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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δεδομένα 18,185편 ◑/यू की-सेओङ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라 히11:6

by 【고동엽】 2022. 2. 11.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라           히11:6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고, 또 너무나 복된 일입니다. 
우리가 지금 성령집회하면서 우리의 간절한 마음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실제로 우리가 경험하며 사는 겁니다. 

▲IHOP 집회가 한국에 처음 열렸을 때, 그때 중보기도 시간에 
강사로 오셨던 앨런 우드 목사님의 11살 된 아들이 
강단에 올라와서 중보기도를 인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아이가 하나님의 성령의 마음으로 기도를 선포하는데, 제가 깜짝 놀랐어요. 
'미국이나 한국이나 이제는 목사님들이나 교인들이 
사역 중심에서 예수님 중심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걸 위해 기도하자는 겁니다. 

'11살 된 아이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정말 성령께서 주시는 생각이고, 기도 제목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때 그 기억이 제게는 굉장히 선명합니다. 
'사역 중심에서 이제는 예수님 중심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도, 열심히 교회 다니고, 그리고 봉사 열심히 하고... 
보통 신앙생활은 그것이 전부인 줄로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 살아있는 주님을 만나는 주님과의 동행'이 
이제는 초점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아마 이 자리에 오신 분들 중에, 그동안에 열심히 정말 신앙생활 하셨던 분들이 있다면, 
이제는 초점을 주 예수님에게로 두셔야 합니다. 
그 예수님은 살아계신 주님이시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참 어렵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으세요. 
보이지도 않으시고, 또 실제로 귀에 들리지도 않는 주님의 음성을 
바라보아야 되고, 들어야 된다는 게... 너무 막연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제게도 실제로 한동안 이 문제는 극복하기가 어려웠어요. 
'진짜 예수님은 우리와 같이 계신가?' 
'그렇다고 하더라' 이렇게 믿고 넘어가야 되는 문제였어요. 저에게도.

실제로 주님을 만나지도 못하고, 주님의 음성을 귀로 들어보지도 못하니,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 주님과 친밀히 교제한다는 것은... 낯선 일이었죠. 

그런데 그건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주님과 친밀한 교제 속에 들어가려면 
'믿음으로 주님과 친밀히 교제하는 것'에 대해서 
분명한 답을 가지고 있으셔야 돼요.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주님을 보고도 주님인 줄 몰랐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도 주님의 음성인 줄 몰랐어요. 

성경을 가만히 읽어보면서 '왜 그랬나?' 
그들의 마음에 슬픔이 가득했다는 거죠. 

눅24: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죽고 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띄고 머물러 서더라'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을 
그들도 예루살렘에서 목격을 했죠. 

그러나 그 다음에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전혀 그건 믿어지지도 않고, 
그들 마음속에는 오직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그 슬픔만 가득했었습니다. 

마음에 슬픔이 가득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도 예수님인 줄 몰랐고, 
주님의 음성을 들어도, 주님의 음성인 줄 몰랐던 거예요. 

(제가) '아 이것이 내 문제였구나...'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와 같이 계시고,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그런데도 이 자리에 있는 분들 중에 '나는 정말 주님의 음성을 듣지도 못하겠고, 
나는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걸 믿지도 못하겠어.. 왜 나에게는 안 만나 주시지?' 
이러시는 분들이 이 시간에 있으실 거예요. 
그건 믿음으로 주님께 반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주님이 정말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만나 주시고, 
나도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 좋을 텐데...' 
이런 갈망 자체가, 여러분 안에 역사하시는 주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그런 갈망을 주시는데도 
본인은 '나는 주님의 음성을 못 들었다. 주님이 왜 나에게는 함께 하지 않으시냐?' 
그렇게 하고 있는 거예요. 

믿음으로 반응하지 못하니까.. 
주님이 역사하시고 계신데도, 
여기 오늘 저녁에 성령집회에 이렇게 참석하게 하신 분이, 여러분 안에 계신 주님이시죠. 
주님의 이끌림을 이렇게 받고 있으면서도 
정작 본인은 '주님은 왜 내게는 역사 안 하시나?' 이렇게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믿음으로 한번 반응해 보시면, 
'내 마음에 주님을 향한 갈망, 나도 주님을 좀 인격적으로 만났으면 좋겠고, 
실제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싶다' 

'아~ 이 갈망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어떻게 있을 수 있겠나?'
 
지금 내게 계속해서 '뭔가 신앙생활을 바로 해야 되겠다. 
내가 이제 예수님을 바로 믿어야지...' 
이런 생각이 주님의 음성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요? 

여러분이 그것을 믿음으로 취하고 
'주님 제 안에 주님을 향한 열망을 주시고, 
또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제게 불러일으켜 주시니, 주여 감사합니다!'
이렇게 반응하는 것은 굉장히 다른 거예요. 

주님의 은혜를 받으면서도, 주님의 인도를 받으면서도 
'왜 주님은 내게 역사 안 해주실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과, 

'주님, 주님이시군요. 제게 이렇게 역사하고 계시군요.' 
이렇게 반응하는 것은 완전히 달라요. 
바로 이렇게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라는 겁니다. 

