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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가는 믿음! (요 4:46-54)
허브 윌러라고 하는 분이 쓴 'Connecting with God'라고 하는 "하나님의 연결",
"하나님과의 연 결"이라는 그런 책이 있는데 그 책 속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한적한, 아주
평화로운 작은 마을이 있었는 데 그 마을에 나이트 클럽이 개업 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이
트 클럽 이 문을 열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 마을 사람들은 큰 걱정에 빠졌 습니다. 이 평
화로운 마을이 시끄 럽게 됐고 젊은 사람들이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면서 타락하게 될 것이
다. 큰 걱정이 돼서 교회에서 는 철야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철야기도 하는 가운데
에 좀 극성스러운 교인들은 뭐라고 기도 를 했는고 하니 '하나님 이 나이트 클럽을 불태워
주십시오' 불을 질 러 달라고 구체적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죄
악으로부터 우리 마을을 건져 주 십시오.' 했는데 얼마 후에 정말 벼 락을 쳐서 나이트 클
럽이 그만 불 타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이트 클 럽 주인은 이 사실을 알고 법정에 고소했습
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이 불 탄데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 려는 겁니다. 우리가 기도를 한
것은 사실이지마는 그 기도 때문에 나이트 클럽이 불탔다는 말은 말도 안 된다고 책임을 부
정하게 됩니 다. 재판장이 양쪽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재판을 하면서 하는 말 씀을 좀 들
어보세요.
"누가 범죄 를 했던지 간에 분명한 것은 나이 트 클럽의 주인은 기도의 능력을 믿고 있는데
교회의 교인들은 믿지 않고 있으며 기도의 능력은 완전히 부정하고 있군요. 그 내가 보기에
는 나이트 클럽 주인의 믿음이 더 훨씬 훌륭하다"고.
여러분 우리가 어떤 때 기도합 니다. 기도의 응답과 기도의 능력 을 믿지 않아요. 기도하면
서도 기 도의 능력을 믿지 않아요. 이게 얼마나 넌센스입니까.
오늘 본문에는 한 왕의 신하의 그 믿음이 여기에 잘 설명되어 있 습니다. 이 본문을 읽으면
서 느끼 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특별한 뜻이 계셔서 이 헤롯왕의 신하되는 이 지체 높
은 한 사람을 구원하시 기 위하여 믿음을 주시고 믿음을 성장케 하시고 믿음을 훈련시키시
고 믿음을 훌륭한 믿음으로 이렇게 완성시켜 가는 그 과정을 오늘 본 문에서 읽을 수 있습
니다. '이 모 든 사건의 역사는 하나님 자신이 주도하신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깨닫
게 됩니다. 아시는 대 로 이 왕의 신하가 예수님 앞에 나 왔습니다. 이 사람이 왕의 신하로
서 이 30세 밖에 안된 갈릴리, 바 로 같은 마을이거든요, 자기 동리 인데 가버나움, 이 동리
에 사는 이 청년 한 사람에게 가서 무릎을 꿇 게 되지 않습니까? 이걸 알아야 합니다. 그
아들이 병들지 않았다 면 어림도 없는 얘기입니다. 상대 도 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아들이 병 들었고 백방으로 애 썼 지만은 병이 낫지를 않아요. 그리 고 이 아들이 죽어 갑
니다. 정말 로 다급했어요. 아주 급하게 되니 까 이제 뭐 체면이고 지위고 할 것 없이 예수
님 앞에 나오게 된 겁니 다. 그러니까 이 아들이 병들었다 고 하는 이 사건은 매우 슬프고
고 통스러운 일이지만은 이 사건으로 인해서 이 지체 높은, 교만한 헤롯 왕의 신하 한 사람
이 예수님 앞에 가서 무릎을 꿇게 됐다―거기까지 인도했습니다. 이 병들었다고 하 는 사건
이 이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로 인도했다는 것이지요.
