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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에 전도전략
생활속에 전도전략 급변하는 시대에 한국 교회는 성장을 멈췄고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한다.
교회의 사역들은 기존 성도들을 중심으로 행하고 있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많지 않은 상태다. 이런 시대에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생활 전도가 있다.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하모사)에게 관심을 갖고 다가가 관계를 맺으며 생활에서 전도하는 것이다. 전도자의 유형 생활 속에서 전도하려면 우선 우리 주변에 있는 하모사들을 이해해야 한다.
여러 부류의 하모사들이 있다. 기독교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 배타적인 사람, 회의적인 사람, 상처받은 사람 등이 있다. 또 영적 진리를 찾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일부는 무신론 자, 일부는 신앙심이 깊은 타 종교인일 수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하모사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도 여러 유형으로 독특하게 창조하셨다. 성경에 보면 전도자의 유형이 크게 6가지로 나눠진다.
첫째는 직선형이다. 사도행전 2장에 등장하는 베드로와 같은 전도자가 여기에 해당한다.
적대적인 상황과 환경에서도 자신감을 갖고 강력하고 담대함으로 복음을 선포한다.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는 직선적인 전도자다. 이런 전도자는 교통 사고로 피투성이 된 사람을 만나면 “당신이 오늘 죽게 되면 하늘나라에 갈 확신이 있으십니까?”라고 질문하는 사람이다. 복음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헌신하는 전도자다.
베드로처럼,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마 14:28)하며 주님께 순종할 때, 물위를 걷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전도자다. 이런 ?/SPAN>형의 사람들은 전도할 때 상황에 적합한 전략을 위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한다. 강하게 보이려는 욕망을 성령님께서 제어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전도 대상자의 마음을 상하지 않도록 말하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하고 복음을 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둘째는 지성형이다. 바울처럼 철학적이며 논리적인 사고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다.
사도행전 17장 23절에서 바울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며 아덴 사람들에게 익숙한 시인의 말을 인용해 전도했다. 바울의 논리는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는 말씀에 대해 확신을 갖고, 이사야서 1장 18절 말씀대로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하며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고후 10:5) 하는 것이다.
지성형의 사람은 전도할 때 학문적인 주제나 논제들을 설명하다가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함정에 빠지지 쉽다. 전도 대상자들에게 정보보다 우리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베드로전서 3장 15절 말씀처럼 “온유와 두려움”을 갖고 전도해야 한다.
셋째는 간증형이다. 요한복음 9장에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처럼, 철학적으로 신앙을 분석하며 설명하는 전도자가 아니라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요 9:25)라고 고백하는 유형이다.
다시 말해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만 찬송하겠습니다”라는 전도자다. 인격적으로 만난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분명하기 때문에 다른 설명이 불필요한 전도자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만났는가 하는 간증은 복음이 아니라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간증만 전하고 복음을 설명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의 간증이 전도 대상자의 삶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연구하며 전도해야 한다. 관계 형성이 복음 전도에 앞서지 말아야
넷째는 관계형이다. 마태는 관계 범주 안에 있던 사람들을 특별 파티에 초대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기획한 전도자다. 전도 대상자들을 분석하고 필요와 접촉점을 파악해 파티를 준비했다. 마태는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고전 9:22)라는 말씀을 실행한 전도자였다. 신학적 교리를 언급하기보다 오히려 예수님을 직접 만나게 함으로써 복음을 전하는 우정 지향적인 전도자다. 하지만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궁극적인 목표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
다섯째는 초대형이다.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녀의 호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찾아왔다. 누가복음 14장 23절에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는 말씀을 실행할 수 있는 전도자다. 초대형 전도자는 항상 다른 목회자나 사역자만이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초대받는 사람들은 초대하는 사람의 삶에 예수님의 말씀이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하는 만큼 복음을 설명하고 전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
여섯째는 봉사형이다. 사도행전 9장에 소개되는 도르가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전도한 제자다. 그의 삶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는 말씀처럼,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삶을 디딤돌로 삼는 전도자다. 인내심이 강하고 타인 중심적이며, 상대의 필요를 이해하고 섬기는 것을 기쁨으로 여긴다. 복음을 전할 때 말보다 행동으로써 사랑을 보여주고, 힘들고 자질구레한 일에도 기쁜 마음으로 섬기며 전도하는 사람이다. 봉사형의 사람들은 섬기는 동기가 예수님 때문이라는 사실을 상대에게 여러 방법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다.
