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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9

by 【고동엽】 2022. 5. 5.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9
 
그리스도인은 왜 도덕과 경건이 아닌 사랑인가 1
 
기독교 기본 윤리가 사랑이라는데 이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기독교가 2천 년을 살아오면서 그리스도인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그리스도인 자신이나 세계인 모두가 인정하지 못합니다.
예수사랑은 친절도 아니고 심지어 자비도 아닙니다.
 
 
자비는 가진 자의 특권입니다.(1)
바울은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합니다.(고전13:3)
자비가 예수사랑이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비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불교 자비나 가톨릭 카리타스(자비사랑)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러한 설명을 하는 이유는 경건과 예수사랑을 대비하여 설명하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사랑은 차등 없이 한 인간 존엄을 존중하는 행위입니다.
즉 부정한 사람 불의한 사람을 포용하고 용납하여 그 인간 존엄을 존중하는 행위입니다. 여기서 불의한 사람은 사회에서 낙오하여 어쩔 수 없이 불의한 사람입니다.
 
 
도덕 경건한 사람은 이러한 행위가 안된다는 게 나의 주장입니다.
혹시 나는 경건과 사랑을 동시에 행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3 회로 쓰는 이글을 끝까지 읽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 삶이 세상에 울림을 주지 못한 원인 즉 그리스도인 삶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한 주요한 원인은 하나님나라 복음과 삼위일체 신론을 잃어버린 데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은 왜 도덕과 경건이 아닌 사랑인가를(2) 밝히기 위해 세속화와 세속주의, 도덕 경건의 유대 영향과 그리스 영향, 도덕이란 무엇인가를 살펴봅니다.
 
세속화(secularity)와 세속주의(secularism)
 
기독교 세속화는 하나님나라 복음을 통해 세상을 향유享有enjoy하는 행위입니다. 5 세기에 기독교 신학을 정립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세상 향유를 타락으로 인식합니다.
그는 세상을 이용하여 하나님을 향유하라고 합니다. 성서는 하나님나라 복음을 통해 세상을 향유하라고 하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거꾸로 말 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신플라톤주의 자여서 하나님나라 복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학이 종교개혁자들에게도 이어졌고 오늘날 기독교 신학으로 자리매김 되었습니다. 유사기독교가 창궐하는 원인은,독실한 신앙인들이 기성교회가 세속화되었다며 자기들은 세상을 멀리하고 보다 더 도덕 신앙을 지키기 위해 별도 교회를 설립했습니다. 이들이 3 백만 명 정도됩니다.
실은 기성교회도 이들과 비슷합니다. 사실상 기성교회와 유사 기독교가 차이가 없습니다. 유사 기독교는 교주가 있다는 차이 정도입니다.
 
 
흥미롭게도 이에대한 반작용으로 예수께서 자유를 주었다며 도덕 신앙을 극복한다면서 사회 책임을 외면하는 유병언 박옥수 등 구원파(자유파) 그리스도인이 발생했습니다. 이들은 2백만 명 정도됩니다.
무슨 일이 엉망이된 것 중에 기독교처럼 엉망이 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세속주의는 예수께서 제시한 하늘 계시(영원)가 기존 세상 가치체계와 어떻게 다른지 인식하지 못하는 행위입니다.
 
(로마서 3장)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바울은 이제는 법 이외에 하나님 의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자본주의 논리인 번영 성장 업적 성취 성공 명예 권력이 예수께서 제시한 하늘(영원) 계시 즉 하나님나라 복음과 어떻게 다른지 인식하지 못합니다. 아울러 기득 세력 가치관인 도덕과도 어떻게 다른지 모릅니다.
자본주의 논리와 도덕과 경건은 바울이 말하는 법입니다.
 
필자 스승인 박봉랑 박사는 예수 바울 루터가 종교를 세속화 했다고 합니다.(박봉랑, 신의 세속화) 어떤 학자는 기독교 현대화라고 합니다. 그러나 세속화보다 현대화가 더 어색합니다.
복음주의는 세속화와 세속주의를 구분 합니다.(알리스터 맥그레이브, 복음주의와 기독교적 지성)
그러나 개신교 주류인 한국 복음주의는 세속화와 세속주의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칼뱅이 기독교 강요에서 모든 성공은 하나님 축복이고 재난과 역경은 하나님 저주라고 했기 때문입니다.(기독교강요 1 16 4 6 8)(3)
 
 
성공 성취 번영 명예 권력 그리고 도덕과 경건을 신앙과 결부하지 않으면 상관 없습니다. 신앙과 결부해서 기독교를 훼손하고 기득 세력화 하여 차별과 배제가 일어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신앙인이 이러한 법으로 믿음 생활하면 괴물이 됩니다.
 
