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눈을 밝히사 엡1:17~19
에베소서 1:17~19절 말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제가 이제 은퇴 하면서, 은퇴하는 심정을 '마치 번지 점프 해서 뛰어내리는 것 같다'
그런 표현을 했는데,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사실 두 다리를 이렇게 땅에 붙이고 번지 점프할 때, 점프대 꼭대기까지 올라가더라도
두 다리를 점프대 바닥에다 붙이고서 있을 때의 마음과,
이제 두 다리를 떼고 공중으로 뛰어내릴 (떨어질) 때의 마음은 완전히 다른 것이겠죠.
제가 교회 담임목사로 있을 때는 마치 다리를 땅에 디디고서 있는 것과 같은
그런 형편이었더라구요. 교회 자체 안에 담임목사 직에 서 있다는 거 자체가 주는 안정감,
그게 그렇게 느껴지더라고요.
근데 은퇴하고 난 다음에는, 마치 이제 다리를 떼고 공중으로 뛰어내린 것 같은
꼭 그런 심정이, 은퇴한 이후의 심정입니다.
이번 주는 이 교회, 다음 주는 또 저 교회,
거의 제 삶은 이렇게 길 위에 서 있는 삶입니다.
어느 한 교회에서 안정되게 사역하는 것이 아니고,
이 교회 저 교회를 다니면서 사역하는... 굉장히 불안정한 삶,
그런 느낌이 마치 번지점프 때 뛰어내려서 공중에 이렇게 떠 있는 느낌,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처음에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래서 여러분들이 '너무 불쌍하다' 이렇게 생각하도록
제가 말씀드리는 건 아닙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기간이
아무래도 필요하긴 합니다만, 놀라운 은혜의 삶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다리를 바닥에 붙이고 내 힘으로 이렇게 서 있을 때는, 잘 알 수 없었던...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운...
도무지 내 의지나 내 능력으로 내 삶을 컨트롤 할 수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경험되는 하나님의 은혜, 주님의 역사하심을
생생하게 경험하는... 그런 은퇴 이후의 삶을 제가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지금 매우 힘들고 어려운 형편에 계신 분들이 있으실 거예요.
근데 그와 같은 때에 여러분이 꼭 기억하실 것은 '힘들다. 어렵다' 그렇게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경험하는 기회가 내게 주어졌다!' 여기기 바랍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의 믿음과 생각을 바꾸는 일은, 여러분의 삶 전체를 바꿉니다.
그래서 '이거 어떻게 하나? 큰일났다...' 이렇게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놀랍게 경험하는 기회가 왔구나!'
그리고 그 믿음으로 기도하세요.
'하나님,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 경험하길 원합니다.'
반드시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엄청난 간증을 주실 거예요.
어려움이 없는 사람은, 간증거리가 없습니다.
어려움은 반드시 놀라운 간증을 가져오게 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믿음이 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생각이 바뀔 수 있을까요?
오늘 에베소 교인들에게, 사도바울이 그 기도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 그 말씀을, 여러분에게 드리려고 하는 겁니다.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위하여 세 가지 기도를 했어요.
그 세 가지 기도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더 주시라고 하는게 아니었어요.
"이미 주신 은혜를 깨닫는, 눈을 열어 달라"는 것이었어요.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참 어려운 기도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특별한 은혜와 역사를 하나님이 주시려고 하시지만,
-없는 것을 받는 거 하고,
-이미 주신 것을 깨닫는 거 하고는... 둘은 너무나 다르죠.
이미 주신 은혜를 깨닫는 것이, 그건 얼마나 쉬운 일입니까. 눈만 뜨이면 돼요.
이것을 사도 바울은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눈을 열어 달라'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를 보게 해달라는 겁니다.
내가 받은 하나님의 역사를, 내가 깨닫게 해달라는 거예요.
◑첫 번째는, 하나님을 아는 눈이 열리는 겁니다.
엡1:17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해요.
그건 하나님이 자기의 삶의 현실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고, 또 성경의 하나님에 대한 기록도 내가 믿지만,
문제는 지금 내게, 우리 가정에, 내 일터에, 하나님은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분들이
많습니다. ☞ <현실> 관련글
어느 교회 부흥회를 갔더니, 그 부흥회의 주제가 '하나님이 현실이 되게 하라!' 였어요.
