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강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2:6-8)
2:6-8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부자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모든 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저희 신의 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
지금까지 아모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앞에 놓고서 이스라엘 주변에 있는 나라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전했습니다. 제일 먼저 다메섹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런 뒤에 가사, 두로, 에돔, 암몬, 모압,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에 바로 인접해 있는 유다에 대해서까지 하나님의 심판을 전했습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일곱 나라에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한 마디로 사회적인 불의였습니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될 비인도적이고, 잔인한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 결과 저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다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드디어 아모스는 공격의 화살을 이스라엘을 향해서 돌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적이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멸망한다는 메시지를 듣게 되었을 때 아무런 거부감도 없이 아모스가 전하는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모스의 메시지를 들으면서 그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뜨끔뜨끔한 찔림도 있었을 것입니다. 왜요? 저들도 사실은 똑같은 죄를 지어왔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아모스가 지금까지 계속해서 주변 국가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전한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이스라엘아! 너희들도 똑같은 죄를 짓고 있지 않느냐? 만일 너희들이 죄악된 길에서 속히 돌아서지 않는다면 너희들도 이웃 나라들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라!" 이것을 깨우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아모스가 따지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 우상숭배를 하느냐, 아니냐?" 이것을 묻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 백성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고, 이웃을 짓밟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우선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이 어떠한 구조로 되어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이웃 나라들과는 조금 그 양상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제일 앞에 나오는 서론적 전달자 양식은 똑같습니다. 두번째 등장하는 기소의 양식도 같습니다. 그런데 세번째 나타나는 죄목 부분이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확대되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서너 가지의 죄가 일곱 가지로 풀어서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웃 나라들에는 없는 내용이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삽입되어 있습니다. 9∼12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여러 가지 특혜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아모스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의 특혜를 베풀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들을 무시하고 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욱 벌을 받을 수밖에 없지요. 그 다음에 13∼16절까지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등장합니다. 일곱 가지의 죄목에 대응해서 하나님의 심판도 역시 일곱 가지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는 결론적 전달자 양식으로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두 가지의 특이성이 나타나지요? 첫째는 죄목이 일곱 가지로 자세하게 나타나고, 둘째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베풀어주셨던 축복들이 삽입되어 있다는 특징입니다.
그동안 아모스가 사용한 각 나라에 대한 고발형식을 우리가 간단하게 도표로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도표7. 각 나라에 대한 고발 형식
오늘 본문을 좀더 자세하게 살펴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서론적 전달자 양식이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주변국가들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가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것처럼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의 메시지도 역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하나님께서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웃에 있는 다른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분명하다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도 역시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이스라엘의 죄목이 일곱 가지로 자세하게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서 첫번째와 두번째 죄는 경제적인 죄입니다. 세번째, 네번째 죄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육체적인 학대입니다. 다섯번째 죄는 성적인 학대입니다. 마지막 여섯번째와 일곱번째 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취했던 육신적인 향락입니다. 한 가지씩 차례대로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 죄와 두번째 죄를 함께 읽어봅니다.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저희가"는 누구를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재판관으로 보는 견해요, 또 다른 하나는 빚쟁이, 곧 채주로 보는 견해입니다.
먼저 이것을 재판관으로 보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의인"이라는 단어가 법정 용어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암5:12을 보시기 바랍니다.
(암5:12)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여기에 보면 성문이라고 하는 말이 있지요? 옛날 구약 시대에 성문은 법정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의인, 또는 궁핍한 자는 다 똑같이 법정에서 사용하는 용어라는 것입니다.
2) 옛날 구약 시대에 재판관들이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했던 사례들이 성경에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조금 전에 우리가 읽었던 암5:12에서 그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몇 구절을 더 찾아봅니다.