(마가복음 2장)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2장)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사람들이 바리새인과 세례요한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왜 예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는가 라고 질문합니다.
예수께서 결혼식에 첨여한 하객은 금식하지 않는다고 대답합니다.
성서에서 결혼식은 하나님나라에 대한 그림언어(상징)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나라가 시작되었으니 세상을 향유하라는 뜻 입니다.
요한복음도 결혼 잔치에서 하나님나라 새 삶을 말 합니다.
예수께서 가나 혼인 잔치에서 술이 떨어지자 유대 정결 예식에 쓰는 6 항아리에 술을 만들어 줍니다. 6 항아리는 기존 가치체계를 상징합니다. 예수께서 기존 가치체계를 깨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십니다. 그렇게 우리를 기쁨과 평화 길로
이끄십니다.
 
 
이제 하나님나라가 시작됐으니 종교 억압에서 해방되어 기쁘고 평화하게 살라는 뜻 입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종교와 법이 주는 도덕과 경건의 억압으로부터 해방하여 기쁜 삶을 주었습니다. 예수는 바리새인들로부터 먹기를 탐하고 술을 즐긴다고 비난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예수에게서 삶의 기쁨과 평화를 보았습니다.(로마14:17)
로마서는 하나님나라가 어떻게 실현되어 가는가를 증언한 서신입니다.
루터는 수도원에서 금욕 생활하다가 수녀 5 명과 함께 수도원을 나와 4 명을 차례로 결혼 시키고 마지막 뚱뚱한 수녀와 결혼했습니다. 부인이 맥주를 만들어 파는 등 집안 경제를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고 맥주를 즐기는 등 세속 삶을 즐겼습니다.
에른스트 블로흐는 「희망의 원리」에서 루터가 경건과 세속 중에서 세속을 택했다고 합니다.
16 세기 종교개혁가 3 인 중에서 루터는 세속화를 택했고 칼뱅과 웨슬리는 엄격한 경건주의자입니다.
문화 오락 술 담배 등 기호식품은 세속 삶을 즐기는 것이고 세속주의와는 다릅니다.
 
기독교 세속주의란 하나님 의는 무시하고 세속에서 추구하는 번영 성공 업적 성장 명예 권력을 신앙 목표로 삼는 것을 말 합니다.
그러므로 보다 도덕적이고 경건한 믿음생활을 하겠다며 별도의 신앙집단을 형성한 후에 성장과 번영을 추구하는 유사기독교는 종교를 세속주의로 물들 게 한 교회입니다. 이들 유사 기독교는 어김없이 교회가 수익 사업을 합니다.
교회 양적 성장을 추구하는 대형교회들도 세속주의에 물든 교회입니다. 부동산 사업 교육 의료 언론 사업 등을 하는 교회는 세속주의에 물든 교회입니다.
 
신앙인들이 세속화를 거부하는 이유
 
신앙인들의 웃기고 슬픈 현상은 세속주의인 성장과 번영 명예와 권력은 탐하면서 예수께서 종교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준 세속화는 오히려 거부 한다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1. 신약성서를 유대교와 똑같이 해석하고
2. 예수 사역과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종교 일반 상식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이 말씀은 레위기 19 장 2 절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를 인용한 말씀입니다.
거룩은 그리스어 '하기오스'를 번역한 것인데 가톨릭 성서는 성화로 번역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씀을 예수 사역과 가르침에 따라 실행하는 게 아니라 예수께서 책망한 유대인들과 똑 같이 실행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거룩함이 사회 최대 규범이었습니다. 정결을 부정으로부터 지킵니다. 선조들의 어록 제 1 장 제 1 절은 법을 지키기위해 법에 '울타리를 처라' '울타리를 처라' 입니다.(조철수, 선조들의 어록)
유대인들은 정결과 부정을 엄격하게 구분 하였습니다. 자기들은 신의 백성이고 외국인은 개라고 불렀습니다. 이스라엘 안에서도 강도 창녀 세리 목동 고리대금업자 십일조 못내는 소작농 장애인 안식년 농산물 장사꾼 고아 등은 부정한 죄인 이라 해서 성전에 올 수 없습니다.(4)
같은 민족인 사마리아 인도 외국 문화로 타락했다고 성전에 못 오게 합니다.
특히 중병이 걸린 사람은 부정하다고 동네 밖으로 쫓아냈습니다. 정결과 부정을 엄격하게 구분합니다. 이들 모두를 차별하고 사람 취급 안합니다.
 