지금 이 시대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겪고 있는 심각한 마음의 고민을
그대로 표현한 말이었어요.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이 현실이 아니면,
하나님을 믿는다는게 아무 힘이 안 되는 거거든요.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살아계시고, 지금도 역사하세요.
문제는 '그것을 보는 눈이 열리는가?' 그게 문제인 거죠.
그래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하나님이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고,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저 에베소 교인들이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고'
바울은 그렇게 기도를 한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하나님이 현실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을 아는 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인 것을 꼭 기억하고,
'하나님 어디 계세요? 왜 역사 안 해주시나요?' 하지 말고,
'주님 제가 오늘 말씀을 붙잡고,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해 주소서'
그렇게 기도해야 됩니다.
오늘도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제가 제 삶 속에 함께 하신 하나님을 알게 해 주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돼요.
▲하나님이 여러분 가운데 역사하고 계신지는, 너무나 분명하게 여러분이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이제 은퇴한 이후에, 목요일마다 <예수동행 목요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첫째 주 셋째 주는, 감리교 신학대학교 웨슬리 채플에서,
그리고 둘째 주 넷째 주는 예수동행센터에서 기도회로 계속 목요집회를 하고 있는데,
한번은 감신대에서 예수동행집회를 하고 있는데, 너무나 충만한 찬양을 드리고 있었어요.
근데 성가대석이 바로 강단 옆에 있는데, 그 성가대 석에 어느 한 청년이 거기 앉아 있어요.
'왜 저 청년은 유난히 저 성가대 석에 혼자 앉아 있나?' *성가대가 서지 않는 날
처음에는 '왜 그러지?' 그런 생각을 했는데, 더 난감한 것은
회중들은 다 일어나서 찬양을 하는데, 그 청년은 거기 앉아서 계속 휴대폰을 보고 있는 거예요.
그것도 다들 보는 앞에, 자기 혼자 무대 위 성가대 석에 앉아서
휴대폰을 보다가, 지루했는지 이제는 꾸벅꾸벅 조는 거예요.
다 일어나서 뜨겁게 찬양하는데... 그가 계속 졸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은혜도 안 되고,
그가 굉장히 피곤한가 보다 싶어서
그래서 진행을 돕는 목사님에게 '저 청년을 좀 뒷자리에 데려가서 쉬든지 하면 좋겠다'
라고 부탁을 했는데,
나중에 이제 알고 보니까, 그 외주 음향업체에서 고용한 직원이에요.
근데 그 청년은 예수를 안 믿어요. 그는 그날 일하러 온 거예요.
음향도 점검해 주고, 또 순서대로 마이크도 전해주고, 뭐 마이크도 관리하고... 하는 거죠.
근데 찬양시간에 자기가 할 일이 없으니까, 휴대폰 보다가... 하나님을 모르니까 그러는 거죠.
또 너무 지루하니까 졸다가... 혹시 여러분 중에 그런 사람은 없죠?
피곤해서 주무실 수는 있지만, 믿음이 없어서 그런 사람은 없을 거예요.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그랬는데,
우리는 오늘 기도할 마음도, 뜨겁게 찬양하는 마음도, 말씀을 듣는 마음도 있는 것은,
우리 안에는 놀라운 믿음이 있잖아요.
여러분 중에 이미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경험하고 있는 거예요.
만약에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지금 역사하지 않으신다면,
여러분도 (그 청년처럼) 지금 너무나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겁니다.
오늘 성경 집회가 시작된지 벌써 1시간이 지났습니다.이 시간을 어떻게 견딜 수 있겠어요?
(그러나 충분히 견디고 있는 것은) 우리는 지금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하심,
그 놀라운 증거를 우리 스스로가 가지고 있어요.
▲영국의 아주 위대한 정치인 윌리엄 윌버포스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영국의 근대사를 바꾼 엄청난 크리스천 정치인입니다.
국회의원이었고, 영국의 노예제도를 폐지시킨 사람이죠.
