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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 733회] - 오늘의 순교

by 【고동엽】 2022. 5. 23.
[오늘의 묵상 - 733회] - 오늘의 순교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20:24)
순교(殉敎)는 글자 그대로 자기가 믿는 신앙으로 인해 죽임을 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독교는 유난히 순교자들이 많이 나오는 종교입니다. 2천 년 전, 기독교가 출발한 당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순교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순교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선출한 일곱 집사가운데 한 분이었던 스테반입니다.(행 7:) 그리고 야고보를 비롯한 나머지 예수님의 제자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와 늦게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도 바울이 주후 64년 로마 제국의 네로 황제 때, 로마에서 각각 순교한 이래 순교의 피는 끊임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로마 제국의 중요한 시책(施策)인 황제의 상(像)에 절하는 것을 거부하고, 기독교도로 살인을 할 수 없어 군대 징집을 거부한 것 등의 이유로 신자들은 십자가형에, 굶주린 맹수의 먹이로, 혹은 목 베임을 당하여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초기 교회 아프리카의 교부(敎父) 터툴리안은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며, 교회는 순교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의 말과 같이 순교자의 피가 흐른 곳에 교회가 크게 성장한 것을 역사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313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합법적인 종교로 선언한 이후,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도들에 대한 박해는 끝났습니다. 그러나 6세기부터 중세로 접어들면서 이제는 교회가 소위 이단이라는 딱지를 붙여, 로마 교회에 불복하는 자를 화형에 처해 죽이는 잔혹한 짓을 감행하였습니다.
교회개혁기에는 가톨릭교도가 개신교도를, 개신교도가 가톨릭교도를, 그리고 가톨릭교도와 개신교도가 소종파 교인들을 이단으로 몰아 죽이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자행했습니다.
그런데 오늘같이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세상에서 아직도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순교를 당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받아 드리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특히 세계 여러 곳의 극단적 이슬람 단체들이 기독교인을 살해하는 만행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서 아프리카 중앙에 있는 나이지리아는 인구 절반이 기독교인들이며, 절반은 무슬림들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 무슬림 극단주의 단체들이 꾸준히 기독교인을 살해하는 만행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로마 가톨릭이나 개신교를 구분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죽이는 잔혹한 일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2021년 최소 4,650명, 2022년 첫 3개월 동안 거의 900명의 기독교인이 이들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최근(2022년 7.)에도 Kaduna주와 Edo주에서 가톨릭 사제 두 명이 괴한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보로고 신부는 23일 카두나-카치아로드에 있는 농장에서 습격을 당했으며, 오디아 신부는 Edo주 이카빅토 지역의 성 미카엘 가톨릭교회에서 납치 되었는데 두 신부 모두 주일 저녁에 살해되었습니다.
가톨릭 뉴스 기자는 나이지리아에서 신앙 때문에 살해당하는 기독교인이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많다고 말했습니다. 2022년 5월에는 신원 미상의 괴한들이 나이지리아 북부에 있는 가톨릭 교구를 습격해서 신부 두 명과 소년 두 명을 납치해 갔습니다. 같은 달, 서 아프리카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5세 미만의 어린이를 포함해서 최소 8명의 기독교인을 살해하고 여러 사람을 상해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미국 <Christian Post>에 따르면 미국인 John A. Chau는 2018년 11월,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된 부족 중 하나인 인도의 North Centinel 섬에 살고 있는 부족들에게 선교를 하러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Chau는 이튿날 원주민에 의해 살해당해 순교하였습니다. 그의 나이 26살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초개(草芥)처럼 여기면서 오지로 그리고 험지로 들어가는 선교사들과 전도인의 희생으로 복음은 누룩처럼 서서히 온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생명을 걸고 복음전선으로 나가는 선교사들을 위해 우리는 열심히 기도하고 물질로 지원해야 합니다. 안전한 나라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너무 나태하고 게을러, 라오디게아 교인들처럼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자신에게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중심을 보고 계십니다. 주님 앞에 이르는 날 부끄러움 없이 서기 위해 오늘도 우리에게 지워진 짐을 지고 앞을 향해 나아갑시다. 샬롬.
L.A.에서 김 인 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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