▲하루는 제가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를 하는데 '주님 오늘 저를 인도해 주옵소서' 
그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기도가 뭐 잘못된 기도 아니죠. 

그런데 주님은 그런 기도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시는 것이 느껴졌어요. 
제 마음에 주님은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너는 오늘 너를 인도해 달라고 구하지 말고, 그 인도를 믿으라!' 
제가 그때 깜짝 놀랐어요. 

'이게 이렇게 다를 수도 있구나!' 
'주님, 오늘 저를 인도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는 것과, 
'주님, 오늘 저를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너무 다른 거예요. 

그래서 '주님, 저를 오늘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렇게 기도했을 때, 제 마음속에 너무나 놀라운 기쁨이 일어나요. 
그날 하루가 전혀 다르게 느껴져요. 

그러니까 우리가 기도를, 참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드리긴 드리지만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의 마음은, 안타까우실 때가 있어요. 

'왜 너는 소원으로만 자꾸 나오냐? 왜 믿음으로 나아가지 못하느냐?' 
'주님 나를 도와주세요...' 주님이 마치 나를 안 도와주시려고 작정하신 분처럼, 
그래서 내가 어떻든지 주님의 도움을 받아야 되겠다... 하는 식으로 기도하지 말라는 거예요.

마치 남의 집 아저씨 붙잡고 도와달라고 애걸복걸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도와주실 게 너무 분명한데... 
십자가에서 생명도 내어주신 주님이, 나를 안 도와주실 이유가 없잖아...' 
이게 바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겁니다. 히11:6

이렇듯이 우리가 기도를 열심히 해도, 전혀 믿음이 아닌 기도가 있을 수 있어요.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주님과 정말 친밀한 교제 속에 들어가는 데 있어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가,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는 것'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히브리서 기자가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야 된다'는 말씀을 (계속) 하고 계세요. 
히10:19~20절에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 열어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가 '하나님께 나아갈 담력을 얻었다.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
이런 표현을 썼는데, 이게 바로 믿음이에요.  

믿음은.. 착한 거나, 성실한 거나, 열심과는 좀 다른 거예요. 
그걸 그냥 뒤섞여서 이해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교회에서도 보면, 아주 착하고, 또 교회에서 하라는 대로 잘 순종하고, 
그리고 교회 봉사 열심히 하면... 그러면 우리는 덜컥 '저 분은 믿음이 좋다'고 말해요.
'이 청년은 믿음이 좋아요. 이 성도님은 믿음이 좋아요.' 

그런데 정확히 설명하면 (믿음이 좋은 게 아니라) 착한 거예요. 
시키는 대로 잘 따르고, 그리고 열심히 봉사하고... 

믿음의 정확한 의미는 아니에요. 믿음은 담대함과 관련이 있어요. 담대함

성소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지성소를 포함한 개념이 성소
사실은 사람에게는 성소에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자격이 없어요. 
그래서 지성소에 들어갈 때는 못 들어가도록, 두꺼운 휘장을 쳐놓았죠. 
거기 안으로 들어가면 죽으니까. 

그런데 신약성도들은 그 (지)성소에 담대히 들어가요. 예수님의 보혈로 인하여! 
예수님이 나를 위에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그리고 지금 내 안에 오셨어요.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그 순간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쫙 찢어졌어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열리고, 하나님이 직접 우리 마음에 오셨어요. 

그러므로 이제 우리에게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담력이 생겼어요.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그런 담력으로 오신 거예요. 하나님 앞에 기도하라고! 
하나님이 도대체 누구신데, 어떤 하나님이시길래 
여러분이 감히 하나님께 기도하러 오십니까? 

주 예수님 때문에, 십자가 때문에, 오늘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러 왔어요. 

▲천주교인들은 아쉽게도 이런 믿음이 분명치 않게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어요.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단대히 나가지 못하고, 그냥 신부에게 갑니다. 

그래서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천주교에 가면 성인들이 있는데, 성인들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과 성도 사이에 중재자예요. 

내가 직접 하나님께 가기는 너무 죄인이니까, 성인에게 부탁하는 겁니다. 
'하나님께 내 문제를 좀 알려주세요.' 
그래서 기도를 성인에게 하고, 마리아에게 하고, 
그 말은 그들에게 담대함이 없는 거죠.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는 담대함!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들이 이렇게 예배당에 오셨는데, 
그저 예배당에 나와 앉아있는 정도이면 안됩니다. 

여러분은 오늘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담대히 나아가는 거예요. 
절대로 주저하시면 안 돼요. 구경하시고 끝나도 안 됩니다. 

예수님이 풍랑이는 바다 위를 걸어오실 때,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주님이시면 나도 이 바다 위를 걷게 해 주옵소서' 그렇게 청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오라'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베드로가 바다 위에 뛰어내립니다. 정말 대단한 담력이죠. 

