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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를 위한 영적 훈련

by 【고동엽】 2022.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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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를 위한 영적 훈련

 

달라스 윌러드(Dallas Willard)와 존 오트버그(John Ortberg)의 대담

 

존 : 달라스 교수님, 사역을 하거나 영적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러니까 적어도 이런 가정을 한다는 것이지요. 영적인 리더가 되거나 사역을 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영적으로 성숙해진다고 말입니다. 물론 이 길을 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게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다른 사역자들은…(웃음). 저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것이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때로는 난관에 부딪히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사역이나 영적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영적 생활에 대해 겪게 되는 어려움에는 때 것들이 있습니까?

 

달라스 : 지도자들에게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지도자들인 자신들이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의 영적 생활은 '방치해두는 것' 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지도자들이 영적 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은 그들의 영적 생활과 관련해 좋은 가르침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런 생각은 그 자신의 영혼과 기정에 매우 해롭습니다. 우리가 지도자가 될수록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어 가느냐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자기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사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종종 우리가 지도자의 위치에서 가르치는 많은 것이, 사실 우리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와 닿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비난이 아니라 우리에게 꼭 필요한 '가르침'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즉 누군가 지도자인 우리의 믿음에 문제가 있다고 말할 때, 우리가 하려고 하는 일을 완성시키시는 하나님께 '하나님의 은혜로만 고칠 수 있는 것이 여기 있습니다' 라고 말씀드리는 기회로 삼자는 것입니다.

 

헌신과 매주 엄청난 시간의 수고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도자로서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은 내가 이 일을 해내야 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 결과 목표를 달성하는 일에 심한 스트레스와 압력을 느끼며, 점점 자신의 내면생활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가장 큰 영향은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바로 그것이 우리가 만나는 이들의 삶에 영원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말로는 하지 않더라도 우리와의 관계가 달라지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라도 그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생각하는 지도자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지도자의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내적 자아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도자에게는 영적 생활의 훈련을 위한 규칙적인 일정이 꼭 필요합니다. 이 일정은 우리 앞에 놓여있는 임무에 매몰되지 않고 온전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온전함을 유지하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셨다는 것을 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우리 속에 자리잡고 있는 깊은 실망 같은 것 -어쩌면 유년시절로까지 거슬러 가는 그런 것들-이 사역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거에 버림받았던 사건들 혹은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았던 일들, 내가 칭찬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엉뚱한 다른 사람이 칭찬을 받았던 일들, 또는 우리가 학교를 다니면서 겪은 부당한 일들이 자신의 지도력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대학원 시절에 받은 큰 상처를 잊지 못하는 교수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문화 속에 사는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충족시켜줄 로맨스와 섹스에 대한 꿈을 계속 키우고 있습니다. 결국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그런 생각이 발현된 많은 사람들의 이런저런 스캔들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러한 파국을 맞게 될 때, 슬프게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수년동안 '속에서 진행되어 오던 그 일' 이 얼마나 위험하고 심각한 것이었나를 비로소 깨닫는 것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파멸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 사람의 속에서 '사람을 부패시키는 꿈'으로 키워져 오던 것이 곪아터진 것이지, 그런 악한 행동을 계속해왔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절망… 그런 감정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러 갈 때도 여전히 우리 속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그것을 계속해서 무시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사고가 나는 것이지요. 조심해야 합니다. 잠언 4장 23절의 말씀을 기억하시지요?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이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우리가 정말로 생각해야 할 말씀입니다.

 

존: 그것에 이어서 말씀드리자면 이 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 대부분이 윌로우크릭에서 일하는 분들이 아니고, 각자 자기 직장과 생활을 가지고 게다가 교회에서도 책임을 맡고 계신 분들입니다. 이런 지도자들이 대개 겪는 어려움은 자기 일에 너무 바쁘다보니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차리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제가 윌로우크릭교회에서 사역한 지 6-12개월이 되었을 때, 당신에게 전화해서 영적으로 살아있고 건강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제 질문을 듣고 길게 침묵하시더니, 이렇게 말씀해주셨지요. "무자비할 정도로 당신의 삶에서 바쁨이라는 것을 제거해 버리세요." 그리고는 또 긴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저는 대답했지요. "좋습니다. 이해했습니다. 또 없습니까?" 그랬더니 또 한번의 긴 침묵 후에 당신은 "다른 것은 없습니다. 무자비할 정도로 당신의 삶에서 바쁨이라는 것을 제거해 버려야 합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선한 일을 많이 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여기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선한 일을 많이 하나는 부름을 받았다고 생각하리라봅니다. 우리는 그 일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와중에라도, 현실세계에 사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우리 영혼의 상태를 깨달을 수 있을까요?