전도를 위한 관계의 유형 자신에게 맞는 전도 스타일을 이해하고 실제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하모사와 관계를 맺는 게 중요하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친구를 원한다. 주변에는 하나님께서 이미 관계를 맺게 해 주신 하모사들이 있다. 이런 관계는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관계를 통해 친구 하모사들을 인도하기를 원하신다.
전도를 위한 우정 관계에 7가지 특성이 있다.
하나, 진정한 관계이다. 전도 대상자와 관계를 맺을 때 진정한 친구가 돼야 한다. 전도를 위한 관계가 아니라,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는 관계를 말한다.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친구가 돼야 한다.
조셉 알드리히(Joseph Aldrich) 교수는 “우리가 복음(Good News)을 전하기 전에 친구들에게 희소식(good news)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인들이 경험하는 관계는 피상적이며 임시적이다. 진정한 관계는 그들의 삶에 아름다운 선물이 된다.
둘, 자연스러운 관계다. 누구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디자인과 성품 그리고 모습 그대로 관계를 세워나간다. 부자연스러운 관계는 오래 가지 못한다. 친구들도 부담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예수님을 믿지 않지만, 만나면 자연스럽게 깊어져 가는 관계부터 시작한다.
셋, 개인적인 관계다. 하모사들에게 복음을 가지고 접근하는 방법에 개인적인 방법과 일반적인 방법이 있다. 현대인들은 전도지, TV프로그램, 대형 전도 집회 등 일반적 방법보다 친구와 영적인 대화를 나누며 하나님을 이해하기 원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고민이 있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책이나 모르는 상담자를 찾지 않고 오히려 신뢰할 수 있는 친구를 찾는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문제도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와 나누기를 원한다.
넷, 대화할 수 있는 관계다. 복음은 설명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가끔 친구들이 우리의 삶을 보고 예수님을 믿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로마서 10장 14절에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고 기록돼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누군가 복음을 설명해 줘야 한다. 행함이 없는 신앙 고백은 설득력이 없듯이, 신앙 고백이 없는 행함은 이해하기 힘들다. 우리는 삶 속에서 복음을 행동으로 보임과 동시에 설명해야 한다.
다섯, 과정 지향적인 관계이다. 복음을 전할 때 무리하게 결정하기를 요구하거나 일방적으로 촉구해선 안 된다. 사람들이 복음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요한복음 3장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라는 말씀을 듣고 이해하기까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우리도 하모사들이 복음을 이해하는 속도나 과정을 함께 인내하며 존중해야 한다.
여섯, 관계 전도는 팀 지향적이다. 하나님께서 한 영혼을 인도하시기 위해 여러 사람을 동원해 합력으로 선을 이루실 때도 있다.
전도할 때, 한 친구를 처음부터 결단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 클리프 네틀(Cliff
Knechtle)이라는 전도자는 한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것을 많은 고리로 연결된 사슬로 비유했다. 사슬에는 처음 고리, 중간 고리, 마지막 고리가 있다. 한 사람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기까지 많은 대화와 과정들에서 전도자들은 가끔 마지막 고리 역할을 하며 전도의 기쁨을 맛 볼 때도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엔 중간 고리 역할을 한다. 처음 고리의 역할을 맡는 경우도 있다.
하나님께서 항상 자신을 마지막 고리가 되도록 사용하시는 게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어느 고리를 맡든 우리는 전도의 기쁨을 느끼며, 충성으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요한복음
4장 36절에 예수님께서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처음 고리가 되었든, 마지막 고리가 되었든, 함께 기뻐해야 한다.
이런 성경적 원리는 우리로 하여금 협력과 제휴로 전도해 보다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함을 알게 한다. 회개에 앞서 사랑을 느끼게 해야 마지막으로 타인 중심적인 관계가 있다. 우리는 복음을 가지고 전도하려는 친구에게 다가 갈때, 우선 그들의 필요와 관심 분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들의 취미, 관심 분야, 필요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접근해야 한다. 우리의 의견을 말하기 전에, 먼저 그들의 여러 의견들을 경청해야 한다. 무엇을 믿고 있으며, 어떤 가치관으로 살고 있는지 알아 봐야 한다.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 줄 때, 그들에게 존중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줄 때 우리가 원하는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 아들이 말하기 전에 아버지가 먼저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가로되…”하며 회개하기 시작했다고 기록돼 있다. 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회개를 가능하게 만든 사랑’이었다. 이미 사랑을 체험한 아들은 준비한 회개를 할 수 있었다. 우리도 하모사들에게 회개를 요구하기 전에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사랑을 경험할 수 있도록 관계를 맺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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