또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적지만은 소문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 헤롯왕의 신하가 소문을
들었어 요. 직접 본 것은 아니고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문둥병자도 고치고 열병환자
도 고치고 장님의 눈도 뜨게 한다더라―하는 소문을 들었어요. 이 소문에 대한 믿음이 중요
합니다. 이 소문을 듣고 '말도 안돼! 그럴 리가 없어. 뭐 갈릴 리 청년 그 목수의 아들 예수,
내 가 잘 아는데 없다. 뭐 그런 일없 다. 아니다.' 그랬으면 이 일은 끝나는 거예요. 그러나
소문에 대 한 믿음을 가졌어요. 이 사실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정보에 대 한 믿음, 전도
에 대한 믿음, 증거에 대한 믿음을 가졌어요. 그리할 때 에 이 사건 앞에서 이 같은 예수님
앞에 나오고자 하는 그런 결심과 믿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자, 이제 보니까 다급해 진 것 같아요. 거의 죽게 되었다 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시간적 으로 급하게 됐고, 인간의 방법이 다 끝났고 한계에 왔어요. 지금 시간을 다투어요.
이제 빨리 손쓰 지 않으면 그냥 죽을 거예요. 이 런 시간에 저는 조급한 마음으로 예수님
앞에 나와서 간구하게 됩니 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적어도 인간의 한계를 몇 가지 한계를
넘 어서야만 했습니다. 이것을 극복 하지 않고는 예수님 앞에 바로 설 수가 없었고, 예수님
의 그 주신 능 력을 수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첫 째가 감각적 한계를 극복해야 했습 니다.
소문은 경험이 아닙니다. 소문은 내 경험이 아니고 다른 사 람의 경험입니다. 내가 본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본 것입니다. 나는 못 보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꼭 보아야 되고 내가 경
험해야 된 다고 고집을 했다면 이 사람은 끝 까지 예수님 앞에 나올 수가 없었 을 것입니
다. 그런고로 잊지 말아 야 합니다. 표적을 믿는 믿음, 그 것은 내 자신의 경험 속에 없는
일 이지마는 우리는 그 증거를 받고 그 사실을 사실대로 믿을 수 있는 감각적 한계를 넘어
서는 믿음이 필 요합니다. 내가 보아야 되고 내가 손으로 만져야 되고…… 그렇게 생각해서
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늘나라에 대해서는 꼭 죽 어봐야만 알겠습니다. 죽음에 대
한 진리는 내가 죽기 전에 모르겠 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해 결할 수가 없겠지요.
그런고로 우 리는 이 감각, 내가 받는 감각의 세계를 초월하는, 넘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
다.
또 한가지는 공간적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는 대 로 지금 아들이 병들어 누
워있지 요. 아버지는 예수님께 찾아와서
"우리 집에 가십시다"
그래요. '빨 리 가서 지금 죽어 가는데 그 여러 말 하시지 마시고 빨리 가서 이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십시오'하고 부 탁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 공간적 인 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님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씀하십니다.
"네 아들이 나았느니라."
이것 참 답답한 일 입니다. 나았는지 안 나았는지 알 수가 없거든요. 자기 소원 같아서 는
예수님이 같이 가서 아들의 머 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이런 장 면이 있었으면 딱 좋겠는
데 예수님 은 아주 단호하게 잘라 말씀하십니 다. '네 아들이 나았느니라.' 갈 필요 없다 그
거예요. 이걸 어떻게 믿어야 합니까? 요새 말로 remote control이요. 원격조정을 하는 겁니
다. 이것을 믿어야 되는 데요. 우리는 가만히 보면은 이걸 믿지 못해요. 내 손에 있어야 하
고 바로 여기 있어야 하지 저기서 이루어지는 것을 믿지 못해요. 저 먼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 의 능력을 내가 여기서 믿지 못한 단 말이에요.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겁니다. 공
간을 초월하는 그런 믿 음을 가져야 했고요, 또 한가지는 시간적 한계를 초월해야 했습니다.
이 사람은 지금 어쨌든 예수님께서 즉시 내려오셔서 자기를 도와주시 기를 바랬는데 예수님
은 즉시 가시 지를 않았습니다. 예수님만이 가 지는 느긋한 시간이 있습니다. 여 유가 있습
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조급합니다. 아주 조급하고 답답 한데, 초조한데 예수님은 아주 여
유 있습니다. '네 아들이 나았느니 라.' 그것으로 끝입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에디슨 이라고 하는 발명왕을 여러분이 아 실 겁니다.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훌륭한 발명가인데 어느 날 어떤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데리고 와서
"얘가 유학을 떠난답니다. 그런고로 선생님께서 일생동안 마 음에 두고 좌우명으로 기억할
한 마디 귀한 말씀을 좀 주십시오."
