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나라 빌2:12~13, 행16:12~40
빌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개척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교회를 개척했지만, 이 빌립보 교회 한 곳에서만 머물며
오래 사역을 하실 수가 없었어요.
하나님이 사도 바울에게 주신 소명이 아시아와 유럽 각 지역에 다녀서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기 때문에
빌립보에 교회를 세우고, 또 다음 지역(데살로니가)으로 전도를 하러
얼마 후에 빌립보를 떠나게 됩니다.
자,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그 빌립보 교회가 어떻게 유지가 될 수 있겠습니까?
비록 사도 바울이, 빌립보 감옥이 지진으로 갈라지는 그런 기적적인 사건도 일어나고
간수장이 회심하는 사건도 일어났지만,
여러분이 한번 그냥 상상으로 생각해 보세요.
그런 역사가 일어나서, 간수장과 또 루디아를 중심으로 해서
빌립보 교회가 이렇게 형성이 됐어도 (본문은 빌립보교회에 보내는 서신)
사도 바울이 좀 계속 거기에 계시면서 설교도 계속 주일마다 하고,
제자훈련도 시키고... 이렇게 해주셔야 교회가 세워지겠죠.
바울이 전도해서 교회 세우고, 얼마 지나지 않은 후에
그냥 교회를 떠나버리면,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기가 어려운 일이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이렇게 성경도 있어서, 우리가 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 수도 있지만,
그때 당시는 신약성경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아직 없었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바울 대신 목회할 만한 분이 있어서,
사도 바울이 그를 세워준 것도 아니고요.
(*드로아에서 조인한 누가가, 일단 빌립보에 잔류한 것으로 보입니다.
누가도 역시 이때는 새신자죠.
그리고 바울, 실라, 디모데만 데살로니가로 떠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냥 빌립보에서 교회 시작을 하고, 사도 바울은 그냥 떠나야만 됐습니다.
자 그러니 빌립보 교인들도 얼마나 난감했고,
사도 바울도 또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는 거죠.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개척하고 바로 떠난 것을 생각하면,
‘아, 이 사도 바울의 믿음이 얼마나 대단한가!’
그리고 그렇게 떠나는 사도 바울을 그냥 떠나게 하고 나서,
빌립보 교회는 훌륭한 교회가 되었어요.
그래서 지금 사도바울은, 빌립보교회에 편지를 이렇게 써서 보내는 것입니다.
(*바울이 최초로 교회를 세운지 약 10년 지난 시점에 편지를 씀)
사도 바울이 옥중에 있을 때, 그 옥바라지를 했던 교회가 빌립보 교회였습니다.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빌4:18
빌립보 교회는 참 귀한 교회로 세워졌어요.
‘이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근데 오늘 빌립보서 2:12~13절에 ‘아 그런 믿음이 사도 바울에게 있었고,
그런 역사가 있었기에 빌립보 교회가 선 거구나!’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그게 12절에 사도바울이 간절히 이렇게 권면합니다.
자기가 없을 때, 즉 자기가 떠나고 난 후에 빌립보 교인들이 어떻게 신앙생활 해야 되나?
하는 것을 오늘 여기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12절에 ‘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나 없을 때에도’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회에 없단 말이에요. 전도여행을 떠났죠.
그래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사도 바울이
‘나는 떠나지만 주님은 너희들과 함께 계신다.
그러니까 내가 없을 때에도, 내가 있을 때처럼 조심하고,
그리고 나를 의식하는 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우리 주님이 지금 너희와 함께 계시니,
여러분들이 내가 있을 때 뿐만 아니고, 내가 없을 때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의 구원을 이루라’
그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러니까 제발 사람으로서 사도 바울 나를 보지 말고,
‘내가 있냐/ 없냐’ .. 이런 거 자꾸 신경쓰지 말고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 하나님을 보라’
그러니까 이 믿음 때문에 사도 바울은
과감하게 또 다른 곳으로 전도를 떠날 수 있었어요.
주님이 저들과 함께 계시는 것을 알았어요.
예수님을 영접한 빌립보 교인들 안에
우리 주님이 임하여 계신 것을 사도 바울이 알고나니까
더 이상 걱정하지 않고 사도 바울은 떠날 수 있었던 거고,
떠나면서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는
‘너희 안에 계신 하나님, 그 주님을 너희들이 주목하라!’
