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1월 23일]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5~30) - 곽선희 목사
https://www.youtube.com/watch?v=DhYM1_ZeGQ4
워낙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11장 25절로 30절 말씀 되겠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5절로 30절입니다. 신약성경 18면 되겠습니다. 신약성경 18면 마태복음 11장 25절부터 봉독하게 됩니다. 이 계시의 말씀을 봉독할 때에 다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제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총명한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아멘. 나폴레온 힐이라고 하는 유명한 교수님이 쓴 책에 그 책 제목이 특별합니다. 믿고 싶지 않은 나의 인생. 길지 않은 제목의 책을 썼는데 그 속에 두고두고 생각해야 할 중요한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신이 실패한 이유를 잘 알고 있다. 실패한 이유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완전한 변명을 가지고 있고, 논리적인 핑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실패한 그 자리에서 돌이키지 않는다. 이것이 실패하는 이유가 되는 대단히 심각한 조언을 주고 있습니다. 양이 편안할 수 있는 행복의 조건은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푸른 초장이 있어야 됩니다. 아무 때나 나가서 풀 뜯을 수 있는 초장. 그리고 목마를 때 물을 마실
수 있는 시냇물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밤에 맹수로부터 자기를 지켜줄 수 있는 양의 우리, 든든한 양의 우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한 목자가 있어야 된다. 그 목자를 따라가지 않습니까? 여기까지 생각하면 우리는 아 그렇다 인정합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은 양이 목자를 믿고 따라야 합니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것 같으나 가장 중요한 겁니다. 양이 목자를 전적으로 믿고 따라가야 한다. 그리고야 양이 평안할 수 있습니다. 평안의 절대 조건입니다. 제가 목사이기 때문에 주례를 많이 합니다. 뭐 결혼 주례를 많이 할 때 그
때마다 제가 가능하면 잊어버리지 않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결혼하는 날 행복하니까 행복한 시간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라. 감사하여야 행복할 수 있으니까 감사가 행복의 절대 조건이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러기 위해서 부모님께 감사하고, 그러기 위해서 오늘까지 길러 온 요람부터 대학까지 나를 키워준 선생님들에게 스승에게 감사하라.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배우자에게 나와 일생을 같이 해주겠다고 나섰으니까 아내에게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라. 이 고마운 마음이 감사한 마음이 되게 하면 행복한 것이다 라고 제가 결혼 주례 때마다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깜빡 잊어버렸지요. 은혜에 대한 고마움이요. 알게 모르게 나를 인도해 주고 가르쳐준 많은 스승들이 있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 일생의 모델이 누구냐, 표본이 누구냐. 거기에 운명이 걸려 있습니다. 내 노력과 지혜, 의지, 뭐 결단, 뭐 이런 얘기 하지만 알게 모르게 꼭 잊지 마세요. 지식은 편승입니다. 아는 사람이 100년을 걸려서 여기까지 왔다 해서 나도 또 100년 걸리게 됩니까?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타고 가 있는 자동차, 그 자동차가 여기까지 오는데 100년 걸렸답니다. 그러면 내가 100년 걸려야 차를 만들 수 있는 겁니까? 아니, 그 기술을 오늘 그대로 받아들이면
