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속단하지 말라 (사도행전 1장 15-16절) < 계속 버티면 살아진다 >
지난 11월 2일 새벽 2시 31분에 경기도에 사는 33살 엄마가 3살 아이를 담요로 감싸 안은 채 제주도에서 묵던 모텔 숙소를 나와 택시를 탔다. 그리고 2시 47분에 용담 해안도로에서 내려 바닷가로 난 계단으로 내려갔다. 2일 후 거기서 서쪽 15킬로미터 떨어진 애월읍 갯바위에서 아이 시신이 발견되었고 5일 후 거기서 동쪽 5킬로미터 떨어진 제주항 방파제에서 엄마 시신이 발견되었다. 무슨 이유인지 같은 해류가 두 모녀의 시신을 정반대로 갈라놓았다.
제주도로 올 때 엄마는 어린이집에서 딸아이를 찾아 비행기로 왔다. 아이는 엄마랑 바다 본다고 비행기에서 마음이 설렜을 것이다. 만 3세가 넘으면 비행기 타고 여행가는 상황을 의식할 수 있다. 그런 예쁜 아이를 죽음의 길에 동반하는 것은 아무리 힘들어도 해서는 안 되는 가혹한 일이다. 가슴 아프지만 모방 사례가 없도록 꼭 말해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자살도 일종의 살인이고 자녀를 동반한 자살은 더 가혹한 살인이란 사실이다.
자녀는 부모 소유물이 아니다. 아무리 삶이 힘들어도 자녀의 생사를 부모가 주관할 권리는 없다. 제3자가 가슴으로는 “얼마나 엄마가 힘들었으면....” 하고 동정할 수 있지만 아이 본인이 뚜렷한 의식 가운데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면 “왜 엄마 힘들다고 저까지 죽여요?”라고 항변했을 것이다. 두 시신이 같은 해류에도 180도 정 반대로 한참 멀리 흘러가 발견된 것은 죽은 아이의 무언의 항변이었을지도 모른다.
따뜻한 가슴으로 그 안타까운 현실을 이해하려는 제3자는 “아이가 남의 노예처럼 사는 것이 염려되어 그랬을 거야.”라고 동정하지만 그 염려도 속단이다. 그 아이가 멋진 반전의 인생을 얼마든지 이룰 수 있다. 그런 패배적인 생각을 부정하는 사례가 무수히 많다. 각자의 삶이 주어진 이유와 목적이 있다. 그 사실을 외면하고 자녀 목숨을 허망하게 끊으면 안 된다. 자기 운명과 자녀 운명은 다르고 자기 미래와 자녀 미래도 다르다. 자기와 자녀를 동일시하지 말라. 자기가 없으면 자녀가 불행할 것이란 생각이 오히려 불행한 생각이다.
어떤 상황이든지 “내가 없으면 너는 불행할 거야.”라는 생각은 겸손한 생각이 아니다. “자녀를 동반한 자살은 극단적인 자기중심주의의 산물이다.”라는 말은 매정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현실이 힘들어도 자녀를 죽일 권리는 없다. 자녀는 죄가 없다. 태어난 순간부터 독립된 인격체인 자녀를 죽이는 것은 어떤 가슴 아픈 사연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부모의 책임감이 불행하게 살 것 같은 자녀를 죽이는 것으로 나타나기보다는 더 불행하게 살지 않도록 작은 씨앗이라도 뿌리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너무 힘들었을 것이란 점은 이해되고 가슴도 아프고 그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 없지만 그래도 자녀 생명을 끊은 잘못은 용서받을 수 없다. 인생을 속단하지 말라. 모텔 옆 편의점 주인이 말했다. “아이가 너무 예뻐서 아직도 기억난다.” 아무리 힘들고 기구한 사연이 있어도 예쁜 딸을 키우며 힘을 내 조금 더 버티다보면 딸이 옆에서 친구처럼 버팀목이 되어줄 좋은 날이 온다. 죽을 각오를 하고 죽기 전에 뭐든지 다 하면서 계속 버티면 나중에 “그래도 잘 버텼다.”고 하며 스스로를 칭찬할 날이 온다.
힘든 시간은 지나간다. 고비만 넘기면 사라지지 않고 살아진다. 자녀가 염려되면 더욱 죽을힘을 다해 살라. 떠난 사람을 원망하지 말고 내 삶을 살면 어느 새 내가 키운 자녀가 듬직하게 자라 있다. 사람의 힘든 심정을 남이 다 알 수 없고 삶의 무게가 다 달라도 누구나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때가 있다는 사실은 비슷하다. 그때 조금 더 힘을 내고 버텨내라. 봄이 오면 날이 풀리고 꽃과 나비도 다시 돌아온다.
