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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욥기 22장1-30 / 엘리바스의 세 번째 잘못된 조언- 고난이 죄의 증거다

by 【고동엽】 2022. 11. 13.
■2021-11-10(수)■
 
(욥기 22장)
 
1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2 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유익하게 하겠느냐 지혜로운 자도 자기에게 유익할 따름이니라
3 네가 의로운들 전능자에게 무슨 기쁨이 있겠으며 네 행위가 온전한들 그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느냐
 
4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문하심이 너의 경건함 때문이냐
5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
6 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7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아니하였구나
8 권세 있는 자는 토지를 얻고 존귀한 자는 거기에서 사는구나
9 너는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고아의 팔을 꺾는구나
 
10 그러므로 올무들이 너를 둘러 있고 두려움이 갑자기 너를 엄습하며
11 어둠이 너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하고 홍수가 너를 덮느니라
12 하나님은 높은 하늘에 계시지 아니하냐 보라 우두머리 별이 얼마나 높은가
13 그러나 네 말은 하나님이 무엇을 아시며 흑암 중에서 어찌 심판하실 수 있으랴
14 빽빽한 구름이 그를 가린즉 그가 보지 못하시고 둥근 하늘을 거니실 뿐이라 하는구나
 
15 네가 악인이 밟던 옛적 길을 지키려느냐
16 그들은 때가 이르기 전에 끊겨 버렸고 그들의 터는 강물로 말미암아 함몰되었느니라
17 그들이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떠나소서 하며 또 말하기를 전능자가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실 수 있으랴 하였으나
18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그들의 집에 채우셨느니라 악인의 계획은 나에게서 머니라
19 의인은 보고 기뻐하고 죄 없는 자는 그들을 비웃기를
20 우리의 원수가 망하였고 그들의 남은 것을 불이 삼켰느니라 하리라
 
21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22 청하건대 너는 하나님의 입에서 교훈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
23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면 네가 지음을 받을 것이며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하리라
 
24 네 보화를 티끌로 여기고 오빌의 금을 계곡의 돌로 여기라
25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화가 되시며 네게 고귀한 은이 되시리니
26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
27 너는 그에게 기도하겠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서원을 네가 갚으리라
28 네가 무엇을 결정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치리라
29 사람들이 너를 낮추거든 너는 교만했노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리라
30 죄 없는 자가 아니라도 건지시리니 네 손이 깨끗함으로 말미암아 건지심을 받으리라


(묵상/욥 22:1-30)


◆ 엘리바스의 세 번째 조언 - 옳은 말에 섞인 틀린 말


욥의 친구 엘리바스가 다시 나섰다. 세 번째다.
엘리바스의 말은 옳은 말로 시작한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유익하게 하겠느냐 지혜로운 자도 자기에게 유익할 따름이니라"(2)


이와 비슷한 말을 욥의 친구 엘리후도 했다.
"그대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그대의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욥 35:7)
참고로 엘리후는 욥의 세 친구와 달리 하나님께 인정받은 네 번째 친구다.


엘리바스는 옳은 말로 시작한 것이 분명했지만, 곧 곁길로 빠졌다.
전에는 욥에게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추궁했지만, 이제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욥의 죄를 열거한다.


그가 열거한 욥의 죄를 보라!
욥이 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아니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고아의 팔을 꺾었다는 것이다.


욥은 전혀 그런 적이 없다.
그러나 엘리바스는 '그러므로'(10) 라는 말로 욥이 받는 고난이 그러한 죄를 지었다는 증거라고 제시한다.


무서운 오해다.
이제 욥은 고난을 겪는다는 이유로 짓지도 않은 죄까지 지은 것이 되었다. 변명은 있을 수 없단다.


더구나 엘리바스는 욥이 하나님을 모독한 것으로 몰아붙인다.  멀쩡한 사람일지라도 주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몰아붙이고 정죄하면 두려워하고 주눅이 드는데, 지금 한없이 힘들고 연약한 욥을 이렇게 세 친구가 이구동성으로 몰아 붙이면 이 어찌 두렵고 떨리지 않겠는가?


18절은 개역개정성경 번역이 문맥과 어울리지 않아서 어렵다.
표준새번역이 적합하다.
"그들의 집에 좋은 것을 가득 채워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데도 악한 자들이 그런 생각을 하다니,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이 말은 엘리바스는 욥이 과거에 잘 살았던 것이 욥이 의로워서가 아니라 악인임에도 하나님께서 채워주신 것에 불과했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이젠 욥의 과거의 의까지 모두 부정당하고 있다.  어떤 잘못 하나로 내 과거까지 모두 부정당해 본 적이 있는가? 더구나 욥은 잘못조차 없었는데 친구에 의해서 과거가 부정당하고 있다.


엘리바스의 말은 지속된다.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21)
아멘이다. 얼마나 지당하고 아름다운 말인가?


"네 보화를 티끌로 여기고 오빌의 금을 계곡의 돌로 여기라"(24)
너무나 멋지고 훌륭한 설교다.
그러나 재산을 다 잃은 욥에게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티끌로 여길 보화 자체가 없다.
 
종종 상대방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멋진  말만 늘어놓으며 자아도취에 빠질 수 있다. 설교자들이 자주 빠지는 유혹이다. 설교자들은 종종 설교하는 수고보다 설교 들어주는 수고가 더 크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많은 설교자의 문제는 그의 말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데 있다.
 
설교자들이 주로 있는 카톡방에 초대되어 입장한 적이 있었다.
며칠 있어 보니 설교 풍으로 쓰인 옳은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아쉽게도 우리 주님의 아름다우심이나 하나님을 향한 감격의 노래는 전혀 볼 수가 없었다. 모두 이래야 합니다, 저래야 합니다로 가득 찬 율법적인 글들뿐이었다. 바울과 다윗은 만날 수 없었고 모세와 엘리바스만 있었다. 그것을 다 받을 만큼 내 믿음이 안되는지라 결국 빠져나왔다.
 
그런 글들이 못마땅하지만, 나도 무려 40년을 설교자로 살아오면서 엘리바스와 모세 노릇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긴장을 풀기만 하면 엘리바스처럼 뻔한 조언으로 선생 노릇 하려고 한다.
 
오, 주님 저를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엘리바스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너를 낮추거든 너는 교만했노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리라"(29)
 
사람들이 나를 낮출 때, 변명하지 말고 "맞습니다. 저는 교만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자가 진정으로 겸손한 성도다.  맞다.
엘리바스의 이 말 이면에는 자기들 말에 토 달지 말고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엘리바스는 욥의 말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욥에게는 자기 말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요하는 이 오만함은 어디서 왔을까? 교만은 자신과 무관하다는 이 착각은 어떻게 깨질 수 있을까?
 
사실 욥은 동방에서 최고의 의인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욥의 절반도 안 되는 자들이 욥이 고난 받는다는 이유로 죄인으로 몰아가고, 자기 말을 순순히 따라야 구원을 받는단다. 얼마나 건방진 말인가?  엘리바스는 욥이 교만하다고 정죄하지만, 사실은 엘리바스가 교만한 것이다. 엘리바스는 자기가 고난에 처하지 않았다고 지혜자요, 의인인양 행세하고 있으니 얼마나 기가 막히는가!
 
주님,
아는 체 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고질병을 고쳐주십시오.
인기 있는 메신저가 아니라 정직한 메신저가 되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사랑과 용서와 겸손을 배우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그것으로 형제들을 대하게 해주십시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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