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떠나는 삶 (1)
룻 1:1-8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
을 데리고 모압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사람은 살아가면서 선택을 많이 하게 됩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씩 크고 작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선택에는 단순한 선택도 있고 별로 중요치 않은 선택도 있지만 때로는 아주 중요한 선택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십년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10년이 아니고 어떤 순간의 결정은 일생을 좌우하고 영원을 좌우하는 선택도 있습니다. 순간의 선택은 이렇게 중요한 일입니다. 앞으로 4주 동안 룻기서를 통해서 순간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결과를 가져오는 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나오미 가정의 선택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본문을 보면 유다 베들레헴에 큰 흉년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거기 살던 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엘리멜렉이고 아내는 나오미이며 두 아들 말론과 기룐입니다. 그들이 살고 있던 베들레헴에 큰 흉년이 들어 엘리멜렉은 온 가족을 데리고 모압으로 갔습니다. 모압으로 간 동기는 조상대대로 살아온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 먹고 살기 위해서 모압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그들의 순간의 선택이 과연 잘한 선택인가를 질문하고 있습니다. 결과를 보면 그 선택은 아주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모압에 가서 남편을 잃고 곧 이어 두 아들도 잃고 마침내 두 며느리와 나오미만 남게 됩니다. 그러니까 세 남자가 다 죽고 세 여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간 것은 아주 참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것이 본문이 주는 메시지입니다.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여기서 우리들이 뭔가를 결정할 때 좀 더 깊이 생각하고 결정하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 떠났는가
무엇이든 동기가 중요합니다. 지금 엘리멜렉이 왜 베들레헴을 떠나기로 판단했는지 동기가 참 중요합니다. 나오미 가정은 먹고 살기 위해서 모압으로 갔습니다. 가장이었던 엘리멜렉은 모압으로 내려갈 때 임시로 간 것이 아니고 영주 목적으로 갔습니다. 그것은 두 아들을 모두 모압에 가서 모압 여인들과 결혼시킨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오미 가족은 모압에 먹고 살기 위해서 갔고 또 그곳에서 정착하려고 갔습니다. 동기가 참 중요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언제 떠났는가 하면 본문 1절을 보면 사사시대에 떠났다고 했습니다. 사사시대는 여호수아가 세상을 떠나고 사울이 왕이 될 때까지 350년 기간을 말합니다. 그 때를 가리켜서 영적 혼란기 혹은 영적 암흑기라고 부릅니다(사사기21장25절). 당시는 모세와 여호수아가 죽고 지도자가 없을 때입니다. 그래서 당시 백성들은 자기소견에 좋을 대로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온갖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지금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까지 우상숭배를 지독하게 행하고 있었습니다. 가나안은 왜 들어갔는가 하면 백성들이 애굽에서 우상을 지독하게 숭배해서 하나님이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그 가나안에 들어가서까지 우상숭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때 베들레헴에 흉년이 임한 것입니다. 그 흉년은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영적으로 조금만이라도 눈을 뜨고 보면 하나님의 진노이고 징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나오미 가정이 살그머니 자기들만 살겠다고 모압으로 이사를 갑니다. 그것도 임시로 간 것이 아니고 아주 정착하겠다고 생각하고 가자마자 두 아들을 그 땅의 여인들과 결혼을 시킵니다. 이것이 나오미 가정의 계산이고 처신이고 지금 갖고 있는 생각입니다. 그 모습을 하나님이 보셨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삶의 중심, 삶의 목적을 하나님께 두고 살아야 합니다. 내가 이사할 때도, 무슨 일을 할 때에도 먼저는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엘리멜렉은 그런 생각이 전무하였습니다. 지금 베들레헴은 영적 암흑 속에 살고 있습니다. 가나안은 하나님이 성별시켜서 백성들에게 주신 땅입니다. 그 땅에서는 우상숭배를 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가나안에서 살면서 이제는 편안하고 안정되니까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마침내 그 땅에 징계를 내리셨습니다. 그런데 나오미 가정은 살그머니 도망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도망간 곳이 하필이면 모압입니다. 모압은 롯의 큰딸의 아들 이름입니다. 롯이 가족과 함께 소돔성에 살다가 유황불로 심판을 받을 때 두 딸만을 데리고 구사일생으로 탈출하여 살아남았습니다. 그때 롯의 부인도 두 사위도 다 유황불 심판에 죽었습니다. 탈출에 성공한 아버지와 두 딸, 그 후 두 딸은 자손을 이어가기 위해서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여 취하게 한 다음 아버지와 동침하여 낳은 자식이 모압입니다. 그 모압 자손들이 오래 살면서 이룬 땅이 모압입니다.(창세기 19장30-38절) 그 땅은 지독하게 우상을 섬겼습니다. 모압 사람들은 그 유명한 그모스 신과 몰렉 신을 국가 신으로 섬겼습니다. 그리고 국가적으로 위급한 사태가 발생하면 그 신들에게 인신제물을 바치는 인신제사를 드렸습니다.(열왕기하 3장27절) 그것이 그모스 신과 몰렉 신인데 모압 사람들이 그 신을 섬겼습니다. 이 엘리멜렉이 가족을 이끌고 그 모압 땅으로 간 것입니다. 그러니 복을 받겠습니까.