(신16:18∼2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장과 유사를 둘 것이요 그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니라 너는 굽게 판단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너는 마땅히 공의만 좇으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얻으리라
(사1:23)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
(사3:14)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장로들과 방백들을 국문하시되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은 너희 집에 있도다
아모스가 여기서 말하는 것도 법정에서 의롭게 판결을 내려야 할 재판관들이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해서 의인에게 불리하게 판결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3) "신 한 켤레"라는 말이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권리를 양도하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도 역시 법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룻4:7∼10) 옛적 이스라엘 중에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 신을 벗어 그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의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 신을 벗는지라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고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취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그 이름이 그 형제 중과 그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함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느니라
위에서 보는 대로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를 가장 가까운 친족은 자기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해서 자기의 신발을 벗어서 보아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신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땅을 밟고 다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신을 벗어서 넘겨준다는 것은 내 소유의 땅을 당신에게 넘겨준다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소유권을 양도한다는 뜻으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4) "신 한 켤레"라는 말에 사용된 히브리어 단어는 입니다. 그런데 최근 카이로의 문서보관서(Cairo Genizah)에서 발견된 벤 시라흐(Ben Sirach)라고 하는 히브리어 외경에 이와 비슷한 단어로 이 사용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풀어본 결과 문맥적으로 뇌물이라는 말로 사용된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사용된 신 한 켤레라는 말이 본시는 뇌물이라는 단어였는데 서기관이 그것을 필사하는 과정에서 오기되었으리라고 추정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근거에 의해서 일부 사람들은 본문의 "저희"가 재판관을 가리킨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여기에서 "저희"라고 하는 말을 채주, 또는 채권자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본문에서 뇌물이라는 단어가 실제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2) 성경에는 빚 때문에 채주에 의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종으로 팔린 사례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몇 구절만 찾아봅니다.
(출21:7∼8) 사람이 그 딸을 여종으로 팔았으면 그는 남종같이 나오지 못할 지며 만일 상전이 그를 기뻐 아니하여 상관치 아니하면 그를 속신케 할 것이나 그 여자를 속임이 되었으니 타국인에게 팔지 못할 것이요
(레25:39∼40) 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품군이나 우거하는 자같이 너와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
(신15:12∼14) 네 동족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렸다 하자 만일 육 년을 너를 섬겼거든 제 칠 년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것이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공수로 가게 하지 말고 네 양무리 중에서와 타작 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왕하4:1)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 중에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채주가 이르러 나의 두 아이를 취하여 그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3) 아모스가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법부의 타락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힘 있는 자, 부자들이 가난하고 하층 계급에 있는 사람들을 부당하게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상의 두 견해 중 저 개인적으로는 본문에 기록된 "저희"를 후자, 즉 채권자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고 생각합니다. 지금 아모스가 고발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사법부의 타락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지배층에 있는 사람들이 피지배층에 있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학대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 당시의 강한 사람들은 힘없는 사람들을 적은 돈에 종으로 팔아넘기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결국 그 당시의 이웃 나라 두로와 가사가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들을 에돔에 노예로 팔아먹은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죄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죄목을 봅니다.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 번역이 조금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말의 "탐내다"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 단어는 구약 성경의 헬라어 역본인 {70인경}에 보면 "짓밟는다"는 말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보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알기 쉽게 제가 다시 번역을 해드리면 이런 뜻입니다. "가난한 자의 머리를 땅의 티끌 위에 짓밟으며." 힘없고 비천한 신분에 있는 사람들을 육체적으로 학대를 했다는 것입니다. 암5:11에도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너희가 가난한 자를 밟고." 육체적으로 학대하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한 줄 압니다.
네번째 죄목입니다.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여기서 말하는 겸손한 자는 앞에 나오는 의인, 궁핍한 자, 가난한 자와 같은 말입니다. 다른 단어를 사용해서 같은 말을 반복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대구법의 일종입니다. 똑같은 단어를 계속해서 사용하면 얼마나 지루하겠습니까? 그래서 비슷한 말로 똑같은 의미의 말을 표현한 것입니다. 길을 굽게 한다는 말도 역시 압박을 한다는 말입니다. 억압의 한 표현입니다.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을 손아귀에 넣고 좌지우지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물질적인 힘을 통해서, 또는 그 당시의 타락한 사법부의 힘을 빌려서 약자들의 길을 곧게 가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것입니다.