그렇게 사도 바울이 권면하신 겁니다.
▲우리 교회는 일꾼의 부족 현상이 굉장히 심각해요.
교인 수는 많지만 교회 안에 일꾼은 굉장히 부족합니다.
왜냐면 이렇게 새로 등록해 오시는 교인들이 바로 일꾼이 되기가 어려워요.
‘이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건물이 몇 층인가?’ 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일꾼이 되어달라고 하기도 어렵잖아요.
교인은 많이 늘어나는데 섬기는 일꾼은 부족한 현상 때문에
아 교회 안에서 직분을 맡은 일꾼들은 몇 배나 더 힘이 듭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교회에 등록하신지 얼마 안 되시는 분들은
너무 오래 기다리지 말고, 빨리 교회에 어떤 일이든지
하나씩 맡아 주시기를 꼭 부탁을 드립니다.
그런데다가 또 형제교회 파송 선교사들이 연말이면 또 몇백 명씩 파송되어 나갑니다.
주로 이 파송 선교사로 나가시는 분들이
대부분 속장, 국장, 이렇게 하실 만한 분들이세요.
열심히 교사로, 성가대원으로, 선교회 회장으로 이렇게 섬기던 분들이
주로 형제교회(분립개척한 교회)로 떠나시니
그 교구 안에는 빈 구석이 너무 큰 거죠.
처음에는 ‘이걸 어떻게 감당하나? 그렇지 않아도 일꾼이 부족한데...
형제교회에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나가시라고,
이렇게 광고는 드렸는데, 막상 나가시는 분들을 보면 절망이 돼요.
’어떻게 당신이 나가십니까? 딴 사람 보내고 당신은 남으셔야지...‘
이런 말이 목구멍에까지 올라와요.
그러나 그랬다가는 ’형제교회 파송 선교사 제도‘는
완전히 그냥 다 폐지되어 버릴 테니, 그렇게 말할 수는 없고
‘잘 결정하셨다고.. 너무 감사하다고..’ 이렇게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하고
축복해 드리고 그렇게 파송을 해서 보내드립니다.
'그럼 남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나?'
교구 목사님들은 얼굴이 다 수심에 차 있고
‘이거 어떻게 해야 되나?’ 수습이 안 되고
어떤 교구 같은 경우에는 속회 원이 몽땅 나가버려요.
지역장이 속장을 데리고 나가버려요.
그런데 참 놀랍고도 감사한 것은,
그리고 이제 1월 2월이 지나고 나면,
어디서 또 그런 일꾼들이 왔는지, 새로운 교인들이 다 속장을 메꾸고,
국장 자리도 다 메꾸고, 선교회장 자리도 다 메꾸고... 하는 것을 봅니다.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한 후에,
교회가 계속 잘 유지되었던 것과 같은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훨씬 더 일꾼이 풍성해지는 역사를 또 봐요.
‘이게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되나?’
이게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주님 때문입니다. 아멘!
부모님 돌아가시면 뭐 소년소녀가 가장 해야죠. 뭐 그런 식입니다.
우리 속장(구역장)들 중에 ‘그 속장 믿고 교회에 나왔다가,
그냥 속장이 갑자기 그나 형제 교회로 가 버려서 황당해 하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자기보고 속장을 하라 그래서
‘내가 이제 교회 온지 얼마 안 되는데...’ 이런 황당한 일을 겪으면서도
또 (소년소녀 가장처럼) 속장 일을 다 훌륭하게 감당해 나가시는 일을 봅니다.
이게 다 무슨 까닭이죠?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이 하시는 일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방향만 올바로 잡아서 나가면,
그 다음엔 다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가 선 것도 그런 까닭이에요.
‘사도 바울이 떠나면 어떡하나? 우리 교회는 어떻게 하나?’
뭘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요?
사도 바울보다 더 귀한 주님이 함께 계신데...
‘너희 안에 계시는 이가 하나님이시니’ 빌2:13
그 사실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그렇게 깨우쳐 주려고 한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정말 눈 떠야 할 것이
‘주님은 정말 우리와 함께 계신다. 내 안에 계신다.'
그래서 더 이상 환경이나 사람 의존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말고,
이제는 진짜 주님만 의존하는 믿음을 가지셔야 돼요.