영국 나라가 하나님 앞에 복을 받도록 만든 사람이기도 합니다.
굉장히 신실한 사람이었어요.
근데 윌리엄 윌버포스의 아주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영국의 수상이었던 윌리엄 피트 였어요.
이분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긴 했지만, 형식적인 크리스천이었습니다.
하루는 윌리엄 윌버포스가, 윌리엄 피트 수상과 함께 주일 예배를 같이 드렸어요.
그날 설교하신 분은, 당대에 대단히 유명한 설교자였던 리처드 세실 목사님이셨습니다.
윌리엄 윌버포스는 엄청난 은혜를 그 날, 세실 목사님의 설교를 통하여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어요.
근데 예배가 끝나고 난 다음에, 그 피트 수상이
친구인 윌버포스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보게, 오늘 설교 내용이 도대체 무엇이었나? 나는 정말 정신을 차려서
그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려고 애를 썼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
무슨 말씀을 하는지를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
두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다르죠?
지혜와 계시의 영이, 우리로 하여금 말씀을 깨닫게 하고, 은혜도 받게 하고,
찬양도 하게 하고, 기도도 하게 하는 거예요.
누구나 다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에요.
지금 이 시간에 '아~ 내 안에 성령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역사하는지, 안 하는지'
여러분이 알고 있어요. '아~ 오늘 내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구나'
우리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은혜를 실제로 받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은 어디 계시지? 왜 내게는 역사 안 하시나?' 그렇게 생각을 한다니까요.
깨닫지 못해서 그래요. 하나님을 아는 눈이 열려야 되는 거예요.
▲제가 지난 주간에 일본에서 사역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거기서 일본에서 복음을 전하는 80세의 연세가 많으신 미국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을 만나서, 그분이 일본에서 전도했던 이야기를 잠깐 들었는데
어느 일본 사람에게 요3:16절을 읽게 해 줬대요. 일본어 성경으로 읽어보라고 권한 거죠.
그가 요3:16절을 떠듬떠듬 읽었습니다. 처음 읽는 내용이라 익숙치 않았겠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근데 이분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읽다가
더 이상 말을 못 하더래요.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다고?'
그 사람에게는 처음 듣는 이야기고, 충격이고,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이었어요.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다고?'
그 사람은 그 안에 성령께서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이 복음 중에 복음인 말씀이, 그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으로 와 닿는 것을 보았다는 겁니다.
그 미국 선교사님의 간증이었어요.
자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것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그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아세요?
이게 내 안에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여러분이 아셔야 하는 거예요.
정말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계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여러분 각자(나)도 사랑하신다고?' 의아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 사실에 하나도 의심이 없잖아요.
하나님은 지금 우리 가운데 놀랍게 역사하고 계세요.
우리가 그 눈이 뜨이기 시작하면, 비로소 우리가
가정에 있든지, 일터에 있든지, 길을 가든지, 운전을 하든지... 하나님을 알게 돼요.
그러면 온 세상이 달리 보이게 돼요.
이 일이 오늘 우리에게 너무너무 중요한 거예요.
하나님은 오늘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않다가,
우리가 '하나님!' 하고 부르니까
하나님이 비로소 우리에게 오시는게 아닙니다.
'이제 이 설교가 끝나고 통성기도 시간에 하나님이 역사를 하실까 말까?'
이런 것도 아니에요. 지금 여러분 안에 하나님이 놀랍게 내주해 계시고,
여러분이 그 증인이에요. 이 눈이 뜨이는 것이 문제인 거예요.
'주님 제 눈을 열어 주세요. 그동안에 제가 마치 앞을 못 보는 사람처럼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도, 전혀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세상 사람은 영이 죽어 있으니까 하나님을 모르죠.
우리는 예수를 믿고 내 영이 살았죠. 하나님을 알게 되어 있어요.
◑두 번째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의 눈이 열리는 겁니다.
18절에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고 이미 받은 복이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허락된 엄청나고 풍성한
그런 "하나님 나라 기업의 복"을 받았어요. 여러분 모두가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부자예요.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가지고 있어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에요.
하나님과 함께 왕노릇 하실 거라고 약속하셨어요.