다섯번째 죄목으로 넘어갑니다. "부자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여기서 부자는 돈 많은 사람(富者)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父子)이라는 뜻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녔습니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동침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여기서 말하는 젊은 여인을 그 당시 바알 종교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종교적인 창기로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어로 종교적인 창기를 "크데샤"( )라고 하는 반면, 여기에서는 일반적인 젊은 여인을 뜻하는 "나아라"( )가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아모스가 공격하는 것은 종교적인 타락이라기보다는 성적인 타락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가련한 젊은 여인이 올바른 결혼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할 텐데 강한 자들이 연약한 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해서 결혼의 순수성을 깨뜨리고 그 여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정하신 신성한 결혼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더럽혀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 가운데 제7계명에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간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결혼의 순결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주신 계명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계명을 짓밟음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더럽히는 결과가 되고 만 것입니다.
여섯번째 죄목입니다. "모든 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모든"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 곳에서만 그와 같은 일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웠다고 했습니다. 구약의 율법에 보면 다른 사람의 옷을 전당 잡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전당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하나의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전당 잡은 옷은 해가 지기 전에는 돌려주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난한 사람들의 겉옷은 그들이 밤을 지낼 때 추위를 막는 이불이 되기 때문입니다.
(출22:25∼27)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나의 백성 중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이거든 너는 그에게 채주같이 하지 말며 변리를 받지 말 것이며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 몸을 가릴 것이 이뿐이라 이는 그 살의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한 자임이니라
(신24:12∼13) 그가 가난한 자여든 너는 그의 전집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 해질 때에 전집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의로움이 되리라
해 지기 전에 그것을 돌려주어야 가난한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추위를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자비와 의, 긍휼을 버린지 이미 오래되었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전혀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기들의 이익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누웠다"고 한 것은 잠을 자기 위해서 누운 자세라기보다는 유대인들이 음식을 먹을 때 취하는 자세라고 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향락을 위해서 가난한 자를 전혀 돌보지 않는 죄를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마지막 일곱번째 죄를 보시겠습니다. "저희 신의 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압박해서, 착취해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시면서 육체적인 향락을 누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시지요? 제단 앞에 와서 예물을 드리기에 앞서서 먼저 무엇을 하라고 하셨습니까? 형제 사이의 화목을 이루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예물을 드리면서 내 마음의 소원을 아뢰기에 앞서서 먼저 하나님의 소원인 형제와의 화목을 이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에게 원망 받을 만한 일이 있거든 먼저 그것을 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고, 형제로부터 원망받을 일을 하고 있으면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제물을 드린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맹목적인 종교 행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미6:6∼8 말씀을 한번 보십시다.
(미6:6∼8)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구약 시대에는 짐승을 잡아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 가운데 가장 값진 제물이 일년 된 송아지였습니다. 그 귀한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더 나아가서 천천의 수양과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으로, 엄청난 많은 양의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면 기뻐하실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 더 나아가서 내 몸의 열매, 내가 낳은 자녀를 하나님께 드리면 기뻐하실까? 그중에서도 가장 귀한 맏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소유인데 하나님께서 물질로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물질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외적인 열심, 형식적인 열심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미6:8을 다시 한번 읽어봅니다.
