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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마치려는 사람! (행 20:17-25)
어떤 돈이 많은 백만장자가 신문에다가 이런 광고를 실 른 일이 있다고 합니다. 누 구든지
자기 삶에 대해서 진 실로 만족하다고 하고 이것 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에게 제가 백만불
을 드리겠습니 다. 라고 했더랍니다.
정해진 날짜가 되자 수많은 사람들 수백명의 지원자가 모여 들었습니다. 저마다 자기는 만
족하고 자기는 스 스로 행복하다가 자기 행복 한 내용을 설명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직
업에 대해서 만족하다고 어떤 사람은 자 기가 받는 보수가 그리 많지 않지만은 자기는 받는
보수 에 대해서 스스로 항상 만족 하게 생각하게 아무도 부러 워하지 않고 산다고. 또 어
떤 사람은 아내에게 만족하 고, 어떤 사람은 남편에게, 혹은 자녀들에게 만족하고, 어떤 사
람은 자기 취미 생활 이 너무 좋아서 여기에 만족 함을 느끼며 산다. 그랬답 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 는 사람이 있더랍니다. 저 는 불평하고 싶어도 불평할 꺼리가 없
어서 걱정입니다. 이런 괘변도 있었답니다. 계속 열심히 자기 나름대로 행복과 만족을 발표
했지만 어느 사람의 설명도 납득할 만한 것이 못돼서 결국은 백 만불 상금은 아무도 받지
못 했답니다. 그 왜그랬냐? 하 면은 이 주인공 되는 이 광 고주가 단 한마디의 질문을 했는
데 이 질문 앞에 모두가 무릎을 꿇었기 때문입니다.
그 질문은 이렇습니다. 당 신들은 진실로 당신의 생활 에 만족하고 있다고 한다면 내 돈 백
만불은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까? 이 말에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참 행복이
라는 것은 아무것도 더 바랄 것이 없어 야 행복입니다. 아직도 돈 백만불이 필요하거든요.
아 직도 또 어떻게 되길 바라는 게 있죠. 기대가 있고 바라 는 것이 있는 동안은 엄격히 말
하면 행복은 아닙니다. 이대로 이 형편 이대로 이모 습 이대로 만족해야 그것이 행복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스스로 행 복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참 행복이라는 것은 그 행복한 순간에
내 모든 소원을 다 이루고 만것입니다. 다시 다른 소원이 있을 필요가 없 습니다. 그래야 행
복한 것 입니다.
사도바울은 본문에서 최고 의 만족을 스스로 말하고 있 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예수께
받은 사명 은혜에 복 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
노라.” 바로 여기에 행복에 극치가 있습 니다.
빌립보서 2장 17절에 보면 은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너희 믿음과 재물에 내가 나를 관제
로 드릴지라도 기 뻐하리라. 관제로 드릴찌라 도 기뻐하리라.” 관제라 함은 피를 쏟아 붓는
단 소립 니다. 양을 잡아서 선지 피 가 솟아 오를때 그것을 바께 쓰에 받아다가 제단에 붓
습 니다.
그와 같이 내가 이 시간에 죽어서 비참하게 죽어 피를 쏟아 부어도 나는 행복할 것 이다.
이런 행복이 진짜 행 복입니다.
우리가 성탄이 될때마다 듣 게 되는 곡이 있습니다. 이 메시야를 작곡한 헨델은 원 래 오르
가니스트요 그는 오 르간 연주자로서도 탁월했다 고 합니다. 언젠가 그가 오 르간을 연주하
고 있을때 많 은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하 고 크게 환호를 하고, 큰 칭 찬을 보냈습니다. 그
리고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당신 의 연주는 두다리와 열 손가 락만 가지고는 모자라는 연
주같은데 이렇게 연주를 잘 하게 되는 비결이 뭡니까? 그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 니다. 저
는 이 오르간을 연 주하고 있을때 내 마음과 생 각과 힘과 목숨을 다하고 있 습니다.
이 순간 여기서 죽어도 좋 다하는 마음으로 연주합니 다. 그래서 감동이 있었던 것입니다.