여러분 스스로가 여러분을 초라하게 여길지 몰라도
여러분이 받은 은혜는 엄청난 은혜예요.
문제는
-내 마음의 눈이 밝히 열려서, 그걸 내가 아는가?
-아니면 그런 은혜를 받고도, 내가 무슨 은혜를 받았는지 모르고 사는가?
그 차이가 있을 뿐이에요.
▲여러분, 오늘 집회가 맞춰지면, 여러분의 집으로 돌아가실 겁니다.
지금 현재 매우 피곤하고, 오늘 하루 아주 힘든 일이 있었고,
그렇더라도 이제 집회가 끝나면, 집에 가서 쉴 수가 있어요.
여러분이 누울 자리가 있고, 또 씻을 수 있는 그런 집이 있는게 얼마나 좋아요?
근데 그게 얼마나 귀하고 놀라운 일인지를, 어떤 때는 깜빡 잊어버려요.
만약에 우리 중에, 오늘 집회가 끝나고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로 가야 될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찜질방에 가야 되나? 어느 여관을 찾아가야 되나?
아니면 어떤 역에 가서 노숙을 해야 되나?'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심정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근데 오늘 내게는 집이 있어요. 내가 오늘 저녁 집회 끝나면 갈 집이 있다는 것,
그게 주는 안정감... 근데 사람이 죽을 때, 똑같은 일이 벌어져요.
우리가 죽을 때, 내가 죽고 난 다음에 갈 집이 있어요. 이게 소망이에요.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아요. '죽으면 어디로 가지? 나 죽으면 어떻게 해?'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죽고 난 다음에 갈 본향이 있어요.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다르게 만드는 거예요.
내가 비록 지금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힘든 일이 많고, 어려운 일이 많고,
고난이 많고, 또 아주 어려운 사명의 길을 가고 있어요. 상관없어요.
아주 피곤하고 힘들어도, 저녁이면 내가 돌아갈 집이 있으면, 그러면 얼마든 쉴 수 있잖아요.
근데 안타깝게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제 우리가 전도집회를 앞두고 있습니다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난 다음에 돌아갈 집이 없어요.
그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도 몰라요.
죽음이 자기 눈앞에 딱 왔을 때, 비로소 정말 비명소리가 나는 거죠.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갈 집이 없는 거예요.
마치 컴컴한 저녁이 되었는데, 갈 집이 없는 사람... 정말 비참한 일이죠.
▲여러분에게 천국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건, 이건 너무나 놀라운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그게 그렇게 놀라운 축복이라고 느껴지지 않는게 문제인 거예요.
그런 은혜를 받고도, 천국도 믿고, 하나님의 나라도 믿어요.
그런데 그게 얼마나 놀라운 복인지를 모르는 거예요.
이것을 아는 마음의 눈이 밝혀지면 '아 하나님의 나라가 있구나'
'이 세상은 정말 정말 짧게 사는 거구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구나'
그 마음의 눈이 밝혀지면, 마치 소풍 가기 전날 아이처럼,
방학을 앞두고 있는 사람처럼, 월급날 오기 전날 직장인처럼... 마음이 여유롭죠.
아직 월급을 받은 것도 아니에요. 방학이 아직 시작된 게 아니에요.
우리는 연휴만 다가와도 '정말 공휴일 연휴야!'
그것만 다가와도 그냥 오늘 고생스러운게 위로를 받잖아요. 그죠?
'아, 이번 연휴 때는 좀 쉴 수 있어, 그날은 좀 여행도 갈 수 있겠어!'
그게 소망의 즐거움이에요.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내게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이
마음의 눈이 열려서 밝히 알게 되면
그러면 이 땅에 살 때 기뻐하게 돼요.
소망 중에 기뻐하고, 소망 중에 즐거워하게 되어 있어요.
'항상 기뻐하라'가 그 말씀인 거죠.
이게 얼마나 놀라운 능력인지 아실 거예요.
▲제가 은퇴하고 난 다음에 갑자기 그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내가 이제 무엇에 내가 열정적으로 살 수 있을까?
