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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δεδομένα 18,185편 ◑/यू की-सेओङ

마음이 무너질 때 찾아오는 은혜 왕상19:1~5

by 【고동엽】 2023. 1. 14.

마음이 무너질 때 찾아오는 은혜       왕상19:1~5 

 

오늘 아침에 칼럼을 쓰려고 기도하는데, 너무나 선명하게

'먼저 믿고 그리고 결과를 지켜 보라' ... 그런 주님의 감동이 느껴졌습니다.

 

다들 어렵다고 하는 때잖아요.      *2020년 코로나 상황

바로 이 때가 정말 믿음을 훈련하고 실험해 볼 수 있는

너무나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안하고 다 잘 될 때는, 사실 믿음의 증거를 얻기가 의외로 어렵습니다.

근데 지금은 다 어렵다고 말할 때에요.

또 더 어려운 때가 올 거라고 예상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 믿고, 그리고 그 다음에 결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항상 순서는 그렇습니다. 되어진 일을 보고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럼 뭐 누가 그걸 못 해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때 '아 하나님이 계신가 봐’ 누구나 이런 믿음은 가져요.

그러나 정말 어렵고 힘들 때, 그때 하나님을 믿고, 그리고 순종하고, 감사하고,

사랑하고, 헌신하고 그랬는데... 그 뒤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면

이건 정말 크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 되잖아요.

 

요즘처럼 '하나님을 정말 믿느냐? 너는 정말 하나님을 믿느냐?'

'그런 메시지가 계속 마음에 와 닿는 때가 또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오늘 칼럼을 그렇게 썼어요.

'먼저 믿고 그 다음에 결과를 지켜보자!'

 

▲어제 서울 종로에 있는 서울극장에서 <부활>이라는 영화 시사회가 있었습니다.

그 영화 시사회에서, '부활'에 대한 아주 강한 메시지를 듣는 은혜도 있었는데,

그 영화 중에 천정은 자매의 간증이 비교적 길게 나왔어요.

 

뭐 그렇게 길게 나올 만 하더라고요.

항암 치료를 벌써 80회 차가 넘게 받고 있다고 그래요.

 

항암 치료를 한 10번만 받아도, 사람이 거의 뭐 죽은 자처럼 그렇게 힘들어 진다는데,

항암 치료를 83회를 받았다니,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겠어요?

 

그런데 어제 천정은 자매가, 그 영화 시사회 때 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어떤 사람보다도 건강해 보였어요.

항암 치료를 83회째 지금 받고 있는데 말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다'

이 사실을 확 마음에 이렇게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

그 다음부터, 아주 여기저기 암이 지금 몸에 있는데도, 전혀 통증을 못 느끼는 겁니다.

 

그리고 암 환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전도하는 거예요.

자기가 항암 치료를 83회째 지금 받고 있으니까

뭐 다른 암 환자들에게 큰 위로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렇게 충만하게, 어떻게 이렇게 강하게

그렇게 당신은 사는가?' (하고 영화에서 PD가 질문했어요)

 

그때 천정은 자매가 그 영화에서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암도 유익하다 라는 거예요.

뭐가 유익한가 하면,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까!

 

갑자기 교통사고로 그냥 죽는 경우도 있잖아요. 근데 죽음을 준비를 못 했어요.

갑자기 죽어서, 뭐 어떤 사람은 그게 더 좋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진짜 사실 두려운 것은, 준비 없는 죽음이거든요. 그렇죠.

 

뭐 '통증도 없이 갑자기 죽는 게 더 낫다' 이런 표현을 하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만,

주님 앞에 설 때를 정말 안다면, 암 환자가 누리는 복이 만약에 있다면,

'아 내가 죽을 날이 이제 가까웠구나...'

그러니까 자기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거죠.    ☞ <암 관련글 >

 

<부활> 시사회에서 그런 간증을 듣는데, '아 믿음은 정말 놀라운 것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가장 놀라운 은혜가

'염려하지 않게 되고, 모든 것에 감사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그렇게 살 수 있는 은혜예요.

 

그러니까 지금 한 번 그렇게 살아보자는 겁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었으니까요.

이제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염려하지 않고, 그리고 모든 것에 감사하고,

할 수 있는 대로 복의 씨를 심고, 복의 씨를 심어야 복의 열매도 맺어지는 거잖아요.