온 정력과 생명 을 다하는 순간 순간 다하는 바로 거기에 행복의 극치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 어떤 일을 위해서 이렇게 해본일이 있습니까? 이 일을 위해서라면 이대로 죽어도 좋
다. 하는 그런 마 음으로 온 정력을 다 쏟는다 면 그야말로 행복한 것이지 요. 이런 경험을
한번도 못 하고 죽으니 불쌍한 사람이 지요. 이런 경험을 한번만 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그
는 세상을 헛되이 산게 아니죠. 사람이 이 극단적인 감정이 라는 것은 언제나 그 표현에 있
어서 생명과 연결해서 표 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래서 우리가 우스우면 우스 워 죽겠다.
맛이 있어도 맛 있어 죽겠다. 졸려 죽겠다. 피곤해 죽겠다. 좋아서 죽 겠다. 뭐 죽겠다는 말
을 곧 잘 합니다. 이럴때에 흔히 들 생각하기를 아 이거 한국 사람들은 궁상 맞아서 걸핏
하면 죽겠다고 한다고 하지 만 그건 모르는 소리고 세계 어느나라 말도 마찬가지요.
사람은 원래가 죽고 싶은 본능과 살고 싶은 본능이 함 께 있답니다. 그러기 때문 에 어느
나라 말이든지 이걸 전문으로 연구한 사람의 말 에 의하면 언제나 극단적 감 정 표현은 죽
음과 관련시키 는 거예요. 그래서 행복에 대해서 죽어도 좋다. 이대로 죽어도 좋다. 한이 없
다. 또 죽어도 행복하다. 죽음 과 관련해서 연관해서 표현 하기 마련입니다. 그런고로 극치
적 표현이라는 것은 이 대로 죽어도 만족하다. 바 로 거기에 행복의 절정이 있 다는 말씀이
올시다.
사도바울은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 가를 알
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의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 입니다. 로마서에 보면 이 런 말씀이 있습
니다. 자기 를 위해 사는 자도 없고 자 기를 위해 죽는 자도 없다. 아무리 자기를 위해 살려
고 해도 살길이 없어요. 부득 불 남을 위해 살고 남을 위 해 죽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누구를 위해 사는 겁니까? 여기에 문제가 있 습니다. 때로 부모님들 가 운데는 참
우리 어머니들 가 운데 이런분들 많아요. 자 식을 위해 살지. 자식을 위 해 정성을 다하다가
마지막 에 그 아이들이 크면서 집을 나가버리면은 나는 인생을 헛살았다. 뭐 그러더만요. 그
건 처음부터 잘못 산 거예 요. 세상에 났다가 그래 자 식하나 낳아서 그거 키우자 고 살았
나? 그건 아니예요. 근데 어떤 부모가 이런 얘길 하는 걸 들었어요. 아이가 국민학교에 다니
는데 피아노 를 잘해요. 뭐 입상도 하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얘를 데리고 외국에 가서 여기
에 있는 살림을 다 때려 치우고 외국 가서 얘 하나 공부 시 키면서 우리 둘이는 돈 벌어 서
이 치닥거리 하고 훌륭한 피아니스트를 만들어 보겠다 고 저한테 와서 그럽디다요.
제가 대답을 이렇게 했습니 다. 그래 얘가 피아니스트 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될른지 못
될른지 그것도 모 르겠지만 설사 됐다 치더라 도 그래 하나님 앞에 가서 너는 참 너 딸하나
낳아서 잘 키우고 왔구나 그럴 것 같냐고 어떻게 딸 하나를 위 해서 일생을 살아야 되느냐
고 어떻게 그게 목적이 되겠 느냐고 자식을 키우지만 자 식은 목적이 아닙니다. 그 래 되면
우상이 됩니다.