그동안에는 교회를 섬기느라고,
정말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드려서 애를 썼지만,
이제 은퇴를 했으니, 내가 이제 무엇에 열정적으로 내가 힘을 쏟을 수 있을까? 그게 뭘까?'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어요. 힘이 쫙 빠지는 느낌인 거예요.
근데 그때 주님이 저에게 주신 은혜가 굉장히 컸어요.
작년 9월 30일입니다. 제 예수동행 일기예요.
「2023년 9월 30일
오늘 기도 중에 '이제 무엇을 위하여 살 것인가?'를 깊이 생각했습니다.
은퇴하고 나니,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사라진 듯 했습니다.
은퇴했는데, 열정이 일어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은퇴하기 전보다, 더 열정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깨우쳐 주신 것이,
'이 땅에 임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은퇴하고 나서, 하나님의 나라 비전이 분명히 보입니다.
담임 목사일 때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한다 하였지만
'나의 목회'라는 동기와 목적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목회 현장도 끊임없이 비교하며 평가받는 곳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관심에서 자유롭기 힘들었습니다.
제 내면에 있는 자아 성취의 욕구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담임 목사의 자리에서 은퇴하니
순간 목표를 상실한 것 같은 혼란이 느껴진 것입니다.
이것은 은퇴한 많은 목사님들의 솔직한 심정일 것입니다.
무엇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시는
은퇴하신 목사님도 계셨습니다.
제게 <예수동행운동> 사역이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다른 목사님들을 돕는 사역일뿐입니다.
제 목회가 아니기에, 더 의욕을 가질 수도 없고, 가져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오늘 제 삶의 목표가 하나님의 나라임을 깨닫고 나니,
제 마음이 너무나 달라졌습니다.
담임목회에서 은퇴한 허전함에서 순간에 벗어났습니다.
(나를) 평가하는 사람들의 관심에서도 벗어났습니다.
이제는 다른 목사님들을 세워 드리고
다른 교회들이 주님의 교회로 세워지도록 도우며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직 제 관심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입니다.
물론 제 안에 아무런 목표도 없어져 버린 것 같은 공허함의 그림자가 순간순간 느껴집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더욱 놀라운 목표,
사도 바울이 고백한 '사로잡힌 바 된 그것, 달려갈 길, 부름의 상을 향하여 달려가는'
그 심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게 있어서는 정말 놀라운 변화였어요.
그동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저 나름대로는 산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근데 여전히 지역교회 담임목회가 제게는 더 큰 문제였어요.
근데 이제 목회를 내려놓고 나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저에게 너무나 선명하게, 제 삶의 목표가 되어졌어요.
그동안 담임목회하는 것과 비교 안 되는 열정이, 제 안에 뜨겁게 일어났어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의 눈을여 밝혀 주시면,
진짜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지, 여러분에게 허락한 하나님의 엄청난 놀라운 소망이,
또는 하나님의 나라가... 여러분을 완전히 마음을 다르게 만들 거예요.
보는 것도 달라지고, 생각하는 것도 달라지게 만들 것입니다.
◑3. 세 번째가 여러분 안에 우리 안에 임하신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
그것을 아는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19절에,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여러분,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나에게는 없어요' 그러시는 분이 있다면,
본인 자신이 모르는 것 뿐이에요.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 안에 있음을,
본인이 모르는 거지.. 없는게 아니에요.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그 엄청난 능력이 뭐죠? 예수 그리스도 이세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모든 능력의 원천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계시잖아요.
여러분 안에 계시지 않는데, 여러분이 오늘 여기 집회에 오셨다면, 그건 진짜 놀라운 일이에요.
주님이 여러분을 여기까지 오게 하셨어요. 그분이 능력의 원천이에요.
아니 천지의 창조주이신 그 창조주 하나님이,
온 세상에 죄를지고 십자가에 죽으신.. 모든 인류의 구주이며, 만왕의 왕이 그분이
지금 여러분 안에 계세요.
'이 사실이 믿어지냐, 안 믿어지냐?'의 문제이지,
'내 안에 계시냐, 안 계시냐'의 문제가 아니에요.
오늘 이 밤에 주님이 여러분 안에 계신 것이 여러분에게 정말 믿어지면
여러분 자신이 비로소 하나님 앞에 엄청나고 놀랍게 쓰임을 받게 돼요.