< 은밀히 선교하고 구제하라 >
제주도에서 있었던 모녀의 비극적인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이 가슴 아프게 생각하지만 그런 생각으로만 끝나면 안 된다. 국가와 사회는 그런 일이 없도록 최대한 대책을 세우고 기업도 ‘어려운 이웃 긴급 구호 대책반’을 은밀히 운용해 소리 없이 도와야 한다. 소리 내며 도우면 기업과 오너 이미지 제고를 위해 그런다고 오해할 수 있고 손을 벌리는 사람만 혜택이 돌아갈 수 있고 도움 받지 못한 사람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기에 최대한 은밀하게 긴급 구호가 필요한 사람을 찾아내 돕는 것이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려운 이웃을 돕는 자로 살려는 것이다. 돈을 벌고 지위를 얻고 능력과 실력을 키우는 이유도 선교와 구제를 위해서라는 숭고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마음을 좋게 먹으라. 가룟 유다의 비극은 나쁜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배반했기 때문이다. 그는 도시 출신이고 능력도 있었고 머리가 좋아 계산도 뛰어났지만 나쁜 마음이 비극의 원천이었다. 하나님은 마음을 보고 은혜도 내려주시고 능력도 입혀주신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을 가지라. 누가 그런 마음을 가졌는지는 하나님만 아신다. 그러나 공동체 생활을 하면 대략 파악된다. “저 사람은 마음이 참 곱다.”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 의를 은근히 가장하고 과시하는 위선자가 아니라면 대개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다. 고운 마음씨를 가지고 진실하게 행동하라. 사람 앞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만큼 스스로 보기에도 마음씨가 곱고 관대하다는 생각이 들게 행동하라.
사람은 은밀하게 선교하고 구제할 때 대개 마음씨가 곱게 된다. 그때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도 임한다. 사람들이 교회에 오래 다니면서도 축복과 능력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기도와 은사가 부족하거나 안수를 받지 않아서가 아니다. 대개 선교와 구제를 외면해서다. 나눌 줄 모르면 하나님이 좋은 것을 나눠주실 수 없다.
일터에서 성공하거나 자녀를 잘 키워야 하는 이유도 최종 목적은 영혼 구원과 영혼 변화를 위한 선교가 목적이어야 한다. 지금보다 더 선교하고 더 퍼주려고 해야 하나님도 능력과 지위와 물질도 더해주신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게 되면 하나님은 더욱 큰 축복으로 함께 하신다. 그런 마음의 준비를 하면 응답과 축복의 때가 늦어져도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때로는 내가 원하는 응답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응답이 다를 수도 있다.
< 기도 응답은 다를 수 있다 >
어느 날 한 초신자가 여행 중에 차 열쇠를 잃어버렸다. 핸드백과 모텔을 샅샅이 뒤져도 없었다. 그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마 예수님이 이 상황도 아실 거야.” 그래서 기도했다. “예수님! 제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 아시지요. 열쇠를 찾게 해주세요.” 그 후 다시 핸드백 내용물을 쏟아 붓자 휴지 밖으로 삐쭉이 나온 차 열쇠가 보였다. 우연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원칙적으로 하나님은 그런 사소한 기도도 들으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내 기도에 응답해주시고 그 이상도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은 내가 원하는 것보다 늘 좋고 유익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넘치도록 주신다(엡 3:20). 그래도 기도하라. 하나님이 축복을 약속했어도 기도해야 그 축복이 내 것이 된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내 기도를 안 들어주셨어요.”라고 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안 들어주신 것이 아니라 ‘안 된다고 하신 것’이거나 ‘응답을 미루신 것’이거나 ‘다르게 응답하신 것’이다.
2014년 9월에 <월새기(월간새벽기도)>가 창간되었다. 그것을 통해 영혼 구원과 영혼 변화의 역사가 크게 일어나는 것을 보고 “아, 이거다.”라고 하면서 세계선교의 도구로서 <월새기 영어판> 비전을 세웠다. 그 비전에 적극 호응하는 사람들도 생겨서 <월새기> 창간 5주년인 2019년 9월을 <월새기 영어판> 창간호 발행 날짜로 정했다. 날짜는 정했어도 늘 이렇게 생각했다. “서두르지는 않는다. 하나님이 거룩한 만남을 통해 재정을 주시고 시작하게 하시면 시작하지만 늦추시면 기꺼이 늦춘다.”
