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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기둥, 불기둥의 인도를 받자! (출 13:17-22)

by 【고동엽】 2022. 2. 11.

2012년/구름기둥, 불기둥의 인도를 받자! (출 13:17-22)

 

한 청년 커플이 주례를 부탁하기 위해 목사님을 찾아 왔습니다.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결혼 준비는 잘하고 계십니까?' 두 사람이 씩씩하게 대답했습니다. '정신이 없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또 물었습니다. '결혼 준비를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두 사람이 꼼꼼하게 메모해 놓고 준비하고 있는 것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청첩장은 준비했고, 웨딩 사진은 찍었고, 신혼여행과 피로연은 예약이 끝났고, 당일 입을 예복과 웨딩드레스는 준비해야 하고, 아직 혼수는 더 준비해야하고, 또 폐백 준비해야 하고, 야외 촬영도 해야 하고, 신혼집과 신혼살림도 준비해야 하고'
목사님이 가만히 듣다 보니 이 커플은 '결혼준비와 결혼식 준비'를 혼동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결혼준비를 물었는데 결혼식 준비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결혼식을 준비했다고 결혼을 준비한 것은 아닙니다. 결혼식을 잘 치렀다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혼식 준비는 결혼하는 날 당일 예식과 그 전후한 여러 절차들을 준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비해서 결혼 준비는 '두 사람이 하나 되는 준비를 말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해하고, 서로 함께 삶을 나눌 준비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할/
사실 많은 커플들이 결혼한 뒤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가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결혼식 준비는 잘해서 결혼식은 잘 치렀지만 결혼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결혼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결혼식 준비만 신경을 썼지 정작 결혼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를 잘 드렸다고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배는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정해진 의식에 참여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비해서 신앙생활이란 어디서든지 또 언제든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배는 결혼식과 같은 것이고, 신앙생활은 결혼생활과 같은 것입니다.
사실 예배는 잘 드리는데 신앙생활은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참 많습니다. 저들은 예배드리는 일은 나름대로 준비하고 신경 써서 열심히 하지만, 정작 신앙생활은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또 신경 써서 실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배에는 성공하지만 신앙생활에는 실패합니다.
여러분! 신년새해가 밝아왔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배도 성공하고 신앙생활도 성공하는 축복 받는 한해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철저하게 준비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아멘!/ ◀제목 소개!▶

 

애굽에서 430년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의 탄식과 눈물을 보신 주님은 떨기나무불꽃 속에서 모세를 불러 사명을 주시고 애굽 왕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내어 보내줄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리도 오랜 세월 일을 부리던 이스라엘을 하루아침에 내주기는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하여 '10가지 재앙'을 만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가 급기야 장자를 잃은 비참한 지경에 처하고서야 저들을 풀어주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다음장면 즉, 10가지 재앙을 다 치르고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에 도달하기까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들이 '어떻게 얻어낸 자유입니까?' 430년 만에 얻은 자유입니다. 그들 마음은 매우 바빴습니다. 왜? 바로 왕의 마음이 또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매우 불안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럴 때는 한시바삐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멀리' 달아나는 것이 상책입니다. 지름길이 있다면 무리해서라도 그 길을 택하고 속히 바로의 영향권을 벗어나는 일이 급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한시가 급할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어디로 데리고 가셨는지 아십니까? 결코 인생의 생각만으로는 납득하기가 힘든 방향으로 이끌고 가셨습니다.
여러분. 질러가도 시원치 않을 길을 빙 돌아가느라고 속이 바짝 타시는 분은 없으십니까? '나는 갈 길이 바쁜데 무슨 일을 해도 남보다 시간도 두 배 더 걸리고, 물질도 두 배나 더 들고, 고생도 두 배나 더 해야 할까?'
본문을 보십시오! 정말 살기 위해서는 갈 길을 서둘러야 했던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저들을 일부러 늦추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이후 홍해를 건너기 전까지 어떤 길을 갔는지 아십니까?