세상에 어떻게 바다 위에 뛰어내릴 생각을 하겠어요? 
대부분의 제자들은 배에서 구경만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들이 구경꾼으로 와 앉으면, 여기 왜 나와 앉으셨어요? 
뭘 보러 오신 거예요? 여러분이 여기 오신 목적은 
'내가 하나님께 담대히 나가려고' 온 거죠. 
예배당까지만 왔고, 그리고 설교하는 목사만 쳐다보고 집에 돌아가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오늘 내가 하나님께 나왔습니다. 
예전에 하나님과 나 사이는, 도무지 가까이 갈 수 없는 그런 관계였지만 
주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주님과 나 사이에 완전히 장벽이 다 무너졌으니 
이제는 하나님은 내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 앞에 나아갈 때, 자녀들에게 뭐가 걸리는 게 있겠어요? 
여러분이 그 믿음으로 오늘 하나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기도도 말입니다. 담대하게 드리는 거예요.
어찌 우리가 하나님께 감히 기도할 수 있어요? 
당신이 누구길래 하나님께 기도하러 나오셨나요? 

그런데 오늘 우리는 벌써 여러 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건 보통 담력이 아닙니다. 예수님 때문에...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과 친밀히 교제할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은 믿음이에요.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는 자가, 주님과 친밀한 교제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장로님 한 분이 어제 '영성일기'를 쓰셨는데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믿음이며, 주님과 동행 임을 생각합니다.' 
참 귀한 글을 쓰셨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복사해서 퍼뜨렸습니다.

우리가 때때로 기도할 때 보면, 기도 응답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내가 기도한 것과 전혀 다르게 일이 진행될 때... 그럴 때 휘청하죠. 
'내 기도는 안 들어주시나? 나는 기도해도 소용없네...' 

그런데 바로 그때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계속해서 기도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 그걸 믿음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우리는 주님과 동행하게 됩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그래서 히11:6절에 다시 한번 분명히 이야기하신 거예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오늘 우리에게 정말 있어야 할 믿음입니다. 
'반드시 주님은 이 시간에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보고계시고, 
이렇게 내가 주님 앞에 담대히 나아오는 것을 보시고 상을 주시는 주님이시다.' 

여러분에게 오늘 이 믿음이 생기면, 기도가 확 달라집니다. 
그리고 주님이 여러분에게 주시는 놀라운 말씀들이 깨달아지고, 
여러분의 심령 안에 변화가 일어나요. 

여러분이 믿음이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중요한 기준은, 두려움이 사라진 것입니다. 

두려움이 사라진 것입니다! 

요14:27절에 '평안을 너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느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여러분이 지금 예수님과 관계에 문제가 없다면, 
여러분이 지금 어떤 문제를 만났다 할지라도, 근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아~ 내가 지금 믿음에 서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돼요. 
오늘 여러분이 기도하는 중요한 목표 중에 하나입니다. 

여러분이 예배당에 올 때는, 마음에 근심하는 것도 있었고, 두려워하는 것도 있었는데 
오늘 찬양하고, 또 함께 기도하고 
보혈을 붙잡고 기도하고, 말씀을 듣고, 그리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데 

내 마음속에 더 이상 근심도 없어지고, 두려워하는 것도 없어졌어요. 할렐루야! 
주님의 역사가 내 심령에 일어난 거예요. 기적이 일어난 거예요. 

그런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기 시작하면 
오늘 이 밤은 여러분에게는 놀라운 간증의 밤이 되는 것입니다. 

▲행5:40~41절에 보면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성령이 임했을 때 사도들이 확 바뀌어버렸어요. 
성령이 임하시기 전에는, 붙잡혀 갈까봐 무서워서 숨어 지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고 나니까, 예수 전한다고 붙들려 가서 매를 맞았는데, 
너무 기쁜 거예요. '주님이 나를 이런 일을 당하는 일에 합당한 자로 불러주셨구나' 
그게 너무 기뻐서... 매맞고 나오면서 '그들은 기뻐했다'고 그렇게 기록합니다. 

이건 너무나 놀라운 일이죠. 이런 믿음이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 속에 우리를 인도합니다. 

여러분, 어떤 문제가 생기면 덜컥 겁부터 나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병원에 갔는데, 아주 상태가 안 좋다고 그렇게 의사가 이야기를 하면 
그러면 갑자기 너무너무 두려워지지 않습니까? 

재정적인 어떤 어려움이 생겨서 '이제 앞으로 어떻게 내가 먹고 살까?' 이런 순간이 오면 
여러분 정말 두려워지지 않나요? 

누가 나에게 말 한마디라도 좀 기분 나쁘게 하고 
얼굴 표정 하나가 나에게 다르면, 갑자기 마음이 두근거리고 
너무너무 삶 자체가 살기가 싫고, 이런 (두려운) 마음 여러분 갖게 되지 않습니까? 