이번에 제주도 세미나에 많은 선교사님들이 오셨었어요.
그 여성 교사님 한 분이 세미나가 끝나고 난 다음에
이제 임지로 가시게 되면서 만났습니다.
’이번 영성일기 세미나에서 어떤 유익을 얻으셨습니까?‘ 그랬더니
그분이 하시는 이야기가 눈물을 글썽이면서
'그 동안에 선교지에서 참 제일 어려운게 외로움이었습니다.'
나만 혼자서 이렇게 외톨이가 되어서, 이렇게 떨어져 있고,
파송 교회는 한국에 멀리 있고, 가까이 함께하는 그런 동역자는 없고...
우리만 지금 이렇게 떨어져 있는 이런 느낌, 그 외로움 그게 너무너무 심했다는 겁니다.
너무너무 힘들어서 나중에는 육신에 병까지도 생기고
그래서 할 수 없이 안식년을 가질 수밖에 없는 지경까지 갔었던 거예요.
그런데 안식년이 끝날 즈음에 ‘영성일기 세미나’가 있다고 해서
그 세미나 끝나고 이제 돌아가야 되겠다... 그러고 참석을 했는데
‘아 주님은 늘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늘 기도할 때 ‘주님, 어디 계세요? 왜 우리는 이렇게 홀로 내버려 두셨어요?
주님, 너무 외로워요. 너무 힘들어요.
주님, 저를 어떻게 좀 위로해 주시고 역사해 주세요...’ 늘 그랬는데
‘아, 주님은 늘 내 안에 계셨구나. 그걸 내가 왜 몰랐을까?’
영성일기 세미나에 참석하는 동안에 완전히 그 눈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와 같이 계시다!’
“목사님, 이제 제가 다시 임지로 돌아가도, 이제는 슬플 것 같지 않아요.
외로울 것 같지 않아요. 나와 함께 계신 주님을 진짜 만나고 나니까,
눈을 뜨고 나니까,
이제는 내가 왜 그동안에 바보같이 주님을 늘 마음에 모시고 살면서도
그렇게 ‘주님은 어디 계시냐?’고 찾았는지 모르겠다”고 그러시면서 기뻐하는 걸 봤어요.
▲여러분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말씀하신 것은 빌2:12~13
지금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필요한 말씀이에요.
우리는 성경도 있고, 이렇게 예배당도 있고, 목사님들도 많고 다 그런 가운데 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계신 주님’ 그 주님을 바라보고,
그 주님을 믿고, 그 주님을 의지하고, 그렇게 사는 믿음입니다.
근데 이런 믿음이 어떤 모습인가요?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을 진짜 믿는 믿음은 어떤 모습인가?’ 하는 것을
사도 바울이 이렇게 권해주고 있어요.
‘항상 복종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렇게 표현하셨어요. 2:13
여러분이, 예수님이 정말 여러분 안에 계신 것을 진짜 믿는다면,
여러분이 정말 주님을 믿는 성도라면
‘뭐 내가 어느 교회를 의지하거나, 또는 목사님을 의지하거나,
옆에 있는 교인들을 의지하는게 아니고
나 혼자서 외톨이로, 저 오지 선교지로 가더라도
걱정하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믿음, 주님 모시고 사는 믿음!
진짜 이런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특징이 있느냐 하면,
항상 주님께 복종해요.
주님을 모시고 사는데 항상 복종이죠 뭐!
예수님 모시고 사는데 그 삶의 특징이 뭐겠어요?
항상 주님께 복종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래서 주님을 늘 마음에 모시고 사는,
자기 마음에 주님이 계신 걸 진짜 믿는 사람의 특징은
항상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 하나가 ’두렵고 떨림‘입니다.
늘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시니, 매 순간이 두렵고 떨리는 거죠.
주님과 늘 함께 동행하니까요.
여러분, 말을 함부로 하면, 주님을 모시고 사는 성도가 아니죠.
때때로는 그런 분들을 봅니다.
교인들 사이에도 너무 친하다 보면, 좀 심한 농담을 하는 분들도 있어요.
특히 이제 남녀관계 빗대어 농담들을 뭐 이렇게 쉽게 해요.
너무 친하니까.. 뭐 가족들을 다 잘 아니까..