나는 1년 동안에 100년의 지식과 기술을 터득할 수가 있는 거란 말이에요. 지식은 편승입니다. 그뿐 아니라 내가 내가 개척하는 거 아닙니다. 내가 길 닦아 가는 거 아닙니다. 닦아놓은 길로 내가 가는 겁니다. 그러므로 절대적 성공의 비결은 모델입니다. 모델링. 누구를 표본으로 삼느냐, 어떤 모델을 택하느냐에 따라서 성공 실패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스운 얘기입니다만 제가 소망교회에서 목회할 때 소망교회 가까이 볼링장이라는 곳이 굉장히 시설이 좋았어요. 그래서 운동을 해야겠다 생각해서 가까우니까 늘 나가서 볼링을 했습니다. 그렇게 했는데 영 성적이 올라가지
않아요. 그거 뭐 항상 그래요. 그저 그랬는데 제가 언제 한번 뉴질랜드라고 하는 곳에 제자가 목회하는 곳인데 가서 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그랬는데 오후에 그 젊은 목사님이 "볼링 좋아하신다면서 볼링 치러 가시죠" 그 볼링 치러 갔어요. 그렇게 해서 같이 며칠 동안 오후에 볼링을 하는데 그분이 내게 좋은 선물을 하나 줬어요. 뉴욕의 유명한 조지라고 하는 세계적인 볼링 선수가 그 볼링 하는 장면을 녹화해서 그 비디오테이프를 만들었어요. 그걸 한 알에게 선물로 줬어요. 아, 지금 와서 들어보니까 감격해요. 이 세계적인 볼링 선수가 그 볼링 하는 장면을 잘 찍어서 보내줬는데 참 놀라운 것은 이걸 한번 보고 와서
치면 잘 돼요. 그래서 아침마다 아침마다 한 번씩은 보고 갔어요. 이렇게 이렇게 했더니 어느 사이에 제가요. 그 볼링 해보신 분 알지만 일생 동안 300점 한 번도 못 쳐볼 거야. 퍼펙트 게임이라 그러는데 300점을 내가 12번 쳤어요. 소문나서 볼링 선수라고. 여러분 어떻게 해서 했느냐? 간단해요. 그 모델 때문에, 그 표본 때문에, 그 테이프를 닳도록 보았어요. 또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이상하게 가면 또 가서 아무리 쳐도 잘 돼요.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표본입니다. 좋은 모델, 바른 모델, 확실한 모델을 선택하고 따라가면 쉽게 쉽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거란
말입니다. 제가 평양에 갔을 때에 홍 목사님이라고 하는 분을 만났습니다. 그 평양에 있는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는데 얼굴이 수척했어요. 저하고 아는 분인데 반갑게 인사했습니다만, 아 문제는 이분이 한국에서 목회를 잘하다가 미국 유학을 했어요. 유학해 가지고 그다음에 거기서 해방 신학, 해방 신학이라 할 수 있는 공산주의 신학입니다. 이거를 집중적으로 공부했어요. 그래 가지고 평양에 가서 대학에서 공산주의 신학을 가르친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왔다 갔다 하는 줄 내가 알고 있었는데 그 호텔에서 만났어요. 긴 얘기를 못 나눴습니다. 아마 나를 보더니 손을 딱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딱 한 마디 했습니다.
"내가 미국 유학 때 뉴욕 유니언에 가서 몰트만이라는 교수를 만나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몰트만을 만남으로 내 일생이 망가졌습니다." 제가 그 교수를 압니다. 혁명 신학의 대가입니다. 그분을 만나 가지고 심취해 된 가운데 소금만 만나지 못했어요. 그것을 후회하고 뉘우치는 눈물 흘리는 것을 제가 보았습니다. 딱 한 마디입니다. "제가 몰트만을 만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타락한 목사님 돼요. 여러분 내가 누구를 만나느냐, 누구를 존경하느냐, 누구를 따라가느냐. 내 운명이 거기 결정되는 것을 깨달아야 돼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약속해 주십니다. "내게 오라, 나를 따르라." 그리하면
세 가지를 약속했습니다. 쉼을 얻으리라. 쉽게 하리라. 짐이 가벼워지리라. 좀 더 큰 해석을 하면 "쉼을 얻으리라" 하는 말은 아나파우시스라고 하는 말인데, 아주 쉰다, 안식한다는 말입니다. 평화롭고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즉 마음의 평화를 말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면 마음이 평안합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했고. 그다음에 "쉽게 된다"는 말은 유스로스라고 된 말인데, 이 말은 영어로 smoothly라고 됩니다. 잘 풀린다는 말입니다. 일에 막히지 않고 잘 풀려지고 힘들지 않게 순조롭게 쉽게 흘러갈 수 있다. 그다음에 "짐이 가벼워진다" 하는 말은 "즐거워진다,