솔로몬이 처음에 얼마나 복을 받았습니까. 그런데 그 솔로몬이 나중에 타락하여 이방여인들을 맞아들였습니다. 마침내 솔로몬이 모압과 친화정책을 펴면서 그모스 예배당을 예루살렘 기드론 골짜기의 동쪽 구릉에 성소를 지어주었습니다(열왕기상 11장7절). 그래서 하나님이 솔로몬을 버리신 것입니다. 나오미 가정이 배가 고파도 갈 곳에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 없이 모압 땅으로 갔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모압으로 가기로 결정할 때 하나님은 염두에 없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들의 계산에 하나님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그 나라가 우상숭배로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고 있다는 생각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 시대가 그렇게 영적으로 암흑시대였습니다. 신앙인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무엇을 먼저 생각하여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큰 시험은 직장을 선택할 때, 직장을 옳길 때, 월급을 더 준다고 오라는 곳이 있을 때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턱대고 먹고 살기 위해서 더 잘 살기 위해서 아무 것이나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나는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모압으로는 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신조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물질의 시대입니다. 돈을 더 준다고 하면 사람들이 생각도 하지 않고 옮겨 다닙니다. 미래를 준비할 때, 직업을 선택할 때, 사람을 선택할 때, 내게 이익이 되고 돈을 더 준다면 덥석 물어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내 미래가 길지 못한 것입니다.
솔로몬의 출발이 얼마나 좋았습니까. 하나님이 만족하게 그에게 복과 지혜와 영화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철학이 없었습니다. 신앙 중심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중심이 약했습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이 어디인데 거기다 몰렉과 그모스 신당을 지어줍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를 버리신 것입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모압은 엘리멜렉이 갈 곳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지긋이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를 묵묵히 받고 있는데 나오미 가족은 너무 약삭빠르게 가족을 이끌고 잘 살아보겠다고 이방 땅으로 떠나버립니다. 모압으로 간 것은 더 이상 하나님을 기대하지 않겠다는 생각입니다. 자신들이 스스로 호구지책을 강구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겠습니까. 결국 그것이 화근이 되어 10년이 못되어 남편이 죽고 곧 이어 두 아들도 죽었습니다(사사기1장5절). 우리 그리스도인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주님의 제자들이 된 이상은 자존감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엘리멜렉은 누구인가
나오미와 엘리멜렉은 누구입니까. 그들이 누구 길래 함부로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에 생각 없이 가면 안 되는 사람들입니까. 엘리멜렉은 에브랏(에브라다) 혈통에 속하는 사람입니다(역대상2장19절). 에브랏은 갈렙의 아내 이름입니다. 그리고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에 들어가는 일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입니다. 모세 뒤에는 여호수아와 갈렙이 있었습니다. 모세가 이 두 사람 때문에 가나안 행을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앞에는 홍해가 가로놓였고 뒤에서는 애급군대가 쫓아올 때 모세가 홍해 앞에서 우물쭈물 거리고 있을 때 뒤에서 갈렙이 모세를 바다로 떼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가 앞으로 넘어지면서 홍해 물을 밟자마자 홍해가 좍 갈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탐꾼들이 정탐 후 보고할 때 열사람이 그 땅은 갈수 없는 땅이라고 보고해서 백성이 얼마나 분노합니까. 그때 그 땅은 말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적극적으로 가나안행을 독려했던 사람이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도중에 죽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가나안에 들어갔고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 땅의 적들을 다 내쫒고 땅을 끝까지 분배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갈렙입니다. 갈렙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베들레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대대로 살았습니다. 그 갈렙의 11대 후손이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입니다. 그렇다면 이 엘리멜렉이 어떻게 그 베들레헴을 먹을 것이 없다고 그렇게 쉽게 떠날 수 있습니까. 이 아비멜렉이 너무 쉽게 생각했고 결심하였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들은 배가 고파도 베들레헴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더구나 지금 하나님의 징계 중인데 자기들만 살겠다고 미련 없이 이방 땅으로 가서 두 아들을 이방 여인들과 결혼을 시킵니다. 그러니 그들이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이 신앙의 역사는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부모님들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유산을 한 푼도 받은 것이 없고 집 한 채 받은 적은 없지만 그 보다 더 소중한 신앙을 물려주셨습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교회를 왕래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신앙의 세계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믿지 않는 동네에서 우리 집만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것이 오늘에 와서 생각해 보면 참 놀라운 복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최고의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오늘 그 신앙이 5대째 내려가고 있습니다. 이 역사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 역사를 아주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내게 천만금이 주어진다 해도 이 역사를 부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더구나 모압에 가는 일도 없을 것이고 모압에 가서 아이들을 결혼시키고 몰렉을 섬기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자존심이고 나의 중심입니다. 내가 이 중심을 고수하고 있는 한 하나님은 나와 내 자손을 지키실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엘리멜렉은 이 점을 너무 쉽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다윗의 출생지이고 예수께서 태어나신 곳입니다. 또 그 땅은 갈렙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얻은 땅이고 갈렙이 정착한 땅입니다. 그리고 그 땅은 이미 장차 메시야가 태어나리라고 예언되어 있는 약속의 땅입니다. 그곳이 베들레헴입니다. 그 후에 이 사건이 있은 후 1100년 후에 그 땅 베들레헴에서 마침내 메시야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태어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엘리멜렉이 배가 고프다고 그 땅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이것은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먹은 것과 같은 모양입니다. 아주 어리석은 짓을 했습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면서 많은 결정을 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큰 결정도 하고 작은 결정도 합니다. 중요한 결정도 하고 별로 중요치 않은 결정도 합니다. 그런데 때로 한번 결정으로 몇 년을 좌우할 결정도 있고 어떤 결정은 평생을 좌우할 결정도 있고 또 때로는 영원을 좌우할 결정이 요구될 때도 있습니다.