숟가락 밥그릇 숫자까지 서로 잘 아는 관계니까...
그러니까 세상에서 그렇게 친하면 좀 정도가 넘어서는 심한 농담도
친하다고 하는 증거지요 뭐... 교인들끼리 그렇게 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뭐가 문제죠? 두렵고 떨림이 없어요.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신 것을 진짜 알면, 그렇게 (함부로 농담) 못해요.
성도들끼리 사이에, 할 수 있는 말이 있고, 할 수 없는 말이 있어요.
그 기준은,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신 것을 진짜 알 때
주님이 함께 계신 것을 정말 알고, 어떻게 말을 함부로 합니까?
말을 함부로 하는 분을 보면 ‘아, 이분이 아직은 주님이 함께 계시는 것을 모르시는구나.
두렵고 떨림이 없구나’ 하는 것을 알게 돼요.
▲교인들 사이에 분열과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늘 제가 말씀드리지만, 교인들 사이에 분열과 다툼은 그냥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누가 잘못했거나, 무슨 문제가 있으니까, 교인들끼리도 싸우는 거지요.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주님이 함께 계시는 것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지 못하다는 겁니다.
주님이 함께 계시는 것을, 정말 두렵고 떨림으로 내가 주님을 바라보고 있으면
무언가를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도, 그 방법이 달라요. 태도도 다르고요.
뭘 (잘못을) 바로 잡는 게 꼭 싸우는 방법으로만 할 이유는 없는 거예요.
교인들끼리 서로 언성을 높이고, 서로 다투고... 그건 뭘 말하는 거죠?
잘해 보려고 하는 거는 맞는데,
주님이 함께 계시는 것을, 전혀 믿고 있는 게 아니에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없는 거죠.
그래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은 굉장히 중요한 지표예요.
‘이분이 진짜 마음에 주님을 모시고 사는가?’
혼자 있을 때 은밀한 죄에 쉽게 무너집니다.
다 믿음이 좋고 열심인 거 같아도, 혼자 은밀한 시간에 어처구니 없이
죄의 유혹에 넘어지는 그것도 다 똑같아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없는 거예요.
주님이 함께 계시는 것을 정말 의식하면, 사실 혼자 있는 시간이 없어요.
주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죠.
사람들하고 있을 때는 오히려 사람들 신경 쓰느라고
어떤 때는 깜빡깜빡 주님을 잊어버릴 수도 있지만,
이제 자기 곁에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는, 오직 주님과만 같이 있잖아요.
주님과만 같이 있는 순간이 어떤 순간이에요? 두렵고 떨리는 순간이죠.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시다’ 그렇게 생각만 해도
벌써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있잖아요. 그죠.
저는 교회에서 엘리베이터 탈 때, 저를 보고 안 타시는 분들을 보면,
처음에는 제 마음이 조금 상했어요.
그런데 ‘그냥 제가 너무 어려워서 그러는구나’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저는 전혀 어려운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분이 느끼기에 어렵게 느끼시는 거 같아요.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처럼’ 그렇게 느끼시나봐요.
아니 하물며 목사도 그런데...
목사와 같이 엘리베이터 타는 것도 벌써 느낌이 불편한데...
그런데 ‘우리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산다’
그건 진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사는 거예요.
매 순간이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에요. 그죠?
이분이 우리 주님이 함께 계시는 것을 진짜 믿는 분이에요.
그리고 그런 믿음이 있을 때, 그때부터 역사가 일어나요.
어느 목사님과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 우리 안에 거하신다’
그 주제로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맞아 정말 그게 중요해!’ 그러시다가
갑자기 그 목사님이 말씀을 안 하고 가만히 계세요.
그 목사님의 얼굴을 보니까, 그의 눈에 눈물이 이렇게 비치면서 이런 고백을 하시더라고요.
“오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음에 딱 깨우쳐지는 게 있는데
그동안에 주님이 내 마음이 계시다는 걸 내가 믿었고, 설교도 그렇게 했지만,
갑자기 마음에 한 번도 그게 불편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내가 진짜 주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었던 건가?
주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어떻게 불편할 일이 하나도 없었을까?
그동안 주님은 내 행동이나 말을 보시고 얼마나 불편하셨을까?’”