그게 바로 여러분의 믿음의 상태를 말하고 있는 거예요. 
'아, 내 믿음이 실제로 문제를 만나면 이렇게 (믿음이 없게) 되는구나' 

평소에 아무 문제가 없을 때,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기도할 때, 
그 믿음은 아직 모르는 거예요. 

내가 실제로 어려운 일을 만나보고, 문제가 내 인생에 부딪혀 왔을 때, 
그때 여러분의 마음이 어떻습니까? 그때 여러분의 믿음이 어떤지를 보여주는 거예요

제가 군 입대하기 전에, 저는 아주 믿음이 좋은 사람 같았습니다. 
저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군대에서 훈련받다가, 다리 장애인이 될 그런 절박한 처지에 딱 부딪혀 보니까 
'아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구나'  제 실상이 드러났어요. 

문제 앞에서 우리의 믿음의 실상이 드러나는 겁니다. 
여러분, 나이가, 또는 예수 믿은 연한이.. 내 믿음을 꼭 말해주는 게 아닙니다. 

믿음은.. '문제를 만났는데 내가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나?' 
그게 내 믿음을 말해주는 거예요. 

예수를 믿은 지는 오래됐어도, 믿음의 수준은 
아주 초보자 수준에도 못 미치는 분들도 있습니다. 

문제 앞에서 그냥 '하나님의 말씀이고 뭐고 다 무너져버리는... 
기쁨과 감사가 다 무너져버리는... 
두려워하고 염려하는 마음으로 가득차는...' 
여러분이 이런 실상이 아니기를 축복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내가 어려우면 도와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실망을 많이 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웠기 때문에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라고, 성경에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에 반응하세요. 

우리가 아무리 어려워도, 믿음이 없으면... 우리 주님은 탄식하셨어요.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어찌 의심하였느냐?' 

여러분 오늘도 우리가 나와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데, 
내가 너무너무 하나님 앞에 힘들고 어려운 형편을 주님 앞에 고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게 아니고, 
주님은 내 믿음을 따라 역사하세요.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딸이 귀신 들려서 너무너무 고통을 당하고 있는 그런 문제를 갖고 나왔어요. 

예수님은 굉장히 냉정하게 대하셨습니다.
'자녀에게 줄 떡을 개에게 주지 않는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이방여인이라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때 여인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만,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우리 주님이 정말 깜짝 놀라셨어요. 
아마 놀라서 박수를 치셨을 거예요.
'어떻게 이방 여인에게 이런 믿음이 있느냐?' 그리고 그 딸을 고쳐주셨어요. 

여러분, 믿음이 주님의 역사를 이끌어내는 거예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내가 믿음으로 주님께 반응해서 나가지 못하면 
그러면 주님은 안타까워하실 뿐입니다

마6:30절, (그 앞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하시고는)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먹고 입고 사는 것 때문에 그렇게 걱정하는 그 사람을 보면서 
우리 주님은 너무 안타까우신 거예요. 
이유는 그게 믿음이 아니니까! 

먹고 입고 사는 형편이 어려운 것은 주님도 아시죠.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게 믿음이 아니라는 거예요.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이 그저 안타까워서, 힘들어서, 괴로워서, 
그렇게 주님 앞에 나오셨다면, 
아직까지 여러분은 주님께 깊이 들어오시지 못하시고 계신 거예요. 
주님은 여러분이 믿음으로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야고보 사도는 기도를 해도 믿음으로 구하라고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약1: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 더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무엇이든지 주게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오, 주여! 제가 오늘도 믿음으로 담대히 주님께 나아가기 원합니다.' 

내가 오늘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 대하여 
내가 그 일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내 기도를 들으신 주님은 완벽하신 주님이시고, 
내가 주님께 내 모든 문제를 의탁하였으니, 
내 마음에 조금도 두려움도 없는... 오늘 그 은혜를 여러분이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믿음은, '아휴, 괜찮아요. 해결될 때가 오겠지요.' 이런 정도가 아닙니다. 
그의 말을 보면 믿는 것 같은데, 분위기를 보면 영 안 믿는 분이에요. 
그런 성도들이 많습니다. 

'아휴 믿습니다. 아휴 어떻게 되겠지요.' 전혀 믿음이 아닙니다. 
본인은 믿는다고 말을 하지만, 
우리 주님은 절대로 믿음이라고 보시지 않으시는 것이에요. 

야고보 사도가 약1:2절에서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게 믿음이에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면, 나는 걱정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정말이에요.

◑그럼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갖지요? 이런 믿음이 도대체 어떻게 생기지요? 

▲1.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는 말씀을 붙잡아야 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내 안에 믿음이 일어나요. 

오늘도 이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안에 지금 주님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의 믿음을 일으키고 계세요. 

롬10: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음이라'
그러니까 오늘 여러분들의 귀를, 
여러분의 마음에 의심을 일으키는 마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여러분에게 믿음을 일으키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세요. 

