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고난 프로그램
행 8:1-8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
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
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저를 농촌에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제가 태어날 때는 우리집안의 가세가 한창 기울어 갈 때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린 시절을 부족한 것이 많은 채 살았습니다. 꿈도 제대로 피우지 못했고 꿈도 크게 갖지를 못했고 그래서 한때 방황도 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시고 어른들이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오늘 와서 생각해 보니 제가 농촌에서 태어나고 어려서 부족함을 경험하였고 또 한때 방황했던 기회를 가졌던 것들 모두가 다 제 인생에 유익하게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날의 고난의 삶들을 참 고맙게 생각하고 아주 유익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 결과 저는 오늘 생각이 많은 사람이 되었고 마음에 여유가 많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 그런 경험들이 오늘 남의 입장을 많이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지난날의 고난들은 생각해 보면 참 유익한 고난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고난이나 아픔 그리고 부족함은 때로 사람을 성숙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개인이나 교회나 기업이나 민족이나 신앙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고난에 대해서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저 개인의 경험에 비추어서 우리민족의 지난날의 고난도 똑같은 관점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민족도 지난날 고난을 많이 당하면서 살았습니다. 약하고 무지하고 힘이 없어서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난날 역사를 보면 우리역사가 한스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왜 우리민족은 이렇게 당하기만 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좀 조용히 그리고 깊이 생각해 보면 여기에도 하나님의 깊으신 경륜과 뜻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 나타난 말씀을 읽어보면 더욱 그 점을 생각하게 됩니다. 본문을 보면 스데반이 무참하게 돌에 맞아 죽임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스데반은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뽑은 7집사 가운데 한사람입니다. 이 스데반이 돌아다니며 열심히 전도를 했습니다. 사도행전6장8절을 보면 “성령이 충만하여 다니며 큰 기사와 표적을 일으켰다”고 했습니다. 그 전도에 당시 제사장들도 개종하여 넘어왔습니다. 당시 레위인은 18,000명 정도였고 그중 제사장이 8천명 정도였습니다. 제자들과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전도하고 설교했을 때 제사장들이 개종하여 넘어올 정도였으니 일반인들은 얼마나 감동을 받았겠습니까. 그때 바리새인들이 큰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스데반을 유인하여 회당에서 논쟁을 벌이게 하였고 그때 사람을 매수하여 스데반이 하나님을 모독했다고 위증(6:11)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스데반을 끌고 죽이려 성 밖으로 나가 약 4m 되는 낭떠러지에서 밀쳐 떨어뜨렸으나죽지 않으니까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사도행전8장1절을 보면 그 사건을 주동한 사람이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은 사도들과 기독교인을 핍박하는데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사울의 핍박은 곧 바로 기독교인들을 검거하기 시작하였고 그때부터 기독교인들의 수난이 시작되었고 피난이 시작되었습니다.
역사를 보면 수난은 기독교의 운명처럼 나타납니다. 기독교의 고난은 시대가 바뀔 때마다 환경이 바뀔 때마다 새 왕이 나타날 때 마다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가정에 기독교 들어갈 때에도 이 점이 나타납니다. 어느 집단에 기독교가 들어갈 때에도 어느 나라에나 기독교가 들어갈 때에는 통과의례처럼 고난과 핍박과 수난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 얼마나 저항이 심하고 수난이 심했습니까. 한국에 처음 복음이 들어왔을 때 천주교에서는 제사문제만 가지고도 2만 명 여명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너무 많이 순교를 당하니까 천주교가 제사제도를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천주교가 제사제도를 그냥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 동네에 처음 기독교가 들어온 것은 우리 어머니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1910년대 초 감리교 권사 딸로 우리 집에 시집을 왔습니다. 유교로 찌들은 우리집안을 하나씩 변화시켜 나갔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보니까 참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제사를 추도식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난리가 났습니다. 온 씨족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았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적당한 시점에 우리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안을 복음화 하는데 크게 기여를 해 주셨습니다. 오래 사셨으면 아마 어려웠을 것이고 아니면 훨씬 세월이 더 흘러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60년 만에 온 가문 전체가 복음화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도저히 믿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들이 다 복음화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은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단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그 죽음 후에 심한 핍박이 시작되었습니다. 3절을 보면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 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겼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야밤을 틈타 도망가기 시작하였고 전국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다급한 나머지 맨 정신으로는 갈 수 없는 사마리아 땅으로 도망간 것입니다. 14절을 보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너무 급하니까 사마리아 땅으로 가서 숨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생리는 어딘가에 가면 그냥 있지 않고 반드시 전도를 하고 교회를 세웁니다. 그것이 순서입니다. 오늘 세계 여러 나라로 퍼져나간 그리스도인들이 가서 전도를 하고 교회를 세웁니다. 그렇게 교회를 세운 것이 155개국에 약 5천여 개 교회가 됩니다.