그런 고백을 그 목사님이 하시더라고요.
▲여러분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는 것을 정말 믿으셔야 되는데,
이게 예수 믿는 사람이에요.
그때부터 주님은, 여러분의 삶을 완전히 바꾸시기 시작합니다.
빌립보 교회가 사도 바울이 개척하자마자 바로 그곳을 떠났어도
성도들과 함께 계셨던 주님 때문에
교회가 든든히 설 수 있었던 거거든요.
그러려면 여러분이 진짜 믿음을 가져야 되는데
그것은 매순간, 정말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내 안에 계신 것을 여러분이 믿으시면서
두렵고 떨림으로 모든 순간을 대해야 돼요. *주제
▲그리고 ‘항상 복종하라’ 2:13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시면 내가 할 수 있는 태도는
오직 주님께 복종 밖에 없어요.
주님이 눈에 보이도록 우리와 함께 계시면, 여러분은 복종 안 하시겠어요?
주님 가시는 곳에 그냥 따라가는 거고
주님 하시는 일을 그냥 나도 같이 하는 거고, 무슨 토달 게 뭐가 있어요?
주님이 ‘이거 하자!’ 그러면, 내가 하는 거고,
‘일어나 기도해!’ 그러면, 내가 기도하는 거고,
‘용서해!’ 그러면 내가 용서하는 거고,
‘그를 사랑해라!’ 그러면 내가 그를 사랑하는 거죠.
여러분, 주님께서 ‘하라!’ 그러는데 토달 거예요?
오직 순종이죠. 오직 순종!
주님은 지금 내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것만 다른 거지, 우리와 늘 같이 계세요.
그러니까 우리의 삶은 그대로 순종해야 돼요.
△제가 이번에 하와이 집회를 갔다가 제가 너무 유명해져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유기성 목사에 대해서 뭐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아니에요.’ (다들 저를 너무 좋게 보고 있어요)
(제) 얘기를 들어보니까
참 좋은 목사님이 한 분 계시더라고요.
저도 그 목사님 한번 만나보고 싶더라고요.
‘이거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
사람들은 저에 대해서 너무 크게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아, 이건 위험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분, 여러분도 예수님과 동행할 때 중요한 기준은
‘모든 것이 순종이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밥을 먹어도 ‘이게 순종인가?’
잠을 자도 ‘이게 순종인가?’ 그렇게 해야 돼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죠?
아침에 ‘오늘 하루 주님과 하루를 논합니다.’
그래서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뭐 하고,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책도 좀 읽었으면 좋겠고,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기도도 하고,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좀 운동도 하고,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또 식사 시간이고,
그렇게 이제 미리 일정을 쭉 이렇게 주님과 의논하면서 써요.
그리고 이제 그대로 하루를 살아보는 거죠.
그러니까 밥을 먹는 것도 순종이더라고요.
왜요? 미리 오늘 아침에 주님과 일정을 의논했거든요.
책을 한 권 읽어도, 그게 순종이에요.
왜요? 그렇게 주님과 의논해서, 하루 일정을 미리 아침에 계획했거든요.
정해진 계획에 따라 운동을 해도, 그게 순종이고...
‘야 모든 삶이 순종일 수 있구나’
말 한마디를 해도, 행동 하나를 해도 순종!
이렇게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은
당연히 그렇게 하는 거죠.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가르친 거예요.
오직 순종, 복종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너의 구원을 이루라는 거예요. 빌2:12
▲그런데 우리가 주님의 임재 가운데 이렇게 살아보면
두렵고 떨리는 마음만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 속에서부터 놀라운 주님의 생각이 계속 일어납니다.
주님이 내 안에 오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증거를 얻어요.
여러분 속에서 ‘주님이 기뻐하실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자꾸 일어납니다.
빌2:13절에 ‘자신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우리 안에 오신 하나님 그분은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십니다.
(공동번역) ‘여러분 안에 계셔서 여러분에게 당신의 뜻에 맞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주시고 그 일을 할 힘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새번역)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것을 염원하게 하시고 실천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쉽게 말하면
‘그냥 주님이 이것을 기뻐하시겠다. 주님이 이렇게 하면 좋아하시겠다.’
이런 생각이 자꾸 내 속에서 일어난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주님을 모시고 살아보면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놀라운 일들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다 소원이 있지요?
