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섭리
창 45:5-10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
신들 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삶에는 수없는 판단과 결정과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순간 판단해야 하고 결정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 결단을 잘못하면 큰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책 중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 찰스 M 쉘돈(Charles M. Sheldon)은 젊은 목사였습니다. 그는 실직자의 삶을 경험하기 위해서 길거리를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을 뼈저리게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경험한 일들을 기록해 책으로 엮었습니다. 이 책의 원제목은 “In His Steps”인데 실직자 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것들을 생생하게 기록하여 3천만부의 책이 판매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살아가다가 큰 문제에 봉착할 때 우리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런 순간들을 수도 없이 봉착하고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누드촌에 있는 교회로부터 설교부탁을 받고 큰 고민을 했습니다. “누드촌이면 모두 옷을 벗고 사는 곳인데 그러면 나도 옷을 벗고 가서 설교를 해야 하나”하고 고민하다가 마침내 “벗자, 그리고 예의를 지키자,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는데” 그리고 옷을 벗고 가기로 했습니다. 똑같은 시간에 누드촌교회 신자들도 고민하기를 “우리끼리는 벗고 살지만 목사님이 오시니 옷을 입어야 하나 그냥 벗어야 하나”하고 고민을 하다가 그들도 예의를 지켜 모두 옷을 입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는 참으로 우스운 일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저는 지방에서 목회할 때 그곳에 미군부대가 있어 교회 주변에 양공주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 나오는 양공주가 심방을 요청했습니다. 그 요청받고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는지, 막상 심방갈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결론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가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 사업이 번창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이런 경우를 만날 때가 자주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끊임없는 고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오는 고민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시험도 오해도 실망도 원망도 발생합니다. 그때 우리는 생각하기를 “이런 때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마음으로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본문은 요셉이 하나님에 대해서 잘 해석하고 아주 잘 설명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팔려 애급으로 노예로 팔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10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요셉이 애급나라의 재상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자기를 팔았던 형제들이 눈앞에 나타났고 형들은 요셉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때 요셉이 한 말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인식을 아주 정확하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이해하고 섭리를 이해하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심 알게 되어 시험 들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알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
여기 보면 하나님은 적당히 갑자기 즉흥적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천지창조하신 것을 보십시오. 정확하고 치밀하십니다. 출애굽을 위하여 80년 전에 모세를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세상에 오시는데 천 년 전부터 예고하시고 예언하시고 준비하시고 막상 오실 때는 마리아를 준비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는 나를 세상에 보내실 때에 적당히 한 것이 아니고 그렇게 준비되었다는 말입니다. 나를 세상에 보내시기 위하여 내 부모를 준비하셨고 환경을 준비하셨고 나에게 은사를 부여하여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나의 생애의 시간을 부여하셨고 삶의 목적을 부여하여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할 때 이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그런 하나님을 신묘막측하다.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의 하나님이시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우리들이 이점을 알면 우리의 인생에 대해서, 현재와 미래와 장래와 내 운명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그런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환경 조성
