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강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2:13-16)
2:13-16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같이 내가 너희 자리에 너희를 누르리니 빨리 달음박질하는 자도 도망할 수 없으며 강한 자도 자기 힘을 낼 수 없으며 용사도 피할 수 없으며 활을 가진 자도 설 수 없으며 발이 빠른 자도 피할 수 없으며 말타는 자도 피할 수 없고 용사 중에 굳센 자는 그날에 벌거벗고야 도망하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오늘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3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행하신 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4∼16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벌의 결과가 일곱 가지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내리신 벌의 내용을 살펴봅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벌은 다른 이웃 나라들과 다르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표현대로라면 어떻게 되어야 하겠습니까? "내가 이스라엘에 불을 보내리니 사마리아 궁궐들을 사르리라." 이와 같은 양상이 되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벌은 완전히 다른 식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13절을 읽어봅니다.
(2:13)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같이 내가 너희 자리에 너희를 누르리니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라고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양이 많다는 뜻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뜻이겠습니까? 아마도 후자의 의미가 더욱 문맥에 적합하리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벌이 그만큼 무겁다는 의미로 보는 것입니다.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땅 위를 혹독하게 짓밟고 지나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벌이 그만큼 가혹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벌이 너무나도 혹독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벌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혀 피할 수 없음을 의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누른다"는 말에 사용된 히브리어 는 오히려 "쪼갠다, 가른다"는 말로 번역을 하는 것이 문맥에 더 적합한 줄 압니다. 여러분, 생각을 해보세요. 곡식 단을 가득 실은 수레가 보드라운 흙 위로, 또는 진흙 위로 지나가면 어떻게 됩니까? 바퀴자국이 나지요? 땅이 바퀴자국에 의해서 갈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벌하셔서 이스라엘이 살고 있는 그 땅을 쪼개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땅을 "쪼갠다"라고 할 때에 여러 가지 자연 재해 가운데서 무엇이 연상되십니까? 예, 지진이지요. 하나님께서 지진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벌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모스서에 보면 지진을 묘사하고 있는 말이 여러 번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미 1:1에서부터 나왔지요?
(암1:1)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의 지진 전 이 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묵시 받은 말씀이라
아모스가 이 예언을 하고 나서 2년 뒤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스라엘을 지진으로 치셨다는 것입니다. 또 지진을 묘사하고 있는 몇 구절을 더 찾아보겠습니다.
(암6:11) 보라 여호와께서 명하시므로 큰 집이 침을 받아 갈라지며 작은 집이 침을 받아 터지리라
(암8:8) 이로 인하여 땅이 떨지 않겠으며 그 가운데 모든 거민이 애통하지 않겠느냐 온 땅이 하수의 넘침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같이 뛰놀다가 낮아지리라
(암9:1) 내가 보니 주께서 단 곁에 서서 이르시되 기둥 머리를 쳐서 문지방이 움직이게 하며 그것으로 부숴져서 무리의 머리에 떨어지게 하라 내가 그 남은 자를 칼로 살육하리니 그중에서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며 그중에서 하나도 피하지 못하리라
(암9:5) 주 만군의 여호와는 땅을 만져 녹게 하사 무릇 거기 거한 자로 애통하게 하시며 그 온 땅으로 하수의 넘침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같이 낮아지게 하시는 자요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진을 보내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지진이 자연적으로 일어난 것입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13절에서 "내가"라고 하는 대명사가 아주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기 위해서 지진을 일으키신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자기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서 보응으로써 벌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가 어떠합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지진을 내린 결과가 어떠합니까? 피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아무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지진의 결과로 완전히 황폐해지고 말 것입니다. 14절 이하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일곱 가지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7이라는 숫자는 무엇을 상징한다고 했습니까? 완전수라고 했습니다. 그 정도만 설명하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래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7이라는 완전수로서 더욱 강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 여기에 보면 적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지금 이스라엘을 치는 이스라엘의 대적이 누구입니까? 13절에 누가 치시는 것입니까? "내가"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십니다. 따라서 대적에 대한 설명이 달리 나와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무기가 무엇입니까? 지진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전쟁에서 그 어떠한 용사도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로 지나가시는 그날에 이스라엘 군대는 완전히 멸절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피할 수 없다는 말이 세 번이나 반복되어 있습니다. 14절 끝 부분에 보면 "용사도 피할 수 없으며"가 나옵니다. 그 다음에 15절을 보면 "발이 빠른 자도 피할 수 없으며"라고 했고, 세번째는 "말타는 자도 피할 수 없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자기의 생명을 건질 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또 "도망할 수도 없으며," "힘을 낼 수도 없으며," "설 수 없으며" 등의 강한 말들을 반복해서 사용하여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그 어떤 피난처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튼 오늘 본문 속에서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강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혹독한가 하는 것을 일곱 가지로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빨리 달음박질하는 자, 강한 자, 용사, 활을 가진 자, 발이 빠른 자, 말타는 자, 용사 중에 굳센 자 이런 사람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면 그외의 다른 사람들이야 말할 필요조차 없지 않겠습니까? 결국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학대하던 이스라엘의 지배층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한 사람도 남김없이 자기들의 행동에 대한 보응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모스는 다시 한번 "이는 여호와이 말씀이니라"는 결론적 전달자 양식을 통해서 이것이 반드시 이루어질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강조해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기억나시지요?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악인이 형통하는 것 같지만 그것이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초리로 다 살피고 계십니다. 악인이 겉으로 보기에는 번창하는 것 같고, 창성한 것 같지만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 있기 때문에 악인은 반드시 심판을 받고야 말 것입니다. 또 의인이 일시적으로 고난을 받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종국에 가서는 의인을 구원하시므로 의인의 영광은 반드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참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같이 내가 너희 자리에 너희를 누르리니 빨리 달음박질하는 자도 도망할 수 없으며 강한 자도 자기 힘을 낼 수 없으며 용사도 피할 수 없으며 활을 가진 자도 설 수 없으며 발이 빠른 자도 피할 수 없으며 말타는 자도 피할 수 없고 용사 중에 굳센 자는 그날에 벌거벗고야 도망하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오늘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3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행하신 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4∼16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벌의 결과가 일곱 가지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내리신 벌의 내용을 살펴봅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벌은 다른 이웃 나라들과 다르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표현대로라면 어떻게 되어야 하겠습니까? "내가 이스라엘에 불을 보내리니 사마리아 궁궐들을 사르리라." 이와 같은 양상이 되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벌은 완전히 다른 식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13절을 읽어봅니다.