지금도 여러분의 마음에 소원이 다 있으실 거예요.
근데 이 소원이 바로,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시는 것을 아는 놀라운 자리예요.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있는 소원!
여러분의 소원 중에, 여러분의 육신을 위한 소원도 있겠지만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어떤 생각이 떠오른 것,
이건 주님이 여러분 안에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거예요.
이건 ‘주님이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확실한 증거예요.
예를 들면, 어떤 친척이나 또는 직장 동료에게
‘저 사람이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이건 100% 주님이 ‘당신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를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 거죠.
하여튼 그 사람만 보면은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요. 주님이 역사하고 계신 거죠.
특별새벽기도회가 시작이 됐는데, 힘들어서 참석을 못하고 있어요.
그게 너무 마음이 괴로워요. 그럼 영락없이 주님이 역사하신 거죠.
미련하게 계속 그 괴로움을 견디는 사람도 있어요.
아니 우리 주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너 새벽기도도 안 나가냐?‘
이러면 뭐 놀래 자빠져 가지고 일어나 가지고 교회를 나오실 거예요.
근데 이렇게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으로 주님이 말씀하시거든요.
이건 주님의 말씀이라고 인정을 안 하니...
그냥 ‘괴롭다. 괴롭다.’ 그러면서도 특별새벽기도회를 안 나가는 거죠.
▲서울에 유학 온 어떤 외국인 청년이
이제 학교의 기숙사에 빈자리가 생겨서 추첨을 한다고 광고가 나왔어요.
그래서 막 작정 기도를 했어요. 기숙사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그런데 기도하다가 무슨 생각이 얼핏 드냐면
‘나만 이렇게 기도하는 게 아니고, 다른 학생들도 기숙자 들어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 번득 들었어요.
그래서 ‘아, 기숙사 당첨되게 해 달라고.. 이렇게만 기도하는 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게 아니구나’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여러분, 이 신학생이 주님의 인도함을
그 기숙사 빈자리 하나 놓고 기도하면서 받고 있는 거예요.
주님이 그 학생 안에서 그렇게 역사하고 계신 거잖아요.
‘오늘도 성령집회에 나가서 기도해야지’ 이런 마음이 들어서 오신 분들도 있잖아요.
여러분이 스스로 그냥 온게 아니고, 주님이 이끌어서 여기로 오신 거죠.
‘여러분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빌2:13
이 말씀이 지금 여러분 가운데 그대로 경험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 일을 하는 게 주님이 기뻐하실 거다’라는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절대로 작게 여기시면 안 돼요.
그게 여러분 가운데 주님이 역사하시는 가장 뚜렷한 증거예요.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시구나. 주님이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을 기뻐하시는구나’
그걸 알고 면 담대해집니다.
이걸 뭐 억지로 믿을 필요가 있어요? 너무 증거가 분명한데!
그때부터 모든 게 다 달라 보이게 되는 거예요.
빌립보 교회가 아주 연약한 교회였지만
주님이 함께 계시는 믿음만 분명하면, 두려울 게 아무것도 없어요.
주님이 교회를 일으키시고, 가르치시고, 역사하시고, 다 하실 수 있으니까...
그걸 믿지 못하니까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걸 믿지 못하니까, 믿음으로 살지를 못하는 거죠.
▲저는 딸이 둘이 있는데, 이제 다 시집 갈 때가 됐어요.
제게 어서 큰 기도 제목은,
엄마 아빠의 믿음의 그늘에만 있을 수가 없거든요.
제가 뭐 언제까지 지켜 줄 수도 없잖아요.
저희 딸들이 ‘자기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알고, 그 주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살아야’
그게 훈련이 되어야, 그래야 자기 삶을 모두 주님께 맡기고,
시집도 가고, 어디든지 가는 거죠.
‘주님이 너와 함께 계시다. 그 주님을 따라가라!’
그 정말 가장 중요한 것이죠. 그게 제 기도 제목이고
그리고 저희 딸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것이죠.
저희 딸들만이겠어요? 우리 교우들 여러분에게도 똑같아요.
여러분 절대로 목사 바라보고 신앙생활 하지 말고,
여러분 안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는 눈을 떠야 돼요.
이제는 주님 바라보고 사는 겁니다. 아멘!