 

①그들을 먼길(돌아가는 길)로 인도하십니다(17).
사실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너 광야까지 들어가지 않고 곧바로 자기들의 본토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지름길이 있었습니다. 그 길은 불레셋 사람들의 땅을 통과해야 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까운 길을 제쳐 두고 멀고 험한 광야 길로 그들은 인도하셨습니다. 지중해 해안선을 따라 걸어가면 보름정도 걸리는 지름길이 있었습니다. 현재 애굽과 팔레스틴 간의 철도를 따라 기차로 달리면 세 시간 정도, 비행기로는 1시간 미만의 가까운 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빠르고 쉽게 갈 수 있는 그 길을 제쳐놓으시고 광야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생사가 걸려있는 다급한 상황에서 '죽기살기로 싸우면' 블레셋 땅을 지나갈 수도 있었을 법한데 하나님은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불레셋 사람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가까운 길이 있었지만 불레셋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어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중해 연안을 점령하고 사는 굉장한 호전적인 민족입니다.
만일에 이스라엘 60만 백성이 그 땅을 통과한다면 호전성이 강한 그들은 분명히 이스라엘을 공격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불레셋은 조직적인 군대가 있습니다. 강한 군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종으로 살다 나왔기 때문에 조직도 훈련도 받아 본 일이 없는 아주 엉성한 집단입니다.
그렇다면 할 수없이 애굽으로 되돌아가야 된다는 주장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애굽으로도 갈 수 없습니다. 지금 바로가 이를 갈고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멀지만 안전한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할/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먼길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을 위함이었습니다. 강한 군대 앞에 마주서는 것 자체가 저들에겐 전혀 도움이 안되기 때문에 주님이 속도조절을 하고 계십니다. /믿/
여러분. 작년에 안된 것 때문에 불평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늦어지는 것 때문에 불평하지 마시고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의 속도를 조절하고 계심을 믿음의 눈으로 볼 줄을 아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또 왜 가까운 길을 놔두고 멀리 돌아가게 하시는가? 어려움을 만나면 금방 편안했던 소싯적 생각만 하고 살만했던 옛날 이야기만 늘어놓기 때문입니다.
또 왜 돌아가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이 날 보실 때 '뒤돌아 서지 않을 만큼 견고한 신앙이 아직 갖춰져 있질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을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과거로 다시 되돌아가기보다는 좀 시간이 걸리더라고 멀리 돌아가는 편이 너를 위해서 더 좋겠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하나님이 주목하는 것이 무엇인가 보십시오. 빨리 고향에 들어가는 것보다 변하기 쉽고 간사하기 이를 데 없는 인생의 마음을 보고 계십니다.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막상 어려움을 만나면 '마음이 바뀌어' 애굽으로 돌아가려는 그들의 간사한 마음을 보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만 쉽게 마음이 바뀝니까? 아닙니다. 애굽 왕 바로도 온갖 고초를 다 겪고서 할 수 없이 이스라엘을 내 보냈지만, 출14:5절을 보면 '바로와 그 신하들이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가로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고'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마음이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한 하나님은 '멀리 돌아서 가더라도' 그러니까 40년이 걸리더라도 이스라엘이 하나님만 변함 없이 붙들기를 훈련시키셨듯이 지금 우리를 훈련시키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멀리 돌아가는 것이 오히려 축복입니다. /할/

 

②그들은 거친 길, 즉 광야 길로 인도하십니다(18).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이 지났던 광야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멀리 돌아가더라도 좀 편안하고 안전한 길이었다면 좋겠는데 시간은 시간대로 더 걸리는데다가 또 고생은 고생대로 더 하는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 길에서 얼마나 '속전속결'을 외치며 남들보다 한 발작이라도 앞서가기를 원합니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남들 다하는 고생을 나는 안하고 좀 편히 지날 순 없겠는가에 얼마나 집착합니까? 그런데 남들보다 편한 길을 찾다가는 오히려 남들보다 몇 배 더 고생스럽게 살아가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여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남들보다 더 피곤하고 힘든 인생 길을 걸으면서라도 얻어야 할 깨달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소중한(비싼 값을 치르면서 배워야 할 만큼) 깨달음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편한 길로 하나님 없이 혼자 달려가는 것보다는 고난의 길을 가더라도 그 길을 앞서 인도하시는(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하나님을 좇아가는 것이 몇 갑절 더 복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할/
하나님은 그들을 지금 강하게 훈련시키고 계십니다. 벼락부자는 돈 귀한 줄을 모르고 가치 있게 쓸 줄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손에 쥔 재물은 땀 흘려 모은 재산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졸부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은 430년 간이나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이제 가나안 땅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인데, 그런 귀한 선물을 아무 고생도 없이, 아무 준비도 없이 받아 보십시오, 그들이 그것을 어떻게 관리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가까운 길을 두고 먼 광야 길로 인도하신 것은 훈련과 연단의 기간이었고 강한 민족으로 태어나는 축복의 세월이었습니다. /할/