스데반이 죽은 후 곧 바로 고난과 수난과 검거선풍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모두 전국으로 흩어졌습니다. 언뜻 보면 그냥 고난과 불행인 것 같이 보였는데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 결과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로 그리고 전국으로 또 이방 땅으로 전파되는 효과를 자져 온 것입니다. 그 고난이 없었더라면 유대인들은 오늘까지도 사마리아 땅에 전도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모여 안주했을 것입니다. 사람은 평안하면 움직이지 않고 주저앉아 뭉개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적당한 때에 이 세상에 사람들로 하여금 움직이도록 아픔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날 우리민족의 아픔의 역사도 좀 깊이 바라보면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고난의 역사 때문에 오늘 우리나라가 형성된 것입니다.
시대마다 지도자 나라들 활용
성경에 보면 큰 나라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처음에 애굽이 나오고 바벨론이 나오고 메데와 바사가 나오고 헬라와 로마가 나옵니다. 그리고 오늘 러시아와 미국과 중국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들을 예민하게 한번 눈여겨보면 하나님은 이 나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가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이 지도자 나라들을 통해서 복음의 흐름이 이루어졌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아득하지만 애굽, 바벨론, 메대와 바사, 헬라, 로마로 이러져 내려갑니다. 그리고 그 섭리가 로마에서 영국을 중심한 구라파로 또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그리고 아시아로 와서 오늘 아시아 지역에서 복음과 하나님의 섭리가 멈추어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됩니다.
여러분, 아시아를 보십시오. 지금까지 복음의 흐름이 줄기차게 전 세계를 한 바퀴 돌게 하시더니 오늘은 그 복음이 아시아 지역에서 머물러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합니다. 그리고 계속 앞으로 흘러가야 하는데 앞에 복음화가 되어야 할 여러 나라들 앞에서 그냥 멈추어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그리고 중국 신장지역인 티베트, 몽골, 위그루지역의 중국 남부지역, 또 알타이와 튜바 지역인 시베리아 전 지역,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등 모슬렘지역, 또 인도등과 같은 힌두교 지역들이 앞으로 복음이 뚫고 들어가야 할 지역들입니다. 그 지역을 동경 105도 지역이라고 부릅니다. 복음의 흐름이 계속 흘러오다가 그 지점을 앞에 두고 지금 멈추어있는 형국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지역들 중간지역에 우리 한국이 자리를 잡고 있고 그 한국이 오늘 이상하게도 복음의 강국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이 앞으로 뭔가 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복음을 전하는데 한국의 역할이 주어져 있다고 들 말하는 것입니다.
21세기 한국의 역할
앞으로 한국이 이들 나라들에게 할 일이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나라를 오래 전부터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셨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지난날의 고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점을 발견하기 위해서 지난날의 우리민족의 역사를 한번 훑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난 한국민족의 발자취를 훑어보면 하나님이 우리민족을 훈련하시듯 훈련하셨구나 하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지금까지는 이스라엘민족이 세계에 가장 많이 퍼져 살아가는 민족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자의든 타의든 전 세계로 퍼져나가 살고 있는 민족입니다. 그렇게 퍼져나가 흩어져 살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디아스포라라고 합니다. 그렇게 퍼져나간 이스라엘 민족은 나름대로 전 세계에서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으로 할 일을 다 해 왔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이 오늘 이스라엘 땅에서만 모여 살았더라면 오늘 원대한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전파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도 한곳에 모여살기를 좋아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넓게 흩어져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는데 한곳에 머물러 안주하니까 하나님은 환란을 통해서 세상에 흩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날의 환란도 고난도 알고 보면 하나님의 섭리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은 우리 한국민족이 이스라엘민족을 제치고 가장 많이 세계로 흩어져 살고 있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1세기의 세계를 이끌고 갈 나라들을 사람들은 미국과 중국과 러시아와 일본이라고 지칭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 네 나라에 가장 많이 퍼져서 살아가고 있는 민족이 한국민족으로 자그마치 540만 명입니다. 중국에 220만 명, 미국에 200만 명, 일본에 70만 명, 러시아에 50만 명이 나가 살고 있습니다. 그 정도의 숫자라면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정도의 인구라고 합니다. 