이제는 정말 주님께만 순종하고 사는 겁니다.
정말 여러분과 함께 계시는 주님을 믿고 사는 겁니다.
▲근데 저는요. 이렇게 외치고 나면 다 되는 줄 알았어요.
여러분들이 다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만 믿고 살게 되는 줄 알았어요.
이런 설교를 하고 나면,
여러분이 ‘아멘!’ 그러면
‘이제 됐다. 그 그렇게 사시겠지...’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이젠 걱정할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 막상 제가 (해외집회 등으로 자리에) 없으니까
(교회가) 너무너무 혼란에 빠지시는 거예요.
뭐 ‘아멘’ 할 때는 언제고
걱정만 앞서고.. 뭐 당황해 하시고.. 그런 어려운 일을 겪으시는 것을 보면서
‘아, 설교만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는게 아니구나
설교 듣는 것만 가지고 믿음이 생겼다고 할 수가 없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는 주님을 따라서 사는 일을 제대로 훈련시켜야 되겠구나’
‘설교를 듣고 아멘 한다고 그대로 살아지는 게 아니구나’ 라는 걸
제 마음에 이렇게 명심하고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기도하다가
그래서 시작한 게 ‘영성일기 쓰기’예요.
매일 주님을 바라보고, 그것을 기록하는 일기를 쓰도록
그렇게 권해드리는 이유는
한번 설교 들었다고, 그게 전부 다 믿음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그 주님 믿고 그 주님만 의지하면
걱정할게 없어요.
어떤 사람이 내게 있고 없고, 환경이 어떻고...
그건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그 주님을 의지하고 사는 것 자체가
그냥 마음에 결심만 한다고 그렇게 되는게 아니니까
우리가 지금 전 교인들이 매일 영성일기를 써 가면서
주님과 동행하는 훈련을 하는 거예요.
▲여러분, 눅14장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예수님께서 ‘맞다’
그런데 주님이 비유로 말씀 하시기를
임금이 잔치를 배설하고 초청을 했는데
오기로 약속을 했었던 사람들이 다 취소를 하는 거예요.
‘밭을 이번에 새로 샀는데 밭을 보러 가야 된다.
소를 다섯 겨리를 샀는데 그 소도 보러 가야 된다.
이번에 장가 들었는데, 그래서 내가 잔치에 못 가겠다.’
그래서 잔치에 초청을 받고도 못 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주님이 하셨어요. 이건 비유지만 실제로 일어날 일입니다.
여러분 밭 사고, 소 사고, 장가드는 일... 우리의 일상적인 일이에요. 중요해요.
이걸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이런 일상적인 일 때문에,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천국 잔치에 초청을
우리가 거절할 수도 있어요.
돈 벌고, 장사하고, 사업하고, 시집 장가 하는 거...
거기에 정신이 완전히 빠져 있는 사람은
주님이 지금 나에게 뭐라고 부르시는지, 전혀 내 귀에 들리지도 않고
또 들려도 외면해요. ‘나 지금 바빠. 나 지금 해야 될 일이 너무 많아!’
‘천국 잔치에 초청을 거절할 수 있다!’
이 기가 막힌 일이 지금 우리 가운데 일어나요.
그러니까 여러분, 소 사고 밭 사고, 시집 장가 하는 것이 다 중요해도
그 가운데서 늘 주님을 바라보는 거를 절대로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시집 장가 가지 말라, 소나 밭을 사지 말라’ 이런 뜻은 아닙니다.
다 하지만
‘항상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항상 주님께 복종하는’ 삶으로
매사에 살며, 그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하는 생각을
놓치지 말고 살아야 돼요.
이건 이제 마지막 때 주님을 만나는 일에 대한 준비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하와이 감람교회 부흥회에 갔을 때
어느 집사님 한 분이 암투병 하시면서 제 설교를 이렇게 들으셨어요.
그때 참 은혜를 많이 받으셨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암은 이제 치유가 되셨는데
마음에 ‘아 그 목사님이 우리 교회에 와서 부흥회를 좀 하시면 좋겠다.’
그렇게 기도를 계속 해 오셨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들으니, 제가 왜 거기에 갔는지 알았어요.
그분이 그렇게 기도를 하셨으니까, 제가 거기로 가게 된 거죠.