 

③갇힌 길(막힌 길. 아득한 길)로 인도하셨습니다(14:3).
출애굽 시키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먼길로 거친 길로 데리고 가시더니 결국 어디까지 데리고 가셨는지 아십니까? '막다른 길'까지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야말로 오도가도 못할 막다른 길, 땅으로 들어가야 할지. 하늘로 날아 올라야 할지 도무지 더 이상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벼랑 끝'까지 몰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여기까지 가야 인간들이 손을 듭니다. 이때부터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할/ 출14:4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막다른 길에 가 있다'고 생각할 때 바로가 마음을 바꿔 '이때다'하고 쫓아 올 때 저들을 이곳 홍해에 수장시켜 '본때를 보여주시려고' 이스라엘을 막다른 곳에 두셨습니다. 이런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편에 서 계심을 알게 하시려고 이렇게 하셨다는 내용을 본문에서는 훨씬 점잖게 '나를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때로 기가 막힌 그런 형편에 처해 보기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빨리 가나안 땅을 밟게 하기보다는 더 중요한 것을 깨우쳐 주시기 위해 때론 거친 길로 때론 막다른 길로도 그들을 몰아가셨습니다. 그 이유를 신8:2-3절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할/
하나님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법을 지금 그들에게 훈련하고 계셨습니다. 이런 훈련은 지금 우리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믿/
▶인디언들이 아들을 훈련하는 독특한 방법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숲 속에서 맹수들과 함께 밤을 지내게 하면서 아들의 담력을 키운다고 합니다. 그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강조합니다. '무섭거든 아버지만 불러라'
시험을 받는 날 밤에 아들은 얼마나 두려움을 느꼈겠습니까? 그러나 날이 밝아오면서 아들은 아버지가 가까운 나무 뒤에서 화살을 당긴 채 지키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위험이 닥치지 않도록 밤새 지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아도 항상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심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본문 21절에 보세요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할/

 

④그 와중에서도 모세는 요셉의 해골을 메고 나옵니다. 그들의 신앙을 가르치고 계십니다(19).
우리는 여기서 요셉과 모세에게서 위대한 신앙인의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요셉은 그가 죽게 되었을 때 그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창50:24-25절에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리니(찾아오시리니)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요셉은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확실하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했기에 요셉은 죽으면서 자기 해골을 메고 가나안 땅으로 가겠다고 맹세케 했던 것입니다.
이제 요셉이 죽은 지 오래 되었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 길로 인도하실 때에 모세로 하여금 백성들에게 요셉의 해골을 가지고 가자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가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을 그 후손들이 믿었기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게 된 줄 믿습니다. /아멘!/
그렇다면 요셉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애굽에서 크게 성공한 인물입니다. 애굽의 두 번째 치리자가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그곳에서 영원히 살 인생이 아님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할/
그는 그곳을 언젠가는 떠나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약속의 땅에 갈 것을 분명히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죽으면서 이 맹세를 시켰던 것입니다(창50:22-26).
여기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을 교훈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들도 요셉처럼 최선을 다해서 삽시다. /할/
여러분, 현재의 삶이 참으로 힘들다 할지라도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요셉을 인도하시던 그 하나님의 손길이 오늘 나의 삶 속에서도 역사 하신다는 그 믿음을 가지고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그리고 우리도 요셉처럼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인생처럼 착각하지 맙시다. 우리들도 요셉처럼 이 세상에서 출세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기에 교만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언젠가는 떠날 날이 있기에 인생을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아멘!/
모세를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약속을 지켰습니다. 사실 요셉과의 맹세는 지키지 안아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맹세를 할 때는 모세는 태어나지도 않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맹세는 수십 년 전의 약속도 아니고 수 백년전의 약속이었습니다.
과연 모세는 위대한 신앙인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한마디로 정의를 한다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멘!/
여러분들은 지금 무엇을 믿고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엄청난 은혜의 축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약속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요셉의 해골을 메고 광야에 들어선 모세와 같이 우리들도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로부터는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점은 요셉이 무덤을 명당자리에 쓰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땅을 사모하며 가기를 소원하였기에 모세가 그 약속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도 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을 사모하며 살아가 합니다. /아멘!/