유대교에서도 거룩이라는 말이 초기에는 하나님 백성이라는 뜻으로서 하나님께 속했다는 의미인데 후대에 와서 도덕과 경건 의미로 변질되었습니다.(5)
하나님 백성이란 세상을 돌보라는 제사장 임무가 부여된 사람이라는 뜻인데(출19:5-6)
그들은 세상과 분리하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는 스스로 부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손을 씻지 않고 식사 하셨습니다. 손 씻고 먹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기 위해서 입니다. 사막 국가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일터에서 손을 씻을 수 없습니다. 손 씻고 먹기가 법으로 정해졌습니다. 고대에는 대부분 위생이 법 입니다. 또한 예수께서 하열하는 여인이 만지는 것을 허락 하셨습니다.
하혈하는 여인은 부정한 사람입니다.
 
 
부정한 사람과 접촉한 사람은 성전에 갈 수 없습니다. 별도 정결예식과 일정 기한이 지난 후에 갈 수 있습니다.
강도만난 사람을 구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제사장과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인이 강도만나 쓰러져 있는 사람을 구하지 않고 그냥 지나 갔습니다. 혹시 그 사람이 죽은 사람이면 만진 사람도 부정해져서 성전에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인간성을 잃은 경우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오늘날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보여주는 일상의 삶 모습입니다.
예수께서 죄인인 세리와 함께 식사하고 함께 주무십니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을 어길 수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들 입장에 같이 하기 위해 일부러 안식일에 병자를 고칩니다.
 
(스가랴 14장)
20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스가랴 선자자는 구원 날(카이로스)에 즉 하나님나라에서는 거룩과 세속 대립은 사라질 것이라 예언합니다.
말 방울도 정결하고 제단 주발과 모든 솥이 같습니다.
그 예언 약속이 예수에게서 성취되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거룩이란 유대교처럼 부정과 거리 두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기독교에서 거룩하라는 말은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아라 입니다. 하나님나라 백성은 세상에서 하나님 의에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즉 세상을 향유하며 세속주의를 멀리 하는 사람입니다.
 
세속주의에 물들어 있으면서도 막무가내로 세속화를 거부하면서 믿음을 사랑이 아니라 도덕과 경건으로 삼으려는 그리스도인이 대부분 입니다.
 
왜 그럴까요? 원래 종교가 그렇습니다.
대부분 신학자와 성직자는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무엇이 다른지 모릅니다.
초기 교부들과 지금 기독교는 세계 종교와 예수가 어떻게 다른지 주목하지 않습니다.
 
종교라는 단어는 '렐리기오(religio)' 로서 '다시 만나다' '다시 되돌아 오다' 라는 의미 입니다.
그래서 고대부터 옛것은 좋고 옛날로 돌아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16 세기 종교개혁 때에도 진보란 미래를 향해 새로움을 계발하는 것이 아니라 좋았던 옛날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에따라 종교개혁자들은 신플라톤주의자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을 여과 없이 그대로 수용했고 오늘날 기독교 주류 신학도 이와 같습니다. 사실상 종교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16 세기 종교개혁은 정치개혁입니다.(김균진)
종교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옛날부터 신성함이 있다.
2. 신탁에 의해 신성함과 성스러움을 지켜야 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성스러움을 지키기 위해 신앙인은 전쟁 불화 갈등 폭력을 서슴치 않습니다.
성스러움에 대한 숭배는 과시 팽창 풍부 번영에 대한 기대를 낳습니다.(6)
오늘날 도덕과 경건으로 무장한 그리스도인들이 차별과 배제를 일삼으며 폭력성을 띄는 원인이 이러한 종교 속성에 있습니다.
성스러움을 숭배하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 불치병자 실패한 사람 낙오한 사람 성 소수자 장애인을 혐오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예수께서는 성스러움과 세속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그래서 성서 저자들은 예수 시대를 새 시대 새로운 하나님나라 라고 합니다.
 
다음회로 이어집니다.
도덕과 경건의 그리스 영향을 씁니다.
2 세기 신학이 형성되면서 1 세기 성서 저자들 사유를 벗어나 그리스 철학이 기독교에 유입된 과정에서 도덕과 경건을 살펴봅니다.
 
1.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김정현 책세상 2002, 416p
2. 이정만 기독교는 왜 도덕과 경건이 아닌 사랑인가 한들출판사 2016 필자가 이 주제로 책을 썼습니다.
3. 데이빗 그리핀 과정신정론 이세형 이문출판사 2007, 139p
4. 송성진 예수그리스도 CLC 2009, 121p
5. 프레드릭 J 머피 초기유대교와 예수운동 새물결플러스 2020, 93p
6. 자크 데라다 신앙과 지식 신정아 최용호 아카넷 2016, 134 182 190-19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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