하나님이 요셉을 애급의 총리로 만드십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보면 참 묘하게 목적지를 향해 환경을 만들어 몰아가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 그물로 몰아가는 것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요셉은 12형제 중 유독 아버지로부터 총애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형제들로부터 미움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요셉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양을 치는 형들에게 찾아갔을 때 형들은 미운 동생 요셉을 애급의 상인들에게 팔아버렸습니다. 요셉은 졸지에 애급으로 노예로 팔려가고 여인으로부터 오해를 받아 감옥으로 들어갔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이 사람들은 요셉에게 분명 악연이었습니다. 형들도 여인도 다 원수들이었습니다. 참 재수 없는 인생입니다. 이 때 생각이 없으면 땅을 치며 통곡하고 삶을 저주할 일입니다. 이것은 재수 없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에게 환경을 주선하시는 작업입니다. 나 스스로는 그 길을 갈 수 없으니까 하나님이 섭리 중에 나를 그곳으로 보내시기 위하여 환경을 주선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형제들에게 팔려서 애급으로 가고 여인에게 누명을 쓰고 감옥으로 들어가고 감옥에서 바로의 관리를 만나게 됩니다. 그 관리가 자연스럽게 요셉을 바로에게로 인도하고 바로를 만난 요셉은 꿈을 해몽하고 재상의 자리로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그 길을 자세히 생각해 보면 과연 하나님은 신묘막측하십니다. 하나님은 길을 인도하실 때 기적같이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고 먼저 환경을 조성하고 사람을 만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목적하신 곳으로 사람을 도달하게 만드십니다. 내가 가는 길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알려면 환경을 조성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너무 조바심 할 필요가 없습니다. 조바심 한다고 되지도 않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10년을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조바심해야 소용없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때가 이룰 때까지 감옥은 싫지만 답답하고 억울하지만 환경이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곳입니다. 너무 일찍 나가도 너무 늦게 나가도 타이밍이 맞지 않습니다. 아주 적당한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때가 하나님의 때입니다. 오늘 기도를 오래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아직 시간이 남은 것입니다. 더 기다려야 합니다. 신앙의 삶에는 기다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침묵의 지혜를 배우고 하나님의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과정 중시
하나님의 도우심의 공통점을 보면 매사를 형통하게 도우심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기도 속에 너무 형통과 기적을 요구합니다. 형통과 기적이라는 말에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건너뛰게 해 달라는 요구가 들어 있습니다.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과정을 중시하십니다. 예수는 손오공처럼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10개월의 태중생활을 거쳐 태어나서 성장 과정과 청년기를 거쳐 공생애 3년을 사용하셨습니다. 그 3년을 위해서 700여 년 전에 그의 탄생이 예언되고 사람을 찾아 잉태되고 출생하고 성장하고 훈련받고 나서 비로소 3년간의 공생애 기간을 활용하셨습니다. 출애굽을 위해서 80년 전에 모세를 출생하게 하시고 40년간 왕궁에서 훈련받게 하시고 40년간 또 광야에서 모진 훈련을 받게 하신 후에 그 후에 모세를 40년 동안 활용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같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부도 안하고 합격해 달라는 금식기도는 무익한 기도입니다. 축구경기에서 이기게 해 달라는 기도 역시 철없는 기도입니다. 노력도 안하고 일확천금을 기대하는 기도들은 모두 하나님을 너무 모르는 응석입니다.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신다면 그 방법은 기적이 아니고 환경은 그대로 놓아둔 채 그 환경에서 눈을 뜨게 하셔서 앞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을 형통하게 하시려면 우선 빨리 출옥부터 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그를 누명 씌운 여인부터 징계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형통하게 하시는데 감옥도 환경도 그대로 입니다. 다만 하나님은 그 환경 안에서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고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하시고 사람들로 하여금 안내받게 하십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길을 가게 하셔서 마침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지까지 도달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기적 같은 일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부작용이 없습니다. 우리 부모들이 하나님과 다른 점이 그것입니다. 우리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큰 집을 그냥 사줍니다. 자기 수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유산을 그냥 줍니다. 자기 땀은 하나도 없습니다. 수고도 과정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부작용이 생기고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환경을 하루아침에 개선시키시는 분이 아닙니다. 환경은 그대로 있지만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도움을 받게 하시고 눈을 열어 보게 하시고 지혜를 발휘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형통을 위해서 기적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고 “나는 어디로 가야합니까,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를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점을 요셉이 걸어간 길을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내 생각과 다름
