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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사모하라

by 【고동엽】 2022. 10. 7.

약 4:6-8    

새로운 출발

하나님은 큰 문제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측면에서 도움을 주고자 하십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살면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이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의 2대 왕 다윗은 간음에다 부하를 일부러 죽음으로 내모는 등, 많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그에게 하나님은 자비를 내리시고 새로운 출발을 허락하셨습니다. 성경은 다윗을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합한) 사람” 이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과거의 실수에 머물지 않고 은혜를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이런 삶의 태도는 그의 글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시23:6) 한때가 아니라 평생 동안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기대했다는 점을 주목하하시기 바랍니다. 메시지 성경(The Message)에는 다음과 같이 번역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내가 어디를 가든지 쫓아다닌다” 그러니까 다윗은 “나는 하나님의 선하심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입에 겨우 풀칠만 하고 사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우리를 쫓아다니길 기대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럭저럭 사는 삶 보다는 차고 넘치는 하나님의 복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은혜를 받으면 좋기야 좋지. 하지만 나는 문제가 많아. 지금은 한창 어려울 때고 내 삶은 꼬여도 한참 꼬였어.” 하나님은 이런 고통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고 고비를 오히려 기회로 바꿔 주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가 나의 적들로 나를 이기지 못하게 만든다” 고 말했습니다.

성경에는 어려운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승리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노아는 인생의 최대 위기를 맞아서 어떤 모습을 보였습니까? 온 세상이 홍수로 멸망할 때가 가까워 하나님은 거대한 배를 짓고 동물들을 모으는 엄청난 일을 노아에게 맡기셨습니다. 노아에게도 포기하고픈 유혹이 있었을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노아를 사랑하셔서 새로운 은혜와 초자연적인 능력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노아 자신과 가족과 동물을 구원할 배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완성되었습니다.

룻은 또 어떻습니까? 남편은 죽고 극심한 가뭄까지 찾아오는 바람에 룻과 시어머니 나오미는 굶어죽을 판이었습니다. 그러나 룻은 좌절하지 않고 매일 밭에 나가 떨어진 곡식을 주웠습니다. 성경은 룻이 그런 고난의 한가운데서 밭의 소유자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말합니다. 소유자가 일꾼들에게 일러 룻을 위해 곡식을 충분히 흘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도 고난의 순간에 찾아오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래지 않아 룻과 나오미의 상황은 180도 바뀌어 가난 대신 풍요가 찾아 왔습니다.

요셉도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요셉은 어렸을 적에 애굽으로 팔려가 고난 받고 이용당했습니다. 그러나 남들에게 어떤 일을 당하든 어느 곳에 가든 간에 요셉은 변함없이 복을 누렸습니다. 심지어 보디발의 아내 때문에 강간 미수범으로 몰려 감옥에 갇혔을 때도 복은 그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풀려난 그는 애굽의 모든 농사 문제를 관장하는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많은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시련 속에서 찾아옵니다. 그러니까 홍수 속에서, 가뭄의 한복판에서, 학대 속에서 은혜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고통스런 순간을 지날 때, 이를테면 요셉처럼 부당한 대우를 당할 때나 룻처럼 재정적으로 흔들릴 때나 노아처럼 세계적인 위기에 봉착했을 때도 절대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런 때일수록 오리려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고 기대할 때 아무리 혹독한 시련의 광야에서도 은혜의 꽃은 피어나는 법입니다.

야고보 4:6을 보면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라고 했습니다. 이미 다양한 은혜를 주셨습니다만 더 큰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33을 보면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라고 했습니다.

큰 은혜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은혜의 차별성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와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은혜는 어려울 때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은혜인데 반해 하나님의 은혜는 독생자를 주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은혜입니다. 그 은혜야말로 사람이 베푼 은혜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더욱 큰 은혜인 것입니다.

둘째는 이미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지만 보다 더 큰 은혜를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주신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변덕스럽습니다. 기분과 감정을 따라 생각과 태도가 변합니다. 돕고 사랑하는 것도 변덕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가면 갈수록 더 깊어지고 풍성해 집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 큰 은혜인 것입니다. 오늘 더욱 큰 은혜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더 큰 은혜를 받으려면 맨 먼저 겸손해야 한다.

6절을 보면 "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아침인사를 Good morning이라고 하고, 유대인들은 샬롬이라고 인사하고, 한국 사람들은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진지 잡수셨습니까?” 라고 인사하고, 헬라 사람들은 ‘은혜’라고 인사했습니다. 인사말은 그 민족의 생활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변, 난리, 당파싸움전쟁으로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자고 나면 사약을 받거나 귀양을 가거나 죽는 일이 흔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만나면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라고 인사를 해야 했습니다.

그뿐입니까? 보릿고개, 흉년, 기근, 찌든 가난이 수천 년 계속되는 동안 유일한 희망은 배부르게 먹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특수계층을 뺀 일반대중들은 제때 밥을 찾아 먹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만날 때마다 "진지 잡수셨습니까?"라는 인사를 해야 했습니다.

"좋은 아침! 은혜! 샬롬! "이라는 인사말에 비하면 밤새 안 죽고 살아남았느냐? 라든지 아침밥이나 먹고 나왔느냐? 라는 우리네 인사말은 서글픈 정서가 서립니다. 본문은 교만한 자는 은혜를 받을 수 없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은혜는 좋은 것, 평안한 것, 행복한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모든 것이 좋고 행복하고 평안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지 못하면 그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교만이란 자신만만한 것, 머리를 치켜드는 것, 남을 얕잡아 보는 일련의 행위를 의미합니다.