 

달라스: 우리 믿음에 가장 큰 도전은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입니다. 특히 존, 당신처럼 여러 방면에 좋은 자질을 가지고 있고 많은 일을 하고 헌신되어 있고 몸을 사리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에 가서 훈련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면, 이 훈련의 목록을 또 하나 '해야 할 일' 의 목록으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어떤 일이 더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잠시 멈춰 서서 우리의 삶 전체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즉 이 시점에서 우리는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질문을 해보아야 합니다.

 

몇 년전 어느 카우보이 가수가 제작한 영화 한 편이 나왔는데, 거기서 예수님이 동료들과 야구경기를 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든지 그것이 하나님께 이익이 되게 하려고 감시하는 냉혹한 감독이나 코치로 보는 생각을 접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은 잔인한 야구감독이 아니며 우리를 이해하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시편 103편에 나오는 이 구절들을 좋아합니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여러분은 모르시겠지만 저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저를 불쌍히 여기신다는 사실이 저는 기쁩니다.

 

이 구절을 노래로 불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불쌍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니 주님을 찬양할찌로다!" 하고 말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결과를 내느냐보다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느냐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이 우리 삶을 통해 얻으시는 것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존 밀튼(John Milton)의 글을 좋아합니다. 〈눈먼 그대〉라는 시를 아는 분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눈이 멀어가고 있었는데 작가이자 독서가이고 학생이었던 그는 이런 아름다운 글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은 빛을 주지 않으시고 낮에 일하라하지 않으시네. 땅과 바다에서 하나님이 명하시는 속도로 그가 명하신 자리에서 일하는 수천 명의 사람들도, 오직 서서 기다리시는 그분을 위해 일한다네." 얼마나 놀라운 비전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인식입니다. 바로 이때 우리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가 시간사용을 결정할 때 우리의 믿음은 시험을 받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시간을 사용합니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고독은 이 훈련목록에서 그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시간사용에 대한 근본적인 선택이며, 우리에게 부과된 모든 짐의 횡포로부터 우리를 풀어줍니다. 저는 고독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상황 속에 살고 있습니다. 고독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놀라운 축복을 발견하게 됩니다.

 

존 : 제가 처음으로 리처드 포스터의「영적 훈련과 성장」이란 책을 읽었을 때가 기억납니다. 이 책은 12개의 훈련목록을 12개의 장으로 나누어 쓰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리처드 포스터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미 그 중 두 가지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제가 어려서부터 이건 꼭 해야하는 일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이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QT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기독교인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는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는 "여기 당신이 완벽하게 해내기까지는 죄책감을 느껴야 할 것이 10개 더 있소" 하는 말을 듣는 기분이었습니다. 전혀 내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리처드 포스터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알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갓 학교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약 100명 정도 모이는 작은 교회의 젊은 목사로 부임하여 일하고 있을 때, 달라스와 그의 부인 제인이 그 교회에 다녔는데 그때 서로 친구가 되었습니다. 달라스는 이미 여러 해 동안 이런 것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그것이 사실은 리처드 포스터가 그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혹시 여기 있는 많은 분들이 이 목록들을 보면서, '우리가 이미 다른 일로도 바쁜데, 이걸 다 터득해야 영적으로 괜찮은 사람이 된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심한 스트레스를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드리는 질문인데 달라스 박사님은 지도자 자리에 있는 분들이 '내가 감히 할 수 없는 일을 다 터득해야 한다' 는 압박감이 들지 않으면서 이 훈련목록에 좀더 쉽게 접근하려면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현실적이고도 바람직한 출발점은 무엇입니까? 오늘날 '이 정도면 되었다' 하는 정도가 어떤 것입니까?