(2:13)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같이 내가 너희 자리에 너희를 누르리니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라고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양이 많다는 뜻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뜻이겠습니까? 아마도 후자의 의미가 더욱 문맥에 적합하리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벌이 그만큼 무겁다는 의미로 보는 것입니다.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땅 위를 혹독하게 짓밟고 지나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벌이 그만큼 가혹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벌이 너무나도 혹독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벌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혀 피할 수 없음을 의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누른다"는 말에 사용된 히브리어 는 오히려 "쪼갠다, 가른다"는 말로 번역을 하는 것이 문맥에 더 적합한 줄 압니다. 여러분, 생각을 해보세요. 곡식 단을 가득 실은 수레가 보드라운 흙 위로, 또는 진흙 위로 지나가면 어떻게 됩니까? 바퀴자국이 나지요? 땅이 바퀴자국에 의해서 갈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벌하셔서 이스라엘이 살고 있는 그 땅을 쪼개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땅을 "쪼갠다"라고 할 때에 여러 가지 자연 재해 가운데서 무엇이 연상되십니까? 예, 지진이지요. 하나님께서 지진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벌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모스서에 보면 지진을 묘사하고 있는 말이 여러 번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미 1:1에서부터 나왔지요?
(암1:1)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의 지진 전 이 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묵시 받은 말씀이라
아모스가 이 예언을 하고 나서 2년 뒤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스라엘을 지진으로 치셨다는 것입니다. 또 지진을 묘사하고 있는 몇 구절을 더 찾아보겠습니다.
(암6:11) 보라 여호와께서 명하시므로 큰 집이 침을 받아 갈라지며 작은 집이 침을 받아 터지리라
(암8:8) 이로 인하여 땅이 떨지 않겠으며 그 가운데 모든 거민이 애통하지 않겠느냐 온 땅이 하수의 넘침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같이 뛰놀다가 낮아지리라
(암9:1) 내가 보니 주께서 단 곁에 서서 이르시되 기둥 머리를 쳐서 문지방이 움직이게 하며 그것으로 부숴져서 무리의 머리에 떨어지게 하라 내가 그 남은 자를 칼로 살육하리니 그중에서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며 그중에서 하나도 피하지 못하리라
(암9:5) 주 만군의 여호와는 땅을 만져 녹게 하사 무릇 거기 거한 자로 애통하게 하시며 그 온 땅으로 하수의 넘침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같이 낮아지게 하시는 자요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진을 보내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지진이 자연적으로 일어난 것입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13절에서 "내가"라고 하는 대명사가 아주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기 위해서 지진을 일으키신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자기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서 보응으로써 벌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가 어떠합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지진을 내린 결과가 어떠합니까? 피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아무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지진의 결과로 완전히 황폐해지고 말 것입니다. 14절 이하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일곱 가지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7이라는 숫자는 무엇을 상징한다고 했습니까? 완전수라고 했습니다. 그 정도만 설명하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래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7이라는 완전수로서 더욱 강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 여기에 보면 적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지금 이스라엘을 치는 이스라엘의 대적이 누구입니까? 13절에 누가 치시는 것입니까? "내가"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십니다. 따라서 대적에 대한 설명이 달리 나와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무기가 무엇입니까? 지진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전쟁에서 그 어떠한 용사도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로 지나가시는 그날에 이스라엘 군대는 완전히 멸절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피할 수 없다는 말이 세 번이나 반복되어 있습니다. 14절 끝 부분에 보면 "용사도 피할 수 없으며"가 나옵니다. 그 다음에 15절을 보면 "발이 빠른 자도 피할 수 없으며"라고 했고, 세번째는 "말타는 자도 피할 수 없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자기의 생명을 건질 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또 "도망할 수도 없으며," "힘을 낼 수도 없으며," "설 수 없으며" 등의 강한 말들을 반복해서 사용하여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그 어떤 피난처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튼 오늘 본문 속에서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강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혹독한가 하는 것을 일곱 가지로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빨리 달음박질하는 자, 강한 자, 용사, 활을 가진 자, 발이 빠른 자, 말타는 자, 용사 중에 굳센 자 이런 사람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면 그외의 다른 사람들이야 말할 필요조차 없지 않겠습니까? 결국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학대하던 이스라엘의 지배층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한 사람도 남김없이 자기들의 행동에 대한 보응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모스는 다시 한번 "이는 여호와이 말씀이니라"는 결론적 전달자 양식을 통해서 이것이 반드시 이루어질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강조해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기억나시지요?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악인이 형통하는 것 같지만 그것이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초리로 다 살피고 계십니다. 악인이 겉으로 보기에는 번창하는 것 같고, 창성한 것 같지만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 있기 때문에 악인은 반드시 심판을 받고야 말 것입니다. 또 의인이 일시적으로 고난을 받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종국에 가서는 의인을 구원하시므로 의인의 영광은 반드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참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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