여러분을 통하여 주님이 일하시기 시작하시니까요.
우리는 단순히 용서만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이에요.
▲한번은 제가 설교를 하러 가다가, 교회 복도에서 어느 여성도님을 한번 만났는데
그냥 다급하게 기도 부탁을 하시더라고요. 암이라는 거예요.
'목사님, 제가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굉장히 마음에 낙심이 되어 계셨어요.
그러면서 그분이 하시는 이야기가 '예수님을 믿는데, 왜 제게 이런 일이 생기나요?'
그러시더라고요. '예수님을 믿는데 왜 내게 암이 생겼나요?'
그런 어떤 마음의 절망감과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있더라고요.
여러분 예수 믿어도 암이 생깁니다.
예수 믿는 것과 암 생기는 것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요.
예수를 믿어도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예수 믿는 사람도 사업이 망하는 일도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도 불합격하는 일도 있고요.
문제는 뭐가 다르냐 하면, 그런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낙심하느냐, 아니면 그런 일을 만났을 때 감사하느냐? 하는 차예요.
예수님을 진짜 믿는 믿음의 눈이 열리면, 어떤 상황이 와도 '주여 감사합니다'
믿음은 이렇게 놀라워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문제보다 훨씬 크시니까요.
제가 그 여성도님을 위하여 기도해 드리는데
그냥 주님이 제게 그런 마음을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성도님에게 말씀을 드렸어요.
"성도님, 이제 성도님은 큰 믿음을 가지시게 될 겁니다.
성도님이 암을 '하나님, 내게 이런 어려움을 통하여 제게 큰 믿음을 주실 것을 감사합니다'
정확하게 그렇게 기도하시면, 하나님은 반드시 성도님에게
이 암을 통하여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하실 겁니다."
그런 권면을 그 짧은 시간에, 그냥 분명하게 드리고,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잠깐 기도해 드리고, 그리고 설교하러 갔는데
제가 그렇게 말씀을 드릴 수 있었던 것도,
그분 안에 주님이 계신 것을 너무나 분명하게 알았기 때문이에요.
▲오늘 이 시간에도 동일해요. 여러분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계시든지
여러분 안에, 그 문제보다, 훨씬 크신 주님이 계세요.
이것을 보는 눈이 뜨이는 일이 필요한 거예요.
근데 여러분이 먼저 믿음으로 취하셔야 돼요.
그 믿음이 아주 작은 것이라도 좋아요.
믿음이 없는 것과, 믿음이 작은 것은 완전히 다른 거예요.
믿음이 없는데, 믿으라고 할 수는 없어요.
근데 믿음이 작은 사람은, 그 작은 것을 붙잡을 수 있어요.
'내 안에서,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이 내게 큰 일을 행하실 거야'
'내게 이 일을 통하여 큰 믿음을 주실 거야'
그건 여러분이 얼마든지 붙들 수 있고, 기도할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 여러분이 그때마다 주님께 순종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안에 계신 주님께 순종하기만 하면 돼요.
▲제가 선한목회교회 담임목사로 있을 때, 도와달라는 전화와 메일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성령집회 때 우리가 이렇게 바구니로 돌리며 헌금하게 된 이유도,
도와달라는 요청이 외부에서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은혜받는 이 시간에, 우리가 돕는 헌금을 합시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헌금을 좀 합시다.'
그래서 금요성령집회 때 드려진 헌금을,
우리 교회에서 유일하게 그 시간에만 헌금바구니를 돌리면서 헌금을 하는데
근데 어떤 때는 정말 너무너무 지쳐요.
도와달라는 말만 계속 듣는 것도 너무 힘들어요.
근데 그때 하나님이 제게 말씀을 주셨어요.
잠언11:25절에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 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저는 그동안에 교회를 통해서, 외부로 가급적 많이 도우려고 애를 썼어요.
근데 말씀을 보고 깨닫는 것이, '돕기는 도와도 좋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거예요.
'왜 내게만 도와달라고 그러는 거야? 우리도 너무 힘든데...'