규장 출판사의 여진구 사장님과, 지난번에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출판사에 늘 직원예배 시간이 있는데 
한 번은 굉장히 강한 성령의 역사가 임해서 
그 규장 출판사 직원들이 그 회사에서 예배드리다가 
방언을 하고.. 이런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던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한번 일어나고 방언들을 하게 되면서부터, 분위기가 확 달라졌대요. 
출판사의 분위기가! 

그렇지 않겠어요? 성령이 임하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것도 직장 예배를 드릴 때! 

그런데 예배드리는 분위기는 확 달라졌는데, 
현장에서 일하는 분위기는 그렇게 달라진 것 같지 않더래요. 

여전히 힘들면 힘들고, 어려우면 어렵고... 
그런데 그 때가 지나가고, 십자가 복음에 대한 진리가, 
또 규장출판사에서 책을 출판하는 이런 흐름이  
십자가 복음에 대한 진리가, 예배 중에 굉장히 강하게 강조되던 그 시절을 쭉 지나가는데 

 

직원들이 '십자가 복음이 이런 것이구나, 십자가의 진리가 이런 것이구나, 
복음의 영광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에 대해서 눈이 뜨이기 시작하자, 
전에 성령을 체험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은혜의 분위기가 또 일어나더래요. 

그런데 여사장이 유심히 보니까, 일하는 현장에서부터 분위기가 달라지는 거예요. 
단순히 예배 드릴 때만이 아니고, 말씀의 중심, 진리가 직원들에게 들어가니까 
말씀이 직원들에게 견고하게 서기 시작하니까 

그 다음부터는 일하는 현장, 출판하는 업무를 보는 현장에서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것을 느꼈더라... 라는 얘기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진짜 믿음을 갖기를 원한다면, 말씀을 붙잡아야 돼요. 

△이번에 장로회 신학대학교 사경회를 제가 인도했는데, 
예수 믿으면 반드시 그리 되어야 되는 10가지 질문을 그 신학생들에게 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이 '예수 믿고 속죄의 확신을 가졌습니까?' 다 아멘이에요. 
큰 소리로 아멘 했습니다. 

마지막 열 번째 질문이 '여러분의 자아는 죽었습니까?' 
아무도 아멘을 안해요. 

왜 이렇게 다른 거죠?
이 두 질문 다, 사실은 다 말씀을 믿음에서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속죄함을 받았습니까?' 하는 것에는 다 말씀에 의지해서 아멘했는데,
그런데 '당신의 자아가 죽었습니까?' 여기는 전부 '내가 죽었나 안 죽었나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혈기, 내 속에 있는 음란함, 무슨 정욕, 욕심, 거짓... '나 아직 안 죽었네' 합니다.
그러니까 참 이상하죠. 

전부 자기 체험을 의존해요. 말씀을 의존하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앙이 널뛰는 거예요. 
(자기 자아가 죽었다는 사실도 말씀을 의존해서 믿으라는 것입니다)

똑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의 놀라운 복음을 듣고도 
어떤 복음에는 아멘, 어떤 복음에는 전혀 아멘을 못하는 거예요. 
여러분 '말씀을 붙잡는 것'이 믿음의 핵심입니다. 

△두 종류의 성도가 있는데 
하나는 정말 열심히 예수 믿어보려고 애쓰고 
그리고 바로 살아보려고 애를 쓰는 성도가 있습니다. 

두 번째 유형의 성도는 '오직 나는 죽었습니다' 그분이 하는 것은 그걸 선포하는 거예요. 
자기에게 시험을 주는 사람을 만나도 '나는 죽었습니다' 
죽을 것 같은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나는 죽었습니다' 
도무지 용서 못할 사람을 만나도 내가 할 일은 '나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내 속에서 나와 함께 계신 주님이 새 생명으로 나를 이끄실 줄로 믿는 거예요. 

예수를 믿어도 유형이 쫙 갈라집니다. 우리 주님은 어떤 유형을 좋아하실까요? 
내 (자아) 가 죽었음을 분명히 고백하고, 

극복해보려고 사랑해보려고 또 정결하게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걸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직까지 진짜 믿음은 아니에요. 

그러나 '나는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입으로 시인하고, 
내가 할 일은 '내가 죽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밖에 없어요. 

그리고 이제 주님이 나를 이끄실 것을 믿는 것, 그때부터 비로소 경험이 생기기 시작해요. 
'아 주님은 정말 살아계시구나. 내 안에 역사하시는구나...' 

△스미스 위글스워스 라는 참 놀라운 사역자가 계십니다. 
믿음으로 산 사람을 꼽으라면 아마 대표적인 분일 거예요. 

그분이 사역했던 기록을 읽어보면,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수많은 병자가 고침받고, 귀신 들린 자가 고침받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죽었다(심정지)고 판정된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경우도 14명이나 있었다고 할 정도로 
정말 대단한 사역자였습니다.

근데 어떤 분이 스미스 위글스워스 목사님에게 '당신은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더니 '아니요. 저는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단지 성경에, 내 안에 계신 분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시도다 하신 말씀을 
늘 기억할 뿐입니다.' 