 

믿음의 씨를 심고, 감사의 씨를 심고, 사랑의 씨를 심고,

그리고 이제 연말까지 6개월도 안 남았습니다.

연말에 가서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지를 보자는 거죠.

 

올해 한 번 같이 시도해 보십시다.

"이 '믿음의 실험'에 함께 할 자 여기 모여라!"

이런 식으로 오늘 칼럼에 썼어요.

 

근데 뭐 굳이 딱히 어디 모일 자리에 있는 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목사님 맞습니다. 그게 주님의 말씀이군요.

제가 한 번 올해 연말까지 '믿음의 실험'을 한 번 해보겠습니다."

먼저 믿고, 그 다음에 결과를 보는(기대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믿음으로 살아보려고 할 때, 꼭 좌절이 수시로 찾아옵니다.

'아 나는 더 이상 못 하겠어. 여기까지가 내 한계인가봐, 이제는 나는 지쳤어!'

이런 상황이 꼭 옵니다.

 

'내가 믿음으로 한 번 살아봅시다. 믿음으로 고백하고, 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고, 사랑만 하며, 그렇게 한 번 살아 보겠습니다.'

그렇게 결단했는데, 수시로 낙심이 오고, 절망이 오는 거예요.

 

▲한 번은 성령집회 때, 어느 분이 기도제목을 이렇게 써서 내셨어요.

근데 어느 여성도님이 기도 제목을 종이에 써냈는데

거기에 '하나님, 여기까지인가 봐요'

 

그분의 마음이 얼마나 낙심이 됐으면.. 얼마나 지금 힘들면.. 얼마나 절망이 되었으면..

그냥 한 줄로, 무슨 사연인지도 없이, '하나님 여기까지인가 봐요!' 그렇게 썼을까요?

 

그런 일들이, 우리의 삶 속에, 내가 믿음으로 살아보려고 할 때 찾아옵니다.

낙심에 빠진 거죠.

 

뭐 중병에 걸린 사람, 나이가 너무 많이 든 사람,

사업이 큰 실패를 겪었기 때문에만 그런 일이 오는 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아주 좋은 형편인 것 같이 보이는 데도

그런 절망이 확 마음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저도 수시로 '아 하나님,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아 하나님, 이제 더 이상 하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그런 생각이 제게도 불현듯 들 때도 있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정말 정말 놀라운 믿음의 사람들,

하나님의 종인 사람들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어요.

 

아브라함에게 그랬습니다. 아브라함도 백 세의 아들을 얻기 까지

아브라함도 '여기까지가 봅니다' 그런 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모세도 그랬어요. '더 이상 하나님 저 못 견디겠다'하고 모세도 그랬습니다.

다윗도 시편을 읽어보면 '여기까지가 봅니다' 그랬던 순간이 다윗도 많이 있었습니다.

 

본문의 엘리야가 그랬어요. 그는 가장 많은 기적을 일으킨 선지자 중에 한 사람입니다.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의 불말과 불병거에 실려서 승천한 사람이죠.

 

그 엘리야도 '하나님, 이제 끝났습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감당 못 하겠습니다.

하나님 그냥 차라리 저를 죽여 주세요.' 그랬던 순간이 엘리야도 있었어요.

그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입니다.

 

근데 엘리야가 이렇게 절망 했던 바로 직전까지는,

이런 절말이 엘리야에게 찾아올 줄은 상상도 못 하던 일입니다.

 

갈멜산에서 바알에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의 영적 싸움이 있었어요.

그 영적 대결에서, 엘리야의 제단에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서

그 제단의 제물이 다 불태워지는 놀라운 승리를 거두고 나서,

(아마 백성들과 함께) 그 바알의 선지자 4백명을 다 죽여버렸습니다.

 

정말 통쾌한 승리였죠. 그런 엄청난 승리를 거둔 선지자 예요.

그리고 3년반 동안 비가 안 온 이스라엘에, 비가 내리게 한 그런 엘리야 였어요.

 

자 그런데, 바로 그 다음에 이런 절망이 찾아온 거예요. 왜 그랬을까요?

엘리야는 왜 도대체 이렇게 절망한 것일까요?

 

엘리야가 생각하기는 '그 (갈멜산의 승리) 정도쯤 되었으면,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도

다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아합의 아내 이세벨도

이제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걸 인정하고, 회개하고 돌이킬 것이다'라고 생각을 한 거예요.

