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 노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 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 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 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0:15-18 모든 존재는 의미가 있고 이유가 있고 가치가 있기 마련입니다. 들풀 한 떨기, 땅 을 기어 다니는 벌레 한 마리, 하늘을 나는 새 한 마리도 존재 이유가 있습니다. 미 생물도 존재 이유가 있고 고등동물인 인간도 존재 이유가 있습니다. 1665년 영국 과학자 로버트 훅이 처음으로 세포를 관찰하고 셀룰라(cellula)라고 불렀습니다. 셀룰라(cellula)란 라틴어로 작은 방이라는 뜻입니다. 세포 한 개의 크 기는 일반적으로 직경이 0.3마이크로 미터가 된다고 합니다. 1마이크로 미터의 크기 는 102층 빌딩 꼭대기에서 땅 위를 기어가는 개똥벌레를 보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고 합니다. 가령 개똥벌레 크기를 2cm정도로 본다면 1마이크로 미터의 2만배가 된다 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작은 세포 하나하나가 모여 각양각색의 동식물을 만들어내는 것입니 다. 그 작은 세포를 20만배로 크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전자 현미경이 개발되었는데 그 현미경으로 세포 속을 들여다보면 세포막이 세포를 둘러 싸고 있고 세포 속에는 세 포질이 들어있고 그리고 심장부에는 세포핵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세포 하나도 존재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 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오늘도 왜 예수라야 하는가? 왜 예수 아니면 안 되는가를 성경말씀을 통해 발견해야 합니다. 1)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남산을 향해 소리쳐 보십시오. 남산은 대답하지 않습니다. 메아리만 되돌아 옵니 다. 메아리는 자기 소리지 남산의 소리가 아닙니다. 나무를 향해 불러보십시오 나무 는 말이 없습니다. 바위를 향해 외쳐 보십시오. 역시 응답이 없습니다. 길가는 사람을 불러 보십시오. 그 사람은 뒤돌아 보고 대답합니다. 이유는 살아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은 대답할 수 있는 것도 있고, 대답할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응답할 수 있는 것도 있고, 응답 할 수 없 는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손에 찰과상을 입은 사람이 도와 달라고 하면 소독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 도와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어가는 사람이 살려달라고 하면 그를 도와줄 수가 없는 것입 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언제 어디서 불러도 대답하시는 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 는 곧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 14:13을 보면 "너희가 내 이름으 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얼마 전 어느 여집사님으로부터 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부천에 있는 모 교회를 출석 하는 분이었습니다. 딸 하나를 낳은 후 10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없었습니다. 시댁의 기대도 그렇고 남편 역시 아들을 원하고 있었지만 임신이 불가능했습니다. 서울에 있 는 차병원을 다니며 불임치료를 받기로 하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시험관 아기를 낳기로 병원과 합의한 후 기다리며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충신교회 1부 예배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 설교 가운 데 "임신이나 해산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가능하면 인간적인 수단이나 방법으로 생명 을 만들거나 제거하지 말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자기 입장이 있는 터 라 그 날 그 말씀을 충격적으로 받아드렸습니다. 그는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 나님, 저는 시험관아기 시술 안 할래요. 기도로 낳게 해 주세요. 하나님 말씀 순종 할 테니까요. 저 아들 낳게 해 주세요. 아들 낳게 해 주시면 책임지고 키우겠습니 다."라고. 그는 남편을 설득하고 시험관 시술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계속했 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녀가 임신을 하게 되었고 옥동자 같은 아들을 낳아 지금 여 섯 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집사님은 6년 동안 이 기쁘고 감격스런 소식을 저에 게 전하기 위해 벼르다가 전화를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두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 나님이시며 우리 기도를 응답하신다는 것, 다른 하나는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수한 심정으로 받아들이면 축복과 응답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요 저술가였던 죠셉 파커 목사는 말했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지 안 하는지를 알려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 된다. 매일 하나님과 가까이 하 지 않는 사람의 얼굴에는 아름다움이 없다. 왜냐면 풍기는 인상이 기도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늘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에게서는 정원에 피어있 는 꽃향기보다 더 싱그런 향기를 맡을 수 있다"고.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매일 새벽 4시부터 5시까지 한시간 동안 기도했습니다. 6대 대통령 죤 퀸시 아담스 역시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어머니가 세 살 때 가르쳐 준 기도 말투로 기도를 했 습니다. 