시간표는 짰지만 실제 시간은 하나님께 맡겼다. 다만 시간표를 짰기에 더 열심히 준비했다. 날짜 카운트다운도 했다. 영어 홈페이지도 준비했다. 둘째 딸이 비전에 동참하려고 스스로 교육과에서 영문과로 전과해 1년 조기 졸업도 했다. 영문 인스타그램 사역도 시작했다. 영어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 사역은 문서 선교와 사역 홍보와 인맥 확장을 위해 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 사역은 <월새기> 글의 영문 번역을 준비하는 사전 습작 훈련 성격도 있었다.
그렇게 준비해도 <월새기 영어판> 사역을 위한 마중물은 흘러오지 않았다. 금년 말까지 마중물이 없으면 <월새기 영어판> 비전을 <월새기> 창간 7주년이 되는 2021년 9월로 연기할 것이다. <월새기 영어판>은 번역 등을 위해 충분한 준비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최근에 <월새기 유튜브> 사역을 갑자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년간 습작용으로 올리면서 플랫폼을 잘 갖춰 내년 말쯤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했는데 습작용으로 올린 것도 좋게 느껴져서 그냥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요즘은 하나님의 시간표가 <월새기 유튜브> 사역이 정립된 후 <월새기 영어판> 사역을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월새기 영어판> 사역 대신 <월새기 유튜브> 사역으로 응답하신 셈이 된다. 하나님은 한 길을 막으면 다른 길을 열어주실 때가 많다. 기도 응답도 내가 원하는 것 대신 다른 것으로 대치해 응답하실 때도 많다. 그것이 내게 최선의 코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주시는 응답은 내가 원하는 응답보다 늘 좋다. 그래서 성도는 실패와 절망을 속단하면 안 된다.
< 인생을 속단하지 말라 >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승천하실 때 2가지 명령을 주셨다. 첫째는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는 명령이다. 그 약속은 성령 세례에 관한 약속이다. 둘째는 “성령이 임하면 증인이 되라.”는 명령이다. 그 후 감람산에서 마가 다락방으로 돌아온 120명의 제자들이 간절히 기도했다(15절). 예수님의 승천은 500여명이 보았다(고전 15:6). 그 중 380여명은 하나님이 약속한 것을 기다리지 않고 떠났지만 120명은 약속한 것을 기다렸다. 하나님은 늘 먼저 걸러내는 작업을 한 후 남은 자에게 은총을 베푸신다.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남은 자’와 ‘나머지’다. 복된 존재가 되려면 ‘나머지’가 아닌 ‘남은 자’가 되라. 남은 자가 집 모퉁이의 머리돌이 된다. 그처럼 ‘남은 자’가 되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믿음의 인내다. 힘들어도 꿈과 비전을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은 힘든 사람에게 더 관심이 많으시고 그 상황이 내 죄와 허물로 생겼어도 회개를 통해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사람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을 때도 많다. 레아가 야곱의 사랑은 받지 못했어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산의 축복을 받았다.
공평하신 하나님은 한쪽 길을 막으시면 다른 쪽 길을 열어주신다. 하나님은 어떤 한 사람에게 축복을 몰아주시지 않고 누구에게나 축복의 씨앗을 공평하게 내리신다. 중요한 것은 그 씨앗을 발견해 감사하며 발아시키는 것이다. 행복은 ‘새로운 축복을 얻는 것’보다는 ‘이미 있는 축복을 발견하는 것’에 있다. 내게 없는 것에 초점을 맞춰 불평하면 삶의 지경이 축소되지만 내게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춰 감사하면 삶의 지경이 확대된다.
눈앞의 것만 보고 인생을 속단하지 말라. 승리를 원하면 끝까지 달리라. 고난 중에도 실망하지 말고 응답이 늦어져도 기도를 중단하지 말고 뜻대로 안되어도 하나님의 크신 뜻을 생각하고 인내하며 전진하라. 그러면 반드시 선한 열매를 얻는다. 자녀의 모습에 부족한 점이 있어도 삶의 성패를 성급하게 말하지 말라. 사람은 열 번도 더 변한다. 계속 기도하며 계속 참고 기다려보라. 자녀가 인생에서 성공하고 승리했는지는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서봐야 안다. 지금 점수가 조금 많아 합격해서 성공했다거나 점수가 조금 모자라 떨어져서 실패했다고 하지 말라.
인생의 성패는 조금 더 기다려봐야 판가름 난다. 진짜 중요한 것은 바른 믿음과 바른 마음이다. 믿음 생활이나 교회 생활의 성패도 성급하게 말하지 말라. 기도 응답 몇 번 받았다고 하나님이 자기를 제일 사랑하는 것처럼 간증하기보다 내 평생 다하도록 죽을 때까지 하나님께 충성하겠다는 결심이 중요하다. 찬송가에 이런 가사가 있다. “내 평생 소원 이것뿐 주의 일 하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 중요한 것은 철저히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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