자유로워진다, 성공하고 후회가 없다, 자유로워진다, 짐이 가벼워진다"라고 세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정말 필요한 말씀입니다. 생각할수록 쉼을 얻으리라, 쉽게 되리라, 짐이 가벼워지리라. 그러면서 부르신 거 아닙니까? 그러면 여기에 조건이 있습니다. 주의 세 가지 조건으로 부르십니다. 첫째 오라 했습니다. 내게로 오라. 강한 뜻을 가집니다. "오라"는 말을 듣고 믿고 따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부정이 필요합니다. 내 생각, 내 경험, 나의 능력 포기해야 합니다. "내게로 오라." 내가 있는 곳을 떠나야
합니다. 떠나야 갈 수 있는 것. 예수님 마태복음 16장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제자가 되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세 가지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제자가 되려면 먼저 자기 자리를 떠나야 합니다. 자기 부정이 있어야 되는데, 전적하고 완전한 부정. 그리고 주님의 말씀만 바라보고 따르는 그런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라 했습니다. 간단한 말이요. "오라." 베드로에게 바다에 가서 물고기 잡는 어부들을 향해서도 "나를 따라오라." 그리하면 자기 있는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오늘까지 따라왔던 모든 철학, 모든 자기 어려운
짐을 싹 버리고 주님만 쳐다보고 주님의 말씀만 생각하며 주를 사랑하며 주를 따라야 합니다. "오라" 한 말씀 속에 엄청난 의미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묵상 종교가 아닙니다.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 종교입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행동을 가지고 자기 자리를 떠나서 주님과 함께 주님의 길을 가는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 멍에를 메고 배우라." 내 멍에, 이게 뭡니까? 아주 정겨운 말씀입니다. "내 멍에를 메라." 예수님의 멍에를 우리가 혼자 메라는 게 아닙니다. 이스라엘 이나 우리 한국이나 비슷해요. 밭을 갈 때 그 쟁기를 타고 소가 두 마리예요. 두 마리가 끌거든요. 두 마리가 한 멍에를 메고 가는 거예요. 상상해 보세요. 두 마리가 한 멍에를 메고 같은 방향으로 갑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내 멍에를 함께 메자. 그리고 나 아는 대로 가자. 내가 한 발짝 가면 너도 한 발짝. 내가 이쪽으로 가면 너도 이쪽으로. 내 멍에를 메고 따르자."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멍에를 불편할 때가 많아요. "예수님만 이 멍에를 메십시오. 나는 저쪽으로 가겠습니다." 이건 아니에요. 예수님이 가는 곳으로 나도 가는 거예요. 예수님이 빨리 가면 나도 빨리 가야 돼요. 예수님이 멎으면 나도 멎어야
합니다. 내 멍에를 함께 메자. 예수님 우리만 메라는 거 아니에요. 나도 메는 거다. 예수님, 내가 십자가를 지면 너도 십자가를 져야 한다 그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서 우리만 십자가를 지라고 해요? 함께예요, 함께. 예수님의 멍에를 같이 해야 된다. 그래야 제자가 된 것이다. 그뿐 아니라 세 번째는 "내게 배우라" 했습니다. "내게 배우라." 마데시스라는 본문은 마데테스입니다.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내게 배우라." 내 학생이 되라는 게 아닙니다. 내 제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마데테스라는 말은 제자라는 뜻입니다. 제자와 학생은 다릅니다. 학생은 졸업하면 그만이지만
제자는 일생 따라가는 겁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끔 제가 부흥회를 인도하러 가면 목사님들, 제가 가르친 제자들이 교인들 앞에서 저를 소개할 때 "목사님으로부터 제가 공부를 배웠습니다" 하는 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좋은 말은 "제가 목사님의 제자입니다." 학교에 다닐 때만 제자가 아니고 지금도 제자입니다. 저보다 나이 많은 목사님도 그래요. "한 번 제자는 일생 제자입니다. 평생에 일생 목사님을 존경하고 따릅니다." 이런 제자를 볼 때 정말 마음이 흐뭇합니다. 제자는 졸업이 없어요. 일생 본받고 일생 모델로 삼아 따라가는 거예요.