무엇을 하든지 목적될 만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뚜렷한 목적이 있었 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여 나를 위해 죽었다가 부활하신 바로 그 분이 내 생의 목적이요. 누
구를 위 하여 살고 누구를 위해 죽어 야 한다는 것이 분명했어요. 삶에 목적도 분명하고 죽
어 야 할 이유도 언제나 지니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아깝지 않게 살았습니다. 온통 다 쏟으
면 살았습니다. 그것이 행복한것이죠. 미련 없이 살았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 래 그가 간증하는 유명한 말 이 있지 않습니까? 사는 것 이 그
리스도고 죽는 것도 유 익하다. 죽으면 끝난 것인 데 아니요. 죽는것도 유익 하다. 이것이
바울의 고백 입니다. 그렇게 살았다 그 말입니다. 이 행복한 사람 이죠.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살았 으니까 뿐만 아니라 목적은 있는데 현실적으로 구체화되 지 못
한 목적에 실망이 있는 것이예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 놓고는 내가 뭘 해야 될지를
몰라요. 이래 되면 문제가 있습니다. 바 울은 그렇지 않았어요. 여 기에 복음을 위하여 특별
히 이방인의 사도로써 은혜의 복음을 신학적으로 매우 중 요합니다. 이방인의 사도 은혜의
복음 이것이 바울에 게 맡겨진 사명입니다. 내 게 맡겨진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 는 갈라디아 1장에서 고백합 니다.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함 을 입었다. 난 태어날때부 터 바로 이 일을 위해서 태 어났다. 분
명합니다. 이렇 게 확실한 목적이 구체화된 그런 생을 살았어요. 내가 무엇을 해야 되는가를
알고 있었어요. 좀 더 나아가서 는 내게 주신 경륜을 알았습 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습니다.
복음 전파도 여러가집니다 만은 여러분 이것을 흔히 세 상에서는 일반적으로 적성이 라고
교회에서는 은사라고 합니다. 내게 주신 은사가 뭡니까? 나만이 할 수 있는 것, 내게 주신
재주 탤렌트 나로 가능케 한 것이 무엇입 니까? 이것을 극대화 해나 가야 합니다. 가만히
보세 요.
음치가 음악공부 하겠다고 그러면 되겠어요. 죽을 때 까지 해도 안되는 거지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한 평생 뭐 피아노를 치고 음악 을 한다고 해도 그래도 이게 탁월한 사람이
되야지 돼요. 도대체가 타고나야 되요. 제가 프엔치에 갔을때에 그 정명우씨가 오페라를 지
휘하 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앙 이 좋은 분이요. 시작하기 전에 들어오라고 해서 준비 실에
가서 기도를 하고 끝난 다음에 또 마치고 기도를 했 는데 온몸이 땀으로 젖었는 데 굉장합
니다. 제가 거기 서 지휘하는 걸 봤는데 두사 간 반을 내리하는데 거의 악 보를 한번도 안
봐요. 열렬 히 지휘를 하는데요 난 뭐 음악은 잘 모르겠고 지휘만 보면서 감동을 했습니다.
그랬는데 제가 그 물어보았 어요. 여기다 생을 다 기울 였어요. 어떤 분이 말하기 를 그 분
이 유명한 것은 악 보를 외우는 거래요. 그 큰 악보를 몽땅 외워가지고 연 습 시간에도 딱
딱 지적하는 데 외국 사람 그 코큰 자존 심 강한 사람들이 꼼짝을 못 한다고 그래요. 그렇
지요. 얼마나 성의를 다하는데 그 래 저는 여기 나와서 독창하 는 사람들 뭐 들고 하면 영
들을 마음 없어요. 뭐 그걸 뭐 그럴려면 그만두지 그걸 그러바에야 되겠어요. 좀 성의를 기
울여야지 하다못해 정 건망증이 있으면 손바닥 에라도 써가지고 나와야지 그걸 큰 악보를
들고 노래를 하겠다고 그래. 그건 청중 기만이요. 안그렇습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해
야 되겠습니까? 저는 어떤때 보면 언젠가 한번 누가 음악 회 오라고 그래요. 갔지요. 들어보
니까 시원치 않아요. 그 다음에 자꾸 또 오라고 그래요. 안가요. 제가 피차 가 고생이요. 들
어주자니 힘들고요. 이거야 말로 타 고나야 됩니다요. 하나님이 그쪽으로 은사를 주셔야해
요. 내게 주신 은사가 뭡니 까? 그걸 정확하게 알아가 지고 여기다가 온 정력을 쏟 아야 돼
요. 충성이란? 가 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요. 없는 재주를 부릴려고 한평생 몸부림 쳐
봤댔자 되 는건 아무것도 없이 절망 뿐 이요. 많은 사람 고생 시킵 니다. 자 조용히 남에게
주 신 은사 부러워 할 것 없어 요. 나는 나대로 나대로 나 에게 주신 훌륭한 것이 있어 요.