 

그런데 아니 웬걸, 이세벨이 악에 받혀가지고

'내일까지 너를 반드시 죽일 거다' 그런 말을 공공연히 한 거예요.

 

엘리야가 한 순간에 그냥 낙심이 온 겁니다.

얼마 전에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오고, 850명의 이방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엘리야 였는데, 한 번 두려움이 확 밀려 오니까 '내가 죽겠구나' 낙심이 엄습한 겁니다.

 

마치 마라톤을 뛰다가 골인 지점에 다 온 줄 알았는데,

'1킬로 더 가야 됩니다' 그대는 감당을 못 할 정도로 무너진다고 그러죠.

 

'여기까지.. 여기까지..' 이렇게 달려왔는데

'이제 끝났을 거야' 확신했는데,

그런데 그 다음에 아직도 더 남았다고 생각할 때

순간적으로 엘리야가 그렇게 마음이 무너져 버렸어요.

 

그리고는 엘리야는 광야로 도망나가서 로뎀나무 밑에

거기서 '하나님, 그냥 저를 죽여 주세요. 나는 이제 더는 못합니다.

하나님도 보셨잖아요. 이러다가 그냥 나도 죽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 죽었고, 이제 나만 남았습니다.' 이게 본문의 내용입니다.

 

▲자 이 엘리야가 왜 이렇게 낙망을 하게 됐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도 이런 낙망과 절망이 올 때,

나 혼자 남았다는 느낌일 때, 두려움이 나를 사로 잡을 때

어떻게 그때 이겨낼 수 있을까요?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 중에도, 아마 그런 분들이 있을 거예요.

'나는 더 못 견딜 것 같아요. 나는 끝까지 믿음 지키기 힘들어요. 이제는 포기할까 봐요.'

이런 생각 하시는 분이, 지금 이 자리에도, 혹은 지금 이 영상을 보는 분 중에도

반드시 있을 거예요.  *당시 비대면 예배

 

제가 말씀을 준비하는데, 누군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 사람을 위해서 말씀을 막 제가 풀어내는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유가 있습니다. 엘리야가 엄청난 기적을 행하던 선지자 예요.

그랬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역사를, 놀라운 기적들,

정말 엄청난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는 데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하나님의 역사는, 그런 엄청난 역사를 통해서도 나타나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변함 없이 하나님이시거든요.

 

근데 엘리야는 그런 놀라운 일들.. 그 정도쯤의 기적이 일어났으면

그러면 뭔가 큰 변화가 일어나야 되지 않겠나?

그런 기대감이 무너지니까... 그만 마음에 엄청난 낙심이 오게 된 겁니다.

우리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낙이 온 거예요.

 

왕상19:10절에 엘리야가 이렇게 하나님께 앞에 반응을 합니다.

'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열심히 믿었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큰 기적을 행 하였지만,

저 사람들은 절대 안 변합니다. 도리어 그들은 나를 죽이려고 합니다.'

 

이게 이제 절망에 빠진 사람의 마음입니다.

'하나님, 이거는 더 이상 안 되는 거예요.'

 

눈에 보이는 현실이 전부라고 생각이 들면,

그러면 절망적인 상황이 벌어지게 될 때, 그만 자기 마음도 무너져버리는 거죠.

 

▲하나님께서 그 낙심했던 엘리야를, 천사를 보내서 그를 이제 회복시키십니다.

엘리야의 믿음 없음을 책망을 않으시고, 까마귀를 통해서 먹을 것을 공급해 주시고

그리고 그가 사십 일 동안 호렙산으로 하나님이 그를 이끄세요.

 

거기 호랩산에 있는 동굴 속에, 엘리야가 들어갔어요.

거기서 하나님께서 이 엘리야에게 말씀합니다.

'내가 이제 네 앞에 나타나게 될 거다.

너는 동굴 밖에 나와서 하나님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지를 보라'는 거지요.

 

1) 그리고 큰 산이 쪼개지고 바위가 막 부서지는 엄청난 바람이 붑니다.

정말 뭐 산이 쪼개지고, 바위가 다 무너지는... 그런 엄청난 바람이 지나가는데

거기 하나님이 안 계셨어요.

 

2) 그 다음에 땅이 요동하고 쪼개져 나가는 큰 지진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 엄청난 지진 속에도 하나님이 안 계세요.