그거 하나예요. 이분의 삶에 그렇게 놀라운 역사가 많이 일어났던 이유는 
'내 안에 계신 분이 세상보다 더 크시다' 그거 하나 분명히 기억하고, 
그리고 그가 기도도 했고, 병든 자를 위해 손을 얹었고 그랬다는 거죠. 

▲2. 또 하나 여러분이 진짜 믿음의 사람이 되려면, 여러분이 꼭 명심해야 될 것이 
믿음을 실제로 써봐야 돼요. '믿음의 순종'을 말하는 거예요. 

여러분, 운전할 줄 아는 사람과, 운전을 잘 하는 사람의 차이를 아시죠? 
운전면허 가지면 운전할 수 있죠. '장롱면허'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운전면허증 따가지고 장롱 속에다가 넣어놓고, 실제로 운전 안 하는 사람.
그 사람도 운전을 할 수는 있어요. 그런데 운전을 능숙하게 잘 하지는 못합니다. 

이 차이가 어디서 오는 거죠? 
실제로 운전을 계속 해본 사람이냐, 아니냐의 차이예요. 

여러분가운데 믿음 없는 사람은 사실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믿음이 정말 형편없는 것 같은 분이 있어요. 왜 그렇지요? 
한 번도 믿음으로 뭘 해본 적이 없는 거예요.              

여러분 이 시간에 한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는 것 중에, 믿음으로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 
'이건 내가 믿음으로 한 거야.. 믿으니까 내가 이렇게 하는 거야..'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께 바치러 갑니다. 완전히 믿음으로 하는 거예요. 
왜요? 죽은 자도 살리실 줄로 믿고, 
'하나님이 내 아들 바치라고 했는데, 죽이면 하나님의 살려주실 줄로 믿어!' 
그렇게 한 거예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에 올라간 것이죠. 
바로 이게 믿음으로 한 거죠. 

믿음은 있는데 절대 믿음을 쓰지 않는 사람, 
그는 정말 믿음의 초보자입니다. 

믿음으로 살아보려면 두렵고.. 식은 땀만 생기고.. 결단도 안 되고.. 
평생 믿음으로 한번 제대로 살아본 간증도 없이.. 그렇게 인생을 끝내버려요. 

황홀한 믿음을 받아놓고, 
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 성소에 담대히 들어갈 수 있는 그 믿음, 
그 믿음을 가지고도, 한평생 한 번의 간증거리도 없이 살아요. 
계산하고 살았고.. 따져보고 살았고.. 절약해서 살았고.. (돈)모아서 살았고.. 
한 번도 믿음으로 해본 적이 없어요. 
여러분 믿음으로 정말 살려면, 믿음으로 부딪혀봐야 돼요. 

△우리 교회를 건축할 당시, 극심한 재정적인 어려움에 부딪혔습니다. 
빚도 많았고... 그 가운데 또 예배당 완공도 해야 되고... 
부도 위기에 몰려서 정말 죽을 것 같았어요. 

그때는 믿음으로 살아보려고 해서 산 게 아니고, 그냥 믿음으로 살 수밖에 없었어요. 
어떻게 (베드로처럼) 바다 위로 뛰어내린 게 아니고,
이미 바다 위에 그냥 서 있더라고요. (빚 가운데로 부임했죠)

그러니까 그때부터는 믿음으로 살아야 됐어요. 
'주님이 해결해 주실 것이다.' (그래서 막고 나면)
'주님이 또 해결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한 주 한 주 살았어요. 

그런 와중에도 일본에서 예배당을 마련해야 되는데, 5억 원이 모자란대요. 
도움 요청을 받았지만, 우리는 도울 방법이 없고 길도 없었어요. 

그러나 그때 '우리 교회가 이미 100억 빚이 있는데, 5억 더 빌려서 
그냥 어차피 100억 갚아주세요 하고 기도하는 거나, 
105억 갚아주세요 하고 기도하는 거나 뭐가 다르냐?' 
이런 이상한 배짱이 마음에 생겼습니다

그래서 5억을 은행에서 더 융자를 받아가지고 
'미친 사람이 아니냐?'는 소리 들어가면서 
그래서 일본에 교회 마련하는 거를 도와드렸어요.

그렇게 우리가 지난 10여 년을 살아왔어요. 
그러니까 갑자기 믿음이 엄청나게 커지는 거예요. 

어느 교회 갔더니, 교회가 재정 문제 때문에 너무 어려워 하시더라고요. 
'예배당도 크고 교인들도 많고.. 그런데 목사님이 
'30억의 부채가 있다'고 그랬어요. 목사님은 너무 걱정하시는 거예요.

저는 속으로 '무슨 그까짓 것 가지고서 걱정하시나요?' 
그러면서 제 자신이 갑자기 '내가 좀 정상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목사님은 30억이 너무 걱정스러운데, 저는 전혀 걱정이 안 되더라고요.
'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선한목자교회에 와서 이렇게 사역하면서 
내 믿음이 이렇게 달라졌구나...' 이 교회 오기 전에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런 달라진 이유가 뭐지요? 계속 믿음으로만 살아왔기 때문에! 
그러니까 주님이 살아계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당장 이번 주로 부도예요. 
이런 상황을 몇 년을 계속해서 살아보니까... 