그것을 극대화해 나가 는데 사도바울은 바로 그것 이예요. 하나님이 내게 주 신것이 무엇인
가? 이걸 잘 알고 있어요. 그것에 총력을 기울였어요. 행복한 사람이 요. 그뿐 아니라 어떻
게 해 야 되는것도 알고 있었습니 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오늘 본문에도 성령의 인도 함
을 받아 이끌리어 예루살 렘으로 가노라. 그는 겸손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 경에 보면은
주의 뜻이면 가 고, 주의 뜻이면 오리라. 아 주 겸손한 말을 합니다. 하 나님의 은사, 특별히
성령의 역사 앞에 그는 순리적으로 살았습니다. 닫힌문을 열어 달라고 몸부림 치지 않았습
니다. 안될것을 되게 해 달 라고 몸부림 치지 않았습니 다.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 는대로 겸
손하게 따라갔습니 다. 그곳이 어디든 감옥이 든 그곳이 사막이든 그곳이 어디든 그는 성령
의 역사 앞 에 조용히 순종하는 사람이 었어요. 그런고로 행복합니 다. 여러분 대개 보면 고
집 이 많은 사람, 제멋대로 하 는 사람이 절망합니다. 온 유하여 순종하는 사람은 늘 마음에
여유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바울은 끝 낼것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 니다. 하나님이 이
제쯤은 하나님이 내 일을 끝내려고 하시는구나. 그래서 이 복 음 전하는 사역 이 사명을 이
제 마치려 함에 다 마칠때 가 왔어요. 결론을 지을때 가 왔는데 이때에 나는 내 생명을 조
금도 아깝게 생각 하지 않는다. 다시 헌신하 는 모습을 볼수가 있습니다. 일은 시작하기도
힘들지만 끝내는게 힘듭니다. 여러분 이 제가 지금 설교하고 있습 니다만은 설교나 강연도
요 웅변하기나 강연 다 보면 어 떤 말로 시작하느냐 참 어렵 구요. 어떤 말로 끝내느냐 하
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여러분 혹 부부싸움 해봤어 요. 시작은 어떻게 해던간 에 이제 끝을
내긴 내야겠는 데 끝을 내고 자야겠는데 무 슨 말로 끝을 내나. 이게 어렵다고요. 감정이 격
해지 니까 말은 끝은 내긴 내야겠 는데 끝낸다는게 어려워요.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끝을 내야 죠. 로마서 13장 11절에 보 면 이 시기를 알거니와 이시 기, 어느
시점에서 생각해야 되느냐. 이 카이로스가 중 요하고 그 다음에는 시편 90 편 12절에 보면
은 우리에게 우리의 날 계수함을 가르치 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 서. 내가 지금 몇살입
니까? 여러분 나이가 얼맙니까? 거기에 걸맞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젊은 사람이 늙은 척
하면 그것도 잘못된 것이 고, 늙은 사람이 젊은사람들 하는거 하겠다고 하면 주책 이예요.
그걸 알아야 해요. 어느 책에 보니까 운동도 운 동 안해서 병든 사람도 많지 만은 적절하지
않은 운동을 죽은 사람도 많데요. 그렇 습니다. 제가 너무 일찍 목 사가 됐기 때문에 언제
한번 결혼주례를 하는데 나보다 나이 더 많은 사람을 주례했 습니다. 그랬는데 이사람이 언
젠가 한번 시카고에서 만 났는데 자기가 요새 정구를 친다고 그래요. 잘 친다고 젊은 사람
들하고 해서 내가 이긴다고 그러더라구요. 그 래서 내가 그거 조심하라고 격한 운동인데 그
런말을 하 고 돌아왔는데 몇일 있다고 소식이 왔는데 죽었다고 그 래요. 정구치다 죽었어요.