 

3) 그 다음에는 모든 것을 다 한 줌의 재로 만들어 버리는 무서운 불, 시뻘건 불이 붙습니다.

그런데 그 불 속에도 하나님은 안 나타나세요.

 

4) 그리고 그 불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 아주 세미한 음성이 들리는데

그 세미한 음성 속에 하나님이 임하세요. 그리고 엘리야를 만나 주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무슨 메시지를 주시고 싶은 거죠?

하나님을 그런 큰 바람, 그리고 엄청난 지진, 그리고 시뻘건 불과 같은,

그런 이적, 기적, 엄청난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지 말라!

 

하나님은 그런 엄청난 사건과 기적 같은 일들을 통해서만 만나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거죠.

오히려 아주 세미한 음성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라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엘리야가 하나님을 그렇게 세미한 음성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는 절망했다. 좌절했다. 이제 끝이다. 여기까지가 봐'

그런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세요.

'하나님을 도대체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를 가르쳐 주세요.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 속에 세미한 음성으로 지금 여러분과 함께 만나 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붙잡으셔야 돼요.

 

만약에 어떤 기적과 같은 일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보려고 하면,

엘리야 처럼 (낙심하게) 돼요.

 

'이제 올해 연말까지 믿음의 실험을 한 번 해보겠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어떤 염려가 있을지라도, 난 이제 염려하지 않을거야! 오히려 감사할 거야!

사랑만 할 거야! 복의 씨를 심기만 할 거야!' 여러분이 그렇게 결단했다 하더라도,

 

수시로 낙심이 오고또 지치고... 이런 일들이 찾아올 건데,

눈에 보이는 일들로만 하나님의 역사를 보려고 하면그런 낙심에 빠진다는 거죠.

 

근데 만약에 세미한 음성으로 함께 하시는 주님을 알게 되면,

그러면 어떤 순간이 와도 흔들림이 없어요.   *주제

 

△한 번은 캐나다에서 밤 중에 전화가 왔었습니다. 알지 못하는 분이에요.

제게 밤에 국제전화가 왔는데,

남편하고 도무지 살 수가 없어서, 집을 떠나기 전에

제게 한번 전화를 한 번 해보고 싶어서, 전화했다는 거예요.

 

그 분이 하시는 이야기가, 정말 오랜 시간 남편을 위해서 기도했는데, 남편이 안 변해요.

남편이 더 안 좋아져요. 가정에서 폭력도 심해요.

 

그런데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이 진짜 믿어지면,

정말 하나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만 해주시면,

자기는 더 견딜 수 있겠다는 거예요.

 

근데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자기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대요.

그래서 이제 가정과 남편을 떠나려고 한다는 겁니다.

 

근데 마지막에 목사님에게 한 번 전화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전화를 했는데

시차 때문에 저는 밤 중에 받은 거예요. 그 분은 낮에 전화를 했고요,

저는 자다가 밤중에 갑자기 전화를 받은 거예요.

 

제가 그 분의 전화를 받고서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이렇게 전화를 했겠나?'

하는 생각이 한 편 들었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왜 전화를 하게 하셨는가?' 하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전화 상담을 했어요.

 

제가 그 분에게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하나님이 정말 함께 계신 것만 분명하면, 그러면 더 견딜 수 있겠다고 하셨죠?'

'예 그렇습니다'

 

'근데 저는 지금 하나님이, 자매님과 함께 계시다는 게 너무 분명하게 믿어집니다!'

'어떻게 목사님은 그렇게 믿어지세요?'

 

'하나님이 자매님과 지금 함께 계시다고.. 자매님께 말씀을 하고 싶은데,

자매님이 그걸 못 알아듣는 거예요. 그래서 한국에 있는 제게 전화를 하게 해서

저를 통해서 자매님에게 그걸 알게 하시는 거예요.

 

만약 그게 아니라면, 자매님이 지금 캐나다에서 여기 한국에

이렇게 전화를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지금 밤 중에 자다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지금 자매님 안에 주님이 계시니까, 한국에 있는 전혀 알지도 못하던 목사님께,

그냥 설교만 듣고 있었던 그 목사에게 전화할 마음도 주신 거 아니에요?

그게 바로 하나님이 자매님과 함께 하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자매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그렇게 부르시면 기도하십니까?'

그렇대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는 분이, 자매님 안에 지금 계시는 성령님 아닙니까?'

그 자매님은 우시더라고요.