이렇게 (즐겁지 않게) 도와 가지고는, 수고해서 돕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예요.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풍족하게 할 것이라'
'아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거구나!
도와달라는 말을 들을 때, 나에게 뭔가 의지하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을 때,
그건 무슨 뜻이죠?
그 사람들이 보기에는 내가 도와줄 만하다고 느끼는 거 아니에요.
뭔가 가지고 있는 거 같다... 그렇게 보이니까 제게 도와달라는 거죠.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저를 그래도 뭐를 가진 사람으로 보는 거, 그게 너무 감사한 거예요.
제가 뭘 가진 것처럼 보입니까?
제 안에 계신 주님이, 아마 그렇게 사람들의 눈에 보이게 만드는가 봐요.
그거 자체가 너무 감사한 거예요.
'주님 제게 도와달라고 하네요. 너무 감사해요.
그 사람에게는 제가 그렇게 보이나 봐요.
제가 그분들을 도와줄 수 있는 힘을 주세요.'
우리 안에는 그런 능력이 있다니까요.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은, 우리를 절대로 위축되고, 또 연약하게 만들지 않아요.
▲오늘 우리 대학생 선교회 현장의 어려움을 정말 이야기(간증)해서
우리 모두가 정말 간절한 기도를 했는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초대교회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웠어요.
지금 캠퍼스에 어려움이 많아요. 예수 안 믿는 사람이 너무 많고,
예수 믿는 사람이 아주 초라하게 보일 정도예요. 초대 교회 때와는 비교가 안 돼요.
그래도 지금 현재, 예수 믿는다고 우리가 감옥에 끌려가진 않잖아요.
예수 믿는다고 뭐 살해당하거나 이러지는 않잖아요.
지금 처지와 형편을, 초대교회 당시의 역사의 시대와 비교해 보면
절대로 '힘들다. 어렵다' 라고만 말할 일이 아니에요.
주님은 고린도 라는 도시에서, 그 몇 안 되는 소수의 무리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끌어 갔잖아요.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면, 주님은 우리 안에
어디서 그런 담대함이 생기는지 모르지만, 담대한 마음을 주세요.
오늘 하나님께서 그 일을 여러분에게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이 오늘 여러분에게 오셔야 되는 것이 아니고,
지금 여러분 안에 계신 주님을 보는 눈이 떠져야 되는 거예요.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열리기 시작하면, 비로소 믿음의 자세가 달라져요.
주님을 믿는 믿음이, 옛날처럼 어설프지 않습니다. 이제는 확실하게 주님을 믿게 돼요.
그리고 주님께 순종하게 돼요.
▲헨리 나우인이 한번 책에서, 서커스 곡예사를 만난 이야기를 했습니다.
공중그네 타기를 하는 곡예사인데, 그가 이런 말을 했답니다.
「날아가는 사람은 절대 잡는 사람을 잡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사람은 잡아주는 사람을 완전히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잡아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지요.
저 아래 새까맣게 올려다 보고 있는 군중들 위해서
곡예사는 몇 번 도움닫기를 통해서 가장 높은 정점에 오르게 되었을 때,
바로 그때 곡예사는 겁도 없이 그네를 잡은 손을 놓습니다.
그리고 완전한 자세를 취한 상태에서, 단순히 양 손을 내밀고
오직 잡는 사람이, 강한 손으로 공중에서 자신의 두 손을 잡아 주기만을 기다립니다.
여기서 만일 곡예사가 불안하여, 몸을 움추리고 완전한 자세를 잡지 못한다면,
잡아주는 사람이 그를 잡을 수 없게 될뿐 아니라,
사람들의 감탄을 받는 멋진 곡예가 되지도 못할 것입니다.
멋진 서커스 공중곡예란, 자기 자신을 공중이라는 미지의 공간에 완전히 맡기는 겁니다.
그것은 떨어지는 자신을 잡아주는 상대편을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꼭 공중그네를 타는 곡예사 같은 느낌이에요.
지금 매 순간순간, 저는 공중의 가장 높은 정점에 그네를 타고 올라가서
거기서 그네를 탁 놓아버립니다.