격한 운동입니다. 영국에서 는 나이 50이 넘으면 정구를 법적으로 못치게 한답니다. 우리나
라에 영화배우 제가 이름은 대지 않겠습니다만은 뭐 친구들하고 축구하다가 죽었잖아요. 아
시죠? 그거 아무나 하는거 아니에요. 나이든 사람이 뭐 기분낸다 고 축구한다고 뛰다가 아
이 쿠 하고 죽었어요. 그러니 까 나이에 걸맞는 일을 해야 죠. 나이에 맞는 생각 나이 에 맞
는 행동 나이에 맞는 믿음 나이에 적합한 일을 해 야 돼요. 이제는 생을 정리 할 때에요. 이
제 또 일을 늘어 놓아서는 안돼요. 이 제는 줄여서 나는 이제 무엇 에 집중해야 하는가 남
은 시 간에 그것이 지혜란 말입니 다. 사도바울은 내 전도 사 업을 마치려 함에 나는 어떻
게 해야 되겠는가 그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겸손과 눈물과 인내와 용기로 하나 님의 말
씀을 최선을 다해 전 했습니다만은 이제 달려갈 길을 다가고 마치려 합니다. 그 순간 그는
자기의 죽음이 라고 하는 이 생명보다도 더 귀한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스
스로 물 러가지만은 하나님의 사업은 확장되어야 합니다. 내 개 인의 일은 끝나지만은 하나
님의 일은 더 크게 역사될 것이예요. 그는 모든 욕망 을 다 버리고 평안한 마음을 가졌습니
다. 모든 기대감마 저 하나님께 바쳐버렸습니 다. 어떻게 됐으면 좋겠다. 무엇이 됐으면 좋
겠다. 그 런 욕망도 없습니다. 이제 는 끝나는 시간이기에 불확 실한 미래를 향해서 나아감
에 그의 모든 생각과 판단력 과 자기의 의지까지 다 포기 해 버렸습니다. 생명을 조 금도
아깝게 여기지 않는다. 그는 이미 정신적으로는 하 나님께 생명을 완전히 바쳐 버렸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용기의 사람으로 살아갑니 다. 더 위대한 여유가 있었 습니다. 이제는 계획도
없 습니다. 하니님이 인도하는 되로 예루살렘에 가면 가고 로마로 가면 가고 감옥으로 가면
감옥으로 가고 순교의 죽음이 다가오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순교하고 그럴 생 각이에요. 하
나님께 이미 깨끗하게 헌신해 버렸습니 다. 시작이 중요하지만은 끝이 더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일단 끝을 맺 고 모든 전도사업과 계획을 일단 끝을 맺고 생명을 하나 님께
바치고 남을 생을 삶니 다. 몇일을 살던 어떻게 되 던 빈부귀천간에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
명까지 바쳤으 니까 내 주여 인도하는 되로 어디서 죽던 주님 하시는데 로 하시옵소서. 그
렇게 남 은 시간을 살았더란 말입니 다. 이미 바쳤고 그리고 남 은 시간을 살았습니다.
세계 2차대전 당시의 포로 생활을 했던 한 영국 장교의 유고집에 나오는 이야기입니 다.
1945년 4월 8일 주일아 침에 본훼퍼목사님 독일 복 음주의 교회목사님은 지금 감옥에 갖쳐
있는데 그날 아 침에 아침예배도 마치기전에 우락부락하게 생긴 독일군인 둘이 찾아와서 죄
수 본훼퍼 우리를 따라와 그러더랍니 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 는가를 모두가 다 알고 있
습 니다. 이제 형장으로 나가 는 길입니다. 그때의 바로 그 영국군인 포로된 군인하 나가 말
하기를 “목사님 이 것이 마지막이군요. 안녕희 가십시오.”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본훼
퍼 목사님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유 명한 말을 했습니다. 이것 이 끝입니다. 그러나 나
에 게 있어서는 이것은 내 생명 의 시작입니다. 감옥생활은 끝났습니다. 내 자유의 생 활이
시작됩니다. 세상 고 통스러운 생은 여기서 끝납 니다. 영원한 생명이 시작 됩니다. 이렇게
간증하며 형장으로 나갔습니다. 여 러분 미래가 암담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맡깁시다. 잘
살고 못살고 성공하고 실 패하고 오래살고 짧게 살고 건강하거나 병들거나 그리 중요한게
아닙니다. 다만 주님의 뜻이 이루어 지이다. 깨끗하게 헌신하고 생명을 조금도 아깝게 여기
지 않고 바쳐버리고 오직 주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하고 덤으로 이제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새로운 창조적 역사가 있고 새로운 용기가 함께하는 것이올시 다.