에디슨이 일하다 말고 가만히 갑자 기 이 말을 듣고 생각하다가 시계 를 쳐다보더니 그 때
서야 시계를 쳐다보고 하는 말이 '시계를 보지 마라.' 한마디 했다고 합니다. 자 꾸 시계 쳐
다보는 거 좋은 거 아니 에요. 여러분 설교 듣다가 시계 보는 거 그거 좋은 거 아니에요. 무
엇인가 몰두하고 있는 동안 시계 쳐다보는 거 좋지 않아요. 여러분 누구하고 만나서 대화할
때 시계 보는 거 큰 실례입니다. 빨리 가 세요, 그만 하라고 하는 얘기거든 요.
여러분 우리가 시간을 여러 시 간을 가지고 있어요. 하나는 Calendar time입니다. Calendar
에 서 보는 시간. Physiological Time입니다. 생리학적 시간. 그 런가 하면 하나님의 시간이
있어 요. 내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 엄 청난 거리가 있는 것이에요. 나는 죽어 가는 사람이
요, 나는 나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초조합니다. 시 간이 얼마 안 남았어요. 그러나 하나님께
는 여유가 있습니다.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습 니다. 하나님의 큰 경륜 속에서
내가 가진 초조하고 답답한 시간 관념을 극복해야 되는 거예요. 하 나님은 더 큰 것을 더
영원한 것을 주시려고 해요. 내가 가지는 이 시간적인 잣대로 하나님을 비판해 서는 안돼요.
그런고로 시간적 한 계를 넘어서는 그 믿음이 필요합니 다.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이 애 굽
에서 나와서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에 갈 때 빨리 가고 싶어서요, 그거 뭐 부지런히 걸어가
면 아무리 늦어도 보름이면 갈 수 있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생각한 시간은 40 년이에요.
자 두 주일이면 갈 수 있는 것을 40년을 걸려서 갔어요.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 님
의 시간이요. 도대체 우리는 너 무나 초조해요. 모든 일에서 너무 조급하고 급하게 문제를
해결하려 고 들다가 실수를 많이 합니다. 급하게 부하려고 하다가 많을 것을 잃었습니다. 여
러분 알아야 합니 다. 하나님의 시간, 그 시간을 받 아들일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가 하면 경험적 한계를 또 넘어서야 됩니다. 내 경험에서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고정관
념을 버려야 됩니다. 이 답답하고 협소 한 이 생각이 이것이 다인 줄로 생 각해서는 안됩니
다. 내 의견 내 경험이 그거 하잘 턱없는 거예요. 아시는 대로 옛날 어른들, 뭐 저를 비롯해
서 다 그런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어쨌는데……"
그건 그 때 얘기지 지금 그렇게 고집 부린 다고 되나요 그게. 밀어 부치면 된다는 건 그건
옛날 얘기지요. 이젠 잠꼬대 같은 소리하지 마세 요. 다 지나갔어요 이제는. 그 때 는 그 때
요, 지금은 내 경험 내가 가진 경험 다 일단 잊어버려야 됩 니다.
성경에 보면요, '한나'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 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아이가 없어서 그것 때문에 모든 사람으로부터 수모를 받고 너무 억 울하고 분하
게 느껴서 하나님 앞에 아들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 소 박한 한 여인의 기도입니다. 얼마
나 열심히 몰두하고 기도했던지 얼 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어요. 이것 을 제사장이 보고
"이 젊은 사람이 대낮에 무슨 술을 마셨나"
하고 책 망을 합니다.
"아니올시다. 내 간 절한 소원 때문에 이러는 겁니다."
제사장이 마음이 감동을 해서 말씀 하시기를
"하나님께서 네가 구한 것을 들어주시기를 원하노라."
축 복기도를 해 주었어요. 이 말을 듣고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가서 먹고 다시는 얼굴에 수색이 없느니라."