(미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세 가지를 요구하신다고 했습니다. 첫째로, "오직 공의를 행하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그의 자녀 된 우리들도 공의를 행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늘 올바르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두번째로, "인자를 사랑하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가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자녀 된 우리들도 하나님의 인자하신 마음을 우리 마음에 품고 이웃을 향해서 사랑을 베풀어가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세번째는,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하며 나아가는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교적인 열심은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을 원치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주변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입니다. 저들을 멸시하지 말고, 무관심하지 말고,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주라는 것입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 뜻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사랑의 마음을 품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부자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모든 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저희 신의 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
지금까지 아모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앞에 놓고서 이스라엘 주변에 있는 나라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전했습니다. 제일 먼저 다메섹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런 뒤에 가사, 두로, 에돔, 암몬, 모압,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에 바로 인접해 있는 유다에 대해서까지 하나님의 심판을 전했습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일곱 나라에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한 마디로 사회적인 불의였습니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될 비인도적이고, 잔인한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 결과 저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다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드디어 아모스는 공격의 화살을 이스라엘을 향해서 돌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적이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멸망한다는 메시지를 듣게 되었을 때 아무런 거부감도 없이 아모스가 전하는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모스의 메시지를 들으면서 그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뜨끔뜨끔한 찔림도 있었을 것입니다. 왜요? 저들도 사실은 똑같은 죄를 지어왔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아모스가 지금까지 계속해서 주변 국가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전한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이스라엘아! 너희들도 똑같은 죄를 짓고 있지 않느냐? 만일 너희들이 죄악된 길에서 속히 돌아서지 않는다면 너희들도 이웃 나라들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라!" 이것을 깨우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아모스가 따지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 우상숭배를 하느냐, 아니냐?" 이것을 묻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 백성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고, 이웃을 짓밟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우선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이 어떠한 구조로 되어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이웃 나라들과는 조금 그 양상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제일 앞에 나오는 서론적 전달자 양식은 똑같습니다. 두번째 등장하는 기소의 양식도 같습니다. 그런데 세번째 나타나는 죄목 부분이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확대되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서너 가지의 죄가 일곱 가지로 풀어서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웃 나라들에는 없는 내용이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삽입되어 있습니다. 9∼12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여러 가지 특혜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아모스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의 특혜를 베풀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들을 무시하고 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욱 벌을 받을 수밖에 없지요. 그 다음에 13∼16절까지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등장합니다. 일곱 가지의 죄목에 대응해서 하나님의 심판도 역시 일곱 가지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는 결론적 전달자 양식으로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두 가지의 특이성이 나타나지요? 첫째는 죄목이 일곱 가지로 자세하게 나타나고, 둘째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베풀어주셨던 축복들이 삽입되어 있다는 특징입니다.
그동안 아모스가 사용한 각 나라에 대한 고발형식을 우리가 간단하게 도표로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도표7. 각 나라에 대한 고발 형식
오늘 본문을 좀더 자세하게 살펴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서론적 전달자 양식이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주변국가들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가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것처럼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의 메시지도 역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하나님께서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웃에 있는 다른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분명하다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도 역시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이스라엘의 죄목이 일곱 가지로 자세하게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서 첫번째와 두번째 죄는 경제적인 죄입니다. 세번째, 네번째 죄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육체적인 학대입니다. 다섯번째 죄는 성적인 학대입니다. 마지막 여섯번째와 일곱번째 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취했던 육신적인 향락입니다. 한 가지씩 차례대로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 죄와 두번째 죄를 함께 읽어봅니다.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저희가"는 누구를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재판관으로 보는 견해요, 또 다른 하나는 빚쟁이, 곧 채주로 보는 견해입니다.
먼저 이것을 재판관으로 보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의인"이라는 단어가 법정 용어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암5:12을 보시기 바랍니다.
(암5:12)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여기에 보면 성문이라고 하는 말이 있지요? 옛날 구약 시대에 성문은 법정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의인, 또는 궁핍한 자는 다 똑같이 법정에서 사용하는 용어라는 것입니다.
2) 옛날 구약 시대에 재판관들이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했던 사례들이 성경에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조금 전에 우리가 읽었던 암5:12에서 그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몇 구절을 더 찾아봅니다.