 

⑤그 광야 길에 이스라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았습니다(21-22).
본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에담에 장막을 치고 있을 때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나타났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별개의 기둥이 아니라 한 기둥의 이중적인 현상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보였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인 것입니다.
우리도 광야 같은 인생 길을 걸어갈 때 필히 하나님과의 동행이 있어야 승리할 수 있으며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배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과연 무엇을 의미합니까?
⑴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되 주야를 가리지 않고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할/
22절에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백성들과 함께 했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밤에도 낮에도 변함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믿/
이 믿음만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 믿음으로 여호수아는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을 함락시켰습니다. 그 믿음으로 기드온의 삼 백 용사는 메뚜기 떼처럼 많은 미디안 족속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다윗은 거인 골리앗을 무너뜨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리고 성과 같은 장애물이 있다 해도 미디안 족속 같은 방해꾼이 있다 해도 골리앗과 같은 악한 세력이 진을 치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만 있으면 해결해 주십니다.
올 신년 새해에는 우리 모두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바라보며 승리하는 한해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⑵하나님의 인도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이동하면 장막을 거두고 행군했고, 두 기둥이 머물면 그곳에 장막을 치고 머물렀습니다.
2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즉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인도하며 계속 걷고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행진할 때마다 그들 앞에서 인도하셨고 이스라엘은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가나안으로 가는 길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동행의 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구름기둥과 불기둥보다 앞서지 않았습니다. 뒤쳐지지도 않았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과 다른 방향으로 가지도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인도하는 방향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것처럼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아닐지라도 말씀으로 인도하십니다. 기도 가운데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철저히 따라야 합니다. 감정이나 기분에 따라 변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책임을 지는 하나님의 징표이기에 하나님의 인도를 믿고 끝까지 따라가는 신년 새해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⑶하나님의 보호를 의미합니다. 구름 기둥은 사막의 태양으로부터 저들을 보호했고, 구름 기둥은 밤의 추위와 맹수의 습격으로부터 저들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성 '어거스틴'이 설교 부탁을 받고 낯선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길을 모르는 그는 안내자의 도움을 받아 뒤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내자가 길을 잘못 들어 다른 곳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안내자가 어이없어 합니다. 그들은 당황했습니다. 목적지가 아닌 곳에 이미 와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거스틴은 그 날 설교를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후에 알고 보니 그가 목적했던 곳에 갔더라면 죽임을 당할 뻔했다는 사실입니다. 어거스틴을 반대하는 대적들이 이미 숲 속에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칼을 들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내자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여 그 길을 못 가게 하시고 어거스틴을 보호하여 주신 것입니다. /할/
출14:20절입니다.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밝으므로 밤새도록 저쪽이 이쪽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구름기둥이 이스라엘과 애굽 진 사이를 가로막습니다. 애굽 군대가 접근조차 할 수 없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내밀자 홍해가 갈라지고 이스라엘이 건넙니다. 나중에 애굽 군사들이 따라 들어갔지만 물이 합쳐지면서 수장됩니다. 19절에 구름기둥이 앞에서 뒤로 이동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배후가 되어 보호해 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배후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보호 하셨듯이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눈동자처럼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처럼 보이지 않지만 사랑으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험한 광야에서도 하나님이 친히 보호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 길을 가는 동안 반드시 동행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람과의 동행은 불완전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동행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행입니다. /아멘!/ 신년 새해에는 광야와 같은 인생 길을 가는 동안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하나님이 동행하여 주시는 증거를 체험하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⑥어떻게 해야 2012년에 구름기둥, 불기둥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가?
⑴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었습니다. 시23:2절에서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고백합니다.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가장 완전한 곳으로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해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갈 길을 보여주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32:8절에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하나님께서 갈 길을 가르쳐주신다는 시편기자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을 사랑하시기에 갈 길을 보여주시기 원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갈 길이 보여집니까?
⑵바른 회개가 있어야 인도를 받습니다.