굉장한 믿음이에요. 우 리 애 난다―이거야 두고 봐야 알 지. 열달을 지내봐야 알지. 또 낳
아 가지고도 무사히 살려는지 두고 봐야 알지. 어떻게 이 말씀을 믿 고 갑니까? 먹지고 않
고, 자지도 않고 슬퍼하던 여자가 이 한마디를 듣고 돌아가서
"평안한 마음으로 먹고 다시는 수색이 없었다"
그래 요. 그러니까 어느 의사는 그러대 요. 그 심리적 변화만 가지고도 아이를 가질 수 있었
을 거라고. 뭐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어쨌든 이 믿음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렇 게 마음에 고
통이 있다가 믿고 갔 어요. 평안한 것이에요. 결국은 사무엘을 낳게 되고 훌륭한 믿음의 어
머니로 우리 성경에 기록되고 있 습니다. 과거에 들어본 일도 없고 이런 경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서 믿고 나아 갈 때에 창조 전 역사를 이루게 됐 다는 말입니
다.
그뿐 아니라 인격적 한계를 넘 어서야 했습니다. 보세요. 오늘 이 장면을 자세히 들으세요.
헤롯 왕의 신하입니다. 그는 귀족입니 다. 이 귀족이 초라한 청년, 30세 의 청년 앞에 와서
무릎을 꿇습니 다. 어떤 의미에서 부탁 조로 얘 기 했지만은 그건 신하의 명령이기 도 합니
다.
"내 집에 오셔서 내 아이를 좀 돌보아 주세요."하는 요 청입니다.
"즉시 가 주시기를 바 랍니다."
이런 부탁이 있는데 이 제는 그게 아닙니다. 예수님의 명 령에 왕의 신하가 순종해야 될 시
간입니다.
"네 아들이 살았다."
끝. 자, 이 말을 듣고 가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이 엄청난 시간이 에요 지금. 여기서 한
마디 더 했 다고 생각합시다.
"낳고 죽고는 고사하고 좌우간 우리 집에 좀 갑 시다."
이러고 대들었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 왕의 신하로서 예수님의 명령
앞에 꼼짝 못하고 순종합니다. 자기의 처지, 자기의 경험, 자기의 신분 다 부정해 버리고, 다
비하 시키고 다 비우고 깨끗한 마음으로 순종하는 시간이에요.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입
니까.
"가라."
갑니다. 믿 고 갔어요.
성경에 보면 이 같은 얘기가 여 러 곳에 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 라는 사람에게 열두살 난
딸이 있 는데 병들어 죽었습니다. 죽어가 고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가서
"오셔서 내 딸을 좀 돌아봐 주세 요."
그러니까 그 땐 또 예수님이 가시겠다고 해요. 예수님과 같이 지금 일행이 회당장 야이로의
집으 로 가고 있는데 노상에서 야이로의 집에서 온 하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 하인의 말이
"딸은 이미 죽었습 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을 더 괴롭 히지 마세요. 뭐 이미 죽었는데 가고
오고 할 것 없이 그만 시간이 지났습니다."
바로 이 시간에 참 중요한 기로에 섰습니다. 예수님 을 한 의사로 본다면 여기서 끝난 겁니
다. 그러나 예수님을 메시아 로 생각한다면 이제 시작입니다. 바로 이 순간 그가 당황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믿음을 주십니다.
"믿기만 하라.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야이로는 아무 말 없이 순종하고 따라 들어갑니 다. 마침내 딸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경험
하게 됩니다. 자 이 순 간에 사람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모시고 가야 합니까, 말
아야 합니까? 그러나 모든 지식, 경험 다 버리고 야이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이
점을 생각 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기로에 설 때가 있습니다. 믿고 가야 하느냐, 아
니면 믿지 못하고 여기서 계속 머물러서 원망과 불평 을 해야 하느냐. 그걸 잊지 말아 야
합니다.
유명한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할 때 홍해 광야 길로
나와서 홍해를 직면하게 됩니다. 뒤에서 는 애굽군대가 따라오고 앞에는 홍 해가 있습니다.
독 안에 든 쥐와 같이 꼼짝 못하고 60만은 지금 죽 게 됐습니다. 그 때 하나님 앞에 호소하
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 에게 말씀하십니다.
"지팡이로 홍 해를 치고 건너가라."