📌 1. 전체 요약
본문은 사도 바울이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마치려 함에는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않는다”(행 20:24)라고 고백한 삶을 중심으로 참된 행복과 참된 목적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행복은 더 바랄 것이 없는 상태이며,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한 사명을 완수하는 데서 최고의 만족을 찾았다.
그는 자신의 은사를 알고,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며, 자신의 일을 끝낼 때를 분별했다.
마지막에는 생명조차 하나님께 드리며 “주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하는 삶의 자세를 강조한다.
📌 2. 설교용 개요
🔸 서론 — 행복의 참 의미
-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만족은 사실 끝없는 욕망의 또 다른 표현
- 진짜 행복은 “더 바랄 것이 없는 상태”
- 사도 바울의 고백은 참된 만족의 본보기
본문: 바울이 보여준 ‘일을 마치려는 사람’의 삶
I. 삶의 목적이 분명한 사람 (행 20:24)
- 자신의 존재 이유: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
- 사명 때문에 생명조차 아끼지 않음
- “사는 것이 그리스도, 죽는 것도 유익”
II.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아는 사람
- 자신의 은사와 적성을 분별
- 남을 부러워하거나 억지로 흉내내지 않음
-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극대화하여 사용
III.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는 사람
- 문을 억지로 열려고 하지 않음
-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길로만 감
- 겸손하게 “주의 뜻이면”이라고 말하며 순종
IV. 마쳐야 할 때를 아는 사람
- 일의 ‘끝’을 분별하는 영적 지혜
- 나이에 맞는 사명, 시기에 맞는 우선순위
- 욕망과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맡김
V. 생명까지 드리는 헌신
-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않는다”는 고백
- 본훼퍼처럼 죽음조차 ‘시작’으로 본 신앙
- 남은 생은 하나님께 완전히 맡긴 삶
📌 3. 묵상 포인트
-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 나의 인생 목적은 분명한가?
-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는 무엇인가?
- 남의 것과 비교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고 있는가?
- 하나님이 닫은 문을 억지로 열려고 하지 않는가?
- 지금 내 인생의 ‘시기’를 제대로 분별하고 있는가?
- 줄여야 할 일, 집중해야 할 일,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 나는 마지막을 준비하며 살고 있는가?
- 하나님께 생명을 드린 자의 평안함이 있는가?
- 내가 진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 아직도 ‘백만불’을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 4. 주제별 정리
🔸 A. 행복의 본질
- 참 행복은 “더 바랄 것이 없는 상태”
- 만족을 주장하지만 욕망이 남아 있다면 행복이 아님
- 바울: 사명에 생명을 드릴 때 최고 행복
🔸 B. 삶의 목적
- 자녀, 성공, 자기 만족이 목적이 될 수 없음
- 인생의 목적은 오직 그리스도
- 목적이 분명하면 삶이 흔들리지 않음
🔸 C. 은사와 사명
- 하나님은 각각에게 고유한 은사를 주심
- 남을 흉내 내지 말고 자신에게 주신 은사를 극대화
-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은 사명을 확신함
🔸 D. 성령의 인도
- 억지로 열려고 하지 말고 열린 문을 따라가야 함
- 겸손과 순종이 삶에 평안을 줌
-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라면 감옥·광야도 감사
🔸 E. 마무리(끝맺음)의 영성
- 시작보다 ‘끝이 더 중요함’
- 삶을 정리할 때를 분별
- 욕망과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김
- 본훼퍼처럼 죽음조차 새 시작으로 고백
🔸 F. 헌신의 절정
-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않는다”
- 하나님께 모두 드린 사람의 용기와 자유
- 남은 생은 덤으로 사는 사람의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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