근데 어느 날 감람교회 목사님이 광고를 하는데
‘한국의 유기성 목사님이라는 분이 부흥회를 오기로 했다고’
해서 얼마나 놀랬는지... 너무너무 기뻐하시고...
그래서 목사님이 부흥회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과거에 은혜 받았던 그 처음 설교 들었던
그걸 저장을 해 둔 것이 있었는데, 그걸 다시 들어 봤대요.
근데 깜짝 놀랐던 것이, 처음 내가 설교 들었을 때는 전혀 들리지 않던 말씀들이
두 번째 들었는데 ‘아 내가 그때 들었을 때는 왜 이런 말씀을 기억 못 할까?’
두 번째 들을 때 너무너무 새로운 은혜를 받았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말씀 하기를 ‘제가 영성일기를 쭉 혼자서 이렇게 써 왔다고’
그래서 자기가 쓴 영성일기를 쓴 노트를 가져오셨는데
그런 노트가 몇 권 있으시더라고요. 그래서 보여주시더라고요.
그리고 저보고 읽어보라고 건네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제 아내 보고 읽으라고 건네줘서, 제 아내가 읽어 봤는데,
그분이 하시는 이야기가
‘그렇게 영성일기를 쭉 써 가다 보니까 귀가 열렸나 봐요.
처음에는 듣기는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던 말씀들이
이제 다 귀에 들어오고, 그렇게 깨달아지고, 은혜가 되더라’ 그러시더라고요.
여러분 주님을 계속 바라보는 삶을 살아보면
말씀 듣는 깊이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기도도 달라지고, 말씀 듣는 깊이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말씀 들어도 전혀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예요.
생명의 말씀을 주셨는데도, 오히려 화를 내고
돼지가 진주를 짓밟듯이 그 귀한 것을 그냥 짓밟아 버리는...
그렇게 말씀을 멸시하는 사람도 있고... 못 알아들으니까 그런 거죠.
들을 귀가 있어야 말씀을 들어요.
그런데 이 ‘들을 귀’가 뭐냐면
내가 항상 마음에 주님을 모시고 사는 거예요.
그때 하나님이 내게 정말 듣게 해 주실 말씀들이 깨달아지는 거예요.
▲나사로가 죽고, 그 부자도 죽고... 그리고 부자가 지옥에 갔지요.
천국에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부탁을 합니다.
‘저 나사로를 우리 집에 보내서, 우리 형제들은 여기 오지 않게 해달라고’
아브라함이 거절해요.
‘거기에 이미 선지자들이 다 있다. 그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나사로가 살아가서 이야기해도 안 듣는다.’
여러분 죽은 사람이 살아나서 ‘내가 죽고나서 보니까 천국이 있더라.
그러니 여러분 이렇게 살면 안 됩니다.’
그래도 안 믿을 사람은 안 믿어요.
죽은 사람이 살아나서 이야기를 해도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절대로 말씀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여러분이 주님을 계속 바라보고 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여러분이 진짜 마지막 때, 여러분이 정말 구원받은 자가 되는 일은 여기에 달려 있어요.
항상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절대 소홀히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살아보면.. 이렇게든 저렇게든 큰 상관이 없는 일들이 대부분입니다.
실제로 지나고 보면 여러분 죽을 때가 됐을 때
그때 여러분이 지금 간절히 드리는 기도 제목은
거의 대부분은 더 이상 기도할 필요도 없는 문제가 돼요.
이제 뭐 내일이면 주님 앞에 갈 때가 됐는데
뭐 돈이 문제가 되겠어요. 뭐가 중요한 기도가 되겠어요?
그 말은 지금도 우리의 기도 중에 대부분은,
사실은 이루어져도/ 이루어지지 않아도
큰 문제가 안 되는 문제들이 대부분이에요.
진짜 중요한 것을 여러분이 붙잡아야 돼요.
그것은 여러분과 함께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정말 뜨이는 것입니다.
그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는 것을 구하셔야 돼요.
그 속에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이 다 있어요.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시는게 진짜 믿어지고
그래서 여러분의 모든 것이 순종이 될 때,
그리고 항상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삶,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생각, 주님이 기뻐하시는 생각을, 주님의 말씀으로 듣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 이보다 더 복 있는 삶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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