항상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요. 그리고 몸으로, 깨달음으로, 감격으로, 체험으로, 위험으로 배웁니다. 그래서 흔히 제자 도를 말할 때 토털 엑셉턴스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토털 엑셉턴스, 토털 컴플리먼트, 두 가지 위탁이 필요하며, 전적으로 위탁을 합니다. 전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여기에 "노"는 없어요. 어떤 말씀을 하시든지, 어떤 의미로 인도하시든지 토털 엑셉턴스. 전적으로 수용합니다. 항상 "아멘"입니다. 아멘 외에 다른 말이 없어요. 그것이 바로 제자요. 그뿐 아니라 토털 컴플리먼트,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험한 광야 길로 인도하시든지, 사막으로 인도하시든지, 홍해로 인도하시든지 상관없어요. 어떤 길로 가든지 디시플린이라는 말은 규율을 말합니다. 교과 과정입니다. 교과 과정. 여러분 교과 과정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내 제자가 찾아와서 그래요. "목사님 그 설교할 때마다 가끔 보니까 옛날에 북한에서 젊었을 때 노다지 광산 강제 노동 수용소에 가서 8개월 동안 고생했다는 얘기를 가끔 하시던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사실이지. 거짓이 어디 있습니까? 그저 인간 치욕이지." 그래서 내가 8개월 동안 좀 고생을 했지. 이거 다 듣고 나서는 그 제자가 하는 말이 그래요. "저는 포기하겠습니다." "왜요?" "목사님 같은 경험이 없잖아요." 아, 이건 큰 오해예요. 이건 실물 교육, 현장 교육이에요. 잊지 말아야 한다. 아무 고난의 길을 통하지 않고 진리를 알 수가 없는 것이고. 그 많은 시련과 환난이 있고 그리고 오늘 내가 이곳에 있는 거예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교과 과정, 그 시련을 수용할 수 있어야 됩니다. 토털 엑셉턴스. 그리하면 토털 컴플리먼트. 이것은 목숨과 내 명예를 다 그에게 위탁하는 것입니다. 어디로 인도하든지 나라는 말 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길을 만나든지 당황하지 않습니다. 다 감사함으로 사랑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것이 컴플리먼트입니다. 완전히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리고 나를 따르라. 내 멍에를 함께 메고 가자. 그리고 내게 배우라. 내게 배우라. 일생 공부하는 것입니다. 일생 배우는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또 깨닫고 또 고치고 또 바로 하고 또다시 결심하고. 여러분 주님의 부름을 들어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와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제 이 말씀을 그대로 믿고 따르게 그리하면 쉽고 그리하면 잘 풀리고
짐은 가벼워진다. 여러분 요새 유행하는 노래 가운데 젊은 사람들 **'마이 웨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이 프로그램이든 뭐든 '마이 웨이'라는 말이나 옵니다만 '마이 웨이' 포기하세요. **'His Way'**가 아닙니다. **'The Way'**를 따라야 예수님의 쉼을 얻을 것입니다.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자유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침도 저희들이 주님 앞에 나와 주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온전히 따르지 못한 것을
용서하시고, 완전히 믿고 순종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시고, 그 길에서 기뻐 감사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셔서 이제는 새로운 결단과 함께 주의 부름에 응답하여 주를 따르고 주의 제자들이 되어서 주를 배우고 주를 모방하고 주와 함께 하고 주와 멍에를 같이 하고, 아니 주의 뜻을 기뻐하고 찬양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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