자 이 말을 듣고 이제부터는 전설의 얘기입니 다. 전설대로 보면은 이 지팡이를 들고 홍해
를
"딱"
하고 쳤는데 안 갈라졌답니다. 그래서 모세가 당 황하고 있을 때에 옆에 있던 청년 이 말을
했습니다. 그를 아마 모 름지기 여호수아라고들 전합니다. 이렇게 말했답니다.
"방금 홍해를 치고 건너가라 하셨는데 왜 서 계 시는 겁니까."
물 속에 뛰어 들었 답니다. 그랬더니 쫙 갈라지더라 고. 난 그것이 마음에 들어요. 지 팡이
로 딱 치니까 갈라졌다 그 다 음에 들어갔다. 그것보다 치고 건 너가라 할 때에 치고 물 속
에 뛰어 드니까 갈라졌다 이거예요. 전설 에 있는 얘기입니다만은 저는 그 쪽에 아주 매력
이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은 감상 이 아니에요. 이것은 행동으로 옮 겨져야 되는 것이에요. 믿
고 건너 갈 때에 갈라지는 거예요. 아브라 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네 고향을 떠나라. 만민의 아버 지가 되게 하리라. 큰 민족을 이 루리라."
그런데 갈 바를 알지 못 하고 갑니다. 동으로 가라는 건지 서로 가라는 건지 몰라요. 갈 바
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익숙하고 평안한 고향을 떠 나서 이방 땅으로 나섭
니다. 나선 다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마."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이것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믿음입 니다. 믿고 가는 것입
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극복해야 될 것이 많아요. 여러분, 지금 우 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
입니까! 다 잃어버렸습니다. 구구하게 말 할 것 없이 다 잃어 버렸어요. 신 용도 지식도 우
리의 능력도…… 지금 어느 누구 하나 뭐 말들은 많 이 합니다만은 하나의 대책도 내세 우
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이제 가야합니
다. 행 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리할 때 에 기적을 보았습니다. 기적을 보 고 간 것이 아닙
니다. 믿고 갈 때 에 저 만큼에서 이적이 나타난 소 식이 들려옵니다. 그리고 그가 확 증을
얻고 기뻐하게 됩니다. 오늘 도 우리 앞에 있는 약속을 하나님 의 말씀만 믿고, 믿고 가는
긍정적 이고 적극적 행동이 있을 때에 이 제 저 먼 앞에서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 믿고 가는 믿음! (요 4:46-54) 설교 요약
본 설교는 요한복음 4장 46-54절 말씀을 바탕으로 참된 믿음의 능력과 그 믿음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다양한 예화와 본문 해석을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1. 💡 서두 예화: 기도의 능력에 대한 믿음
- 배경: 평화로운 마을에 나이트클럽이 개업하자, 교인들은 마을의 타락을 염려하며 철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 극단적인 기도: 일부 교인은 하나님께 나이트클럽을 불태워 달라고 구체적으로 기도했습니다.
- 사건 발생: 실제로 벼락이 쳐 나이트클럽이 불타버렸습니다.
- 법정 다툼: 나이트클럽 주인은 교회를 고소했고, 교회는 기도는 했지만 화재에 대한 책임은 부인했습니다.
- 재판장의 결론: 재판장은 "나이트클럽 주인은 기도의 능력을 믿고 있는데, 교인들은 믿지 않고 부정하고 있으니, 나이트클럽 주인의 믿음이 더 훌륭하다"고 판결했습니다.
- 핵심 메시지: 우리는 기도하면서도 정작 기도의 응답과 능력을 믿지 않는 모순을 지적하며 설교를 시작합니다.
2. 👑 왕의 신하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주도적 구원
- 본문 배경: 헤롯 왕의 신하(지체 높은 사람)가 아들의 병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온 사건은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믿음을 주시고, 성장시키시고, 완성시켜 가는 과정입니다. 이 모든 사건은 하나님 자신이 주도하신 역사입니다.
- 위기가 믿음으로 인도: 아들이 병들지 않았다면 이 지체 높은 신하가 갈릴리 청년에 불과한 예수님 앞에 와서 무릎 꿇을 리 없었을 것입니다. 아들이 병들어 죽어가는 다급한 상황이 체면과 지위를 버리고 그를 예수님께 나오게 했습니다.