(신16:18∼2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장과 유사를 둘 것이요 그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니라 너는 굽게 판단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너는 마땅히 공의만 좇으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얻으리라
(사1:23)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
(사3:14)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장로들과 방백들을 국문하시되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은 너희 집에 있도다
아모스가 여기서 말하는 것도 법정에서 의롭게 판결을 내려야 할 재판관들이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해서 의인에게 불리하게 판결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3) "신 한 켤레"라는 말이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권리를 양도하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도 역시 법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룻4:7∼10) 옛적 이스라엘 중에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 신을 벗어 그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의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 신을 벗는지라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고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취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그 이름이 그 형제 중과 그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함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느니라
위에서 보는 대로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를 가장 가까운 친족은 자기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해서 자기의 신발을 벗어서 보아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신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땅을 밟고 다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신을 벗어서 넘겨준다는 것은 내 소유의 땅을 당신에게 넘겨준다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소유권을 양도한다는 뜻으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4) "신 한 켤레"라는 말에 사용된 히브리어 단어는 입니다. 그런데 최근 카이로의 문서보관서(Cairo Genizah)에서 발견된 벤 시라흐(Ben Sirach)라고 하는 히브리어 외경에 이와 비슷한 단어로 이 사용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풀어본 결과 문맥적으로 뇌물이라는 말로 사용된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사용된 신 한 켤레라는 말이 본시는 뇌물이라는 단어였는데 서기관이 그것을 필사하는 과정에서 오기되었으리라고 추정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근거에 의해서 일부 사람들은 본문의 "저희"가 재판관을 가리킨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여기에서 "저희"라고 하는 말을 채주, 또는 채권자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본문에서 뇌물이라는 단어가 실제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2) 성경에는 빚 때문에 채주에 의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종으로 팔린 사례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몇 구절만 찾아봅니다.
(출21:7∼8) 사람이 그 딸을 여종으로 팔았으면 그는 남종같이 나오지 못할 지며 만일 상전이 그를 기뻐 아니하여 상관치 아니하면 그를 속신케 할 것이나 그 여자를 속임이 되었으니 타국인에게 팔지 못할 것이요
(레25:39∼40) 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품군이나 우거하는 자같이 너와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
(신15:12∼14) 네 동족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렸다 하자 만일 육 년을 너를 섬겼거든 제 칠 년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것이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공수로 가게 하지 말고 네 양무리 중에서와 타작 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왕하4:1)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 중에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채주가 이르러 나의 두 아이를 취하여 그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3) 아모스가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법부의 타락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힘 있는 자, 부자들이 가난하고 하층 계급에 있는 사람들을 부당하게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상의 두 견해 중 저 개인적으로는 본문에 기록된 "저희"를 후자, 즉 채권자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고 생각합니다. 지금 아모스가 고발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사법부의 타락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지배층에 있는 사람들이 피지배층에 있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학대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 당시의 강한 사람들은 힘없는 사람들을 적은 돈에 종으로 팔아넘기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결국 그 당시의 이웃 나라 두로와 가사가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들을 에돔에 노예로 팔아먹은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죄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죄목을 봅니다.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 번역이 조금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말의 "탐내다"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 단어는 구약 성경의 헬라어 역본인 {70인경}에 보면 "짓밟는다"는 말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보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알기 쉽게 제가 다시 번역을 해드리면 이런 뜻입니다. "가난한 자의 머리를 땅의 티끌 위에 짓밟으며." 힘없고 비천한 신분에 있는 사람들을 육체적으로 학대를 했다는 것입니다. 암5:11에도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너희가 가난한 자를 밟고." 육체적으로 학대하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한 줄 압니다.
네번째 죄목입니다.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여기서 말하는 겸손한 자는 앞에 나오는 의인, 궁핍한 자, 가난한 자와 같은 말입니다. 다른 단어를 사용해서 같은 말을 반복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대구법의 일종입니다. 똑같은 단어를 계속해서 사용하면 얼마나 지루하겠습니까? 그래서 비슷한 말로 똑같은 의미의 말을 표현한 것입니다. 길을 굽게 한다는 말도 역시 압박을 한다는 말입니다. 억압의 한 표현입니다.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을 손아귀에 넣고 좌지우지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물질적인 힘을 통해서, 또는 그 당시의 타락한 사법부의 힘을 빌려서 약자들의 길을 곧게 가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것입니다.
