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제 일성
막 1:14-15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
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오늘 처음 교회에 오신 분들을 주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우리 교회에 참 잘 오셨습니다. 오늘 오신 분들 중에는 생전 처음으로 교회에 나오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동안 신앙생활을 중단하고 있다가 다시 나오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어떤 경우든 오늘 교회에 나오시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계신 것을 믿습니다.
미국의 갤럽연구소에서 미국인의 신앙의식에 대해서 조사를 했습니다. 미국인 불신자들에게 묻기를 “앞으로 교회에 나갈 의향이 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50%가 “교회에 갈 의향이 있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교회에 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교회에 가자고 인도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가지 못했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누군가 나를 이끌어 교회로 인도해 준다는 것도 은혜입니다. 신앙생활은 대부분 그렇게 해서 인도를 받게 됩니다.
교회는 평안해지고 복을 받기 위해서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가야 복음을 받고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 자녀로 은혜를 입고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최대의 관심사와 중대사는 멸망당하지 않고 구원받는 삶에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유명한 말씀을 했습니다. 성서학자들이 모여 토론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메시지 가운데 가장 근본이 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하고 토론하다가 물었더니 80%의 신학자들이 오늘 읽은 본문말씀을 선택하였다고 합니다.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입을 열어 전파한 제1성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다른 말씀 중에서도 더 비중이 있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는 오직 한 가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도 멸망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복을 받고 은혜를 입고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살리시는 영이십니다. 회복의 영이십니다. 은혜의 영이십니다. 그리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이 하나님을 모릅니다.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 그래서 멸망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다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멸망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이 하나님을 알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계1:3절을 보면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고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것이 최상의 복입니다. 오늘 처음 교회에 오신 분이 계시면 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알았으면 합니다. 오늘 네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하는데 이 말씀을 들으시고 마음에 깊이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영접하라”
하나님을 알고 사는 것이 복이고 은혜의 삶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내 마음에 영접하게 되면 내 삶 중심에 새로운 목적이 생기고 중심이 세워지고 뜻이 세워지고 가치관이 세워지게 됩니다. 그리고 높은 뜻, 높은 이상, 높은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인간은 하나님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아니면 인생의 모든 뜻, 목적, 가치관이 이 땅에 집중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살면 그 인생은 결국에 가서는 아주 초라하게 됩니다. 그것을 젊었을 때는 모릅니다. 인생이 다 늙고 힘이 빠진 후에야 알게 되는데 그래서 사람이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알렉스 콤포트(Alex Comfort)라는 정신과 의사가 찾아온 환자와 대화를 했습니다. 환자가 “나는 한 달에 만 오천 달러를 법니다, 앞으로 3만 달러만 벌면 걱정거리가 없겠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때 의사가 “수입과 당신의 행복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문제는 당신의 정신적인 자세가 문제입니다“하고 말해 주었습니다. 후에 이 환자가 너무 잘되어 한 달에 1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습니다. 그러자 더 좋은 차를 구입하고 더 큰집으로 이사하고 아이들을 모두 사립학교로 들여보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삶이 더 짜증이 났고 더 불평이 커졌고 싸움이 잦아졌고 더 욕심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심장마비에 걸려 죽을 고비를 겪다가 겨우 회복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그 고비를 겪는 동안 비로소 인생관이 달라졌습니다. 무서운 종말의 순간을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는 그까짓 돈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가서 꿈이 깨고 정신이 들게 됩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이렇게 허망합니다. 오늘 처음 나오신 분이 계시면 오늘 하나님을 마음으로 영접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오늘부터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인도하시고 주관하실 것입니다.
“소망을 가지라”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입니다. 우리 마음에 불평과 원망이 많으면 소망이나 희망이 사라지게 됩니다. 날씨가 맑아야 멀리 보이듯이 우리 마음이 맑아야 멀리 내다보며 살아가게 됩니다. 안개가 끼면 앞이 잘 보이지 않듯이 마음에 온갖 잡념이나 불평이나 원망이 가득하면 미래가 잘 안 보입니다. 그래서 자꾸만 불평이 나오고 원망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그런 소망이 없는 사람은 마치 안개 낀 것처럼 마음이 어둡습니다, 미래가 암담해집니다.
오늘 미국의 청년들이 78초마다 1명씩 자살을 기도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때로 자살을 하는데 그 자살하는 원인 중 가장 큰 원인이 희망의 결핍 때문이라고 합니다. 희망이 결핍되면 현재의 원망에서 헤어나질 못합니다. 그리고 미래가 안보입니다. 그런데 희망을 가진 사람은 오늘을 보지 않고 먼 내일을 바라봅니다. 그러니까 내일이 보입니다. 마음이 열려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열려 있다는 것이 참 중요한 일입니다.