 

달라스: '고독' 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고독은 혼자 있기로 선택하는 것,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벗어나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숲 속에 산책을 가거나, 아니면 혼자 있을 수 있는 다른 어느 곳으로 가는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조용한 방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고독에서 중요한 것은 안식일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안식일은 아직도 십계명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안식일을 어쩔 도리가 없는 것으로 여깁니다. 안식일이란 우리 시간의 1/7은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독이란 일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거리를 가지고 가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고독 속에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은 누구인가 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자신이 일을 하지 않아도 세상은 돌아간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렇게 얼마 동안 있으면, 자신을 몰아치고 쫓기게 만들던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됩니다. 침묵을 고독과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가 가장 기본적인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여러분과 저는 같은 콩깍지에서 나온 같은 콩입니다. 제가 젊어서 사역할 때도 기도, 성경공부, 그리고 전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그것을 해야 합니까? 저는 제가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는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저의 많은 동료들이 발견했던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기도도 전혀 하지 않고 성경을 읽지 않으면서도 전도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것들은 아주 해이해집니다. 남침례교회에서는 사실 이 세 가지가 골격을 이룹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면 거의 아무도 성경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기도는 알 수 없는 신비한 것 또는 장애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날까지도 진지한 사람들이 제기하는 이슈들은 QT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왜 QT가 제대로 되지 않는가 하는 문제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과거의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살펴보면 길이 열립니다. 길모퉁이 끝에 가서야 잡을 수 있는 이 방법을 터득하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의 가족과 동료들의 도움을 입어 혼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계획해서 확보해야 한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존: 올해 우리가 교회적으로 살펴보았던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이 각기 서로 다른 기질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독한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 명상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는 반면 또 어떤 사람들은 매우 관계적이어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고독을 힘들어합니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발견하고 나서 보이는 반응 중 하나는 "고독은 내게 너무 어려우니까 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요? 그냥 목록에서 빼버리지요 뭐" 라는 것입니다. 고독이 자연스럽거나 쉽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고독은 중요한 것입니까?

 

딜라스 : 그렇습니다. 이렇게 표현해 보지요. 우리가 어떻게 이 훈련들을 실천하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린 것이며, 저는 여러분이 이 훈련을 할 때 하나님이 개인에게 직접 인도해주시는 독특한 길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훈련에는 어떤 형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즉 모든 사람에게 같은 훈련방식이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제 경험상 여러분이 이를 훈련할 때 기억해야 할 작은 규칙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훈련을 실천하기 시작할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가' 에 결코 지배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스스로 터득해야 합니다. 어떤 법칙이나 모델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경험을 통해서 터득한 규칙이 또 하나 있는데, '내가 실천하기 어려운 훈련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꼭 해야하는 훈련이며, 그 훈련이 쉽게 여겨질 때까지 실험적으로 계속 작업을 해야 한다' 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훈련은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아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훈련을 실천하면서 자신을 알게 되고 자신의 필요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훈련의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외향적인 사람은 고독을 연습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종종 내향적인 사람들은 고독을 연습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혼자 있는 것을 연습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고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을 즐기고 좋아합니다. 그러나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것이 고독의 경우처럼 그들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고독 속에서는 저는 그냥 가만히 있습니다. 스스로를 재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혼자 있으면서도 자신을 재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독이 사람들이 실천하기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고독 속에 들어가면 무엇을 하지요" 라고 초조하게 묻습니다, 그 대답은 물론 이렇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무엇을 하기는 합니다. 자신이 즐기는 것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고독 속에 들어가면 나는 잠들어 버릴 겁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훈련의 기본입니다. 즉 엘리야의 훈련이지요.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이세벨로부터 도망쳐서 먼 길을 달렸던 것을 기억하시지요? 그리고 나서 그는 로뎀나무 아래서 잠이 들었습니다. 천사가 그를 깨워서 먹을 것을 주었고, 그는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이 고독 속에서 할 수 있는 일 한가지는 맑은 정신으로 깨어날 때까지 자는 것입니다. 이 말에 충격을 받는 분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수면 부족으로 고통받는 사회 속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존 : 그것도 영적인 훈련이라고요!(웃음)

 

달라스: 맞습니다. 영적 훈련입니다! 하지만 모든 훈련은 잘못 탐닉하게 될 가능성을 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념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영적인 훈련은 나의 직접적인 노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만드는,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활동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해내게 만들고, 변화된 자아의 비전을 실현하는 영적 생활의 질서와 방법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당신의 영적 생활에서 피로가 미치는 영향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쁜 것이 영적 생활에 미치는 영향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바쁜 가운데 남을 사랑하려고 해보십시오. 제대로 되지가 않습니다! 물론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피로와 바쁜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피로한 것은 대개 바쁘기 때문입니다.