 

'목사님, 하나님이 정말 제 안에 계시네요.

제가 이제 더 견딜 힘을 얻게 얻었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어요.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도, 여러분 안에 정말 너무나 놀랍게도 나와 함께 계시는 주님,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형태로 여러분에게 역사하지 않으셔도...

 

엘리야는 생각하기를, 아합과 이세벨이 확 변화되고, 그렇게 되기를 원했는데,

그런 역사는 안 나타났어요.

 

하나님의 아합과 이세벨을 죽이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결국은 그렇게 하나님의 저주 가운데 죽습니다.

 

근데 그걸 다 알지 못하는 엘리야는, 낙심이 왔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증거를, 그런 어떤 기적과 같은 것에서 보려고 하지 말고,

마음의 세미한 음성으로 함께 하시는 역사...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라는 거예요.

이건 우리들에게도 똑같은 문제기도 한 겁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너는, 너 혼자 남았다고 하는데,

바알에개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이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엘리야로서는 깜짝 놀랐을 거예요.

 

근데 여러분, 우리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 전부일까요?

오늘날에도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게 얼마나 많이 있겠으며,

우리가 듣지 못하는 가운데 되어지는 일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엘리야, 너는 너 혼자 남았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이 이스라엘 땅에는 7천 명이나 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어!'

 

▲여러분, 지금도 주님은 오늘 여러분의 모든 악과 좌절 절망을 깨끗하게 없애 주실 수 있으세요.

방법은 하나예요.

요15:4절에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6 '내 안에 과하지 아니하면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오늘 이 시간에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끝까지 믿음으로 살 수 있게 만드세요.

여러분 안에 계신 주님을 알게 하십니다.

 

'아,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구나' 그러면 더 견딜 수 있는 거죠.

끝까지 믿음으로 나갈 수 있는 거죠.

 

여러분, 걱정과 근심이 참 많았는데, 주님을 바라보면서 뜨겁게 찬송하고,

그리고 뜨겁게 기도하고, 그리고 말씀을 듣고,

그러면 마음과 생각이 확 바꿔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잖아요.

 

여러분 오늘도 성령집회에 오셔서, 찬송하기 전과 찬송한 다음에

여러분의 마음이 똑같나요?

통성기도 하기 전과 통성기도 하고 난 다음이, 똑같았어요? (달랐어요)

 

주님은 지금 이 시간에 우리와 함께 계셔서, 정말 역사하고 계세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바꾸고 계세요.

 

만약에 신앙 생활을, 무슨 올림픽에 출전하는 그런 운동선수처럼

'그렇게 심하게 훈련하고 준비하는 것처럼 하라' 그러면,

그러면 신앙생활도 참으로 무거운 짐이 되겠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신앙생활은, 믿기만(신뢰하는, 의지) 하는 거예요.

모든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어요.

 

▲마귀의 싸움도 주님이 우리를 죄와 저주에서 완전히 구원하셨어요.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주님과 친밀히 동행하게 하시고,

그리고 세상을 이기게 하시는 것도 다 하나님이 하셨어요.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믿는' 거예요.

'주님이 그렇게 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 것 뿐이라니까요.

 

여러분 지금은 비대면 시대입니다.

마스크를 써야만 이렇게 모여서 우리가 예배도 하고 집회도 가져요.

예배가 끝나고 나면 서로 교제하지 말고, 가능하면 그냥 빨리 돌아가시라고

그렇게 주일에 광고를 하는 것도, 제가 마음이 너무 아파요.

 

참 악수하고 싶으신 분들도 있는데, 가능하면 그냥 목례로만 합니다.

그것도 참 힘들어요. 가능하면 다 정말 악수하고 싶은데... 그때가 지금 이렇게 되었어요.

근데 여러분, 지금이야말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우리가 진짜 믿을 수 있어야, 믿음을 지켜낼 수 있는 시대예요.

 

예배당 건물 때문에 내가 신앙생활 유지했던 분들,

주위 사람들 때문에, 즉 예수 믿는 목사님과 전도사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그런 관계 때문에 내가 그동안 믿음을 지켜 왔던 신앙으로는,

이제 우리 믿음 지킬 수가 없는 때가 됐어요.

 

정말 이제는, 여러분 안에 아주 세미한 음성으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을,

여러분이 분명하게 알고 믿지 못하면,

그러면 한 순간에 믿음이 다 무너지는 때가 됐습니다.