비엔나 박물관에 가면 로마 황제가 성당에 들어가려는데 주교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서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당시에 주교가 천하를 호령하는 황제 앞을 가로막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그림은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그려진 그림이기에 더욱 흥미를 끌고 있습니다.
주후 390년 데살로니가에서 로마에 항거하는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는 부하가 살해당하자 잔혹한 보복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던 황제는 보복명령을 즉시 철회했지만 이미 1,500명이나 되는 주민들이 학살당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교회는 황제의 이런 끔찍한 대량학살을 엄히 정죄하고 나셨습니다. 그 일이 있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 황제가 밀라노에 갔다가 성당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당시 성당의 주교는 '암브로시우스'이었습니다. 그는 황제의 끔찍한 학살을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성당의 문을 가로막고 황제가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저지른 죄를 참회하지 않고는 성당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황제는 암브로시우스 주교 앞에서 땅바닥에 엎드려 참회를 합니다. 황제가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의 겸손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습니다. /아멘!/
기독교는 참 회개를 귀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시32:5절에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는 원인은 죄악 때문입니다. 죄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친밀했던 사람들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보았고, 하나님과 대화했으며, 하나님과 교제했습니다. 그러나 친밀한 관계가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죄악이 하나님의 인도를 방해한 것입니다.
따라서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멀어지고 맙니다. 하나님과는 오직 회개를 통해서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갈 길을 인도 받으려면 하나님과 나 사이에 죄악이 사라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고백하지 않은 죄가 있다면 즉시 고백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⑶기도할 때 주의 인도를 받습니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4년여에 걸친 노예해방 전쟁으로 전사자의 수가 무려 60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처참한 전쟁 앞에 남군이나 북군이나 할 것 없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남부 사령관은 '제퍼슨 데이비스'였으며, 북부 사령관은 '아브라함 링컨'이었습니다. 데이비스는 남부의 백성들에게 기도의 날을 선포했습니다. '기도야말로 전능하시며 만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다. 기도는 적과의 싸움에서 남부 연합에 가담한 남군들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방패가 되리라'
이 소식을 들은 링컨은 흑인들을 노예처럼 부리면서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남부 연합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보았습니다. 링컨의 말입니다. '다른 사람의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에서 이익을 차릴 욕심으로 감히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한다는 건 이상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남과 북이 같은 성경을 읽고 같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며 상대방을 이기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양쪽의 기도가 모두 받아들여질 수 없다. 어느 쪽도 소원하는 바를 완전히 이룰 수 없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만이 목적을 가지고 계신다.'
링컨은 국가의 위기 앞에서 자신의 의를 과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내편이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 편에 바르게 서있는가?'를 물어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지도자로서, 사령관으로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 내가 설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링컨은 기도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편에 서있는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 지도자였습니다.
시32:6절에서 시인은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라는 말은 기도할 기회를 만들라는 뜻입니다. 기도하는 좋은 기회에 기도하라는 의미입니다. 기도할 기회를 만들어 기도하는 신앙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유다의 히스기야는 앗수르 대군 18만5천명이 포위하고 하나님을 비방했을 때 성전에 올라가 기도했으며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앗수르 대군을 전멸 시키셨습니다. 기도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할/
⑷다시 한 번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확고해야 합니다. /아멘!/
1967년도 이스라엘과 아랍연합군의 6일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당시 전쟁이 일어났을 때 모든 언론은 이스라엘이 패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아랍연합의 군사력이나 경제력과 비교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6일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이스라엘 군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은 최신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 무기 때문에 전쟁에 반드시 이기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승리를 거둔 후 그 비밀 병기를 밝혔습니다. 바로 그들이 믿는 '하나님'입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이스라엘 국민들은 극도로 불안했습니다. 그러나 랍비 '쉬니어슨'의 연설로 용기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지키고 계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시켜 주실 것이다.' 이스라엘의 일간신문들은 랍비의 말을 인용하여 기사를 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땅을 지켜보고 계신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가까이 왔다.' 국영방송도 '하나님께서 이번 전쟁에 함께 하실 것이고, 우리에게 큰 승리를 주실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라고 방송을 내보냈습니다.
놀라운 것은 매스컴의 보도를 이스라엘 국민들이 철저하게 신뢰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우시고 지키시며 함께 하신다고 믿었습니다. 그 결과 전쟁이 발발한지 6일 만에 이스라엘은 아랍연합을 당당하게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믿는 사람들을 책임져주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만이 갈 길을 인도함 받을 수 있습니다. /할/