 

고독은 우리를 붙잡고 있는 삶의 일상적인 패턴을 깨뜨리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패턴을 잠시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여전히 모든 것을 운영하시면서도, 우리가 기다리면 와서 당신을 드러내신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드러내시도록 조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드러내시지 않으면 우리는 실망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자리를 만듭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여러분의 관심을 끌려고 애쓰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하나님은 그런 것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물론, 때로는 하나님이 무언가 진짜로 하실 말씀이 있으셔서 여러분에게 다가가시겠지요. 물론 성경에는 그런 예들이 수두룩합니다. 하지만 타작마당에 천사가 나타나기 전, 기드온은 그 많은 날들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우리의 일상적인 날들은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는 날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삶 속에서 당신을 위한 자리를 만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존: 개인의 영성적 차원이 아닌 '리더십' 에서 특별히 고독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도자의 책무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고독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달라스: 리더들은 무엇보다도 인생과정에 매인 사람들이며. 자신의 추종자들과 자신을 의지하는 자들이 "이봐요, 당신은 우리 삶에서 중요한 사람이에요. 어디 사라지면 안돼요!" 라고하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 쉬운 사람들입니다. 즉 지도자들은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지나치게 의식하는 경향이 있으며, 결코 느슨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가 너무나 쉽습니다 절대로 "놓아주고 하나님이 하시게 하라 (Let go, Let God)" 라는 말을 못합니다. 이 말을 여러분을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해보십시오.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 지도자들은 자신이 지도하는 사람들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자신의 가족이나 동역자들처럼 여러분이 지도하는 사람들도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삶을영위하는 훈련의 패턴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들이 여러분의 그러한 생활을 용인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지도하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그들도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그러한 정돈된 생활을 하도록 성장해 가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 한 가지는, 이러한 훈련을 실천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특별히 이러한 욕망을 가지기 쉬운데,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확인하려 하고, 제대로 결과가 나오는지 보려고 하며, 계속해서 관리를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이 지도하는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정말로 관계는 상하게 됩니다. 내가 어떠한 역량으로든 누군가를 지도하고 있다면, 상대방을 조작하거나 몰아치거나 통제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할 때야만 비로소 어떤 영적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영적인 성장은 영혼의 내적 활동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제가 철학시간에 누군가를 지도하거나 가르칠 때 그냥 다 쏟아 부어줄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해야하는 일은 학생들로부터 답을 유도해내는 것입니다. 그들이 행동을 하도록 이끄는 것이지요. 지도자로서 저는 "네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 결과를 통제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어떤 일을 통제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치명적인 태도입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이 사실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놓아주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여기서도 하나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그들이 스스로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믿음보다 더 많은 믿음을 그들에 대해 가지고 있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라는 확신 같은 것 말입니다.

 

저는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하러 가는 하인에게 대했던 태도에 항상 놀랍니다. 이 사람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냥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다. 그의 천사들이 너와 동행할 것이다. 네가 할 일을 알게 될 것이다" 하는 식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이 이야기를 기억하시지요. 그가 리브가의 가족이 사는 곳 가까이에 도착하자 그는 이렇게 조건을 만들어냈습니다. "주님, 내가 이 말을 하면 저 여인은 이런 말을 하게 해주십시오. 그런데 이것 보십시오. 그 사람은 떠날 때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리더십의 역할을 할 때 바로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면 지나치게 간섭하려는 우리의 성향을 이기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놓아주기'를 연습하면서 우리 자신의 영적 생활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존 : 그거 아주 겁나는 일인데요.

 

달라스: 그렇지요. 매우 겁나는 일입니다. 나 없이도 잘하고 나를 필요로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제가 나열한 목록에 보면 '비밀의 훈련'이 있는 것입니다. 비밀의 훈련은 자신의 선행행위를 알리지 않도록 연습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마태복음6장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매우 중요한 훈련입니다. 오해는 마십시오. 여러분의 선한 행위가 알려지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6장에서도 예수님은 선한 행위가 알려지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알려지기 위해서' 하는 일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여러분의 선한 행실을 알이낸 것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인정을 추구하며 산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비밀의 훈련연습은 매우 간단하고도 쉽게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누구를 속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속이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여러분이 한 일이 그냥 알려지게 내버려두십시오. 그러나 알려지지 않도록 선한 일을 하는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하면 됩니다.