 

▲우리 목사님 중에 한 분이, 코로나19가 막 확산될 그 초기에

그때 혹시 감염의 위험이 있을까봐 자가 격리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일을 이야기 하시더라고요.

 

그때 '자가 격리 해야 된다. 한 주간 동안 자가 격리 하세요.'

그랬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냐면 '아 좀 주님과 만의 교제시간을 좀 충분히 가질 수 있겠구나.

혼자만 있어야 된다니까...' 그러니까 그런 생각도 했었는데,

 

그런데 실제로 한 주간 동안에 혼자 지내다보니까,

완전히 그냥 다 무너져 버렸다는 겁니다.

 

교회에 출근도 안 하고 집에서 혼자만 있으면, 주님과 더 깊은 교재를 나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그렇게 지내면서 보니까, 저녁에 영성일기를 쓸 때,

맨날 애들한테 내가 잘못했던 거, 아내를 도와주지 못했던 거,

쓸데 없는 시간 보냈던 거... 그렇게 그냥 마음이 무너진 내용 밖에는

일기에 쓸 게 없더라는 거예요.

 

그 동안에 그 목사님의 생각하기를, 자신이 주님과 친밀히 교재 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너무 바빠서 그랬다고 생각했대요.

 

너무 교회 일이 바쁘니까, 주님과 친밀히 교제하지 못 했었다고...

'내가 이제 좀 한가해지면, 시간이 좀 많아지면 주님과 친밀히 교제할 수 있을 텐데...'

늘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다는 거예요.

 

근데 이게 자가 격리 상황이 딱 왔는데, 주님과 친밀한 교제가 안 되는 거예요.

너무 바빠서도 아니고, 시간이 넉넉해서도... 그게 결정적인 이유가 아닙니다.

 

주님과 친밀히 교제하는 일은,

바빠도 주님과 친밀히 교제가 되는 사람이 있고,

시간적으로 넉넉한 여유가 있어도, 주님과 친밀히 교제가 안 되는 사람도 있어요.

 

결정적인 이유는, 평소의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 훈련된 사람과, 아닌 것의 차이예요.

절대로 속으면 안 돼요.

너무 바빠서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못 하는 거 아닙니다.

너무 바빠서 내가 영성일기를 쓸 수 있는 여유도 없는 것도 아니에요.

 

우리가 이 코로나19 사태로, 우리의 영적인 민낯이 다 드러난 거예요.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에요.

근데 실제로는 다 잊어버리고 사는 거예요.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하루 종일 잊어버리고 하루 종일 사는 거예요.

그렇게 한 주 간을, 매주 반복하며 그렇게 사는 거예요.

 

매일 일기를 쓰자고 하는 이유는,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 것을 항상 기억하자,

또 생각해 보자. 잊어버렸다가도 다시 생각하자'는 거예요.

 

▲여러분, 선교사님이 파송을 받아서 선교지로 떠날 때,

그때 파송예배 드리고, 이제 공항에서 출국할 때

그때 혼자라는 느낌이 확 든다고 그래요. 사실 그렇지 않겠어요?

 

파송예배 드리기까지는 잘 느껴지지 않는데,

출국할 그때, 뭔지 모르게 교회 성도들과 이렇게 딱 분리되는 느낌이 든다는 겁니다.

그 순간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1백명의 성도님들이 같이 선교사로 떠난다면...

그러면 선교사 갈 만 하겠죠. 그렇죠. 혼자 가야 되니까 힘든 거지요.

 

근데 사람이 같이 많이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닌 거예요.

만약에 예수님이 함께 같이 가시지 않는다면,

사람이 1백 명이 같이 가든지, 1천 명이 같이 가든지, 궁극적으로 그게 무슨 힘이 되겠어요?

 

아무도 선교사와 같이 안 가도, 주님만 같이 가신다면,

주님만 나와 함께 하시는 게 분명하게 믿어 진다면, 그러면 또 뭐가 걱정이 되겠어요?

 

그런데 그게 만약 훈련이 안 되면,

그러면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은, 그냥 신앙적인 지식일 뿐이고

내게는 전혀 실제가 아니면, 아무 힘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주님을 바라보는 훈련을 쉬지 말아야 하는 거예요.

'연말까지 우리가 믿음의 실험을 해보자!' 하지만,

엘리야와 같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게 우리예요.