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도 기도의 사람이었고, 23대 대통령 벤자민 해 린슨 역시 기도하는 대통령이었습니다. 카터 대통령은 지금도 자기 고향 교회에서 주 일이면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기도하 는 사람들이었기에 존경받았고 국가 통치에 공헌했습니다. 왜 예수라야 합니까? 살아 계시면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기 때문입니 다.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기도해야 합 니다. 순종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 기도를 지금도 응답하고 계십니다. 2)풍요롭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0:10을 보면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 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잃 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고 했고, "불을 던지러 왔다"고 했고, "생명을 주로 오셨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0:10의 경우는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오셨다고 했습니다. 1798년 세계 인구가 10억을 넘어 섰을 때 영국의 경제학자였던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는 자신의 저서인「인구론」(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인구를 지구가 부양할 수 있는 한도를 넘 어설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의 예언대로 세계 인구는 1900년 초 15억, 1927년 엔 20억, 1974년에는 40억, 1987년에 50억, 1999년 10월 12일을 기점으로 60억 을 넘어섰습니다. 그러니까 100년만에 4배가 늘어났고 이런 속도라면 2050년에는 89 억을 넘어서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인구 증가가 가져오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자원감소, 식량부족, 물부 족, 전염병, 환경오염, 동식물 멸종, 경지면적의 감소, 밀림의 사막화, 해수면의 상 승과 수목위기 등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람은 많고 쓰고 먹을 것은 부족합니다. 그러나 우린 여기서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내가 온 것은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이 계시는 곳, 예 수님이 가시는 곳엔 언제나 차고 넘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먹을 것이 차고 넘쳤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면 5천명이 배부르게 먹고 열두 바구니가 남았고, 병든 사람이 고침을 받았고, 죽은 사람이 살아났습니다. 배고 픈 사람이 배불리 먹고 병든 사람이 고침받고 슬피 울던 사람이 웃고 절망하던 사람 이 희망을 되찾았습니다. 워싱턴에 본부를 둔 월드워치 연구소의 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의 지하수 수면이 점 점 낮아져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물이 점점 바닥이 나고 있다는 것입니 다. 유네스코의 발표에 다르면 현재 전세계적으로 25개 나라가 물부족 사태를 겪고 있지만 앞으로 2025년이 되면 34개국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는 생명의 물이다"라고 선언하시고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4:14). 무슨 뜻입니까? 예수를 믿으면 부족이 풍요로 변합니다.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부자 가 되게 해 주시기 때문에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우유나 모유를 넉넉하게 먹고 나면 방실거리며 놀거나 잠을 잡니 다. 그러나 젖이 모자라 배가 고프면 칭얼대거나 웁니다. 영혼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수를 멀리하고 말씀을 멀리하면 영적으로 배가 고픕니다. 그렇게 되면 칭얼거리고 불만이 쌓이고 그러다가 결국 죽고 마는 것입니다. 왜 예수라야 합니까? 내 영혼을 풍요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가 아니면 안됩니까? 우리를 넉넉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3) 자신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0:11을 보면 "나는 선한 목자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 리거니와"라고 했고, 마가복음 10:45을 보면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했 습니다. 수많은 성현들과 영웅들이 한 세상을 살다가 사라졌습니다만 그 누구도 자 신을 대속물로 아낌없이 내 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프랑스의 종교사학자요 문필가였던 에른스트 르낭(Joseph E. Renan)은 자신이 쓴 「예수의 생애」라는 책 속에서 "예수는 지금껏 살았던 인물들 중 가장 위대한 종교 적 천재였다. 그의 아름다움은 영원하며 그의 통치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예수 는 모든 점에서 다른 이와 구별되는 독특한 존재이며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인 물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을 보라」의 저자인 실리(John R. Seely)는 "소크라테스는 그의 사상 때 문에 역사에 남고, 예수는 그의 삶 때문에 역사에 남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어떤 삶입니까? 우리 대신 죽으신 삶입니다. 아낌없이 자신을 주신 삶 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 죄를 사하신 삶입니다. 왜 예수라야 합니까? 왜 예수입니까? 우리 기도를 응답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풍요롭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예수 이름을 부릅시다. 경배와 찬양을 드립시다. 예수, 예수, 오직 예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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