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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δεδομένα 18,185편 ◑/यू की-सेओङ

마음이 뜨거워진 사람, 눈이 밝아진 사람 눅24:30~31

by 【고동엽】 2023. 1. 14.

마음이 뜨거워진 사람, 눈이 밝아진 사람       눅24:30~31       

   

마음만 뜨거워진 사람들 

 

(부활하신 예수님을 못 알아보고 동행/임재를 못 누리는 사람)

 

      

 

▲부활의 진짜 문제 - 부활하신 주님을 못 느끼고 사는 것

 

부활이 하등 이상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데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께서 동정녀 탄생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낳게 하시고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 다시 사흘 만에 부활시키신 일이 무엇이

 

대단해서 믿을 수 없다는 일입니까?

      

 

 

부활절의 진짜 문제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느냐 안 하셨느냐가 아닙니다.

 

그것은 너무나 당여한 일입니다.

 

부활절의 진짜 문제는 예수님이 정말 부활하셨다면

 

내게도 살아계신 주님으로 만나주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이 마음 중심에 성령님으로서 역사하고 계십니까?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듣고 믿지만,

 

‘예수님이 정말 부활에서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으로 역사’하시는 것은 모릅니다.

 

 

 

 

▲같이 동행하면서도.. 부활하신 주님을 못 알아보았다.

 

눅24장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예수님이 만나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만나

 

꼬박 하루를 함께 동행하며 말씀을 나누었었는데,

 

그 분이 예수님이신 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저녁때가 되어서 더 가시려고 하시는 예수님을 두 제자가 붙잡습니다.

 

여관에 들어가 저녁 식사를 하려 할 때,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저희 눈이 밝아져

 

예수인 줄 알아보았습니다. 눅24:30-31

 

      

 

만약 예수님께서 그 날 저녁 식사를 하지 않으시고 떠나셨다면

 

그 두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했었음을 전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같이 말씀을 같이 나누고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것이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겪고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믿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그 분을 주님으로 고백하며,

 

큐티나 주일 예배, 부흥회를 통하여 많은 은혜를 받고 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전부 예수님이 하시는 역사인데도. 그렇게 신앙 생활하면서도

 

부활하신/지금 살아계시는 예수님은 못 만났다.

 

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내 안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것이 많은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현실입니다.

 

 

 

 

▲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도, 실제로 예수님을 보는 눈이 열리지 않았을까?

 

거기에는 2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①<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의 말씀을 더디 믿는 불신앙>이 있기 때문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이미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후였습니다.

 

자기들의 입으로 부활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자신들은 믿지도 않으면서도 그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눅24:25,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여러분, 이것이 우리 이야기임을 깨달으십니까?

 

“나는 예수님을 모르겠다, 예수님을 못 만났다,

 

2천년 전에 부활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내 마음에는 안 계신다.”

 

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려고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②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예수님을 살아계신 주님으로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은혜 받을 때, 감동받는 수준에서 멈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부활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하는 두 제자에게

 

예수님께서 성경을 풀어 선지자들이 예언한 놀라운 일들에 대해 가르치시자,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눅24:32,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우리도 큐티를 하거나 교회에서 열리는 기도회, 예배, 부흥회를 통해서

 

마음이 뜨거워진 적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이 때 우리가 “이거야, 바로 이것이 필요했어.” 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아직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은혜 받는 상태에 머무는 것을 결코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짐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은혜의 역사이지만

 

거기에는 한 가지 요소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참 모습을 드러내시고

 

우리가 인격적으로 주님을 아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은혜와 감동을 받았다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아침에 은혜 받고.. 저녁에 식어질 수 있고,

 

주일 예배에 은혜 받고.. 주차장에서 싸늘하게 식어질 수도 있습니다.

 

 

    

 

눈이 밝아진 사람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동행/임재를 누리는 사람)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눅24:31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눈이 뜨이는’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처럼 하면 됩니다.

 

은혜를 느껴서 마음이 뜨거워질 때, 거기서 만족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체험할 때까지.. 더욱 힘써 구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눅24:28~29

 

      

 

▲더 나아가야/ 더 동행해야/ 더 기다려야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하지만 저녁이 되어 주님은 그들과 헤어져 더 가시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 두 제자는 예수님을 보내드리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저희와 좀 더 같이 계십시다. 우리에게 하시던 말씀 더 들려주세요.

 

저희들이 아직까지 부족합니다. 여기서 끝날 수는 없습니다.” 하고 붙들었습니다.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붙잡고 그 날 저녁에 식탁에 앉았을 때

 

예수님이 떡을 떼어 축사하는 순간 눈이 열려

 

이 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눈이 열린 것입니다.

 

   

 

▲야곱이 씨름하듯

 

야곱이 얍복 나루터에서 천사와 씨름wrestle할 때 천사에게 외쳤습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창32:26

 

우리는 결코 마음이 뜨거워지는데서 머물면 안 됩니다. 더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엡6:12절에서 우리의 ‘싸움’을 레슬링(wrestle, KJV)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설렁 설렁 하는 사람은.. 주님과 동행할 수 없을 뿐더러, 마귀에게도 패합니다.

 

간혹 TV에서 나오는 레슬링 선수들을 열심히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애쓰는지!

 

 

 

여러분, 아침에 밥을 하려고 전기밥솥에 불이 들어오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자꾸 전기 코드를 만져 보고 소켓에 꽂았다 뺐다 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정상적으로 전기가 들어오게 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도 안 되면, 남편/아들을 부르고, AS센터에 문의합니다.

 

 

그런데 아침에 마음이 기쁘지 않고 감사가 없으면 어떻게 하십니까?

 

“아, 짜증 나.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기쁠 일이 없지.” 하고 그냥 지나갑니다.

 

         

▲임재가 사라지기만 하면.. 무조건 임재를 구합시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열리기 전에도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은혜를 받을 수 있고,

 

설교를 통하여 찬송을 통해서도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고 봉사를 통하여도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과 은혜는

 

한 순간에 마음이 뜨거워졌다가 금방 식어져 버리는 문제가 있습니다.

 

아침에 은혜를 받았는데 저녁에 가서는 강퍅해지는 일도 있고,

 

주일예배 드리다가 은혜를 받았는데 집에 가서 식어져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받은 은혜를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마음에 계속되는 평강을 가져다주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임재’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바라보는 눈을 뜨게 해주시를 원하십니다.

 

      

 

능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예수님과 개인적으로 교제하는 기쁨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임재/동행이 없으면.. 신앙생활이 힘들고/불평/불만족이 많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연약한 삶을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님의 교회 안에 만연되어 있는 공통된 불평거리가 하나 있습니다.

 

설교자로부터 새가족에 이르기까지 이구동성으로 하소연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데도 왜 기쁨과 축복을 느낄 수 없느냐?’는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그랬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예수님을 만나고도 슬픔이 가득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예수님을 정말 바라보는 눈이 뜨이지 않으니까

 

예수님과 동행하면서도 슬픔이 가득한 것입니다.

 

      

 

주의 일하면서도 낙심이 되고 두렵고 마음에 불평과 원망이 많다면,

 

주님을 만나는 눈이 여러분 모두에게 열려지기를 축복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과 동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동행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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