 

그 기적을 행했던 엘리야도, 한 순간에 무너져요.

하나님께서 그 엘리야에게 세미한 음성으로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굳이 깨우쳐 주시려고 하셨던 이유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비밀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도 지금 주님이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밤에 여러분이 다 그렇게 주님을 만나시는 거예요.

 

주님은 오늘 여러분에게 각자 다 다른 말씀을 주님이 들려 주시겠지만,

여러분 안에 계셔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똑같아요.

 

▲어떤 분이 '목사님, 저는 세미한 음성으로 주님을 만날 수가 없는데요...'

그런 분이 있을 수 있어요.

 

제게 메일로 상담을 하신 분 중에도 그런 분이 있으셨어요.

'목사님, 정말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건 분별을 못 해서 그렇지, 주님의 음성을 못 들은 사람을 한 사람도 없어요.

오늘 여기 오신 분 중에, 주님이 여러분 안에 계셔서 말씀하시는 것을

못 듣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다 들으세요.

 

△이요셉 집사님은 사진작가시죠. 이요셉 집사님이 작년 필리핀 코스타에서

학생들에게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한 말씀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다 아주 특별한 체험을 한 것처럼, 그렇게 자기를 보는데,

실제로 주님의 음성을 어떻게 들었다고 말하는 것인지를, 거기서 설명을 했습니다.

 

꼭 어떤 소리를 들어야 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오늘 밤에도 그렇습니다. 꼭 소리를 듣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서 그 분이 예를 들기를,

자기가 사진 작가로서 작품활동을 이렇게 하다 보면

이렇게 정리 정돈을 다 하고 있기가 쉽지 않대요.

 

그래서 항상 방에 이렇게 어질러 놓게 된답니다.

근데 아내는 아주 깔끔한 성격이라, 방을 치우고 정리하기를 좋아하는데

그 어질러 놓은 것을 보면, 아내가 늘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어 한다는 거예요.

 

하루는 자기가 뭔가 작업을 하느라고, 잔뜩 어질러 놓고 있는데

아내가 문을 열고 딱 들어와서 잠시 이렇게 쳐다보는데

아무 말을 안 하고 그냥 '참 답답하다' 이런 표현으로,

그날 자기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문을 닫고 나가더래요. 근데 아무 말도 안 한 거죠.

 

근데 그때 아내가 '좀 정리하고 사세요. 어떻게 이렇게 하고 사세요?'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을, 자기 마음으로 들었다는 거예요.

 

아내는 정말 아무 말을 안 했어요. 그냥 자기 눈빛 하나로 말을 했던 겁니다.

그런 걸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 예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시간에, 주님이 여러분에게, 똑같이 주님의 마음을 느끼게 해주는 거예요.

'아 주님이 지금 나를 보시고, 주님은 지금 내 마음에 이런 말씀을 하고 싶어 하시는구나'

그게 주님의 음성을 들은 거예요.

 

▲혹시 지금 여러분 가운데 본문의 엘리야처럼

'나는 더 이상 못 견딜 것 같아. 이제는 끝난 것 같아. 나는 여기까지인가 봐!'

하는 분이 있습니까?

 

여러분, 오늘 주님이 여러분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시면

여러분이 다 일어나게 돼요. 엘리야가 다시 일어나게 된 것처럼,

주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아무리 깊은 절망에 처해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일어나게 됩니다.

 

이번 연말까지, 그렇게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한 번 살아봅시다.

여러분과 함께 계신 주님을 정확하게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예, 놓치지 않으셔야 돼요.

계속 확인해 하셔야 돼요. 그리고 믿음의 걸음을 걷는 겁니다.

 

무슨 일이든지 믿음으로 하는 거예요.

정말 하나님을 믿는 행동을 하느냐, 정말 하나님을 믿는 생각을 하느냐?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범사에 감사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결국은 합력하여 선하게 해 주실 거니까요.

 

그리고 오직 사랑만 하는 거예요. 하여튼 복의 씨를 심는 거예요.

그러면 그 지나고 나면, 거두게 풍성하게 거두어져요. 그렇게 우리 한 번 살아봅시다.

오는 연말에 어떤 간증이 있겠는지를 기대합시다.

 

정말 2020년 역사적인 그 해, '믿음으로 살았더니 이런 역사가 있었습니다!'

한 번 정말 놀라운 경험을 하나님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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