 

우리는 옛 청교도들이, '오직 한 분 앞에서' 라고 말했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한 분 앞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좋건 나쁘건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살도록 훈련받았기 때문에 그러한 관습을 깨야 합니다. 이것은 리더십에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물론 다른 훈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욕도 그렇지요. 금욕은 설명이 좀 필요하고, 연습보다는 결과와 더 연관된 것입니다. 그러나 훈련으로써의 금욕의 연습이란, 예를 들어 일정기간 동안 성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존 :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요!(웃음) 제 생각에는, 어떤 훈련이 우리 삶에서 가장 효과적인가 혹은 하나님이 사용하실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데요. 예를 들어 서로 비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지도자가 어떤 훈련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하면, 그 말을 듣는 다른 모든 사람들 혹은 그의 지도 영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자신들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부서 지도자 수양회에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찾는 것의 문제점은 우리가 하나님보다는 그 길 자체를 숭배한다는-혹은 지나치게 강조한다는-점이라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가 분별할 수 있도록 배우는 것이 시급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사람들이 이러한 훈련들을 발견하고는 '이제 고독에 숙달되어야겠다' 혹은 '…에 숙달되어야겠다' 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어떤 훈련들은 특정 죄들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내가 씨름하고 있는 죄와 내게 가장 도움이 될 훈련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습니다. The Spirit of the Disciplines 에서 제게 매우 도움이 되었던 것 한 가지는 하나의 틀이었는데, 한편으로는 훈련과 다른 한편으로는 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혹은 힘을 얻는 것과의 상호관계였습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죄가 되는 것과 행했기 때문에 죄가 되는 것,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절제의 훈련과 참여의 훈련의 관계를 통해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 관계에 대해 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달라스: 일반적으로 말해서, 영적 훈련에 들어가는 열쇠는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적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어떤 특정한 일로 고민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다 죄는 아닙니다. 히브리서는 죄와 짐 (weight)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단지 죄만이 아니라 짐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존: 짐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달라스: 짐이란, 예를 들어, 지혜가 부족해서 발생하게된 경제적인 부담을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은 우리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짐이란 단지 잘못을 저지르게 하지는 않으면서 우리를 처지게 만들고, 우리에게 부담이 되고, 방해가 되는 그런 일들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냥 잘못이나 안 하는 정도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런 것이 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안 하면서 인생에서 많은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선하고, 창조적이고, 사람들에게 복이 되는 등의 것으로 어떤 일을 하느냐의 관점에서 우리 인생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짐은 그런 것으로부터 우리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한 것에 집중하려면 우리 삶에서 많은 것들을 줄이고 삭감해야 합니다.

 

개개인의 문제에 있어서는, 저는 다시 섹스의 문제로 돌아오고 싶은데요, 여기에 대해 좀더 알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섹스는 우리 나라와 문화의 주된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단지 문제가 되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텔레비전에서 보고 신문에서 읽고 하는 것들이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문제는 우리의 생각입니다. 우리는 생각 속에 감정, 상상 등을 저장합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매우 부정적이고 억압적이었던 옛 부정적 경건주의로부터 우리가 결별한 후로 말입니다.

 

이제 내면세계에서는 무엇이 거룩인지 정의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무엇이 순결입니까? 여러분에게 순결이 세부적인 측면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리더십 역할에서 성은 우리가 주로 다루어야 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성(性)에 의존적이지 않다는 사실, 우리가 사실은 그것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도 행복하게 그리고 강하게 말입니다. 그것은 연습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듯, 목회자들이 실족했다는 그런 화려한 스캔들은 그들이 이 영역에 많은 것을 저장해왔다는 증거입니다.

 

존: '없이도 산다' 는 말이 우리의 성(性)을 의식하지 않고 산다는 말은 아니지요?

 

달라스: 아닙니다.

 

존: 그렇다면 성행위를 유도하지 않고 산다는 말입니까?

 