어느 가난한 행상의 아들이 아버지를 따라 날마다 행상을 다닙니다. 날마다 불편한 잠자리에서 밤을 새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소년은 “여행자를 위한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하는 방법은 없을까”하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꿈입니다. 생각입니다. 그러다가 이 소년이 마침내 호텔을 생각해 내게 됩니다. 그래서 1924년 처음으로 호텔을 지은 것이 오늘은 세계로 뻗어나가게 됩니다. 그 소년이 힐튼호텔의 창시자 콘드라 힐튼이라는 사람입니다. 초라한 잠자리에서도 꿈과 생각과 뜻만 가지고 있으면 그런 꿈을 펼칠 수가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맑은 생각을 주십니다. 맑은 꿈을 주십니다. 맑고 신비한 영과 환상과 비전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꿈과 생각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시고 희망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사람 다 자살해도 그리스도인은 자살하지 않습니다. 자살이 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가장 중요한 소망과 희망과 미래가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소망 가운데 가장 큰 소망이 우리에게 주어진 천국입니다. 이 천국처럼 소중한 희망과 소망도 없습니다. 순교자들이 이 천국을 믿고 과감하게 목숨을 던져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그 하나님을 마음으로 영접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그 희망과 소망과 천국을 주실 것입니다. 믿음의 세계는 이렇게 신비한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라”
이 세상은 저절로 운영되는 세상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서 신비하게 지금 움직여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고 지금 여기까지 우리의 생명을 인도하셨습니다. 여러분이 태어나신 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앞으로 우연히 살아가다가 죽을 때도 우연히 죽을 것입니까. 좀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가수는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것이라고 했지만 인간이 왜 그렇게 값없이 떠돌다 구름 가듯이 그냥 가겠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상이 우연히 그냥 돌아가고 말겠습니까. 인간은 너무나 구체적이고 분명한 하나님의 섭리와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로우리(R, lowry)라는 분이 미국 남북전쟁 때 참전했다가 총을 맞고 숫한 시체들 속에 끼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정신이 몽롱해 지면서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로우리야 일어나라 내가 사망의 무덤에서 살아났느니라.” 그 음성을 듣는 순간 온 몸에서 힘이 솟아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게 되더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무덤 속에서 살아난 것입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건강을 회복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그때의 감격을 되살려 시를 쓰고 그 시에 곡을 붙였는데 그것이 오늘 여러분들이 애창하는 찬송가 150장입니다. “무덤에 머물러 예수 내 구주 새벽 기다렸네 예수 내주,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네, 어두움을 이기시고 나와서 성도들과 길이 다스리겠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이 같은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들의 지혜로 그때마다 깨닫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그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가서야 조금씩 알게 됩니다.
외항선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는 어느 군인출신 장로님이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분이 큰 뜻을 가지고 월남전에 참전하려고 배를 타고 월남에 갔는데 그런데 웬일인지 월남에 도착하자마자 그 시간부터 식욕이 떨어져 13개월 동안 밥 한 그릇을 먹지 못해 몸이 15kg 줄었다고 합니다. 연장근무 하면 무공훈장을 주겠다고 권유하는데도 체력 때문에 포기하고 그만 귀국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그때 마음이 몹시 불안했을 것입니다. 왜 그런지, 몸에 몹쓸 병이 있는 건 아닌지, 이러다 죽게 되는 것은 아닌지, 그때 우리 인간의 짧은 머리로는 온통 불안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런데 몸이 약해져서 할 수 없이 귀국선을 타고 부산항에 도착했는데 도착하자마자 그 순간부터 식욕이 돌아와 먹기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신비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분이 생각해 보니 너무 신기하더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루 후에 소식이 왔는데 어제까지 자기가 지휘하던 중대가 전투에 나갔다가 전원 전사했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분이 그때서야 식욕을 없애고 체중을 빠지게 해서 억지로 귀국하게 만드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래도 우리 인간이 우연히 살아가고 있다고 우길 수 있습니까. 우리 인간은 그런 값없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은 하늘을 나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입히시고 먹이시고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땅에 떨어지는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지금도 인도하시고 섭리하시고 계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하나님의 인도를 믿고 살아가기 때문에 오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사실은 담대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인의 삶이 얼마나 오묘한 삶입니까. 여러분, 이 신앙의 삶은 이 세상에서 복이나 받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그런 값싼 복을 받는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이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은 아주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나의 인생을 책임지고 인도하시는 그런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생활인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만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생활에 구체적으로 나타나시는 이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종말을 생각하라”
누구나 인생을 살면 마침내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가 있듯이 마지막 종말의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종말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삶에 엄숙함이 있고 자제력이 있고 절도가 있게 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 종말을 한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우리는 종말을 생각할 때 3가지 의미를 생각해야 합니다.
종말의 첫 번째 의미는 “전면중지”(full stop)입니다. 내가 살아가다가 어느 날 종말이 오면 나는 그 순간 나의 모든 스케줄이 전면중지 됩니다. 하던 일을 모두 멈추어야 합니다. 그것이 죽음의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죽음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이것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서학자들이 모여서 토론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메시지 가운데서 가장 근본이 되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그때 80%의 신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한 말이 오늘 읽은 본문 막 1:14-15절의 말씀이었습니다. “때가 찾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여기 “때가 찾고”라는 말은 심판의 때가 다가왔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선언만 하시면 우리는 그 순간 full stop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언젠가 그 때가 올 것입니다.
죽음의 두 번째 의미는 그동안 남겨놓은 나의 이미지를 결산하는 시간입니다. “멈춰라” 그래서 멈추었습니다. 그때 그 순간이 나의 인생이 평가를 받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장례식장은 살아온 나의 인생을 평가받는 장소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사람들이 나의 장례식장에서 무슨 말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했던 사람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평가를 받고 싶습니까. 우리 인생이 성공적으로 평가를 받는다면 그것은 나 자신의 영광이고 또 내 자손의 영광이기도 합니다. 가끔 “나 죽으면 그만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말은 참 무책임한 말입니다. 내가 매국노이면 나만 매국노가 되는 것입니까. 내 자자손손이 매국노 자손이라는 꼬리표가 붙습니다. 그래서 나는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죽음의 세 번째 의미는 심판받는 일입니다. 내가 일생을 마치고 죽으면 불가불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만나서 내 인생을 결산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무서운 일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함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결산은 사람들로부터 심판을 받는 일이지만 죽음 후에는 하나님 앞에서 받는 결산인데 그 결산은 행한 대로 받는 심판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다가 보면 불가불 그 때가 올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때를 위하여 준비하고 있으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제 일성으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때가 찾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 말씀에 은혜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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