그 다음에는 (신기하게 계속 채워지는 것을 체험하면서) 
'주님께 맡기면 되지...' 
'이게 주의 뜻인가 아닌가?'만 생각하고 
'주님이 기뻐하실 일이다' 
'그럼 추진합시다!' 그렇게 나오게 되더라는 거죠. 

믿음으로 살아본 사람과, 한 번도 믿음을 제대로 써보지 않은 사람은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전혀 믿음의 반응이 다릅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순종해 보려고 하면, 실패를 반드시 경험하게 됩니다. 
'실패하지 않아야 된다' 그러면 믿음으로 못 삽니다. 

'절대 실패하지 않아야 된다. 실패하면 큰일이야' 
그런 사람은 있는 거 가지고 살아야 되고, 그냥 아끼고 살아야 되고, 모아서 살아야 되고, 
그 방법밖에 없는 거죠. 그러면 무슨 실패가 있겠어요? 

그런데 믿음으로 살아볼 때는, 실패를 경험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믿음으로 했는데.. 아 이게 아니었나?' (잘못 분별, 판단한 경우.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여러분, 우리가 믿음에 눈이 뜨이려면, 실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어요. 
하다못해 태권도 유단자가 되려고 해도, 계속 시험을 치고, 낙방하면 또 시험을 치고 그러면서 
때때로는 넘어지기도 하고, 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그 경지에 이르는 거잖아요. 

실패를 한 번도 겪지 않고 어떤 경지에 이른 사람이 누가 있나요? 
그런데 믿음은 어째서 절대 실패를 안 하려고 하나요? 
진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정말 중요한 때에 실패하지 않아야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순교의 때가 왔어요. 예수 믿는다고 고백하면 죽어야 돼요. 
예수 안 믿겠다고 그러면 살아요. 이런 때는 실패하면 안 되죠. 
그때는 진짜 믿음으로 내가 나아가야죠. 

육신의 죽음이, 영생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이런 담력이 생겨야죠. 
그 마지막 순간에 오히려 찬송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권하고 
스데반처럼 그렇게 죽을 수 있어야죠. 그때는 실패하면 안 되죠. 

그런 진짜 중요한 때 실패하지 않으려면 
믿음의 훈련을 하는 도중에 실패도 경험해 봐야 돼요. 그때 제일 많이 배워요. 

'내가 왜 실패했나? 믿음으로 했는데 왜 안 되나? 무슨 문제가 있을까?' 그때 알게 돼요. 
'아 이거는 믿음이 아니었고 내 욕심이었구나!' 
'이거는 믿음인 줄 알았는데, 내가 남의 소리에 그냥 넘어간 거였구나!' 
'아 이거는 내가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을 때를 잘못 분별해서 그랬구나' 

그래서 분별이 생기게 되고, 
그래서 실패를 많이 경험한 사람이, 앞으로는 안목이 열리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에게 절대 실패하면 안 되는 순간이 옵니다. 
그때를 위해서 우리가 부지런히 (시행착오) 해봐야 돼요. 안 하고 배우면 좋겠지만!

우리의 모든 일상생활이 믿음의 훈련이에요. 꼭 순교할 때만 믿음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짜증날 때도 믿음이 필요해요. 

요즘 짜증나시는 분.. 믿음이 필요해요. 
요즘 염려가 막 생길 때.. 그때 믿음이 필요해요. 
최근에 두려워질 때, 낙심이 될 때, 누구에게 실망했을 때.. 
그때가 진짜 믿음이 필요한 때예요. 그것이 다 믿음의 훈련이에요. 

그러면서 어느 순간에, 나로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이 왔을 때 
내 마음속에 하나님이 원하는 길이 분명히 보이고, 걱정과 두려움이 사라졌어요. 
그러면 된 거죠. 

두려움 없고, 근심이 안 되고, 주님이 원하는 게 뭔지 분명히 깨달아지고... 
그러면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는 길로 가는 거거든요. 

△아세아연합신학교의 이한영 교수님이 하신 간증을, 영상으로 참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교수님이 미국에서 공부하실 때, 고등학교 2학년인 딸이 대학에 지원하려는데 
원하는 대학에 지원하려면 학교성적을 잘 받아야 하는데, 
성적표가 왔는데 보니까 F학점이 있는 거예요. 

'뭐가 이건 잘못 됐겠지?' 그래서 그 학교 선생님께 문의를 했더니 
1분 만에 '그게 맞다'고 그렇게 응답해 왔어요. 딸이 한 과목 F학점을 맞은 거예요. 
그러면 원하는 대학교에 들어갈 수가 없게 된 거죠. 

그날 그 성적을 받고, 교회에 예배드리러 가야 되는데, 아내가 옆에서 막 울더래요. 
그래서 '왜 당신이 그렇게 우느냐?' 했더니 
우리가 딸에게 그동안에 거짓말을 했다는 거예요.