달라스: 단지 행위만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우리를 불만스럽게 만드는 그런 방식으로 성의 영역에 우리 자신을 감정적으로 연루시키는 것도 포함됩니다. 사람들이 실족하는 원인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오랜 기간동안 성의 영역에서 불만스러웠던 것이지요. 이것은 우리들의 결혼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고,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영원한 불만의 저주를 내릴 이미지들에 연루되기가 쉽습니다. 이것은 매우 파괴적인 일입니다. 그리고 단지 성문제에만 국한된 것도 아닙니다. 그냥 로맨스정도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은 친밀감입니다. 그래서 금욕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금욕이 란 그러한 헛된 이미지에 사로잡히는 것을 끊는 연습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5장에서 정욕을 가지고 여인을 바라보는 것에 대해 하신 말씀이 의미하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종류의 내적 만족에 감정적으로 빠져드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며 반드시 벗어나야 할 습관입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슈가 되어야하며, 그냥 억누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억눌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자가 여자이고 남자가 남자인 것은 좋은 것입니다. 섹스와 사랑은 놀라운 것이며, 우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 또한 인식하고 존중하며 아이들이 성에 대해 잘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것들도 있습니다. 지도자들은 종종 다른 사람들에 대해 경쟁적입니다. 주님이 제게 어느 수양회에서 "저 사람들이 너보다 더 잘하는 것에 대해서 그만 걱정하고, 그들이 너보다 더 잘하도록 기도해라"고 말씀하신 것은 제 인생에서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정말로 놀라운 해방감을 맛보았습니다! 경쟁하지 않아도 되니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다른 지도자들과 경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섬김의 훈련인 것입니다. 그리고 섬김은 경쟁을 능가합니다. 이 원리를 이해하시겠지요? 그 외에 또 다른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만. 이것으로 일단 전반적인 개념은 이해가 되시겠지요.

 

존: 사람들이 어떤 일을 잘해내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려고 하는 경향, 또는 다른 사람에 비해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 비교하려는 경향이 교회 안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모임이나 그룹들이 다른 모임이나 그룹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잘 되도록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고 또 다른 기독교인들이 잘되도록 기도한다면,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드는 것을 막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달라스: 물론입니다.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 바울이 인용하는 그리스도의 마음은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말입니까!

 

하나님이 당신의 목적을 나를 통해서 성취하시느냐, 아니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 성취하시느냐가 문제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나를 더 귀하게 보시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손안에서 안전합니다. 우리는 자유롭습니다. 경쟁심은 너무도 심하게 교회에 상처를 주었습니다. 단지 교회만이 아닙니다. 교인들간에도 서로 큰 해를 입혔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한다고 해봅시다.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됨에 대한 저의 생각은 무엇보다도 여러 그룹의 지도자들이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서로를 섬기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다른 길로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도지들이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서로를 섬기기 시작하면, 요한복음 13장에서처럼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백성 가운데 임재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그것으로 우리 시대를 향한 예수님의 목적이 성취될 것입니다.

 

존 : 마지막 질문입니다. 아침에도 이것에 대해 잠깐 토론했는데요. 빌 하이벨스는 자기 책상에 붙여 놓았다고 최근에 말한, The Spirit of the Disciplines라는 책에 나오는 문장이 있는데, "기독교인의 책임 중 하나는 죄가 더 이상 좋아 보이지 않도록 우리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입니다 이것에 대해 마지막으로 좀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달라스: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심지어 대학에서 제 윤리학 강의를 듣는 학생들까지도, "옳은 일을 해야하며 그리스도인으로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은 정말 재미없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좋은 것들은 저기 금지된 구역에 있다" 는 생각들로 머리 속이 꽉 차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어차피 인생에서 혼란한 시기를 지나가고 있는 나이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죄를 재미는 있지만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싫어하시니까 감히 못하는 거지 ! 그러나 "만일 하나님이 그것을 싫어하시지만 않는다면…그러면 정말 괜찮을 텐데" 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정말 형편없는 것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도의 문제를 우리가 다시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제자도는 순종 이어집니다. 제자도 없이 순종으로 나아가지는 않습니다. 순종은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훈련의 결과입니다. 순종은 묘하게도 내적 변화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데, 우리가 내키지 않을 때라도 제자도와 훈련의 연습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주는 것입니다. 내적인 저항이 있을 때라도 계속해서 연습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결론을 내리고 싶은 것은, 그 다음에 능력이 온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질서가 잡힌다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말해서, 여기에서 말한 내적 변화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우리는 삶 속에서 우리의 역할을 제대로 이끌어가고 충족시켜 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되면 능력이 우리로부터 어느 정도 자동적으로 나오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생기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성경의 한 장면은 베드로가 지나가는 길에 그의 그림자라도 스칠 수 있도록 사람들이 길에 나가 있는 장면입니다. 우리의 그림자가 다른 사람 위에 드리울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존 : 대담을 마치기에 너무나도 좋은 결론이군요. 감사드립니다.

 

/ㅔ계제일교회 카페에서

 

 

출처 : 브니엘
글쓴이 : noemisuh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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