본문의 중심 메시지
그러면 본문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근본적인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떠나면 실패한다”는 메시지입니다. 엘리멜렉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나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그것만 봐도 그가 어려서부터 자라난 집안의 전통이 어떤 것이었나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갈렙의 11대 후손입니다. 그런 그가 먹을 것을 찾아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갔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나 이방세계로 갔다는 뜻입니다. 여기 엘리멜렉이 베들레헴을 떠난 것은 하나님을 떠났다는 말입니다. 어디로 도망갔는가 하면 이방 땅 모압입니다. 모압은 그모스와 인신제사를 드리는 몰렉 신을 섬기는 땅입니다. 그곳으로 나오미 가정은 생각 없이 갔습니다. 그뿐 아니고 아비멜렉은 모압 땅에 가서 두 아들을 그 땅 여인들과 결혼을 시킵니다. 그 땅 여인들은 핏속에, 생각 속에, 의식 속에 그모스 신과 몰렉 신에게 인신제사를 드리는 문화로 가득 차 있는 여성들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서 그 멀리 하란으로 가서 며느리를 구한 것과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엘리멜렉은 그 땅 여인들을 며느리로 맞으면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타향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도 작용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인들과 혼인을 맺음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을 것입니다. 엘리멜렉의 계산은 치밀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비멜렉의 가정이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에 가자마자 불행이 찾아온 것입니다. 먼저 계산에 빨랐던 엘리멜렉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 두 아들도 죽었습니다. 이제는 혈통이 끊기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성경은 그들이 왜 죽었는지를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무슨 병에 걸려 죽었는지, 사고사를 당했는지 그 사연을 말씀하지 않습니다. 다만 본문이 우리에게 주시는 단순한 메시지 하나는 “내가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면 결국 겪어야 할 손실이 크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완전한 상실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때로는 철저한 패배도 주어진다”는 것을 시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참 꼭 명심하여야 할 무서운 사례입니다.
여기 엘리멜렉의 선택은 지극히 실용주의였습니다. 지극히 편리주의이고 현실주의에 근거한 선택이었습니다. 베들레헴에 살고 있는 사람들 모두 다 지금 배고파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다 하나님의 징계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베들레헴에 살고 있던 보아스도 같은 시대에 베들레헴에 그대로 살았고 그 땅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독 엘리멜렉의 가정만 그 땅을 피하여 이사를 갔습니다. 그것도 이방인들이 살고 있는 땅으로, 그것도 그모스와 몰렉이라는 최악의 우상을 섬기는 땅으로 갔습니다. 그 땅에 가서 두 며느리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도 아주 철저하게 계산해서 떠났습니다. 그 결과 주어진 것이 무엇인가 하면 본문에 나오는 그대로 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를 알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나면 개인이든지 사회든지 국가든지 가정이든지 위기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사탄은 이 세상을 보여주면서 하나님의 길을, 십자가의 길을 포기하도록 계속 종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나라는 너무 빠르게 세속화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오늘 사람들이 너무 쉽게 하나님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내가 판단해서, 내가 주도해서 하나님을 떠나면 복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메시지로 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그런 안목을 가지게 합니다. 하나님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시고 내 영혼의 창조자이시고 내 삶의 인도자이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주인이시오 의지 자시오 나의 목자시오 내가 의지할 바위시오 나의 산성”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하나님 안에 깊이 들어가 그 하나님의 인도를 힘입고 살아가는 것이 은혜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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