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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강 유다에 대한 심판(2:4-5)

by 【고동엽】 2022. 4. 16.

제9강 유다에 대한 심판(2:4-5)

 

2:4-5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그 열조의 따라가던 거짓 것에 미혹하였음이라 내가 유다에 불을 보내리니 예루살렘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유다는 이스라엘의 바로 남쪽에 위치해서 이스라엘과 서로 인접해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본시 이 둘은 한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통치하기 이전부터 이들 두 부족 사이에는 적대 관계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엘하 2장과 3장에 보면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이었던 사울이 죽은 뒤에 저들 사이의 알력은 표면화되었습니다. 곧 북쪽에서는 에브라임 지파를 중심으로 해서 사울의 아들이었던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우고, 또 남쪽에서는 유다 지파를 중심으로 해서 다윗을 왕으로 옹립하고 서로간에 대치했었습니다. 급기야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죽은 뒤에 통일 왕국은 결국 두 나라로 분리되고 말았습니다. 북쪽은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워 나라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했고, 남쪽은 르호보암을 왕으로 세워서 나라 이름을 유다라 칭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이 두 나라 사이에는 형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전쟁이 계속되었습니다. 우리가 대표적으로 몇 구절만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왕상12:18∼24) 르호보암 왕이 역군의 감독 아도니람을 보내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저를 돌로 쳐 죽인지라 르호보암 왕이 급히 수레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더라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더라 온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의 돌아왔다 함을 듣고 보내어 저를 공회로 청하여다가 온 이스라엘의 왕을 삼았으니 유다 지파 외에는 다윗의 집을 좇는 자가 없으니라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다 온 족속과 베냐민 지파를 모으니 택한 용사가 십팔만이라 이스라엘 족속과 싸워 나라를 회복하여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돌리려 하더니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솔로몬의 아들 유다 왕 르호보암과 유다와 베냐민 온 족속과 또 그 남은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저희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좇아 돌아갔더라
(왕상14:30)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으니라
(왕상15:7) 아비얌과 여로보암 사이에도 전쟁이 있으니라 아비얌의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이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왕상15:16∼21) 아사와 이스라엘 왕 바아사 사이에 일생 전쟁이 있으니라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에게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지라 아사가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 곳간에 남은 은금을 몰수히 취하여 그 신복의 손에 붙여 다메섹에 거한 아람 왕 헤시온의 손자 다브림몬의 아들 벤하닷에게 보내며 가로되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가 있고 내 부친과 당신의 부친 사이에도 있었느니라 내가 당신에게 은금 예물을 보내었으니 와서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서 저로 나를 떠나게 하라 하매 벤하닷이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 군대장관들을 보내어 이스라엘 성들을 치되 이욘과 단과 아벨벧마아가와 긴네렛 온 땅과 납달리온 땅을 쳤더니 바아사가 듣고 라마 건축하는 일을 그치고 디르사에 거하니라
(왕하14:8∼14) 아마샤가 예후의 손자 여호아하스의 아들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되 오라 우리가 서로 대면하자 한지라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유다 왕 아마샤에게 보내어 이르되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들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네가 에돔을 쳐서 파하였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니 스스로 영광을 삼아 궁에나 거하라 어찌하여 화를 자취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올라와서 유다 왕 아마샤로 더불어 유다의 벧세메스에서 대면하였더니 유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한지라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벧세메스에서 아하시야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을 헐고 또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금은과 모든 기명을 취하고 또 사람을 볼모로 잡아가지고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북방 이스라엘 왕국의 창건왕이었던 여로보암은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두었습니다. 그리고 레위 지파의 자손이 아닌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우고, 임의로 절기들을 정해서 지키도록 했습니다. 왕상12:28∼33의 말씀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왕상12:28∼33)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숭배함이더라 저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팔월 곧 그 달 십오일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 지은 산당의 제사장은 벧엘에서 세웠더라 저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팔월 십오일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또 그 뒤에 북방 이스라엘 왕국은 가나안의 종교였던 바알 종교를 영입했습니다. 선지자 엘리야 때 갈멜 산에서 있었던 여호와 종교와 바알 종교 사이의 피비린내나는 대결을 여러분은 잘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이런 등등의 이유로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는 점점 더 간격이 넓어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북방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다를 형제 국가라기 보다는 자기들과 적대 관계에 있는 나라라고 간주를 해왔습니다. 따라서 아모스가 유다에 대한 심판을 전했을 때 그의 메시지를 듣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남방 유다 왕국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유다의 특별한 죄가 무엇이었습니까?
(2:4) 이는 저희가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그 열조의 따라가던 거짓 것에 미혹하였음이라.
유다 백성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했다고 했습니다. 다른 이방 나라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의문(儀文)에 기록된 율법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진 율법, 곧 인간의 상식이나 양심에 의해서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될 비인도적이고 잔인한 행동을 저질렀기 때문에 저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삶의 지침서인 율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여호와께서 주신 율법을 멸시해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저들로 하여금 주변에 있는 이방국가들의 바르지 못하고 잘못된 관습들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지시해주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의 방식대로 살라고 그 기준으로서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들은 율법이 정해놓은 그 기준대로 살지 못하고, 율법이 없는 이웃 이방 나라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결국은 하나님의 율법을 멸시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율법의 대강령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셨지요? 그것은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옆으로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순종치 아니하고 이방 나라와 조금도 다를 바 없이 행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열조의 따라가던 거짓 것에 미혹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나오는 거짓 것을 우상으로 번역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거짓 것은 거짓된 가르침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문맥에 더 적합하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유다의 지도자들이 그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잘못된 교훈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모스가 의도하고 있는 바는 앞에 나오는 모압의 재판장이라든지 방백들이나 유다의 왕과 방백들이나 하나도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을 잘 인도해서 이웃을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와가면서 살도록 교도를 해야 할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3:12∼15 말씀을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사3:12∼15)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관할하는 자는 부녀라 나의 백성이여 너의 인도자가 너를 유혹하여 너의 다닐 길을 훼파하느니라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시도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장로들과 방백들을 국문하시되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은 너희 집에 있도다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뇨 주 만군의 여호와 내가 말하였느니라 하시리로다
여기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유다 백성들의 잘못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학대하고 짓밟은 죄, 이른바 사회적인 불의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와 같은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유다를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유다에 불을 보내리니 예루살렘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유다의 경우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내용이 다른 이방 나라들과 똑같습니다. 백성을 미혹하는 유다의 지도자들이 살고 있는 궁궐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해 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본문을 통해서 깨달아야 할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무엇인가 달라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할 귀한 사명이 우리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꺼져 버린 촛불이 된다든지 맛을 잃어 버린 소금이 된다든지 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마치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특혜를 저버림으로써 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우리들도 명목상의 신자가 되어 버린다면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 하나님의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많이 맡은 자에게는 오히려 많은 것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머리로는 이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미워하고 우리 마음속에 적대 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거역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의 마음속에 이웃에 대한 좋지 못한 감정이 있다면 호리라도 남김없이 다 떨쳐 버립시다. 땅에서 풀어야 하늘에서도 풀립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어 마땅한 나를 용서하시고 사랑해주신 것처럼 우리들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나를 섭섭하게 대하는 사람에게 그럴수록 더욱더 위해서 기도해주고 사랑을 베풀어줄 수 있는 귀한 마음이 불일 듯 일어나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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