- 소문에 대한 믿음: 신하가 예수님을 찾아온 또 하나의 근거는 소문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문둥병자, 열병 환자, 장님을 고치신다는 소문을 듣고, '말도 안 된다'고 부정하지 않고 그 소문을 사실로 받아들인 믿음이 그를 결단하고 예수님 앞에 서게 했습니다.
3. 🚧 참된 믿음이 극복해야 할 네 가지 한계
왕의 신하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훌륭한 믿음으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다음 네 가지 인간적인 한계를 극복해야 했습니다.
A. 감각적 한계 극복 (보지 않고 믿는 믿음)
- 현실: 소문은 내 경험이 아닙니다. 신하가 직접 보고 만진 것이 아닙니다.
- 극복: "내가 직접 보아야 하고, 경험해야 한다"는 고집을 버려야 합니다. 표적을 믿는 믿음은 내 감각의 세계를 초월하여 증거를 사실로 믿는 것입니다.
B. 공간적 한계 극복 (원격조정, Remote Control의 믿음)
- 현실: 신하는 예수님께 자기 집으로 함께 가서 아들에게 손을 얹고 고쳐주시기를 원했습니다.
- 극복: 예수님은 "네 아들이 나았느니라" 한마디만 하셨고, 신하의 요청대로 가지 않으셨습니다. 먼 곳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능력을 여기서 믿지 못하는 공간적 한계를 초월하여, 예수님의 말씀만으로 원격 치유를 믿어야 합니다.
C. 시간적 한계 극복 (하나님의 시간, Time Management)
- 현실: 아버지는 아들이 거의 죽어가는 상황이라 당장, 즉시 도와주시기를 바라는 조급하고 초조한 마음이었습니다 (Calendar Time/Physiological Time).
- 극복: 예수님은 여유로우십니다. 하나님은 더 크고 영원한 것을 주시려 하기에, 나의 초조한 시간 관념(잣대)으로 하나님을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보름이면 갈 광야 길을 40년 걸린 것과 같이,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시간(God's Time)**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에디슨의 "시계를 보지 마라" 예화 인용)
D. 경험적 한계 극복 (고정관념을 버리는 믿음)
- 현실: '내 경험', '내 의견'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협소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 극복: 한나의 예화: 아이가 없어 슬퍼하던 한나가 제사장의 "하나님께서 네가 구한 것을 들어주시기를 원하노라"는 축복기도 한마디를 듣고, "가서 먹고 다시는 얼굴에 수색이 없었느니라" 기록된 것처럼, 자신의 과거 경험이나 상식으로는 불가능하더라도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평안을 얻고 행동해야 합니다. 결국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E. 인격적 한계 극복 (순종하는 믿음)
- 현실: 왕의 신하(귀족)는 초라한 예수님께 '명령조로' 자기 집에 와서 고쳐달라고 요청했지만, 이제는 예수님의 명령에 신하가 순종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 극복: 신분, 경험, 지식 등 모든 자기 것을 비우고 예수님의 "네 아들이 살았다"라는 말씀에 꼼짝없이 순종하고 돌아가야 합니다.
- 야이로의 예화: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의사로 본다면 끝이지만, 메시아로 본다면 시작입니다. "믿기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모든 지식과 경험을 버리고 순종하여 딸이 살아나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 모세의 예화: 홍해 앞에서 "지팡이로 홍해를 치고 건너가라" 하셨을 때, 모세가 주저하자 (전설 속에서) 여호수아가 물에 뛰어들었을 때 홍해가 갈라졌다고 합니다. 믿음은 감상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져야 하며, 믿고 건너갈 때 갈라지는 것입니다.
- 아브라함의 예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나라"는 말씀에 익숙한 고향을 떠나 이방 땅으로 나섰을 때, 비로소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마"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4. 📢 결론: 기적을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믿고 갈 때 기적을 본다
- 현재의 우리: 우리는 신용도, 지식도, 능력도 다 잃어버렸고,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 믿음의 완성: 왕의 신하는 믿고 갔을 때 도중에 아들이 나았다는 소식을 듣고 확증을 얻었으며, 마침내 온 집이 믿게 되었습니다.
- 핵심: 기적을 보고 간 것이 아니라, 믿고 갈 때 저 앞에서 이적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아갈 때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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