즉 이들의 의도는 “기독교 정권일 때 충성해서 기독교은행 사업 하나 따내자”는 것이다. 

제1금융권에 대형 기독교은행을 설립해 가난한 사람을 돕겠다는 것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먼저 이들이 한국 교회의 부동산 가치 80조 원과 연간 헌금 4조 8천억 원 운운하면서 이 돈을 마치 자신들의 사금고인양 이야기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대형 제1금융권 기독교은행이 없으면 마치 가난한 사람을 돕지 못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도 문제이다. 이들은 대형 제1금융권 은행 설립을 지향하면서 마치 가난한 사람과 교회를 돕기 위한 서민은행을 세우려는 것처럼 보이려고 한다. 

도대체 지금 우리나라에 제1금융권 기독교은행이 없어서 가난한 사람을 돕지 못한다는 말인가? 교회가 가난한 사람을 돕지 못하는 것은 거대한 제1금융권 기독교은행이 없어서가 아니다. 교회가 가난한 사람을 도우려면 굳이 제1금융권 은행이 아니더라도 교회가 직접 지역 사회의 가난한 사람을 돕든가 아니면 교회주도로 신용협동조합이나 복지법인, 재단 등을 만들어 얼마든지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다. 

정작 더 큰 문제는 제1금융권 기독교은행이 없어서가 아니라, 교회가 가난한 사람을 위해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대형화되는 한국 교회 내에서 가난한 교인들이 죽어나가는 것도 모르고 있고 이들을 돕는 코이노니아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회가 가난한 사람을 도우려면 굳이 제1금융권 은행이 아니더라도 지금도 얼마든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울 수 있다. 

교회가 땅 사느라 빌린 돈 때문에 내는 이자가 그리도 탐나는가?

이들은 또한 “한국교회가 제1·2금융권에서 빌리는 돈을 1년에 1조원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중소기업 대출이자가 연 2-3%인데 비해 교회는 7.6% 이상의 높은 금리를 적용받아 한 달 이자만 수백억 원에 달하고 있다”며 자신들이 은행을 만들어 교회에 더 낮은 이자에 대출해주겠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들은 금융권이 교회에 대출해주고 받는 이자수익이 아까워 그 돈을 자신들이 갖기 위해 기독교은행을 만들어 교회에 더 낮은 이자로 대출을 해주는 경쟁력 있는(?) 은행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들이 교회를 대상으로 대출 사업을 하겠다는 의도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교회가 금융권에 고액의 대출을 받는 이유는 땅을 사서 예배당 건물을 크게 짓기 위한 메가 처치(mega church) 현상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기독교은행을 설립해 다른 은행보다 저리의 교회 대출을 해주는 것은 ‘땅 사서 큰 예배당 짓기 경쟁’에 돈줄을 부담 없이 대주는 사업이 될 것이며, 한국 교회의 메가 처치 현상과 부패를 더욱더 부채질할 것이다. 이는 한국 교회가 제대로 망하는 지름길이다. 겉으로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은행이라고 포장하면서 교회를 대상으로 돈놀이하는 것은 중세의 암흑기 시절 로마 교황청이 겉으로는 가난한 사람에게 이자를 금지한다고 해놓고 자신들은 뒷구멍으로 고리대금업을 했던 것과 별다를 바 없다. 

 진정 가난한 사람을 위한 기독교은행을 하고 싶다면 굳이 제1금융권 은행을 만들 필요가 없다. 하나의 거대한 기독교은행을 설립하여 여러 지역에 있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효율성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지역 교회들이 가난한 사람을 직접 돕든지 교회 주도로 신용협동조합이나 복지법인, 재단을 설립하여 돕는 것이 불필요한 비용도 줄이고 수혜자도 넓힐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다. 정 은행을 만들고 싶다면 가난한 사람을 위한 중소형의 빈민소액대부(micro credit)은행을 설립하면 된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무하마드 유누스가 만든 그라민뱅크를 벤치마킹하시라. 아이러니하지만 무슬림의 그라민뱅크가 오히려 더 기독교은행답다. 

자기를 비우시고 낮아지신 예수님의 모습을 따르라

한편 몇 십조 원이나 되는 막대한 한국 교회의 돈을 한 곳으로 집중시켜 이 돈이 주는 힘으로 가난하고 낮은 사람을 섬기겠다는 발상 자체부터 자기를 비우시고 낮아지신 예수님의 모습에 맞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부하시고 높으신 하나님이시지만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빌2:7-8)을 통해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 자신의 생명과 부요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주셨다. 

교회는 이러한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고난의 모습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이웃과 세상을 섬기고 그들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고후8:9)는 것처럼, 교회도 예수님을 본받아 자신을 낮추고 비움으로써 이웃과 세상을 섬길 수 있다. 

지금 일부 기독교 세력이 벌이고 있는 거대 기독교은행 설립 시도는 예수님의 모습과는 정반대이다. 돈과 힘을 한 곳에 집중시켜 그것으로 이웃과 세상을 섬기겠다는 생각은 초대 교회를 타락시킨 콘스탄틴주의와 사실상 같은 것이며 예수님이 경고하신 맘몬주의에 가깝다. 즉 초대형 기독교은행이라는 발상은 맘몬주의와 콘스탄틴주의의 기괴한 결합이다. 

아울러 이는 예수님의 성육신과 고난, 낮아짐과 제자도의 신학이 아닌 영광과 승리, 힘의 신학이며, 막강한 기독교 정권을 등에 업고 대형 기독교은행을 만들려는 기독교 제국주의적인 오만과 자만이다. 

한국 교회는 자신의 벌거벗음을 깨닫고 돌이키라

지금 한국 교회는 라오디게아교회처럼 부동산 가치 80조 원과 연간 헌금 4조 8천억 원을 자랑하면서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계3:17) 자신들이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계3:17)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또한 한국 교회는 자신들의 힘과 부를 집중하여 그것으로 복음을 전하고 선한 사업을 하고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겠다면서 자만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낮은 십자가를 통한 예수님의 구원하심처럼,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은 “약한 데서 온전하여”(고후12:9)지며 교회가 세상을 섬기는 능력도 ‘강함’이 아닌 ‘약함’에서 나온다. 

성경은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9-10)라고 경고하고 있다. 기독교은행을 설립하여 부해지려한다면 이 말씀을 명심하고, 기독교의 본질로 돌아가 예수님처럼 지금 있는 자리에서부터 주위에 있는 낮고 가난한 사람을 섬기라. 

구원과 하나님 나라는 저기 멀리 무지개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 가까이에 있다. 말만 거창한 신기루 같은 기독교은행이 아닌 바로 지금 당신 옆에 있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하나님께 한 것”(마25:40)이기 때문이다.

 

복음과 상황  고영근 / 희년함께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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