하나님은 내 생각과 다르십니다. 달라서 모르니까 때로 실망하고 불신하고 불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은 내 생각과 전혀 다르다는 것부터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꾸만 내 생각대로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우리들이 아이들이 떼쓰는 모습을 보는 것 같을 것입니다. 부모는 어린 아이들이 위험한 장난감을 사 달라고 할 때 떼를 써도 부모는 선뜻 사주지 않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들 모습이 그 모습 같을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결론이 나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지나온 날을 되돌아보면 과연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길이 더 좋았다는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을 주관하시고 역사도 우리의 생사도 주관하십니다. 그 주관하시는 방법이 내 방법이 아니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요셉이 애급으로 팔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 자리에서 얼마나 당황해서 눈물로 기도를 했겠습니까. 하나님은 내 기도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딴 길로 나를 몰아갔습니다. 그때 요셉이 내 뜻대로 안된다고 불평하고 삶을 포기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한나라의 재상이 되는 길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 길은 쉽게 가는 길이 아닙니다. 모세가 궁중생활을 하면서 영광을 맛보고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살인하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서 초라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그때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순간 인생을 실패했다고 자책하고 비관했을 것입니다. 그때 비관해서 자살을 했더라면 다 잃어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민족을 인도할 지도자로 만들기 위해서 훈련 차 광야로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요셉이 걸어간 길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렇게 인도하고 계십니다. 고로 우리 신앙인은 내일에 대해서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고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방법을 알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이 고백할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이 본문에 나와 있는 요셉의 고백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도 마소서, 하나님이 당신들의 생명을 구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나를 이곳으로 보내신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해석이 아주 정확한 해석입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요셉 자신이 마음이 평안했고 형들을 원수로 여겨지지 않았고 또 형들은 동생이 두렵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은 이렇게 모두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선을 행함
여기서 우리들이 할 일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꾸준히 선을 행하는 일입니다. 꾸준히 선을 행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요셉의 특징은 어디서나 선을 행한 일입니다. 아버지 집에서도 총애를 받았습니다. 그 말은 11형제들 보다 더 선을 행하였다는 말입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도 주인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옥중에서도 옥사장의 총애를 받고 사랑을 받았습니다. 죄수들이 자기의 꿈을 상담할 정도로 사랑의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내 꿈을 상의할 정도의 관계를 유지했다면 사랑을 많이 베풀었다는 말입니다. 그 결과 감옥에서 만난 관리가 복직하자 왕에게 요셉을 추천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마침내 총리자리까지 올라갔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행위를 통해서 그를 인도하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9절을 보면 “선을 행하면 때가 되면 거둔다”고 했습니다.
영국수상이었던 처칠이 어려서 동네 냇가에서 놀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하였는데 동네 또래 아이가 건져주어 겨우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가난한 아이였습니다. 처칠의 아버지가 그 아이의 소원이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말을 듣고 의학공부를 시켰습니다. 후에 그 아이는 의사가 되었고 처칠은 폐렴에 걸렸습니다. 당시는 약이 없어 폐렴이면 죽을 수밖에 없는 병이었습니다. 그때 친구의사가 “지금 폐렴 약을 연구 중인데 연구용 약이지만 투약해 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이 죽어가니 한번 투약해 보라고 해서 처칠이 살아났습니다. 그때 발견한 약이 “페니실린”이고 그 약을 발명한 의사가 “이안 프랭클린”입니다. 선을 행하면 반드시 응답이 오고 반드시 좋은 결과가 주어집니다.
어느 시골에 노인 집의 말 한필이 밤사이에 사라졌습니다. 온가족이 시름에 젖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이런 슬픈 일이 있느냐고 위로했습니다. 며칠 후 그 말이 돌아왔는데 짝을 하나 데리고 와서 갑자기 말이 두필이 되자 사람들이 세상에 이런 기쁜 일이 있느냐고 축하했습니다. 며칠 후 큰 손자가 그 말을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 불구가 되자 사람들이 또 위로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전쟁이 일어나 동네 청년들이 다 끌려갔는데 그 집 손자는 다리를 절어서 면제받자 또 사람들은 세상에 이런 좋은 일이 다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영원한 행복도 영원한 불행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 점을 실증해 준 사건이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요셉의 사건입니다. 그 사건을 직접 체험하고 요셉이 결론 내린 하나님에 대한 해석이 바로 오늘 읽은 본문말씀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나를 이곳에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고 하나님이십니다.” 이 고백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하고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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