 

⑦예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세 가지가 옵니다.
⑴영권(靈權)의 신비가 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있으면 생각지도 못 했던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영권입니다.
안 되는 것 같은 데 잘 됩니다. 넘어지는 것 같은 데 축복이 있습니다. 망하는 것 같은 데 일어납니다.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는 것 같은 데 싸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딤후4:7-10절에서 말하기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할/
어디 그뿐입니까? 롬8: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아멘!/
요나를 보세요! 그가 고래뱃속에 들어갔습니다. 죽는 것 같은데 살아나서 능력 있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고래뱃속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그런 사도가 될 수 없었습니다. 요셉도 보세요! 형들이 미워하여 먼 나라로 인신매매 당하여 팔려갔습니다. 아예 없어진 것 같았는데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후에 온 가족을 살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니엘도 그랬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사자굴속에 넣었습니다. 사자에게 밥으로 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사를 미리 보내셔서 사자 입을 막고 계셨습니다. 왕이 놀라서 국무총리를 삼았습니다.
▶캘리포니아 어느 농가에 콩을 바다처럼 넓게 심었습니다. 어느 날 극심한 홍수로 콩들이 다 떠내려갔습니다. 엄청난 손실이 되었습니다. 그는 비극의 현장을 어처구니없이 걸으며 울었습니다. 그런데 발 밑에 반짝이는 돌들이 보였습니다. 금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큰 부자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안 되는 것 같은 것이 모두 축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 그런 신비가 따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일이 쉽게 풀리게 됩니다. /아멘!/
▶미국에 유명한 강연 가가 있습니다. '데일 카네기'입니다. 그는 1888년 11월 미국 미주리 북단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시골 메리빌이라는 촌 농장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농장에서 일어났던 경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송아지를 외양간에 넣으려고 하는데 도무지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끌고 아들이 뒤에서 밀어도 송아지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쩔쩔 매고 있었습니다. 그 때 식모가 와서 말했습니다.
'내가 하지요' 그리고 손가락을 송아지 입 속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을 빨게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외양간으로 들어섰습니다. 간단했습니다. 식모는 배운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송아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억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나 대신에 일하게 하면 하나님은 신비하게 이루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할/
솔로몬이 일 천 번제를 드리고 그 날 밤에 잠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면 하나님께서 스스로 무엇을 줄 것이냐고 묻습니다. 올 새해에는 주님을 모시고 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신비를 경험하며 사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⑵인권(人權)의 신비가 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에게는 인권도 따릅니다. 필요한 사람들이 찾아오게 됩니다. 예수님을 안고 있는 요셉과 마리아에게 동방 먼 곳에서부터 세 박사가 찾아 왔습니다. 빈손으로 온 것이 아니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가지고 왔습니다. /할/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2012년에는 여러분에게 꼭 필요한 사람들이 찾아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바울은 온 몸에 가시와 같은 병이 있었는데도 온 세계를 돌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에게 꼭 필요한 사람은 의사입니다. 의사 누가가 바울을 찾아 왔습니다.
모세는 말이 어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와 대항하여 싸워야 했습니다. 말을 잘 하는 아론이 찾아 왔습니다. 베드로는 성질이 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성질이 차분한 요한이 파트너가 되어 늘 같이 다니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사울의 신하들에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 꼭 필요한 사람은 사울 왕의 고급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찾아 왔습니다.
여러분, 올 2012년에는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꼭 필요한 사람들을 많이 보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할/
⑶물권(物權)의 신비한 축복이 옵니다. 여러분, 무엇이 축복입니까? 꼭 필요한 것을 선물로 받는 것이 축복입니다. 필요 없는 것은 아무리 많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죽어 가는 사람에게 돈을 수 십억을 선물로 주었다면 축복일가요? 소생할 수 있는 약 한 방울이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금년에는 여러분들에게 꼭 필요한 물질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아멘!/
그런데 잘 되는 사람을 보면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습니다. 부자는 노력으로 되지만 재벌은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합니다. 장관은 노력으로 되지만 대통령은 하나님이 도우셔야 합니다.
잘 되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고 사람들이 따릅니다. 그리고 물질이 따릅니다. 2012년을 맞았습니다. 금년도 우리 온 성도들에게 영권, 인권 그리고 물권이 따르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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