효과적으로 인류를 위해 사랑하고 봉사를 실천할 수 있다면 대단한 파워가 될 수 있다는 숫자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점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난날 역사에서 고난을 통해서 우리민족을 강제로 세상에 흩어 놓으셨습니다. 고난이 아니면 흩어지지 않으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처럼 무서운 환란을 통해서 흩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민족이 반만년동안 조용히 살아왔습니다. 세상을 모르고 울안에 갇혀 있는 사람처럼 작은 나라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일본으로부터 36년 동안 식민지 생활을 하며 주권과 나라도 잃고 이름도 다 빼앗긴 채 살았습니다. 그 일본의 지배가 너무 고난스러우니까 견디다 못한 일부 사람들이 울타리를 넘어 북쪽 간도로 갔고 일부는 중국에 정착하여 살면서 민족을 형성하여 살았습니다. 그들을 오늘 우리는 조선족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이 지금 220만 명이나 됩니다. 그곳 북간도에서 살다가 더 북쪽으로 올라가 러시아에 정착한 사람들도 있고 그들이 다시 강제로 이송되어 거기서 더 북쪽으로 올라가 사할린에서 혹은 중앙아시아에서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우리는 고려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이 지금 50만 명이나 됩니다. 또 6․25로 고난의 삶이 또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양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고아들이 또 세상으로 입양되어 흩어지기 시작하여 미국, 캐나다, 호주, 스위스, 스웨덴, 프랑스, 덴마크 등 15개국으로 입양된 아이들이 지금까지 14만 명이나 됩니다. 지금도 매년 3천 명씩 해외로 입양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에 희망이 없음을 알고 일찍 눈을 세계로 돌려 나가 산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미로 하와이로 미국으로 캐나다로 구라파 등 오늘 세계 150여 나라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의 수가 300여만 명이나 됩니다. 이렇게 해서 세상으로 흩어진 우리민족의 디아스포라들이 자그마치 600여만 명이나 됩니다. 이들 대부분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작은 우리민족을 이 세상 150여 나라에 왜 이렇게 흩어놓으셨을까요. 평안하게 살면 흩어지지 않으니까 이 나라에 숫한 고난과 전쟁과 가난을 통해서 강제로 이 백성들을 흩어 놓으셨습니다. 우리들이 눈을 좀 크게 뜨고 세상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의 고난 프로그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날 큰 핍박과 수난의 역사와 고난들이 왜 우리에게 주어졌는가라는 의문이 이렇게 풀리게 됩니다.
본문 사도행전8장1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니라, 그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여기 “흩어지니라”라는 말씀은 초대교회 교인들이 핍박으로 흩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언뜻 볼 때는 재수 없어서 스데반이 죽임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고난 받고 도망 다니는 신세처럼 보였지만 그 흩어짐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곳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이 흩어짐으로 인하여 넓은 지역에 복음이 확장되고 전파되었습니다. 사도행전8장4절을 보면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말씀을 전하였다”고 했습니다.
복음이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30년 만에 예루살렘이 복음화 되었고 그 후 400년도 안되어 로마가 복음화 되었습니다. 그 복음이 한국에 들어와 100년 만에 천만 그리스도인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또 그 흩어진 우리민족이 전 세계로 나가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한국민족의 복음화로 현재 세계 180여 개국에 복음을 수출하고 있습니다.
지난역사의 고난도 하나님 주신 선물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뒤를 돌아다보니까 “아 그랬구나”하는 깨달음이 주어집니다. 36년간 아픔을 당할 때는 “우리에게 무슨 죄가 있나”를 생각했었습니다. 6․25의 아픔을 당할 때에도 “우리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가”를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극심한 가난 시대를 살아갈 때에도 “우리들이 무슨 악을 저질렀는가”라는 의문도 가졌었습니다. 그런데 그 환란의 역사가 지나고 난 오늘 생각해 보니까 그 고난들이 오늘 우리나라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8․15후 60년 만에, 6․25후 50여년 만에, 우리나라는 세계 12번째 무역대국으로 성장하였고 전 세계 180여 개국에 2만여 명의 선교사를 보내게 되었고 또 앞으로도 할 일이 너무 많이 주어진 우리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살아가면서 당하는 고난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를 발견하고 해석하는 삶이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는 삶입니다. 어제 8․15 64돌을 맞이하였습니다. 지난날 8․15역사나 6․25역사를 잊을 만도 한데 아직도 잊지 못하는 것은 거기에 그런 뜻과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난날 우리민족에게 뼈에 사무치는 고난을 주셨습니다. 그 고난의 역사 때문에 오늘 우리민족이 이렇게 세계화를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며 순응하는 삶을 살아갈 때 그때 우리민족도 할 일을 다 하는 민족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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