주고받는 행위는 정해진 법칙이 있습니다. 언제나 상을 받는 사람은 상을 주는 사람 아래에 서야 합니다. 그것이 세계 공통의 공식입니다. 상을 받는 사람은 의자에 앉아서 받고 주는 사람은 땅바닥에 엎드려 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은혜를 받으려면 자세를 낮추고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고 받아야 합니다.

교만은 은혜를 가로막는 가시와 같다.

국가도, 지도자도, 교회도, 회사도, 가정도, 나도 너도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가로막고 차단하는 것이 바로 교만인 것입니다. 다윗도 교만했다가 무시무시한 진노를 받았습니다. 전염병으로 7만 명 죽었습니다(대상 21:14). 사무엘하 6장을 보면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 성으로 옮길 때 그 감격과 기쁨을 참지 못한 다윗이 힘을 다해 춤을 추었습니다(6:14). 그 모습을 창문을 열고 바라보던 다윗의 아내 미갈이 심중에 다윗을 업신여겼습니다(6:16). 미갈은 사울왕의 둘째딸로서 왕가의 예절과 법도를 익히며 자랐기 때문에 자기 딴으로는 고상하고 격조 높고 품위를 지닌 여자라고 목에 힘을 주며 사는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치며 제대로 씻지도 않고 흙바닥에서 뒹굴고 들판을 쏘다니던 베드윈 출신이었습니다. 자연히 미갈은 자기 남편 다윗에 대한 우월감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이 그 날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미갈은 다윗에게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날 그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라고 비아냥대며 남편을 멸시했습니다(6:20). 사무엘하 6:23을 보면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으니라 "고 했습니다.  

주경학자들은 이 구절을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합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미갈, 남편을 멸시하고 조롱하는 미갈의 태를 닫으셔서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해석하는가하면, 정떨어진 다윗이 그날 이후 미갈과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식을 낳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둘 다 일리 있는 해석이라고 봅니다.

교만은 은혜를 무너뜨립니다. 교만은 성공을 무너뜨리고 행복을 무너뜨립니다. 돈을 벌었더라도, 공부를 많이 했더라도, 성공했더라도, 얼굴이 예쁘더라도, 행복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교만에 빠지면 안 됩니다. 본문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겸손한 사람은 말씀을 통해 임하는 은혜도 받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은혜가 무엇인가를 깨닫고 은혜를 확인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교만한 사람은 말씀을 바라보기만 할 뿐 마음을 받아들이질 않습니다.

구경꾼이 있고 감동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은혜 역시 받아야지 구경하면 안 됩니다. 어느 주일아침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설교가 어스킨 목사가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스칼렛이라는 여자가 설교를 듣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여자는 그 다음 주일도 어스킨 목사의 설교를 듣기 위해 그 교회 예배에 참석해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일은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어스킨 목사를 만나 스칼렛이 물었습니다. "지난 주일엔 제가 큰 은혜를 받았는데 오늘은 왜 은혜를 받지 못했을까요? "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난 주일엔 당신이 예수님을 만나러 왔기 때문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즉 주님을 예배하기 위해 왔기 때문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나를 만나기 위해, 내 설교를 들으러 왔기 때문에 은혜를 못 받았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교만은 말씀을 가로막고, 축복을 가로막고, 성공을 가로막고, 은혜를 가로 막아버립니다. 교만을 물리쳐야 합니다. 요한 세바스챤 바흐는 1,100여곡 이상을 작곡한 작곡자로 유명합니다. 그는 죽기 몇 달 전까지 그리고 실명상태로 악보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작곡을 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코랄은 "주여 당신의 보좌 앞으로 나아갑니다. " 라는 것입니다. 이 곡을 끝으로 그는 눈을 감았습니다. 그는 "음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 "하나님은 경건한 음악과 함께 하신다 "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1,100여 곡이 넘는 작품 끝에 그는 항상 S.G.D라는 서명을 남겼습니다. 그것은 Soli Gloria Deo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바로 이러한 정신과 신앙과 삶이 은혜 받은 사람의 생활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세상 그 무엇이 쓰러뜨릴 수 있을까?

가장 암울한 순간에도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는 사람을 이 세상에 그 무엇이 쓰러뜨릴 수 있겠습니까? 현재의 상황이 아무리 회복 불가능해 보여도 하나님의 은혜를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님의 손짓 한 번이면 인생의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성경은 “다가오는 하나님의 은혜를 끝까지 소망하라” 고 말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계속해서 믿고 기대하고 선포하십시오. 항상 은혜를 소망하는 맘으로 살면 하나님은 반드시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주님께 소망을 둘 때 곧, 은혜를 부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장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사방에 절망스런 일 뿐이라도 기대하고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반드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기만 하면 회복은 순식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문제의 잿더미 속에서 금세 해답의 싹을 틔웁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두르고 있으면 그 어떤 적도 감히 우리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상황에 상관없이 단호히 선포하십시오. “ 하나님, 놀라운 복이 제게 오고 있음을 믿습니다.”

절대 하나님의 은혜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이런 은혜가 우리에게 있음을 온전히 이해하면 자신감 있는 삶이 펼쳐집니다. 그럴 때 감히 요구하지 못할 은혜를 사모하는 삶이 가능해집니다. 고난도 더는 고난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내면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특별대우를 느끼게 됩니다. 그 결과, 누구보다도 훌륭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도록 체험하게 됩니다.

출처/서정호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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