그러면 주님이 저를 붙잡으시고, 주님이 저를 이끄시고,
주님이 저를 쓰실 것이다... 그 믿음으로 주님께 완전히 맡기는 겁니다.
주님이 눈에는 보입니까? 뭐 사람의 소리처럼 들리게 말씀하십니까?
전혀 그런게 없어요.
오직 완전한 믿음으로, 주님이 제 안에 역사하시는 것을 계속 바라보니까
이제는 주님을 완전히 신뢰하는 담대한 믿음이 생긴 것뿐이에요.
그 담대한 믿음이, 완전한 순종이라는 자세를 만드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주님이 하시는 일을 보는 것 뿐입니다.
'야~ 주님이 또 이 일을 하셨구나, 또 저 일을 하셨구나!'
지금까지 주님은 제 삶을 통해서, 하나하나 다 버리게 하셨어요.
제 오른쪽 다리를 버리게 하셨고, 대학원 학위도 버리게 하셨어요.
큰 교회를 섬기는 목회 성공... 그것도 포기하게 하시고,
아주 안락한 삶, 다 버리게 하셨어요.
그때마다 정말 눈물이 났어요. '아, 나는 왜 이렇게만 해야 되나?
꼭 예수님을 이렇게 믿어야 되나?' 그때 저는 몰랐어요.
'전적으로 주님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면, 주님은 쓰실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조금이라도 주님보다도 다른 어떤 것을 의지하는 것들은,
주님이 냉정하게 다 포기하게 하셨어요.
그때 그래도 감사한 것은, 그냥 뭐 눈물을 흘렸을지라도
'순종하겠습니다. 제가 포기합니다' 그런 것 때문에...
그리고 5년 일찍 은퇴할 때도, 전적으로 주님 의지하고,
주님만 믿고 나아가게 하시고, 그리고 주님이 하시는 일을 보는 거예요.
그건 여러분에게도 똑같아요. 그러니까 어설프게 예수님을 믿지 마세요.
그냥 적당하게 내 힘도 의지하고, 사람도 의지하고, 주님도 의지하고...
이것이 바로 구약성경에 계속 나오는 우상숭배와 똑같아요.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지 않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역사하실 수 없어요.
그렇다고 사람들 관계를 다 끊으라는 거 아니에요. 다 도와줄 사람들이에요.
남편도 도와주고, 아내도 도와주고, 자녀도 도와주고, 부모도 도와드리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내가 도와줄 사람들이고,
나를 도와줄 사람은 주님이세요. 나는 주님만 믿어요. 주님만 의지해요.
여러분 앞으로 여러분에게 힘든 일, 어려운 일들이 있으실 거예요.
근데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 모든 어려움보다 주님은 더 크세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지금 겪고 있는 일,
거기서 주님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돼요.
'주님, 왜 자꾸 이런 일만 제게 주시나요?'
계속 지난 번 시험에 합격을 못 했으니까, 또 기회를 주시는 거예요.
재시험의 기회를 주신 거예요.
주님이 여러분을 포기하시면, 시험도 안 주세요.
'얘는 안 되나 봐...' 그게 무서운 거죠.
주님이 또 시험을 주시고, 또 시험을 주시는 것은
'주님 이제는 제가 완전한 자세로 믿고 순종하겠습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갑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삽니다.' 그렇게 주님만 의지하실 때까지, 계속 시험하시는 거예요.
완전히 거뜬히 통과하게 될 때까지 시험하시는 거예요.
무엇보다 오늘 밤에, 그 일이 여러분에게 일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교회 올 때 여러분의 마음이,
교회를 나갈 때 완전히 달라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이제 교회 오늘 문턱을 나가면서 갑자기
'왜 세상이 이렇게 작아졌지? 정말 왜 이렇게 작아진 거야?'
그건 여러분의 믿음이 커진 거예요.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인 거예요.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의 소망을 내가 보는 눈이 뜨이고,
내 안에 세상보다 더 크신 엄청난 능력이 내게 임해서... 세상이 작게 보이는 거예요.
'주님, 제가 오늘 주님을 알게 하소서.. 주님을 현실로 믿게 하소서!'
우리 찬양하고, 오늘도 우리가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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