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사는 삶은 염려가 없다 요15:5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유기성 저, pp.135~161. 축약
▲1. 믿음의 삶=염려 없는 삶
안타까운 일이지만, 교회에 꼬박꼬박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믿음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과 ‘믿음으로 사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어떤 사람이 믿음으로 사는지/아닌지 알 수 있는 기준은
바로 <염려에 대처하는 태도>를 보면 압니다.
‘믿음’에 반대말은 ‘불신’이 아닙니다.
‘염려와 근심’입니다.
우리는 다 염려를 주께 맡기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염려하지 않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저절로 염려가 됩니다.
염려는 노력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염려는 오직 믿음으로만 없어집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면,
염려는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2. 돈을 믿는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돈 문제, 자녀 문제, 건강 문제, 장래 문제 등 걱정거리가 많습니다.
성경은, 염려를 모두 주께 맡겨버리라고 하지만,
솔직히 그것을 어떻게 맡기는 것인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힙니다.
그런데 도통 안 맡겨질 것 같은 염려도
돈이 생기면.. 신기하게도.. 싹 사라집니다.
갑자기 몇 천 만 원이 생겼다고 하면,
그 순간 이상하게 내 염려들이 (많은 부분) 신기하게 싹 사라져 버립니다.
자녀문제도.. 돈으로 과외 시키면 해결될 것 같고,
(착각이지만 당장은 염려가 해결됩니다.)
건강문제도.. 돈으로 수술하면 다 될 것 같고,
장래문제도.. 돈만 있으면 무슨 사업을 새로 시작하든지.. 다 될 것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평소에 <돈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지면.. 염려가 사라지는 것은 사실인데,
잘못된 <돈에 대한 믿음>을 갖고, 염려를 잠시 잊고 사는 것입니다.
올바른 <주님께 대한 믿음>을 갖고서, 모든 염려를 물리쳐야 하겠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인데요...
▲3. 믿음은... 몸부림치는 노력의 삶이 아닙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롬1:17
‘믿음’은 마음/생각으로 믿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입니다.
생활 속에서 믿음이 작동해야... ‘진정한 믿음’인 것입니다.
여러분, 보통 사람들은 유치원시절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몸부림치는 삶을 삽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몸부림치지만...
그렇다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몸부림치지 않습니다.
남과 경쟁해서 싸워 이기고, 다투고 쟁취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삶에는 만족함과 행복함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삶은 쉬워야 합니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 마11:30
믿음의 삶은..
주님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주님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무는 것입니다.
먹여주시면.. 먹고, 재워주시면.. 자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머물며, 무엇을 먹든지.. 오직 감사하며, 찬양하며 삽니다.
▲4. 믿음의 삶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와 같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1869년, 중국 선교 도중 좌절과 낙심으로 쓰러졌습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치고 탈진했습니다.
이유는, 그때까지 <자기 노력으로> 선교사역을 뭔가 이뤄 보겠다고 발버둥친 결과,
이룬 것도 없고, 심신은 더욱 피곤할 뿐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그런 증상이 어떻게 나타나느냐 하면
-신경이 예민해져서 주위 사람들에게.. 화를 잘 냅니다.
-성취에 대한 중압감 때문에 바짝 긴장되어.. 말도 거칠게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을 초과하면.. 스트레스 과도로 몸이 쓰러지는 것입니다.
이때 친구 맥카시 선교사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그 내용은, <믿음의 삶은 자기가 애쓰고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신실하게 주님을 그저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성경말씀이 기억났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15:5
허드슨 테일러는 깨달았습니다. 믿음의 삶이란,
자기가 최선을 다해 악을 쓰고, 몸부림치고,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포도나무에 딱 붙어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즉, 항상 주님과 동행하면서, 주님이 시키시면 하고, 안 시키시면 안 하고,
주님과 함께 가고, 주님과 함께 멈추고..,
더 이상 자기 야망이 없어졌습니다. 자기 욕심을 다 내려놓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자기 염려가 다 사라졌습니다.
일을 많이 해서 자랑할 것도 없고,
일을 작게 해서 부끄러워할 것도 없었습니다.
자신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주님과 함께 다시 살아났기 때문에,
살아도 주님이 사신 것이고, 죽어도 주님이 죽으신 것이니,
안달복달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었는데... (실패해서) 내 체면 따질 것이 무엇이 있겠으며,
내가 죽었는데... (성공해서) 내 업적 내세울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5. 믿음으로 살려면, 말씀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롬10:17
믿음은 주님으로부터 오는데,
특별히 말씀을 읽을 때, 그 말씀이 내 속에 ‘레마의 말씀’으로 각인되면서
내 생각이 아니라, 상식이 아니라, 그 말씀을 믿게 됩니다.
예를 들면, 섬기는 자가 큰 자다 라는 말씀이 내 마음에 부딪힐 때,
‘섬김을 받는 자가 큰 자다’ 라는 내 상식이 무너지면서,
섬기는 것이 남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더 위대한 일이다.
라는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6. 연단/훈련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더 견고해 집니다.
이성봉 목사님은 평소에 늘 왼손 주먹을 쥐고 다니셨다고 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왜 그렇게 하는지 물었습니다.
“응, 주님의 손을 잡고 가는 거야!”
위글스워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한 번 기도할 때, 30분 이상 기도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고, 30분 이상 가본 적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시험처럼, 다니엘의 사자굴 시험처럼,
아브라함의 모리아산 시험처럼, 욥의 시험처럼,
내 믿음을 시험하는 여러 유혹과 환란이 닥칩니다.
그 과정을 통과하면서, 더욱 정금같은 믿음으로 연단됩니다.
그러면서 진짜 <염려가 없는 믿음의 삶>을 살게 됩니다.
▲7. 믿음을 회복하는 법
목사에게도 지칠 때,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믿음이 바닥을 칠 때가 가끔 찾아옵니다.
마귀가 절망의 나락으로, 나를 밀어 떨어뜨릴 때도 있습니다.
육신의/안목의/이생의 자랑 등 세상의 유혹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는 <믿음을 회복하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 복음입니다.
내가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게 되었다는 갈2:20절 말씀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외우고, 선포하고, 붙잡고 기도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지금 내 안에 계시고, 나는 예수님께 붙어 있다는
요15:5절 말씀도 암송하며 기도합니다.
주님은 그때마다 제게,
두려움이 없어지고, 염려가 떠나가고, 다시 일어설 새 힘/믿음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때로는 앞이 한 치도 보이지 않는 자욱한 안개 속으로 걸어가야 할 때도 있었지만,
주님이 내 손을 붙잡고 나와 동행하신다는 믿음으로
허공과 낭떠러지를 향해서도 제 발을 내디딜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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