다섯번째 죄목으로 넘어갑니다. "부자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여기서 부자는 돈 많은 사람(富者)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父子)이라는 뜻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녔습니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동침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여기서 말하는 젊은 여인을 그 당시 바알 종교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종교적인 창기로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어로 종교적인 창기를 "크데샤"( )라고 하는 반면, 여기에서는 일반적인 젊은 여인을 뜻하는 "나아라"( )가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아모스가 공격하는 것은 종교적인 타락이라기보다는 성적인 타락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가련한 젊은 여인이 올바른 결혼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할 텐데 강한 자들이 연약한 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해서 결혼의 순수성을 깨뜨리고 그 여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정하신 신성한 결혼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더럽혀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 가운데 제7계명에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간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결혼의 순결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주신 계명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계명을 짓밟음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더럽히는 결과가 되고 만 것입니다.
여섯번째 죄목입니다. "모든 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모든"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 곳에서만 그와 같은 일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웠다고 했습니다. 구약의 율법에 보면 다른 사람의 옷을 전당 잡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전당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하나의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전당 잡은 옷은 해가 지기 전에는 돌려주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난한 사람들의 겉옷은 그들이 밤을 지낼 때 추위를 막는 이불이 되기 때문입니다.
(출22:25∼27)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나의 백성 중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이거든 너는 그에게 채주같이 하지 말며 변리를 받지 말 것이며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 몸을 가릴 것이 이뿐이라 이는 그 살의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한 자임이니라
(신24:12∼13) 그가 가난한 자여든 너는 그의 전집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 해질 때에 전집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의로움이 되리라
해 지기 전에 그것을 돌려주어야 가난한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추위를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자비와 의, 긍휼을 버린지 이미 오래되었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전혀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기들의 이익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누웠다"고 한 것은 잠을 자기 위해서 누운 자세라기보다는 유대인들이 음식을 먹을 때 취하는 자세라고 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향락을 위해서 가난한 자를 전혀 돌보지 않는 죄를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마지막 일곱번째 죄를 보시겠습니다. "저희 신의 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압박해서, 착취해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시면서 육체적인 향락을 누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시지요? 제단 앞에 와서 예물을 드리기에 앞서서 먼저 무엇을 하라고 하셨습니까? 형제 사이의 화목을 이루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예물을 드리면서 내 마음의 소원을 아뢰기에 앞서서 먼저 하나님의 소원인 형제와의 화목을 이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에게 원망 받을 만한 일이 있거든 먼저 그것을 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고, 형제로부터 원망받을 일을 하고 있으면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제물을 드린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맹목적인 종교 행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미6:6∼8 말씀을 한번 보십시다.
(미6:6∼8)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구약 시대에는 짐승을 잡아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 가운데 가장 값진 제물이 일년 된 송아지였습니다. 그 귀한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더 나아가서 천천의 수양과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으로, 엄청난 많은 양의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면 기뻐하실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 더 나아가서 내 몸의 열매, 내가 낳은 자녀를 하나님께 드리면 기뻐하실까? 그중에서도 가장 귀한 맏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소유인데 하나님께서 물질로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물질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외적인 열심, 형식적인 열심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미6:8을 다시 한번 읽어봅니다.
(미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세 가지를 요구하신다고 했습니다. 첫째로, "오직 공의를 행하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그의 자녀 된 우리들도 공의를 행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늘 올바르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두번째로, "인자를 사랑하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가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자녀 된 우리들도 하나님의 인자하신 마음을 우리 마음에 품고 이웃을 향해서 사랑을 베풀어가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세번째는,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하며 나아가는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교적인 열심은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을 원치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주변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입니다. 저들을 멸시하지 말고, 무관심하지 말고,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주라는 것입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 뜻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사랑의 마음을 품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8강 모압에 대한 심판(2:1-3) (0) | 2022.04.16 |
---|---|
제9강 유다에 대한 심판(2:4-5) (0) | 2022.04.16 |
제11강 참 유대인 (2:25-29) (0) | 2022.04.16 |
제12강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2:13-16) (0) | 2022.04.16 |
제13강 사랑과 고통은 정비례한다(3:1-2) (0) | 2022.04.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