'그동안 너는 하나님의 딸이야' 그렇게 계속 딸에게 말을 해놓고는, 
'하나님의 딸'이라고 그렇게 말은 해놓고는, 
실제로는 '내 딸이다' 라고 생각했다는 거죠. 

그래서 어떻든지 공부 잘해주기를, 남보다 더 뛰어나기를, 
더 좋은 대학에 가기를... 그렇게 원했다는 거죠.

'그래서 그렇게 되지 못한 것 때문에 이렇게 실망하다니... 내가 내 딸에게 거짓말했구나' 

'내가 네게 원하는 것은 진실하는 것, 정직하게 사는 것,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 
그 외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딸에게 말은 그렇게 해놓고, 

은근히 그 딸 통해서 내 만족을 이루고, 내가 원하는 대로 딸이 해 주기를 바라고...
딸에게 그동안에 맨 거짓말만 했던 엄마라고... 그렇게 울더래요. 

이 교수님도 예배를 드리면서, 마음에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집에 왔더니, 딸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더래요. 

그래서 딸에게 '오늘 외식하러 가자' 
딸은 F맞은 성적표를 가지고 왔으니까, 지금 밥 먹으러 나갈 기분도 아니죠. 
난 싫다고 하는 딸을 억지로 달래가지고 식당에 데리고 갔댑니다. 

아주 근사한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데 
'오늘 아빠가 너에게 왜 이렇게 좋은 식당에서 밥을 사주는지 아느냐?' 
모르겠다고 그러더래요. 

'오늘 너를 펠레브레이션 하려고 그래!' 
그래서 '펠레브레이션이 뭐예요?' 하고 딸이 이렇게 묻더래요. 

'네가 C학점만 받았어도 셀레브레이션 하려고 했는데,    "C"elebration
네가 F학점을 맞아서 펠레브레이션 해 주는 거야'          "F"elebration
(C학점을 맞아도, F학점을 맞아도.. 상관없이 아빠는 너를 축하해 주는 거야)

'그동안 아빠가 너에게 잘못한 걸 고백할 게 있어. 
아빠가 사실 거짓말을 했었다. 
너는 하나님의 딸이라고 그동안 그렇게 이야기는 했는데, 
그래서 정직하게 살면 돼,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으면 돼! 그래 놓고는 

은근히 네가 좋은 성적 얻기를 바라고, 좋은 대학에 가기를 바라고, 
그랬던 아빠를 용서해 줘!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동안 사실 너를 지켜보고 있었단다.

이제 아빠가 다시 정신을 차렸어. 
네가 F학점 맞았어도 너는 하나님의 딸이야! 
그게 중요한 거지...' 

그랬더니  딸이 왜 자기가 F학점 맞았는지를 말해주더래요. 
시험을 치는데, 답안지가 이렇게 돌더래요. 컨닝페이퍼가. 

자기는 컨닝페이퍼를 보면서 답을 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기는 그걸 보지 않고, 그냥 답을 썼대요. 

딴 애들은 컨닝페이퍼를 보고 쓴 거죠. 
그러니까 성적이 F학점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참 너 잘했다. 그러면 너는 된 거야! 
원하는 그 대학교에는 못 들어가게 됐지만 
그래도 아빠는 네가 자랑스럽다!' 그렇게 축복을 해주고 마쳤는데, 

이제 고3이 되어서 자기가 들어갈 대학을 또 지원할 때 
엄마가 나온 대학, 그 대학도 상당히 좋은 대학이었답니다. 
엄마가 나온 대학에 지원을 하게 됐답니다. 

그런데 에세이를 쓰는데 제목이 '펠레브레이션'이에요. 
그리고 작년에 자기에게 있었던 그 이야기를 쭉 에세이로 이렇게 썼습니다. 

아빠가 자기에게 펠레브레이션 해주었던 이야기.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정직하게 살고, 진실하게 사는 것, 
그거 하나를, 자기가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하면, 
사람들에게 그렇게 살아야 된다고... 그렇게 사는 사람을 격려하고...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딸은, 그 대학교에서 원하는 성적에는 좀 모자랐지만 
그 에세이 때문에 그 대학에 합격을 했다는 이야기를 간증으로 하셨어요.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모든 영역은 다 믿음으로 살아보는 훈련입니다. 
오늘도 똑같아요. 여러분의 지금의 상황은 믿음으로 사는 바로 그 현장입니다. 

오늘 기도하는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내가 주님께 나아왔으니 
'주님은 내게 말씀하시고, 응답하시고, 내 안에 역사하셔서 
내 고민과 답답함을 완전히 해결해 주시고...' 
무엇보다도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 그 자체가 완벽한 응답이에요. 

그 기쁨으로 주님 앞에 더 나아갈 수 있게 되기를, 
그래서 흔들리지 아니하고 또 주저하지도 않고 
남 은혜 받는 거 구경하는 자도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에 탐대히 들어가는 역사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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